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
프로필로 돌아가기 →염소자리양띠辛 신금금(金)
전통 명리·점성술의 일반 설명
신금(辛金) · 보석·바늘·다듬어진 금속세공을 마친 보석과 날카로운 바늘에 비유된다.
염소자리 · 12.22~1.19목표 지향과 책임감, 오래 버티는 현실감이 흔히 언급되는 특징이다.
양띠온순함과 예술적 감수성, 배려심이 흔히 언급되는 특징이다.
금(金) · 쇠·결실가르고 마무리하는 힘, 결단과 원칙, 의(義)의 기운으로 설명된다.
아래 설명은 전통 명리학·점성술에서 각 기호에 흔히 붙는 일반적 설명입니다. 개인의 성격이나 미래를 판정하는 근거가 아니며, 라이프러리는 이를 사실 데이터와 분리해 "해석"으로만 다룹니다.
癸未
연주
乙丑
월주
辛巳
일주
—
시주 (미계산)
대운(大運) · 역행
甲子
4세~
癸亥
14세~
壬戌
24세~
辛酉
34세~
庚申
44세~
己未
54세~
戊午
64세~
丁巳
74세~
丙辰
84세~
대운(大運)은 명리학에서 10년 단위로 바뀌는 흐름을 가리키는 개념입니다. 라이프러리는 이를 예측이 아니라 "그 10년을 전통 명리학이 어떤 시기로 설명하는가"와 "실제 라이프 카운트에 무엇이 기록돼 있는가"를 나란히 놓는 용도로만 씁니다.
출생시각 미확인 — 시주(時柱)는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삼주 기준입니다.
10대
1944甲申
- 1944년 01월 18일, 0세 때,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은 빈에서 소련의 에스토니아 점령을 피해 독일을 거쳐 온 러시아계 아버지 알렉산더와 에스토니아인 어머니 알마 지볼트 사이에서 태어나 루터교 세례를 받았다.
1945乙酉
- 1945년 00월 00일, 1세 때,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은 붉은 군대가 빈으로 다가오자 가족과 함께 티롤주 카우너탈로 피란했고, 아버지는 그곳에서 다시 사업을 시작했다.
1954甲午
- 1954년 00월 00일, 10세 때,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은 인스브루크에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인스브루크 아카데미 김나지움에 진학했다.
1958戊戌
- 1958년 00월 00일, 14세 때,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은 부모와 함께 지니던 에스토니아 국적 대신 오스트리아 국적을 받았다.
1962壬寅
- 1962년 00월 00일, 18세 때,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은 아카데미 김나지움에서 마투라(졸업 시험)를 통과했다.
- 1962년 00월 00일, 18세 때,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은 18세에 교사 브리기테 휘트너와 결혼해 뒤에 아들 니콜라이와 플로리안을 두었다.
20대
1966丙午
- 1966년 00월 00일, 22세 때,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은 아버지처럼 인스브루크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공부해 학위를 받았다.
1968戊申
- 1968년 00월 00일, 24세 때,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은 인스브루크 대학교 재정학 연구소에서 클레멘스 아우구스트 안드레에의 연구 조수로 일하기 시작해 1971년까지 머물렀다.
1970庚戌
- 1970년 12월 00일, 26세 때,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은 집단 가계와 공익 기업의 조정 문제를 다룬 논문으로 인스브루크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2壬子
- 1972년 00월 00일, 28세 때,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은 서베를린의 베를린 사회과학연구센터(WZB)로 옮겨 1974년까지 연구원으로 일했다.
30대
1975乙卯
- 1975년 00월 00일, 31세 때,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은 재정학 분야에서 대학 교수 자격(하빌리타치온)을 얻었다.
1976丙辰
- 1976년 00월 00일, 32세 때,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은 인스브루크 대학교 부교수로 임명돼 1980년까지 재직했고, 1977년부터는 빈의 연방 행정아카데미에서도 강의와 연구를 병행했다.
1980庚申
- 1980년 00월 00일, 36세 때,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은 빈 대학교 경제학 교수가 돼 1999년까지 가르쳤다.
40대
1990庚午
- 1990년 00월 00일, 46세 때,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은 빈 대학교 사회경제학부 학부장을 맡아 1994년까지 일했다.
1992壬申
- 1992년 00월 00일, 48세 때,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은 녹색당 추천으로 회계감사원장 후보에 올랐으나 국민당 쪽 인사 프란츠 피들러에게 밀렸다.
50대
1994甲戌
- 1994년 11월 07일, 50세 때,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은 제19대 국민의회 회기 개원과 함께 녹색당 소속 국민의회 의원으로 의정 활동을 시작했다.
1997丁丑
- 1997년 12월 13일, 53세 때,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은 크리스토프 코어헤어의 뒤를 이어 녹색당 연방 대변인(당 대표)에 올라 2008년까지 약 11년 동안 당을 이끌었다.
1999己卯
- 1999년 00월 00일, 55세 때,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은 첫 총선을 지휘해 녹색당 득표율을 7.4%로 끌어올렸다.
- 1999년 10월 00일, 55세 때,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은 국민의회 녹색당 원내대표를 맡으면서 빈 대학교 교수직을 휴직했다.
2002壬午
- 2002년 00월 00일, 58세 때,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은 녹색당을 이끌고 치른 총선에서 득표율 9.5%를 거뒀다.
60대
2006丙戌
- 2006년 00월 00일, 62세 때,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은 총선에서 녹색당 득표율 11.05%를 기록해 세 차례 연속 득표율을 높였다.
2008戊子
- 2008년 10월 03일, 64세 때,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은 총선에서 녹색당 득표율이 10.11%로 내려앉자 당 대변인직에서 물러나 에파 글라비슈니히에게 넘겼다.
- 2008년 10월 28일, 64세 때,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은 녹색당 추천으로 자유당 마르틴 그라프와 국민의회 제3의장 자리를 겨뤘으나 27표에 그쳐 109표의 그라프에게 졌다.
2009己丑
- 2009년 02월 00일, 65세 때,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은 빈 대학교 교수직에서 은퇴했다.
2010庚寅
- 2010년 10월 10일, 66세 때,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은 빈 주의회 선거에 녹색당 명부 29번으로 나서 선호투표 11,952표를 얻어 명부 1위로 올라섰지만, 시의회 의석을 받지 않고 국민의회에 남았다.
2011辛卯
- 2011년 02월 00일, 67세 때,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은 빈 시정부로부터 대학·연구 담당 위원으로 선임돼 빈 시와 대학들의 협력 창구를 맡았다.
2012壬辰
- 2012년 06월 14일, 68세 때,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은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의회에서 빈 시의회·주의회로 자리를 옮기겠다고 발표했다.
- 2012년 07월 05일, 68세 때,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은 18년 가까이 지켜 온 국민의회 의석을 내려놓았다.
- 2012년 09월 00일, 68세 때,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은 여름 휴회 뒤 첫 회의에서 빈 시의회·주의회 의원으로 취임했다.
70대
2015乙未
- 2015년 00월 00일, 71세 때,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은 자서전 성격의 책 「자유의 기술」을 펴내 유럽연합 지지와 유럽 연방주의를 주장했다.
- 2015년 00월 00일, 71세 때,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은 50년 넘게 이어 온 브리기테와의 결혼 생활을 합의 이혼으로 마쳤다.
- 2015년 01월 00일, 70~71세 때,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은 그해 빈 시의회 임기가 끝나면 시정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이 공개됐다.
- 2015년 12월 00일, 71세 때,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은 오랜 친구이자 녹색당 의원단 사무총장을 지낸 도리스 슈미다우어와 재혼했다.
2016丙申
- 2016년 01월 08일, 71세 때,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은 영상 메시지를 내고 녹색당의 지원을 받는 무소속 후보로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 2016년 04월 24일, 72세 때,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은 대통령 선거 1차 투표에서 21.34%를 얻어 자유당 노르베르트 호퍼(35.05%)에 이어 6명 중 2위로 결선에 올랐다.
- 2016년 05월 23일, 72세 때,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은 전날 치른 결선 투표에서 우편투표를 포함한 최종 집계로 50.35%를 얻어 호퍼를 약 3만 1천 표 차로 앞서 당선이 확정됐다.
- 2016년 05월 23일, 72세 때,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은 초당파 대통령직을 내세워 녹색당 당원 자격을 정지했다.
- 2016년 07월 01일, 72세 때,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은 헌법재판소가 자유당의 이의 제기를 받아들여 우편투표 조기 개표 등 부정을 이유로 결선 결과를 전면 무효로 하면서 당선이 취소됐다.
2017丁酉
- 2017년 01월 26일, 73세 때,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은 오스트리아 연방대통령에 취임해 취임 연설을 마친 뒤 케른 정부를 접견하고 군 통수권자로서 군 의장 행사를 받았다.
2018戊戌
- 2018년 04월 07일, 74세 때,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은 세바스티안 쿠르츠 총리와 함께 기업인 약 170명을 포함한 250명 규모의 역대 최대 중국 국빈방문단을 이끌고 12일까지 시진핑 국가주석 등을 만났다.
2019己亥
- 2019년 00월 00일, 75세 때,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은 젊은 시절 떠났던 오스트리아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 개신교회에 다시 입교했다.
- 2019년 05월 22일, 75세 때,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은 이비자 스캔들로 쿠르츠 총리가 자유당과의 연정을 깨자 총리 요청에 따라 헤르베르트 키클 내무장관을 해임하고 나머지 자유당 장관들도 면직했다.
- 2019년 05월 28일, 75세 때,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은 국민의회의 불신임 의결을 받은 쿠르츠 정부를 제2공화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해임하고 하르트비히 뢰거 부총리에게 총리 직무대행을 맡겼다.
- 2019년 06월 03일, 75세 때,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은 브리기테 비어라인 헌법재판소장을 총리로 한 무소속 전문가 내각의 취임 선서를 받았다.
2020庚子
- 2020년 01월 07일, 75세 때,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은 국민당과 녹색당이 처음 손잡은 쿠르츠 2기 정부의 취임 선서를 받았다.
2021辛丑
- 2021년 05월 21일, 77세 때,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은 에스토니아의 테라 마리아나 십자 훈장 경식장을 받았다.
- 2021년 06월 24일, 77세 때,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은 헌법재판소 요청에 따라 이비자 조사위원회 자료 제출을 미룬 게르노트 블뤼멜 재무장관을 상대로 헌재 결정의 강제 집행을 공화국 사상 처음 명령했다.
- 2021년 10월 11일, 77세 때,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은 쿠르츠 총리 사임에 따라 알렉산더 샬렌베르크를 총리로 한 새 정부의 취임 선서를 받았다.
2022壬寅
- 2022년 05월 22일, 78세 때,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은 두 번째 임기에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 2022년 10월 09일, 78세 때,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은 대통령 선거 1차 투표에서 56.69%를 얻어 결선 없이 재선됐다.
2023癸卯
- 2023년 01월 26일, 79세 때,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은 두 번째 임기 대통령으로 취임 선서를 했다.
- 2023년 02월 01일, 79세 때,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은 대통령으로서 처음 우크라이나 키이우를 찾아 발전기를 전달하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회담했다.
- 2023년 03월 02일, 79세 때,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은 프라하성에서 밀로시 제만 체코 대통령과 최고 훈장을 교환해 백사자 훈장을 받았다.
80대
2024甲辰
- 2024년 10월 22일, 80세 때,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은 9월 총선에서 자유당이 제1당이 됐지만 다른 정당들이 연정을 거부하자, 관례를 깨고 제2당 국민당의 카를 네함머 총리에게 정부 구성을 맡겼다.
2025乙巳
- 2025년 01월 05일, 80세 때,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은 네함머가 연정 협상 실패로 물러나자 자유당 대표 헤르베르트 키클에게 국민당과의 정부 구성을 맡겼다.
- 2025년 03월 03일, 81세 때,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은 국민당·사회민주당·네오스 3당 연정인 크리스티안 슈토커 정부의 취임 선서를 받았다.
- 2025년 07월 04일, 81세 때,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은 시릴 라마포사 대통령의 초청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 국빈방문을 시작했다.
- 2025년 10월 21일, 81세 때,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은 독일 연방공로훈장 대십자 특급장을 받았다.
2026丙午
- 2026년 04월 14일, 82세 때,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사라예보를 방문해 의회 지도부를 만나고 보스니아의 유럽연합 가입을 지지했다.
- 2026년 09월 01일, 82세 때,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은 도리스 슈미다우어와 함께 인스브루크와 알프바흐에서 독일어권 국가 정상 회의를 주최해 독일·스위스 대통령, 벨기에·룩셈부르크 군주, 리히텐슈타인 세자 부부와 알프스 기후변화와 유럽의 미래를 논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