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 나오토
프로필로 돌아가기 →천칭자리개띠丁 정화화(火)
전통 명리·점성술의 일반 설명
정화(丁火) · 촛불·등불·화롯불어둠 속에서 은은히 타는 등불에 비유된다.
천칭자리 · 9.23~10.22균형과 조화를 중시하는 태도, 관계와 미감에 대한 감각이 흔히 언급되는 특징이다.
개띠충직함과 정의감, 책임을 다하는 성실함이 흔히 언급되는 특징이다.
화(火) · 불·빛밝게 드러내는 힘, 열정과 확산, 예(禮)의 기운으로 설명된다.
아래 설명은 전통 명리학·점성술에서 각 기호에 흔히 붙는 일반적 설명입니다. 개인의 성격이나 미래를 판정하는 근거가 아니며, 라이프러리는 이를 사실 데이터와 분리해 "해석"으로만 다룹니다.
丙戌
연주
戊戌
월주
丁巳
일주
—
시주 (미계산)
출생시각 미확인 — 시주(時柱)는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삼주 기준입니다.
대운은 성별 정보가 확인되지 않아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10대
1946丙戌
- 1946년 10월 10일, 간 나오토는 야마구치현 우베시에서 공장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1965乙巳
- 1965년, 19세 때, 간 나오토는 도쿄공업대학 이학부 응용물리학과(현 물리학과)에 입학했다.
- 1965년, 19세 때, 간 나오토는 대학의 자치회에 들어가 있던 중핵파와 대립했다.
- 1965년, 19세 때, 간 나오토는 "이데올로기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현실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라며 15명 정도의 학생들을 모아 "전학개혁 추진회의"를 세워 극좌 계열과는 다른 학생운동을 시작했다.
- 1965년, 19세 때, 간 나오토는 첨예화되고 있던 전공투나 일본 공산당의 지배 하에 있던 민청과도 달랐고, 학교에 친화적인 '체제 찬성파' 그룹도 아닌 제4의 그룹을 조직했다.
- 1965년경, 간 나오토는 논 섹트 래디컬 그룹에 속해 있었고, 학원분쟁 당시 경시청 경비과장 삿사 아츠유키에 의해 "4번째 열의 사람"으로 목격되었다.
20대
1970庚戌
- 1970년, 24세 때, 간 나오토는 도쿄공업대학을 졸업했다.
- 1970년, 24세 때, 간 나오토는 변리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 1970년, 24세 때, 간 나오토는 지역 사회를 중심으로 한 시민운동에 적극 가담하기 시작했다.
30대
1976丙辰
- 1976년, 30세 때, 간 나오토는 정치에 입문했다.
- 1976년~1980년, 간 나오토는 2차례의 낙선을 경험했다.
1980庚申
- 1980년, 34세 때, 간 나오토는 미니정당인 사회민주연합 당적으로 도쿄에서 첫 당선을 했다.
- 1980년 이후, 간 나오토는 사회민주주의와 야권통합을 주장하는 사회민주연합(사민련)의 얼굴로 활약했다.
40대
1993癸酉
- 1993년, 47세 때, 간 나오토는 호소카와 모리히로와 오자와 이치로가 주도한 비자민 비공산 7당 연립정권에 참여하면서 행정 경험을 쌓았다.
1994甲戌
- 1994년, 48세 때, 간 나오토는 자민당-사회당-신당 사키가케의 연정 수립 이후 신당 사키가케 소속으로 후생대신(현 후생노동대신)을 맡았다.
- 1994년, 48세 때, 간 나오토는 O-157 사건이 터져 무순이 식중독 대장균인 O-157 확산의 주범으로 지목받고 판매량이 폭락하자 기자회견장에서 무순 한 사발을 통째로 먹어치우는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 1994년, 48세 때, 간 나오토는 제약회사들이 에이즈에 감염된 혈액제재를 혈우병 환자들에게 공급했다는 사실을 은폐하려는 시도에 일본 정부가 관련되었다는 것을 폭로했다.
- 1994년, 48세 때, 간 나오토는 에이즈 혈액제재 사건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줘 주목을 받았다.
- 1994년, 48세 때, 간 나오토는 관료 체제와의 타협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50대
1996丙子
- 1996년, 50세 때, 간 나오토는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다.
- 1996년, 50세 때, 간 나오토는 신당 사키가케의 동료 의원들과 사회당 내 우파세력을 결집하여 민주당을 창당했다.
- 1996년, 50세 때, 간 나오토는 하토야마 유키오와 함께 민주당의 얼굴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2003癸未
- 2003년, 57세 때, 간 나오토는 자유당 당수 오자와 이치로를 끌어들여 당세를 대폭 확장했다.
- 2003년, 57세 때, 간 나오토는 오자와 이치로 영입으로 일본 정치에서 사실상 자민당vs민주당의 양당 체제가 성립하는 것을 이뤘다.
- 2003년 이후, 간 나오토는 하토야마, 오자와와 함께 트로이카 체제를 형성하며 민주당을 이끌었다.
60대
2010庚寅
- 2010년 6월 4일, 64세 때, 간 나오토는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가 지지율 하락과 후텐마 미군기지 이전 문제로 인한 정치적 난국을 이기지 못하고 사퇴하자 국회(중의원) 본회의에서 유효투표 477표 가운데 313표를 얻었다.
- 2010년 6월 9일, 64세 때, 간 나오토는 제94대 내각총리대신으로 취임했다.
- 2010년, 64세 때, 간 나오토는 일본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소비세 인상 발언으로 팀킬을 저질렀다.
- 2010년, 64세 때, 간 나오토는 도호쿠 대지진 하루 전에 재일교포에게 정치헌금을 받았던 사실이 나타나 도덕성에 흠집이 났다.
- 2010년 9월 이후, 간 나오토는 엔고 현상으로 인해 일본 경제가 위기국면으로 치달은 데다 일본 참의원 선거 참패라는 이중고로 총리직 유지가 위태로웠다.
2011辛卯
- 2011년, 64세 때, 간 나오토는 러시아 드미트리 메드메데프 대통령의 러시아 정상으로는 사상 첫 북방 4도 방문으로 인한 일본 외교의 무사안일함으로 비판받았다.
- 2011년, 64세 때, 간 나오토는 북한 연평도 포격 사건에 대한 늦장대응으로 비판받았다.
- 2011년, 64세 때, 간 나오토는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의 파병이 가능한 듯한 뉘앙스의 발언으로 문제가 되었다.
- 2011년 3월 11일, 64세 때, 간 나오토는 일본 지진 관측 사상 최악의 도호쿠 대지진 상황을 맞았다.
- 2011년 3월 11일, 64세 때, 간 나오토는 사건 극초반에 비교적 빨리 대책본부를 마련하고 5만명의 자위대 병력을 사건 현장에 급파했다.
2012壬辰
- 2012년 총선에서, 49세 때, 간 나오토는 자신의 지역구인 도쿄도 제18구 리벤지 매치에서 2위로 석패했지만 석패율제에 따라 비례대표 순번 3위로 복귀했다.
- 2012년 2월 27일, 65세 때, 간 나오토는 후쿠시마 원전사고 독립검증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통해 도쿄전력이 사고 당시 전면 철수를 시도했다는 주장이 사실임이 확인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2014甲午
- 2014년 총선에서, 51세 때, 간 나오토는 전국 개표 최후반에 마지막으로 당선을 확정지었고, 475석 중 475번째 의석을 얻어 '미스터 475'라는 별명을 얻었다.
- 2014년~2015년 사이, 51~52세 때, 간 나오토는 자주 방한하여 도호쿠 지진과 원전사고에 대해 수없이 강연을 했다.
2015乙未
- 2015년, 52세 때, 간 나오토는 경주에서 강연을 가졌다.
70대
2017丁酉
- 2017년 10월, 54세 때, 간 나오토는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고이케 유리코의 희망의 당에 공천신청을 했지만 리버럴 성향 때문에 거부당했다.
- 2017년, 54세 때, 간 나오토는 에다노 유키오가 호헌, 리버럴 성향 의원들을 이끌고 나가 창당한 입헌민주당에 참여했다.
- 2017년, 54세 때, 간 나오토는 입헌민주당에서 자신의 지역구인 도쿄도 제18구에 공천을 받았다.
- 2017년, 54세 때, 간 나오토는 NHK 출구조사 결과 자민당 후보를 제치고 1위로 집계되었고, 실제 개표 결과로도 1위로 당선되어 2012, 2014년과 달리 자력으로 당선되었다.
- 2017년 이후, 54세 이후, 간 나오토는 국회에서 중의원 경제산업위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탈원전 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2020庚子
- 2020년 가을, 57세 때, 간 나오토는 제4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새로 찍은 자신의 포스터를 지역구 관내에 새로 부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