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2020년 1월 폐렴으로 서울대학교병원에 입원해 투병하다 2021년 2월 15일 별세(향년 89세). 사회장으로 장례를 치르고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 전태일 열사 옆에 안장됐다.
국적 대한민국
출생지황해도 은율군
직업통일운동가·사회운동가·작가
주요 경력황해도 은율에서 태어나 해방 뒤 월남했고, 초등학교 졸업 후 독학했다. 1950년대 빈민·농민운동을 시작으로 4·19 혁명, 한일회담 반대운동에 참여했고 1967년 백범사상연구소를 세웠다. 유신 반대 개헌청원 100만인 서명운동으로 긴급조치 1호 첫 위반자가 됐고, YMCA 위장결혼식 사건·권인숙 성고문 폭로대회 등으로 여러 차례 투옥되고 고문을 당했다. 1987년과 1992년 민중후보로 대선에 나섰으며, 통일문제연구소를 운영하며 노동·인권 현장을 지켰다.
업적시 묏비나리(임을 위한 행진곡 원작 시), 장산곶매 이야기(1993), 벼랑을 거머쥔 솔뿌리여(1999), 백기완의 통일이야기(2003), 부심이의 엄마생각(2005),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2009), 버선발 이야기(2019)
대표 업적묏비나리
소개백기완은 해방 뒤 월남해 평생 통일운동과 민주화운동에 몸담은 재야 운동가다. 백범사상연구소와 통일문제연구소를 세우고 유신 반대 서명운동을 이끌다 긴급조치 1호 첫 위반자로 옥고를 치렀으며, 1979년 YMCA 위장결혼식 사건 등으로 고문을 당했다. 옥중에서 쓴 장편시 묏비나리는 '임을 위한 행진곡'의 원작 시가 됐다. 1987년과 1992년 민중후보로 대선에 나섰고, 말년까지 노동·인권 현장을 지키다 2021년 2월 15일 별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