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1948년 12월 23일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의 사형 판결에 따라 도쿄 스가모 형무소에서 교수형으로 사망(향년 63세).
국적 일본
출생지일본 도쿄도
직업군인(육군 대장), 정치인
주요 경력육군사관학교(17기)와 육군대학교(27기)를 거쳐 스위스·독일 주재 무관, 보병 제1연대장, 관동헌병대 사령관, 관동군 참모장, 육군차관, 육군항공총감을 지냈다. 1940년 제2차 고노에 내각 육군대신에 오른 뒤 1941년 10월 18일 현역 군인 신분으로 제40대 내각총리대신이 돼 태평양 전쟁을 개전했고, 내무·외무·문부·상공·군수대신과 육군 참모총장을 겸임했다. 1944년 7월 사이판 함락 후 퇴진했으며, 패전 뒤 자살 미수를 거쳐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A급 전범으로 사형 판결을 받고 1948년 처형됐다.
핵심 역할제40대 일본 내각총리대신(1941~1944), 육군대신(1940~1944), 육군 참모총장(1944), 관동군 참모장(1937~1938)
소속일본 제국 육군, 관동군, 대정익찬회
소속 정당대정익찬회
업적전진훈(戦陣訓, 1941년 육군대신 명의 하달), 대동아회의 개최(1943)
대표 업적전진훈(戦陣訓)
수상욱일대수장, 금치훈장 공2급, 서보장
소개도조 히데키는 1884년 도쿄에서 육군 중장 도조 히데노리의 아들로 태어난 일본 제국의 군인이자 정치인이다. 육군 통제파의 중심 인물로 관동군 참모장과 육군대신을 거쳐 1941년 10월 총리에 올랐고, 같은 해 12월 진주만 공격과 함께 태평양 전쟁을 개전했다. 총리 재임 중 여러 각료직과 육군 참모총장을 겸하며 권력을 집중했으나 1944년 7월 사이판 함락 뒤 물러났다. 패전 후 권총 자살을 시도했다가 살아남았고,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A급 전범으로 사형을 선고받아 1948년 12월 23일 스가모 형무소에서 처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