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 올랑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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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자리말띠庚 경금금(金)
전통 명리·점성술의 일반 설명
경금(庚金) · 원석·바위·무쇠다듬어지기 전의 무쇠와 바위에 비유된다.
사자자리 · 7.23~8.22자신감과 존재감, 무대의 중심에 서려는 기질이 흔히 언급되는 특징이다.
말띠활동성과 자유로움, 밝은 사교성이 흔히 언급되는 특징이다.
금(金) · 쇠·결실가르고 마무리하는 힘, 결단과 원칙, 의(義)의 기운으로 설명된다.

아래 설명은 전통 명리학·점성술에서 각 기호에 흔히 붙는 일반적 설명입니다. 개인의 성격이나 미래를 판정하는 근거가 아니며, 라이프러리는 이를 사실 데이터와 분리해 "해석"으로만 다룹니다.

甲午
연주
壬申
월주
庚子
일주
시주 (미계산)
1
1
0
2
2
삼주 기준 6글자
대운(大運) · 순행
癸酉
10세~
甲戌
20세~
乙亥
30세~
丙子
40세~
丁丑
50세~
戊寅
60세~
己卯
70세~
庚辰
80세~
辛巳
90세~

대운(大運)은 명리학에서 10년 단위로 바뀌는 흐름을 가리키는 개념입니다. 라이프러리는 이를 예측이 아니라 "그 10년을 전통 명리학이 어떤 시기로 설명하는가"와 "실제 라이프 카운트에 무엇이 기록돼 있는가"를 나란히 놓는 용도로만 씁니다.

출생시각 미확인 — 시주(時柱)는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삼주 기준입니다.

10대

1954甲午
  • 1954년, 0세 때, 프랑수아 올랑드는 프랑스 센마리팀 주 루앙에서 출생했다.
1968戊申
  • 1968년, 14세 때, 프랑수아 올랑드는 가족과 함께 루앙에서 파리 근교의 뇌이쉬르센으로 이사했다.

50대

2007丁亥
  • 2007년, 53세 때, 프랑수아 올랑드는 대선 후보로 존재감 없던 프랑수아 올랑드 대신 세골렌 루아얄을 선택했다.
2012壬辰
  • 2012년, 58세 때, 프랑수아 올랑드는 대선 출마를 앞두고 다이어트를 통해 14kg을 감량하고 안경테를 둥근 테에서 각진 테로 바꾸어 외양의 변화를 꾀했다.
  • 2012년, 58세 때, 프랑수아 올랑드는 우유부단한 말하기 스타일을 버리고 날선 공방이 가능한 스타일로 화법을 변신했다.
  • 2012년, 58세 때, 프랑수아 올랑드는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서 51.6%를 득표하여 니콜라 사르코지를 꺾고 프랑스 제24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 2012년, 58세 때, 프랑수아 올랑드는 사르코지가 추진한 긴축정책 대신 경기부양과 성장을 해법으로 제시하는 정책 방향을 선택했다.
  • 2012년, 58세 때, 프랑수아 올랑드는 재산 100만 유로 이상의 부유층에게 75%의 최고세율을 부과하는 방침을 시행했다.
2013癸巳
  • 2013년, 59세 때, 프랑수아 올랑드는 대선 당시의 경기부양 공약과 달리, 국가부채가 GDP의 90%에 달하는 경제 상황으로 인해 고강도 긴축정책으로 노선을 번복했다.
  • 2013년, 59세 때, 프랑수아 올랑드가 프랑스 하원 재보궐선거에서 대중운동연합(UMP)에 패배했다.
  • 2013년 4월, 58세 때, 프랑수아 올랑드가 여론에 밀려 귀화 신청을 전면 철회했다.
  • 2013년 5월 및 11월, 58세 때, 프랑수아 올랑드가 24%에서 일부 조사에서는 15%까지 추락하며 임기 초반에 레임덕 상태에 빠졌다.
  • 2013년 6월, 58세 때, 프랑수아 올랑드는 일본 국회를 방문하여 연설하던 중, 일본이 과거사를 직시해야 한다고 발언했으나 일본과 중국을 헷갈려 비판을 받았다.

60대

2014甲午
  • 2014년, 60세 때, 프랑수아 올랑드가 지방선거와 유럽의회 선거에서 각각 대중운동연합(UMP)과 국민전선(FN)에 패배했다.
  • 2014년 1월, 59세 때, 프랑수아 올랑드는 여배우 쥘리 가예트와 밀회를 즐기며 이탈리아제 오토바이(피아지오 MP3)를 이용했다는 사실이 가십지 '클로저'를 통해 폭로되었다.
  • 2014년 1월, 59세 때, 프랑수아 올랑드는 사생활 보호 성명을 냈으나 폭로 내용에 대해서는 부인하지 않았다.
  • 2014년 9월, 60세 때, 프랑수아 올랑드는 전 동거녀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르로부터 가난한 사람들을 '이 빠진 사람(Les Sans-Dents)'이라고 경멸했다는 폭로를 당해 지지율이 하락했다.
  • 2014년 9월 28일, 60세 때, 프랑수아 올랑드가 상원의원 선거에서 중도우파와 국민전선에 패배하며 총 4연패의 선거 결과를 기록했다.
2015乙未
  • 2015년 1월, 60세 때, 프랑수아 올랑드는 샤를리 엡도 총격 테러 발생 1시간 만에 현장에 나타나 경찰특공대(RAID)와 대테러 헌병특수부대(GIGN)를 동시 투입하는 강수를 두어 인질범들을 사살했다.
  • 2015년 1월, 60세 때, 프랑수아 올랑드는 테러 발생 사흘 만에 전 세계 정상 45명을 엘리제궁으로 불러 '국가단합'을 내세웠으며, 이로 인해 지지율이 19%에서 34~40%로 상승했다.
  • 2015년 3월 22일, 60세 때, 프랑수아 올랑드는 지방선거에서 대중운동연합과 국민전선에 참패하며 테러 대응으로 얻은 인기가 일시적이었음을 확인했다.
  • 2015년 7월, 60세 때, 프랑수아 올랑드는 러시아의 식품 맞제재로 인해 프랑스 농업이 타격을 입고 농부들이 대거 파업하는 상황을 겪었다.
  • 2015년 7월 23~26일, 60세 때, 프랑수아 올랑드가 크림 반도를 방문했다.
2016丙申
  • 2016년 1월, 61세 때, 프랑수아 올랑드는 재선 계산과 국가주의적 성향을 반영하여 프랑스 초등학생 모두가 국가 '라 마르세예즈'를 부르도록 지시했다.
  • 2016년 7월, 61세 때, 프랑수아 올랑드가 전속 이발사에게 매달 9,900유로의 봉급을 준 사실이 확인되어 '이발사 게이트'로 조롱받았다.
  • 2016년 9월 24일, 62세 때, 프랑수아 올랑드는 칼레의 난민촌 '정글'을 완전히 폐쇄하고 난민을 전국에 분산 배치하기로 결정했다.
  • 2016년 10월 말, 62세 때, 프랑수아 올랑드가 4%라는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며 당내에서도 소외당하는 상황에 처했다.
  • 2016년 11월 7일, 62세 때, 프랑수아 올랑드는 르몽드 기자들에게 국가기밀을 유출했다는 혐의로 야당으로부터 탄핵 결의안을 제출받았으나, 하원에서 부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