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구의 돌
2002년 9월 12일, 신초샤는 『해변의 카프카』 상·하권을 세상에 내놓았다. 초판은 합계 약 60만 부. 전작 『태엽 감는 새 연대기』(1994~1995) 이후 7년 만의 정식 장편이었다. 소설 속에는 현실과 이면의 세계를 잇거나 막는 매개체가 하나 등장한다. '입구의 돌'. 열면 다른 세계로 건너갈 수 있고, 닫으면 그 문은 영원히 사라진다. 제목의 '카프카'는 그 자체로 부조리를 뜻하고, '해변'은 아직 그 부조리의 바다에 뛰어들지 않은 채 서 있는 자리를 뜻한다. 공교롭게도 이 경계는 하루키 자신이 1995년부터 2002년까지 서 있던 자리와 정확히 겹친다. 미국이라는 망명지와 일본이라는 고향, 개인의 서정과 사회의 상처, 그리고 대학 시절 탐독했던 그리스 비극과 자신이 목격한 현대사의 폭력 사이. 그는 그 돌을 스스로 들어올렸다.
두 개의 균열
1995년 1월 17일 고베 대지진, 같은 해 3월 20일 도쿄 지하철 사린 가스 테러. 두 사건은 넉 달 사이 연달아 일본을 흔들었다. 당시 미국 프린스턴과 터프츠에서 객원 연구원·교수로 지내던 하루키는 그해 6월 일본으로 완전히 돌아왔다. 그는 훗날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일본 사회라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현장에서 아픔을 함께 겪어야 한다고 결심했다." 1980년대 후반 『노르웨이의 숲』이 430만 부 넘게 팔리며 그를 유럽과 미국으로 밀어냈던 개인주의적 서정은, 두 개의 균열 앞에서 방향을 잃었다. 그가 다음으로 손에 쥔 것은 소설이 아니라 마이크였다.
벼락 맞은 아버지와 알료샤
와세다대학 문학부 연극과 재학 시절, 하루키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과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탐독했다고 전해진다. 오이디푸스의 신탁 —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취하리라는 예언 — 을 그는 세대교체의 메타포로 읽었다. 아버지는 기득권, 어머니는 그 기득권이 소유한 모든 것. 『해변의 카프카』에서 벼락을 맞고 초자연적 능력을 얻은 조각가 아버지는 아들에게 "너는 언젠가 나를 죽이게 될 것이다"라고 되풀이해 말한다. 그런데 정작 그 아버지를 죽이는 것은 열다섯 살 소년이 아니라, 고양이와 대화할 줄 아는 예순 살 노인 나카타다. 나카타는 하루키가 소년 시절 사랑했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막내 알료샤 — 누구의 거짓말도 곧이곧대로 믿어버리는 순수한 인물 — 를 60대로 변형시킨 존재다. 고양이 심장을 먹는 아버지와 고양이와 말을 섞는 노인. 그 대립의 뿌리에는 나카타가 소년 시절 태평양 전쟁 중 산속에서 또래들과 함께 의문의 집단 실신을 겪고 지능과 문자를 잃은 사건이 있다. 전쟁이 앗아간 순수함이, 다음 세대의 살부(殺父)를 대신 짊어지는 역설로 되돌아온 셈이다.
도시락을 든 사람
1970년 전후 와세다 재학 시절, 하루키는 바리케이드로 봉쇄된 도쿄의 한 대학 캠퍼스 안으로 친구에게 도시락을 전해주러 들어갔던 지인이, 점거 학생들에게 프락치로 몰려 맞아 죽는 사건을 가까이서 지켜봤다고 전해진다. 원래 전공투 운동에 공감하던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등을 돌렸다. 정의를 내세운 집단이 죄 없는 개인을 삼키는 순간을 목격한 것이다. 이 장면은 『해변의 카프카』에서 그대로 되살아난다. 고무라 도서관 관장 사에키 씨의 연인은 도쿄의 대학에 진학했다가, 바로 그런 식으로 학생들에게 맞아 죽는다. 사에키 씨는 그 상실 이후 오랜 방황 끝에 고향으로 돌아와, 죽음을 결정해줄 누군가를 기다리며 노트에 자신의 생을 적어 내려간다. 카프카 소년은 그녀에게 죽은 연인의 재림이자, 어쩌면 자신이 낳고 떠나보낸 아들이기도 하다. 하루키가 실제로 잃은 것은 지인이었지만, 소설이 사에키 씨에게 되돌려준 것은 그 얼굴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마주할 기회였다.
가장 터프한 15세
『노르웨이의 숲』의 와타나베는 스무 살이었다. 하루키의 장편 주인공은 늘 무기력하거나 시니컬한 20~30대 성인 남성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처음으로 15세 소년을 앞세웠다. "15세라는 나이는 유연하고 가변적이다. 세상에서 가장 터프한 15세 소년을 그려보고 싶었다." 소년의 이름은 다무라 카프카 — 부조리의 대명사 프란츠 카프카에서 왔지만, 일본어로는 '카(可)-후카(不可)', 옳고 그름의 경계를 뜻하기도 한다. 삶과 죽음, 아이와 어른의 접점에 소년을 세운 이는, 매일 새벽에 일어나 쓰고 낮에는 달리는 절제된 규율 속에서 1인칭 소년과 3인칭 노인의 이야기를 동시에 완성해낸 23년 차 작가 자신이었다.
연대라는 결론
소설은 곳곳에서 하나의 문장으로 수렴한다. "인간은 서로 자기와 객체를 교환하고 투사해서 자기 의식을 확립한다" — 하루키가 직접 인용한 헤겔의 말이다. 트럭 운전사 호시노는 우연히 들은 베토벤 대공 트리오 한 곡에 자기 안의 선함을 깨닫고, 글을 읽을 줄 모르는 나카타만이 사에키 씨의 비밀 원고를 안전하게 태워줄 수 있었다. 각자가 서로의 존재 이유가 되는 구조다. 대중적으로는 완전한 성공이었지만, 전통 문단은 "매직 리얼리즘일 뿐 반성이 부족하다"며 이 작품을 공식 문단상 논의에서 비켜 세웠다. 도시락을 들고 캠퍼스에 들어갔다가 사라진 한 사람, 그를 대신해 아버지를 죽인 노인. 그 사이에서 하루키가 벼려온 결론은 하나였다. 선한 사람들끼리 연대하지 않으면, 그 문은 다시 닫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