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형진
프로필로 돌아가기 →물병자리소띠甲 갑목목(木)
전통 명리·점성술의 일반 설명
갑목(甲木) · 큰 나무하늘을 향해 곧게 자라는 큰 나무에 비유된다.
물병자리 · 1.20~2.18독창성과 자유로운 사고,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태도가 흔히 언급되는 특징이다.
소띠성실함과 인내, 묵묵히 끝까지 해내는 뚝심이 흔히 언급되는 특징이다.
목(木) · 나무·성장뻗어 나가는 힘, 시작과 성장, 인(仁)의 기운으로 설명된다.
아래 설명은 전통 명리학·점성술에서 각 기호에 흔히 붙는 일반적 설명입니다. 개인의 성격이나 미래를 판정하는 근거가 아니며, 라이프러리는 이를 사실 데이터와 분리해 "해석"으로만 다룹니다.
己丑
연주
丁丑
월주
甲子
일주
—
시주 (미계산)
대운(大運) · 역행
丙子
8세~
乙亥
18세~
甲戌
28세~
癸酉
38세~
壬申
48세~
辛未
58세~
庚午
68세~
己巳
78세~
戊辰
88세~
대운(大運)은 명리학에서 10년 단위로 바뀌는 흐름을 가리키는 개념입니다. 라이프러리는 이를 예측이 아니라 "그 10년을 전통 명리학이 어떤 시기로 설명하는가"와 "실제 라이프 카운트에 무엇이 기록돼 있는가"를 나란히 놓는 용도로만 씁니다.
출생시각 미확인 — 시주(時柱)는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삼주 기준입니다.
1940년대
1946丙戌
- 1946년 6월 6일, 0세 때, 장형진은 서울에서 영풍그룹 공동창업주 장병희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형은 장철진이다.
- 1946년 06월 06일, 0세 때, 장형진은 서울에서 영풍그룹 창업주 장병희의 차남으로 출생했다.
- 1946년 00월 00일, 0세 때, 장형진은 영풍 공동창업주 장병희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1960년대
1965乙巳
- 1965년 2월, 18세 때, 장형진은 서울사대부고를 졸업했다. 서울사대부고는 이후 정계·재계 인사들이 많이 배출된 명문고였다.
- 1965년, 19세 때, 장형진은 서울사대부속고등학교(서울사대부고)를 졸업했다.
- 1965년 00월 00일, 19세 때, 장형진은 서울사대부고를 졸업했다.
1970년대
1970庚戌
- 1970년 2월, 23세 때, 장형진은 연세대학교 상경대학을 졸업했다. 이후 곧바로 부친이 공동창업한 영풍에 입사했다.
- 1970년, 24세 때, 장형진은 연세대학교 상경대학 상학과를 졸업했다.
1971辛亥
- 1971년 3월, 24세 때, 장형진은 영풍에 입사하며 본격적으로 경영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 1971년, 25세 때, 장형진은 영풍에 입사했다.
- 1971년 00월 00일, 25세 때, 장형진은 ㈜영풍에 들어가 회사 생활을 시작했다.
1979己未
- 1979년 1월, 32세 때, 장형진은 영풍 뉴욕사무소장으로 발령받았다. 해외 영업 및 시장 감각을 키우는 포지션이었다.
1980년대
1980庚申
- 1980년 1월, 33세 때, 장형진은 영풍 전무이사로 승진했다. 본사 경영 핵심으로 진입했다.
1982壬戌
- 1982년 1월, 35세 때, 장형진은 영풍 부사장으로 승진하며 명실상부한 후계자로서 입지를 다졌다.
1984甲子
- 1984년 1월, 37세 때, 장형진은 영풍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1988戊辰
- 1988년 1월, 41세 때, 장형진은 대표이사 사장직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그룹 실무 경영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 1988년, 42세 때, 장형진은 입사 17년 만에 영풍의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했다.
- 1988년 00월 00일, 42세 때, 장형진은 ㈜영풍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다.
1990년대
1992壬申
- 1992년 1월, 45세 때, 장형진은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1993癸酉
- 1993년 1월, 46세 때, 형 장철진이 인천 주택조합 사기사건으로 구속되자, 장형진은 대표이사 회장으로 취임해 그룹을 단독으로 이끌게 됐다.
- 1993년, 47세 때, 장형진은 형 장철진 전 회장이 인천주택조합 사기사건으로 구속된 상황과 연계되어 영풍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 1993년 00월 00일, 47세 때, 장형진의 형 장철진은 인천 주택조합 사기 사건으로 구속됐다.
- 1993년 00월 00일, 47세 때, 장형진은 영풍 회장에 취임해 그룹 경영을 전면에서 맡았다.
1995乙亥
- 1995년 3월, 48세 때, 장형진은 장철진 일가가 보유한 영풍 주식을 매입하여 지분 정리를 완료하고 단독 지배체제를 완성했다.
- 1995년 00월 00일, 49세 때, 장형진은 형 장철진 일가가 내놓은 ㈜영풍 주식을 넘겨받아 두 형제 집안의 지분 관계를 정리했다.
1999己卯
- 1999년, 53세 때, 장형진은 국민은행의 비상임이사로 활동했다.
2000년대
2000庚辰
- 2000년대 초반, 50대 때, 장형진은 전자부품 계열 확장에 집중했다.
2010년대
2011辛卯
- 2011년 기준, 65세 때, 장형진은 영풍, 코리아써키트, 테라닉스, 영풍전자, 영풍문고, 영풍개발, 인터플렉스, 서린상사, 영풍정밀, 시그네틱스 등 14개 계열사의 등기임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2014甲午
- 2014년 초, 67세 때, 장형진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단 영입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다. 그는 과거에도 전경련 회장단 입성 요청을 여러 차례 받았지만 모두 고사한 바 있다.
2015乙未
- 2015년 3월, 68세 때, 장형진은 영풍과 주력 계열사의 등기임원직 6개를 한꺼번에 사퇴하며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당시 등기임원 보수 공개 제도가 본격 시행되던 시기였다.
- 2015년 11월, 69세 때, 장형진은 최창걸 명예회장과 함께 사재 20억 원을 청년희망펀드에 기부했다. 영풍그룹 임원 7억 원을 합해 총 27억 원을 출연했다.
- 2015년, 69세 때, 장형진은 회장직에서 물러나 고문 또는 명예회장으로 전환하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 2015년 03월 00일, 69세 때, 장형진은 ㈜영풍 정기 주주총회에서 임기 만료로 대표이사와 등기이사직을 내려놓았다.
2017丁酉
- 2017년, 71세 때, 장형진은 순환출자 해소와 2세 승계를 위해 사재로 씨케이(CK) 등 2세 회사를 지원하고 영풍 지분을 매입하는 등 지배구조 개편을 주도했다.
2018戊戌
- 2018년, 72세 때, 장형진은 영풍이 보유한 지분 14.5%와 본인이 보유한 지분 18.5%의 영풍문고 지분을 이전했다.
- 2018년 00월 00일, 72세 때, 장형진은 직함을 회장에서 고문으로 바꿨다.
- 2018년 06월 00일, 72세 때, 장형진의 형 장철진 전 영풍산업 회장은 세상을 떠났다.
2019己亥
- 2019년 7월 1일, 73세 때, 장형진은 사재 1335억 원을 투입해 서린상사가 보유한 영풍 지분 10.36%(19만820주)를 인수해,
- 2019년 7월 10일, 73세 때, 장형진은 청와대에서 열린 일본 수출규제 대응 간담회에 참석해 문재인 대통령과 직접 인사를 나눴다. 언론 노출이 거의 없는 장형진의 드문 공개활동 사례였다.
- 2019년 07월, 73세 때, 장형진은 일본 수출규제 대책 논의를 위해 청와대 경제계 간담회에 참석했다.
- 2019년 07월 00일, 73세 때, 장형진은 순환출자 고리를 끊으려고 서린상사가 보유한 ㈜영풍 주식 19만820주를 사재 1336억 원에 매입했다.
- 2019년 07월 10일, 73세 때, 장형진은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 수출규제 대응을 논의하려고 청와대로 부른 경제계 간담회에 영풍그룹 대표로 참석했다.
2020년대
2020庚子
- 2020년 6월 30일, 74세 때, 장형진은 보유 중이던 영풍 보통주 6.35%(11.7만 주)를 씨케이에 시간 외 매매로 넘겼다. 1주당 가격은 45만8500원, 총 536억 원 규모였다.
- 2020년 9월 28일, 74세 때, 장형진은 다시 영풍 주식 2.83%(5.2만 주)를 씨케이에 매각했다. 1주당 46만 원, 약 239억 원 규모다. 이로써 영풍 지분율은 2.31%로 낮아졌다.
- 2020년 11월 10일, 74세 때, 장형진의 상장사 주식 보유 자산가치는 총 3589억 원으로 평가됐다. 고려아연 3237억 원, 영풍정밀 74억 원, 영풍 220억 원 등이다.
- 2020년 06월~09월, 74세 때, 장형진은 영풍 지분 16만 9000주를 추가로 매입했다.
- 2020년 06월 30일, 74세 때, 장형진은 보유한 ㈜영풍 주식 11만7000주를 가족 회사 씨케이에 주당 45만8500원, 모두 536억4450만 원에 넘겼다.
2021辛丑
- 2021년 말, 75세 때, 장형진은 영풍 석포제련소의 통합관리 심사 대응 상황을 고문 자격으로 관리하고 있었다.
2024甲辰
- 2024년 기준, 78세 때, 장형진은 공정거래법상 영풍그룹 총수로 지정돼 있으며, 경영일선에서는 물러나 있으나 그룹 지배구조 개편, 3세 승계, 환경 리스크 대응 등 핵심 사안을 총괄하는 실질적 수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 2024년 09월 00일, 78세 때, 장형진은 MBK파트너스와 고려아연 공개매수에 나서면서 최씨·장씨 두 가문이 2세까지 75년 동안 이어 온 공동 경영을 이제 끝내는 것이 맞다는 뜻을 밝혔다.
- 2024년 09월 12일, 78세 때, 장형진은 일가·영풍과 함께 MBK파트너스와 고려아연 의결권을 공동으로 행사하는 주주간 계약을 맺고 MBK에 보유 지분 일부의 콜옵션을 내줬다.
- 2024년 09월 27일, 78세 때, 장형진은 고려아연으로부터 영풍 개인 지분이 0.68%에 불과한데도 적대적 인수합병을 이끈다며 그 이유를 밝히고 주주에게 사과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 2024년 10월 08일, 78세 때, 장형진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환경부 국정감사에 처음으로 증인으로 채택됐으나 일본 출장을 사유로 내세워 나오지 않았다.
2025乙巳
- 2025년 08월 27일, 79세 때, 장형진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으로부터 낙동강 상류 오염과 관련한 환경범죄단속법·물환경보전법·토양환경보전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됐다.
- 2025년 10월 07일, 79세 때, 장형진은 전날 별세한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의 서울아산병원 빈소를 찾아 10분가량 조문했다.
- 2025년 10월 24일, 79세 때, 장형진은 서울 강남경찰서가 고발인 조사를 하면서 낙동강 오염 고발 사건의 피고발인으로 정식 수사를 받게 됐다.
- 2025년 12월 00일, 79세 때, 장형진은 대표이사 퇴임 뒤 경영에 직접 관여한 정황이 드러나지 않았다는 판단에 따라 강남경찰서로부터 불송치 결정을 받았다.
- 2025년 12월 00일, 79세 때, 장형진은 고려아연 측 신청을 받아들인 1심 법원으로부터 MBK파트너스와 맺은 경영협력계약 서류를 내라는 문서제출명령을 받았다.
2026丙午
- 2026년 04월 28일, 80세 때, 장형진은 문서제출명령에 불복해 낸 즉시항고를 서울고등법원 민사25부에서 기각당했다.
- 2026년 08월 11일, 80세 때, 장형진은 낙동강 오염 고발 사건의 불송치 결정이 서울경찰청 수사심의위원회에서 뒤집혀 광역수사단의 재수사를 받게 됐다.
- 2026년 01월 07일, 76세 때, 장형진 은 영풍과 MBK의 계약서 공개 결정에 대해 법원에 항고했다.
- 2026년 01월 08일, 76세 때, 장형진 은 MBK와 맺은 콜옵션 계약 공개 여부로 논란이 되었다.
- 2026년 04월 03일, 76세 때, 장형진 은 KZ정밀 임원으로서 지분율 17.21%를 유지했다.
날짜 미상 라인 4줄은 타임라인에 포함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