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경력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나 일본신학교·봉천신학교를 거쳐 1947년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았다. 미국 프린스턴신학교에서 구약학을 공부한 뒤 한빛교회에서 목회하고 한국신학대학·연세대학교에서 구약을 강의했으며, 1968년부터 8년간 신구교 공동번역 성서 책임위원을 지냈다. 1976년 3·1민주구국선언을 주도한 뒤 민주화·통일운동에 투신해 여섯 차례 옥고를 치렀고,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의장·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상임고문을 지냈다. 1989년 정부 허가 없이 방북해 김일성 주석과 회담하고 공동성명을 발표했다가 귀국 직후 구속됐다.
핵심 역할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의장(1985),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상임고문(1989), 공동번역 성서 책임위원(1968~), 한빛교회 목사
소속한빛교회, 한국신학대학, 연세대학교,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업적시집 『새삼스런 하루』(1973), 『꿈을 비는 마음』(1978), 『난 뒤로 물러설 자리가 없어요』(1984), 『두 하늘 한 하늘』(1989), 『옥중일기』(1991); 산문 『히브리 민중사』(1990), 『가슴으로 만난 평양』(1990)
대표 업적3·1민주구국선언(1976), 문익환·조평통 4·2 공동성명(1989)
대표 저서새삼스런 하루
수상4월혁명상(1992), 국민훈장 모란장(2002)
소개문익환은 1918년 북간도 명동촌에서 목사 문재린과 김신묵의 맏아들로 태어나 윤동주·송몽규와 함께 자랐다. 목사이자 구약학자로 신구교 공동번역 성서 작업을 이끌었고, 1970년대 시인으로 등단했다. 1976년 3·1민주구국선언을 시작으로 민주화·통일운동의 전면에 서서 여러 차례 투옥됐으며, 1989년 방북해 김일성 주석과 회담한 일로 다시 수감됐다. 1994년 1월 18일 별세했고 배우 문성근이 그의 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