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선원
프로필로 돌아가기 →물고기자리토끼띠戊 무토토(土)
전통 명리·점성술의 일반 설명
무토(戊土) · 큰 산·너른 대지움직이지 않는 큰 산에 비유된다.
물고기자리 · 2.19~3.20감수성과 공감력, 상상력과 직관이 흔히 언급되는 특징이다.
토끼띠온화함과 예민한 감각, 갈등을 피하는 처세가 흔히 언급되는 특징이다.
토(土) · 흙·대지받아들이고 중재하는 힘, 신뢰와 중심, 신(信)의 기운으로 설명된다.
아래 설명은 전통 명리학·점성술에서 각 기호에 흔히 붙는 일반적 설명입니다. 개인의 성격이나 미래를 판정하는 근거가 아니며, 라이프러리는 이를 사실 데이터와 분리해 "해석"으로만 다룹니다.
癸卯
연주
甲寅
월주
戊戌
일주
—
시주 (미계산)
대운(大運) · 역행
癸丑
7세~
壬子
17세~
辛亥
27세~
庚戌
37세~
己酉
47세~
戊申
57세~
丁未
67세~
丙午
77세~
乙巳
87세~
대운(大運)은 명리학에서 10년 단위로 바뀌는 흐름을 가리키는 개념입니다. 라이프러리는 이를 예측이 아니라 "그 10년을 전통 명리학이 어떤 시기로 설명하는가"와 "실제 라이프 카운트에 무엇이 기록돼 있는가"를 나란히 놓는 용도로만 씁니다.
출생시각 미확인 — 시주(時柱)는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삼주 기준입니다.
10대
1963癸卯
- 1963년 1월 14일 월요일, 0세 때, 박선원은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면에서 3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1976丙辰
- 1976년, 13세 때, 박선원은 전라남도 나주 영산포초등학교를 졸업했다.
1979己未
- 1979년, 16세 때, 박선원은 전라남도 나주 영산포중학교를 졸업했다.
- 1979년, 16세 때, 박선원은 전라남도 나주 영산포상업고등학교에 입학했다.
- 1979년, 16세 때, 고등학교 1학년 박선원은 해외 유학을 가서 공부를 하는 꿈을 꿨다.
- 1979년 10월 26일 16세 때, 금요일, 대통령 박정희가 시해당했다.
- 1979년 10월 27일 16세 때, 토요일, 박선원의 아버지 박영식은 고등학교 1학년 아들 박선원에게 김대중 선생님이 돌아오실 것이라고 말했다.
1980庚申
- 1980년, 17세 때, 고등학교 2학년 박선원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광주사태로 언론에 의해 왜곡되는 현실을 경험했다.
- 1980년 5월, 17세 때, 고등학교 2학년 박선원은 광주에서 나주로 피난을 내려오는 사람들과 시체들을 직접 목격했다.
- 1980년 5월 17세 때, 고등학교 2학년 박선원은 민주화운동에 동참하기 위해 교련복을 입고 나무 몽둥이를 들고 광주로 향하는 학생들을 직접 목격했다.
- 1980년 5월 18일 일요일, 17세 때, 고등학교 2학년 박선원은 나주에서 3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전라남도 광주에서 벌어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접했다.
- 1980년 5월 25일 일요일, 17세 때, 전남 순천 태생인 미국계 한국인 인요한은 형 인세반과 함께 광주 도청에서 시민군과 외신의 기자회견을 통역했다.
1981辛酉
- 1981년, 18세 때, 고등학교 3학년 박선원은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한 교내시위를 주도했다.
- 1981년, 18세 때, 고등학교 3학년 박선원은 아버지에게 대한민국에서 벗어나기 위해 해외로 유학을 가겠다고 선언했다.
- 1981년, 18세 때, CIA 요원 리처드 롤리스는 주한미국대사관 소속 외교관으로서 화이트 요원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1982壬戌
- 1982년, 19세 때, 연세대학교 1학년 박선원은 연세대학교의 이념 서클 중 1970년에 결성돼 참된 민주주의를 공부하는 사회과학 동아리 목화회에 가입했다.
- 1982년, 19세 때, 연세대학교 1학년 박선원은 목화회가 전두환 군사 정권에 반대하는 시위를 가장 격렬하게 하기 때문에 선택했다.
- 1982년, 19세 때, 연세대학교 1학년 박선원은 입학 직후부터 전공인 경영학과 공부는 거의 하지 않았다.
- 1982년 2월, 19세 때, 박선원은 전남 나주 영산포상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 1982년 3월, 19세 때, 박선원은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20대
1983癸亥
- 1983년, 20세 때, 연세대학교 2학년 박선원은 전두환 군사 정권에 반대하는 데모에서 가장 선두에 서서 싸우는 전투 소조의 일원이었다.
- 1983년 1월 11일 화요일, 19세 때, 일본 총리 나카소네 야스지로는 전후 일본 총리로서는 최초로 한국을 공식 방문했다.
- 1983년 1월 11일 화요일, 19세 때, 일본 총리 나카소네 야스지로는 청와대에서 열린 공식 만찬에서 3분의 1 이상을 한국어로 연설했다.
- 1983년 1월 11일 화요일, 19세 때, 일본 총리 나카소네 야스지로는 청와대에서 열린 2차 연회에서 일본에서도 인기를 얻은 가수 한명숙의 노래 노란셔츠를 입은 사나이를 불렀다.
- 1983년 1월 11일 화요일, 19세 때, 대통령 전두환은 청와대에서 열린 2차 연회에서 일본어 노래를 답가로 불렀다.
1984甲子
- 1984년, 21세 때, 연세대학교 3학년 박선원은 3학년 1학기까지는 졸업을 위한 최소 학점만 받고 3학년 2학기 때부턴 전공 공부는 중단하고 학생 운동에 전념했다.
- 1984년, 21세 때, 연세대학교 4학년 박선원은 전투 소조로서의 활약을 인정 받아서 연세대학교 총학생회 지도부가 됐다.
- 1984년 겨울, 21세 때, 연세대학교 3학년으로 총학생회 지도부인 박석원은 광주민주화운동 5주기인 1985년에 맞춰서 전두환 정권에 치명타를 입힐 투쟁 전략을 기획했다.
- 1984년 겨울, 21세 때, 연세대학교 3학년으로 총학생회 지도부인 박선원은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1년 선배이자 총학생회장이었던 송영길에 이어 전국 민정당사 15곳에 돌을 던지는 공격을 했다.
- 1984년 겨울, 21세 때, 연세대학교 3학년으로 총학생회 지도부인 박선원은 전국 민정당사 15곳에 대한 공격이 별다른 파장을 일으키지 못하자 더 센 투쟁 전략을 고민했다.
1985乙丑
- 1985년, 22세 때 박선원은 미국 문화원을 점거하면 감옥에 갈 것을 알았고 그 전에 면회를 와 줄 여자친구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 1985년, 22세 때, 박선원은 5명의 여학생들과 2회씩 만나면서 여자친구를 물색했다.
- 1985년, 22세 때, 박선원은 연세대학교 82학번 동기로 시위 현장에선 늘 맨 앞에 나가서 돌을 던지던 여학생과 사귀기 시작했다.
- 1985년, 22세 때, 박선원은 서대문 구치소로 면회를 온 아버지 박영식을 만나서 아들이 군대에 갔다고 생각해달라고 말했다.
- 1985년 1월 18일 21세 때, 금요일 오전 10시, 57세의 김영삼과 61세의 김대중은 총재로 이민우를 앞세워서 신한민주당을 공식 창당했다.
1986丙寅
- 1986년 2월, 23세 때, 미국 문화원 점거 사건의 주동자인 함운경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 받았다.
- 1986년 3월 20일 목요일 , 23세 때, 미국 문화원 점거 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박선원은 국가보안범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서울형사지법 합의 12부로부터 징역 3년과 자격정지 2년을 선고 받았다.
- 1986년 9월, 23세 때, 박선원은 수원 교도소에 수감돼 있을 때 아버지가 중학생인 여동생으로부터 아버지가 56세를 일기로 간암으로 돌아가셨다는 편지를 받았다.
- 1986년 9월, 23세 때, 박선원은 교도소측에 아버지의 장례식에 가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 당했다.
- 1986년 9월, 23세 때, 박선원은 일주일 동안 수원 교도소의 불교방에서 아버지를 위해 불경을 읽고 목탁을 두드렸다.
1987丁卯
- 1987년, 24세 때, 박선원은 감옥에서 공부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고 영어 회화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 1987년 여름, 24세 때, 박선원은 청주교도소에서 김민석과 함께 수감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 1987년 하반기, 24세 때, 박선원은 김민석의 어머니가 넣어준 영어 회화 테이프로 영어 공부를 함께 했다.
- 1987년 말, 24세 때, 박선원은 김민석과 함께 청추교도소 교무과장 사무실에서 마이마이를 귀에 꽂고 영어 공부를 했다.
- 1987년 말, 24세 때, 박선원은 김민석과 출소한 이후에 연구소를 만들 계획을 세웠다.
1988戊辰
- 1988년 가을, 25세 때, 박선원은 김민석과 함께 민족과 세계연구소를 개소했다.
- 1988년 가을, 25세 때, 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박사과정생으로 북한 연구에 집중하고 있던 이종석이 박선원과 김민석이 만든 민족과 세계연구소의 연구위원장을 맡았다.
- 1988년 2월 25일 목요일 오전 10시, 25세 때, 노태우가 대한민국 13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 1988년 2월 26일 금요일, 25세 때, 대통령 노태우는 6공화국 출범을 알리는 첫 국무회의에서 7200명의 시국사범과 일반 형사범에 대한 특별사면과 감형과 복권 조지를 단행했다.
- 1988년 2월 26일 금요일, 25세 때, 박선원은 2년 6개월 동안 복역한 끝에 대통령 노태우의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1989己巳
- 1989년, 26세 때, 박선원은 학생 운동을 함께 했고 2년 6개월 동안 옥바라지까지 해줬던 여자친구와 결혼했다.
- 1989년 11월 9일 목요일, 26세 때, 박선원은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는 것을 목격했다.
- 1989년 11월 20일 월요일, 26세 때, 박선원은 운동권 선배인 이우재와 장기표가 주도하는 진보적 대중정당 건설을 위한 준비모임에 합류했다.
1990庚午
- 1990년, 27세 때, 박선원은 첫째 아이를 얻었다.
- 1990년 11월 10일 토요일, 27세 때, 박선원은 운동권 선배들인 이우재가 상임 대표를 맡고 김상기와 김낙중이 공동대표를 맡고 이재오와 김문수가 주도해서 창당한 민중당에 입당해서 활동했다.
1991辛未
- 1991년 1월 17일 목요일, 27세 때, 미국 대통령 조지 H.W. 부시는 1차 걸프전을 일으켰다.
- 1991년 1월 17일 목요일, 27세 때, 박선원은 CNN을 통해 1차 걸프전을 시청했다.
1992壬申
- 1992년 3월 24일 화요일, 29세 때, 박선원은 몸 담고 있던 민중당이 총선에서 득표율 미달로 단 한 명의 당선자도 내지 못하면서 정당법에 의해 해산되자 재야 정치권을 떠나서 학교로 돌아갔다.
30대
1993癸酉
- 1993년, 30세 때, 성균관대학교 박사과정 이종석은 박사논문 조선노동당의 지도사상과 구조변화에서 북산 사회를 북한 내부의 시선으로 분석해야 한다는 북한 내재적 접근론을 주장했다.
- 1993년, 30세 때, 박선원은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대학원에 입학했다.
1995乙亥
- 1995년, 32세 때, 워릭대학교 국제정치학과 박사과정 박선원은 연간 6500파운드의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학교에서 제공해주는 아르바이트를 했고 박선원의 아내는 대학 구내 식당에서 팬케이크를 구워서 돈을 벌었다.
- 1995년 10월, 32세 때, 박선원은 미국 문화원 점거 사건 주동자라는 꼬리표 때문에 미국과 일본으로는 유학을 갈 수가 없었다.
- 1995년 10월, 32세 때, 박선원은 영국 코번트리에 위치한 명문대학교인 워릭대학교 대학원의 국제정치학과 박사 과정에 입학했다.
1996丙子
- 1996년, 33세 때, 워릭대학교 국제정치학과 박사과정 박선원은 1980년 한국에서 신군부 쿠데타와 광주학살이 발생하던 정권 교체기에 미국 카터 행정부와 일본의 자민당 정권은 어떤 태도를 취했고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분석하는 박사 논문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2000庚辰
- 2000년, 37세 때, 박선원은 연세대학교 국제학연구소 연구교수가 됐다.
- 2000년, 37세 때, 연세대학교 국제학연구소 연구교수 박선원은 80년대 운동권 시절부터 동지이자 절친이었던 새천년민주당 국회의원 김민석으로부터 청와대 외곽 정무보좌팀에 합류해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 2000년, 37세 때, 연세대학교 국제학연구소 연구교수 박선원은 국회의원 정동영, 김한길, 김민석, 정균환, 정동채 등 5명과 함께 대통령 김대중에게 정무적 자문을 해주는 역할을 했다.
- 2000년 2월, 37세 때, 워릭대학교 국제정치학과 박사과정 박선원은 박사 논문을 거의 마무리하고 가족들과 함께 영국에서 한국으로 귀국했다.
- 2000년 5월 17일 수요일, 37세 때, 연세대학교 국제학연구소 연구교수 박선원은 박사 학위 논문 한미일 삼각동맹안보체제의 정치적 역동성 : 1979 - 1980년 한국의 정권 교체기에 나타난 일본의 영향력을 공식 발표했다.
2001辛巳
- 2001년, 38세 때, 박선원은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 연구교수가 됐다.
- 2001년, 38세 때,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 연구교수 박선원은 세종연구소 남북관계연구실장 이종석과 함께 한반도 평화보고서를 공동 작성했다.
- 2001년, 38세 때, 신분이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 연구교수여서 대선 캠프에 공개적으로 참여하긴 어려웠던 박선원은 경남대학교 극동문제 연구소와 외교안보연구원과 상지대학교 교수로서 북한학 전문가인 서동만과 세종연구소 남북관계연구실장 이종석을 통해 대통령 후보 노무현에게 안보정책에 관한 의견을 제시했다.
- 2001년 11월, 38세 때, 김대중 청와대 외곽 정무보좌팀의 일원이었던 박선원은 차기 대권 후보로 노무현을 지지하면서 노무현 대선 캠프에 참여했다.
- 2001년 11월, 38세 때, 박선원은 노무현 대선 캠프에서 대선 후보 노무현의 메시지를 관리하고 안보 정책에 관하 조언하는 역할을 했다.
2002壬午
- 2002년 초, 39세 때, 미국 국방부 장관 도널드 럼스펠드는 한국 국방부 장관 김동신에게 주한미군 감축협상을 시작하자고 요구했다.
- 2002년 초, 39세 때, 미국 국방부 장관 도널드 럼스펠드는 한국 국방부 장관 김동신이 주한미군 감축협상에 소극적으로 시간을 끌자 애를 먹었다.
- 2002년 6월 13일 목요일, 39세 때, 조양중학교 2학년 신효순과 심미선은 전국지방선거일로 휴일이라 친구들과 만나서 놀기 위해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효촌리 56번 지방도 갓길을 걷다가 미군 운전병 마크 워커와 미국 통신병 페르난도 니노가 운전하던 M60 장갑차에 깔려서 숨졌다.
- 2002년 10월, 39세 때,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는 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와 함께 조용히 이라크 침공을 준비하기 위해 대신 한반도 긴장을 높이는 성독격서 전략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 2002년 10월 3일 목요일, 39세 때,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의 대북 특사 제임스 켈리는 북한 평양에서 북한 외무성 부부상 김계관에게 CIA가 확보한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의 증거를 제시했다.
40대
2003癸未
- 2003년, 40세 때, 대통령 노무현은 박선원을 비롯한 NSC 사무처에 국가안보전략지침을 작성하라고 지시했다.
- 2003년, 40세 때, NSC 사무처 전략기획국장 박선원은 국가안보전략지침을 수립하면서 대통령 노무현이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선 한국이 거부능력 수준의 군사적 하드파워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안보철학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 2003년, 40세 때, NSC 사무처 전략기획국장 박선원은 국가안보전략지침을 수립하면서 방위충분성을 확보한 군사력과 평화 지향적인 외교력이라는 창과 방패를 들고 한미 동맹을 기본축으로 중국과 러시아와 균형 외교를 해야 한반도 평화의 균형을 스스로 지킬 수 있다는 대통령 노무현의 안보비전을 완성했다.
- 2003년, 40세 때, NSC 사무처 전략기획국장 박선원은 국가안보전략지침을 수립하면서 대통령 노무현이 늙어가는 일본과 강해지는 중국과 커져가는 미중 갈등 사이에서 한국이 균형자 역할을 하는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을 구체화해나가는 과정을 보좌했다.
- 2003년 1월, 39세 때, 박선원은 세종연구소 남북관계연구실장 이종석으로부터 노무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외교안보분과위원으로 내정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2004甲申
- 2004년 가을, 41세 때, NSC 사무처 전략기획국장 박선원은 합동참모본부에서 열린 워게임인 태극연습에서 한미연합사가 북한 급변 사태에서 특정 부대를 투입하는 훈련을 하는 것을 목격했다.
- 2004년 가을, 41세 때, NSC 사무처 전략기획국장 박선원은 합참과 국방부를 통해 한미 국방부가 군통수권자인 대통령 노무현에게 보고하지 않고 북한 내부의 급변 사태에서 한미가 개입하는 개념계획 5029를 수립하고 작전계획으로 격상시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 2004년 가을, 41세 때, NSC 사무처 전략기획국장 박선원은 NSC 사무차장 이종석과 북한이 계획적 남침을 하는 작전계획 5027과 남북간에 우발적 전쟁이 일어나는 우발계획 5028과 별개로 북한 내부의 급변 사태가 벌어지면서 한미가 개입하는 개념계획 5029의 수립과 작전계획 격상을 중단시켰다.
- 2004년 1월 4일 일요일, 40세 때, 북한 국방위원장 김정일은 미국 민주당 상원 외교위원회 간사 조 바이든의 보조관 프랭크 재누치와 리차드 루가 상원 의원의 보좌관 키스 루스와 핵 물리학자인 존 루이스와 지그프리드 해커 등 민간대표단을 평양으로 초청해서 연변 핵재처리시설을 일부 공개했다.
- 2004년 1월 5일 월요일, 40세 때, 외교부 북미과장 위성락은 국민일보 외교통상부 출입기자와 통화했다.
2005乙酉
- 2005년, 42세 때, NSC 사무처 전략기획국장 박선원은 백악관과의 협의를 통해 대전 지질자원 연구원이 북한이 핵실험을 할 경우 함북 길주 인근에서 지진파를 탐지할 수 있도록 준비하기 시작했다.
- 2005년 1월 18일 화요일, 41세 때, 부시 2기 행정부 국무장관 지명자 곤돌라자 라이스는 인사청문회에서 “북한은 폭정의 전초기지”라고 말했다.
- 2005년 1월 20일 목요일, 41세 때,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는 집권 2기 행정부를 출범시켰다.
- 2005년 2월 10일 목요일, 41세 때, 북한 국방위원장 김정일은 외무성 성명을 통해 핵무기 보유를 공식 선언하고 6자 회담 파기를 선언했다.
- 2005년 3월 5일 토요일, 42세 때, NSC 사무처 전략기획국장 박선원은 대통령 노무현이 공군사관학교에서 할 예정인 동북아균형자론을 담은 연설문의 요지를 2시간 전에 미국측에 사전 설명해줬다.
2006丙戌
- 2006년, 43세 때, 박선원은 대통령 노무현이 김대중의 햇볕정책이나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처럼 노무현 독트린을 만들자는 보좌진의 제안에 질색하는 것을 자주 목격했다.
- 2006년 1월, 42세 때, 통일부 장관 이종석은 NSC 상임위원장으로서 외교와 국방과 국무조정실과 국정원을 총괄하면서 사실상 남북정상회담 준비에 착수했다.
- 2006년 1월, 42세 때, 대통령 노무현은 자문 조직에서 실무 조직으로 확대되면서 동맹파인 외교부와 국방부와 마찰을 빚어온 NSC 사무처를 축소하는 대신 NSC 사무차장 이종석을 통일부 장관 겸 NSC 상임위원장으로 임명하면서 자주파의 영향력은 강화했다.
- 2006년 1월 42세 때, NSC 사무처 전략기획국장 박선원은 노무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으로 임명됐다.
- 2006년 1월, 42세 때,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 박선원은 청와대를 찾은 미국 재무부의 위폐 조사단과 감시국과 국제금융거라 감시팀으로부터 북한의 위폐를 찍은 증거 사진들을 기반으로 한 브리핑을 받았다.
2007丁亥
- 2007년, 44세 때,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 박선원은 대통령 비서실장 문재인과 청와대 외교안보실장 백종천과 국가정보원장 김만복과 함께 매주 목요일마다 남북정상회담 추진을 위한 안골모임에 참석했다.
- 2007년, 44세 때,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 박선원은 국가정보원 대북 라인인 3차장 서훈과 협력했다.
- 2007년 1월 말, 43세 때, 미국 6자 회담 수석 대표 크리스토퍼 힐은 외교부 장관 송민순에게 2.13 합의 초안을 한 부만 제공해준 다음 노무현 청와대와는 공유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 2007년 1월 말, 43세 때,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 박선원은 미국 크리스토퍼 힐과 북한 김계관 사이의 2.13 합의 초안을 미리 확보해서 파악했고 외교부가 청와대 외교안보라인을 따돌리기 있다는 사실도 간파했다.
- 2007년 1월 15일 월요일, 43세 때, 미국 6자 회담 대표 크리스토퍼 힐은 북한 김계관과 독일 베를린에서 만나서 BDA 문제에 관해 합의했다.
2008戊子
- 2008년, 39세 때, 브루킹스 연구소 초빙연구원 박선원은 미국 국무부 차관보 리차드 롤리스로부터 2002년 2월 25일 화요일 대통령 노무현의 취임식 당일에 주한 미군 감축 이야기를 꺼낸 것은 미국 입장에선 김대중 정부 말기부터 1년을 기다려온 일이었기 때문에 긴급한 이슈였다는 뒷설명을 들었다.
- 2008년, 45세 때, 박선원은 브루킹스 연구소 초빙연구원으로 일하면서 미국 국부무 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리차드 롤리스를 만났다.
- 2008년, 45세 때, 브루킹스 연구소 초빙연구원 박선원은 미국 국무부 차관보 리차드 롤리스로부터 미국은 2001년 9.11 테러 이후부터 전세계 미군의 재배치하는 계획을 세웠고 주한미군 감축도 그 연장선상이었지만 2003년 이라크 전쟁 전후에는 외교전술적으로 일부러 한국측에 그 사실을 숨겼다는 뒷설명을 들었다.
- 2008년 1월 말, 44세 때,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 박선원은 선임비서관 회의에서 차기 이명박 정부가 대통령 노무현의 외교안보정책과 조직을 모두 폐기하려고 한다고 보고했다.
- 2008년 1월 말, 44세 때,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 박선원은 대통령 노무현에게 “우리는 진보정권으로서 하나의 틀을 만들어 놓은 거고 그들은 다 무시하고 새롭게 뭔가 해보겠다는 것이니 우리가 테제를 쓰고 다음 정권이 안티테제로 나오면 역사 속에서 새로운 정반합을 만들어 나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9己丑
- 2009년 겨울, 46세 때, 브루킹스 연구소 초빙연구원 박선원은 봉하마을에서 전 대통령 노무현의 미망인 권양숙을 만났다.
- 2009년 1월, 45세 때,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브루킹스 연구소 출신 수전 라이스를 주유엔대표부 대사에 임명했다.
- 2009년 1월, 45세 때,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브루킹스 연구소 출신 제프리 베이더를 백악관 아시아 담당 보좌관에 임명했다.
- 2009년 1월 20일 화요일, 45세 때, 버락 오바마는 미국 44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 2009년 4월, 46세 때, 박선원은 브루킹스 연구소 보고서를 통해 북한을 비판했다는 사실이 조선일보를 의해 알려지면서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의 외교 안보 라인 선배들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다.
2010庚寅
- 2010년, 47세 때, 브루킹스 연구소 초빙연구원 박선원은 노무현재단 이사장 문재인에게 영어로 쓴 문재인 집권 플랜 보고서를 들이밀면서 출마를 권했다.
- 2010년 3월, 47세 때, 브루킹스 연구소 초빙연구원 박선원은 1970년대 중반 한국 해군이 백령도 앞바다에 설치했다가 이후에 미쳐 제거하지 못한 MK-6 폭뢰 중 하나가 천안함 침몰의 원인일 수 있다고 의심했다.
- 2010년 3월 26일 금요일, 47세 때, 브루킹스 연구소 초빙연구원 박선원은 천안함이 북한 잠수정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해서 승조원 104명 중 46명이 실종됐다는 뉴스 보도를 접했다.
- 2010년 3월 29일 47세 때, 월요일, 미국 국무부 차관보 필립 크롤리는 정례브리핑에서 천안함 침몰과 관련해서 “선체 자체 이외의 다른 원인을 파악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 2010년 3월 29일 월요일, 47세 때, 미국 국무부 부장관 제임스 스타인버그는 워싱턴의 내셔널 프레스 클럽에서 연설하면서 “천안함 사고에 그 어떤 나라도 개입했다는 얘기를 들은 바 없다. 북한이 침몰의 원인이라고 믿거나 우려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2011辛卯
- 2011년, 48세 때, 박선원은 노무현재단 전남지역위원회 준비위원장으로 활동했다.
2012壬辰
- 2012년 1월 20일 금요일, 48세 때, 박선원은 인천시장 송영길에 의해 인천광역시 국제협력 투자 유치 특별보좌관으로 임명됐다.
- 2012년 2월 22일 수요일, 48세 때, 인천광역시 국제협력 투자 유치 특별보좌관 박선원은 유엔 녹색기후기금 후보도시로 인천이 지명되는데 실무 역할을 했다.
- 2012년 3월, 49세 때, 박선원은 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배기운 국회의원 후보의 상임선대위원장으로 뛰었다.
- 2012년 3월 12일 월요일, 49세 때, 박선원은 민주통합당에 입당했다.
- 2012년 3월 14일 수요일, 49세 때, 박선원은 나주 화순 선거구 민주통합당 경선에서 84표 차이로 배기운 예비후보에게 졌다.
50대
2017丁酉
- 2017년, 54세 때, 박선원은 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선대위 안보상황단 부단장으로 활동했다.
- 2017년, 54세 때, 문재인 선대위 안보상황단 부단장 박선원은 단장 서훈과 문재인 정부의 대북 외교 안보 정책의 밑그림을 그렸다.
- 2017년 3월, 54세 때, 박근혜 정부 기무사령관 조현천은 대통령 박근혜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기각될 경우 전국에 비상 계엄을 선포하는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 방안을 수립했다.
- 2017년 3월 10일 금요일, 54세 때, 대통령 박근혜는 헌법재판소에 의해 파면 당했다.
- 2017년 5월 9일 화요일, 54세 때,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문재인은 대한민국 19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2018戊戌
- 2018년 1월, 54세 때, 박선원은 상하이 외교가에서 대통령 문재인과 가까운 실세 총영사로 인식됐다.
- 2018년 1월 10일 수요일, 54세 때, 박선원은 주 상하이 대한민국 영사관 총영사로 임명됐다.
- 2018년 7월, 55세 때, 상하이 총영사 박선원은 6개월 만에 상하이 외교정보라인을 업그레이드했다.
- 2018년 7월, 55세 때, 박선원은 문재인 선대위에서 안보상황단 단장과 부단장으로 호흡을 맞췄던 서훈 국가정보원장 외교안보특별보좌관으로 임명됐다.
- 2018년 7월 5일 목요일, 55세 때,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철희는 박근혜 정부 기무사령관 조현천이 수립한 계엄 문건의 일부를 공개했다.
2020庚子
- 2020년 6월 16일 화요일, 57세 때, 북한 국무위원장 김정은은 개성공단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 2020년 7월 29일 수요일, 57세 때, 대통령 문재인은 국회의원 박지원을 신임 국가정보원장으로 임명했다.
- 2020년 8월 4일 화요일, 57세 때, 박선원은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으로 임명됐다.
2021辛丑
- 2021년 11월 29일 일요일, 58세 때, 박선원은 국가정보원 제1차장으로 임명됐다.
- 2021년 11월 29일 58세 때, 일요일, 대통령 문재인은 임기 5개월 남기고 국가정보원 제1차장을 한미 공조를 중시해온 윤형중 대신 대북 관계에 경험이 많은 박선원으로 교체해서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마지막 포석을 뒀다.
60대
2023癸卯
- 2023년 1월, 59세 때, 박선원은 김진표 국회의장 직속 경제외교자문위원회 정부위원으로 임명됐다.
- 2023년 3월, 60세 때, 박선원은 대통령 윤석열의 최측근인 경호처장 김용현의 육사 38기 동기인 전 기무사령관 조현천이 자진 귀국한 것을 보면서 윤석열 정부가 계엄을 준비하고 있을 수 있다는 의심을 했다.
- 2023년 3월 29일 수요일, 60세 때, 박근혜 정부 기무사령관 조현천이 5년 동안의 해외 망명 생활 끝에 자진 귀국했다.
- 2023년 7월 31일 월요일, 60세 때, 박선원은 군 비상계엄 전문가인 임기훈이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국방비서관으로 임명된 것을 보고 비상 계엄 준비를 의심했다.
- 2023년 12월 27일 수요일, 60세 때, 박선원은 이재명 대표에 의해 더불어민주당 4호 영입 인재로 재입당했다.
2024甲辰
- 2024년 3월, 61세 때, 행정안전부 장관 이상민은 국가수사본부장 우종수와 방첩사를 방문해서 방첩사령관 여인형과 만났다.
- 2024년 3월 9일 토요일, 61세 때, 박선원은 22대 총선 더불어민주당 경선에서 21대 비례대표 국회의원 이동주를 상대로 승리해서 부평구 을 선거구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됐다.
- 2024년 3월 12일 화요일, 61세 때, 더불어민주당 부평구 을 국회의원 후보 박선원은 월간중앙 지역전문위원 박성현과 인터뷰에서 “미국의 동맹정책은 기본적으로 자국 우선주의, 일방주의이다. 이건 인정하고 들어가야 한다. 동등하게 협력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 양보한다고 해서 미국이 고맙다며 더 이상 요구하지 않는 것도 아니라는 점도 알아야 한다. 하나를 주면 하나 더 달라고 하는 게 제국의 본성이며. 그래야 헤게모니가 유지되는 법이다. 일각에는 용미론이라고 미국을 이용하자는 시각도 있다. 저는 미국을 이용할 생각을 아예 말라고 한다. 우리가 협력하는 척하면서 말로 때우고 비용은 안 대는 걸 미국이 눈감아 줄까? 그런 건 없다. 미국은 우리가 협력을 통해 좋은 결과를 얻고자 노력해야 하는 나라이지, 의무 이행을 면제해주는 나라는 아니다. 동맹에서는 냉철한 현실주의자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 2024년 3월 12일 화요일, 61세 때, 더불어민주당 부평구 을 국회의원 후보 박선원은 월간중앙 지역전문위원 박성현과 인터뷰에서 “군사공동체인 동맹은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다. 각국의 전략적 중대 결정과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자국의 이익 수호와 안전 보장이라고 하는 가장 높은 국가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방안으로서 동맹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 속에서 미국과 협력하면 되는 것인데, 그걸 잘못하면 국익에 피해가 올 수 있다. 대한민국의 지정학적 요충지로서의 입지가 있기에 미국이든, 중국이든, 일본이든 요구가 들어와도 버티고 지키면 국익은 지켜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 2024년 3월 21일 목요일, 61세 때, 22대 총선 더불어민주당 부평구 을 후보 박선원은 천안함 침몰과 관련해서 “2012년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돌아와서 다시 점검해봤다. 정부에서 일관되게 유지하는 입장을 뒤집을 만한 새로운 증거가 없다. 희생되신 분 뿐 아니라 천안함에서 근무했던 장병들의 일관된 진술로 봐서 정부의 발표가 맞다. 그건 북에 의한 어뢰 공격이다 이렇게 수긍을 했다. 그래서 문재인 캠프에서도 우리는 이 입장을 견지해야 된다라고 했다”고 말했다.
2025乙巳
- 2025년 1월 30일 목요일, 61세 때, 국회의원 박선원은 노르웨이 노벨위원회에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했다.
- 2025년 2월 3일 월요일 오후, 61세 때, 국회의원 박선원은 국회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재명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김민석과 대화하면서 “트럼프 노벨평화상 추천서 제출과 접수 완료. 미측 통보”라고 쓰인 수첩의 메모를 언론 카메라에 노출시켰다.
- 2025년 2월 4일 화요일, 61세 때, 국회의원 박선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제45대 대통령 재임 중 한반도 평화 증진과 비핵화, 그리고 한미동맹 강화를 통해 세계 평화와 안정에 기여한 점을 높이 평가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월20일 미합중국 제47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북한과의 관계 회복을 강조하며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국제적 기대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노벨평화상의 이상과 가치에 충분히 부합한다”고 밝혔다.
- 2025년 2월 21일 금요일, 61세 때, 국회의원 박선원은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의 4차 청문회에서 국정원 간부 5명의 실명을 공개하면서 이들에게 국정원이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자신을 엮어서 내란 공작을 하려는 긴급 공작 지시가 내려졌다고 주장했다.
- 2025년 6월 24일 화요일, 62세 때, 국회의원 박선원은 국무총리 후보자 김민석의 인사청문회에서 마태복음 6장 34절의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를 낭독하면서 “김 후보자는 제가 알기로는 성가대 합창단도 하시고 아주 신실한 기독교 믿음이 있는 분이다. 성경 말씀을 붙잡고 어려운 그 힘든 시간 10여 년, 20여 년을 정말 잘 단단하게 뚫고 오신 것에 대해서 존경을 표한다”고 말했다.
2026丙午
- 2026년 9월 10일, 62~63세 때, 박선원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39회 국회(정기회) 제6차 본회의에서 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질문을 했다.
- 2026년 9월 11일, 62~63세 때, 박선원은 충북 청주시 충북도청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야권의 공세를 "정치검찰 조작기소의 망령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자 "윤석열·한동훈 특수부 부활공작"이라고 규정하며 발언을 시작했다.
- 2026년 9월 11일, 62~63세 때, 박선원은 한동훈 무소속 의원이 제기하는 의혹의 출처가 공익제보자 조모씨의 제보, 한동훈이 법무부 장관 재직 시 취득했을 정보, 한동훈이 퇴임 이후 알아서는 안 되는 정보를 사후 취득한 것 등 세 가지라고 주장했다.
- 2026년 9월 11일, 62~63세 때, 박선원은 이 세 가지 정보를 섞어 짜깁기한 "가짜 장막"이라고 규정하며 한동훈이 마치 의인의 제보에 의한 것처럼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 2026년 9월 11일, 62~63세 때, 박선원은 조모씨가 2021년 브로커 양모씨와 경영 컨설팅 계약을 맺은 회사의 공동대표로서 관동대학교 산하 자회사를 운영하던 인물이라고 신상을 공개했다.
날짜 미상 라인 39줄은 타임라인에 포함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