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월 20일 나사의 수석 엔지니어 리엄 사스필드는 나사 관리로선 최초로 스페이스X의 엘 세군도 본사를 방문했다. 나사의 국장 션 오키프는 일론 머스크와 스페이스X의 실력을 파악하려고 했다. 리엄 사스필드는 민간 우주 개발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온 나사 관리였다.
2004년 1월 당시 스페이스X의 직원은 42명 뿐이었다. 일론 머스크는 우주항공 분야의 최고 인재들을 채용했고=리엄 사스필드는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 일론 머스크는 리엄 사스필드에게 오히려 나사에 관해 끝없이 질문들을 던졌다. 일론 머스크는 나사의 우주정거장의 우주선 도킹 어뎁터에 관해 자세하게 믈었다.
2004년 1월 29일 리엄 사스필드는 일론 머스크와 스페이스X가 경쟁력을 갖고 있다는 보고서를 나사 국장 션 오키프에게 올렸지지만=결국 나사는 무시했다.
2004년 2월 말 일론 머스크는 리엄 사스필드에게=왜 나사가 민간우주항공사 키슬러 에어로스페이스와 2억2700만 달러 규모의 수의 계약을 체결했는지+왜 스페이스X는 입찰 기회를 얻지 못했는지 항의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리암 사스필드는 호감을 갖고 있던 일론 머스크를 달래기 위해서=이번 수의 계약은 나사가 재정적으로 궁지에 몰린 키슬러 에어로스페이스를 도와주기 위해서 수의 계약을 맺은 것이며+스페이스X도 앞으로 나사의 도움을 받게 될 것이라고 이메일을 보냈다. 일론 머스크는 리암 사스필드의 이메일을 받고+자신이 싸워야하는 것은 시장경쟁을 저해하는 나사의 관료주의라고 결론내렸다. 키슬러 에어로스페이스는 아폴로 프로젝트를 추진했던 조지 뮬러가 대표로 있었다.
키슬러 에어로스페이스는 1993년 재사용 가능한 저비용 발사체 개발을 목표로 창업됐다. 나사에서 우주 왕복선의 아버지로 불렸던 조지 뮬러는 1995년 5월 29일 키슬러 에어로스페이스의 CEO로 취임했다. 조지 뮬러는 키슬러 에어로스페이스의 CEO로 활동하면서 상업용 재사용 발사체 K-1 개발을 지휘했다. 키슬러 에어로스페이스는 2003년 7월 파산 신청을 했고 부채는 6억 달러 규모였다. 2004년 나사는 키슬러 에어로스페이스와 2억2700만 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지만+2010년 결국 파산했다.
일론 머스크는 나사와 키슬러 에어로스페이스 사이의 수의 계약에 관해 미국 회계감사원에 문제를 제기하겠다고 경고했다. 일론 머스크는 스페이스X의 갑인 나사까지 고소하겠다고 나섰다. 스페이스X의 고객 관계 담당자였던 그웬 쇼트웰도 일론 머스크의 공격성에 대해 우려했다. 나사는 일론 머스크와 스페이스X와 아무런 계약도 맺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일론 머스크는 나사와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 자기 편을 들어줬던 리엄 사스필드의 이메일까지 공개했다.
2004년 5월 일론 머스크는 상원위원회에서 나사와 민간 우주 개발 기업 사이의 관계에 관해 증언할 기회를 얻었다. 2004년 5월 5일 일론 머스크는 미국 상원위원회에서 나사와 키슬러 에어로스페이스와의 부정 계약에 관해 증언했다. 일론 머스크는 정부 낭비 감시 단체=GAO를 비롯한 여론을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데 성공했고=결국 나사가 키슬러 에어로스페이스와의 계약을 파기하게 만들었다. 일론 머스크는 2차 대전부터 이어져온 나사와 국방부와 하청 업체 사이의 원가 가산 방식 관습=나사와 국방부가 하청 업체의 추가 생산 비용을 보존해줘서 원가를 늘려주는 계약 방식을 파괴했다. 일론 머스크는 상원위원회에서 “이런 식으론 화성에 갈 수 없습니다. 미국 정부는 영원히 피만 빨릴 겁니다”라고 말했다. 일론 머스크는 대안으로 우주개발업체가 특정 임무를 완료하면 대금을 정산 받는 마일스톤 정산 방식을 제시했고+스페이스X로 솔선수범을 보였다.
우주 왕복선의 아버지를 파산시킨 일론 머스크를 워싱턴과 나사와 우주개발 카르텔은 더욱 차갑게 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