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0일, 세 장의 임명장
2026년 8월 30일 오전, 이재명 대통령은 재정경제부·국토교통부·법무부·국방부 등 6개 부처 장관급 인사를 동시에 발표했다. 표면적으로는 통상적인 중폭 개각이었다. 그러나 이 개각의 실제 무게중심은 교체된 다섯 자리가 아니라, 유임된 단 한 자리와 그 옆에 나란히 놓인 두 장의 새 임명장에 있었다. 국민의힘이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도입 책임론을 들어 교체를 요구해온 김용범 대통령정책실장은 그대로 남았다. 재정경제부 장관 자리에는 김용범보다 행정고시 6기수 아래인 이형일 1차관이, 국토교통부 장관 자리에는 이재명이 경기도지사 시절 손발을 맞췄던 홍지선 2차관이 나란히 지명됐다. 설계자는 그대로 두고, 집행자만 바꾼 셈이다.
설계자는 그대로 두었다
김용범은 1962년생, 행시 30회로 문재인 정부 시절 기획재정부 1차관을 지낸 정통 경제관료다. 이재명 정부 출범과 함께 초대 정책실장으로 발탁된 뒤, 3대 메가 프로젝트와 한미 관세·투자 협상 등 정권 초반 핵심 국정과제를 설계해왔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는 증시 변동성을 키운 정책 실패로 지목됐고,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조차 2026년 6월 "드러누워서라도 막았어야 했다"며 사실상 정책 실패를 인정했다. 국민의힘은 김용범을 직권남용·강요 혐의로 고발했고, 리서치웰 조사에서는 경질 찬성 여론이 56.3%에 달했다(2026.7.31). 그럼에도 이재명은 그를 남겼다. 정권 중반으로 가는 길목에서 진행 중인 협상과 프로젝트의 연속성을 끊지 않겠다는 계산이 먼저였다.
여섯 기수 아래의 발탁
새 경제부총리 후보자 이형일은 1971년생, 대구 출신, 행시 36회다. 행시 36회 차관이 현직에서 곧바로 부총리로 직행한 것은 관가에서 20년 만의 이례적 인사로 꼽힌다. 그의 이력은 정권을 가리지 않는다 — 2009년 이명박 정부 청와대 경제수석실 선임행정관, 문재인 정부 청와대 경제정책비서관을 거쳐, 문재인 정부(2021년)와 윤석열 정부(2022~2023년) 양쪽에서 기획재정부 차관보를 지냈고, 2023년 7월부터 2025년 6월까지 통계청장을 역임했다. 이념 스펙트럼을 넘나들며 실무력만으로 살아남은 관료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그는 재경부 1차관 시절부터 직속상사인 구윤철 부총리를 건너뛰고 김용범이 주재하는 비공식 회의에 참석해 직접 보고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부총리가 타 부처와 금융당국을 아우르며 거시 조정권을 행사해야 하는 자리라는 점을 감안하면, 관가에서는 이번 인사로 경제 컨트롤타워가 정책실 1인 체제로 좁혀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정책은 청와대가 설계하고, 재경부는 그 설계를 집행하는 실무형 부총리로 재편된 셈이다.
경기도에서 온 사람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홍지선은 1970년생, 56세다. 1996년 지방고등고시로 공직에 입문해 경기도에서만 28년을 근무하며 건설국장·철도항만물류국장·도시주택실장을 거쳤고, 남양주시 부시장을 지낸 뒤 2025년 12월 국토부 2차관으로 발탁됐다. 차관 임명 8개월 만의 장관 후보 직행이다. 이재명이 경기도지사이던 시절 도시주택실장으로 함께 일하며 이재명표 주거정책 '기본주택'을 설계한 인물로 알려졌다. 정부는 2025년 6월 27일 수도권 주택담보대출을 6억 원으로 제한하고 다주택자 대출을 전면 금지한 6·27 대책에 이어, 같은 해 9월 7일에는 규제지역 LTV를 50%에서 40%로 낮추고 1주택자 전세대출 한도를 2억 원으로 통일한 9·7 대책을 내놨다. 그러나 이 대출 규제가 재건축·재개발 이주비까지 옥죄며 정비사업이 사실상 '올스톱'됐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홍지선은 취임에 앞서 "서울시와 충분히 협의해 정책이 현장에서 작동하도록 하겠다"며 국토부와 서울시가 반복적으로 충돌해온 용산공원 부지 주택공급 문제부터 조율에 나섰다. 그에게 주어진 몫은 새 규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나온 수도권 150만 가구 이상 공급 계획을 실제 착공으로 밀어붙이는 집행이다.
설계와 집행의 분리
세 인사를 나란히 놓으면 하나의 구도가 드러난다. 정책실은 남기고, 재경부와 국토부에는 정권 초기부터 이재명과 손발을 맞췄거나 정책실의 위계 아래 있던 관료를 앉혔다. 레버리지 ETF 논란과 부동산 정책 혼선이라는 두 개의 지지율 악재를 각각 짊어졌던 두 부처의 수장을 동시에 바꾸면서도, 그 위에 있는 정책실은 건드리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경제 정책의 방향 설정은 정책실 한 곳으로 좁혀지고, 재경부·국토부는 그 방향을 속도감 있게 집행하는 역할로 재배치됐다.
미완의 실행 내각
이재명은 이번 인사로 자신이 설계하고, 자신이 신뢰하는 사람이 집행하는 구조 — '실행 내각'을 완성했다. 정책 결정 단계는 짧아졌고, 수도권 주택 공급과 거시경제 대응은 속도를 낼 조건을 갖췄다. 그러나 설계자와 집행자 사이의 위계가 뚜렷해질수록, 그 설계 자체를 걸러낼 내부 견제 장치는 옅어진다. 레버리지 ETF 논란도, 용산공원을 둘러싼 국토부·서울시 엇박자도 아직 봉합되지 않았다. 실행 내각은 완성됐지만, 그 실행이 성과로 증명되는 일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