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18일 일요일
최규하 : 2026년 10월 18일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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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07월 16일, 0세 때, 최규하는 강원도 원주군 원주면 봉산리에서 아버지 최양오와 어머니 전주 이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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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최규하는 어린 시절 할아버지에게서 한학을 익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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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03월 00일, 8세 때, 최규하는 원주보통학교에 3학년으로 월반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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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02월 00일, 12세 때, 최규하는 원주보통학교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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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03월 30일, 12세 때, 최규하는 경성제일공립고등보통학교에 진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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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11월 00일, 16세 때, 최규하는 경성제일고보 4학년에 다니던 중 홍기와 혼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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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02월 00일, 17세 때, 최규하는 경성제일고보를 33회로 졸업하고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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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02월 00일, 21세 때, 최규하는 도쿄고등사범학교 영어영문학과 과정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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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03월 00일, 21세 때, 최규하는 만주로 건너가 국립대동학원 정치행정반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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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00월 00일, 24세 때, 최규하는 만주국 길림성 통양현사무소에서 행정과장으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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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07월 05일, 23세 때, 최규하는 국립대동학원 정치행정반 과정을 수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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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09월 00일, 26세 때, 최규하는 해방 뒤 귀국해 경성사범대학 영문과 조교수로 강단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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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04월 00일, 26세 때, 최규하는 미군정청 중앙식량행정처 기획과장을 맡아 공직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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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00월 00일, 28세 때, 최규하는 중앙식량행정처 행정실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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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08월 00일, 29세 때, 최규하는 정부 수립 뒤 농림부 양정과장으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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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09월 26일, 29세 때, 최규하는 싱가포르에서 10월 10일까지 열린 FAO 아시아 미곡위원회에 한국 대표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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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00월 00일, 32세 때, 최규하는 농림부 농지관리국장 서리를 지낸 뒤 외무부 통상국장으로 자리를 옮겨 외교 업무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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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00월 00일, 32세 때, 최규하는 ECAFE 무역진흥회의에 한국 측 수석대표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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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09월 09일, 32세 때, 최규하는 싱가포르 원동경제위원회 회의에 18일까지 한국 대표단원으로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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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07월 17일, 33세 때, 최규하는 주일대표부 총영사로 도쿄에 부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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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10월 06일, 34세 때, 최규하는 한일회담에 배석해 협상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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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10월 06일, 35세 때, 최규하는 도쿄에서 13일까지 열린 극동경제위원회 회의에 한국 대표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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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07월 08일, 35세 때, 최규하는 이사관으로 임명돼 외자청 직무를 함께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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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05월 16일, 37세 때, 최규하는 주일대표부 참사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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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12월 00일, 38세 때, 최규하는 재일교포체육회 회장으로 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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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04월 00일, 38세 때, 최규하는 10월까지 이어진 제4차 한일회담에 한국 측 대표로 나섰으나 배상 금액을 둘러싼 견해차로 결실을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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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03월 20일, 39세 때, 최규하는 주일대표부 공사로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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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09월 12일, 40세 때, 최규하는 외무부 차관에 기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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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12월 00일, 40세 때, 최규하는 외무부 장관 직무대행을 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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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05월 12일, 40세 때, 최규하는 4·19 혁명 이후 외무부 차관직에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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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06월 00일, 40세 때, 최규하는 3·15 부정선거 연루 여부로 수사를 받았으나 혐의 없음으로 결론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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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01월 00일, 41세 때, 최규하는 공민권 제한 대상에 올라 다시 수사를 받았으나 이번에도 혐의가 인정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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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00월 00일, 43세 때, 최규하는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반공연맹 총회의 임시의장을 맡았고 외무부 장관 고문으로도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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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01월 00일, 42세 때, 최규하는 동양화학 주식회사 설립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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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07월 00일, 43세 때, 최규하는 한일회담 고문으로 위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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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03월 00일, 43세 때, 최규하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외교담당 고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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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04월 00일, 43세 때, 최규하는 한일회담 한국 측 교섭대표로 선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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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05월 08일, 43세 때, 최규하는 국가재건최고회의 정책소위원회 고문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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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11월 00일, 45세 때, 최규하는 주말레이시아 대사로 부임해 1967년 6월까지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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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00월 00일, 48세 때, 최규하는 제22차 유엔총회에 한국 수석대표로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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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06월 30일, 47세 때, 최규하는 외무부 장관에 임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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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00월 00일, 49세 때, 최규하는 콜롬보계획 자문위원회 각료회의에 참석해 의장으로 선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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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00월 00일, 49세 때, 최규하는 푸에블로호 사건 이후 방한한 사이러스 밴스 미국 특사와의 협상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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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06월 02일, 49세 때, 최규하는 패커드 미국 국방차관과 면담하고 한미 국방각료회의에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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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00월 00일, 51세 때, 최규하는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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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04월 03일, 50세 때, 최규하는 10일까지 대만과 태국을 순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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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05월 00일, 50세 때, 최규하는 자카르타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국제회의에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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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11월 00일, 51세 때, 최규하는 유엔총회에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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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06월 03일, 51세 때, 최규하는 4년 가까이 맡아 온 외무부 장관직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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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6월 3일경 · 51세 무렵, 최규하는 대통령 외교담당 특별보좌관에 기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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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10월 00일, 53세 때, 최규하는 남북조절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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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11월 00일, 53세 때, 최규하는 남북조절위원회 위원 자격으로 평양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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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00월 00일, 54세 때, 최규하는 서울 마포구 서교동 가옥에 거처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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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경 · 54세 무렵, 최규하는 석유파동 속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찾아 원유 공급 지원을 얻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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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최규하는 대통령 특사로 일곱 차례 나서 사우디아라비아·이란·에티오피아 등 24개국을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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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03월 00일, 53세 때, 최규하는 남북조절위원회 위원으로 평양을 다시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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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12월 19일, 56세 때, 최규하는 국무총리 서리로 임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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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03월 13일, 56세 때, 최규하는 국회 동의를 얻어 제12대 국무총리에 올랐고 서교동 가옥을 떠나 삼청동 총리공관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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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07월 25일, 58세 때, 최규하는 서울에서 26일까지 열린 제10차 한미안보연례협의회에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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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00월 00일, 59세 때, 최규하는 강원도 사북 탄광을 찾아 광원들을 만나고 스스로 에너지 절약에 앞장서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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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00월 00일, 60세 때, 최규하는 무궁화대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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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03월 00일, 59세 때, 최규하는 국무총리로 재신임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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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06월 30일, 59세 때, 최규하는 박정희 대통령과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에 배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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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0월 26일, 60세 때, 최규하는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격으로 숨지면서 국무총리로서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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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0월 27일, 60세 때, 최규하는 제주도를 뺀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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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0월 28일, 60세 때, 최규하는 김재규를 중앙정보부장에서 면직하고 전두환을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에 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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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1월 03일, 60세 때, 최규하는 박정희에게 건국공로훈장을 추서하고 국장위원장으로서 장례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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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1월 06일, 60세 때, 최규하는 유신헌법 절차대로 새 대통령을 뽑은 뒤 헌법을 고치겠다는 시국 담화를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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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1월 12일, 60세 때, 최규하는 민주국민연합으로부터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한 대통령 선출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반대에 부딪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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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2월 06일, 60세 때, 최규하는 통일주체국민회의 간접선거에 단독으로 나서 2,465표를 얻어 제10대 대통령에 선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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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2월 07일, 60세 때, 최규하는 긴급조치 9호 해제를 의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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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2월 12일, 60세 때, 최규하는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이 정승화 계엄사령관 연행 재가를 요청하자 국방부 장관의 결재를 먼저 받아 오라며 재가를 미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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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2월 12일, 60세 때, 최규하는 재가 전에 정승화가 연행됐다는 보고를 받고 전두환을 꾸짖으며 경위를 파악하라고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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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2월 12일, 60세 때, 최규하는 밤 9시 30분 무렵 전두환 등 장성들의 두 번째 재가 요구에도 재가 없는 행동은 위법이라며 국방부 장관을 데려오라고 하고 다시 보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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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2월 13일, 60세 때, 최규하는 새벽 5시 10분 노재현 국방부 장관의 건의를 받고 정승화 연행을 재가하며 서명란에 시각을 적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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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2월 21일, 60세 때, 최규하는 제10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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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2월 21일, 60세 때, 최규하는 긴급조치 위반자 561명을 특별사면하고 1,330명을 석방했으며 제적생 759명의 복학과 해직교수 19명의 복직을 허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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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02월 18일, 60세 때, 최규하는 국정자문회의를 구성했고 윤보선이 의장으로 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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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02월 29일, 60세 때, 최규하는 윤보선·김대중 등 687명의 복권을 단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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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04월 00일, 60세 때, 최규하는 전두환의 강요로 전두환을 중앙정보부장에 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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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04월 12일, 60세 때, 최규하는 청와대에서 권영민 비서관으로부터 사람들이 자신을 '최 주사'라 부른다는 말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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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05월 17일, 60세 때, 최규하는 신군부의 시국수습방안에 반대 의사를 밝혔으나 결국 비상계엄 전국 확대안만은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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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05월 25일, 60세 때, 최규하는 광주를 방문해 상무대에서 특별담화를 발표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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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05월 26일, 60세 때, 최규하는 국방부 장관 등과 광주를 다시 찾아 담화를 낸 뒤 밤 10시 서울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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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05월 27일, 60세 때, 최규하는 국무회의를 거쳐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설치를 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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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05월 31일, 60세 때, 최규하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발족과 함께 의장을 맡았고 상임위원장에는 전두환이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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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07월 30일, 61세 때, 최규하는 새마을연수원을 시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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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07월 30일, 61세 때, 최규하는 신군부의 부탁을 받고 청와대를 찾은 김정렬과 5시간 동안 담판을 벌이며 하야 요구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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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08월 16일, 61세 때, 최규하는 대통령직을 비롯한 모든 공직에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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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08월 16일, 61세 때, 최규하는 대통령직을 떠난 뒤 서교동 가옥으로 거처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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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08월 16일, 61세 때, 최규하는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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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09월 01일, 61세 때, 최규하는 부인 홍기와 함께 전두환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받아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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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04월 20일, 61세 때, 최규하는 국정자문회의 의장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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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00월 00일, 63세 때, 최규하는 독립기념관 건립기금을 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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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00월 00일, 66세 때, 최규하는 강원대학교에서 명예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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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경 · 68세 무렵, 최규하는 국회 청문회의 증언 요구를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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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11월 00일, 69세 때, 최규하는 전두환이 국정자문회의 의장에서 물러나자 의장직을 다시 맡아 1993년 2월까지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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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2월 00일, 70세 때, 최규하는 삼청교육대 피해자 이택승 등으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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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00월 00일, 72세 때, 최규하는 민족사바로찾기국민회의 제3대 의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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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00월 00일, 73세 때, 최규하는 삼청교육대 고소 건에 대해 서울지검으로부터 공소권 없음 결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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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00월 00일, 73세 때, 최규하는 안중근의사 여순순국유적 성역화사업추진위원회 고문으로 추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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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00월 00일, 74세 때, 최규하는 국정자문회의 의장 연임 제안을 사양하고 윤택중 전 문교부 장관을 후임으로 내세운 뒤 명예의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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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00월 00일, 75세 때, 최규하는 원주의 생가를 원주시에 기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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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2월 08일, 76세 때, 최규하는 12·12와 5·18 사건을 수사하던 검찰의 서면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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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2월 11일, 76세 때, 최규하는 자택을 찾은 검찰의 조사 요청에 재임 중 겪은 일로 퇴임 뒤 조사받는 전례를 만들 수 없다며 진술을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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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2월 12일, 76세 때, 최규하는 김상희 특별수사본부 부본부장의 방문을 받았으나 조사 거부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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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10월 28일, 77세 때, 최규하는 12·12와 5·18 항소심 공판에 증인으로 소환됐으나 법정에 나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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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11월 11일, 77세 때, 최규하는 항소심 재판부로부터 강제구인 결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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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11월 14일, 77세 때, 최규하는 검찰의 구인장 집행에 따라 서교동 자택을 나서 법정에 출석했으나 증언을 끝내 거부하고 약 2시간 만에 귀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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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06월 00일, 79세 때, 최규하는 백범기념관 건립위원회 고문으로 추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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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02월 25일, 83세 때, 최규하는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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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00월 00일, 85세 때, 최규하는 건강이 나빠져 입원이 잦아지면서 대외 활동을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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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07월 20일, 85세 때, 최규하는 오랜 기간 알츠하이머를 앓던 부인 홍기를 떠나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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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08월 00일, 85세 때, 최규하는 입원 중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예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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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 22일, 87세 때, 최규하는 서교동 자택에서 새벽 6시쯤 의식을 잃은 채 발견돼 서울대학교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오전 7시 37분 급성심부전으로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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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 26일, 사후, 최규하는 서울대학교병원에서 발인한 뒤 경복궁 앞뜰에서 국민장 영결식이 치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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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 26일, 사후, 최규하는 국립대전현충원 국가원수묘역에 먼저 세상을 떠난 부인 홍기와 함께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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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0월 00일, 사후, 최규하는 살던 서교동 가옥이 유족으로부터 서울시에 매입되고 유품도 서울시에 기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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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03일, 사후, 최규하는 원주초등학교에 자신의 호를 딴 기념관 현석관이 건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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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05일, 사후, 최규하는 살던 서교동 가옥이 서울시에 의해 시민에게 개방됐다.

최규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