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18일 일요일
이맹희 : 2026년 10월 17일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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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06월 20일, 0세 때, 이맹희는 경상남도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에서 삼성 창업주 이병철과 박두을 사이의 4남 6녀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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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00월 00일, 13세 때, 이맹희는 서울 수송국민학교에서 시작한 초등 과정을 대구 수창국민학교에서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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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00월 00일, 19세 때, 이맹희는 6년제 경북중학교를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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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00월 00일, 20세 때, 이맹희는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농업대학에 입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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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00월 00일, 23세 때, 이맹희는 도쿄농업대학에서 농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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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00월 00일, 25세 때, 이맹희는 도쿄농업대학 대학원에서 농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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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12월 01일, 25세 때, 이맹희는 혼담이 오간 지 한 달 만에 손복남과 결혼식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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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02월 00일, 25세 때, 이맹희는 결혼 두 달 만에 매제 구자학과 함께 미국 유학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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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00월 00일, 28세 때, 이맹희는 미국 미시간주립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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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00월 00일, 29세 때, 이맹희는 귀국해 한일은행에 들어가며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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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00월 00일, 31세 때, 이맹희는 한일은행을 떠나 삼성 계열 안국화재로 자리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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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00월 00일, 33세 때, 이맹희는 안국화재 이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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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00월 00일, 34세 때, 이맹희는 안국화재 상무이사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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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05월 24일, 34세 때, 이맹희가 임원으로 몸담은 삼성의 계열사 한국비료는 울산 공장 건설자재로 꾸민 사카린 2259포대(약 55톤)를 들여와 팔려다 적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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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06월 00일, 35세 때, 이맹희가 임원으로 몸담은 삼성의 계열사 한국비료는 부산세관에 사카린 1059포대를 압수당하고 2천여만 원의 벌금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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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09월 00일, 35세 때, 이맹희는 아버지 이병철이 사카린 밀수 사건의 책임을 지고 경영에서 물러나자 삼성그룹의 경영을 넘겨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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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00월 00일, 36세 때, 이맹희는 미풍산업 상무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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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00월 00일, 37세 때, 이맹희는 삼성물산·미풍산업·중앙일보·삼성전자 부사장과 삼성문화재단 이사를 잇달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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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02월 14일, 36세 때, 이맹희는 아버지 이병철이 18개월 만에 경영에 복귀하면서 삼성그룹 회장 자리를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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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10월 00일, 37세 때, 이맹희는 제일제당 대표이사 부사장에 올라 1970년 5월까지 자리를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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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00월 00일, 38세 때, 이맹희는 필립스와의 합작 건으로 독일에 출장 가 있던 동안 동생 이창희가 아버지 이병철을 조사해야 한다는 탄원 문건을 청와대 쪽에 낸 일에 연루됐다는 의심을 아버지로부터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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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00월 00일, 42세 때, 이맹희는 삼성 계열사에서 갖고 있던 직함 17개 가운데 14개를 내려놓고 3개만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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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09월 00일, 45세 때, 이맹희는 아버지 이병철이 3남 이건희를 차기 경영자로 지목하면서 삼성 안에서의 입지가 크게 좁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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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이맹희는 삼성을 떠난 뒤 대구와 부산 등 국내 산간 지역을 떠돌았고, 이후 일본·중국·몽골 등 해외에 머물며 삼성과 거리를 둔 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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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09월 00일, 53세 때, 이맹희는 부산 해운대의 아버지 별장에 머물던 밤 삼성 비서실에서 왔다는 남성 두 명이 들어서자 엽총을 쏘아 내쫓았고, 훗날 이를 가족이 자신을 정신질환자로 몰아 격리하려던 시도로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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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09월 00일, 56세 때, 이맹희는 선데이저널 등 언론을 통해 사카린 밀수 사건의 내막 일부를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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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1월 19일, 56세 때, 이맹희는 아버지 이병철을 여의었고, 같은 날 삼성 사장단 회의는 동생 이건희를 그룹 회장으로 추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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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00월 00일, 62세 때, 이맹희는 제일비료 회장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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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이맹희는 제일비료를 직접 세워 재기를 꾀했지만 사업을 일으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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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00월 00일, 62세 때, 이맹희는 또 다른 저서 『하고싶은 이야기』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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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06월 00일, 62세 때, 이맹희는 회상록 『묻어둔 이야기』를 펴내며 한국비료의 밀수 현장을 자신이 지휘했고 박정희 정권이 이를 은밀히 돕기로 했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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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06월 00일, 62세 때, 이맹희는 아버지와 가족이 부산의 한 의사에게서 정신병 소견서를 받아내는 등 자신을 정신질환자로 몰아갔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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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06월 00일, 62세 때, 이맹희는 그룹 경영을 맡은 기간이 6개월이었다는 아버지 자서전의 기술을 반박하며 그 기간이 7년이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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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00월 00일, 63세 때, 이맹희는 아내 손복남이 가진 안국화재 지분이 동생 이건희의 제일제당 주식과 맞교환되면서 제일제당이 삼성에서 분리돼 CJ그룹의 모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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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2월 14일, 80세 때, 이맹희는 동생 이건희가 아버지의 차명 주식을 다른 상속인 몰래 차지했다며 삼성생명 주식 약 824만 주 등을 돌려달라는 주식인도 청구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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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00일, 81세 때, 이맹희는 폐암 2기 진단을 받고 일본에서 폐의 3분의 1을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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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0월 00일, 82세 때, 이맹희는 폐암이 부신으로 번져 일본과 중국을 오가며 항암 치료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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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2월 01일, 81세 때, 이맹희는 다른 상속인들과 함께 4조 849억 원 규모로 키운 상속 소송 1심에서 패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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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0월 00일, 83세 때, 이맹희는 암이 혈관을 타고 림프절까지 퍼져 중국에서 치료를 이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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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1월 14일, 82세 때, 이맹희는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전한 편지를 통해 이건희와 진정성 있는 화해를 바란다고 밝히는 한편, 이건희가 자리를 비켜 달라고 해 총수 자리를 차지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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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2월 06일, 82세 때, 이맹희는 청구액을 약 9400억 원으로 줄여 다툰 항소심에서도 상속권 주장 기간 10년이 지났다는 등의 이유로 패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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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2월 26일, 82세 때, 이맹희는 가족 간의 관계가 소송보다 더 중요하다며 대리인 법무법인 화우를 통해 상고를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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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8월 14일, 84세 때, 이맹희는 오랜 투병 끝에 중국 베이징의 한 병원에서 폐암으로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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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8월 18일, 사후, 이맹희는 CJ그룹장으로 치러진 장례에서 생전에 쓰지 않던 CJ그룹 명예회장 직함으로 서울대병원 빈소에 모셔져 조문객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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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8월 20일, 사후, 이맹희는 서울대병원에서 발인한 뒤 서울 중구 필동 CJ인재원에서 약 50분간 영결식을 치르고 경기도 여주에 안장됐다.

이맹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