칩에 붙은 계약서
2023년 8월, 뉴저지의 한 신생 클라우드 회사가 엔비디아 H100을 담보로 23억 달러를 빌렸다. 대주단을 이끈 것은 매그네타 캐피털과 블랙스톤이었다. H100을 담보로 이만한 돈이 움직인 첫 사례였다. 금리는 15% 안팎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칩의 중고 가격 하나만 보고 내준 돈이었다.
2년 7개월 뒤인 2026년 3월 31일, 같은 회사가 85억 달러를 다시 빌렸다. 무디스는 이 대출에 투자등급인 A3를 매겼다. 변동금리는 SOFR에 2.25%포인트를 더한 수준, 고정금리는 5.9%였다. 금리가 3분의 1 남짓으로 내려앉았다.
칩이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칩 옆에 메타의 서명이 붙어 있었다.
회사의 이름은 코어위브, 창업자이자 CEO는 마이클 인트레이터다. 그가 바꾼 것은 GPU가 아니었다. GPU를 읽는 월가의 장부였다.
천연가스 트레이더의 GPU
마이클 인트레이터는 1969년 미국에서 태어났다. 빙햄턴대학교에서 정치학을 공부했고, 컬럼비아대 국제공공정책대학원에서 공공행정 석사 학위를 받았다. 실리콘밸리 엔지니어의 경로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천연가스에 집중하는 헤지펀드 허드슨 리지 자산운용을 공동 창업한 트레이더였다.
2017년 9월, 그는 브라이언 벤투로, 브래닌 맥비, 피터 살란키와 함께 뉴저지에서 아틀란틱 크립토를 세웠다. GPU로 이더리움을 캐는 회사였다. 2018년 암호화폐 가격이 무너지자 채굴 수익은 전기료를 감당하기도 버거워졌다. 이더리움이 작업증명 방식을 버리겠다고 예고하면서 GPU 채굴이라는 사업 자체의 시한도 정해졌다.
2019년 회사는 이름을 코어위브로 바꾸고, 보유한 GPU를 빌려주는 클라우드로 방향을 틀었다.
트레이더의 눈으로 보면 GPU는 기계가 아니다. 전력을 먹고 현금을 내는 포지션이다. 포지션은 헤지할 수 있고, 담보로 잡을 수 있고, 다른 시장에 돌려 쓸 수 있다.
많은 채굴업자가 GPU를 헐값에 던질 때, 그는 그것을 남겼다.
도산절연의 셈법
코어위브 금융의 중심에는 특수목적법인(SPV)이 있다. 코어위브는 GPU와 고객 계약을 별도 법인에 담는다. 대주단은 SPV에 돈을 빌려주고, SPV는 그 돈으로 GPU를 산다. 고객이 내는 컴퓨팅 사용료가 SPV로 들어와 이자와 원금을 갚는다. 모회사가 흔들려도 SPV 안의 자산과 현금흐름은 분리되도록 설계된다. 도산절연 구조다.
여기서 담보의 정의가 바뀐다. 담보는 칩 한 장이 아니다. 칩, 그 칩을 쓰겠다고 서명한 고객, 그 서명에서 흘러나올 사용료가 한 묶음이다. 같은 GPU라도 고객이 메타 같은 하이퍼스케일러냐, 신생 스타트업이냐에 따라 금리가 달라진다. 85억 달러 대출의 등급이 사실상 코어위브가 아니라 메타의 신용을 반영한다는 분석이 나온 이유다.
이름은 GPU 담보 대출이다. 실체는 프로젝트 파이낸스에 가깝다.
코어위브 자신은 여전히 적자다. 2026년 1분기 매출은 20억 8천만 달러로 1년 전의 두 배를 넘었지만, 같은 분기 순손실은 7억 4천만 달러였다. 6월 말 기준 총부채는 약 351억 달러로 공시됐다.
회사는 적자인데, 대출은 투자등급이다. 도산절연의 셈법이다.
실리콘 모기지
2026년 8월 11일, 젠슨 황이 이 설계도를 산업의 표준으로 끌어올렸다. 엔비디아는 아폴로, 블랙록, 블랙스톤, 브룩필드, 골드만삭스, KKR 여섯 곳과 함께 AI 인프라 금융 플랫폼을 발표했다. 목표는 시간을 두고 5,000억 달러 이상의 제3자 자본을 동원하는 것이다. 골드만삭스가 예상한 내년 세계 AI 투자 총액 1조 1천억 달러의 절반에 가까운 규모로 해설됐다.
구조는 주택저당증권(MBS)을 닮았다. 칩과 사용료 현금흐름을 묶어 증권으로 만들고, 꾸준한 현금흐름을 원하는 보험사와 연기금에 판다. 엔비디아는 거래별로 최대 25%까지 잔존가치 지원을 제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칩을 파는 회사가 칩값 하락 위험의 일부를 떠안는 구조다.
엔비디아는 이미 코어위브의 주주이기도 하다. 2023년 4월 1억 달러, 2026년 1월 20억 달러를 넣었다. 칩을 팔고, 고객의 지분을 사고, 이제 칩값의 일부까지 받친다.
젠슨 황의 논리는 짧다. "AI에서 컴퓨트는 곧 매출이다." 그는 2020년에 나온 A100이 여전히 상업적으로 쓰인다는 점을 들어 GPU를 항공기처럼 장기 금융이 가능한 자산이라고 주장한다.
쿠다가 소프트웨어로 고객을 묶었다면, 이번에는 금융이 고객을 묶는다. 엔비디아 칩을 살 때 돈 빌리기가 가장 쉬워진다.
월가는 이것을 플랫폼이라 불렀다. 구조로 읽으면 실리콘 모기지다.
3년짜리 칩, 7년짜리 빚
문제는 시간표다. 엔비디아 GPU는 2~3년마다 세대가 바뀐다. H100에서 블랙웰로, 다시 루빈으로. 반면 코어위브의 GPU 담보 대출 가운데에는 만기가 2031년 9월, 2032년 3월인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칩의 경제 수명보다 빚의 수명이 길다.
중고 H100은 1만 8천~2만 2천 달러에 거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품 3만 5천~4만 달러의 절반 안팎이다. 그러나 이 가격은 GPU가 모자라는 시장에서 형성됐다. 맥킨지는 블랙웰 계열 B200의 담보 가치가 5년 뒤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고 분석했다. 마이클 버리는 AI 설비의 실질 교체 주기를 3년으로 보고, 클라우드 기업들이 감가상각 기간을 길게 잡아 비용을 작게 보이게 한다고 주장한다. 검증된 주장은 아니다.
위험은 칩값에서 끝나지 않는다. 미국 장기금리가 높게 유지되면 새로 발행할 증권은 더 높은 수익률을 요구받고, 그 부담은 사용료 인상으로 번질 수 있다. 수많은 가구에 흩어진 주택담보와 달리, 칩 담보는 소수의 클라우드 업체에 몰려 있다. 한 곳이 사용료를 멈추면 증권 전체가 흔들린다. 비슷한 성능의 중국 오픈웨이트 모델이 훨씬 싼 값에 풀리면 미국 데이터센터의 매출 가정이 통째로 흔들린다. 그 사슬의 끝에는 HBM을 공급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있다.
칩은 3년 만에 늙는다. 빚은 7년을 산다.
실리콘 모기지
인트레이터는 GPU를 금융 자산으로 만든 설계자다. 15% 안팎이던 칩 담보 대출을 5%대 투자등급 대출로 바꿨고, 엔비디아는 그 구조를 5,000억 달러 규모의 플랫폼으로 키웠다.
그러나 이 시장은 아직 한 번도 침체를 겪어 보지 않았다. 고객 계약도, 중고 칩 가격도, 상환 능력도 같은 전제 위에 서 있다. AI 수요는 계속된다는 전제다.
시험대는 칩이 구형이 되는 날이 아니다. AI 수요가 꺾이는 날이다.
크립토의 겨울을 건너온 트레이더가 만든 실리콘 모기지는, 아직 첫 겨울을 지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