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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3월 1일 – 2002년 12월 31일

스페이스X는 스페이스 혼다

2002년 3월 14일 일론 머스크는 SET를 설립했다. SET는 Space Exploration Technologies Corporation의 약자였고=일론 머스크는 곧 스페이스X로 명칭을 변경했다.

2002년 3월 14일 일론 머스크는 SET를 설립했다. SET는 Space Exploration Technologies Corporation의 약자였고=일론 머스크는 곧 스페이스X로 명칭을 변경했다. 일론 머스크는 스페이스X의 목표를 2003년 9월까지 로켓을 발사하고+2010년까지 화성에 무인 탐사선을 발사하는 것으로 정했다.

일론 머스크는 LA공항 인근 엘 세군도 지역에 있는 이스트 그랜드 애비뉴 1310번지에 스페이스X의 첫 사무실 겸 공장을 마련했다. 일론 머스크는 우주를 여행하는 로켓도 저렴하고 안정적인 혼다 자동차와 같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론 머스크는 혼다 자동차와 같은 단일 엔진 로켓을 기획했다. 일론 머스크는 500킬로그램 무게의 탑재물을 600만 달러에 지구 저궤도로 운송한다는 비즈니스 모델을 마련했다.

2002년 5월 일론 머스크는 아내 저스틴 윌슨과의 사이에서 첫 아들 네바다를 낳았다. 일론 머스크와 저스틴 윌슨은 네바다의 버닝맨 파티에 참석했을 당시 네바다를 임신했다. 2002년 5월 일론 머스크 부부가 아기를 데리고 라구나비치의 결혼식에 참석했을 때=네바다는 급성영아사망증훅군으로 호흡 곤란에 빠졌다. 네바다는 뇌사 상태로 병원으로 옮겨졌고+3일 동안 생명 유지 장치를 유지했지만=결국 일론 머스크는 호흡기를 끄기로 결정했다. 네바다가 죽었을 때 일론 머스크는 늑대처럼 울었다. 일론 머스크는 주변 사람들과 네바다에 대해 말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웬 숏웰은 2002년 8월 스페이스X에 비즈니스 개발 부사장으로 입사했다. 그웬 숏웰은 일론 머스크의 맞은편에 앉아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웬 숏웰은 23세 때였던 1986년 IBM으로 입사 면접을 보러 가다가 TV 매장 앞에서 챌린저호 폭발 사고를 보고 충격을 받았고=면접을 망쳤다. 그웬 숏웰은 크라이슬러에 입사했다. 그웻 숏웰은 스타트업 컨설팅 기업인 마이크로코즘의 우주 시스템 영업 담장자로 일하다가=스페이스X에 지원했다.

마이크로코즘에서 그웬 숏웰의 상사였던 한스 쾨니스만이 모하비 사막에서 열리던 아마추어 로켓 발사 모임에서 일론 머스크를 만났고+먼저 2002년 5월 스페이스X에 4번째 직원으로 이직했다. 한스 쾨니스만이 그웬 숏웰을 일론 머스크에게 소개시켜줬다. 2002년 당시 그웬 숏웰은 자녀가 둘이었고 이혼을 준비하고 있었다. 일론 머스크가 스페이스X 입사를 제안하자 그웬 숏웰은 3주 동안 고민했고=스페이스X의 7번째 직원이 됐다.

일론 머스크는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었고+그웬 숏웰의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그웬 숏웰은 일론 머스크가 타인의 감정을 학습으로 공감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간파했다. 그웬 숏웰은 스페이스X에서 일론 머스크의 직설화법에 마음이 다친 사람들을 위로하는 업무도 맡았다.

2002년 12월 캘리포니아주는 스페이스X의 엔진 시험 신청을 반복해서 반려했다. 일론 머스크는 모하비 사막 대신에 로켓 엔진 테스트를 할 수 있는 장소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일론 머스크는 과거에 파산한 로켓 회사 빌 에어로스페이스의 엔지니어 조 앨런의 연락처를 얻었다. 조 앨런은 과거 빌 에어로스페이스가 사용했던 실험장이 있었던 텍사스주 맥그리거에서 퇴사 이후에도 계속 살고 있었다. 조 앨런은 일론 머스크를 텍사스주 맥그리거 실험장으로 안내했고=일론 머스크는 맥그리거에 스페이스X 엔진 시험장을 마련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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