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31일 토요일
채몽인 : 2026년 10월 31일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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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02월 10일, 0세 때, 채몽인은 전라남도 제주군 대정(지금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에서 제주판관과 대정현감을 지낸 채구석의 아들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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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00월 00일, 3세 때, 채몽인의 아버지 채구석은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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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00월 00일, 21세 때, 채몽인은 일본 오사카의 명성상업학교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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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00월 00일, 21세 때, 채몽인은 마쓰시타전기산업에 들어가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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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00월 00일, 27세 때, 채몽인은 전매서장과 학교법인 동국학원 이사장을 지낸 김한기의 딸 김혜숙과 혼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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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00월 00일, 28세 때, 채몽인은 훗날 애경그룹의 모태가 되는 무역회사 대륭산업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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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00월 00일, 29세 때, 채몽인은 김혜숙과의 사이에서 장녀 채성희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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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00월 00일, 33세 때, 채몽인은 옥방광업을 설립해 중석 같은 지하자원 개발에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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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00월 00일, 34세 때, 채몽인은 첫 아내 김혜숙과 사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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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00월 00일, 37세 때, 채몽인은 외항해운사 동남해운을 세워 한국과 일본 사이 화물 정기항로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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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06월 09일, 37세 때, 채몽인은 자본금 5000만 환으로 비누를 만드는 애경유지공업주식회사를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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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경 · 38세 무렵, 채몽인은 어린 시절부터 알던 이웃으로 미국에서 공부하던 장영신에게 4년 가까이 구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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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00월 00일, 39세 때, 채몽인은 국내 첫 종합유지분해공장을 짓고 국내 첫 화장비누 '미향'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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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06월 00일, 42세 때, 채몽인은 서울 신당동의 한 교회에서 장영신과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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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00월 00일, 43세 때, 채몽인은 장영신과의 사이에서 장남 채형석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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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00월 00일, 44세 때, 채몽인은 풍한산업 김영구 사장, 신일기업 이봉수 사장과 함께 사회사업기금 2억 환을 국립소년직업훈련소 설립 자금으로 기부해 3·1절 표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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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00월 00일, 45세 때, 채몽인은 애경유지공업에서 도료용 폴리에스테르수지를 국내 처음으로 생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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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00월 00일, 46세 때, 채몽인은 애경유지공업에서 가소제를 국내 처음으로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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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00월 00일, 47세 때, 채몽인은 국내 첫 백색비누인 '우유비누'를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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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05월 18일, 47세 때, 채몽인은 장영신과의 사이에서 차남 채동석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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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00월 00일, 49세 때, 채몽인은 합성세제 사업으로 영역을 넓혀 국내 첫 주방세제 '트리오'와 세탁용 합성세제를 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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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00월 00일, 51세 때, 채몽인은 석유화학제품인 무수프탈산 공장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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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00월 00일, 51세 때, 채몽인은 재경제주장학회를 세우고 회장을 맡아 장학사업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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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00월 00일, 52세 때, 채몽인은 강관용 방식도료를 국내 처음으로 생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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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00월 00일, 53세 때, 채몽인은 석유화학 사업에 본격 진출하려고 삼경화성(지금의 애경유화)을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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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00월 00일, 53세 때, 채몽인은 울산석유화학단지에 공장을 짓기 위한 차관 계약을 맺고 공장 건설을 서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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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07월 00일, 53세 때, 채몽인은 장영신과의 사이에서 막내아들 채승석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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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07월 12일, 53세 때, 채몽인은 막내아들이 태어난 지 사흘 만에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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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00월 00일, 사후, 채몽인의 아내 장영신은 남편이 남긴 애경유지공업의 경영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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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00월 00일, 사후, 채몽인이 세운 애경유화의 울산공장은 그해 준공된 울산석유화학단지의 첫 입주 공장 가운데 하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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