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이름 Pak Chungyang

한자이름 朴重陽

한글이름 박중양

"대한제국·일제강점기 친일 관료"

라이프 리스트 1
  • 출생1874-05-03
  • 사망1959-04-23
  • 사망1959년 4월 23일 대구 침산동에서 사망
  • 국적대한민국
  • 출생지경기도 양주시
  • 직업관료
  • 주요 경력1896년 관비 유학생으로 일본에 건너가 아오야마학원 중학부와 도쿄부기학교를 마쳤다. 러일전쟁 때 일본군 고등통역관으로 종군한 뒤 농상공부 주사, 대구군수 겸 경상북도 관찰사 서리를 지내며 1906년 정부 허가 없이 대구읍성을 철거했다. 평안남도·경상북도 관찰사를 거쳐 국권 피탈 뒤 충청남도 도장관, 황해도지사, 충청북도지사를 지냈고, 1919년 3·1운동 진압을 위한 대구 자제단을 조직했다. 중추원 참의·고문을 거쳐 1943년 중추원 부의장, 1945년 일본 귀족원 칙선의원에 올랐다. 1949년 반민특위에 체포됐으나 보석으로 풀려났고 처벌받지 않았다.
  • 핵심 역할대구군수 겸 경상북도 관찰사 서리(1906), 충청남도 도장관(1910~1915), 충청북도지사(1923~1925), 조선총독부 중추원 부의장(1943~1945), 일본 제국의회 귀족원 칙선의원(1945)
  • 소속조선총독부 중추원, 자제단, 조선임전보국단, 국민정신총력연맹, 일본 제국의회 귀족원, 독립협회
  • 업적회고록 『술회』, 『박중양 일기』
  • 대표 업적대구읍성 철거(1906)
  • 대표 저서술회
  • 수상일본 정부 서보장 훈6등(1906)·훈5등(1908)·훈3등(1919)·훈4등(1923)·훈2등(1931), 훈1등(1943), 한국병합기념장(1912), 다이쇼대례기념장(1915), 쇼와대례기념장(1928), 조선총독부 시정 25주년 기념표창(1935)
  • 소개박중양은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나 관비 유학생으로 일본에서 공부한 대한제국·일제강점기 관료다. 통감 이토 히로부미의 후원으로 대구군수 겸 경상북도 관찰사 서리가 되어 1906년 대구읍성을 허물었고, 이후 여러 도의 관찰사와 도지사를 지냈다. 1919년 3·1운동 때 대구에서 자제단을 조직했고, 1943년 조선인 최고위직인 중추원 부의장, 1945년 일본 귀족원 칙선의원에 올랐다. 해방 후 반민특위에 체포됐으나 풀려났으며,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에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됐다.
  • 별자리황소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