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 황
프로필로 돌아가기 →물병자리토끼띠辛 신금금(金)
전통 명리·점성술의 일반 설명
신금(辛金) · 보석·바늘·다듬어진 금속세공을 마친 보석과 날카로운 바늘에 비유된다.
물병자리 · 1.20~2.18독창성과 자유로운 사고,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태도가 흔히 언급되는 특징이다.
토끼띠온화함과 예민한 감각, 갈등을 피하는 처세가 흔히 언급되는 특징이다.
금(金) · 쇠·결실가르고 마무리하는 힘, 결단과 원칙, 의(義)의 기운으로 설명된다.
아래 설명은 전통 명리학·점성술에서 각 기호에 흔히 붙는 일반적 설명입니다. 개인의 성격이나 미래를 판정하는 근거가 아니며, 라이프러리는 이를 사실 데이터와 분리해 "해석"으로만 다룹니다.
癸卯
연주
甲寅
월주
辛卯
일주
—
시주 (미계산)
출생시각 미확인 — 시주(時柱)는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삼주 기준입니다.
대운은 성별 정보가 확인되지 않아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10대
1963癸卯
- 1963년, 0세 때, 젠슨 황의 아버지 황싱타이는 고향인 대만 남부 도시 타이난의 명문대 국립성공대학교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에어컨 제조사 캐리어의 대만지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 1963년, 0세 때, 젠슨 황의 어머니 러차이슈는 대만 남부 타이난 지역에서 기계회사와 시멘트회사를 운영하는 명가문의 막내딸이었지만 어릴 적부터 집안과는 교류가 없이 자란 탓에 결국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었다.
- 1963년 2월 17일, 0세 때, 젠슨 황은 대만 수도 타이베이에서 아버지 황싱타이와 어머니 러차이슈 사이에서 3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 1963년 2월 17일, 0세 때, 젠슨 황은 대만 수도 타이베이에서 아버지 황싱타이와 어머니 러차이슈 사이에서 3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 1963년, 젠슨 황의 아버지 황싱타이는 고향인 대만 남부 도시 타이난의 명문대 국립성공대학교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에어컨 제조사 캐리어의 대만지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1967丁未
- 1967년, 4세 때, 젠슨 황은 부모형제와 함께 대만의 야시장에 놀러갔다가 식당 주인의 실수 때문에 식칼에 뺨을 베였고 희미한 흉터를 얻었다.
1968戊申
- 1968년, 5세 때, 젠슨 황은 아버지 황싱타이가 캐리어 대만지사에서 태국의 정유회사로 이직하면서 온 가족과 함께 태국 방콕으로 이주했다.
- 1968년, 5세 때, 젠슨 황은 아버지 황싱타이가 캐리어 대만지사에서 태국의 정유회사로 이직하면서 온 가족과 함께 태국 방콕으로 이주했다.
1969己酉
- 1969년, 6세 때, 젠슨 황은 아버지 황싱타이가 캐리어의 직원 연수 프로그램으로 미국 뉴욕 맨해튼을 방문할 때 따라갔고, 아버지 황싱타이는 미국 교육 이민을 결심했다.
1970庚戌
- 1970년, 7세 때, 젠슨 황은 어머니 러차이슈로부터 형제들과 함께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 1970년, 7세 때, 젠슨 황은 어머니 러차이슈는 영어를 전혀 할 줄 몰랐기 때문에 매일 영어 단어를 10개 씩 외우는 식으로 공부했다.
1971辛亥
- 1971년, 8세 때, 젠슨 황은 정식으로 영어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1973癸丑
- 1973년, 10세 때, 젠슨 황은 친형 제프 황과 함께 외삼촌 댁에서 어린 남자 형제들이 칠 법한 온갖 사고를 쳤다.
- 1973년 말, 10세 때, 젠슨 황은 미국에 이민 온지 얼마 안 돼서 경제적으로도 어렵고 미국 사정에도 어두웠던 외삼촌에 의해 친형 제프 황과 함께 켄터키주 애팔래치아 산맥 어귀 인구 300명의 마을 오네이다로 보내졌다.
- 1973년 말, 10세 때, 젠슨 황은 외삼촌으로부터 오네이다 침례교 기숙학교가 저렴한 보딩스쿨이라고 들었다.
- 1973년 말, 10세 때, 젠슨 황은 친형 제프 황과 함께 오네이다 침례교 기숙학교에 입학했다.
- 1973년 말, 10세 때, 젠슨 황은 나이가 어려서 오네이다 침례교 기숙학교의 초등 과정에 입학했다.
1974甲寅
- 1974년, 11세 때, 젠슨 황은 오네이다 침례교 기숙학교의 기숙사에서 지내기 시작한 첫날 밤에 교도소에서 막 출소한 17세 룸메이트와 처음 만났다.
- 1974년, 11세 때, 젠슨 황은 17세 룸메이트가 온 몸에 칼자국을 보여주면서 위협하자 당황했다.
- 1974년, 11세 때, 젠슨 황은 17세 룸메이트에게 수학을 가르쳐주고 대신 벤치프레스를 배웠다.
- 1974년, 11세 때, 젠슨 황은 매일 밤 100개 씩 팔굽혀펴기를 하기 시작했다.
- 1974년, 11세 때, 젠슨 황은 황젠쉰이었던 중국식 이름을 젠슨 황이라는 미국식 이름으로 바꿨다.
1975乙卯
- 1975년, 12세 때, 젠슨 황은 아버지 황싱타이가 미국에서 직장을 구하고 어머니와 함께 미국 이민을 오면서 켄터키주 오네이다를 떠나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부모와 재회했다.
- 1975년, 12세 때, 젠슨 황은 아버지 황싱타이가 미국에서 직장을 구하고 어머니와 함께 미국 이민을 오면서 켄터키주 오네이다를 떠나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부모와 재회했다.
1976丙辰
- 1976년, 13세 때, 젠슨 황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위치한 알로하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 1976년, 13세 때, 젠슨 황은 알로하 고등학교에서 컴퓨터 동아리와 수학 동아리와 과학 동아리에서 활동했고 자신과 같은 너드 친구들과 친해졌다.
- 1976년, 13세 때, 젠슨 황은 애플II 컴퓨터가 있는 학교에서 ‘스타트렉’과 ‘갤럭시안’과 ‘센티피드’와 같은 비디오 게임을 즐겼다.
- 1976년, 13세 때, 젠슨 황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위치한 알로하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1977丁巳
- 1977년, 14세 때, 젠슨 황은 알로하 고등학교가 구매한 개인용 컴퓨터인 애플II에 빠져서 ‘스네이크 게임’을 직접 베이직으로 만들었다.
- 1977년 여름, 14세 때, 젠슨 황은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있는 탁구 클럽 패들 팰리스에서 본격적으로 탁구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 1977년, 14세 때, 젠슨 황은 탁구 클럽 ‘패들 팰리스’의 사장 루 보첸스키의 도움으로 스포츠 매거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에 탁구 유망주로 소개됐다.
- 1977년, 14세 때, 젠슨 황은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전미 탁구 대회에 참가했지만 화려한 거리에 매료된 나머지 밤새 길거리를 쏘다녔고 결국 결승전에서 졌다.
- 1977년 여름, 14세 때, 젠슨 황은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있는 탁구 클럽 패들 팰리스에서 본격적으로 탁구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1978戊午
- 1978년, 15세 때, 젠슨 황은 탁구 클럽 패들 팰리스에서 먹고 자면서 탁구 연습을 했고, 포앤드 드라이브를 필살기로 익혔다.
- 1978년, 15세 때, 젠슨 황은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16세 이하 US 오픈 복식 결승전에 진출했고, 3위에 올랐다.
- 1978년, 15세 때, 젠슨 황은 컴퓨터 게임과 탁구 시합에 몰두하면서 끝내 이길 때까지 지고 또 지면서 배우면 된다는 게임적 사고 방식을 내면화했다.
- 1978년, 15세 때, 젠슨 황은 형 제프 황의 소개로 포틀랜드에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 데니스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 1978년, 15세 때, 젠슨 황은 형 제프 황의 소개로 포틀랜드에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 데니스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1979己未
- 1979년, 16세 때, 젠슨 황은 패스트푸드 체인 데니스에서 접시닦이로 일하기 시작해서 결국 가장 바쁜 시간에 손님들을 맞이해야 하는 레스토랑 서버까지 승진했다.
- 1979년, 16세 때, 젠슨 황은 데니스에서 일하면서 동시에 다양한 미국 음식을 즐기게 됐고 그 중에서도 데니스의 대표 메뉴인 ‘슈퍼 버드’를 좋아했다.
- 1979년, 16세 때, 젠슨 황은 친형제들인 형 제프 황과 동생 짐 황보다도 운동과 공부 모두에서 뛰어났고, 결국 한 학년을 월반한 끝에 장학재단 ‘내셔널 아너 소사이어티’의 장학생으로 선발됐다.
- 1979년, 16세 때, 젠슨 황은 친형제들인 형 제프 황과 동생 짐 황보다도 운동과 공부 모두에서 뛰어났고, 결국 한 학년을 월반한 끝에 장학재단 ‘내셔널 아너 소사이어티’의 장학생으로 선발됐다.
1980庚申
- 1980년, 17세 때, 젠슨 황은 미국 동서부의 명문대에 입학해서 집을 떠날 수 있었지만 오히려 집에서 90분 거리에 있는 가까운 오리건 주립대학교를 선택했다.
- 1980년, 17세 때, 젠슨 황은 알로하 고등학교 단짝 친구였던 딘 베르하이덴을 따라 등록금이 낮은 오리건 주립대학교에 진학했다.
- 1980년, 17세 때, 젠슨 황은 원래 컴퓨터 공학과에 가고 싶었지만 오리곤 주립대학교엔 컴퓨터 공학과가 없어서 대신 전기공학과를 선택했다.
- 1980년, 17세 때, 젠슨 황은 소프트웨어 코딩 중심인 컴퓨터 공학과 대신 하드웨어 설계 중심인 전기공학과를 선택하게 되면서, 반도체 설계자로서의 경력을 시작했다.
- 1980년, 17세 때, 젠슨 황은 오리건 주립대학교 전기공학과 연구실에서 전기공학과에 3명 밖에 없었던 여학생 중 한 명이었던 연상의 동기생 로리 밀스를 만났다.
1981辛酉
- 1981년, 18세 때, 젠슨 황은 오리곤의 기술 기업인 테크트로닉 인더스트리에 인텁쉽 신청을 했지만 거절 당했다.
- 1981년, 18세 때, 젠슨 황은 오리건 주립대학교 교수 도널드 아모트의 공학 수업을 수강했다.
- 1981년, 18세 때, 젠슨 황은 도널드 아모트가 수치를 반올림해서 전체 수업의 논의 속도를 높이는 것을 보고 처음엔 거슬렸지만, 나중엔 그것이 나무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고 숲을 보는 방법일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1982壬戌
- 1982년, 19세 때, 젠슨 황은 오리건 주립대학교 전기공학과를 최고 성적으로 조기 졸업했다.
- 1982년, 19세 때, 젠슨 황은 텍사스 인스트루먼츠에 입사하려고 했지만 면접을 망치는 바람에 낙방했다.
- 1982년, 19세 때, 젠슨 황은 AMD와 LSI로직에 지원했고 두 회사 모두로부터 합격 통보를 받았다.
20대
1983癸亥
- 1983년, 20세 때, 젠슨 황은 LSI로직보다 상대적으로 더 유명했던 AMD를 선택했고, 초봉으로 연봉 2만8700만 달러를 받았다.
- 1983년, 20세 때, 젠슨 황은 여자친구 로리 밀스의 아버지와 가족처럼 지내기 시작했다.
- 1983년, 20세 때, 젠슨 황의 동생 짐 황은 형과 마찬가지로 오리건 주립대학교 전기공학과에 입학했다.
1984甲子
- 1984년 12월 말, 21세 때, 젠슨 황은 AMD가 샌프란시스코 모스코니 센터에서 직원들을 위해 개최한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22세 여자친구 로리 밀스에게 청혼했다.
- 1984년 12월 말, 21세 때, 젠슨 황은 젠슨 황의 청혼을 받아들였다.
- 1984년 12월 말, 21세 때, 젠슨 황은 약혼녀 로리 밀스를 자신의 스포츠카 도요타 수프라에 태우고 캘리포니아에서 오리건까지 밤새 9시간 동안 운전했다.
- 1984년 12월 말 이른 아침, 21세 때, 젠슨 황은 밤새 운전을 하다가 산 길의 블랙아이스 때문에 미끄러졌고, 결국 약혼녀 로리 밀스와 함께 도로 밖 경사지로 굴러떨어졌다.
- 1984년 12월 말, 21세 때, 젠슨 황은 약혼녀 로리 밀스와 구조대가 도착할 때까지 전복된 차 안에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1985乙丑
- 1985년, 22세 때, 젠슨 황은 23세 약혼녀 로라 밀스와 결혼했다.
- 1985년, 22세 때, 젠슨 황은 AMD에서 종이에 마이크로칩 설계도를 직접 그려서 포토마스크로 만드는 업무를 했다.
- 1985년, 22세 때, 젠슨 황은 AMD 포토마스크 제작 담당인 중국인들로부터 중국 본토어인 만다린을 배웠다.
- 1985년, 22세 때, 젠슨 황은 자사주 구매 프로그램을 통해 AMD 주식을 사들였다.
- 1985년, 22세 때, 젠슨 황은 AMD에서 1983년 나스닥에 상장된 LSI로직으로 이직했다.
1986丙寅
- 1986년, 23세 때, 젠슨 황은 하드웨어의 기술적 한계는 모르면서 소프트웨어 성능 요구만 하는 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 고객들을 상대하면서, 시장이 필요로 하는 그래픽 카드의 기능이 무엇인지 파악하게 됐다.
- 1986년, 23세 때, 젠슨 황은 LSI로직의 업무가 너무 바빠서 스탠포드 대학교 전기공학과 석사 과정에 휴학계를 제출했다.
- 1986년, 23세 때, 젠슨 황은 LSI 로직에서 엔지니어링 부서와 마케팅 부서와 일반 관리 부서를 두루 거치면서 매니지먼트 경험을 쌓기 시작했다.
- 1986년, 23세 때, 젠슨 황은 하드웨어의 기술적 한계는 모르면서 소프트웨어 성능 요구만 하는 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 고객들을 상대하면서, 시장이 필요로 하는 그래픽 카드의 기능이 무엇인지 파악하게 됐다.
1988戊辰
- 1988년, 25세 때, 젠슨 황은 26세 아내 로리 밀스와 함께 캘리포니아 산호세 동쪽의 2층 주택으로 이사했다.
- 1988년, 25세 때, 젠슨 황은 반려견 ‘스시’를 입양해서 키웠다.
- 1988년, 25세 때, 젠슨 황과 로리 밀스 부부는 하루 종일 일하고 월급의 대부분은 저축하고 소비는 거의. 하지 않는 성실함의 대명사 같은 부부였다.
- 1988년, 25세 때, 젠슨 황은 주요 고객인 썬 마이크로시스템의 칩 설계자들인 크리스 말라초스키와 커티스 프리엠을 만족시키기 위해 LSI로직의 에이스 직원은 젠슨 황을 담당자로 배정했다.
- 1988년, 25세 때, 젠슨 황은 과학자들을 위한 그래픽 워크스테이션 컴퓨터를 제작하는 썬 마이크로시스템의 칩 설계자들인 크리스 말라초스키와 커티스 프리엠과 일하기 시작했다.
1989己巳
- 1989년, 26세 때, 젠슨 황은 썬 마이크로시스템의 칩 설계자 크리스 말라초스키와 커티스 프리엠과 함께 산업용 3D 그래픽 워크스테이션인 썬GX를 함께 만들어서 성공시켰다.
- 1989년, 26세 때, 젠슨 황은 썬GX를 성공시키면서 LSI로직의 창업자 월프 코리건에 의해 시스템 온 칩 설계 플랫폼의 총괄 운영 책임자로 임명됐다.
- 1989년, 26세 때, LSI로직 매니저 젠슨 황은 썬 마이크로시스템의 칩 설계자 크리스 말라초스키와 커티스 프리엠과 함께 산업용 3D 그래픽 워크스테이션인 썬GX를 함께 만들어서 성공시켰다.
- 1989년, 26세 때, LSI로직 매니저 젠슨 황은 썬GX를 성공시키면서 LSI로직의 창업자 월프 코리건에 의해 시스템 온 칩 설계 플랫폼의 총괄 운영 책임자로 임명됐다.
1990庚午
- 1990년, 27세 때, 젠슨 황은 연간 2억50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 1990년, 27세 때, 젠슨 황은 고객들에게는 약속을 잘 지키고 직원들에겐 리더쉽이 있는 상사로 평가 받았다.
- 1990년, 27세 때, 젠슨 황은 아내 로리 밀스와의 사이에서 아들 스펜서 황을 낳았다.
- 1990년, 27세 때,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의 칩 설계자 커티스 프리엠과 크리스 말라초스키는 프리미엄 전문가용 썬GX를 저렴한 PC 비디오게임용 버전으로 만들자고 썬 마이크로시스템즈 임원들에게 제안했지만 거절 당했다.
- 1990년, 27세 때,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의 칩 설계자 커티스 프리엠과 크리스 말라초스키는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의 창업자 엔디 벡톨샤임과는 가깝지 않았고, 오히려 엔디 백톨샤임의 신임을 얻은 경쟁자들 때문에 사내 정치에 연루됐다.
1991辛未
- 1991년, 28세 때,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의 칩 설계자 커티스 프리엠과 크리스 말라초스키는 썬 마이크로시스템즈가 비디오게임용 그래픽 카드를 만들자는 자신들의 제안을 알아주지 않자, 퇴사해서 스타트업을 창업하기로 결심했다.
- 1991년, 28세 때, 젠슨 황은 아내 로리 밀스와의 사이에서 딸 매디슨 황을 낳았다.
- 1991년, 28세 때, 젠슨 황은 남편 젠슨 황과의 의논 끝에 두 자녀의 양육을 위해 전업 주부가 됐다.
- 1991년, 28세 때, 젠슨 황은 뛰어난 엔지니어였던 로리 밀스에게 직장을 그만 두고 전업 주부가 돼 달라고 부탁했던 것에 대해서 미안함을 느꼈다.
- 1991년, 28세 때, 젠슨 황이 태어났다.
1992壬申
- 1992년 11월 26일 29세 때, 추수감사절에 젠슨 황은 공동창업자인 크리스 말라초스키와 커티스 프리엠과 데니스에서 저녁을 먹었다.
- 1992년, 29세 때, 젠슨 황은 스탠포드 대학원 전기공학 석사 학위를 8년 만에 취득했다.
- 1992년, 29세 때, 젠슨 황은 LSI 로직에서 일하는 8년 동안 그래픽 카드의 컴퓨팅 파워를 가속화한다는 사업 아이디어와 조직 운영 경험 그리고 학문적 이론적 전문성을 갖췄다.
- 1992년, 29세 때, 젠슨 황은 크리스 말라초스키에게 30세가 되면 경영자가 돼보고 싶다고 말했다.
- 1992년, 29세 때, 커티스 프리엠과 크리스 말라초스키는 썬 마이크로시스템즈를 떠나서 게임용 컴퓨터 그래픽 카드를 설계하는 스타트업을 창업하기로 결심했고, 젠슨 황에게 CEO를 맡아달라고 제안했다.
30대
1993癸酉
- 1993년 초, 30세 때, 젠슨 황은 크리스 말라초스키와 젠슨 황이 각각 사표를 내길 기다리다가 CPU를 설계하던 다른 회사의 입사 제안을 받았고, 흔들렸지만 결국 거절했다.
- 1993년 초, 30세 때, 젠슨 황은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의 상사에게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의 워크스테이션을 갖고 퇴사해도 되는지 문의했고, 허락을 받았다.
- 1993년 초, 30세 때, 젠슨 황은 아내 로리 황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커티스 프리엠과 크리스 말라초스키를 따라 LSI로직에 사표를 제출하기로 했고, 인수인계를 시작했다.
- 1993년 초, 30세 때, 젠슨 황은 LSI로직의 CEO 월프 코리건에게 사표를 내면서 그래픽 카드의 시장 전망을 설명했고, 월프 코리건은 자신도 투자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 1993년 30세 때, 초, 젠슨 황과 크리스 말라초스키와 커티스 프리엠은 또 다시 CPU 설계 회사의 합류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했고, 원래 계획대로 창업을 하기로 결정했다.
1994甲戌
- 1994년, 31세 때, 젠슨 황은 커티스 프리엠의 집에서 서니베일의 쇼핑몰에 있는 사무실로 회사를 옮겨서 NV1 개발을 본격화했다.
- 1994년, 31세 때, 젠슨 황은 엔비디아 서니베일 사무실에서 세가 게임기를 갖고 종종 비디오 게임을 즐겼다.
- 1994년, 31세 때, 젠슨 황은 엔비디아 서니베일 사무실에서 종종 직원들과 탁구 시합을 했다.
- 1994년, 31세 때, 젠슨 황은 엔비디아 서니베일 사무실의 회의실에 있는 화이트보드와 벽면을 이용해서 엔비디아의 사업 계획서를 모두가 볼 수 있게 써놓았다.
- 1994년, 31세 때, 젠슨 황은 엔비디아 직원들이 마감일을 지키는 대신 게임 신기록에 몰두하자 크게 화를 내면서 회사에 있던 게임기를 치워버렸다.
1995乙亥
- 1995년, 32세 때, 젠슨 황은 시장이 PC 비디오 게임 ‘둠’과 ‘미스트’가 큰 인기를 끌자, 엔비디아의 첫 제품인 NV1의 정식 출시를 서둘렀다.
- 1995년, 32세 때, 젠슨 황은 미국과 일본을 오가면서 세가와의 NV2 계약을 직접 수행했다.
- 1995년 가을, 32세 때, 젠슨 황은 NV1의 유통회사인 다이아몬드가 NV1에 엔비디아의 고유 브랜드 대신 다이아몬드 엣지 3D라는 유통사의 브랜드명을 붙이면서, 역시 다이아몬드 몬스터라고 이름 붙여진 경쟁사 3dfx와 엔비디아를 차별화시키는데 애를 먹었다.
- 1995년 말, 32세 때, 젠슨 황은 세가의 ‘버추어 파이터’에 특화된 그래픽 카드라는 마케팅 포인트 덕분에 NV1을 1만 개 이상 판매하는데 성공했다.
- 1995년 5월, 32세 때, 젠슨 황은 세가와 5년 동안의 파트너쉽 계약을 체결했고, NV2를 세가 콘솔 게임 전용으로 제작하기로 합의했다.
1996丙子
- 1996년, 33세 때, 33세 떄, 젠슨 황은 커피스 프리엠이 설계한 NV1이 인기 게임 ‘둠’을 지원하지 못하고 시장에서 외면 받으면서 사업적 위기에 빠졌다.
- 1996년, 33세 때, 젠슨 황은 NV1이 그래픽과 사운드에서 시장 트렌드와 무관한 혁신적인 기술 개선을 추구한 탓에 오히려 ‘둠’과 같은 대세 인기 게임을 전혀 지원하지 못하고 소비자한테 외면 받는 상황을 경험했다.
- 1996년 봄, 33세 때, 젠슨 황은 NV1이 세가의 ‘버추어 파이터’에만 특화된 그래픽 카드였던 탓에 다른 게임에선 여러 기술적 오류를 일으키면서, 시장에 판매한 25만 개 제품 중에서 24만9000개가 반품되는 경험을 했다.
- 1996년, 33세 때, 젠슨 황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 OS에서 3D 그래픽을 담당하는 다이렉트X에선 삼각형 폴리곤만 지원할 것이라고 발표하면서, 사각형 폴리곤을 지원하는 NV1이 기술적으로 완전히 구닥다리 제품이 되는 경험을 했다.
- 1996년, 33세 때, 젠슨 황은 사각형 폴리곤을 선택했던 엔비디아 CTO 커티스 프리엠의 선택이 잘못된 기술적 판단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997丁丑
- 1997년 34세 때, 이후 30개 우량주로 이뤄진 다우지수에서 교체된 종목은 8개다.
- 1997년 봄, 34세 때, 젠슨 황은 프로토타입을 만들지 않고 시뮬레이션 에뮬레이터로만 설계한 NV3가 파운드리를 통해 대량 생산된 뒤에도 과연 완벽하게 작동할지 확신하지 못했다.
- 1997년 봄, 34세 때, 젠슨 황은 대량 생산된 NV3가 에뮬레이터로 설계했던 그대로 완벽하게 작동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 1997년 봄, 34세 때, 젠슨 황은 NV3의 명칭을 개선된 성능을 표현하는 이름인 리바(Real Time Interactive Video and Animation Accelerator)128이라고 이름 붙였다.
- 1997년, 34세 때, 젠슨 황은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의 ‘혁신기업의 딜레마’를 읽고 혼다가 GM이 무관심했던 저성능 저이윤 오토바이 시장부터 파괴적 혁신을 시작한 것처럼, 엔비디아 역시 인텔이 무관심한 저성능 저이윤 그래픽 카드 시장에서부터 파괴적 혁신을 일으키는 것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1998戊寅
- 1998년, 35세 때, 젠슨 황은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의 ‘혁신기업의 딜레마’를 기반으로 엔비디아가 반도체 시장에서 인텔과 정면 승부를 피하면서 인텔이 놓친 시장을 선점하면서 결국 언젠간 인텔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얘기를 직원들에게 했다.
- 1998년, 35세 때, 젠슨 황은 리바 TNT로 3dfx CEO 로스 스미스의 부두2와 그래픽 가속기 시장을 양분하는데 성공했다.
- 1998년, 35세 때, 젠슨 황은 TSMC가 생산 공정에서의 실수로 엔비디아의 리바 TNT2 생산 물량의 절반을 폐기 처분해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 1998년 여름, 35세 때, 젠슨 황은 TSMC로부터 공급 받은 리바 128ZX의 품질에 문제가 생기자 엔비디아에 저숙련 테스터 노동자인 ‘블루코트’를 고용해서 전수 조사를 실시했다.
- 1998년 여름, 35세 때, 젠슨 황은 저숙련 테스트 노동자인 ‘블루코트’가 당장은 엔비디아의 품질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유일한 해결책이기 때문에 엔지니어 직원들이 식당에서 더 배려해줘야 한다는 내용의 전사 이메일을 보냈다.
1999己卯
- 1999년, 36세 때, 젠슨 황은 프라이싱에 관한 경영서를 집중적으로 탐독했다.
- 1999년, 36세 때, 젠슨 황은 당시 실리콘밸리에서 광범위하게 인기가 있었던 SF 소설은 전혀 읽지 않았다.
- 1999년, 36세 때, 젠슨 황은 TSMC 위탁 생산을 통해 리바 TNT2의 가격은 낮춘 대신 고가 프리미엄 제품인 리바 TNT2 울트라와 리바 TNT2 프로를 함께 출시했다.
- 1999년, 36세 때, 젠슨 황은 부두3가 리바 TNT2보다 성능이 다소 앞선다는 시장의 평가를, TSMC를 이용한 가격 경쟁력과 프리미엄 전략으로 극복했다.
- 1999년, 36세 때, 젠슨 황은 결혼했고, 엔비디아 공동창업자 크리스 말라초스키가 신랑 들러리를 섰다.
2000庚辰
- 2000년, 37세 때, 젠슨 황은 LSI로직에서 일할 때 자신의 상사였던 토미 리를 엔비디아에 채용했다.
- 2000년 초, 37세 때, 젠슨 황은 엔비디아 주가가 주당 100달러를 돌파하자 공동창업자 커티스 프리엠과 크리스 말라초스키와의 내기에 따라 왼쪽 팔에 엔비디아 로고를 문신으로 새겼다.
- 2000년 초, 37세 때, 젠슨 황은 엔비디아 세일즈&마케팅 이사 크리스 디스킨이 스티브 잡스와 담판에 성공한 덕분에 아이맥 G4에 엔비디아 그래픽 카드를 공급하는 계약을 따냈다.
- 2000년 37세 때, 초, 엔비디아 세일즈&마케팅 이사 크리스 디스킨은 스티브 잡스에게 “노트북 시장에서 엔비디아는 ATI를 능가할 기술적 역량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고 스티브 잡스는 엔비디아에게 기술 역량을 입증할 기회를 줬다.
- 2000년 37세 때, 초, 젠슨 황은 자신의 공격적인 엔비디아 영업 방식을 실현시켜주는 선봉대인 엔비디아 영업팀을 ‘그린베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2001辛巳
- 2001년, 38세 때, 젠슨 황은 엔비디아의 기업 문화를 미국적인 게임 회사보단 아시아적인 제조업 기업에 가깝게 만들었다.
- 2001년, 38세 때, 젠슨 황은 이언 벅이 브룩을 오픈소스로 공개하면서 구축되고 있는 엔비디아 지포스에 기반한 병렬 컴퓨팅 생태계를 관찰하면서 논문을 발표하기 시작했고, 젠슨 황은 빌 댈리의 논문을 읽었다.
- 2001년, 38세 때, 젠슨 황은 부모로부터 형과 동생을 엔비디아에 고용해달라는 요구를 받았지만, 끝까지 거절했다.
- 2001년, 38세 때, 젠슨 황은 엔지니어인 큰 형 제프 황은 엔비디아가 요구하는 역량을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 2001년, 38세 때, 젠슨 황은 인텔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인 동생 짐 황은 창업가한테 요구되는 리스크 테이킹의 용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2002壬午
- 2002년, 39세 때, 젠슨 황은 올림픽 탁구 선수 출신 코치의 도움을 받아서 다시 탁구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 2002년, 39세 때, 젠슨 황은 엔비디아 GPU를 역설계하고 복제하는 경쟁사들과 사용자들이 늘어나는 것을 경험하면서 근본적인 해자가 없는 그래픽 카드 시장을 벗어나서 복제가 불가능한 수준의 기술 격차를 만들어낼 방법을 고민했다.
- 2002년, 39세 때, 젠슨 황은 스탠포드 양자화학 연구소의 연구원으로부터 “엔비디아의 GPU 덕분에 연구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었다”는 내용의 감사 이메일을 받았다.
- 2002년, 39세 때, 젠슨 황은 분자 관련 모델링을 하고 있던 연구원이 게임을 즐기던 아들로부터 GPU를 활용해서 연산해보라는 조언을 듣고, 프라이스에서 엔비디아 지포스를 사용해서 연산을 했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GPU가 인공지능 분야의 초론 영역에서 ‘아르키메데스의 지렛대’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 2002년, 39세 때, 젠슨 황은 엔비디아 GPU를 게임이 아니라 과학 연구에 사용하려고 해킹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웹사이트인 GPGPU.org(General Purpose computing on GPUs)를 만들었다.
40대
2003癸未
- 2003년 초, 40세 때, 젠슨 황은 지포스FX를 출시했지만 느린 속도와 시끄러운 냉각팬 때문에 최악의 평가를 받았다.
- 2003년 초, 40세 때, 젠슨 황은 PC게임을 즐길 나이였던 13세 아들 스펜서 황으로부터도 지포스FX에 대해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는 평가를 받았다.
- 2003년, 40세 때, 젠슨 황은 지포스FX의 성능을 개선하기 위해 엔비디아 직원들을 거칠게 몰아붙였고 퇴사자들이 속출했다.
- 2003년, 40세 때, 젠슨 황은 엔비디아가 위기에 처하자 결국 엔비디아 주식을 블록딜로 매각하면서 엔비디아를 떠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 2003년, 40세 때, 젠슨 황은 엔비디아의 시스템 아키텍처에서 제품 분야에서 다시 지식재산 관리 부서로 자리를 옮긴 끝에 결국 퇴사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2004甲申
- 2004년, 41세 때, 젠슨 황은 지포스 GPU로 만든 셀프 슈퍼 컴퓨터로 미국방위고등연구계획국의 과제를 수행했고 결국 오픈소스 프로그래밍 언어인 브룩을 만들어서 GPU 병렬 컴퓨팅 생태계를 만들고 있던 스탠포드 컴퓨터 공학과 대학원생이자 전 엔비디아 인턴 이안 벅을 채용했다.
- 2004년, 41세 때, 젠슨 황은 존 니콜스로부터 엔비디아의 GPU로 병렬 컴퓨팅이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소프트웨어 아키텍처가 필요하다는 설명을 들었다.
- 2004년, 41세 때, 젠슨 황은 병렬 컴퓨팅 관련 스타트업인 마스파 코퍼레이션을 창업했지만 실패하고 엔비디아에 합류한 존 니콜스와 GPU를 병렬 컴퓨터로 활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인 쿠다(Computer Unified Device Architecture)를 본격 개발하기 시작했다.
- 2004년, 41세 때, 젠슨 황은 존 니콜스가 비디오 게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병렬 컴퓨팅을 계속 개발할 수 있기 때문에 엔비디아에 합류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 2004년, 41세 때, 젠슨 황은 엔비디아의 엔지니아 존 니콜스와 함께 시장에선 그래픽 카드로 알려져 있던 GPU를 병렬 컴퓨팅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해주는 인터페이스인 쿠다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2005乙酉
- 2005년, 42세 때, 젠슨 황은 번아웃이 왔고 엔비디아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 2005년, 42세 때, 젠슨 황은 자신의 후임으로 벨 연구소 출신으로 MIT 교수를 거쳐서 스탠포드 대학교 컴퓨터 공학과 석좌교수로 일하고 있던 빌 댈리를 점찍었다.
- 2005년, 45세 때, 엔비디아 수석과학자 데이비드 커크는 번아웃이 왔고 엔비디아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 2005년, 45세 때, 엔비디아 수석과학자 데이비드 커크는 자신의 후임으로 벨 연구소 출신으로 MIT 교수를 거쳐서 스탠포드 대학교 컴퓨터 공학과 석좌교수로 일하고 있던 빌 댈리를 점찍었다.
2006丙戌
- 2006년, 43세 때, 젠슨 황은 AMD 파운드리 공급망을 기반으로 ATI의 라데온 9700을 공급하면서 엔비디아 독주 체제였던 그래픽 카드 시장을 흔들기 시작했다.
- 2006년, 43세 때, 젠슨 황은 헥터 루이즈의 라데온 9700한테 PC 그래픽 카드 시장을 공략 당했고, 모바일 그래픽 카드 시장은 퀄컴한테 선점 당하면서, 샌드위치 신세가 됐다.
- 2006년 말, 43세 때, 젠슨 황은 엔비디아 GPU를 그래픽 카드로 내장한 일부 노트북에서 과도한 발열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으면서, 엔비디아의 마지막 보루인 노트북 시장에서도 이상 징후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 2006년, 43세 때, 젠슨 황은 인텔이 엔비디아가 장악한 GPU 시장을 노리고 CPU의 그래픽 성능을 강화하자 오히려 인텔이 주도해온 CPU 컴퓨팅 시장을 겨냥해서 GPU의 연산력을 강화했다.
- 2006년, 43세 때, 젠슨 황은 일리노이 대학교 어바나 샴페인 캠퍼스에서 쿠다 프로그래밍으로 G80을 병렬 컴퓨팅으로 활용하는 방법에 관한 강의를 2주마다 하기 시작했다.
2007丁亥
- 2007년, 44세 때, 젠슨 황은 고성능 GPU인 G80으로 쿠다를 활용해서 병렬 컴퓨팅으로 활용할 수 있는 수요자를 찾았지만, 쿠다를 다운로드하는 G80의 소비자는 전체 사용자의 0.01% 이하였다.
- 2007년, 44세 때, 젠슨 황은 쿠다 생태계를 확산시키기 위해서 ‘대규모 병렬 프로세서 프로그래밍(Programming Massively Parelled Processors)’이라는 이름의 매뉴얼을 직접 집필해서 배포했다.
- 2007년, 44세 때, 젠슨 황은 값비싼 G80 가격과 높은 쿠다 개발 비용으로 인해서 엔비디아 매출 총이익률이 악화되면서 주가가 떨어지자 월가의 압박을 받기 시작했다.
- 2007년, 44세 때, 젠슨 황은 월스트리트 애널리스트들을 상대로 엔비디아 본사에서 IR 미팅을 했고, 쿠다를 기반으로 한 GPU 컴퓨팅 시장이 60억 달러 이상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설득했지만, 공격만 당했다.
- 2007년, 44세 때, 젠슨 황이 리는 프린스턴 대학교 컴퓨터 공학과 교수로 임명됐다.
2008戊子
- 2008년 45세 때, 지포스84과 86의 발열 문제는 범프 게이트로 이어졌고 결국 엔비디아 주가는 30% 폭락했다.
- 2008년, 45세 때, 젠슨 황은 불량이 확인된 지포스 84와 지포스 86이 모두 2004년부터 2006년까지 TSMC에서 생산된 GPU들이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 2008년, 45세 때, 젠슨 황은 불량이 확인된 지포스84와 지포스86의 문제 원인은 반도체 칩과 반도체 기판의 접착 부위인 범프라는 사실을 파악했다.
- 2008년, 45세 때, 젠슨 황은 엔비디아가 파운드리 업체와 노트북 완제품 제조사와 소비자들의 신뢰를 모두 잃을 수도 있다는 현실을 파악했다.
- 2008년, 45세 때, 젠슨 황은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 회사 구내 식당에서 진행된 엔비디아 워크숍에서 TSMC로부터 납품 받은 지포스84와 지포스86의 품질 관리자를 공개적으로 비난했지만, 끝까지 해고하지는 않았다.
2009己丑
- 2009년, 46세 때, 젠슨 황은 엔비디아 리서치의 인원수를 300명까지 늘리면서 본격적으로 병렬 컴퓨팅 역량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 2009년, 46세 때, 젠슨 황은 엔비디아 수석 과학자 빌 댈리를 통해 GPU와 쿠다의 지원 영역을 로보틱스와 자율주행과 기후 모델링 영역까지 확대했다.
- 2009년, 46세 때, 젠슨 황은 쿠다에 20억 달러 이상을 투자했다.
- 2009년 말, 46세 때, 젠슨 황은 신경정보처리시스템 학회 발표에서 인공지능 연구를 위해선 인공 신경망을 구축해야 하기 때문에 당장 엔비디아 GPU를 사야 한다고 설득했다.
- 2009년 말, 46세 때, 젠슨 황은 엔비디아에 이메일을 보내서 자신이 1000명 이상의 인공지능 연구자들에게 엔비디아 GPU를 구매하라고 설득했다고 설명하면서, 1개의 GPU를 무상으로 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 당했다.
2010庚寅
- 2010년, 47세 때, 젠슨 황은 2008년 금융위기로 줄어든 PC와 노트북 수요에 대해 대응책을 고심했다.
- 2010년, 47세 때, 젠슨 황은 2008년 금융위기로 법정화폐에 대한 신뢰가 낮아진 틈새를 파고든 비트코인의 채굴에 GPU가 쓰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 2010년, 47세 때, 젠슨 황은 암호화폐 커뮤니티를 통해 비트코인 작업 증명 알고리즘에는 CPU보다 GPU가 효율적이라는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 2010년, 47세 때, 젠슨 황은 암호화폐 채굴 시장이 성장하면서 GPU 수요가 회복됐고 엔비디아 역시 실적이 회복되는 경험을 했다.
- 2010년, 47세 때, 젠슨 황은 암호화폐 시장은 너무 변동성이 커서 GPU의 새로운 안정적인 수요처라고 보진 않았다.
2011辛卯
- 2011년, 48세 때, 젠슨 황은 앰버와 같은 최첨단 과학 연구 프로그램에선 엔비디아가 개발한 테슬라를 사용하길 원했고, 그렇게 과학 연구 시장에서 업세일링을 일으키려고 했다.
- 2011년, 48세 때, 로스 워커는 젠슨 황이 업세일링을 위해 더 비싼 테슬라를 판매하려고 하자 거부하고 대신 저렴한 기존의 GPU로 앰버 연구를 계속하려고 했고, 갈등을 빚었다.
- 2011년, 48세 때, 로스 워커는 앰버 사용자들에게 젠슨 황과 엔비디아가 테슬라 이외에는 저렴한 GPU를 대량 구매하지 못하게 방해했다고 주장했다.
- 2011년, 48세 때, 젠슨 황은 쿠다 개발을 주도했던 존 니콜스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충격을 받았다.
- 2011년, 48세 때, 젠슨 황은 돈을 벌지 못하는 쿠다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에 반대하는 증시 투자자들 때문에 곤경에 처하게 됐다.
2012壬辰
- 2012년 초, 49세 때, 젠슨 황은 토론토 대학교의 기존 시각 인식 신경망을 쿠다에서도 실행할 수 있도록 개조하는데 성공했다.
- 2012년, 49세 때, 토론토 대학교 조교수들인 일리야 수츠케버와 알렉스 크리제브스키는 개인 돈으로 1000달러 정도를 모아서 2개의 엔비디아 지포스 GTX580를 구매했고 함께 쿠다를 기반으로 시각 인식 신경망 훈련을 시작했다.
- 2012년, 49세 때, 젠슨 황은 2개의 엔비디아 GPU로 구성한 인공 시각 신경망을 위한 빅데이터로 스탠포드 대학교 컴퓨터 공학과 교수 페이페이 리가 구축한 이미지넷의 데이터를 활용했다.
- 2012년, 49세 때, 젠슨 황은 부모님 집에 있는 자신의 침실에서 엔비디아 GPU 2개를 이용해서 인류 최초로 인공 신경망의 머신 러닝 작업을 수행했다.
- 2012년, 49세 때, 젠슨 황은 몇 날 며칠에 걸쳐서 24시간 내내 자신이 만든 시각 인공 신경망의 이미지 인식률을 높였고 결국 80%에 도달했다.
50대
2013癸巳
- 2013년, 50세 때, 젠슨 황이 창업한 인공지능 회사 DNN리서치는 구글 브레인이라는 구글의 자회사가 됐다.
- 2013년 초, 50세 때, 젠슨 황은 행동주의 펀드 스타보드 밸류의 CIO 제프 스미스로부터 쿠다에 대한 투자를 멈추고 배당을 늘리라는 공개 서한을 받았다.
- 2013년 초, 50세 때, 젠슨 황은 제프 스미스의 압박에 굴복해서 수익성이 낮은 아이세라를 재매각하는 대신 쿠다 사업은 계속하기로 결정했다.
- 2013년, 50세 때, 젠슨 황은 이사회 멤버인 변호사 짐 게이더와 함께 엔비디아의 주요 주주인 피델리티 자산운용의 경영진을 만나서 쿠다 투자의 사업성을 설득했지만 오히려 공격만 당했다.
- 2013년, 50세 때, 젠슨 황은 시카고 예술 대학교에 진학해서 사진 작가가 되겠다고 결정했다.
2014甲午
- 2014년, 51세 때, 젠슨 황은 알렉스 크리제브스키와 일리야 수츠케버와 제프리 힌튼의 구글 브레인과 데미스 하사비스의 딥마인드와 앤드류 응의 팀까지 3개의 인공지능 연구팀을 인수하면서 구글을 인공지능 분야의 독보적인 빅테크로 만들었다.
- 2014년, 51세 때, 젠슨 황은 엔비디아 GPU가 대용량의 데이터를 빠르게 읽어들일 수 있게 해주는 NV링크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 2014년, 51세 때, 옥스포드 대학교의 철학자 닉 보스트롬은 저서 ‘슈퍼 인텔리전스’에서 인공일반지능은 인간을 멸종시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 2014년, 51세 때, 젠슨 황은 엔비디아 GPU를 활용해서 컴퓨터가 언어를 학습할 수 있는 매커니즘인 ‘셀프 어텐션’ 모델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 2014년, 51세 때, 젠슨 황은 인간 두뇌 속 뉴런 중 단 1%만 언어 처리를 담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공지능의 언어 모델 역시 연산은 최소화하고 빅데이터는 최대화하는 방식으로 설계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2015乙未
- 2015년, 52세 때, 젠슨 황은 엔비디아의 직원수가 1만 명을 넘어서자 건축설계사 겐슬러의 건축가 하오 코에게 새로운 본사인 엔데버를 건설을 맡겼다.
- 2015년, 52세 때, 젠슨 황은 겐슬러의 건축가 하오 코에게 엔비디아 GPU에 기반한 VR 시뮬레이션 헤드셋을 씌워주고 자신이 생각하는 새로운 엔비디아 본사 엔데버의 3차원 가상 현실을 직접 보여줬다.
- 2015년, 52세 때, 젠슨 황은 하오 코와 함께 삼각형의 프렉탈이 수학적으로 정교하게 배열된 구조의 엔데버를 설계했다.
- 2015년, 52세 때, 젠슨 황은 엔데버를 업무에 최적화돼 있고 복지 시설은 거의 없는 비즈니스 공간으로 디자인했다.
- 2015년, 52세 때, 젠슨 황은 엔데비의 주요 회의실에는 대형 화이트보드를 벽마다 설치했고, 대만에서만 판매하는 화이트보드 마커까지 준비했다.
2016丙申
- 2016년, 53세 때, 구글 TPU의 핵심 개발 인력이었던 조나단 로스는 구글의 TPU 설계팀 10명 중 8명을 데리고 나와서 AI 반도체 스타트업 그록을 창업했다.
- 2016년, 53세 때, 젠슨 황은 TSMC의 초정밀 초고밀도 3차원 반도체 제조기술인 핀펫을 기반으로 인공지능용 아키텍처인 ‘파스칼’을 설계했다.
- 2016년, 53세 때, 젠슨 황은 파스칼 아키텍처로 만들어진 8개의 P100 GPU 반도체를 NV링크로 연결한 머신러닝 전용 컴퓨터인 DGX-1을 2개 완성했다.
- 2016년, 53세 때, 젠슨 황은 구글의 일리야 폴로수킨(Illia Polosukhin)을 셀프 어텐션 연구팀에 합류시켜서 인간이 언어를 학습하는 방식을 인공지능에 적용할 수 있는 방식을 연구했다.
- 2016년, 53세 때, 젠슨 황은 구글의 일리야 폴로수킨과 함께 인간이 왜 만물 중에서 유일하게 언어를 사용하는 존재로 진화했는지를 연구했다.
2017丁酉
- 2017년, 54세 때, 젠슨 황은 에너지 효율이 높은 시스템 온 그래픽 칩인 테그라를 기반으로 제조된 닌텐도 스위치가 대박을 내면서, 원래 닌텐도의 오랜 파트너였던 AMD의 외사촌 리사 수를 이겼다.
- 2017년, 54세 때, 젠슨 황은 인공지능과 자율주행에 관해서는 공개 발언을 했지만 비트코인과 암호화폐와 관련해서는 언급을 자제하면서 거리를 뒀다.
- 2017년, 54세 때, 젠슨 황은 암호화폐 채굴업자들이 엔비디아 GPU를 비트코인 채굴에 사용하는 것은 막거나 반대하진 않았지만 엔비디아 매출에서 얼마나 차지하는지도 공개하지 않았다.
- 2017년, 54세 때, 젠슨 황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가 엔비디아에 암호화폐 채굴 관련 매출 비중을 공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550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하자 조용히 납부했다.
- 2017년, 54세 때, 젠슨 황은 비트코인 채굴 전용 카드인 CMP를 출시하면서 인공지능 개발자들과 그래픽 게임 유저들과 암호화폐 채굴 업자들의 제품 카테고리를 분리했다.
2018戊戌
- 2018년, 55세 때, 젠슨 황은 비트코인 가격이 1만6000달러까지 상승했다가 폭락하자 더 이상 암호화폐 시장에는 아무런 관심을 드러내지 않았다.
- 2018년, 55세 때, 젠슨 황이 오픈AI의 새로운 CEO가 됐다.
- 2018년, 55세 때, 젠슨 황은 튜링 아키텍처를 공개했다.
- 2018년, 55세 때, 젠슨 황은 구글의 노암 샤지어가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뉴럴IPS 학회에서 트랜스포머 모델에 대해 발표하는 내용을 직접 들었다.
- 2018년, 55세 때, 젠슨 황은 오픈AI의 CEO 샘 올트만에게 당장 인공 게이머 개발 프로젝트를 중단하고 트랜스포머 모델을 기반으로 하는 초거대 언어 모델 개발에 집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2019己亥
- 2019년 초, 56세 때, 젠슨 황은 800만 개의 웹페이지를 학습한 파라미터가 15억 개에 달하는 GPT-2를 선보였고, 초거대언어모델이 인간이 쓴 문장보다 더 나은 문장을 쓰거나 인간이 던진 질문에 정확한 답을 제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 2019년, 56세 때, 젠슨 황은 초거대언어모델의 성장을 고려할 때 인간이 대비하지 못한 순간에 일반인공지능까지 도약할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 2019년, 56세 때, 젠슨 황은 GPU와 전력을 잡아먹는 초거대언어모델 경쟁에서 앞서나가려면 오픈AI를 비영리 회사에서 일반적인 기술 회사로 전환시켜야 한다고 판단했고, 우선 MS CEO 사티아 나델라로부터 10억 달러의 투자를 받았다.
- 2019년, 56세 때, 젠슨 황은 엔비디아의 공동창업자들인 크리스 말라초스키와 커티스 프리엠과 함께 엔비디아 사무실에서 공동창업자 모임을 가졌다.
- 2019년, 56세 때, 젠슨 황은 젠슨 황이 초창기 엔비디아 멤버들을 20년 가까이 데리고 일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2020庚子
- 2020년, 57세 때, 조나단 로스는 엔비디아의 GPU와 구글의 TPU 모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대용량 HBM 대신 작고 빠른 SRAM을 사용하는 LPU라는 반도체 아키텍처를 개발했다.
- 2020년, 57세 때, 젠슨 황은 GPU 사용자들을 엔비디아의 하드웨어 업데이트 주기에 묶어 두기 위해, 모르페우스, 하이라이트, 바이오네모, 드라이브와 같은 분야별 툴킷을 무료로 배포해서 록인 효과를 노렸다.
- 2020년, 57세 때, 젠슨 황은 딸 매니슨 황을 엔비디아의 마케팅 담당으로 채용했다.
- 2020년, 57세 때, 젠슨 황은 오네이다 침례교 기숙학교 졸업 연설에서 “만약 누군가가 회사를 운영할 사람을 찾고 있었다면 나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 2020년, 57세 때, 젠슨 황은 버버리의 똑같은 티셔츠 24장을 구입한 다음 유니폼처럼 입기 시작했다.
2021辛丑
- 2021년, 58세 때, 젠슨 황은 타임(Time)지의 '타임 100'에 두 번째로 선정됐다.
- 2021년 7월 18일, 58세 때, 젠슨 황은 제19회 '올해의 아시아계 미국인 엔지니어 상'에서 평생공로상을 수상했다.
2022壬寅
- 2022년 10월 이후부터, 59세 때,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조 바이든 민주당 행정부의 대중 수출 규제를 우회할 수 있는 중국 수출용 저성능 반도체 H20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 2022년 10월 7일 금요일, 59세 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대중 첨단 반도체 수출 규제 조치를 발표했다.
- 2022년, 59세 때, 젠슨 황은 아들 스펜서 황이 대만에서 운영하던 칵테일바의 문을 닫자 엔비디아의 로보틱스 부분에 입사시켰다.
- 2022년, 59세 때, 코파일럿이 출시됐다.
- 2022년, 59세 때, 알파폴드2가 출시됐다.
60대
2023癸卯
- 2023년, 60세 때, 조나단 로스는 언어 처리에 특화돼서 추론 속도를 극단적으로 높일 수 있는 LPU를 선보였다.
- 2023년, 60세 때, 젠슨 황은 엔비디아 자체적으로 HBM 없는 추론 칩인 CPX를 준비했지만 개발에 난항을 겪었다.
- 2023년, 60세 때, 젠슨 황은 신년 연설에서 대만 통일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
- 2023년, 60세 때, 젠슨 황은 TSMC가 짓고 있는 애리조나 피닉스 반도체 공장을 둘러봤고, TSMC 회장 모리스 창과 만났다.
- 2023년, 60세 때, 젠슨 황은 인텔 CPU를 대체할 자체적인 CPU인 그레이스 CPU를 공개했다.
2024甲辰
- 2024년 11월 1일 61세 때, 스탠더드앤푸어서 다우존스 인덱스는 인텔 대신 엔비디아를 다우지수에 편입한다고 발표했다.
- 2024년 12월 11일 61세 때, 수요일 4달러 안팎이었던 디웨이브 퀀텀의 주가는 2024년 12월 26일 목요일 10달러를 넘었다.
- 2024년 11월 5일 61세 때, 도널드 트럼프가 47대 대통령으로 재선 된 뒤 87일 만이다.
- 2024년 12월까지, 61세 때,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2024년 엔비디아 전체 매출 1305억 달러=174조 원의 13.1%인 171억 달러=22조8000억 원을 중국에 H20를 판매해서 벌었들였다.
- 2024년 8월, 61세 때, 삼성전자 회장 이재용은 AI LPU 반도체 스타트업 그록의 가치를 69억 달러로 평가했다.
2025乙巳
- 2025년 1월 7일 61세 때, 화요일 엔비디아 주가는 6.22% 하락했다.
- 2025년 1월 9일 61세 때, 목요일 CES 2025에선=세계 최대 양자 컴퓨팅 컨퍼런스인 퀀텀 월드 콩그레스와 CES의 협업으로+양자 컴퓨터 관련 특별 세션이 열렸다.
- 2025년 1월 15일 61세 때, 수요일 엔비디아가 투자한 양자 컴퓨팅 회사 SEEQC는 시리즈 A 라운드 투자로 3000만 달러를 조달하는데 성공했다.
- 2025년 3월 16일62세 때, 엔 워크숍이 열린다.
- 2025년 3월 17일62세 때, 부터 2025년 3월 20일까지 컨퍼런스가 열린다.
2026丙午
- 2026년 3월 17일, 63세 때, 젠슨 황은 CNBC 인터뷰에서 엔비디아의 칩 아키텍처가 세계에서 가장 에너지 효율적인 아키텍처라는 취지로 주장했다.
- 2026년 5월 00일, 63세 때, 젠슨 황은 스탠퍼드 대학교 컴퓨터공학 수업 강연에서 AI 컴퓨팅에 필요한 에너지가 지금보다 1,000배 더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 2026년 6월 12일, 63세 때, 젠슨 황은 엔비디아를 통해 회계연도 2026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서 스코프3(공급망) 온실가스 배출량이 회계연도 2024 대비 약 194% 증가한 것으로 드러나며, 그린피스 동아시아로부터 재생에너지 인프라 투자 세부내역 미공개와 공급망 탈탄소화 지연을 지적받았다.
- 2026년 6월 16일, 63세 때, 젠슨 황은 엔비디아를 통해 신규 AI 서버 전 라인에 물 소비가 없는 액체 냉각 시스템을 전면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물과 프로필렌 글리콜로 구성된 냉각제가 폐쇄 루프 안에서 순환해 새로운 물 취수 없이 열을 방출하며, 최대 섭씨 45도에서도 정상 작동하도록 설계했다.
- 2026년 7월 1일, 63세 때, 젠슨 황은 유엔 AI 거버넌스 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되었으며, 같은 달 8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위원회 첫 회의에 참석했다. 이 위원회는 보건·교육·식량안보·재난대응 분야를 중점적으로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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