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승원
프로필로 돌아가기 →사수자리토끼띠乙 을목목(木)
전통 명리·점성술의 일반 설명
을목(乙木) · 풀·덩굴·화초바람에 눕되 꺾이지 않는 풀과 덩굴에 비유된다.
사수자리 · 11.22~12.21모험심과 낙관적인 태도, 먼 곳과 큰 뜻을 향한 갈망이 흔히 언급되는 특징이다.
토끼띠온화함과 예민한 감각, 갈등을 피하는 처세가 흔히 언급되는 특징이다.
목(木) · 나무·성장뻗어 나가는 힘, 시작과 성장, 인(仁)의 기운으로 설명된다.
아래 설명은 전통 명리학·점성술에서 각 기호에 흔히 붙는 일반적 설명입니다. 개인의 성격이나 미래를 판정하는 근거가 아니며, 라이프러리는 이를 사실 데이터와 분리해 "해석"으로만 다룹니다.
己卯
연주
乙亥
월주
乙丑
일주
—
시주 (미계산)
대운(大運) · 역행
甲戌
7세~
癸酉
17세~
壬申
27세~
辛未
37세~
庚午
47세~
己巳
57세~
戊辰
67세~
丁卯
77세~
丙寅
87세~
대운(大運)은 명리학에서 10년 단위로 바뀌는 흐름을 가리키는 개념입니다. 라이프러리는 이를 예측이 아니라 "그 10년을 전통 명리학이 어떤 시기로 설명하는가"와 "실제 라이프 카운트에 무엇이 기록돼 있는가"를 나란히 놓는 용도로만 씁니다.
출생시각 미확인 — 시주(時柱)는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삼주 기준입니다.
10대
1939己卯
- 1939년 10월 13일, 0세 때, 한승원은 전라남도 장흥군 회진면 신덕리에서 아버지 한용진과 어머니 박귀심 사이의 10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1954甲午
- 1954년, 15세 때, 한승원은 장흥중학교를 졸업하고 장흥고등학교에 입학했다.
1955乙未
- 1955년, 16세 때, 한승원은 송기숙과 함께 교내 잡지 『억불』을 창간하며 문학 수업을 시작했다.
1956丙申
- 1956년, 17세 때, 한승원은 장흥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57丁酉
- 1957년, 18세 때, 한승원은 아버지 대신 농사와 김 양식을 지으며 밤에는 소설 습작을 했고 영산포에서 오유권을 만났다.
1958戊戌
- 1958년, 19세 때, 한승원은 독학으로 중학교 준교사 시험에 실패했다.
- 1958년, 19세 때, 한승원은 당근과 닭 사업에 실패하는 등 절망을 경험했다.
20대
1961辛丑
- 1961년, 22세 때, 한승원은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
1962壬寅
- 1962년, 23세 때, 한승원은 서라벌예술대학을 중퇴했다.
- 1962년, 23세 때, 한승원은 단편 「패각을 탈출한 집게」를 발표했다.
- 1962년, 23세 때, 한승원은 대학 중퇴 후 고향으로 귀향했다.
1963癸卯
- 1963년 1월 15일, 24세 때, 한승원은 입대하여 대구 부관학교를 거쳐 양평 사단에 배속되었다.
1966丙午
- 1966년, 27세 때, 한승원은 장흥군 장동서초등학교 교사에 부임했다.
- 1966년, 27세 때, 한승원은 신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가증스런 바다」가 입선하여 등단했다.
1968戊申
- 1968년, 29세 때, 한승원은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목선」이 당선되어 본격 데뷔했다.
- 1968년, 29세 때, 한승원은 광양중학교 교사로 부임했다.
30대
1969己酉
- 1969년, 30세 때, 한승원은 춘태여자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했다.
1970庚戌
- 1970년, 31세 때, 한승원은 광주동신중학교 교사로 근무했다.
1972壬子
- 1972년, 33세 때, 한승원은 문순태 등과 함께 "소설문학" 동인회를 조직했다.
40대
1979己未
- 1979년, 40세 때, 한승원은 단편 「땅가시와 보리알」을 발표했다.
- 1979년, 40세 때, 한승원은 소설집 『여름에 만난 사람』과 『안개바다』를 출간했다.
- 1979년, 40세 때, 한승원은 장편 『해일』(후에 『그 바다 끓며 넘치며』)을 연재했다.
- 1979년, 40세 때, 한승원은 교직을 사직하고 전업 작가가 되었다.
1980庚申
- 1980년, 41세 때, 한승원은 「구름의 벽」으로 한국소설문학상을 수상했다.
50대
1989己巳
- 1989년, 50세 때, 한승원의 작품 「아제 아제 바라아제」가 강수연 주연으로 영화화되었다.
1996丙子
- 1996년경, 57세 때, 한승원은 서울 생활을 시작한 지 약 20년이 되어 장흥 귀향을 준비했다.
1997丁丑
- 1997년경, 58세 때, 한승원은 서울 생활 20년 만에 고향인 장흥으로 귀향하여 토굴 생활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