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5일 일요일

서정주 : 2026년 10월 25일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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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 05월 18일, 0세 때, 서정주는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인촌 김성수 집안의 마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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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00월 00일, 10세 때, 서정주는 줄포보통학교 과정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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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00월 00일, 14세 때, 서정주는 서울로 올라가 중앙고등보통학교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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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00월 00일, 15세 때, 서정주는 광주학생운동 관련 시위로 구속됐다가 기소유예로 풀려났고, 이 일로 중앙고등보통학교에서 퇴학 처분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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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00월 00일, 16세 때, 서정주는 고창고등보통학교에 편입했지만 오래 다니지 못하고 스스로 학교를 그만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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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00월 00일, 17세 때, 서정주는 니체의 사상에 깊이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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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00월 00일, 18세 때, 서정주는 서울 마포에서 일본인 하마다가 이끌던 빈민 구제 운동에 들어가 넝마주이로 생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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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00월 00일, 18세 때, 서정주는 개운사 대원암에서 영호당 박한영 스님에게 불경을 배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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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00월 00일, 19세 때, 서정주는 박한영의 소개로 금강산의 만공 스님을 찾아가 출가를 청했으나 다시 생각해 보라는 권유를 듣고 이튿날 서울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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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00월 00일, 19세 때, 서정주는 박한영이 교장으로 있던 중앙불교전문학교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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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00월 00일, 21세 때, 서정주는 시 「벽」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돼 시인으로 첫발을 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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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00월 00일, 21세 때, 서정주는 중앙불교전문학교를 마치지 않고 학업을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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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11월 00일, 21세 때, 서정주는 김광균·오장환·김동리 등과 동인지 『시인부락』을 만들고 주간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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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00월 00일, 25세 때, 서정주는 만주 간도로 건너가 양곡주식회사 경리사원으로 일했고 용정에도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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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00월 00일, 26세 때, 서정주는 첫 시집 『화사집』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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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00월 00일, 26세 때, 서정주는 동대문 여학교 교단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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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02월 00일, 25세 때, 서정주는 간도 양곡주식회사 일을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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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00월 00일, 27세 때, 서정주는 다쓰시로 시즈오라는 창씨명으로 매일신보에 국민시가를 다룬 평론을 실으며 친일 글쓰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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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00월 00일, 28세 때, 서정주는 친일 문학지 『국민문학』과 『국민시가』의 편집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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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00월 00일, 28세 때, 서정주는 수필 「징병 적령기의 아들을 둔 조선의 어머니에게」, 일본어 시 「항공일에」, 단편 『최제부의 군속 지망』, 시 「헌시」 등 전쟁 동원을 부추기는 글을 잇달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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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00월 00일, 28세 때, 서정주는 최재서와 함께 사병 군복 차림의 일본군 종군기자로 취재를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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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12월 09일, 29세 때, 서정주는 가미카제 특공대원을 기리는 시 「오장 마쓰이 송가」를 매일신보에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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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경 · 30세 무렵, 서정주는 좌익의 조선문학가동맹에 맞서 우익 문인들이 꾸린 조선청년문학가협회에서 시분과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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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서정주는 동아일보사 문화부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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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00월 00일, 31세 때, 서정주는 부산 동아대학교에서 강의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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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00월 00일, 31세 때, 서정주는 두 번째 시집 『귀촉도』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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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00월 00일, 33세 때, 서정주는 문교부 초대 예술과장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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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00월 00일, 33세 때, 서정주는 시 「국화 옆에서」를 처음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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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00월 00일, 34세 때, 서정주는 한국문학가협회 창립에 참여해 시분과 위원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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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00월 00일, 35세 때, 서정주는 6·25전쟁 중 급히 꾸려진 문총구국대의 실무를 책임지고 구상과 함께 일선 부대에서 신문을 만들고 시 낭송과 연설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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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00월 00일, 35세 때, 서정주는 한강을 건너 조지훈·이한직 등과 피란길에 올랐으나 전쟁의 충격으로 조현증 증세가 나타나 병원 요양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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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00월 00일, 35세 때, 서정주는 전주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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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00월 00일, 36세 때, 서정주는 조선대학교 부교수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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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00월 00일, 39세 때, 서정주는 대한민국예술원 종신회원으로 추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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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00월 00일, 40세 때, 서정주는 「국화 옆에서」·「무등을 보며」·「추천사」 등 대표작을 묶은 『서정주 시선』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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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00월 00일, 45세 때, 서정주는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부교수로 부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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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00월 00일, 45세 때, 서정주는 『삼국유사』 등 고전에서 신라 정신을 길어 올린 네 번째 시집 『신라초』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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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04월 00일, 44세 때, 서정주는 4·19혁명에 거리를 두는 태도를 보였다가 학생들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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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08월 24일, 46세 때, 서정주는 5·16 군사정변을 민중의 바람이 담긴 혁명으로 떠받드는 시 「혁명 찬」을 경향신문에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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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00월 00일, 47세 때, 서정주는 5·16 문예상 본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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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00월 00일, 51세 때, 서정주는 대한민국예술원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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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00월 00일, 53세 때, 서정주는 신라 정신을 시로 빚어낸 다섯 번째 시집 『동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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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00월 00일, 55세 때, 서정주는 서울 관악구 남현동 예술인마을로 옮겨 집에 봉산산방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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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00월 00일, 56세 때, 서정주는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명예 학사 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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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00월 00일, 57세 때, 서정주는 일지사에서 다섯 권짜리 『서정주 문학전집』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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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00월 00일, 60세 때, 서정주는 고향 질마재의 설화를 산문시로 엮은 『질마재 신화』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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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00월 00일, 60세 때, 서정주는 김종필의 새마을운동 시찰에 동행해 관제 참관기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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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00월 00일, 61세 때, 서정주는 시집 『떠돌이의 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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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00월 00일, 62세 때, 서정주는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에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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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00월 00일, 64세 때, 서정주는 동국대학교에서 정년으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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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00월 00일, 65세 때, 서정주는 시집 『서으로 가는 달처럼』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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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00월 00일, 65세 때, 서정주는 중앙일보 문화대상 본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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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00월 00일, 66세 때, 서정주는 텔레비전 방송에 나와 전두환의 대통령 출마를 지지하는 연설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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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00월 00일, 67세 때, 서정주는 시집 『울고 간 날들의 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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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00월 00일, 68세 때, 서정주는 시집 『안 잊히는 일들』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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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00월 00일, 68세 때, 서정주는 한용운의 한시를 골라 우리말로 옮긴 『만해한용운한시선역』을 예지각에서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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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00월 00일, 69세 때, 서정주는 시집 『노래』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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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00월 00일, 72세 때, 서정주는 전두환 대통령의 56회 생일을 맞아 물가 안정과 평화의 댐 건설을 치적으로 기린 송시를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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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00월 00일, 73세 때, 서정주는 시집 『팔할이 바람』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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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00월 00일, 76세 때, 서정주는 시집 『산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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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00월 00일, 77세 때, 서정주는 『신동아』에 「일정 말기와 나의 친일시」를 기고하며 친일 작품이 강요된 것이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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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00월 00일, 78세 때, 서정주는 시집 『늙은 떠돌이의 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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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00월 00일, 79세 때, 서정주는 민음사에서 『미당 시전집』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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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00월 00일, 82세 때, 서정주는 마지막 시집 『80소년 떠돌이의 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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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2월 00일, 83세 때, 서정주는 남현동 자택에서 자신의 시에 깔린 종교관을 주제로 불교신문과 인터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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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0월 10일, 85세 때, 서정주는 아내 방옥숙과 사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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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0월 10일, 85세 때, 서정주는 아내를 잃은 뒤 음식을 거의 넘기지 못하며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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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2월 24일, 85세 때, 서정주는 노환과 폐렴 증세 악화로 서울 삼성서울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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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2월 24일, 사후, 서정주는 정부로부터 금관문화훈장을 추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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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00월 00일, 사후, 서정주는 자신의 호를 딴 미당문학상이 중앙일보사 주관으로 제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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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00월 00일, 사후, 서정주는 고은 시인으로부터 '미당 담론'을 통해 생전 행적을 문제 삼는 비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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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01월 00일, 사후, 서정주는 금관문화훈장 추서를 계기로 문학적 업적과 친일·친군부 행적을 두고 인터넷 찬반 논쟁의 대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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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1월 00일, 사후, 서정주는 고향 고창 선운리의 폐교 터에 미당시문학관이 문을 열어 유품과 육필원고가 전시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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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00월 00일, 사후, 서정주는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에 이름이 올라 친일 작품 11편의 제목이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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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00월 00일, 사후, 서정주는 미당시문학관에 친일·친독재 작품 10여 점이 함께 전시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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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0월 00일, 사후, 서정주는 한국시인협회가 꼽은 한국 현대시 10대 시인에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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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0월 00일, 사후, 서정주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문학 부문에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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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0월 00일, 사후, 서정주는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로부터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돼 결정이유서에 행적이 기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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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4월 04일, 사후, 서정주는 30년 동안 살았던 남현동 봉산산방이 관악구의 복원을 거쳐 시민에게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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