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시민
프로필로 돌아가기 →사자자리돼지띠辛 신금금(金)
전통 명리·점성술의 일반 설명
신금(辛金) · 보석·바늘·다듬어진 금속세공을 마친 보석과 날카로운 바늘에 비유된다.
사자자리 · 7.23~8.22자신감과 존재감, 무대의 중심에 서려는 기질이 흔히 언급되는 특징이다.
돼지띠너그러움과 복덕, 솔직하고 낙천적인 태도가 흔히 언급되는 특징이다.
금(金) · 쇠·결실가르고 마무리하는 힘, 결단과 원칙, 의(義)의 기운으로 설명된다.
아래 설명은 전통 명리학·점성술에서 각 기호에 흔히 붙는 일반적 설명입니다. 개인의 성격이나 미래를 판정하는 근거가 아니며, 라이프러리는 이를 사실 데이터와 분리해 "해석"으로만 다룹니다.
己亥
연주
辛未
월주
辛亥
일주
—
시주 (미계산)
출생시각 미확인 — 시주(時柱)는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삼주 기준입니다.
대운은 성별 정보가 확인되지 않아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10대
1959己亥
- 1959년 07월 28일, 00세 때, 유시민은 경상북도 월성군 내남면 망성리에서 태어났다.
- 1959년 07월 28일, 0세 때, 유시민은 역사교사 유태우의 2남 4녀 중 차남으로 경상북도 월성군 내남면 망성리에서 태어났다.
1966丙午
- 1966년, 7세 때, 유시민은 학교에서 탈지분유와 옥수수죽을 받아 먹는 친구들을 보며 가난의 차이에 대해 고민했다.
1975乙卯
- 1975년, 15세 때, 유시민은 자신을 뺑뺑이 2기라고 표현했다.
1977丁巳
- 1977년, 18세 때, 유시민은 수학에 재능이 없었기 때문에 당시 본고사 대비를 위해 수학책 세 권을 통째로 암기했다.
- 1977년, 18세 때, 유시민은 영어영문학과에 진학해 철학자가 되라는 아버지의 조언을 들었지만 이를 거절하고 서울대학교 사회계열 법학과에 진학하기로 결정했다. 이유는 정보 부족으로 인해 자신은 환경상 학문을 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여 사법시험을 봐야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1978戊午
- 1978년, 18세 때, 유시민은 법학 공부나 사법시험 공부를 진정으로 원하지 않았으며, 하고 싶은 것이 없어 안달복달하지도 않은 촌놈이었다고 말했다.
- 1978년 03월, 18세 때, 유시민은 농촌법학회 서클 신입생 환영회에서 "역사는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변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여 마르크스주의 주류 사상을 부정했다.
- 1978년 03월 01일, 18세 때, 유시민은 서울대학교 사회계열에 입학했다.
20대
1979己未
- 1979년, 20세 때, 유시민은 심재철의 이끌림으로 공업단지 노동자 대상 야학에 활발히 참여했다.
- 1979년 03월, 19세 때, 유시민은 유신헌법을 공부하고 박정희 정권 밑에서 판검사로 일하는 것은 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전공 진입 시 법학과가 아닌 경제학과를 선택했다.
- 1979년 03월, 19세 때, 유시민은 사회학과나 신문학과에 진학할 수 있었지만 경제학과를 선택했다. 이유는 시위를 하다 잡혀가 학교를 졸업하지 못할 운명이라 생각하여 학과 선택이 큰 의미가 없었으며, 경제학과를 선택하는 것이 집에 설명하기 더 쉬웠기 때문이다.
1980庚申
- 1980년 00월 00일, 20세 때, 유시민은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대의원회 의장이 되었다.
- 1980년 00월 00일, 20세 때, 유시민은 군이 출동한다는 첩보를 받고 학교를 지키던 학생 300~400명을 귀가시켰으나 이것이 허위 정보로 밝혀져 다음 날 일일이 교실을 찾아다니며 학생들에게 사과했다.
- 1980년 05월 17일, 20세 때, 유시민은 학교에 군대가 들이닥친다는 소문을 듣고 학생회관에 남았다가 신군부에 체포되어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에서 두 달 동안 조사와 고문을 받았다.
- 1980년 00월 00일, 21세 때, 유시민은 녹화사업에 징집되어 화천 7사단에 입대했다.
- 1980년 04월, 20세 때, 유시민은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대의원회 의장이 되었다.
1981辛酉
- 1981년, 22세 때, 유시민은 군 복무 중 군사정권에 의해 관심사병으로 지정되어 잦은 전출입과 사상 검증으로 인해 고초를 겪었다.
1982壬戌
- 1982년, 23세 때, 유시민은 부친의 수술을 앞둔 후임을 위해 자신의 포상 휴가를 반납하고 후임의 청원 휴가를 보내주었다.
1983癸亥
- 1983년 05월 00일, 24세 때, 유시민은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전역했다.
- 1983년 12월 00일, 24세 때, 유시민은 녹화사업 폐지와 학원 민주화를 주장하며 복교 조치를 거부하고 제적 학생 복교추진 위원회를 결성해 투쟁했다.
- 1983년, 24세 때, 유시민은 강제 입대 후 만기 전역했다.
1984甲子
- 1984년 08월 00일, 25세 때, 유시민은 서울대학교에 복교하여 서울대 복학생협의회 회장에 취임했다.
- 1984년 09월 00일, 25세 때, 유시민은 서울대 민간인 감금 폭행 고문 사건에서 폭행과 고문을 주도하고 고문 장면을 직접 참관했다.
- 1984년 10월 04일, 25세 때, 유시민은 서울대 프락치 사건으로 구속되었다.
- 1984년, 25세 때, 유시민은 서울대학교 복학생협의회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했다.
- 1984년, 25세 때, 유시민은 감금 및 조사 과정에 일부 관여하고 녹취록을 확인하는 등 방조한 혐의로 유죄가 인정되었다.
1985乙丑
- 1985년 04월 01일, 26세 때, 유시민은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으며, 구치소로 끌려가며 "전대가리 깨져라"라고 외쳤다.
- 1985년 10월 00일, 26세 때, 유시민은 출소했다.
- 1985년 12월 00일, 26세 때, 유시민은 서울노동운동연합(서노련)에 가입하여 핵심 인물로 활동했다.
- 1985년, 25세 때, 유시민은 항소이유서에서 프락치 사건 피해자들에 대한 직접적인 사과나 반성을 언급하지 않았다.
- 1985년 05월 27일, 25세 때, 유시민은 서울형사지방법원 항소 제5부에 원고지 100여 장 분량의 항소이유서를 제출했다.
1986丙寅
- 1986년, 27세 때, 유시민은 학민사에서 편집부장으로 근무했다.
1988戊辰
- 1988년 00월 00일, 29세 때, 유시민은 가명 유지수로서 MBC 드라마 『그것은 우리도 모른다』의 극본을 썼다.
- 1988년 00월 00일, 29세 때, 유시민은 창작과 비평 여름호에 중편소설 『달』을 발표하며 소설가로 등단했다.
- 1988년 00월 00일, 29세 때, 유시민은 수배를 풀기 위해 이해찬 평화민주당 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하며 정계에 입문했다.
- 1988년, 28세 때, 유시민은 수배령으로 인해 '유지수'라는 가명을 사용하여 MBC 드라마 각본가로 활동했다.
- 1988년, 28세 때, 유시민은 설훈으로부터 김대중 총재 비서관 제안을 받았으나 이를 거절했다. 이유는 김대중 총재의 상인적 현실감각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30대
1989己巳
- 1989년 00월 00일, 30세 때, 유시민은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출간했다.
- 1989년, 29세 때, 유시민은 MBC 베스트극장의 극본 '신용비어천가'를 제작했다.
1991辛未
- 1991년 00월 00일, 32세 때, 유시민은 서울시의원 후보 공천을 받았으나 인접 지역구의 돈 공천 추문에 항의하며 평화민주당을 탈당했다.
- 1991년 08월 00일, 32세 때, 유시민은 입학 13년 6개월 만에 서울대학교를 졸업했다.
1992壬申
- 1992년 00월 00일, 33세 때, 유시민은 3당 합당으로 국회가 재미없어진 상황에서 아내의 제안을 받아들여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 1992년 00월 00일, 33세 때, 유시민은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 책을 냈다.
1995乙亥
- 1995년 00월 00일, 36세 때, 유시민은 한겨레 독일통신원이 되었다.
1997丁丑
- 1997년 00월 00일, 38세 때, 유시민은 IMF 사태로 인해 아내의 학비를 벌어 보내기 위해 박사 과정을 포기하고 귀국했다.
- 1997년 00월 00일, 38세 때, 유시민은 작가 및 정치시사평론가로 활동하며 동아일보 등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게재했다.
- 1997년, 37세 때, 유시민은 기초 부족과 독일어 장벽으로 인해 보건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는 데 4년이 걸렸다.
- 1997년, 38세 때, 유시민은 앞선 주장으로 인해 야권으로부터 "영남 패권론자", "호남 혐오론자"라는 비판을 받았다.
- 1997년 08월, 38세 때, 유시민은 『97대선 게임의 법칙』을 저술하여 김대중의 대통령 당선 확률이 제로에 가깝다고 주장하며 조순 서울시장을 대리후보로 내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40대
1999己卯
- 1999년 12월 00일, 40세 때, 유시민은 "김대중 대통령님께"라는 기고문을 통해 김대중 정부의 상황 인식과 대처방식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 1999년, 40세 때, 유시민은 가칭 '새천년 민주신당'이 정치적 신념과 전력을 따지지 않고 사람을 모으는 방식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 1999년, 40세 때, 유시민은 김대중 대통령이 '예스 맨'만을 중용하고 지식인들의 목소리를 묵살한다고 비판했다.
- 1999년 12월, 40세 때, 유시민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대통령의 상황 인식과 대처방식에 대한 이견을 담은 편지를 보냈다.
- 1999년 12월, 40세 때, 유시민은 대통령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접었기에 앞으로는 대통령을 비판하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이유는 희망과 애정을 잃어 비판할 의욕조차 사라졌기 때문이다.
2000庚辰
- 2000년 01월 17일, 41세 때, 유시민은 MBC 라디오 'MBC 초대석'의 진행을 맡았다.
- 2000년 10월 00일, 41세 때, 유시민은 100분 토론 진행에 전념하기 위해 MBC 초대석 진행자 자리에서 사임했다.
- 2000년 06월 00일, 41세 때, 유시민은 MBC 100분 토론의 진행을 맡았다.
- 2000년 01월 17일, 41세 때, 유시민은 MBC 라디오의 'MBC 초대석' 진행을 맡았다.
- 2000년 06월 00일, 41세 때, 유시민은 MBC '100분 토론'의 진행을 맡았다.
2001辛巳
- 2001년, 41세 때, 유시민은 방송 진행자로서 중립성을 지키지 못했다는 비판에 대해 완전히 공정하고 객관적인 진행은 불가능하며 중립을 철저히 지킬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2002壬午
- 2002년 00월 00일, 43세 때, 유시민은 이용호 게이트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들이 구속되자 김대중의 하야를 촉구하고 동교동계를 비판했다.
- 2002년 01월 00일, 43세 때, 유시민은 MBC '100분 토론'의 진행 업무를 마쳤다.
- 2002년 04월 00일, 43세 때, 유시민은 노무현 후보를 돕기 위해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에게 사퇴를 종용했다. 이유는 권영길 후보에게 갈 표가 사표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 2002년 08월 00일, 43세 때, 유시민은 노사모 강연에서 새천년민주당 비노·반노그룹이 이유 없이 노무현을 낙마시키려 한다고 비판하며 위기에 빠진 노무현을 구하는 것이 정치개혁이라고 주장했다.
- 2002년 08월 01일, 43세 때, 유시민은 김대중 대통령이 정상적인 판단력을 잃어버렸으며 실제 통치하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2003癸未
- 2003년 04월 00일, 44세 때, 유시민은 제16대 국회의원 보궐선거 고양시 덕양구 갑 지역구에 개혁국민정당 후보로 출마했다.
- 2003년 04월 00일, 44세 때, 유시민은 새천년민주당과 단일화나 공조를 절대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 2003년 04월 00일, 44세 때, 유시민은 단일화 불가 선언을 번복하고 민주당 측과 후보 단일화를 선택했다. 결과적으로 개혁당 내부의 극심한 반발과 당 분열, 오마이뉴스 등의 비판을 받았다.
- 2003년 04월 00일, 44세 때, 유시민은 고양시 덕양구 갑 지역구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여의도에 입성했다.
- 2003년 00월 00일, 44세 때, 유시민은 국회의원 선서 첫날 백바지에 라운드 티셔츠라는 복장으로 참석했다. 결과적으로 의원들의 경악과 대거 퇴장이 이어져 선서가 이튿날로 미뤄지는 참사가 벌어졌다.
2004甲申
- 2004년 00월 00일, 45세 때, 유시민은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고양시 덕양구 갑 지역구에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출마하여 재선에 성공했다.
- 2004년 00월 00일, 45세 때, 유시민은 열린우리당 경기도당 위원장을 맡았다.
- 2004년 00월 00일, 45세 때, 유시민은 총선 과정에서 민노당 표가 대부분 사표가 될 것이라며 민노당 대신 열린우리당에 투표할 것을 촉구했다.
- 2004년 04월 12일, 45세 때, 유시민은 진중권의 비판에 대응하여 <민주노동당은 열린우리당의 경쟁상대일 뿐입니다>라는 글을 올려 맞대응했다.
- 2004년 06월, 44세 때, 유시민은 야구 경기나 학교 운동회 등 국가 업무와 무관한 곳에서 하는 국기에 대한 경례는 파시즘적이라며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2005乙酉
- 2005년, 46세 때, 유시민은 열린우리당 당의장 경선 당시 새만금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 2005년 03월, 45세 때, 유시민은 같은 당 김영춘 의원으로부터 "옳은 말을 싸가지없게 한다"라는 비판을 받으며 당내 의원들의 심한 반감을 샀다.
2006丙戌
- 2006년 02월 10일, 47세 때, 유시민은 참여정부의 보건복지부장관으로 임명되어 재임하기 시작했다.
- 2006년, 46세 때, 유시민은 보건복지부 장관으로서 오리지널 의약품 고가 정책을 견제하는 선별목록제도(Positive List System)를 도입하는 '건강보험 약제비 적정화 방안'을 단행했다.
- 2006년 02월, 46세 때, 유시민은 과거 본인이 인사청문회 도입을 강력히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자신이 대상자가 되자 이에 대해 불만을 표했다.
- 2006년 02월, 46세 때, 유시민은 마인츠 대학교 경제학 박사로 기재했던 학력이 실제로는 석사 학위뿐인 것으로 드러나자 출판사 등의 오기라고 해명했다.
- 2006년 02월, 46세 때, 유시민은 적십자비를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신을 부적격 장관 취급한 한나라당 의원들을 비판했다.
2007丁亥
- 2007년 04월 00일, 48세 때, 유시민은 기초노령연금과 노인장기요양보험 도입을 추진하여 관련 법률을 통과시켰다.
- 2007년 02월 19일, 48세 때, 유시민은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열린우리당 해체는 예정된 수순이며 한나라당의 집권 가능성이 99%라고 발언했다.
- 2007년 08월 00일, 48세 때, 유시민은 대세가 신당 쪽으로 기울자 기존의 반대 입장을 번복하고 대통합민주신당에 합류했다.
- 2007년 06월 00일, 48세 때, 유시민은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대통령 선거 출마 의사를 표명했다.
- 2007년 08월 18일, 48세 때, 유시민은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하고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 후보 경선에 참여했다.
2008戊子
- 2008년 01월 00일, 49세 때, 유시민은 대통합민주신당에서 탈당했다.
- 2008년 01월 00일, 49세 때, 유시민은 4.9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나 이를 번복하고 총선 출마를 결정했다.
- 2008년 01월 16일, 49세 때, 유시민은 기존 지역구인 고양 덕양갑을 버리고 무소속으로 대구광역시 수성구 을 선거구 출마를 선언했다. 이유는 어머니가 계신 고향 대구에서 정치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 2008년 04월 09일, 49세 때, 유시민은 대구 수성구 을 선거에서 32%를 득표했으나 낙선했다.
- 2008년 04월 00일, 49세 때, 유시민은 총선 낙선 후 즉시 대구를 떠났다.
50대
2009己丑
- 2009년, 50세 때, 유시민은 경북대학교에서 "생활과 경제"라는 명칭의 경제학 교양 강의를 맡았다.
- 2009년 00월 00일, 50세 때, 유시민은 《청춘의 독서》를 썼으며, 과거 랑케를 맹목적으로 추종했던 것이 무지의 소치였다고 회고했다.
- 2009년, 50세 때, 유시민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친노 정당인 '국민참여당'을 창당하고 대표를 맡았다.
- 2009년 03월, 49세 때, 유시민은 정보전산원 1층 강당에서 강의를 진행하고 400명 분량의 답안지를 채점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2010庚寅
- 2010년 01월 17일, 51세 때, 유시민은 과거 개혁국민정당을 계승하여 국민참여당을 창당했다.
- 2010년 06월 02일, 51세 때, 유시민은 제5회 지방선거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마했다.
- 2010년 06월 00일, 51세 때, 유시민은 야권 단일화 경선에서 민주당 김진표 후보와 맞붙어 승리했다.
- 2010년 06월 00일, 51세 때, 유시민은 민주당과 지역별로 후보를 주고받는 연대 방식을 취할 수 있었지만, 경선을 통한 단일화 방식을 고수했다.
- 2010년 06월 00일, 51세 때, 유시민은 진보신당 심상정 후보와 단일화를 이루는 데 성공했다.
2011辛卯
- 2011년, 52세 때, 유시민은 국민참여당 대표에 취임했다.
- 2011년 00월 00일, 52세 때, 유시민은 경상남도 김해시 을 재보궐선거에서 김경수에게 범친노 단일후보가 되어야 한다며 후보 단일화를 압박했다.
- 2011년 00월 00일, 52세 때, 유시민은 단일화 경선 과정에서 자신의 뜻대로 진행되지 않자 판을 깨는 등 강하게 밀어붙여 이봉수를 후보로 내세웠다.
- 2011년 00월 00일, 52세 때, 유시민은 김해시 을 선거에서 이봉수 후보가 김태호 후보에게 패배하며 원내 진출에 실패했다.
- 2011년 12월 04일, 52세 때, 유시민은 국민참여당을 통합진보당에 통합시키며 해체했다.
2012壬辰
- 2012년 00월 00일, 53세 때, 유시민은 제19대 총선에서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12번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 2012년 00월 00일, 53세 때, 유시민은 통합진보당 내부의 계파 갈등을 비판하며 당무 거부와 복귀를 반복했다.
- 2012년 00월 00일, 53세 때, 유시민은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부정경선 사건을 '총체적 부정선거'라고 인정하며 비례대표 전원 사퇴를 주장했다.
- 2012년 00월 00일, 53세 때, 유시민은 당권파와의 계파 갈등 폭발로 인해 통합진보당을 탈당했다.
- 2012년, 53세 때, 유시민은 총선에서 비례대표 12번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2013癸巳
- 2013년 02월 19일, 54세 때, 유시민은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정의당의 평당원으로 남았다.
- 2013년, 54세 때, 유시민은 작가로 돌아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책을 출간하고 팟캐스트를 통해 홍보했다.
- 2013년 2월 19일, 54세 때, 유시민은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 2013년 2월 19일, 54세 때, 유시민은 정계 은퇴를 선언했으나 당을 탈당하지 않고 평당원으로 남는 선택을 했다.
- 2013년, 54세 때, 유시민은 딴지라디오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책을 홍보했다.
2014甲午
- 2014년, 55세 때, 유시민은 '노유진의 정치카페' 고정멤버로 출연했다.
- 2014년, 55세 때, 유시민은 '노유진의 정치카페'에서 '유시민의 타임라인' 코너를 맡아 시사 문제 분석과 상황 예측을 진행했다.
2015乙未
- 2015년 11월, 56세 때, 유시민은 모교인 심인고등학교를 방문하여 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에 대한 강연을 했다.
- 2015년, 55세 때, 유시민은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을 출간했다.
2016丙申
- 2016년 1월, 57세 때, 유시민은 JTBC '썰전'에 이철희의 후임자로 진보 측 패널로 출연했다.
- 2016년, 57세 때, 유시민은 썰전이 녹화 방송이라 제작진의 편집이 가능해 소풍 가는 기분으로 출연한다고 언급했다.
- 2016년, 57세 때, 유시민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당시 자신이 총리가 되었을 때를 가정하여 대통령이 실질적 권한을 국무총리에게 이양하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할 일을 설명했다.
- 2016년, 57세 때, 유시민은 총리직에 대한 의지를 드러낸 것이 아니며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밝혔다.
- 2016년 10월 7일, 57세 때, 유시민은 '언니들의 슬램덩크'에 환경 주제 게스트로 출연했다.
2017丁酉
- 2017년 1월 3일, 58세 때, 유시민은 뉴스룸 토론에 출연했다.
- 2017년 3월 24일, 58세 때, 유시민은 민간기업 업무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보해양조 사외이사 요청을 수락했고 주주총회에서 사외이사로 선임되었다.
- 2017년 2월 5일, 58세 때, 유시민은 썰전 205회에서 문재인 후보의 러브콜 발언에 대해 국민들이 러브콜할 방법이 없으니 마음이 놓인다고 답했다.
- 2017년 5월 2일, 58세 때, 유시민은 tvN '알쓸신잡'에 출연했다.
- 2017년 5월 4일, 58세 때, 유시민은 썰전에서 총리 임명설에 대해 자신은 영남 출신이라 해당하지 않는다며 농으로 받아넘겼다.
2018戊戌
- 2018년, 59세 때, 유시민은 정치에서 한 걸음 더 물러나기 위해 정의당을 탈당했다.
- 2018년 1월 13일, 59세 때, 유시민은 암호화폐를 '엔지니어가 만든 이상한 장난감'이라고 비판했다.
- 2018년 1월 18일, 59세 때, 유시민은 JTBC 특별 토론회에 패널로 출연하여 암호화폐 논란을 다루었다.
- 2018년 4월 10일, 59세 때, 유시민은 '100분 토론'에 패널로 출연하여 개헌안은 특정한 동기보다 헌법 부합 여부와 국민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이 되는지를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2018년, 59세 때, 유시민은 썰전 272회에서 최저임금 상여금 산입으로 인해 임금이 삭감되었다고 반발하는 노동자들의 주장이 논리적이지 않다고 비판했다.
60대
2019己亥
- 2019년 1월 2일, 60세 때, 유시민은 JTBC 토론 '2019 한국 어디로 가나'에 출연하여 일부 언론의 경제위기론이 문재인 정부 정책을 이전 정부 때로 돌리려는 보수 기득권층의 이념동맹 작업이라고 주장했다.
- 2019년 1월 4일, 60세 때, 유시민은 팟빵, 유튜브, 카카오TV에서 팟캐스트 '유시민의 알릴레오' 방송을 시작했다.
- 2019년 1월 7일, 60세 때, 유시민은 '고칠레오' 1회에서 차기 대선 주자 최상위권에 오른 것에 대해 정치를 10여 년 해본 상황에서 그런 쪽으로 이름이 오르는 것이 좋은 게 아니기에 난감하다고 대답했다.
- 2019년 1월 7일, 60세 때, 유시민은 '알릴레오' 창설이 다른 형태의 정치라는 보도에 대해 정치 현안 정보를 제공하는 언론 활동이 정치라면 뉴스 앵커나 정치평론가도 모두 정치인으로 분류되어야 하느냐고 반문하며 자신은 정치인이 아니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 2019년, 60세 때, 유시민은 알릴레오 4화에서 청와대 근무 강도가 높다는 말에 자신은 이빨이 안 좋기 때문에 절대 청와대에 가지 않겠다며 차기 대선 불출마 의사를 밝혔다.
2020庚子
- 2020년 1월 1일, 61세 때, 유시민은 JTBC 신년 토론회에서 진중권 교수의 공격에 소극적으로 대응했으며, 이는 길이 갈린 사람과 작별의 시간을 갖는 본인만의 방식이라고 밝혔다.
- 2020년 3월 31일, 61세 때, 유시민은 채널A 기자의 취재윤리 위반 사건의 피해자로 연루되었으며, 해당 사건을 어떤 경우건 간에 괴물의 모습이라고 평했다.
- 2020년 4월, 61세 때, 유시민은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전 '범진보 계열의 180석 확보' 발언을 하여 논란이 되었다.
- 2020년 4월, 61세 때, 유시민은 KBS '정치합시다'에 출연하여 여론조사와 데이터를 분석해 여당과 진보계열의 압승을 조심스레 예측했다.
- 2020년 4월 15일, 61세 때, 유시민은 KBS 개표 방송에서 180석 발언으로 인해 책임질 수 없는 행동을 하여 여당 등에 피해를 끼칠 것을 우려해, 정치적 발언을 하지 않는 완전한 자연인으로 돌아가겠다고 밝혔다.
2021辛丑
- 2021년 12월 9일, 62세 때, 유시민은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하여 정치비평 복귀를 선언했다.
- 2021년 12월 24일, 62세 때, 유시민은 KBS '정치합시다 시즌2'에 고정 출연했다.
- 2021년 01월, 61세 때, 유시민은 계좌 추적 의혹 주장이 허위였음을 인정하는 공개 사과문을 발표하고 시사평론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2022壬寅
- 2022년, 63세 때, 유시민은 '정치합시다'에서 제20대 대통령 선거 예측으로 이재명 후보에게 500원을 걸겠다고 발언했다.
- 2022년, 63세 때, 유시민은 윤석열 후보가 당선되면 한일 위안부 합의를 되살리고, 아사히 맥주를 마시고, 유니클로를 입을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았다.
- 2022년 3월 3일, 63세 때, 유시민은 100분 토론 제20대 대선 특집편에 민주당 측 패널로 출연하여 원희룡과 토론했다.
- 2022년 3월 6일, 63세 때, 유시민은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서 이재명을 찍은 남자와 윤석열을 찍은 남자의 차이점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을 냈다.
- 2022년 3월 9일, 63세 때, 유시민은 KBS 대선 개표방송 패널로 참석하여 윤석열 후보의 당선이 유력해지자 이재명 후보에게 위로를 남기며 울먹였다.
2023癸卯
- 2023년 7월 6일, 64세 때, 유시민은 한동훈 명예훼손 혐의에 대한 항소심 첫 재판을 받았다.
- 2023년 9월 22일, 64세 때, 유시민은 이재명 대표의 체포동의안 가결에 대해 2030 남자 유권자의 책임이 많다며 에펨코리아 유저들을 쓰레기라고 비난하여 논란이 되었다.
- 2023년 12월 21일, 64세 때, 유시민은 한동훈 명예훼손 혐의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벌금 500만 원 형을 선고받았으며, 이에 상고했다.
- 2023년, 63~64세 때, 유시민은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를 출간했다.
- 2023년, 63~64세 때, 유시민은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에서 인간의 이타성과 도덕적 행동이 뇌신경세포와 유전적 본성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논증하려 시도했다.
2024甲辰
- 2024년, 65세 때, 유시민은 MBC '선택 2024' 특집 100분 토론에 참여하여 김진의 막말에 대노하며 설전을 벌였다.
- 2024년, 65세 때, 유시민은 '사장남천동',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등에 출연하여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특집 정치평론 활동을 했다.
- 2024년, 65세 때, 유시민은 총선 기간 중 매 방송마다 여권 과반이나 야권 200석이 아니라면 총선을 한들 변하는 게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2024년, 65세 때, 유시민은 범진보 189석이라는 총선 결과가 나오자 MBC '선택 2024' 마무리 발언에서 이 선거 결과가 현실을 못 바꿀 것이라고 단언했다.
- 2024년, 65세 때, 유시민은 윤석열 정부의 행적을 정리하고 미래 시나리오를 제기한 '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이라는 책을 집필했다.
2025乙巳
- 2025년 09월 00일, 66세 때, 유시민은 검찰개혁 법안 심의 중단과 총리실 테이프 전달 사건을 인지하고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다.
- 2025년 12월 00일, 66세 때, 유시민은 에버트재단 주최 '지속가능한 민주주의'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석해 정국에 대한 우려를 내비쳤다.
- 2025년, 65~66세 때, 유시민은 미디어 출연 중 정치인 배우자의 사회적 지위에 대해 언급해 계급 비하 및 여성 비하 논란을 일으켰다.
2026丙午
- 2026년 05월 00일, 66세 때, 유시민은 6개월간의 고민 끝에 현 정국 상황에 대해 "이렇게 시작되어 이런 결과로 귀착될 것"이라는 잠정적 결론을 내렸다.
- 2026년 05월 00일, 66세 때, 유시민은 상의할 수 있는 지인들에게 비평 활동 재개 여부를 물었고, 대부분 만류했으나 한 명만 "나라를 위해 말해달라"고 답했다.
- 2026년 06월 00일, 66세 때, 유시민은 노무현재단 상임고문직에서 물러나기로 결심했다.
- 2026년 06월 00일, 66세 때, 유시민은 여행책 출간을 준비하며 관련 녹음을 진행했다.
- 2026년 06월 26일, 66세 때, 유시민은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출연해 노무현재단 사퇴 배경과 비평 활동 재개 계획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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