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2022년 8월 5일 도쿄의 병원에서 간세포암으로 별세(향년 84세). 장례는 이미 치렀으며 고인의 뜻에 따라 고별식·추모회는 열지 않았다.
국적일본
출생지일본 히로시마현 히로시마시
직업패션 디자이너
주요 경력다마미술대학에서 도안(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하던 1963년 도쿄에서 첫 컬렉션 '천과 돌의 시'를 발표했다. 1965년 파리로 건너가 파리 오트쿠튀르 조합 학교에서 배우고 기 라로슈·지방시에서 어시스턴트로 일했으며, 1969년 뉴욕에서 제프리 빈 아래 기성복 경험을 쌓았다. 1970년 도쿄에 미야케 디자인 사무소를 세우고 1971년 뉴욕에서 첫 해외 컬렉션, 1973년 파리 컬렉션에 데뷔했다. 1980년대 말부터 제품 상태에서 주름을 넣는 기법을 연구해 1993년 플리츠 플리즈를 내놓았고, 1998년 후지와라 다이와 한 장의 천으로 옷을 만드는 A-POC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1990년대 후반 브랜드 디자인을 후진에게 넘긴 뒤에도 회사의 방향을 이끌었고, 2004년 미야케 잇세이 재단을 세우고 2007년 도쿄 미드타운에 디자인 전시 공간 21_21 DESIGN SIGHT를 열어 디렉터를 맡았다.
핵심 역할미야케 디자인 사무소 설립자(1970~2022), 이세이 미야케 브랜드 디자이너(1971~1999), 미야케 잇세이 재단 설립자(2004~), 21_21 DESIGN SIGHT 디렉터(2007~)
업적PLEATS PLEASE ISSEY MIYAKE(1993), A-POC(1998), BAO BAO ISSEY MIYAKE, 132 5. ISSEY MIYAKE(2010), HOMME PLISSÉ ISSEY MIYAKE(2013), IN-EI ISSEY MIYAKE, L'eau d'Issey(향수), 바르셀로나 올림픽 리투아니아 대표팀 유니폼(1992)
소개이세이 미야케는 1938년 히로시마에서 태어나 일곱 살 때 원자폭탄 투하를 겪었고, 어머니는 그 뒤 방사선 피폭 영향으로 세상을 떠났다. 다마미술대학을 거쳐 파리와 뉴욕에서 오트쿠튀르와 기성복을 익힌 뒤 1970년 도쿄에 미야케 디자인 사무소를 세웠다. '한 장의 천'이라는 발상으로 옷과 몸의 관계를 탐구했고, 세탁기로 빨 수 있는 영구 주름 의류 플리츠 플리즈와 천을 잘라 옷을 완성하는 A-POC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2009년 뉴욕타임스 기고로 피폭 경험을 처음 공개하며 핵무기 폐기를 호소했다. 2022년 8월 5일 도쿄에서 간세포암으로 별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