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의 깃발, 세 번의 사퇴
2026년 8월 26일 오전, 국회 소통관 단상에 선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다시 한번 대표직 사퇴를 선언했다. 국민의힘 초대 대표직을 법원 가처분 기각과 당 윤리위 징계로 상실한 지 4년, 본인이 직접 개혁신당을 창당한 지 2년 7개월 만이었다. 2011년 말 '박근혜 비상대책위원회'를 통해 20대 나이로 정계에 전격 발탁된 이후 15년간, 이준석이 몸담았던 정당과 정치 조직은 매번 내분과 해체, 혹은 본인의 중도 퇴진으로 결말을 맞았다. 새누리당에서 바른정당, 바른미래당, 국민의힘을 거쳐 개혁신당으로 이어지는 동안 그는 미디어와 선거판의 중심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발휘했지만, 동시에 자당 지도부·조직 생태계와 가장 정면으로 충돌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선거라는 단발성 승부에서는 정밀한 이슈 선점으로 승리를 이끌어냈지만, 선거 이후 조직을 운영하고 세력을 다지는 국면에서는 매번 고립되며 무너졌다.
낙선에서 시작된 균열 — 바른미래당 잔혹사
이공계 출신 벤처 창업가이자 교육봉사 단체를 이끌던 이준석에게 언론은 한때 '리틀 안철수'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그러나 2016년 20대 총선 서울 노원구 병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에게 밀려 낙선한 뒤, 그는 안철수와 대립각을 세우며 '안철수 저격수'로 돌아섰다. 2017년 박근혜 탄핵 정국 속에 새누리당을 탈당해 바른정당에 합류한 이준석은 소속 의원들의 집단 탈당·복당 사태를 공개적으로 맹비난하며 당내 기득권과 선을 그었다. 2018년 바른정당과 국민의당이 합쳐진 바른미래당에서는 6·13 재보궐선거 노원구 병 공천을 둘러싸고 유승민계와 안철수계의 계파 대리전이 벌어졌고, 공천관리위원회는 그의 단수 공천 의결을 계속 지연시켰다. 청년정치학교 회식 자리 비하 발언 논란까지 겹치며 갈등이 깊어지자, 이준석은 지분 조정이나 타협 대신 당 지도부와 정면으로 맞섰고 지방선거 패배 후 안철수 측이 제안한 캠프 대변인 자리마저 거절했다. 타협보다 독자적 상징성을 택하는 행동 패턴이 이 시기에 이미 뿌리내렸다.
36세 대표, 37세 징계 — 국민의힘 사법전쟁
2021년 6월 국민의힘 초대 전당대회에서 36세의 이준석은 나경원·주호영 등 중진들을 모두 제치고 헌정사상 최연소 원내교섭단체 대표에 올랐다. 능력주의와 젠더 담론을 앞세워 2030 남성 지지층을 보수 정당의 핵심 유권자로 결집시킨 그는 이 힘을 그해 대선과 2022년 지방선거 승리로 이어냈다. 그러나 승리 직후인 2022년 7월, 당 윤리위원회는 성 상납 증거인멸 교사 의혹에 따른 품위유지 의무 위반으로 당원권 정지 6개월 징계를 의결했고, 8월에는 당 지도부가 주호영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되며 이준석은 대표직 자체를 잃었다. 그는 비대위 효력정지 가처분을 냈고 법원은 1차 신청에서 비상상황이 발생하지 않았다며 그의 손을 들어줬지만, 국민의힘은 전국위원회를 열어 당헌 제96조를 개정해 대표 궐위 및 최고위원 4인 이상 사퇴를 비상상황으로 재정의했다. 이 개정 당헌에 근거해 출범한 정진석 비대위에 대해 서울남부지법은 그해 10월 3·4·5차 가처분을 모두 기각·각하했고, 같은 시기 윤리위는 당원권 정지 1년을 추가로 의결했다. 최연소 기록을 세운 지 1년 4개월 만에, 그는 사법적·조직적으로 완전히 퇴출당했다.
최대주주의 역설 — 개혁신당의 파열과 완주
2023년 12월 국민의힘을 탈당한 이준석은 개혁신당을 직접 창당하며 이번엔 조직의 최대주주가 되고자 했다. 22대 총선을 앞둔 2024년 2월 9일, 그는 이낙연의 새로운미래·금태섭의 새로운선택·이원욱과 조응천의 원칙과상식과 전격 합당해 이낙연·이준석 공동대표 체제를 띄웠지만, 총선 지휘권과 홍보 주도권, 특정 인사 합류를 둘러싼 정체성 갈등으로 통합은 단 11일 만에 무너졌다. 그해 4월 총선에서 이준석은 경기 화성을에 출마해 42%대 득표로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막판에 역전하며 4수 끝에 국회에 입성했고, 개혁신당은 그의 지역구 의석과 비례 2석(천하람·이주영)으로 원내 3석 정당이 됐다. 2025년 조기 대선에서는 8.34% 득표로 3위를 기록하며 완주했지만, 이 성과는 당의 조직적 저변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2026년 6월 지방선거에서 개혁신당은 192명의 후보를 냈으나 기초의원 1석에 그쳤고, 부산시장 후보의 자작극 파문까지 당의 도덕성에 타격을 입혔다. 총선을 앞두고 이준석이 자신의 지역구가 있는 경기 남부벨트(화성·수원·용인 등)에 천하람·이주영의 동반 출마를 제안했지만 두 사람은 각자의 지역구를 고수했다. 2026년 8월 26일, 그는 대표직에서 물러났고 지도부 전체가 함께 사퇴했다. 본인이 만든 당에서조차, 그는 동료들을 끝내 설득하지 못한 채 홀로 남았다.
반감기의 리더십 — 팬덤은 모이고 조직은 흩어진다
바른미래당, 국민의힘, 개혁신당으로 이어진 이준석의 여정은 동일한 메커니즘의 반복이었다. 그는 이슈를 독점하고 선거 구도를 흔드는 단발성 승부에서는 예상을 뛰어넘는 파괴력을 보였다 — 최연소 당대표 선출, 2030세대 정치적 동원, 거대 양당 구도 속 지역구 역전, 대선 8%대 완주 득표가 그 증거다. 그러나 선거 이후 일상적인 조직 운영과 제도화 국면에 접어들 때마다 곁을 지키던 동료의 수는 반감기를 거치듯 줄어들었다. 이 반복에는 세 갈래의 구조적 결함이 관찰된다. 첫째, 이슈를 빠르게 선점하는 미디어 중심 정치는 지지층 결집에는 유리했지만 정당 내부의 협상과 소통을 대체해버려 동료 정치인들을 운영의 주체가 아닌 들러리로 만들었다. 둘째, 승자와 패자를 명확히 가르는 능력주의적 접근은 조직 내 동반자를 설득하고 품기보다 능력 미달로 규정해 배척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셋째, 2030 남성 지지층이라는 특정 팬덤에 대한 의존은 제3지대나 중도 세력과의 연대를 스스로 좁혔고, 팬덤의 반발을 의식해 타협 대신 독자 노선으로 회귀하는 패턴이 되풀이됐다.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말처럼 그는 어느 조직에 있든 존재감을 숨기지 못했지만, 그 뾰족함이 조직을 하나로 묶어내는 접착제가 되지는 못했다.
봉인되지 않는 송곳
세 번째 사퇴 이후에도 이준석의 정치적 효용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는 여전히 미디어 영향력과 독자적인 지지 기반을 지닌, 다음 지역구와 조직을 언제든 만들어낼 수 있는 자산이다. 그러나 그가 어느 조직으로 향하든 같은 질문이 따라붙는다. 이번에는 곁에 남는 동료가 있을 것인가. 세 번의 깃발을 세우고 세 번의 사퇴를 되풀이하는 동안, 팬덤을 모으는 능력과 조직을 묶어내는 능력 사이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았다. 그 답은 아직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