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생1872-00-00
- 사망1927-12-31
- 사망종로 안상호병원에서 별세(향년 55세). 묘소는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당목리(원래 경기 시흥군 군포읍 금정리, 1990년 4월 산본신도시 개발로 이장)
- 국적대한제국 → 일제강점기 조선
- 직업의사, 교육자 (친일반민족행위 논란 인물)
- 주요 경력화가 안건영의 아들로 한성에서 태어나 관립일어학교를 거쳐 대한제국 국비유학생으로 일본에 유학했다. 1902년 6월 도쿄자혜의원의학교(현 도쿄지케이카이의과대학)를 졸업해 한국인 최초로 일본 의사 자격을 취득했고, 1904년 귀국해 순종의 전의로 활동하다 서울 종로3가에 '안상호진료소'를 개업했다. 1908년 김익남 등과 '의사연구회'(대한의사협회 전신)를, 1915년 '한성의사회'(서울특별시의사회 전신)를 조직해 회장을 지냈다. 1914~1918년 제1~3대 경성부협의회 의원을 지냈고, 1916년 대정친목회 초대 평의원으로 이름을 올려 친일 논란의 핵심 근거가 됐다. 1918년 매일신보 인터뷰에서 일본식 생활을 강조해 내선일체 선전에 활용됐으며, 1919년 1월 고종의 임종 직전 이왕직 촉탁의로 입진해 이후 근거 없는 독살설에 휘말리기도 했다. 1927년 12월 종로 안상호병원에서 별세했다.
- 핵심 역할초대 평의원, 대정친목회(1916~) / 회장, 한성의사회(1915~) / 제1~3대 경성부협의회 의원(1914~1918) / 이왕직 촉탁의(순종·고종 진료)
- 소속대정친목회, 한성의사회(현 서울특별시의사회 전신), 의사연구회(현 대한의사협회 전신), 경성부협의회
- 소개안상호는 1872년 화가 안건영의 아들로 한성에서 태어나 1902년 한국인 최초로 일본 의사 자격을 취득한 뒤 종로에 서양식 개인의원을 열었다. 순종과 고종의 왕실 의료를 담당했고 한성의사회 회장 등 의료계 요직을 지냈으나, 1916년 대정친목회 평의원 참여와 1918년 매일신보의 '내지화된 가정' 인터뷰로 친일 논란의 대표 사례로 남았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는 등재되지 않았지만, 대정친목회 참여 이력을 근거로 그의 행적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여전히 엇갈린다. 1927년 55세로 별세했으며, 2026년 증손녀인 배우 하영이 방송에서 가족사를 언급하면서 다시 대중적 조명을 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