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1월 08일 일요일

강순희 : 2026년 11월 8일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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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00월 00일, 0세 때, 강순희는 평안북도 박천군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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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경 · 3세 무렵, 강순희는 사업을 하던 아버지를 따라 만주 하얼빈으로 옮겨 가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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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강순희는 고향 박천의 태봉소학교에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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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강순희는 평양제1고녀에 입학해 청소년기를 평양에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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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경 · 17세 무렵, 강순희는 한국전쟁 중 가족과 함께 남쪽으로 피난해 대전 등지를 거쳐 부산에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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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강순희는 부산에서 한국은행에 들어가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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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경 · 21세 무렵, 강순희는 한국은행에 다니던 중 국군 장교 우홍선을 만나 교제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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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강순희는 우홍선과 부산 범어사에서 첫 데이트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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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00월 00일, 24세 때, 강순희는 3년 동안 사귄 우홍선과 결혼해 서울에서 신혼살림을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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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강순희는 우홍선과의 사이에서 1남 3녀를 낳아 길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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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00월 00일, 41세 때, 강순희는 남편 우홍선이 출근한 뒤 집에 들이닥친 정부 요원들로부터 가택 수색을 받았다. 요원들은 집에서 틀어 두었던 FM 라디오를 간첩 증거로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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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00월 00일, 41세 때, 강순희는 남편 우홍선이 이른바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 관련자로 구속되자 옥바라지를 하며 영치금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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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00월 00일, 41세 때, 강순희는 야당과 종교계 지도자,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에게 남편을 살려 달라는 탄원서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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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경 · 41세 무렵, 강순희는 외국인 선교사들과 YWCA, 국제앰네스티 집회 등을 찾아다니며 남편이 연루된 사건의 실상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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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경 · 41세 무렵, 강순희는 남편의 공판을 지켜보며 사건이 조작됐다고 판단했고, 공판 기록이 조작됐다는 사실을 바깥에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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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강순희는 남편을 면회하러 갈 때마다 가장 좋은 옷을 차려입고 하이힐을 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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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강순희는 면회를 거절당하자 아이들을 데리고 멀리서 남편을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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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강순희는 직접 도서관을 찾아 남편의 무죄 근거를 찾고, 1964년 1차 인혁당 사건 재판의 문제점도 자료로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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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04월 09일, 42세 때, 강순희는 대법원이 사형을 확정한 지 18시간 만에 남편 우홍선이 처형되면서 남편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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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04월 09일, 42세 때, 강순희의 딸은 당시 18세의 나이로 아버지 우홍선의 시신을 확인하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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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04월 09일, 42세 때, 강순희는 남편을 잃은 뒤 석 달가량 자리에 누워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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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강순희는 생계를 위해 로열젤리를 팔고 의상실을 다시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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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강순희는 천주교 세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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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경 · 50세 무렵, 강순희는 성심여대 장학법인의 책임자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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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1월 23일, 74세 때, 강순희는 서울중앙지법이 남편 우홍선 등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처형된 8명에게 무죄를 선고하자 함께 고생한 유족들과 울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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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1월 23일, 74세 때, 강순희는 공판정에서 듣기만 해도 조작임을 알 수 있었던 사건에 30여 년 만에 무죄가 나왔다며 분노를 드러냈고, 자식들이 빨갱이로 몰린 일이 가장 가슴 아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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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1월 23일, 74세 때, 강순희는 윤보선 전 대통령을 통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인혁당 사건 관련자 8명을 처형한 일을 집권 중 가장 큰 실책으로 꼽았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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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0월 00일, 78세 때, 강순희는 4·9통일평화재단과 자신의 생애를 이야기하는 인터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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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9월 12일, 79세 때, 강순희는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에서 열린 인혁당 재건위 사건 유가족 기자회견에 나가, 인혁당 재건위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박근혜 후보 발언을 목숨을 걸고 반박할 수 있다고 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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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9월 12일, 79세 때, 강순희는 매주 남편의 묘소를 찾아 박정희 전 대통령을 향해 세 번씩 저주를 외쳐 왔다며 눈물을 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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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9월 14일, 79세 때, 강순희는 뉴스타파 인터뷰에서 박근혜의 반성 표현은 무슨 말을 해도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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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9월 14일, 79세 때, 강순희는 30년 넘게 사건 자료를 모아 기록해 왔고, 사형 판결에 관여한 대법관들의 이름도 직접 적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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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9월 14일, 79세 때, 강순희는 남편을 잃은 충격 뒤 시력이 떨어지기 시작해 왼쪽 눈이 거의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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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3월 25일, 93세 때, 강순희는 유시민 작가가 자신의 구술을 듣고 정리한 자서전 『사랑이 있으니 살아집디다』를 펴냈다. 4·9통일평화재단이 엮고 김세라 작가가 기록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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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3월 25일, 93세 때, 강순희는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있는 힘껏 노력하며 살아온 데 만족한다고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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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3월 25일, 93세 때, 강순희는 지금까지의 삶이 불행하지 않았다며 자신의 생애를 사랑이라는 한 단어로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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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4월 08일, 93세 때, 강순희는 문재인 전 대통령으로부터 페이스북에서 자서전 『사랑이 있으니 살아집디다』를 추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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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6월 12일, 93세 때, 강순희는 자서전 『사랑이 있으니 살아집디다』가 오디오북으로도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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