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인사이트
2008년 9월 1일 – 2008년 12월 31일

팰컨1호의 네잎 클로버

2008년 9월 28일 일요일 팰컨 1호의 4차 발사 당일 오전에 일론 머스크는 아이들과 함께 디즈니랜드에서 스페이스 마운틴 롤러코스터를 탔다. 2008년 9월 28일 팔컨 1호 로켓의 4차 발사가 진행됐다.

2008년 9월 28일 일요일 팰컨 1호의 4차 발사 당일 오전에 일론 머스크는 아이들과 함께 디즈니랜드에서 스페이스 마운틴 롤러코스터를 탔다. 2008년 9월 28일 팔컨 1호 로켓의 4차 발사가 진행됐다. 스페이스X는 4차 발사를 위해 네잎 클로버 패치를 제작했다. 팰컨 1호 4차 발사는 완벽하게 성공했다. 3차 발사와 4차 발사의 차이는 1단계 로켓과 2단계 로켓의 분리 타이밍을 5초 정도 조정한 것 뿐이었다.

일론 머스크는 마샬 군도 콰지가 아니라 캘리포니아에서 팰컨 1호 로켓의 4차 발사를 지켜봤다. 팰컨1호는 발사 9분 뒤 지구 저궤도에 도달했다. 일론 머스크는 자축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오늘은 내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순간 중 하나입니다.”

2008년 9월 당시 스페이스X의 직원은 500명 정도였다.

2008년 시점에서 일론 머스크는 엔진 9개인 팰컨9과 우주선 드래곤도 준비하고 있었다.

2008년 9월 28일 첫 발사 성공 이후부터 스페이스X는 모든 패치에 네잎 클로버를 숨겨두게 됐다.

2008년 12월 23일 일론 머스크는 그웬 숏웰과 함께 나사로 가서=우주정거장으로 12차례 화물을 운송하는 16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나사와 맺었다. 일론 머스크는 휴스턴에서 LA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그웬 숏웰에게 스페이스X의 사장직=COO을 제안했고+그웬 숏웰은 수락했다. 일론 머스크는 스페이스X의 로그인 번호를 ilovenasa로 변경했다.

2002년 스페이스X 창업부터 2008년 12월 나사와의 계약까지=일론 머스크는 큰 아들을 잃었고 이혼을 했다.

일론 머스크는 2008년 부터 케이프 커내버럴 공군 기지의 40번 발사대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일론 머스크는 스페이스X의 인력 채용 원칙을=high signal to noise ratio로 정했다. 일론 머스크는 엔지니어 대 비 엔지니어의 비율을 항상 높게 유지했다.

일론 머스크는 스페이스X의 조직 문화를 비용 절감에 예민하고 언제나 쉼 없이 일하는 분위기로 만들었다. 일론 머스크는 나사의 관료주의적인 방식과는 정반대로 우주 개발을 하는 회사를 만들었다.

나사는 400만 달러 짜리 에어콘으로 해결하는 인공위성 온도 조절 장치를 스페이스X는 가정용 에어콘을 사서 해결했다. 일론 머스크는 우주 개발은 비싸다는 고정 관념을 깨려고 했다. 일론 머스크의 방식에 대해 나사는 거부 반응을 보였다.

일런 머스크는 스페이스X의 경쟁력이 기술력이 아니라 저비용에 있다는 것을 파악했고=직원들에게도 이해시켰다.

일론 머스크와 비슷한 결정을 한 사람들이 궁금하다면

라이프 내비게이션으로 더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