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자리개띠戊 무토토(土)
전통 명리·점성술의 일반 설명
무토(戊土) · 큰 산·너른 대지움직이지 않는 큰 산에 비유된다.
처녀자리 · 8.23~9.22분석력과 세심함, 완벽을 향한 근면함이 흔히 언급되는 특징이다.
개띠충직함과 정의감, 책임을 다하는 성실함이 흔히 언급되는 특징이다.
토(土) · 흙·대지받아들이고 중재하는 힘, 신뢰와 중심, 신(信)의 기운으로 설명된다.

아래 설명은 전통 명리학·점성술에서 각 기호에 흔히 붙는 일반적 설명입니다. 개인의 성격이나 미래를 판정하는 근거가 아니며, 라이프러리는 이를 사실 데이터와 분리해 "해석"으로만 다룹니다.

丙戌
연주
丙申
월주
戊寅
일주
시주 (미계산)
1
2
2
1
0
삼주 기준 6글자
대운(大運) · 순행
丁酉
4세~
戊戌
14세~
己亥
24세~
庚子
34세~
辛丑
44세~
壬寅
54세~
癸卯
64세~
甲辰
74세~
乙巳
84세~

대운(大運)은 명리학에서 10년 단위로 바뀌는 흐름을 가리키는 개념입니다. 라이프러리는 이를 예측이 아니라 "그 10년을 전통 명리학이 어떤 시기로 설명하는가"와 "실제 라이프 카운트에 무엇이 기록돼 있는가"를 나란히 놓는 용도로만 씁니다.

출생시각 미확인 — 시주(時柱)는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삼주 기준입니다.

10대

1946丙戌
  • 1946년 9월 1일, 0세 때, 노무현은 경상남도 김해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과수 농사를 짓던 아버지 노판석과 어머니 이순례의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 1946년 09월 01일(음력 8월 6일), 0세 때, 노무현은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에서 아버지 노판석과 어머니 이순례의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 1946년 09월 01일, 0세 때, 노무현은 난산 끝에 남산병원 원장이 집게로 끌어내는 방식으로 태어났으며, 이때 생긴 자국이 어린 시절 머리와 어깨에 한동안 남아 있었다.
1950庚寅
  • 1950년, 4세 때, 노무현은 손재주가 좋은 작은형이 만들어준 스케이트·팽이·새총 등의 장난감을 울음으로 요구해 손에 넣곤 했으며, "엉엉 울기만 하면 언제든지 내 것"이 되었다고 회고했다.
1951辛卯
  • 1951년경, 6세 때, 노무현은 아버지에게 배운 천자문을 모두 외워 '노천재'라는 별명을 얻었다.
1952壬辰
  • 1952년, 6세 때, 노무현은 아버지에게 배운 천자문을 모두 외워 주변에서 '盧천재'라는 소리를 들었다.
  • 1952년, 6세 때, 노무현은 봉화산 일대로 소풍 나온 읍내 학생들이 집으로 찾아와 구경할 만큼 어린 시절부터 소문난 아이였다.
1953癸巳
  • 1953년, 8세 때, 노무현은 진영대창국민학교에 입학해 1학년 67명 중 2등을 했다.
  • 1953년, 6세 때, 노무현은 작고 야무진 모습 때문에 '돌콩'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 1953년, 6세 때, 노무현은 봉화산과 들판을 놀이터 삼아 친구들과 어울려 칡을 캐고 물장구를 치며 뛰어놀았다.
  • 1953년, 6세 때, 노무현은 자왕골 등 야산을 누비며 산천초목의 이름을 익혔고, 훗날 대통령이 되어서도 '삼지구엽초' 같은 낯선 식물명을 예사로 거론했다.
  • 1953년, 6세 때, 노무현은 겨울철 드물게 눈이 내리면 마을 친구들과 함께 봉하마을을 천국처럼 누비며 놀았다.
1954甲午
  • 1954년, 9세 때, 노무현은 2학년 62명 중 1등을 했다.
  • 1954년, 7세 때, 노무현은 새 학용품을 주문할 형편이 되지 않아 누나가 쓰던 찌그러진 필통을 물려받아 사용했다.
1956丙申
  • 1956년, 9세 때, 노무현은 대창초등학교 4학년 학급 임원을 맡아 자습 시간에 급우들의 학습을 지도했다.
  • 1956년, 9세 때, 노무현은 대창초등학교 4학년 담임 김종대 선생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 1956년, 9세 때, 노무현은 학급 급장으로서 어수룩한 짝꿍을 꾀어 그 아이의 새 필통과 자신의 낡은 필통을 맞바꾸었으나, 친구들의 비난을 받고 결국 필통을 되돌려주었다.
  • 1956년, 9세 때, 노무현은 초등학교 시절 학교 친구들에게서 "자유당은 나쁜 놈들"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 1956년, 9세 때, 노무현은 큰형의 방에 있는 잡지와 책을 읽고 유행가를 따라 부르곤 했다.
1957丁酉
  • 1957년, 10세 때, 노무현은 체육 시간 당번을 서던 중 친구와 함께 교실에 있던 새 가방을 면도칼로 찢었으며, 담임 선생님의 추궁에도 끝내 자백하지 않았다.
  • 1957년, 10세 때, 노무현은 "두뇌 명민하고 자발성이 풍부하여 성인답다. 학과 성적도 대단히 좋으나 좀 게으르다"라고 기록되었다.
  • 1957년, 10세 때, 노무현은 과수원 복숭아를 판 돈에 손을 대 하모니카를 샀다가 발각되었고, 부모가 죄 없는 작은형을 의심하는 것을 보고 다음날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구한 뒤 다시는 그런 버릇을 되풀이하지 않았다.
1958戊戌
  • 1958년, 13세 때, 노무현은 초등학교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해 502표 중 302표를 얻어 당선됐다.
  • 1958년, 11세 때, 노무현은 "두뇌 명민하고 성인다운 행동을 하여 학과 성적은 우수하나 신체가 약하다"라고 기록되었다.
  • 1958년, 11세 때, 노무현은 대창초등학교 6학년 담임 신종생 선생에게 휴일과 방학에도 학교로 불려가 공부를 배웠고, 통학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선생의 자취방에서 자고 밥을 얻어먹기도 했다.
  • 1958년, 11세 때, 노무현은 신종생 선생의 전교회장 선거 출마 권유를 처음엔 거절하며 버텼으나, "바보 같은 놈, 그런 용기도 없어"라는 선생의 실망 섞인 질책에 자극받아 결국 출마를 결심했다.
  • 1958년, 11세 때, 노무현은 전교회장 선거 정견 발표를 위해 밤을 새워 원고를 준비했고, 발표 자리에서 키가 작아 얼굴이 연단에 가려지자 "내가 이래 고추가 작아도 맵습니다"라는 말로 좌중을 웃겼다.
1959己亥
  • 1959년, 14세 때, 노무현은 진영중학교 입학금을 마련하지 못했으나 큰형 노영현이 학교에 항의해 입학 문제를 해결했다.
  • 1959년 02월 10일, 12세 때, 노무현은 우수 학생으로 교육감상을 받으며 대창초등학교를 졸업했다.
  • 1959년 03월 02일, 12세 때, 노무현은 진영중학교에 입학했다.
  • 1959년, 12세 때, 노무현은 진영중학교 1학년 재학 중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작문 문제로 학교에서 소란이 벌어지자, 전학을 권하는 큰형과 가서 빌라고 요구하는 어머니 사이에 놓였다.
  • 1959년 03월, 12세 때, 노무현은 진영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어머니가 교사인 큰형수에게 부탁해 마련한 입학금을 큰형수가 큰형님에게 돌려달라고 하자 자존심이 상한 큰형님이 돈을 돌려주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1960庚子
  • 1960년 2월, 15세 때, 노무현은 이승만 전 대통령을 찬양하는 작문 대회 참여를 거부하는 백지동맹을 주동해 1주일간 정학 처분을 받았다.
  • 1960년, 13세 때, 노무현은 훗날 누군가 가훈을 물으면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갈대처럼 살아라"가 우리 집 가훈이라고 냉소적으로 답하곤 했다.
  • 1960년 02월, 13세 때, 노무현은 이승만 대통령의 생일을 앞두고 진영중학교에서도 열린 찬양성 글짓기대회를 부당하다고 여겨 백지를 내자고 급우들을 선동했고, 급우들 모두가 백지를 내도록 했다.
  • 1960년 02월, 13세 때, 노무현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답안지에 '우리 이승만(택)통령'이라 쓰고 이름을 적어 냈고, 이를 감독하던 여자 선생이 울음을 터뜨렸다.
  • 1960년 02월, 13세 때, 노무현은 괘씸죄에 걸려 교무실에서 종일 벌을 섰고, 벌을 서던 중 교감으로부터 "이놈 역적 아니야? 역시 못된 놈은 할 수 없구먼"이라는 면박을 들었다.
1961辛丑
  • 1961년, 16세 때, 노무현은 공납금을 마련하지 못해 중학교를 1년간 휴학했다가 부일장학회 장학금에 합격해 복학했다.
  • 1961년, 14세 때, 노무현은 진영중학교 3학년 재학 중 몸이 좋지 않아 1년간 휴학할 수밖에 없었다.
1962壬寅
  • 1962년, 15세 때, 노무현은 고등학교 때까지 급우들 가운데 키가 가장 작았으며, 어머니는 제대로 먹이지 못해 키가 크지 못했다며 늘 가슴 아파했다.
  • 1962년, 15세 때, 노무현은 진영중학교 3학년 시절 부일장학생 시험에 합격해 장학금을 받았다.
  • 1962년, 16세 때, 노무현은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가난한 집안 형편을 고려해 돈 버는 일에 몰두하는 것이 자신과 집안을 위해 바람직하다고 판단하고, 5급 공무원(현 9급 공무원)이 되기로 마음먹어 아무에게도 내색하지 않은 채 관련 서적을 사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 1962년, 16세 때, 노무현은 큰형님 노영현이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고등학교 입학을 강권하자 결국 큰형님의 조언을 받아들여 부산상고 진학을 택했다.
1963癸卯
  • 1963년, 18세 때, 노무현은 고등고시를 독학으로 준비하려 했으나 큰형의 강한 권유로 부산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해 부산으로 유학했다.
  • 1963년, 18세 때, 노무현은 범일동의 한 소화기 판매회사 사무실에서 야간 경비를 서며 라면으로 숙식을 해결했다.
  • 1963년 03월 02일, 16세 때, 노무현은 지금의 개성고등학교인 부산상업고등학교에 입학했다 — 대학 진학은 꿈도 꾸지 못할 처지였고, 상고를 졸업해 농협에 취직하는 것이 최상의 길이었다.
  • 1963년 03월, 16세 때, 노무현은 말쑥한 차림의 은행원이 된 자신을 꿈꾸기 시작하며 그것을 가난에서 벗어나는 성공의 첫걸음으로 여겼다.
  • 1963년 03월, 16세 때, 노무현은 진영읍을 떠나 부산 곳곳을 전전하며 3년 내내 하숙, 자취, 입주 가정교사, 빈 공장 숙직실 등 한 푼이라도 싼 곳을 찾아 다녔고, 영주동 작은누님 집에 신세를 진 날도 많았다.
1964甲辰
  • 1964년, 19세 때, 노무현은 고등학교 2학년 시절 방황하며 성적이 502명 중 48등에서 213등으로 떨어졌다.
  • 1964년, 17세 때, 노무현은 초량동에 사는 급우의 집에서 식사 신세를 지거나 가끔 기숙했고, 그마저 여의치 않으면 학교 인근 '아세아독서실'에서 공부하며 잠을 잤다.
  • 1964년, 17세 때, 노무현은 미래의 꿈보다 현실의 고통에 아파하며 공부와 먼 길을 걷기 시작해 때로는 시험을 치르지 않고 도망가기도 했고 술과 담배도 배웠으며, 성적이 형편없이 추락해 중간도 되지 못하는 수준이 됐다.
  • 1964년, 17세 때, 노무현은 힘겨움이 최고조에 달하던 시절 어머니에게 "어머니, 이 넓은 세상에 송곳 하나 꽂을 땅조차 없습니다"라며 원망 섞인 하소연의 편지를 썼다.
1965乙巳
  • 1965년, 20세 때, 노무현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취업을 위해 주산·부기·타자 자격증을 취득해 성적을 462명 중 59등으로 끌어올렸다.
  • 1965년, 18세 때, 노무현은 사법시험을 준비하다 결혼 후 중단하고 실업자 생활을 이어간 큰형의 모습에서 좌절을 지켜보았다.
  • 1965년, 18세 때, 노무현은 독서실 총무의 지나친 기강 잡기에 반발해 독서실 책상 위에 올라가 총무의 횡포를 규탄하는 연설을 했고, 이 일로 독서실 분위기가 바뀌면서 총무와의 관계는 오히려 좋아졌다.
  • 1965년, 18세 때, 노무현은 이 독서실 총무였던 부산상고 1년 후배 최도술과 인연을 맺어, 훗날 그를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으로, 국회의원 시절에는 보좌관으로, 대통령 재임 때는 청와대 총무비서관으로 각각 함께했다.
  • 1965년 11월, 19세 때, 노무현은 졸업을 앞두고 있던 초겨울 아무 데도 갈 곳이 없어 학교 교실에서 두 밤을 혼자 지내며 밤새 이를 악물고 떨면서 추위를 견뎠고, 다음 날은 이가 아파 밥을 한 숟갈도 먹지 못했다.

20대

1966丙午
  • 1966년, 21세 때, 노무현은 부산상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 1966년, 21세 때, 노무현은 대학 진학 대신 농업협동조합 입사시험에 응시했으나 낙방했다.
  • 1966년, 21세 때, 노무현은 어망 제조업체 삼해공업에 취직했으나 저임금과 과도한 노동시간으로 한 달 반 만에 퇴사했다.
  • 1966년, 21세 때, 노무현은 고향으로 돌아와 작은형 노건평과 함께 사법시험 준비를 위한 흙집 마옥당을 지었다.
  • 1966년, 21세 때, 노무현은 예비시험 응시 자격을 얻기 위해 책값을 벌 목적으로 울산 한국비료 공장 건설 현장에서 막노동을 했다.
1967丁未
  • 1967년, 20세 때, 노무현은 법률 서적을 살 형편이 되지 않아 사법시험 준비 대신 예비시험 과목을 새로 공부하다가 이듬해 군에 입대했다.
1968戊申
  • 1968년 3월 7일, 23세 때, 노무현은 대한민국 육군에 입대해 강원도 원주 제1야전군사령부에서 행정병으로 복무를 시작했다.
  • 1968년 03월 05일, 21세 때, 노무현은 노무현은 육군에 입대해 창원 제39사단의 훈병으로 입소했다.
  • 1968년 03월 07일, 21세 때, 노무현은 군번 '51053545'를 받았다(이병 월급 390원이던 시절).
  • 1968년 03월, 21세 때, 노무현은 원주 제1야전군사령부 부관부에서 첫 군 생활을 시작했는데, 시도 때도 없는 '사역 집합'에 시달리면서도 군기가 바짝 든 신병으로 구호가 떨어지면 제일 먼저 뛰어나갔고, 때로는 연병장에서 클로버를 뽑는 비교적 편한 사역을 맡기도 했다.
  • 1968년 11월, 22세 때, 노무현은 눈이 드문 고향과 달리 눈이 많이 내리는 부대에서 그해 첫눈을 마주하자 들뜬 마음에 "와, 눈 한번 멋지게 내린다"고 무심코 탄성을 내질렀다가 선임병에게 혼쭐이 났다.
1969己酉
  • 1969년, 24세 때, 노무현은 스스로 전방 근무를 자원해 인제군 제12보병사단 제52보병연대에 배속돼 정보상황병으로 근무했다.
  • 1969년, 22세 때, 노무현은 원주 제1야전군사령부 부관부에서 담뱃값 정도만 챙길 수 있는 근무를 1년가량 하다가 부대 일부를 전방으로 차출한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지원해 제12사단으로 옮겨 갔다.
  • 1969년, 22세 때, 노무현은 호기롭게 자원했지만 막상 버스로 이동하는 도중 자신감을 잃었고, 사방이 가파른 산으로 둘러싸여 하늘이 손바닥만 하게 보이는 첩첩산중에 도착해서야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라는 말을 실감했다.
  • 1969년, 22세 때, 노무현은 사령부 부관부에서 고생한 경험 때문에 일반 보병중대 배속을 희망했으나, 대대 CP에서 대기하던 중 휴가를 떠나는 선배들이 "중대에서는 근무 중 졸면 목을 베어 간다"며 겁을 준 탓에 결국 대대장 당번병으로 배속되어 건봉산 대대 상황실에서 몇 달 동안 생활했다.
  • 1969년, 22세 때, 노무현은 대대 상황실 근무 중 철책 근무를 서는 보직은 아니어서 그런대로 나은 편이었지만 휴일 없이 밤을 꼬박 새우고 낮에는 새우잠을 자야 했고, 특히 물을 길어 올리는 일을 힘겨워했다.
1970庚戌
  • 1970년, 23세 때, 노무현은 이후 전방 철책 중대로 이동해 중대 본부에서 근무하다가 마침내 소대까지 내려가 철책과 GP 근무를 마친 뒤 제대했다.
  • 1970년, 23세 때, 노무현은 밤중에 철책선 근무를 나갔던 어떤 날 13시간을 근무하며 실탄 80발을 허리에 차고 4킬로그램짜리 M1 소총을 들고 12시간 동안 보초를 섰고, 낮에는 사역과 김치 담그기, 벙커 만들기까지 해야 해 의욕만큼 현실이 녹록지 않았다.
  • 1970년, 23세 때, 노무현은 GP 근무를 4개월 정도 하면서 군기를 경험함과 동시에 그 이상의 전우애도 느꼈는데, 실탄을 지니고 근무해 긴장도가 매우 높았던 가운데서도 동료들이 서로 이해하고 협력하는 분위기 속에서 인간 본성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되었다.
1971辛亥
  • 1971년 1월 23일, 26세 때, 노무현은 34개월간의 현역 복무를 마치고 상등병으로 전역했다.
  • 1971년 01월, 24세 때, 노무현은 입대 당시 발생한 김신조 사건의 여파로 애초 30개월로 예정됐던 복무기간이 34개월 반으로 늘어난 끝에, 베트남전쟁 참전자가 많아 병장 계급장은 달지 못한 채 상병으로 만기 제대했다.
  • 1971년 01월, 24세 때, 노무현은 제대해 고향으로 돌아왔고, 두 형님이 5급 공무원이 된 덕분에 나아진 집안 형편 속에서 다시 사법시험 준비에 몰두하기로 했다.
  • 1971년 04월, 24세 때, 노무현은 뱀산의 마옥당을 수리하고 공부에 집중했다.
  • 1971년 05월 02일, 24세 때, 노무현은 3급 공무원(현 행정고시) 제1차 시험에 합격하며 본격적인 사법시험 준비로 전환했다.
1972壬子
  • 1972년, 25세 때, 노무현은 8개월 정도 준비한 끝에 사법시험 제2차 시험에 응시해 평균 50점을 넘는 점수를 받았으나 합격하지 못했고, 이후 다시 대여섯 달을 허비했다.
  • 1972년 06월 00일, 25세, 노무현은 8개월간 준비한 끝에 제14회 사법시험 제2차 시험에 응시해 평균 50점을 넘는 점수를 받았다.
  • 1972년 00월 00일, 25~26세, 노무현은 다음에는 합격할 수 있으리라 여기며 이후 대여섯 달을 허비했다.
  • 1972년 09월 00일, 26세, 노무현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김해의 장유암이라는 절에 들어갔다.
  • 1972년 09월 00일, 26세, 노무현은 장유암에서 훗날 청와대 민정수석이 된 박정규, 총무비서관이 된 정상문과 함께 사법시험을 준비했다.
1973癸丑
  • 1973년 1월, 28세 때, 노무현은 양가의 반대를 무릅쓰고 권양숙과 결혼했다.
  • 1973년 5월, 28세 때, 노무현은 결혼 4개월 만에 아들 노건호를 얻었다.
  • 1973년 5월, 28세 때, 노무현은 아들이 태어난 지 여드레 만에 교통사고로 큰형 노영현을 잃었다.
  • 1973년, 28세 때, 노무현은 제15회 사법시험에 응시했으나 극심한 긴장 속에 낙방했다.
  • 1973년 00월 00일, 26세, 노무현은 국사 과목이 추가되어 시험 부담이 늘었으나 제15회 사법시험이 7월로 연기되면서 한시름을 놓았다.
1974甲寅
  • 1974년, 29세 때, 노무현은 별다른 준비 없이 제16회 사법시험에 재도전했으나 다시 낙방했다.
  • 1974년 00월 00일, 27~28세, 노무현은 부담 없이 치른 제16회 사법시험에서 제15회 때보다 못한 130위 정도의 성적으로 낙방했다.
1975乙卯
  • 1975년 1월, 30세 때, 노무현은 제17회 사법시험을 앞두고 낮에는 공부하고 밤에는 귀가하는 규칙적인 생활로 마음을 다잡았다.
  • 1975년 3월 27일, 30세 때, 노무현은 제17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그해 합격자 중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순수 고졸 출신은 그가 유일했다.
  • 1975년, 30세 때, 노무현은 제7기 사법연수원에 입소해 60명 중 47등으로 수료했다.
  • 1975년 03월 27일, 28세 때, 노무현은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 1975년 05월 00일, 28세, 노무현은 자신이 고안한 개량 독서대를 특허국(현 지식재산처)에 등록해 실용신안을 출원했다.

30대

1976丙辰
  • 1976년 01월 17일, 29세 때, 노무현은 아버지 노판석의 별세를 겪었다.
1977丁巳
  • 1977년, 32세 때, 노무현은 대전지방법원 판사로 임용됐다.
  • 1977년 12월, 32세 때, 노무현은 경제적인 이유로 7개월 만에 판사직을 사임했다.
1978戊午
  • 1978년 5월, 33세 때, 노무현은 부산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열고 조세 전문 변호사로 활동을 시작했다.
  • 1978년, 33세 때, 노무현은 등기 업무까지 취급해 부산 지역 사법서사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1980庚申
  • 1980년대의 20대들은 철저한 이념 논리로 무장한 채 최루탄 연기 속에서도 늘 자신들의 영웅을 만들어내곤 했다. 1990년대의 20대들은 선배들의 사상 강요를 지겨워하며 보디가드 커피숍에서 서태지와 김동률을 듣곤 했다.
1981辛酉
  • 1981년, 36세 때, 노무현은 김광일 변호사의 부탁으로 부림 사건 변호인단에 합류했다.
  • 1981년, 36세 때, 노무현은 부림 사건 피해자를 면회하던 중 고문 흔적을 발견한 뒤 변론에 전력을 다해 인권 변호사로 거듭났다.
1985乙丑
  • 1985년, 40세 때, 노무현은 부산민주시민협의회 상임위원장을 맡고 자신의 사무실에 노동법률상담소를 열었다.

40대

1987丁卯
  • 1987년, 42세 때, 노무현은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부산본부 상임집행위원장을 맡아 6월 민주항쟁에 앞장섰다.
  • 1987년, 42세 때, 노무현은 연설 도중 전경이 쏜 최루탄에 맞아 기절했다가도 마이크를 놓지 않고 연설을 이어갔다.
  • 1987년 8월, 42세 때, 노무현은 거제 대우조선 노동자 이석규 사망 사건과 관련해 제3자 개입 혐의로 구속됐으나 법원의 영장 기각으로 석방됐다.
  • 1987년 11월, 42세 때, 노무현은 변호사 업무정지 처분을 받았다.
1988戊辰
  • 1988년 4월, 43세 때, 노무현은 김영삼의 권유로 통일민주당에 입당해 부산 동구에 출마, 5공 실세 허삼수 후보를 꺾고 제13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 1988년, 43세 때, 노무현은 5공 비리 특별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정주영, 장세동 등을 상대로 날카로운 질의를 벌여 '청문회 스타'로 떠올랐다.
  • 1988년, 43세 때, 노무현은 전두환 전 대통령과의 청문회 뒤 의혹이 남았다며 명패를 국회 단상에 내던졌다.
  • 1988년, 41세 때, 노무현은 정치인이 된 후에야 군 생활 중 품었던 회의적인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1990庚午
  • 1990년대는 낀 시대였다. 이념과 민주화 같은 이전 시대의 가치는 퇴색했지만 새로운 가치들은 돋아나지 못했다. 90년대 학번들은 스스로를 내던질 가치를 구하기도 전에 물질에 현혹됐고 이내 엑스세대나 오렌지족으로 매도됐다.
  • 1990년 1월, 45세 때, 노무현은 3당 합당에 반대해 김영삼과 결별하고 통일민주당 잔류 세력과 함께 민주당을 창당했다.
1992壬申
  • 1992년 3월, 47세 때, 노무현은 민주당 후보로 부산 동구에 재출마했으나 4년 전 꺾었던 허삼수와의 재대결에서 낙선했다.
1995乙亥
  • 1995년, 50세 때, 노무현은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부산광역시장 후보로 출마했으나 민주자유당 문정수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다.

50대

1996丙子
  • 1996년, 51세 때, 노무현은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종로구에 출마했으나 이명박, 이종찬에 밀려 3위로 낙선했다.
  • 1996년, 51세 때, 노무현은 낙선 후 김원기, 이부영 등과 함께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를 결성했다.
1997丁丑
  • 1997년, 52세 때, 노무현은 통추의 노선 분열 속에서 한나라당행 대신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해 부총재를 맡으며 김대중의 당선에 힘을 보탰다.
1998戊寅
  • 1998년 2월, 53세 때, 노무현은 이명박 의원의 사퇴로 공석이 된 종로구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서울시장 출마 계획을 접었다.
  • 1998년 7월, 53세 때, 노무현은 종로구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돼 6년 만에 국회로 복귀했다.
  • 1998년 02월 18일, 51세 때, 노무현은 어머니 이순례의 별세를 겪었다.
2000庚辰
  • 2000년 4월, 55세 때, 노무현은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종로 대신 지역주의 타파를 내걸고 부산 북·강서을에 출마했으나 허태열 후보에게 밀려 35.69% 득표율로 낙선했다.
  • 2000년, 55세 때, 노무현은 이 낙선을 계기로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지지자들은 인터넷 모임 노사모를 결성했다.
  • 2000년 8월 7일, 55세 때, 노무현은 해양수산부 장관에 취임하며 "매는 제가 맞겠습니다"라는 취임사로 직원들의 책임 부담을 덜어주겠다고 밝혔다.
2001辛巳
  • 2001년 3월, 56세 때, 노무현은 해양수산부 장관직에서 물러난 뒤 새천년민주당 상임고문으로 정치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활동했다.
  • 2001년 12월, 56세 때, 노무현은 제16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하고 새천년민주당 경선 레이스에 참여했다.
2002壬午
  • 2002년 3월, 57세 때, 노무현은 이인제의 대선 출마를 막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경선에 뛰어들어 '노풍'을 일으키며 역전에 성공했다.
  • 2002년 4월 27일, 57세 때, 노무현은 새천년민주당 국민경선을 통해 제16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선출됐다.
  • 2002년 6월, 57세 때, 노무현은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이 참패하자 후보 재신임을 물었고 당무 회의는 만장일치로 재신임했다.
  • 2002년 11월, 57세 때, 노무현은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와의 여론조사 방식 후보 단일화에서 승리해 단일 후보로 추대됐다.
  • 2002년 12월 18일, 57세 때, 노무현은 정몽준이 대선 전날 밤 지지를 철회하자 그의 자택을 직접 찾아갔으나 문전박대당했다.
2003癸未
  • 2003년 2월 25일, 58세 때, 노무현은 국회의사당 앞마당에서 열린 취임식을 통해 제16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 2003년 3월, 58세 때, 노무현은 미국의 요청에 따라 국익을 이유로 이라크 파병을 결정했다.
  • 2003년~2008년, 56~61세 때, 노무현은 대통령 재임 기간(2003~2008년) 중 부당하게 빼앗긴 정수장학회를 유족에게 되돌려주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역부족으로 원상회복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를 "장물"이라 표현하며 "거사 자금을 대주지 않았다고 군사쿠데타 세력이 반지를 밀수품으로 몰아 구속한 뒤 재산을 빼앗는 방식으로 보복했다"고 형님에게 들었던 대로 회고했다.
  • 2003년~2008년, 56~61세 때, 노무현은 대통령 재임 중에는 군생활을 편안하게 회고할 여유가 그다지 많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어려움을 견디며 환경을 극복하는 방법을 배웠다.
  • 2003년~2008년, 56~61세 때, 노무현은 대통령 재임 중 군 시절 이야기를 소개하며, 야전삽 하나와 곡괭이 하나만 받아 벙커를 지으라는 지시에 전쟁 때 쳐놓았던 유자망을 철사 삼고 통나무를 엮어 귀틀집 같은 벙커를 만들었던 일화를 들려주곤 했다.
2004甲申
  • 2004년 3월 9일 화요일 오후 6시 27분 한나라당 의원 108명+새천년민주당 의원 51명이 서명한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 보고됐다.
  • 2004년 3월 10일 수요일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발의됐다.
  • 2004년 3월 11일 목요일 오전 10시 노무현은 기자회견을 열었다.
  • 2004년 3월 11일 목요일 오후 12시 30분 경 남상국 대우건설 사장은 한남대교에서 투신 자살했다.
  • 2004년 3월 11일 목요일 밤부터 2004년 3월 12일 금요일 새벽까지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은 한나라당+새천년민주당+자유민주연합과 심야회동을 하면서+탄핵소추안 통과를 막으려고 했지만+”대화를 물 건너 갔다”는 답변만 들었다.
2005乙酉
  • 2005년 8월, 60세 때, 노무현은 광복 60주년을 맞아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를 포함한 서훈을 지시했다.

60대

2007丁亥
  • 2007년 10월 2일~4일, 62세 때, 노무현은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2차 남북정상회담을 갖고 10·4 남북공동선언을 발표했다.
2008戊子
  • 2008년 2월 25일, 63세 때, 노무현은 오전 10시 30분 청와대 직원들과 작별한 뒤 후임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하고 KTX를 타고 고향 김해 봉하마을로 귀향했다.
  • 2008년, 63세 때, 노무현은 공장 폐수로 오염된 화포천 정화를 위해 주민, 지지자들과 함께 쓰레기를 수거했다.
  • 2008년, 63세 때, 노무현은 외국 전문가를 초청해 친환경 오리 농법을 도입하고 마을 주민들에게 전수했다.
  • 2008년, 63세 때, 노무현은 장군차를 재배해 봉하마을의 특산물로 만들었다.
  • 2008년, 63세 때, 노무현은 일주일에 6일씩 정해진 시간에 방문객들과 만나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눴다.
2009己丑
  • 2009년 2월, 64세 때, 노무현은 자신이 정화에 힘써온 화포천이 국토해양부의 '아름다운 하천 100선'에 선정되는 성과를 거뒀다.
  • 2009년, 64세 때, 노무현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자녀들의 주택 자금 등 명목으로 금품을 수수했다는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
  • 2009년 5월 23일, 64세 때, 노무현은 김해 봉하마을 뒷산 봉화산의 부엉이바위에서 투신해 사망했다.
  • 2009년 5월, 64세 때, 노무현은 사망 며칠 뒤 국민장으로 영결식이 치러지며 안장됐다.
  • 2009년 05월 23일, 62세 때, 노무현은 서거했으며, 이후 봉하마을에는 그의 묘역과 각종 추모시설이 차례로 조성되었다.

70대

2024甲辰
  • 2024년 3월 11일 목요일 오후 12시 10분 대우건설 법무팀장은 남상국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가 안되자+대우건설 비자금 수사를 담당하던 채동욱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에게 전화했고+경찰이 한남대교 남단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 2024년 3월 11일 목요일 오후 12시 25분 남산 소방방재센터로=한남대교에서 한 남자가 투신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80대

2026丙午
  • 2026년 04월 01일, 80세 때, 전재수가 부산시장 출마 선언 후 봉하마을 묘역을 참배했다.
  • 2026년 04월 02일, 80세 때, 사위 곽상언이 민주당의 정치적 기준에 대해 노무현의 정치를 소환했다.
  • 2026년 04월 03일, 80세 때, 노무현의 진보적 성향이 리버럴에 가까웠다는 평가가 보도되었다.
  • 2026년 04월 04일, 80세 때, 민주당 내에 노무현의 정치적 흔적만 남아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 2026년 04월 05일, 80세 때, 진보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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