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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928·2화안상호 : 친일파 이완용의 주치의
안상호 : 고종의 마지막 친일 어의
2026년 08월 11일 화요일
안상호 : 고종의 마지막 친일 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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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년 00월 00일, 0세 때, 안상호는 화가 안건영(1841~1876)의 아들로 한성부(현 서울)에서 태어났다. [출생연도 상충: 근현대인물자료에는 1874년 11월 5일로 기재된 기록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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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1902년 이전 추정, 날짜불명), 안상호는 관립일어학교를 제1회로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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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1902년 이전 추정, 날짜불명), 안상호는 대한제국 국비유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으로 건너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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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6월 00일, 30세 때, 안상호는 일본 동경자혜의원의학교(현 도쿄지케이카이의과대학)를 졸업해 한국인 최초로 일본 의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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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00월 00일, 30세 때, 안상호는 도쿄 자혜병원에서 수련을 시작해 2년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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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00월 00일, 32세 때, 안상호는 귀국해 순종의 전의(典醫)로 임명됐고, 지석영이 설립한 의학교와 동담한의학교 등에서 서양의학을 강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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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00월 00일, 32세 때, 안상호는 황실 전의직을 사임한 뒤 서울 종로3가에 '안상호진료소'를 개업했다(한성 최초 서양식 개인의원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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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00월 00일, 36세 때, 안상호는 일본인 의사 단체 계림의학회에 대항해 김익남 등과 함께 최초의 한국인 의사 단체 '의사연구회'를 결성했다(오늘날 대한의사협회의 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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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4월 00일, 42세 때, 안상호는 제1대 경성부협의회 의원으로 선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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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 00월 00일, 43세 때, 안상호는 일본인 중심 경성의사회에 대항해 조선인 의사들을 모아 '한성의사회'를 조직하고 회장을 맡았다(오늘날 서울특별시의사회의 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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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4월 00일, 44세 때, 안상호는 제2대 경성부협의회 의원으로 중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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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10월 21일, 44세 때, 매일신보는 안상호가 자녀를 일본인 학교에 보내 교육하는 것을 일선동화의 성과로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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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11월 29일, 44세 때, 안상호는 결성된 친일 단체 대정친목회(대정실업친목회)의 초대 평의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고문은 이완용·민영휘·이윤용, 회장은 민영기였고, 평의원에는 안상호 외에 윤치호·백완혁 등 28명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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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4월 00일, 46세 때, 안상호는 제3대 경성부협의회 의원으로 중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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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12월 10일, 46세 때, 안상호는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일본 사람과 똑같다. 지금 조선 옷은 한 벌도 없고, 매운 음식은 조금도 못 먹는다"며 "오남매의 자녀들은 집에서 전적으로 일본어만 사용하며 조선말은 전혀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조선 사람과는 그리 상종하는 일이 없으므로 불편한 것은 없다"고도 밝혔다. 이 인터뷰는 '일선동체의 가정'이라는 제목으로 보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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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1월 00일, 47세 때, 안상호는 덕수궁 함녕전에서 고종이 쓰러지자 의친왕의 요청을 받고 이왕직 촉탁의 자격으로 입진해 고종을 진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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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1월 00일, 47세 때, 안상호는 고종의 갑작스러운 승하 이후 이왕직 촉탁의로서 입진했다는 이유로 독살 연루 의혹에 휘말렸다(조선총독부와 결탁한 독살 지시설로 구전됐으나 미입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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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12월 28일, 51세 때, 파주군에 사는 박승학이 안상호를 상대로 경성지방법원에 토지매매증명 말소청구 소송을 제기했다고 조선일보가 보도했다. 소장에는 9년 전 안상호가 박승학의 노모를 협박해 토지를 매매한 것처럼 꾸며 소유권보존증명을 마쳤다는 내용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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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00월 00일, 52세 때(추정), 위 토지 소송 공판이 경성지방법원에서 열릴 예정이라고 보도됐다(결과 미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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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00월 00일, 55세 때, 안상호 소유 토지의 소작농이던 한륵봉이 소작권을 돌려받지 못하자 마름 타니오카 마타로와 경기도 시흥군 남면 밤바위산에서 몸싸움을 벌여 그를 사망케 했다(검사는 살인·절도 혐의로 무기징역을 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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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12월 31일, 55세 때, 안상호는 종로 안상호병원에서 사망했다(향년 55세). 묘소는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당목리에 있다(원래 경기도 시흥군 군포읍 금정리, 1990년 4월 산본신도시 개발로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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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00월 00일, (사후) 안상호병원은 도쿄제국대학 의학부를 졸업한 강처홍이 인수했다.
안상호 : 친일파 이완용의 주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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