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리소띠乙 을목목(木)
전통 명리·점성술의 일반 설명
을목(乙木) · 풀·덩굴·화초바람에 눕되 꺾이지 않는 풀과 덩굴에 비유된다.
양자리 · 3.21~4.19앞장서는 용기와 추진력, 즉흥적인 열정이 흔히 언급되는 특징이다.
소띠성실함과 인내, 묵묵히 끝까지 해내는 뚝심이 흔히 언급되는 특징이다.
목(木) · 나무·성장뻗어 나가는 힘, 시작과 성장, 인(仁)의 기운으로 설명된다.

아래 설명은 전통 명리학·점성술에서 각 기호에 흔히 붙는 일반적 설명입니다. 개인의 성격이나 미래를 판정하는 근거가 아니며, 라이프러리는 이를 사실 데이터와 분리해 "해석"으로만 다룹니다.

癸丑
연주
丙辰
월주
乙亥
일주
—
시주 (미계산)
木
1
火
1
土
2
金
0
水
2
삼주 기준 6글자
대운(大運) · 역행
乙卯
2세~
甲寅
12세~
癸丑
22세~
壬子
32세~
辛亥
42세~
庚戌
52세~
己酉
62세~
戊申
72세~
丁未
82세~

대운(大運)은 명리학에서 10년 단위로 바뀌는 흐름을 가리키는 개념입니다. 라이프러리는 이를 예측이 아니라 "그 10년을 전통 명리학이 어떤 시기로 설명하는가"와 "실제 라이프 카운트에 무엇이 기록돼 있는가"를 나란히 놓는 용도로만 씁니다.

출생시각 미확인 — 시주(時柱)는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삼주 기준입니다.

10대

1973癸丑
  • 1973년 04월 09일, 0세 때, 한동훈은 서울특별시에서 한명수 AMK 회장과 허수옥 사이의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75乙卯
  • 1975년 00월 00일, 2세 때, 한동훈은 청주 수동성당에서 제라드 해먼드 신부를 도와 복사를 섰다.
1980庚申
  • 1980년 00월 00일, 7세 때, 한동훈은 청주 수동성당 부설 성 안나 유치원을 졸업했다.
  • 1980년 00월 00일, 7세 때, 한동훈은 청주 운호국민학교에 입학해 4학년까지 다녔다.
  • 1980년 00월 00일, 7세 때, 한동훈은 유치원에 다니고 있었다.
  • 1980년 00월 00일, 7세 때, 한동훈은 유년기와 초등학생 시절을 충북 청주에서 보냈다.
1981辛酉
  • 1981년 00월 00일, 8세 때, 한동훈은 충청북도 청주시 모충동으로 이사했다.
1982壬戌
  • 1982년 00월 00일, 9세 때, 한동훈은 청주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며 방과 후 친구들과 떡볶이를 먹으러 다니는 것을 일과로 삼았다.
  • 1982년 00월 00일, 9세 때, 한동훈은 청주 도심을 가로지르며 풀숲이 우거지고 봄이면 벚꽃이 만발하던 집 앞 무심천에서 자주 놀았다.
  • 1982년 00월 00일, 9세 때, 한동훈은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무심천에 나가 올챙이를 잔뜩 잡았고, 하천 곳곳의 돌다리를 재미 삼아 일부러 건너다녔다.
1983癸亥
  • 1983년 00월 00일, 10세 때, 한동훈은 국민학교 5학년이 될 무렵 서울특별시 서초구 잠원동으로 이사했다.
1984甲子
  • 1984년 00월 00일, 11세 때, 한동훈은 아버지가 청주 공장 임원에서 서울 본사로 자리를 옮기면서 서초구 잠원동으로 이사해 신동초등학교로 전학했다.
1986丙寅
  • 1986년 00월 00일, 13세 때, 한동훈은 서울신동국민학교를 졸업했다.
  • 1986년 00월 00일, 13세 때, 한동훈은 경원중학교에 진학한 뒤 3년 내내 전교권 성적을 유지하며 반장을 도맡았다.
  • 1986년 03월 00일, 12세 때, 한동훈은 이른바 강남 8학군의 중학교에 진학해 고등학교까지 이 지역에서 다녔다.
1989己巳
  • 1989년 00월 00일, 16세 때, 한동훈은 경원중학교를 졸업했다.
  • 1989년 00월 00일, 16세 때, 한동훈은 현대고등학교에 진학했다.
  • 1989년 00월 00일, 16세 때, 한동훈은 고등학교 재학 중 전교생에게 공개되는 석차 방(榜)에서 1~3등을 벗어나지 않는 성적을 유지했다.
  • 1989년 00월 00일, 16세 때, 한동훈은 선생님의 지시에 따를 수 있었지만 모범생 한 명만을 위해 롤링페이퍼를 돌리라는 요청을 거절했다. 이유는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1989년 00월 00일, 16세 때, 한동훈은 문제아나 꼴찌로 불리는 친구들을 멀리할 수 있었지만 오히려 그들과 두루 친하게 지내며 많이 베푸는 쪽을 택했다.
1992壬申
  • 1992년 00월 00일, 19세 때, 한동훈은 현대고등학교를 졸업했다.
  • 1992년 00월 00일, 19세 때, 한동훈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92학번으로 입학했다.
  • 1992년 10월 13일, 19세 때, 한동훈은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스누포 제1회 정기연주회에서 플루트를 연주했다.
  • 1992년 00월 00일, 19세 때, 한동훈은 대학 시절 내내 운동권 활동을 하던 윗세대 선배들이 졸업 무렵 과방에 쌓인 대기업 입사 지원서로 별다른 스펙 경쟁 없이 모두 취업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 1992년 02월 00일, 18세 때, 한동훈은 이른바 강남 8학군의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20대

1993癸酉
  • 1993년 00월 00일, 20세 때, 한동훈은 2학년 진학 때 사법학과를 지망했지만 성적 서열에 밀려 공법학과로 배정되는 실패를 겪었다.
  • 1993년 00월 00일, 20세 때, 한동훈은 대학 시절 소설 한 편을 썼으나 완성 후 다시 읽어 보고 자신에게 그 재능이 없다고 판단했다.
1995乙亥
  • 1995년 00월 00일, 22세 때, 한동훈은 원하는 학과에 가지 못한 충격에 좌절할 수 있었지만 사법시험 합격을 목표로 절치부심해 공부하는 쪽을 택했다.
  • 1995년 00월 00일, 22세 때, 한동훈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재학 중 만 22세의 나이로 제37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96丙子
  • 1996년 00월 00일, 23세 때, 한동훈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며 법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
  • 1996년 00월 00일, 23세 때, 한동훈은 사법연수원에 27기로 입소했다.
  • 1996년 00월 00일, 23세 때, 한동훈은 연수원 스터디 조에서 나이가 가장 어리다는 이유로 총무를 맡아 복사 업무를 담당했다.
  • 1996년 00월 00일, 23세 때, 한동훈은 검사 지망을 걱정하는 동기들의 권유에 응할 수 있었지만 연수원 시절 내내 술을 한 잔도 마시지 않았다. 이유는 자신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1998戊寅
  • 1998년 05월 01일, 25세 때, 한동훈은 공군 군법무관으로 임관했다.
  • 1998년 00월 00일, 25세 때, 한동훈은 사법연수원 27기를 수료했다.
  • 1998년 05월 01일, 25세 때, 한동훈은 공군 군법무관으로 임관해 강릉 제18전투비행단에서 복무를 시작했다.
1999己卯
  • 1999년 00월 00일, 26세 때, 한동훈은 군 복무 중 소속 부대 간부인 중령의 금품 수수를 직접 인지수사해 단순수뢰죄로 구속했다.
  • 1999년 00월 00일, 26세 때, 한동훈은 간부 구속에 반발하는 헌병대장의 항의를 묵인할 수 있었지만 헌병대장을 체포했다. 이유는 수사의 정당성을 훼손하는 반발에 타협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2001辛巳
  • 2001년 04월 30일, 28세 때, 한동훈은 공군 대위로 3년 만기 전역했다.
  • 2001년 04월 30일, 28세 때, 한동훈은 3년 복무를 마치고 공군 대위로 만기 전역했다.
  • 2001년 04월 30일, 28세 때, 한동훈은 서울지방검찰청 형사9부에 초임 검사로 발령받아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2002壬午
  • 2002년 00월 00일, 29세 때, 한동훈은 현대고와 서울대 법대 1년 후배로 대학 시절 교제했던 진은정과 결혼했다.
  • 2002년 00월 00일, 29세 때, 한동훈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포함된 한화그룹 분식회계 고발사건을 맡아 재계 회장 소환도 배제하지 않는 수사 의지를 보였다.
  • 2002년 12월 00일, 29세 때, 한동훈은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 2002년 00월 00일, 29세 때, 한동훈은 윤석열을 처음 알게 됐고, 이후 두 사람은 각자 공적 역할을 맡아 여러 일을 함께하며 서로 신뢰를 쌓았다.

30대

2003癸未
  • 2003년 00월 00일, 30세 때, 한동훈은 최태원 SK 회장이 주식 부당거래로 800억 원대 부당이득을 챙기고 이면거래를 지시한 혐의를 밝혀내 최태원을 구속했다.
  • 2003년 00월 00일, 30세 때, 한동훈은 한나라당 차떼기 사건에 수사 검사로 참여했고, 대선자금 제공 사건 수사로 서청원 한나라당 대표를 구속했다.
  • 2003년 00월 00일, 30세 때, 한동훈은 초임 검사 시절 사람이 이렇게 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바쁘게 일했다.
  • 2003년 00월 00일, 30세 때, 한동훈은 막내 검사였지만 일을 뛰어나게 해내 이인규 전 대검 중앙수사부장의 각별한 신임을 받았다.
  • 2003년 00월 00일, 30세 때, 한동훈은 조서와 기록을 꼼꼼히 살피는 수사 능력으로 윤석열 검사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고, 윤 검사의 진정성에 감복해 가까워졌다.
2004甲申
  • 2004년 00월 00일, 31세 때, 한동훈은 대검 중수부 2차장검사 산하 형사9부 평검사로 이인규 부장검사 밑에서 수사를 맡았다.
  • 2004년 00월 00일, 31세 때, 한동훈은 미국 컬럼비아대 로스쿨에서 약 2년간 LL.M. 과정을 밟았다.
  • 2004년 04월 09일, 31세 때, 한동훈은 자신의 31번째 생일에 부친의 발인식에서 상주를 맡았다.
2006丙戌
  • 2006년 00월 00일, 33세 때, 한동훈은 미국 유학 중 직접 겪은 내용을 바탕으로 미국 형사사법 주요 제도의 실무 운용을 검토하는 논문을 썼다.
  • 2006년 00월 00일, 33세 때, 한동훈은 피의자의 자백·반성 여부가 양형인자로 고려되지 않는 미국 형사사법 체계에 관한 논문을 썼고, 이 논문의 표절률은 0%로 확인됐다.
  • 2006년 00월 00일, 33세 때, 한동훈은 미국 뉴욕주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 2006년 00월 00일, 33세 때, 한동훈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검찰연구원으로 돌아와 현대차 비자금 사건을 수사했고, 1,380억 원대 비자금 조성과 3천억 원대 회사 손해 혐의로 정몽구 회장을 구속했다.
  • 2006년 00월 00일, 33세 때, 한동훈은 외환은행 론스타 매각 사건 등을 수사해 유회원 론스타코리아 대표의 실형을 확정시켰다.
2007丁亥
  • 2007년 00월 00일, 34세 때, 한동훈은 정상명 검찰총장을 직접 만난 자리에서 부담을 느끼고 타협할 수 있었지만 직을 걸고 전군표 당시 국세청장의 구속영장 청구를 요구했다. 이유는 더 윗선이 연루된 정관계 로비 의혹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 2007년 00월 00일, 34세 때, 한동훈은 융통성이 없다는 지적에도 물러서지 않고 밀어붙여 전군표 전 국세청장을 구속기소했다.
  • 2007년 02월 00일, 33세 때, 한동훈은 부산지방검찰청 검사로 부임해 2009년 1월까지 근무했다.
  • 2007년 10월 18일, 34세 때, 한동훈은 정윤재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을 알선수재 등 혐의로 구속했다.
  • 2007년 12월 00일, 34세 때, 한동훈은 검찰총장 표창을 받았다.
2009己丑
  • 2009년 01월 00일, 35세 때, 한동훈은 법무부 상사법무과 검사로 발령받았다.
  • 2009년 08월 25일, 36세 때, 한동훈은 청와대 민정수석실 선임행정관으로 파견돼 근무했고, 옷을 잘 입고 스타일이 좋다는 평판이 주변에 돌았다.
2011辛卯
  • 2011년 05월 00일, 38세 때, 한동훈은 대통령실장 표창을 받았다.
  • 2011년 09월 00일, 38세 때, 한동훈은 법무부 검찰국 검찰과 검사로 부임해 2013년 4월까지 근무했다.
2012壬辰
  • 2012년 01월 00일, 38세 때, 한동훈은 론스타 주가조작 사건을 수사해 법원의 유죄 확정판결을 끌어냈다.

40대

2013癸巳
  • 2013년 04월 00일, 40세 때, 한동훈은 대검찰청 정책기획과장에 임명됐다.
2015乙未
  • 2015년 00월 00일, 42세 때, 한동훈은 금융·증권 사건을 담당하는 검사로 오래 근무했다.
  • 2015년 00월 00일, 42세 때, 한동훈은 평검사 시절부터 개발하고 쌓아 온 첨단수사기법을 검찰 내부 전체에 전파했다.
  • 2015년 00월 00일, 42세 때, 한동훈은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세조사부장으로서 대형 부패 수사에서 성과를 내 대검 중수부 폐지 이후 떨어진 검찰 수사력을 만회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 2015년 02월 00일, 41세 때, 한동훈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장을 원했지만 우병우 민정수석 체제에서 신설된 공정거래조세조사부 초대 부장으로 사실상 좌천돼 기업인 관련 수사를 지휘했다.
  • 2015년 02월 00일, 41세 때, 한동훈은 공정거래조세조사부 부장검사로 2016년 1월까지 근무하며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과 박성철 신원그룹 회장을 구속했다.
2016丙申
  • 2016년 00월 00일, 43세 때, 한동훈은 기업인들에게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비판을 무시할 수 있었지만 언론에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이유는 사회 발전의 원동력인 자유시장경쟁에는 공정한 룰이 누구에게나 적용된다는 믿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2016년 00월 00일, 43세 때, 한동훈은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파견돼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등 기업들이 최순실 측에 건넨 돈의 성격을 규명하는 수사를 맡았다.
  • 2016년 00월 00일, 43세 때, 한동훈은 박영수 특검팀에서 윤석열 수사팀장과 함께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구속기소했다.
  • 2016년 01월 06일, 42세 때, 한동훈은 기업 회계 자료와 자금 흐름 분석 능력을 인정받아 대검 부패범죄특별수사단 2팀장으로 임명돼 기업 비리 수사를 전담했다.
  • 2016년 03월 10일, 42세 때, 한동훈은 대검 부패범죄특별수사단 2팀장 자격으로 서울 중구 필동 매경미디어센터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했다.
2017丁酉
  • 2017년 00월 00일, 44세 때, 한동훈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자동차 부품업체 다스의 실소유주라는 사실을 밝혀내 이명박 전 대통령을 구속했다.
  • 2017년 00월 00일, 44세 때, 한동훈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해 전·현직 고위 법관들을 대거 재판에 넘겼다.
  • 2017년 02월 16일, 43세 때, 한동훈은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청구하며 수사를 밀어붙였지만, 항소심 법원이 특검 공소사실 상당 부분에 무죄를 선고하면서 실패를 겪었다.
  • 2017년 08월 10일, 44세 때, 한동훈은 전임자보다 7살 어리고 5기수 아래인 기수 파괴 인사로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에 발탁돼 윤석열 지검장을 보좌하며 반부패·특수수사를 총괄했다.
  • 2017년 10월 31일, 44세 때, 한동훈은 문재인 정부 사정 수사 가운데 최대 규모인 국정원 특수활동비 청와대 상납 사건 수사를 지휘했다.
2018戊戌
  • 2018년 00월 00일, 45세 때, 한동훈은 박근혜·최순실 정경유착 수사(경제공동체·묵시적 청탁 법리)와 삼성 이재용 불법 승계 수사로 재계 1·3위 총수를 동시에 구속했다.
  • 2018년 00월 00일, 45세 때, 한동훈은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1심 결심 공판에 참석해 논고를 발표했다.
  • 2018년 00월 00일, 45세 때, 한동훈은 주변 동료들에게 검찰 수사는 기름기를 빼고 봐도 정당성이 있어야 한다는 수사 철학을 거듭 밝혔다.
  • 2018년 02월 28일, 44세 때, 한동훈은 국정농단 사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징역형을 구형했다.
  • 2018년 08월 24일, 45세 때, 한동훈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항소심에서 일부 피고인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자 후속 조치를 취했다.
2019己亥
  • 2019년 00월 00일, 46세 때, 한동훈은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으로서 조국 법무부 장관 일가 수사를 지휘했다.
  • 2019년 00월 00일, 46세 때, 한동훈은 조국 수사를 덮고 출세길을 걸을 수 있었지만 직업윤리에 따라 수사를 택했다. 이유는 그 수사로 검사 경력이 끝날 것을 알았어도, 덮는 것은 개인과 검찰의 이익에만 맞는 너무 쉬운 계산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 2019년 07월 00일, 46세 때, 한동훈은 46세에 최연소 검사장이 된 차경환보다 8개월 앞서 검사장으로 승진하며 최연소 기록을 새로 썼다.
  • 2019년 10월 00일, 46세 때, 한동훈은 조국 전 장관 가족 비리 수사를 지휘하던 중 집권 여당 더불어민주당과 친문 세력으로부터 끊임없는 공격을 받았다.
2020庚子
  • 2020년 00월 00일, 47세 때, 한동훈은 블루스·록·재즈 등 음악에 식견을 갖고 자신을 방구석 기타리스트라고 소개했다.
  • 2020년 00월 00일, 47세 때, 한동훈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로부터 자신과 가족, 지지 팬카페 회원들까지 통신조회를 당했다.
  • 2020년 01월 08일, 46세 때, 한동훈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인사로 부산고등검찰청 차장검사로 좌천된 것을 시작으로 법무연수원 용인분원과 진천 본원 연구위원까지 세 차례 연쇄 좌천을 겪었다.
  • 2020년 02월 00일, 46세 때, 한동훈은 이동재 채널A 기자와의 통화에서 추미애 장관을 향해 "일개 장관이 헌법상 국민의 알 권리를 포샵질을 하고 앉아 있어"라며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 2020년 06월 01일, 47세 때, 한동훈은 채널A 검언유착 의혹 사건으로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다시 좌천됐다.
2021辛丑
  • 2021년 06월 01일, 48세 때, 한동훈은 법무부 검찰 인사로 사법연수원 부원장으로 또다시 좌천됐다.
  • 2021년 09월 00일, 48세 때, 한동훈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자신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고발사주 모의 의혹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자 추 전 장관을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고발하고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2022壬寅
  • 2022년 9월 19일 49세 때,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미국 국민 방문을 떠났을 때 이준석 대표에 대한 징계 철차가 시작됐다.
  • 2022년 49세 때, 여름부터 용산 대통령실에선 이미 김건희 여사가 V0로 불리기 시작했다.
  • 2022년 49세 때, 하반기부터 용산 대통령실은 용산팀이라고 불렸고 한동훈 법무부는 과천팀이라고 불렸다.
  • 2022년 49세 때, 하반기부터 윤석열 대통령의 영부인 김건희 여사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여러 차례 문자를 보냈지만 한동훈은 김건희의 문자를 읽고도 답하지 않았다.
  • 2022년 49세 때, 하반기부터 용산 대통령실과 검찰 안에선 용산팀과 과천팀이라는 표현이 일반화됐고 용산팀 안에서도 김건희 라인은 한남동팀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50대

2023癸卯
  • 2023년 3월 8일 49세 때, 전당대회에선 친윤계 김기현 대표가 당선됐다.
  • 2023년 12월 26일, 50세 때, 한동훈은 2024년 4월 11일까지 107일 동안 국민의힘을 이끌면서 수도권 중심 원외 당협위원장들의 지지를 얻었다.
  • 2023년 1월 17일 49세 때,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아랍에미레이트를 방문했을 때 3.23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를 노리던 나경원 의원의 불출마를 요구하는 연판장이 돌았다.
  • 2023년 12월 19일, 50세 때, 한동훈은 법무부 장관 신분으로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 참석해서 "김건희 여사 특검법은 총선용 악법"이라면서도 “법 앞에 예외는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 2023년 12월 23일 50세 때,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네덜란드 국민 방문 중일 때 김기현 당대표가 사퇴했다.
2024甲辰
  • 2024년 04월 11일, 51세 때, 한동훈은 총선 참패의 책임을 지겠다며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서 물러났다.
  • 2024년 06월 19일, 51세 때, 한동훈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전화해서 출마 결심을 전했지만 통화 시간은 10초에 불과했다.
  • 2024년 06월 23일, 51세 때, 한동훈은 전 법무부장관 신분으로 국민의힘 당대표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 2024년 06월 23일, 51세 때, 한동훈은 오후 2시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2024년 7월 23일 열리는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당대표에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 2024년 06월 23일, 51세 때, 한동훈은 오후 2시 출마 선언 직후 기자회견을 가졌다.
2025乙巳
  • 2025년 2월 20일 51세 때, 목요일=한동훈 전 대표는 대선 출마 메시지를 담은 한동훈의 선택-국민이 먼저입니다를 2025년 2월 25일 화요일에 출간한다고 발표했다.
  • 2025년 02월 28일, 51세 때, 한동훈은 책 한동훈의 선택-국민이 먼저입니다를 출간할 예정이었다.
  • 2025년 02월 25일, 51세 때, 한동훈은 한국 갤럽이 2월 27일까지 실시한 차기 대선 지지율 조사에서 4%를 기록했다.
  • 2025년 02월 27일, 51세 때, 한동훈은 서울 마포의 호텔 카페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했다.
  • 2025년 04월 10일, 52세 때, 한동훈은 오후 2시 국회 본관 분수대 앞에서 21대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2026丙午
  • 2026년 01월 14일, 52세 때, 한동훈은 국회 기자회견을 열어 윤리위 결정을 '끼워 맞춘 요식행위'로 규정하고 법적 대응을 예고하며 재심 청구를 포기했다.
  • 2026년 01월 20일, 52세 때, 한동훈은 이호선 당무감사위원회로부터 당원게시판 사건 축소 및 왜곡 혐의로 조사를 받으며 당내 징계 위기에 처했다.
  • 2026년 01월 29일, 52세 때, 한동훈은 장동혁 대표가 복귀한 최고위원회의에서 제명안이 거수 표결로 가결됨에 따라 입당 25개월 만에 당적을 박탈당했다.
  • 2026년 01월 29일, 52세 때, 한동훈은 제명 확정 직후 국회에서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짧은 입장문을 발표하며 보수의 주인으로서의 역할을 계속할 것을 다짐했다.
  • 2026년 01월 29일, 52세 때, 한동훈은 국민의힘 최고위원회로부터 당적 박탈에 해당하는 '제명' 처분을 최종 의결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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