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16일 금요일

문익점 : 2026년 10월 16일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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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9년 00월 00일, 0세 때, 문익점은 고려 경상도 진주목 강성현, 지금의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에서 아버지 문숙선과 어머니 함안 조씨 사이에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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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문익점은 과거에 합격하고도 벼슬길에 나서지 않은 아버지 문숙선의 뜻을 이어 글공부를 집안의 업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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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8년 00월 00일, 9세 때, 문익점은 학당에 들어가 공부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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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1년 00월 00일, 12세 때, 문익점은 이색의 아버지인 이곡의 문하에 들어가 학문을 익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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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6년 00월 00일, 17세 때, 문익점은 팔계 주씨 부인과 혼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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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8년 00월 00일, 19세 때, 문익점은 맏아들 문중용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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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0년 00월 00일, 21세 때, 문익점은 시경을 가르치는 경덕재에 들어간 뒤 이름을 익첨에서 익점으로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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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3년 00월 00일, 24세 때, 문익점은 원나라 정동행성이 주관한 향시에 이색과 나란히 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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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0년 00월 00일, 31세 때, 문익점은 공민왕 9년의 문과에 급제해 김해부 사록으로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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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0년 00월 00일, 31세 때, 문익점은 같은 해 과거에서 정몽주와 함께 합격자 명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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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0년 00월 00일, 31세 때, 문익점은 첫 부인 주씨와 사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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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문익점은 진양 정씨 부인을 새 아내로 맞아 전객령을 지낸 정천익을 장인으로 두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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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1년 00월 00일, 32세 때, 문익점은 순유박사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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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3년 00월 00일, 34세 때, 문익점은 순유박사에서 사간원 좌정언으로 승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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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3년 00월 00일, 34세 때, 문익점은 계품사로 파견된 좌시중 이공수의 서장관이 되어 원나라 조정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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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3년 11월 00일, 34세 때, 문익점은 원나라 남쪽 지방으로 유배돼 약 3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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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4년 00월 00일, 35세 때, 문익점은 원나라의 최유가 공민왕 대신 덕흥군을 고려 왕으로 세우려다 실패한 뒤 덕흥군을 지지했다는 혐의를 받아 관직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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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4년 00월 00일, 35세 때, 문익점은 원나라에서 돌아오는 길에 길가의 목면 나무에서 씨 10여 개를 따 고려로 들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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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4년 00월 00일, 35세 때, 문익점은 고향 진주에 도착해 들여온 씨의 절반을 장인 정천익에게 건네 심어 기르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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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4년 00월 00일, 35세 때, 문익점은 정천익에게 맡긴 씨 가운데 한 그루만 살아남았고, 그해 가을 그 한 그루에서 씨 백여 개가 거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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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4년 00월 00일, 35세 때, 문익점은 자신이 직접 심은 목화씨가 모두 꽃을 피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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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7년 00월 00일, 38세 때, 문익점은 해마다 재배를 늘려 온 끝에 정미년 봄 목화 종자를 고향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 주며 심도록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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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문익점은 자신이 들여온 목화가 장인 정천익이 원나라 승려 홍원에게서 배운 실 뽑기와 베 짜기 기술, 홍원이 만들어 준 기구 덕분에 처음으로 무명 한 필로 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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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8년 00월 00일, 39세 때, 문익점은 예문관제학 겸 성균관사성에 임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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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9년 00월 00일, 40세 때, 문익점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주자가례에 따라 3년 동안 무덤 곁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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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3년 00월 00일, 44세 때, 문익점은 이색의 추천으로 성균관 대사성에 제수됐으나 병 때문에 조정에 나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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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5년 00월 00일, 46세 때, 문익점은 목면이 한 고을을 넘어 나라 전체로 퍼진 공로가 조정에 알려져 우왕의 부름을 받고 전의주부에 임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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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5년 00월 00일, 46세 때, 문익점은 중현대부 좌대언 우문관제학 겸 지제교에 올랐다가 청도군수로 좌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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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6년 00월 00일, 47세 때, 문익점은 어머니의 상을 당해 3년 동안 시묘했고, 왜구가 쳐들어왔을 때도 무덤을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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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3년 00월 00일, 54세 때, 문익점은 이성계의 추천으로 효행을 기리는 효자비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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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8년 00월 00일, 59세 때, 문익점은 좌사의대부 우문관제학 서연동지사가 되어 창왕 앞에서 경전을 강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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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9년 08월 00일, 60세 때, 문익점은 사전 개혁 문제에서 이색·우현보와 뜻을 같이해 이성계 세력의 전제 개혁에 반대하다가 대사헌 조준으로부터 탄핵을 받고 고향으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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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0년 08월 00일, 61세 때, 문익점은 다시 조정에 불려 와 좌사의대부 우문관제학 서연동지사 겸 성균관 대사성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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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0년 10월 00일, 61세 때, 문익점은 나라의 급한 일을 여덟 조목으로 정리한 시무 8조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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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0년 11월 00일, 61세 때, 문익점은 병을 이유로 관직을 내려놓고 산청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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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 00월 00일, 63세 때, 문익점은 이성계와 정도전 등이 조선을 세우자 역성혁명에 반대하며 고려에 대한 절의를 지켜 새 왕조에 출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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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4년 00월 00일, 65세 때, 문익점은 태조 이성계로부터 두 차례 조정에 들어오라는 권유를 받았으나 응하지 않았고, 3품 벼슬과 녹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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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8년 06월 13일, 69세 때, 문익점은 전 좌사의대부로서 고향 강성현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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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년경, 사후, 문익점은 태종 때 참지의정부사 예문관제학 동지춘추관사 강성군으로 추증됐고, 두 아들은 사헌부 감찰로 발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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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0년 00월 00일, 사후, 문익점은 세종 22년 목화 보급의 공으로 영의정부사에 더해 추증되고 부민후에 봉해졌으며 충선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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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사후, 문익점은 산청 단성의 도천서원과 전라남도 장흥의 월천사우에 위패가 모셔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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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5년 00월 00일, 사후, 문익점은 자신을 모신 도천서원에 정조가 직접 지어 내린 사액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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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01월 21일, 사후, 문익점은 장인 정천익과 함께 처음 목화를 길렀던 산청 단성면 사월리의 시배지가 국가 사적으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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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00월 00일, 사후, 문익점은 산청에 있는 자신의 묘가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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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0월 00일, 사후, 문익점은 산청 단성면 생가 터에 유지비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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