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1950년 7월 6일 서울 자택에서 납북된 뒤 생사 미확인. 1950년 9월 28일 개성 송악산 부근에서 미군 공습으로 숨졌다는 증언이 있으나 확정되지 않음. 1955년 7월 7일 실종 처리.
국적 대한민국
출생지평안북도 정주군
직업언론 경영인
주요 경력서당에서 한학을 익힌 뒤 교사·대서업·여관업을 거쳐 1922년 동아일보 정주지국장을 지냈다. 1924년 삭주 교동광업소를 인수해 금광으로 큰돈을 벌었고, 1932년 광산을 매각한 뒤 조선일보 영업국장으로 들어가 1933년 경영권을 인수하고 제9대 사장에 올랐다. 1935년 잡지 『조광』을 창간했으며, 1940년 조선일보 폐간 후 회사를 동방흥업주식회사로 바꿔 운영했다. 광복 뒤인 1945년 11월 조선일보를 복간했고,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낙선한 직후 한국전쟁 중 납북됐다.
핵심 역할조선일보 제9대 사장(1933~1950), 잡지 조광 발행인(1940~), 동방흥업주식회사 사장(1941~), 동아일보 정주지국장(1922~1927)
소속조선일보, 조광사, 동방흥업주식회사, 동아일보 정주지국, 교동광업소, 건국준비위원회, 한국독립당, 독립촉성국민회
소속 정당한국독립당
업적잡지 『조광』 창간(1935)
대표 업적월간 잡지 『조광』
소개평안북도 정주 출신으로 서당 교육만 받고 교사·대서업·여관업을 거쳐 동아일보 정주지국장을 지냈다. 삭주 교동광산 금광 개발로 모은 자금으로 1933년 조선일보를 인수해 제9대 사장이 됐고, 잡지 『조광』을 창간했다.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했고, 이후 행정소송에서 『조광』 발행·논설 투고·전시 협력단체 간부 활동 부분이 2017년 확정됐다. 1950년 한국전쟁 중 납북된 뒤 생사가 확인되지 않았다. 조선일보 방씨 일가의 출발점으로, 손자 방일영·방우영과 증손 방상훈이 신문사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