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1985년 12월 3일 서울대학교병원에서 간암으로 별세(향년 55세). 성공회 묘지에 안장됐다가 2012년 국립서울현충원으로 이장
국적대한민국
직업군인, 정치인, 체육행정가
주요 경력일본 교토에서 태어나 1945년 9월 귀국한 뒤 1947년 국방경비대에 입대했고, 육군종합행정학교를 거쳐 소위로 임관했다. 1961년 5·16 군사정변에 핵심 요원으로 가담한 뒤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경호대장을 맡았고, 육군 대령으로 예편했다. 1964년 5월부터 1974년 8월까지 10년 3개월간 대통령경호실장을 지냈으나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1970년부터 대한사격연맹 회장을 맡아 1978년 세계사격선수권대회를 서울에 유치했고, 같은 해 제10대 국회의원(민주공화당, 마산·진해·창원)에 당선됐다. 1979~1980년 대한체육회장을 지냈으나 1980년 신군부에 의해 권력형 부정축재자로 지목돼 의원직을 내려놓고 정계를 떠났다. 1984년 IOC 위원에 선출돼 서울올림픽대회조직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다.
핵심 역할제2대 대통령경호실장(1964~1974) · 제10대 국회의원(1978~1980) · 제25대 대한체육회장(1979~1980) · IOC 위원(1984~1985) · 대한사격연맹 회장(1970~1985)
소속대통령경호실, 민주공화당, 대한사격연맹, 대한체육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학교법인 삼양학원(경남대학교)
소개박종규는 1930년 일본 교토의 재일 조선인 가정에서 태어나 광복 후 귀국해 국방경비대로 군 생활을 시작했다. 통위부 시절부터 박정희의 부하 장교였고 5·16 군사정변에 가담한 뒤 경호 책임자로 발탁돼 1964년부터 1974년까지 역대 최장수 대통령경호실장을 지냈다. '피스톨 박'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1974년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 뒤 물러났다. 이후 사격연맹 회장, 제10대 국회의원, 대한체육회장, IOC 위원을 지내며 체육행정에 힘썼으나 1980년 신군부에 의해 부정축재자로 지목돼 정계를 떠났고, 1985년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경남대학교는 그가 1971년 마산대학을 인수해 출범시켰고, 1980년부터 동생 박재규가 이어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