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2024년 12월 29일 조지아주 플레인스 자택에서 약 2년간의 호스피스 돌봄 끝에 100세로 별세. 2025년 1월 9일 워싱턴 국립대성당 국장 후 플레인스 자택에 안장
국적 미국
출생지미국 조지아주 플레인스
직업정치인 (미국 제39대 대통령)
주요 경력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잠수함 장교로 복무하며 리코버의 핵잠수함 계획에 참여했고, 1953년 부친 사망 후 고향 플레인스로 돌아가 땅콩 사업을 이어받았다. 조지아주 상원의원(1963~1967)과 제76대 조지아 주지사(1971~1975)를 거쳐 1976년 대선에서 제럴드 포드를 꺾고 제39대 대통령(1977~1981)이 됐다. 재임 중 파나마운하 조약, 캠프데이비드 협정, 미·중 수교, SALT II 서명을 이끌었으나 이란 인질 사태 속에 1980년 재선에 실패했다. 퇴임 후 1982년 카터 센터를 세워 분쟁 중재·선거 감시·질병 퇴치에 힘썼고, 1994년 방북으로 1차 북핵 위기 해소에 관여했으며 해비타트 집짓기 봉사를 이끌었다. 2002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핵심 역할제39대 미국 대통령(1977~1981), 제76대 조지아 주지사(1971~1975), 조지아주 상원의원(1963~1967), 카터 센터 공동 설립자(1982~)
소속민주당, 미국 해군, 카터 센터, 디엘더스
소속 정당민주당
업적파나마운하 조약(1977), 캠프데이비드 협정(1978), 미·중 국교 정상화(1979), 연방 에너지부·교육부 신설, 해비타트 카터 워크 프로젝트
대표 업적캠프데이비드 협정
대표 저서동트기 한 시간 전(An Hour Before Daylight)
수상노벨평화상(2002), 대통령 자유훈장(1999), 유엔 인권상(1998)
소개지미 카터는 조지아주 플레인스에서 땅콩 농사를 짓던 집안의 맏이로 태어나 해군 잠수함 장교로 일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고향으로 돌아가 가업을 잇다가 주 상원의원과 조지아 주지사를 거쳐 1977년 제39대 미국 대통령에 올랐다. 재임 중 캠프데이비드 협정으로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평화를 중재했지만 이란 인질 사태와 경제난 속에 1980년 재선에 실패했다. 퇴임 후 카터 센터를 세워 평화 중재와 인권, 공중보건 활동을 이어가 2002년 노벨평화상을 받았고, 2024년 12월 29일 100세로 별세해 미국 역사상 가장 오래 산 대통령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