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워드 러트닉
프로필로 돌아가기 →사자자리소띠己 기토토(土)
전통 명리·점성술의 일반 설명
기토(己土) · 논밭·정원의 흙작물을 길러내는 논밭의 흙에 비유된다.
사자자리 · 7.23~8.22자신감과 존재감, 무대의 중심에 서려는 기질이 흔히 언급되는 특징이다.
소띠성실함과 인내, 묵묵히 끝까지 해내는 뚝심이 흔히 언급되는 특징이다.
토(土) · 흙·대지받아들이고 중재하는 힘, 신뢰와 중심, 신(信)의 기운으로 설명된다.
아래 설명은 전통 명리학·점성술에서 각 기호에 흔히 붙는 일반적 설명입니다. 개인의 성격이나 미래를 판정하는 근거가 아니며, 라이프러리는 이를 사실 데이터와 분리해 "해석"으로만 다룹니다.
辛丑
연주
丙申
월주
己卯
일주
—
시주 (미계산)
출생시각 미확인 — 시주(時柱)는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삼주 기준입니다.
대운은 성별 정보가 확인되지 않아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10대
1961辛丑
- 1961년 7월 14일, 0세 때, 하워드 러트닉은 미국 뉴욕주 롱아일랜드의 제리코에서 솔로몬 러트닉과 제인 러트닉 부부의 셋째 자녀로 태어났다.
1978戊午
- 1978년 2월, 16세 때, 어머니 제인 러트닉이 림프종으로 사망하였다.
1979己未
- 1979년 9월, 18세 때, 하워드 러트닉은 펜실베이니아주 하버퍼드 칼리지에 입학하였다. 같은 해 첫 학기 중, 아버지 솔로몬 러트닉이 대장암과 폐암 치료 중 의료 사고로 사망하였다.
20대
1983癸亥
- 1983년 5월, 21세 때, 하워드 러트닉은 하버퍼드 칼리지에서 경제학 학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 1983년 7월, 21세 때, 하워드 러트닉은 칸토 피츠제럴드에 채권 분석가로 입사하였다.
30대
1991辛未
- 1991년, 30세 때, 하워드 러트닉은 칸토 피츠제럴드의 사장 겸 CEO로 임명되었다.
1994甲戌
- 1994년 12월 10일, 33세 때, 하워드 러트닉은 변호사 앨리슨 램버트와 결혼하였다.
1996丙子
- 1996년, 35세 때, 하워드 러트닉은 칸토 피츠제럴드의 회장으로 임명되었다.
40대
2001辛巳
- 2001년 9월 11일, 40세 때, 하워드 러트닉은 뉴욕 세계무역센터 북쪽 타워에 위치한 칸토 피츠제럴드 본사에서 발생한 테러 공격으로 직원 658명을 포함한 많은 동료와 동생 게리 러트닉을 잃었다. 그는 아들을 유치원에 데려다주느라 사무실에 없어서 생존하였다.
- 2001년 09월 00일, 40세 때, 하워드 러트닉은 홀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 2001년 09월 00일, 40세 때, 하워드 러트닉은 참사 직후 유족들에게 지급되던 급여 지급을 전격 중단해 유족의 생계를 끊었다는 비난을 받았다.
- 2001년 09월 11일, 40세 때, 하워드 러트닉은 아들 카일의 유치원 입학 첫날 등원을 직접 챙기기 위해 뉴욕 세계무역센터 북쪽 타워의 캔터 피츠제럴드 본사에 출근하지 않고 있었다.
- 2001년 09월 11일, 40세 때, 하워드 러트닉은 북쪽 타워가 무너진 직후 불타는 건물을 향해 달려가 동료들을 찾았으나 본사에 출근했던 직원 960명 중 658명이 전원 사망했음을 확인했다.
2002壬午
- 2002년 09월 11일, 41세 때, 하워드 러트닉은 매년 9월 11일을 '자선의 날'로 지정해 하루 수익 전체를 기부하는 전통을 만들었다.
2005乙酉
- 2005년 00월 00일, 43~44세 때, 하워드 러트닉이 이끄는 BGC파트너스는 유로브로커스를 인수해 세계무역센터에서 61명의 직원을 잃은 유로브로커스 유족들까지 구호기금 지원 대상에 포함시켰다.
2006丙戌
- 2006년, 45세 때, 하워드 러트닉은 9/11 희생자 가족들을 위해 칸토 피츠제럴드 수익의 25%를 기부하여 총 1억 8천만 달러를 지원하였다.
50대
2011辛卯
- 2011년 09월 12일, 50세 때, 하워드 러트닉은 9·11 10주년을 맞은 '자선의 날' 행사에서 하루 약 1,200만 달러를 모금했으며(누적 모금액 약 7,700만 달러), "10주년을 맞아 올해 자선의 날이 특히 뭉클했다"고 말했다.
2012壬辰
- 2012년 00월 00일, 51세 때, 하워드 러트닉은 허리케인 샌디 피해 지원을 위해 1,000달러씩 담긴 선불카드 총 1,000만 달러어치를 뉴욕 19개 초등학교 가정에 지원했다.
2016丙申
- 2016년 00월 00일, 54~55세 때, 하워드 러트닉이 유족 자녀들에게 "성인이 되면 캔터 피츠제럴드에 일자리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했던 약속에 따라 9·11 희생자 자녀 57명이 캔터 피츠제럴드·BGC파트너스에 채용됐다.
2019己亥
- 2019년 5월 17일, 57세 때, 하워드 러트닉은 맨해튼 자택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위한 기금 모금 행사를 주최하여 약 500만 달러를 모금하였다.
60대
2024甲辰
- 2024년 8월 2일, 62세 때, 하워드 러트닉은 뉴욕 브리지햄튼 자택에서 도널드 트럼프와 지지자들을 위한 또 다른 기금 모금 행사를 개최하였다.
- 2024년 11월 19일, 63세 때, 하워드 러트닉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미국 상무부 장관으로 지명되었다.
- 2024년 08월 00일, 63세 때, 하워드 러트닉은 도널드 트럼프 대선 캠프의 정권 인수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 2024년 09월 00일, 63세 때, 하워드 러트닉은 폭스 방송 '굿데이 뉴욕'에 출연해 '자선의 날' 행사를 소개했으며, 이 행사에는 JD 밴스 상원의원(당시), 앤디 로딕, 빅터 크루즈, 지몬 혼수 등이 참여했다.
- 2024년 11월 19일, 63세 때, 하워드 러트닉은 트럼프 당선인으로부터 미국 상무부 장관으로 지명받았다.
2025乙巳
- 2025년 2월 18일, 63세 때, 하워드 러트닉은 미국 상원의 인준을 받아 제41대 미국 상무부 장관으로 취임하였다. 이로 인해 그는 칸토 피츠제럴드의 회장 겸 CEO 직에서 물러났다.
- 2025년 3월 31일, 63세 때, 하워드 러트닉이 이전에 이끌었던 칸토 피츠제럴드의 애널리스트들이 보건복지부 장관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의 해임을 촉구하였다.
- 2025년 02월 18일, 63세 때, 하워드 러트닉은 미국 상원의 인준투표(찬성 51 대 반대 45)를 통과해 상무장관으로 확정됐다.
- 2025년 02월 21일, 63세 때, 하워드 러트닉은 미국 상무부 장관으로 공식 취임해 미국 내 공급망 재건과 해외자본 유치를 목표로 한 관세·투자압박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 2025년 09월 11일, 64세 때, 하워드 러트닉이 된 하워드 러트닉은 9·11 24주년 추모 행사에 참석했다.
2026丙午
- 2026년 02월 09일, 64세 때, 하워드 러트닉은 한국 관세 인상을 주도한 가운데 엡스타인 의혹으로 사퇴 압박을 받았다.
- 2026년 02월 10일, 64세 때, 하워드 러트닉은 엡스타인 의혹에 대한 거짓 해명 논란으로 사임 압박에 직면했다.
- 2026년 03월 17일, 64세 때, 하워드 러트닉은 한미 기업 데이터센터 협약식에 참석했다.
- 2026년 03월 19일, 64세 때, 하워드 러트닉은 지분 매각을 위해 테더에서 대출을 받았다는 이해상충 논란에 휩싸였다.
- 2026년 04월 03일, 64세 때, 하워드 러트닉은 트럼프 대통령의 신뢰를 잃으며 내각 개편 및 해고 가능성이 제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