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놓은 자리
8월 17일 저녁, 대전컨벤션센터. 개표가 끝난 무대 위에서 당선자들은 손을 맞잡고 만세를 불렀다. 그런데 한 사람만 손을 놓았다. 최고위원 득표 1위로 수석최고위원에 오른 최민희였다. 옆자리 박선원 최고위원과 나란히 서 있었지만, 다른 이들이 손을 잡고 환호하는 그 순간 그는 혼자 손을 잡지 않았다. 카메라는 그 어긋난 손을 놓치지 않았고, 그 장면은 선호투표까지 간 끝에 54.08%로 확정된 개표 결과지보다 더 정직한 성적표가 됐다. 당대표는 김민석이 됐다. 그러나 최고위원회를 채운 다섯 자리 중 세 자리는 정청래의 사람들이었다. "나는 졌지만 최고위원들은 이겼다." 45.92%로 연임에 실패한 정청래가 남긴 이 한 문장이, 공식 개표 결과 옆에 나란히 적혀야 할 두 번째 성적표였다.
정청래가 설계한 제도, 정청래를 넘어선 표
이 승부의 규칙 자체를 만든 사람이 정청래였다는 사실은 아이러니의 출발점이다. 지난 6월, 당시 당대표였던 정청래는 반대를 무릅쓰고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표 가치를 동일하게 계산하는 '1인 1표제' 확대를 의결시켰다. 대의원 1만7667명과 권리당원 152만7261명, 인원으로는 90배 가까이 차이 나는 두 집단의 표를 1대1로 맞바꾼 것이다. 자신의 연임을 뒷받침할 승부수였다. 그런데 정작 그 제도가 적용된 8·17 전당대회에서, 대의원 표(김민석 66.69% 대 정청래 33.31%)와 권리당원 표(김민석 55.94% 대 정청래 44.06%) 모두 김민석 쪽으로 기울었다. 유일하게 정청래가 앞선 부문은 국민 여론조사였다. 정청래 50.70%, 김민석 49.30%. 당원이 아닌 일반 여론에서는 오히려 정청래가 근소하게 이겼다. 세 부문을 합산한 1차 누적에서 과반을 넘긴 후보가 없었고, 3위 송영길(8.58%)의 표가 선호투표로 재배분된 끝에 김민석 54.08%, 정청래 45.92%로 최종 확정됐다. 자신이 만든 제도가 자신을 떨어뜨리고, 자신이 배제하려던 여론조사에서만 자신이 이긴 셈이다.
최고위원회, 팀 정청래의 자리
당대표 자리는 내줬지만 최고위원회는 다른 이야기였다. 선출직 최고위원 5석 가운데 수석최고위원 최민희(18.35%), 이성윤(16.35%), 한민수(15.86%) 3인이 이른바 '친청'계로 분류되며 지도부에 입성했다. 친명계는 박선원(17.57%)과 서미화(16.60%) 2석에 그쳤다. 특히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꼽히던 김용 후보는 15.26%로 한민수에 불과 0.6%포인트 뒤져 6위로 낙선했다. 선출직 최고위원 과반을 정청래의 사람들이 채운 구도는 앞으로 매주 열릴 최고위원회의를 김민석 지도부에 대한 실질적 견제 기구로 바꿔놓았다. 최민희가 당선 직후 내놓은 "정청래와 함께 민주당을 지키겠습니다"라는 메시지는, 신임 당대표를 향한 축하가 아니라 계파의 노선을 다시 못 박는 선언에 가까웠다.
두 개의 ABC
당선 일성에서 김민석은 '민주당 ABC 플랜'을 꺼냈다. 함께 먹고사는 민생정치(A), 크고 넓은 확장정치 Broad(B), 유능한 정치 Competence(C). 공교롭게도 이는 평론가 유시민이 제시했던 ABC론 — 강성 지지층 A와 실용 지지층 B, 그 중간을 아우르자는 진단 — 을 정면으로 겨냥한 조어였다. 유시민의 ABC가 갈라진 진영을 진단하는 언어였다면, 김민석의 ABC는 그 갈라짐 자체를 지우려는 언어였다. 당정관계를 규정한 표현도 마찬가지였다. "국정의 중심인 대통령과 정부를 지원하는 전면 협력의 창조적 수평 관계." 전면 협력과 수평 관계는 본래 양립하기 어려운 말이다. 그 모순을 봉합한 수사가 '창조적'이라는 한 단어였다. 이 애매함이 정책 국면마다, 그리고 최고위원회 3석을 쥔 정청래계와의 관계에서 시험대에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이유다.
공소 취소, 째깍이는 시계
가장 먼저 시험대에 오를 지점은 부동산 정책과 검찰 보안수사 사건 폐지 후속 조치이지만, 진짜 뇌관은 따로 있다. 이재명 대통령 관련 공소 취소 문제다. 대통령은 이미 "검찰의 조작 기소가 명확히 밝혀지면 공소는 원칙적으로 취소되는 것"이라는 취지로 언급한 바 있다. 판단 주체로 거론되는 검찰미래위원회는 오는 10월 2일, 검찰청이 폐지되고 공소청·중대범죄수사청이 출범하는 일정과 정확히 맞물려 있다. 이 위원회가 대통령 관련 사건만 조사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을 두고 "공소취소가 '미래'인가"라는 회의적 시선도 이미 나온 상태다. 문제는 여권 내부의 온도차다. 대통령의 의중과, 공소 취소를 총선·대선 리스크로 규정하며 반대해 온 유시민 등 신중론자 사이의 간극이 좁혀지지 않았다. 시기를 잘못 짚으면 김민석 지도부가 아니라 오히려 친명계가 고립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지점이다.
지켜야 할 것
낙선 이후 정청래의 언어는 패배자의 것이 아니었다. "정청래가 숫자로 졌지만 그의 주장까지 진 것은 아니다." "당대표 때 하지 못했던 말을 이제 하겠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저를 지켜주셔야 한다." 김민석이 통합의 카드로 내건 지명직 최고위원 2석 가운데 1석을 청년 몫으로 배정하겠다는 공약, '1030 정책단'·'진짜 당원주권 추진단'·'시스템 공천 혁신단' 등 신설 기구 구상은 최고위원회 과반을 쥔 친청계를 우회해 지지 기반을 넓히려는 시도로 읽힌다. 그러나 결국 모든 길은 2028년 공천권으로 수렴한다. 정청래 본인에게도, 최고위원회를 채운 그의 사람들에게도, 다음 공천이라는 아직 아무도 답을 알지 못하는 변수가 기다리고 있다.
진 게 아니다
김민석은 이겼다. 대의원 표에서도, 권리당원 표에서도, 최종 선호투표에서도 앞섰다. 그러나 그가 이끌 최고위원회의 다섯 자리 중 세 자리는 정청래의 사람들로 채워졌고, 정청래 자신이 유일하게 앞섰던 국민 여론조사는 그의 존재감이 당원 사회 바깥에서도 건재함을 확인시켜줬다. 자신이 밀어붙인 1인 1표제로 자신이 졌고, 그 제도가 만든 최고위원회는 그의 것이 됐다. 공소 취소라는 시한폭탄과 다가올 공천이라는 두 개의 시계가 동시에 돌아가는 지금, 창조적 수평 관계라는 말의 실체는 아직 증명되지 않았다. 무대 위에서 손을 놓았던 그 손이, 다음 국면에서 다시 잡힐지 여부는 누구도 확답하지 못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