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경력조슈번 농민 가문 출신으로 요시다 쇼인의 쇼카손주쿠에서 배운 뒤 1863년 조슈 파이브의 일원으로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에서 수학했다. 메이지 신정부에 출사해 초대 효고현 지사, 이와쿠라 사절단 부사, 공부경, 내무경을 지냈고, 1882~1883년 유럽 헌법 조사 후 1885년 내각제 창설과 함께 초대 내각총리대신에 올라 네 차례 총리를 역임했다. 대일본제국 헌법 기초를 주도했고 초대 추밀원 의장·초대 귀족원 의장을 지냈으며, 1900년 입헌정우회를 창당했다. 청일전쟁을 치르고 시모노세키 조약에 서명했으며, 1905년 을사조약 체결을 강요한 뒤 초대 한국통감으로 1907년 고종 퇴위와 한일신협약을 주도했다. 1909년 통감에서 물러나 추밀원 의장으로 복귀한 뒤 하얼빈역에서 안중근에게 저격당해 사망했다.
핵심 역할초대 내각총리대신(1885~1888, 이후 1892~1896·1898·1900~1901 재임) / 초대 추밀원 의장(1888~1889, 이후 3차례 재임) / 초대 귀족원 의장(1890~1891) / 초대 한국통감(1905~1909)
소속메이지 정부(공부성·내무성), 추밀원, 귀족원, 입헌정우회, 한국통감부
소속 정당입헌정우회(1900년 창당·초대 총재, 1903년 총재 사임)
업적『헌법의해(憲法義解)』(1889), 「국시강목」(1869), 「교육의」(1879), 대일본제국 헌법 기초 주도(1889)
대표 업적대일본제국 헌법(1889) 제정 주도
대표 저서『헌법의해(憲法義解)』(1889)
수상작위: 백작(1884)·후작(1895)·공작(1907) / 욱일대수장(1877), 욱일동화대수장(1889), 대훈위 국화대수장(1895), 대훈위 국화장경식(1906), 종1위 추서(1909) / 미국 예일대학교 명예 법학박사
소개이토 히로부미는 1841년 스오국 쓰카리촌의 농민 가문에서 태어나, 아버지가 하급 무사 이토 가의 양자가 되면서 이토 성을 쓰게 됐다. 요시다 쇼인 문하에서 존왕양이 운동에 뛰어들었고, 1863년 영국 유학을 다녀온 뒤 메이지 신정부의 핵심 관료로 성장했다. 1885년 일본 초대 내각총리대신이 되어 모두 네 차례 총리를 지냈고, 대일본제국 헌법 제정과 입헌정우회 창당을 이끌었다. 1905년 을사조약을 강요하고 초대 한국통감으로 대한제국의 국권 침탈을 주도했으며,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안중근에게 저격당해 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