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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928·2화

안상호 : 친일파 이완용의 주치의

안상호 : 고종의 마지막 친일 어의

2026년 08월 11일 화요일

안상호 : 친일파 이완용의 주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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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00월 00일, 00세 때, 안상호는 일본 도쿄 지케이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인 최초로 일본 의사 자격을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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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00월 00일, 00세 때, 안상호는 귀국해 서울 종로3가에 병원을 개업했다(한양 최초 양의원). 이후 순종의 전의(典醫) 및 이왕직 촉탁의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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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12월 22일, 00세 때,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벨기에 국왕 추도식 참석 후 귀가하던 이완용이 독립운동가 이재명의 습격으로 중상을 입자, 안상호는 한성병원·대한병원 의료진, 박종환 등과 함께 이완용을 치료해 목숨을 구했다. 이완용은 입원 53일 만에 퇴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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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00월 00일, 00세 때, 안상호는 친일 실업인 단체 대정친목회의 평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 단체에는 이완용, 조중응, 송병준, 이윤용 등 당대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이 다수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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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12월 10일, 00세 때, 안상호는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일본인과 같다. 조선 옷은 한 벌도 없고 매운 음식도 못 먹는다"며 "자녀들이 집에서 일본어만 사용하고 조선말은 전혀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의 일본인 아내 이소코도 "11년 동안 조선에 있었어도 조선말은 한마디도 못한다"고 밝혔다. 매일신보는 이를 '완전히 내지화된 의사 안상호씨의 가정'(일선동화의 가정)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해 내선일체 정책의 모범 사례로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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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00월 00일, 00세 때, 안상호는 일본인 의사와 함께 고종 황제를 진료했다. 같은 해 고종이 사망한 뒤, 영친왕비 이방자의 수기와 궁내부 사무관 곤도 시로스케의 회고록 '이왕궁비사'에는 조선총독부가 시의(侍醫) 안상호에게 독살을 명령했다는 소문이 있었다는 내용이 기록됐다(진위 미확인, 풍문 수준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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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00월 00일, 00세 때, 김명수가 편찬한 이완용 추모록 '일당기사'에는 안상호가 습격당한 이완용이 완쾌할 때까지 매일 찾아와 진료했다는 내용이 기록됐다.

안상호 : 고종의 마지막 친일 어의

안상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