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31일 토요일
김두한 : 2026년 11월 1일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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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06월 23일, 0세 때, 김두한은 경성부 종로, 지금의 서울 종로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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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06월 23일, 0세 때, 김두한은 독립운동가 김좌진의 아들로 태어났고 어머니는 김계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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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김두한은 서울 교동공립보통학교에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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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01월 24일, 12세 때, 김두한의 아버지 김좌진은 북만주에서 암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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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김두한은 가족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 서울 거리를 떠돌며 소년기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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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경 · 17세 무렵, 김두한은 종로 우미관 일대 주먹 세계의 우두머리 자리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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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경 · 24세 무렵, 김두한은 징용을 피할 방편으로 종로 중심의 청년 조직을 꾸려 그 우두머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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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00월 00일, 28세 때, 김두한은 우익 청년단체 대한민주청년동맹 결성에 참여해 감찰부장과 별동대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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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00월 00일, 29세 때, 김두한은 좌우 대립 속에서 조선공산당 계열 청년 간부 정진룡을 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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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00월 00일, 30세 때, 김두한은 미군정 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오키나와의 미군 시설에 갇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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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00월 00일, 30세 때, 김두한은 정부 수립 뒤 사건이 미군정에서 한국 검찰로 넘어가면서 사형 집행을 면하고 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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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김두한은 대한청년단 감찰부장을 지냈고 대한노동조합총연합회 최고위원과 대한학도의용군 참모장 등을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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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03월 24일, 30세 때, 김두한은 지청천과 이범석이 존 하지 주한미군 사령관에게 낸 감형 탄원의 대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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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06월 17일, 31세 때, 김두한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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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00월 00일, 32세 때, 김두한은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부하 네 명과 함께 배로 한강을 건너 부산까지 남쪽으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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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00월 00일, 36세 때, 김두한은 선거법 위반과 폭행 혐의로 갇혔다가 자유당 입당을 조건으로 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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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05월 20일, 36세 때, 김두한은 제3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종로구 을 선거구에 무소속으로 나서 한근조를 근소한 차이로 꺾고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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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01월 00일, 38세 때, 김두한은 진보당 추진위원회에 들어갔다가 토지 매각 조사를 계기로 나와 노농당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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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10월 05일, 38세 때, 김두한은 이승만 대통령을 매국노라고 부른 일로 국회 징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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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05월 00일, 40세 때, 김두한은 제4대 국회의원 선거 종로구 을에 노농당 후보로 나서 8,987표로 2위에 그쳐 낙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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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07월 00일, 42세 때, 김두한은 제5대 국회의원 선거 충청남도 홍성군에 무소속으로 나서 9,593표로 2위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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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10월 10일, 42세 때, 김두한은 서울 종로구 갑 보궐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8,738표로 2위를 해 낙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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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03월 01일, 44세 때, 김두한은 아버지 김좌진에게 수여된 건국공로훈장을 대신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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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00월 00일, 45세 때, 김두한은 자서전 '피로 물들인 건국 전야'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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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11월 09일, 47세 때, 김두한은 서울 용산구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한국독립당 후보로 나서 12,048표를 얻어 제6대 국회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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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01월 08일, 48세 때, 김두한은 한국독립당 내란음모 사건에 얽혀 국가보안법 위반과 내란음모 혐의로 구속돼 서대문형무소에 갇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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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01월 29일, 48세 때, 김두한은 석방결의안이 국회에서 여야 의원 106명의 찬성으로 가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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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01월 31일, 48세 때, 김두한은 구속 19일 만에 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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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09월 00일, 48세 때, 김두한은 국회의장 모욕과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구속·기소돼 다시 서대문형무소에 갇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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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09월 22일, 48세 때, 김두한은 사카린 밀수 사건 대정부 질의 단상에서 미리 준비한 인분 등 오물을 정일권 국무총리와 장기영 부총리가 앉은 국무위원석에 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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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09월 24일, 48세 때, 김두한은 국회의원직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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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12월경 · 48세 무렵, 김두한은 고혈압을 이유로 병보석을 받아 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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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00월 00일, 49세 때, 김두한은 남북한 전력 사정을 비교한 발언 때문에 반공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가 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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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06월 08일, 49세 때, 김두한은 제7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도 수원에 신민당 후보로 나서 21,770표로 2위를 해 낙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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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11월 18일, 54세 때, 김두한은 청계천 3가 중앙호텔 객실에서 쓰러져 혼수상태로 고려병원에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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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11월 21일, 54세 때, 김두한은 서울 정릉동 자택에서 고혈압 증세 끝에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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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사후, 김두한은 경기도 양주 장흥면 신세계공원묘지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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