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의 교체
2026년 7월 18일, 모스크바 인근 물류창고 스무 곳 넘게가 우크라이나 드론에 동시다발로 불타올랐다. 러시아 최대 온라인 쇼핑몰 와일드베리스의 창고였다. 8월 초 뉴욕타임스는 이 회사가 잃은 상품 가치를 59억 달러, 우리 돈 8조 2000억 원으로 계산했다. 그리고 8월 24일, 러시아 재무부는 이 회사를 위해 이례적인 결정을 내렸다. 부가가치세와 소득세, 보험료 납부 기한을 1년 늦춰주고, 세무조사도 연말까지 미뤄주기로 한 것이다. 민간 유통기업 한 곳을 위해 국고가 움직인 순간이었다.
러시아어에는 '크리샤(Крыша)'라는 말이 있다. 뜻은 단순하다, 지붕. 그러나 1990년대 소련 붕괴 직후 이 단어는 다른 의미를 얻었다. 국가가 법과 질서를 지켜주지 못하던 시절, 사업가들은 마피아나 지역 실세에게 대가를 내고 그 대가로 지붕―크리샤―을 얻었다. 지붕이 있으면 경쟁자의 습격도, 세무당국의 압박도 피해 갈 수 있었다. 지붕이 없으면 사업 자체가 존립할 수 없었다.
와일드베리스를 일군 타티야나 킴에게도 지붕은 있었다. 처음엔 한 사람의 지붕이었다. 지금은 국가 그 자체가 지붕이 됐다. 8조 2000억 원의 손실 앞에서 재무부가 움직인 그 8월 24일은, 지붕이 완전히 교체됐다는 사실을 세상에 공표한 날이었다.
카디로프의 지붕
50세 타티야나 킴이 2004년 영어 교사를 그만두고 세운 와일드베리스는, 사업 초기 체첸 공화국 수장 람잔 카디로프의 비공식 보호를 지붕으로 삼고 있었다고 알려졌다. 전남편 블라디슬라프 바칼추크가 카디로프 측과의 소통 채널을 맡아, 법적·행정적 분쟁을 모스크바의 한 호텔에서 비공식적으로 풀어 왔다는 것이다. 카디로프가 자신의 지분과 자금을 회사 내부에 은닉해 두고 있었다는 관측도 나온다. 지붕값은 대개 그렇게, 장부에 잡히지 않는 방식으로 지불된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 기업들이 떠난 자리를 와일드베리스가 흡수하며, 회사는 연 거래액 6조 1000억 루블, 러시아 온라인 주문의 52%를 차지하는 공룡으로 자랐다. 지붕 아래의 사업은 그렇게 몸집을 불려 갔다.
9월 18일, 총성
2024년 6월, 킴은 러시아 최대 옥외광고사 러스 그룹과의 합병을 발표했다. 러스 그룹의 간판은 미르조얀 형제였지만, 실소유주는 다게스탄 출신 상원의원이자 올리가르히인 술레이만 케리모프였다는 게 알려진 사실이다. 지분이 줄어드는 데 반발한 전남편 바칼추크는 카디로프를 찾아가 "기업 강탈"이라 주장했고, 카디로프는 방송에 나와 합병을 저지하겠다고 공언했다.
그 갈등은 2024년 9월 18일, 카디로프가 보냈다는 무장 대원들과 바칼추크가 모스크바 본사 진입을 시도하며 유혈 총격전으로 번졌다. 보안요원 2명이 목숨을 잃었다. 연방 사법 기관과 법원은 이 사건 이후 킴의 손을 들어줬다. 지붕이 흔들린 밤이었고, 동시에 지붕이 바뀌는 밤이었다.
'지원하라'는 다섯 글자
2024년 중반, 킴은 러스 그룹의 로베르트 미르조얀과 함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냈다. 와일드베리스와 러스 그룹을 합쳐, 달러 결제망 SWIFT를 우회하는 루블화 결제 네트워크를 만들겠다는 제안이었다. 푸틴은 그 제안서에 "지원하라"는 다섯 글자를 친필로 남겼다고 전해진다. 그 다섯 글자는 대통령행정부 수석부위원장 마크심 오레슈킨에게 전달됐고, 와일드베리스는 그날로 민간 이커머스 기업에서 연방 전략 자산이 됐다.
지붕을 받친 이름은 여럿이었다. 케리모프 상원의원은 정계 후원자, 안톤 바이노 대통령 비서실장은 제도적 걸림돌을 걷어낸 조력자, 데니스 만투로프 제1부총리는 수출 규제 완화를 챙긴 정책 파트너로 지목된다. VTB 국영은행은 합병 자금을 대고 2026년 와일드베리스 은행 지분 5%를 인수해 지분으로도 발을 걸쳤다.
배당금 0루블
합병 당시 와일드베리스 매출은 러스 그룹의 90배가 넘었다. 그런데도 통합 법인 지분은 와일드베리스 65%, 러스 그룹 35%로 나뉘었다. 2025년 재무제표는 그 지분율의 실제 의미를 드러냈다. 통합 법인이 지급한 배당금 514억 2000만 루블 전액이 케리모프 측 법인으로 흘러갔고, 킴 측 법인이 받은 배당금은 0루블이었다. 독립 언론과 경제 분석가들은 이 구조를 두고 전시 제재 국면에서 벌어진 '크렘린 연계 엘리트들의 자산 재분배'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밀려났던 카디로프도 2026년 초 18억 5000만 달러의 현금을 받고 케리모프와 화해했다고 전해진다. 지붕값은 결국 모두가 나눠 낸 셈이다.
그 대신 와일드베리스는 대체 불가능해졌다. 침공 이후 플랫폼 안에 만들어진 "SVO를 위한 모든 것" 카테고리는 군용 무전기와 방탄복, 드론 부품이 오가는 병참 창구로 기능했고, 우크라이나는 이 회사를 러시아군의 정식 병참 지원 기관으로 규정해 타격 대상에 올렸다.
국가라는 지붕
타티야나 킴은 카디로프의 지붕에서 벗어나 국가의 지붕 아래로 들어갔다. 그 대가로 회사가 버는 돈의 상당 부분을 크렘린 연계 인사들에게 내줬다. 그리고 8월 24일, 국가는 그 지붕값을 세금 유예라는 방식으로 되갚았다. 지붕은 그녀를 지켜 준다. 다만 이제 그 지붕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회사 밖 어느 누구도 더 이상 묻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