라이프10

페도로우의 드론과 시르스키의 참호전

우크라이나 대통령 블라디미르 젤렌스키는 어쩌다 러우 전쟁의 판도를 바꾼 드론 천재 국방장관 미하일로 페로우를 해임했대가 역풍을 맞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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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만에 무너진 삼각편대

7월 15일, 젤렌스키 대통령이 미하일로 페도로우 국방장관의 해임을 발표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7월 21일, 같은 대통령이 이번에는 올렉산드르 시르스키 총사령관을 해임했다. 국방장관과 총사령관 — 전시 지휘 체계의 두 축이 그 일주일 사이에 무너진 것이다. 발단은 교전 교리였다. 저렴한 드론으로 병사의 목숨을 지키자는 개혁과, 포병 화력과 보병 참호로 전선을 지켜온 전통이 정면으로 부딪혔다. 7월 16일부터 21일까지, 참전 용사와 시민들은 키이우 독립광장(마이단)을 비롯한 전국 도시에 쏟아져 나와 "작동하는 시스템을 파괴하지 말라"고 외쳤다. 시위 나흘째인 7월 20일, 시르스키는 군사 매체 Militarnyi에 기고문을 실어 페도로우에게 공개 사과했다. 그러나 광장의 분노는 식지 않았다. 다음 날, 대통령은 자신이 일주일 전 내린 결정을 스스로 뒤집었다.

미하일로 페도로우

미하일로 페도로우 : 국방부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대답

미하일로 페도로우는 35세의 테크 창업가 출신으로, 디지털전환부 장관 시절 전자정부 시스템 '디아(Diia)'를 성공시킨 경험을 국방부로 그대로 옮겨왔다. 군사 조달 절차를 대폭 간소화하고 민간 드론 업체의 이윤율 보장 한도를 25%까지 끌어올려 드론 시장의 폭발적 성장을 이끌었다. 2025년 5월에는 '아샨 작전(Operation Ashan)'을 지휘해 종심 50km 지점까지 드론 수천 대를 집중 투입, 적 장비 700여 대를 파괴하며 러시아군의 기계화 공격을 수개월간 봉쇄했다. 그러나 시르스키 총사령관과의 갈등 끝에 7월 15일 국방장관직에서 물러났다. 물러나며 그는 시르스키를 향해 직접적인 언어로 비판했다 — "우리의 모든 이니셔티브가 완전히 막혔다", "시르스키는 얼굴을 맞대고 솔직하게 문제를 논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어떻게 하면 러시아를 비대칭적으로 이길지 고민하는 대신, 어떻게 하면 나라를 분열시킬지 궁리했다." 다만 그는 시르스키가 2022년 "우리나라를 구했다"는 점은 인정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그에게 기술 부문에 집중하는 다른 정부 직책을 제안했지만, 페도로우는 국방장관직으로의 복귀만을 원한다고 밝혔다. 그의 자리는, 아직 완전히 매듭지어지지 않았다.

미하일로 드라파티

미하일로 드라파티 : 사의를 반려받은 사령관

미하일로 드라파티는 1982년 카미아네츠-포딜스키 태생으로, 43세에 총사령관에 오른 26년 차 군인이다. 2004년 하르키우 전차부사관학교를 졸업한 그는 2014년 마리우폴 전투에서 장갑차(BMP)를 몰고 포위된 경찰 병력을 구출하며 '날아다니는 장갑차'라는 별명을 얻었고, 이반코프·이즈바리네 포위망에서는 최소한의 손실로 부대를 탈출시켰다. 영국 국방대학 과정을 수석 졸업하며 영국 대사로부터 '국왕의 칼(Queen's Sword)'을 받기도 했다. 2025년 6월, 당시 지상군사령관이던 그는 훈련장에 대한 러시아 공습으로 최소 12명이 숨지자 책임을 지겠다며 자진 사의를 표명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를 반려했고, 그는 자리를 지켰다. "명령관이 부하의 생명에 책임을 지는 군대는 살아 있는 힘"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페도로우가 해임되자 곧바로 공개 지지를 선언했던 그는, 7월 21일 시르스키의 후임 총사령관으로 전격 임명됐다. 한 번 사표를 던졌던 사람이, 이제는 군 전체를 짊어지게 됐다.

이호르 스키비우

이호르 스키비우 : 이줌의 훈장, 참모부의 개혁가로

이호르 스키비우크는 공수부대 장교 출신으로, 2014년 일로바이스크·데발체베 전투에 참전해 부상을 입었고, 2022년에는 키이우 방어전을 지휘했다. 80공수여단장이던 그해 하르키우 대반격에서는 이줌 해방 작전을 이끌어 '우크라이나 영웅' 훈장을 받았다. 대통령령 631/2026호에 따라, 그는 전임 총참모장의 후임으로 총참모부 수장에 올랐다. 드라파티와 함께 그는 총참모부에 남아 있던 소련식 관료주의를 청산하고, 육·해·공군과 무인전력부대 간의 유기적 통섭을 도모하는 신속 의사결정 구조 구축에 착수했다. 광장이 요구했던 세대교체는, 이 두 사람의 조합으로 완성됐다.

올렉산드르 시르스키

올렉산드르 시르스키 : 도살자가 아니라고 말한 백전노장

올렉산드르 시르스키는 키이우 방어전, 하르키우 대반격, 쿠르스크 침투 작전을 이끈 60세의 백전노장이다. 소련식 상명하복형 지휘와 포병 화력, 보병 중심의 참호 소모전에 크게 의존했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정작 그는 세계 최초의 무인전력부대(Unmanned Systems Forces) 창설을 직접 주도하고 로베르트 브롭디('마디야르')를 지휘관으로 추천한 인물이기도 하다. 다만 그는 드론이 장거리 포병과 방공망, 중기계화 전력을 전면 대체할 수는 없다는 실용주의적 입장을 고수했고, 국방부의 행정 권한과 총참모부의 작전 지휘권 경계가 흐려지는 것을 경계했다. 시위 나흘째인 7월 20일, 그는 군사 매체 Militarnyi에 기고문을 실어 "나와 장관 사이에 개인적 앙숙 관계는 없었다"며 페도로우에게 공개 사과했다. 그러나 광장은 그를 용서하지 않았다. 이튿날인 7월 21일, 그는 총사령관직에서 해임됐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 일주일 만에 뒤집은 결정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7월 15일 페도로우 국방장관을 해임하며 군 수뇌부 내분을 조기에 매듭지으려 했다. 그러나 참전 용사와 시민들은 키이우 독립광장을 비롯한 전국 도시로 쏟아져 나와 엿새 동안 시위를 이어갔다. 결국 그는 정확히 일주일 뒤인 7월 21일, 자신이 유임시켰던 시르스키 총사령관까지 해임하는 후퇴를 선택했다. 통치권자가 여론의 압박에 밀려 핵심 군 인사를 스스로 번복한 이 사건은, 우크라이나 전시 지배구조에서 시민사회와 현장의 목소리가 전략 결정에 대한 실질적 거부권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로 남았다.

이호르 클리멘코

이호르 클리멘코 : 두 번 미뤄진 발령

이호르 클리멘코는 2023년 2월부터 내무장관을 지낸 인물이다. 페도로우 해임 다음 날인 7월 15일, 여당 의원들은 그를 차기 국방장관 후보로 로이터에 제시했다. 그러나 페도로우의 복직을 요구하는 시위가 전국으로 번지자,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틀 뒤인 7월 17일 그에게 국방장관 대신 국가안보국방위원회(NSDC) 비서 자리를 제안했다. 그 공식 임명은 8월 3일에야 이루어졌다. 내부 치안 유지, 동원 체계 정비, 사이버 위협 대응이 그의 새로운 임무가 됐다. 국방장관 자리는, 두 번의 기회 동안 광장이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예브헨 흐마라

예브헨 흐마라 : 알파에서 국방부로, 완성되지 않은 자격으로

그 빈자리를 결국 메운 것은 예브헨 흐마라였다. 그는 국가보안국(SBU) 특수작전센터 '알파'를 이끌었고, 2026년 1월 바실 말리우크 국장 사임 이후로는 SBU 대리 총장을 겸하며 즈미이니(뱀)섬 해방 작전을 지휘한 인물이다. 페도로우가 해임된 다음 날인 7월 16일, 그는 국방장관 대리로 임명됐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그를 발탁하며 "장거리 타격 작전 실시에서 광범위하고 전례 없는 경험을 축적했다"고 밝혔다 — 페도로우가 추진하던 정책 방향과 궤를 같이하는 인선이었다. 그의 SBU 자리는 부총장이던 올렉산드르 포클라드가 대리로 이어받았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국가안보법(제2469-VIII호)은 국방장관이 반드시 문민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그가 정식 장관이 되려면 군적에서 전역하고 최고라다(의회)의 승인까지 통과해야 한다. 장거리 타격의 경험은 완성됐지만, 문민 장관의 자격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루스템 우메로우

루스템 우메로우 : 의혹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은 신뢰

루스템 우메로우는 2022년 국가자산기금 이사장을 시작으로, 2023년 9월 국방장관, 2025년 7월 국가안보국방위원회 비서를 거친 인물이다. 국방장관 재임 시절에는 서방 우방국과의 비대칭 전력 협력 프로그램 '드론 딜(Drone Deals)'과 자체 반탄도 미사일 방어체계 '프레이야(Freya)' 프로젝트를 주도했다. 동시에 그는 우크라이나 최대 부패 스캔들 중 하나인 국영 원자력회사 에네르고아톰 사건의 조사 대상이기도 하다 — 2024년 11월 반부패국(NABU)이 공개한 녹음파일에는 그가 사업가 티무르 민디치와 드론·방탄복 조달, 방위기술기업 파이어포인트 지분 매각 등을 논의한 정황이 담겼다. 형사 기소로 이어지지는 않았고, 국방부 반부패 감시기구가 2025년 4월 그의 직무 정직을 촉구했음에도 그는 자리를 지켰다. 클리멘코에게 NSDC 비서 자리를 내준 그는, 8월 3일 자로 해외정보국(SZRU)장에 보임됐다 — 대미 평화협상 수석대표 역할은 그대로 유지한 채였다. 의혹은 그를 흔들었지만, 대통령의 신뢰는 그를 흔들지 않았다.

세르히 코레츠키

세르히 코레츠키 : 참호 밖에서 맡은 겨울

세르히 코레츠키는 2025년 5월부터 국영 가스기업 나프토하즈의 최고경영자를 지냈고, 그 전에는 우크르타트나프타와 우크르나프타를 이끌었다. 우크르나프타 재임 중이던 2023년, 회사는 236억 흐리브냐(약 5억 2,900만 달러)의 순이익을 기록했고, 유럽부흥개발은행으로부터 8,000만 유로를 빌려 분산형 가스 발전 시스템을 구축했으며, 2026년 2월에는 리투아니아 터미널을 통해 미국산 액화천연가스 수입을 시작했다. 7월 16일, 그는 최고라다에서 289명의 찬성표를 받아 신임 총리로 확정됐다 — 군 지휘부가 연쇄로 무너지는 것과 같은 시기였다. 그가 밝힌 목표는 우크라이나 방위군에 대한 전면적 장비 공급과 국방산업기반 확대, 러시아의 에너지 기반시설 공격에 대비한 겨울 준비, 국제 파트너와의 관계 강화, 그리고 유럽연합 정회원 가입 추진이다. 그의 임무는 총구가 아니라 배관과 계량기에 있었다. 참호 밖에서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블라디미르 푸틴 : 국경 너머의 두 가지 셈법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군 수뇌부의 연쇄 교체를 국경 너머에서 정밀하게 관망했다. 러시아 군사 블로거들은 페도로우의 해임 소식에 "이제 상황이 더 쉬워질 것"이라며 반겼고, 전 우크라이나 외무장관 파블로 클림킨은 "크렘린이 인사 변화를 주시하며 인지전 캠페인을 준비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러시아군은 도네츠크 방향으로 소모전 압박을 유지하며, 지휘부 교체기의 빈틈을 공작과 정보전의 기회로 활용하려 했다. 다만 애틀랜틱 카운슬 등 일부 서방 분석가들은 반대로 해석하기도 했다 — 전시에도 시민의 요구로 정부 인사가 뒤집힌 이 장면 자체가, 오히려 푸틴에게는 우크라이나 민주주의의 저력을 보여주는 악몽이라는 것이다. 기회인지 위협인지, 국경 너머의 셈법은 아직 하나로 모이지 않았다.

혁신파(페도로우·드라파티·스키비우크)에게 이번 사태는 드론과 현장 자율성이 전통을 밀어낸 세대교체의 완성이다. 시르스키에게 이번 사태는 무인전력부대까지 직접 창설했음에도 끝내 지켜내지 못한 지휘권의 상실이다. 국정 리더십(젤렌스키·코레츠키)에게 이번 사태는 시민사회의 거부권 앞에서 정국과 경제를 동시에 붙들어야 하는 생존의 문제였다. 안보라인 재편진(클리멘코·흐마라·우메로우)에게 이번 사태는 광장이 허락하는 자리에만, 그것도 완전하지 않은 자격으로 서야 하는 재배치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푸틴에게 이번 사태는 기회일 수도, 악몽일 수도 있는 아직 결론 나지 않은 셈법이다.

다섯 갈래의 셈법이 가리키는 곳은 결국 하나다. 우크라이나가 일주일 사이 지휘 체계를 통째로 다시 세우는 동안에도, 국경 너머의 전쟁은 단 하루도 멈추지 않았다는 것. 광장은 사람을 바꿨을 뿐, 전쟁은 아직 아무것도 끝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