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1995년 3월 7일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유언에 따라 부고와 장례 없이 시신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 해부 실습용으로 기증했고, 정부는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국적대한민국
출생지평안북도 벽동군
직업안과의사, 발명가
주요 경력평양의학강습소에서 공부하던 1926년 조선총독부 의사검정시험에 합격해 의사 면허를 얻었다. 신의주도립의원, 경성의학전문학교 안과학교실 조수, 도립해주의원 안과 주임을 거쳐 1936년 나고야제국대학에서 한국인 최초의 임상 안과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1937년 서울 재동에 한국인 최초의 안과 전문 병원 공안과를 열었다. 1949년 세벌식 한글 타자기를 발명해 한글 타자기 최초로 특허를 등록했고 1953년 미국 특허도 얻었다. 한영 겸용 타자기, 한글 점자 타자기를 잇달아 개발했고 한글학회 이사로 한글 운동을 후원했다. 1980년 미국으로 건너가 컴퓨터용 한글 연구에 몰두하다 1988년 귀국해 한글문화원을 세우고 세벌식 자판 보급과 젊은 프로그래머 지원에 힘썼다.
핵심 역할공안과 원장(1937~), 한글학회 이사(1959~), 한글기계화연구소 소장, 한글문화원 원장(1988~1995)
업적공병우 세벌식 한글 타자기(1949), 기계식 한영 겸용 타자기(1968), 기계식 한글 점자 타자기(1971), 세벌식 한글 워드프로세서(1980), 『신소안과학』(1939), 『소안과학』(1943), 『공병우 사진집』(1978·1980)
대표 업적공병우 세벌식 한글 타자기
대표 저서『나는 내 식대로 살아왔다』(1989)
수상국회의장상(1949), 대통령 표창(1958·1962), 문화공보부 장관상(1968), 외솔문화상(1974), 국민훈장 석류장(1981), 제1회 서재필상(1987), 은관문화훈장(1990), 금관문화훈장 추서(1995)
소개공병우는 평안북도 벽동에서 태어나 정규 의대를 거치지 않고 의사검정시험으로 면허를 딴 뒤, 독학과 연구로 한국인 최초의 안과 전공 의학박사가 됐다. 1937년 한국인 최초의 안과 전문 병원 공안과를 열어 안과의 대명사로 키웠다. 한글 원고 작성의 비효율을 해결하려 1949년 세벌식 한글 타자기를 발명했고, 이 타자기는 6·25 전쟁 중 군 문서와 휴전회담 회의록 작성에 쓰였다. 타자기 표준에서 밀린 뒤에도 세벌식을 지키는 운동과 맹인 재활 지원을 이어 갔고, 말년에는 한글문화원을 세워 한글과컴퓨터 창업자들을 도왔다. 1995년 시신 기증을 유언으로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