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2016년 8월 25일 파리 자택에서 파킨슨병 합병증으로 별세(향년 86세). 9월 1일 파리 몽파르나스 묘지에서 장례가 치러졌고 같은 묘지에 안장됨.
국적프랑스
직업패션 디자이너, 작가
주요 경력파리 직물 상점 그랑드 메종 드 블랑의 진열 담당으로 일하다 1953년 부티크 운영자 샘 리키엘과 결혼했다. 임신 중 직접 디자인한 몸에 붙는 니트 '푸어 보이 스웨터'로 주목받았고, 1963년 12월 프랑스 엘르 표지에 그의 스웨터가 실렸다. 1965년 회사를 세우고 1968년 5월 파리 생제르맹데프레에 첫 부티크를 열었다. 우먼스 웨어 데일리가 '니트의 여왕'으로 명명했으며, 이후 향수·아동복·남성복·액세서리로 사업을 넓혔다. 파리 의상조합(Chambre syndicale) 부회장을 지냈고, 1995년 딸 나탈리에게 아트 디렉션을, 2007년 회장직을 넘겼다. 여러 권의 책을 쓴 작가이기도 하며 2012년 저서에서 오랜 파킨슨병 투병 사실을 처음 공개했다.
핵심 역할소니아 리키엘 하우스 창립자·디자이너(1965/1968~2009), 프랑스 쿠튀르 의상조합 부회장(1973~), 작가
소속Sonia Rykiel(소니아 리키엘 하우스), Chambre syndicale de la couture parisienne
업적푸어 보이 스웨터(Poor Boy Sweater), 향수 7e sens(1978), Sonia Rykiel Enfant(1983), Inscription Rykiel/Sonia by Sonia Rykiel(1989), Sonia Rykiel pour H&M(2009), 저서 Et je la voudrais nue(1979)·Célébration 20 ans de mode(1988)·La collection(1989)·Les lèvres rouges(1996)·L'envers à l'endroit(2005)·Casanova était une femme(2005)·N'oubliez pas que je joue(2012)
대표 업적푸어 보이 스웨터(Poor Boy Sweater)
대표 저서N'oubliez pas que je joue(2012, 주디스 페리뇽 공저)
수상Fashion Group International 오스카(1986), 예술문화훈장 오피시에(1993)·코망되르(2012), 레지옹 도뇌르 오피시에(1996)·코망되르(2008), 트로페 월풀 데 팜 금상(1997), 국가공로훈장 코망되르(2001)·그랑 오피시에(2013), 파리시 그랑드 메다유 드 베르메유(2012), 시카고 역사협회 의상위원회 디자인 우수상(1994)
소개소니아 리키엘은 1930년 루마니아계 유대인 시계공 아버지와 러시아계 유대인 혈통의 어머니 사이에서 다섯 딸 중 맏이로 태어났다. 임신 중 직접 만든 몸에 붙는 니트 스웨터로 이름을 알렸고, 1968년 5월 파리 좌안에 첫 부티크를 열어 자신의 이름을 건 하우스를 키웠다. 우먼스 웨어 데일리는 그를 '니트의 여왕'이라 불렀으며, 1994년 로버트 올트먼의 영화 '프레타포르테'에 본인으로 출연했다. 소설과 에세이를 낸 작가였고, 2012년 저서에서 파킨슨병 투병을 공개했다. 2016년 8월 25일 파리 자택에서 86세로 별세했고, 2018년 파리시는 그의 이름을 딴 '알레 소니아 리키엘'을 지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