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18일 일요일

이희건 : 2026년 10월 19일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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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00월 00일, 0세 때, 이희건은 경상북도 경산군 압량면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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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이희건은 소학교를 마친 뒤 집안 형편 때문에 서울로 올라가 일본인이 운영하는 가게의 점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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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00월 00일, 15세 때, 이희건은 혼자 현해탄을 건너 일본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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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이희건은 오사카 쓰루하시에서 자전거 수리점 일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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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이희건은 오사카의 무허가 시장에서 자전거 타이어를 파는 장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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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이희건은 배달과 점원 일로 학비를 벌며 메이지대학 전문부에서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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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08월 00일, 30세 때, 이희건은 쓰루하시 시장 폐쇄 시도에 맞선 공로를 인정받아 쓰루하시 상점가동맹 초대 회장에 추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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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00월 00일, 38세 때, 이희건은 재일동포 상공인들과 손잡고 동포를 위한 신용조합 오사카흥은(大阪興銀)을 세웠다. 일본 은행들이 재일동포 상인과의 거래를 꺼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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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00월 00일, 51세 때, 이희건은 오사카흥은의 새 사옥을 짓고 예금 잔액 100억 엔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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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00월 00일, 53세 때, 이희건은 한국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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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00월 00일, 57세 때, 이희건은 재일한국인 본국투자협회를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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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00월 00일, 60세 때, 이희건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거듭 건의한 끝에 재일동포의 국내 창업을 돕는 단자회사 제일투자금융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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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00월 00일, 64세 때, 이희건은 재일한국인 본국투자협회 회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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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04월 00일, 64세 때, 이희건은 재일동포 기업인의 국내 투자를 뒷받침할 은행을 세우려고 정부로부터 신한은행 설립 허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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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07월 07일, 65세 때, 이희건은 일본 각지 재일동포 340여 명의 출자금을 모아 자본금 250억 원으로 국내 첫 순수 민간자본 은행인 신한은행을 출범시켰다. 개업 첫날 본점에는 고객 1만 7520명이 찾아 357억 4800만 원이 예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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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00월 00일, 71세 때, 이희건은 서울올림픽 재일한국인 후원회장으로서 재일동포 성금 540여억 원을 모아 한국에 전달했다. 이희건 개인도 20억 원을 따로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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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00월 00일, 73세 때, 이희건은 오사카에서 재일동포의 자긍심을 높이는 '사천왕사 왔소' 행사를 시작해 해마다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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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00월 00일, 75세 때, 이희건은 한국의 대일 무역적자를 줄이려고 '바이 코리언 용기회'를 결성해 회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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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00월 00일, 76세 때, 이희건은 오사카흥은을 간사이 지역 5개 신용조합과 합병해 관서흥은(關西興銀)으로 새로 출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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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02월 00일, 79세 때, 이희건은 자신의 골프장 운영사 코마개발이 신한은행에서 70억 엔을 빌릴 때 개인 연대보증을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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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경 · 80세 무렵, 이희건은 외환위기를 맞은 한국을 돕기 위해 일본에서 재일동포의 국내 송금 보내기 운동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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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05월 00일, 80세 때, 이희건은 코마개발 사장에서 물러나며 지급보증을 후임 사장에게 넘기려 했으나 신한은행의 반대에 부딪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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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02월 00일, 82세 때, 이희건은 보유하던 코마개발 지분 10.7% 대부분을 내놓는 조건으로 지급보증을 후임 사장에게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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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2월 00일, 83세 때, 이희건이 세운 관서흥은은 일본 금융재생위원회의 파산 발표로 문을 닫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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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03월 00일, 84세 때, 이희건은 주주총회를 끝으로 신한은행 회장에서 물러나 명예회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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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02월 02일, 85세 때, 이희건은 관서흥은 파산 직전 30억 엔을 빼내 신한은행 일본 지점을 거쳐 한국으로 보냈다는 혐의로 오사카부경의 구속 수사를 받고 있다고 보도됐다. 신한은행은 이희건이 이미 회장에서 물러났고 지분도 정리했다며 관련성을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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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0월 00일, 91세 때, 이희건은 한일 간 학술·문화·경제 교류와 장학 사업을 펼칠 이희건 한일교류재단을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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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9월 00일, 92세 때, 이희건이 세운 신한은행은 일본 현지법인 SBJ를 설립해 일본 금융시장에 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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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3월 21일, 94세 때, 이희건은 노환으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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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3월 21일, 사후, 이희건은 생전 뜻에 따라 장례가 가족장으로 치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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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3월 23일, 사후, 이희건은 별세 사실이 신한금융지주 주주총회에서 한동우 회장 내정자를 통해 처음 알려졌다. 주총이 끝난 뒤 알려 달라는 이희건의 당부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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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4월 21일, 사후, 이희건은 서울 태평로 신한은행 본점에서 재일교포 주주와 금융권 인사 등 200여 명이 모인 추모식으로 기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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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6월 19일, 사후, 이희건은 그의 뜻을 잇는 '이희건 상'의 첫 시상식이 일본 오사카에서 열려 이우에 사토시 전 산요전기 회장이 초대 수상자로 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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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이희건은 재일교포 기업인 서갑호·신격호와 의형제를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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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이희건은 자녀의 혼인으로 서갑호와 사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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