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인사이트

한동훈은 누구인가?

한동훈 탄핵과 계엄 사이의 한 검사

한동훈 탄핵과 계엄 사이의 한 검사

---

# 1장 뿌리와 유년

1973년 4월 9일, 한동훈은 서울특별시에서 한명수 AMK(어플라이드 머티리얼 코리아) 회장과 허수옥 사이의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고향은 강원 춘천, 어머니의 고향은 강원 홍천이었다. 두 살 터울의 누나가 있었다. 그는 훗날 자신의 저서 저자 소개란에 스스로를 중화동 출신이라고 밝혔다. 어린 시절 그는 청주 수동성당에서 제라드 해먼드 신부를 도와 복사를 섰다고 전해진다.

한동훈은 7세 무렵 청주 수동성당 부설 성 안나 유치원을 졸업하고 1980년 청주 운호국민학교에 입학해 4학년까지 다녔다. 1981년에는 청주 모충동으로 이사했다. 1983년, 국민학교 5학년이 되던 무렵 그는 다시 서울 서초구 잠원동으로 이사했다. 아버지가 청주 공장 임원에서 서울 본사로 자리를 옮긴 데 따른 이동이었다. 그는 신동초등학교로 전학했다.

경원중학교에 진학한 한동훈은 3년 내내 전교권 성적을 유지하며 반장을 도맡았다. 한 선생님이 모범생 한 명만을 위해 롤링페이퍼를 돌리라고 지시했을 때, 그는 순응할 수 있었지만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를 거절했다. 서초구 잠원동에 거주하는 경원중 동창은 훗날 이렇게 회고했다. "그 당시 경원중 다니는 애들치고 한동훈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었다. 키가 크고 얼굴이 작고 하얘서 눈에 띄었는데, 공부까지 잘하니 유명할 수밖에 없었다. 집이 잘사는 애들은 많았는데 한동훈처럼 공부도 잘하고 성격까지 좋은 애는 드물었다. 이런 이유로 좀 노는 애들, 이른바 날라리들도 한동훈한테는 함부로 못했다." 현대고 졸업생인 또 다른 지인은 그의 아버지에 대해 "인품이 좋다고 들었다. 아들이 대학을 졸업할 즈음부터 나랏일을 하게 될지 모르니 부동산 거래 하나도 문제가 없도록 자진신고를 철저히 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1989년 경원중학교를 졸업한 그는 강남구 압구정동의 현대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당시 현대고는 자율형사립고가 아닌 일반고여서 인근 거주 학생들이 무작위로 배정받았지만, 학구열이 높은 부촌인 만큼 공부 잘하는 학생이 많았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그는 전교생이 볼 수 있는 석차 방에서 1등에서 3등을 벗어나지 않는 성적을 유지했다. 소위 문제아나 꼴찌로 불리는 친구들을 멀리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오히려 그들과도 두루 친하게 지내며 많이 베푸는 쪽을 택했다.

1992년 현대고등학교를 졸업한 한동훈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92학번으로 입학했다. 그해 10월 13일, 그는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스누포의 제1회 정기연주회에서 플루트를 연주했다. 대학 2학년에 진학하며 사법학과를 지망했지만 성적 서열에 밀려 공법학과로 진학했다. 당시 서울법대는 신입생을 2학년 때 사법학과와 공법학과로 나눴는데, 사법학과 지망생이 많아 두 학과는 사실상 우열반처럼 여겨졌다. 20여 년간 성적으로 밀려본 적 없던 그에게는 역대급 충격이었다고 훗날 주변인들은 회고했다.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한 충격에 좌절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절치부심하며 사법시험 공부에 매달렸다. 1995년, 만 22세의 나이로 한동훈은 제37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93년, 현대고 1년 후배인 진은정이 같은 과에 입학하며 두 사람은 캠퍼스에서 만났다. 진은정은 당시 '법대 여신'으로 불릴 만큼 유명했다. 서울대 93학번 동기는 훗날 이렇게 회고했다. "그 당시 한동훈은 오히려 존재감이 없었고, 진은정은 법대 여신으로 다른 과에서도 알아줬다. 아버지가 당시 서울지검 차장검사였는데 그런 집안 배경보다도 진은정 자체로 이미 유명했다."

---

# 2장 사법시험에서 특수통 검사로

1996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한 한동훈은 사법연수원 27기로 입소했다. 동기 중에는 훗날 검찰총장에 오르는 이원석도 있었다. 이원석은 그보다 네 살 많았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스터디 조 총무를 맡아 복사 업무를 담당했다. 검사 지망을 걱정하는 동기들이 술자리를 권했지만, 그는 연수원 시절 내내 술을 한 잔도 마시지 않았다. 자신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1998년 2월 연수원을 수료한 그는 5월 1일 공군 제18전투비행단 법무관으로 임관해 강릉에서 군 복무를 시작했다. 1999년, 26세의 군법무관 한동훈은 소속 부대의 중령을 직접 인지수사해 단순수뢰죄로 구속시켰다. 이에 반발하는 헌병대장의 항의를 묵인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수사의 정당성을 지키기 위해 헌병대장까지 체포했다. 2001년 4월 30일, 그는 공군 대위로 3년 만기 전역했다.

전역 직후인 2001년 4월, 한동훈은 서울지방검찰청 형사9부에 초임 검사로 발령받았다. 당시 형사9부는 경제 사범을 조사하는 특수부였다. 초임 검사 시절 그는 너무 바빠 "사람이 이렇게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게 일했다. 2002년 그는 서울대 재학 시절부터 교제하던 진은정과 결혼했다. 진은정은 훗날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소속된 미국 뉴욕주 변호사가 됐고, 장인은 대검찰청 공안부장검사와 대전고등검찰청장을 지낸 진형구였다. 같은 해 그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연루된 한화그룹 분식회계 고발 사건을 담당하며, 재계 회장의 소환도 배제하지 않는 수사 의지를 보였다. 그해 12월 그는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2002년 8월 이인규 부장검사가 형사9부를 맡으면서, 이 부서는 본격적으로 기업인 비리 수사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듬해 최태원 등 기업 총수들을 잇달아 구속시키면서 형사9부는 '드림팀'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한동훈에게도 '독사'(한 번 손댄 사건은 절대 놓지 않는다는 뜻)와 '조선제일검', '재계 저승사자' 같은 별명이 따라붙기 시작했다.

2003년 2월 대전지방검찰청 천안지청으로 발령난 그는 한나라당 차떼기 사건의 수사 검사로 참여했다. 그해 11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검사로 승격 파견된 그는 최태원 SK 회장이 주식 부당거래로 800억 원대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를 밝혀내 구속시켰고, 한화로부터 받은 돈으로 대선자금 수사를 통해 서청원 한나라당 대표도 구속시켰다. 막내임에도 일을 뛰어나게 잘한 그는 이인규 당시 대검 중수부장에게 예쁨을 받았다. 조서와 기록을 꼼꼼히 살피는 수사 능력으로는 윤석열 검사에게도 높은 평가를 받았고, 그의 진정성에 감복해 두 사람은 가까워졌다.

2004년 8월, 그는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로스쿨 LL.M. 과정에 진학해 약 2년간 유학했다. 이 기간 아내 진은정도 함께 컬럼비아 로스쿨 석사 과정을 밟아 나란히 학위를 취득했다. 유학 중 그는 미국 형사사법상 주요 제도의 실무 운용에 관한 논문을 썼다. 2006년 2월 뉴욕주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그는 대전지검 천안지청으로 복귀했고, 곧이어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검찰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현대차 비자금 사건을 수사해 1380억 원대 비자금을 조성하고 회사에 3천억 원대 손해를 끼친 혐의로 정몽구 회장을 구속시켰고, 외환은행 론스타 매각 사건을 수사해 유회원의 실형을 확정시켰다.

2007년 2월 부산지방검찰청으로 옮긴 그는 뇌물수수 혐의를 받은 전군표 국세청장의 구속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현직 국세청장을 구속한 이례적 사건이었다. 윗선이 연루된 정관계 로비 의혹을 파악한 그는 정상명 검찰총장을 직접 만난 자리에서 부담을 느끼고 타협할 수도 있었지만, 자신의 직을 걸고 구속영장 청구를 강력히 요구했다. 융통성 없다는 지적에도 밀어붙인 그는 결국 전군표를 구속기소했다. 같은 해 10월 18일에는 정윤재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을 알선수재 등 혐의로 구속 수감했다. 그해 12월 검찰총장 표창을 받았다.

2009년 1월 법무부 상사법무과로 옮긴 그는 8월 이명박 정부 청와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민정2비서관실 선임행정관으로 파견됐다. 스타일이 좋고 옷을 잘 입는다는 평판이 주변에서 돌았다. 2011년 5월 대통령실장 표창을 받은 그는 9월 법무부 검찰국 검찰과 검사로 자리를 옮겼다. 검찰국은 인사를 담당하는 검찰 내 엘리트 코스로 꼽혔다. 대검 중수부와 청와대, 법무부 검찰국을 차례로 거친 그를 두고 검찰 내부에서는 못해도 검사장, 나아가 총장 재목이라는 인식이 자연스레 퍼졌다. 2012년 1월, 특수부 검사로서 론스타 주가조작 사건을 수사해 법원의 유죄 확정판결을 받아냈다. 2013년 4월 대검찰청 정책기획과장으로 임명됐다.

2015년 2월, 그는 신설된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공정거래조세조사부의 초대 부장을 맡았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장을 원했지만, 우병우 민정수석 체제 아래에서 좌천성 발령을 받은 자리였다. 그는 이 자리에서 100억 원대 회사 돈을 빼돌려 해외 도박을 한 혐의로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을, 경영권을 되찾는 과정에서 증여세 등을 탈루한 혐의로 박성철 신원그룹 회장을 각각 구속시켰다. 국내에서 가격을 담합한 일본 업체를 기소해 한국 검찰 최초로 국제 카르텔 사건을 기소하기도 했다. 대검 중수부 폐지 이후 저하됐던 검찰의 수사력을 만회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5년 4월 23일, 최유정 변호사가 장세주의 구형을 낮춰달라고 청탁하러 찾아오자 그는 면담과 전화 요청을 모두 거절했다.

2016년 1월 대검찰청 부패범죄특별수사단 2팀장을 맡은 그는 기업 회계 자료와 자금 흐름을 분석하는 수사에서 탁월한 성과를 냈다. 그해 11월 23일, 국민연금공단의 삼성 합병 찬성 의혹과 관련해 보건복지부를 기습적으로 압수수색하며 수사의 포문을 열었다. 12월 13일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 4팀에 합류한 그는 윤석열 수사팀장과 함께 삼성 수사를 전담했다. 공식 수사 첫날부터 동시다발적인 압수수색과 체포영장 발부로 광속 행보를 보인 그는 '기업 저격수', '기업 저승사자'로 불리기 시작했다. 수사 열흘 만인 12월 30일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구속시켰고, 이 수사는 결국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기소로 이어졌다. 2017년 2월 16일 그는 이재용에 대한 영장을 재청구하며 고집스럽게 수사를 밀어붙였지만, 항소심 법원은 특검의 공소사실 상당 부분에 무죄 판결을 내렸다.

2017년 8월, 그는 전임자보다 나이가 7살 적고 기수가 5기수나 아래임에도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제3차장검사로 발탁되는 파격 인사를 받았다. 문재인 정부에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을 보좌하며 반부패·특수수사를 총괄하게 된 것이다. 그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자동차 부품업체 '다스'의 실소유주라는 사실을 밝혀내 구속시켰다. 2018년 4월 9일, 그는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 신분으로 브리핑실에 나와 110억 원대 뇌물·횡령 혐의로 이명박을 구속기소한다고 직접 발표했다. 이 장면이 언론에 생중계되면서 그의 얼굴은 전국적으로 알려졌다. 그는 문재인 정부 사정 수사 중 가장 큰 규모였던 국정원 특수활동비 청와대 상납 사건의 수사도 지휘했다. 다만 11월 25일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2018년, 한동훈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팀을 이끌었다. 10월 15일부터 20일까지 그는 핵심 인물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19시간 30분에 걸쳐 소환 조사하고, 이후에도 세 차례, 네 차례로 이어지는 소환 조사를 반복했다. 임종헌이 혐의를 부인하며 진술을 거부하는 예상 밖의 난항을 겪으면서도, 그는 10월 23일 양승태를 공범으로 적시해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10월 27일 사법농단 사건의 첫 구속으로 임종헌을 구속시켰다. 11월 12일에는 강제징용 재판거래 수사와 관련해 사상 처음으로 국내 최대 로펌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압수수색했고, 11월 14일 임종헌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이어 11월 19일 박병대 전 대법관을 오전 9시 30분부터 밤 11시 46분까지, 11월 23일 고영한 전 대법관을 공개 소환해 조사했다. 12월에는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과 윤병세 전 장관까지 잇달아 소환했다. 수사가 연일 강도 높게 이어지면서 수사팀 일부가 병원 신세를 지는 등 장기화의 난항도 겪었다. 같은 시기 그는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피를 토하는 각혈 증세를 겪기도 했다.

10월 1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과 함께 출석한 그는, 이완영 의원의 영장 기각 사유 공개 기준 질의에 비공개로 답할 수도 있었지만 국민의 알 권리와 오보 방지를 위해 설명을 택했다. 그는 주변 동료들에게 "검찰 수사는 기름기를 빼고 봐도 정당성이 있어야 한다"는 수사 철학을 거듭 밝혔다. 기업인들에게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비판이 나올 때도 그는 언론에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밝혔다. 자유시장경쟁, 공정한 룰이 누구에게나 적용된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2019년 7월, 한동훈은 만 46세로 최연소 검사장 타이틀을 달며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이 됐다. 조국은 그해 8월 9일 제66대 법무부 장관에 임명됐다.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딸의 부정 입학과 장학금 지급 의혹, 논문 1저자 등재 논란이 불거졌고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국론 분열이 심화되는 가운데 조국은 임명 35일 만인 10월 14일 자진 사퇴했다.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으로서 그를 지켜본 2년 후배 검사 출신 법조인은 훗날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2019년 대검 반부패부장으로 근무할 때 서울중앙지검 등 일선 청에서 진행된 특별수사에 제동을 걸거나 정략적인 판단을 시도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한동훈은 '나오는 대로 수사한다'는 말과 딱 어울리는 검사였다." 눈을 질끈 감고 수사를 덮어버릴 수도 있었지만, 그는 그 수사로 자신의 검사 경력이 끝날 것을 알면서도 수사를 이어갔다. 조국 일가 수사는 그를 집권 여당과 친문 세력의 끊임없는 공격 대상으로 만들었다.

한동훈은 윤석열과 2003년 SK그룹 분식회계·대선자금 수사, 2006년 현대차그룹 비자금 수사, 2006년 론스타 외환은행 매각 수사, 2016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수사를 함께 거치며 이른바 '윤석열 사단'의 핵심 인물로 꼽히게 됐다.

---

# 3장 좌천, 그리고 법무부 장관

2020년 1월 2일 제67대 법무부 장관에 임명된 추미애는 취임사에서 "검찰개혁은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요구"라고 강조했다. 일주일 뒤 그는 검사장급 인사를 단행해 한동훈을 부산고등검찰청 차장검사로 좌천시켰다. 인사에서 물을 먹기는커녕 영전을 거듭하던 그에게 닥친 첫 시련이었다. 부산고검 차장 시절이던 2월, 그는 이동재 채널A 기자와의 통화에서 추미애 장관을 향해 "일개 장관이 헌법상 국민의 알 권리를 포샵질을 하고 앉아 있어"라며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2020년 3월, 그는 방송기자와 유착해 총선을 앞두고 유시민 비리 의혹을 제기하려 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부산고검 발령 6개월 만인 6월 1일, 그는 '채널A 검언유착 의혹 사건'으로 법무연수원 용인분원 연구위원 자리로 다시 밀려났다. 넉 달 뒤에는 충북 진천의 법무연수원 본원으로 또 한 번 좌천됐다. 1년 6개월 사이 네 번째 좌천이었다.

7월 29일, 그는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수사를 진행하던 중 자신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열람하다 변호인의 참여를 요구하며 휴대전화 통화를 요청했다. 통화를 위해 비밀번호를 누르던 중 검사 정진웅이 갑자기 다가와 휴대전화를 뺏으려 하자, 그는 반대편으로 손을 뻗어 저항했다. 몸이 밀착된 채 몸싸움이 이어졌고, 두 사람은 함께 소파 옆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이 사건 이후 그는 좌천으로 삼성바이오로직스 수사를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하고 손을 뗐다.

같은 해 8월 12일, 그는 유시민의 검찰 노무현재단 계좌추적설 가짜뉴스 유포에 법적으로 대응해 훗날 유시민의 유죄와 손해배상 책임을 이끌어냈다. 이 소송은 2024년 6월 17일 최종 승소로 확정됐다. 10월 그는 진천 본원 발령으로 법무부 감찰관실로부터 명확한 사유 없이 출퇴근 근태와 코로나19 재택근무 내역까지 감시당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그와 가족은 물론 지지 팬카페 회원들까지 통신조회했다.

2021년 2월, 그는 《조선일보》 최재혁 사회부장과의 인터뷰에서 심경을 밝혔다. 언론과의 대면 인터뷰는 이때가 유일했다. 문재인 정권에서 미운털이 박힌 것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권력이 물라는 것만 물어다 주는 사냥개를 원했다면 저를 쓰지 말았어야죠. 그분들이 환호하던 전직 대통령들과 대기업들 수사 때나, 욕하던 조국 수사 때나, 저는 똑같이 할 일 한 거고 변한 게 없습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 사건 하나 덮어버리는 게 개인이나 검찰의 이익에 맞는, 아주 쉬운 계산 아닌가요. 그렇지만 그냥 할 일이니까 한 겁니다. 직업윤리죠." "저는 지금까지 운이 좋아 억울한 일 안 당하고 살았는데 저같이 사회에서 혜택 받고 살아온 사람이 억울하다고 징징대면 구차하다"고도 했다.

6월 1일, 법무부의 검찰 인사로 그는 사법연수원 부원장으로 다섯 번째 좌천을 당했다. 그해 9월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자신과 윤석열의 고발사주 모의 의혹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자, 그는 추미애를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고발하고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2022년 1월 27일에는 유시민의 명예훼손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유시민 씨와 권력자들은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해도 수사받지 않는 초헌법적 특권계급인 양 행동하며 사기치고 거짓말했다"고 비판했다. 4월 6일 그는 채널A 사건과 관련해 증거가 발견되지 않아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2022년 4월 13일, 한동훈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으로부터 제69대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됐다. 문재인 정권 말기 검찰을 이끌던 김오수 전 검찰총장보다 기수가 7년 낮고, 직전 장관이었던 박범계와도 4년 차이가 나는 파격 인사였다. 검수완박 입법 국면이던 그달, 그는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대표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법안의 심각성을 설명하며 협조를 구했다. 5월 9일 인사청문회에서 딸의 봉사활동 시간과 관련해 야당 의원이 '이모' 교수 질문을 던지자 그는 "내 딸이 이모가 있었어?"라고 혼잣말하듯 반문했다. 그는 연수원 시절 술을 마시지 않아 어느 정도 돈을 모을 수 있었다고도 답했다.

5월 15일 검사직에서 물러나며 그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인사말을 남겼다. 후배 검사들은 댓글로 그를 배웅했다. "얼어 죽더라도 곁불은 쬐지 않고 굶주려도 풀을 먹지 않는 호랑이 같은 검사의 모범", "힘든 상황에서도 꿋꿋이 참 검사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무뢰한 권력에 온몸으로 맞선 모습을 오래 기억할 것" 같은 말들이었다.

5월 17일, 그는 제69대 법무부 장관으로 공식 임명되며 최연소 국무위원이 됐다.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젊은 법무부 장관이었다. 역대 최연소 기록은 만 46세에 임명됐던 강금실이 갖고 있었다. 5월 26일 그는 정부세종청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았다. 이튿날 그가 발표한 첫 검찰 인사는 검찰 안에 새로운 세력의 자리를 만드는 시작점이었다. 그는 대검찰청 차장검사에 제주지검장이던 이원석을, 서울중앙지검장에는 조국 사건을 직접 수사했던 송경호를, 법무부 감찰국장에는 자신의 인사청문회 준비단 총괄팀장이었던 신자용을 임명했다. 이 인맥은 법무부가 위치한 과천을 따 '과천팀'으로 불리기 시작했고, 대통령실에서 폐지된 민정수석실의 기능을 일부 대체하며 인사 검증까지 책임지는 권력을 갖게 됐다. 그해 하반기부터 용산 대통령실은 '용산팀',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인맥은 '한남동팀'으로 불렸다. 김건희 여사는 이 무렵부터 한동훈에게 여러 차례 문자를 보냈지만, 그는 읽고도 답하지 않았다.

법무부 장관에 취임하며 그는 변화를 예고했다. 추미애 전 장관이 없앴던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 부활을 지시했고, 취임 후 첫 법무 행정 현장 방문으로 6월 충북 청주교도소를 찾았다. 그는 법무부 공무원의 절반에 달하는 교정직 공무원의 처우 개선을 지시해 이듬해 관련 예산을 전년 대비 37% 늘렸고, 역대 법무부 장관 가운데 처음으로 교정공무원 임용식과 교육 과정에 직접 참석해 강연했다. 저출산·노동인구 감소의 대안으로 이민청 신설을 추진했다. 비행기 출장 시 퍼스트클래스 대신 비즈니스클래스를 이용했고, 장관업적책자를 폐지했으며, 승용차에 오르내릴 때 부하 직원이 문을 열고 닫아주는 관행도 없앴다. 보이스피싱범죄 정부합동수사단을 설치했고, 미국 법무부와는 가상화폐·랜섬웨어·반독점 문제에 관해 협력하기로 했다. 2023년 7월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경제성장 이끄는 법무 행정과 기업의 역할'을 주제로 한 그의 강연 영상은 조회수 122만 회를 기록했다. 그는 6월 4일 교정직 공무원의 처우 개선, 7월 4일 변호사시험 CBT 도입과 장애인 응시자 편의 확대, 10월 26일 범죄피해자 보호 정책, 이듬해 5월 24일 국가배상에서의 남성차별 철폐, 6월 5일 사형 집행시효 30년 폐지와 국외도피 피고인 재판시효 정지 등을 추진했다. 6월 14일 국회 대정부질의에서는 시각장애인인 김예지 의원을 배려해 "김 의원님, 한동훈 법무부 장관 나와 있습니다"라며 자신의 존재를 음성으로 먼저 알리기도 했다.

법무부 장관 취임 한 달 뒤인 2022년 6월, 그와 함께 일했던 전·현직 검사들 사이에서는 공통적으로 "똑똑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와 이원석 총장 두 사람 모두와 일한 한 검사는 "한동훈 장관에게 열심히 작성한 10장 넘는 보고서를 제출하면 질문 몇 개만 던지고서는 핵심을 파악하고 곧바로 결론을 내려줬다"며, 자기 시간을 모두 투입하는 '똑부' 스타일의 이원석과 달리 한동훈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똑게' 스타일이라고 비교했다.

그는 기존 장관들과 달리 억울하게 피해를 입은 이들의 편에 서는 모습도 보였다. 2019년 경남 진주의 한 아파트에서 방화·살인으로 22명의 사상자를 낸 안인득 사건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법원이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1심 판결을 내리자, 그는 항소를 포기하며 "대한민국을 대표해 유가족에게 사과의 뜻을 전한다"고 밝혔다. 화성연쇄살인 사건 누명으로 20년간 옥살이를 한 윤성여의 국가배상 소송에서도 항소를 포기하며 사과했고, 부산에서 일면식도 없는 남성에게 '돌려차기' 폭행을 당한 여성에게는 직접 전화를 걸어 사과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그는 성폭행범이 형기를 채우고 출소하더라도 별도로 격리·관리할 수 있는 '한국형 제시카법'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 이상 복역한 모범수라도 가석방을 제한하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을 추진했다.

2022년 8월 검수완박법 관련 질문에 그는 "깡패가 부패 정치인 뒷배로 주가 조작하고 기업인 행세하면서 서민 괴롭히는 것을 막는 것이 국가의 임무인데 그걸 왜 그렇게 막으려는지 되레 묻고 싶다"고 했다. 2023년 7월 민주당 의원들이 쌍방울그룹 대북송금 의혹을 수사하는 수원지검에서 연좌 농성을 벌이자, 그는 "이것은 권력을 악용한 최악의 '사법 방해'이자 '스토킹'에 가까운 행태"라고 비판했다. 8월 신임 검사 임관식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검사가 된 것은 가족과 친지의 도움이 컸겠으나 무엇보다 '운'이 좋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갖지 못한 운을 잡았으니 운으로 받은 혜택을 조금이라도 돌려드린다는 생각을 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그는 이어 말했다. "'어느 편이 옳은가'는 진영에 따라 모호할 수 있어도, '무엇이 옳은가'는 분명합니다. 우리의 일은 '무엇이 옳으냐'를 정교하게 따지고,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2022년 9월 13일, 김건희 여사는 서울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지하 코바나콘텐츠 사무실에서 재미교포 목사 최재영으로부터 300만 원 상당의 디올백을 받았다. 이 장면은 몰카로 촬영됐다. 10월 24일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의겸 의원이 윤석열 대통령과의 심야 술자리 의혹을 제기하자, 한동훈은 "사실이면 장관직을 걸겠다"며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11월 7일에는 특검을 즉각 수용하라는 요구를 거절했고, 12월에는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제기한 김의겸과 더탐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1심 승소했다.

법무부 장관으로서 그를 정치적으로 키운 것은 역설적으로 더불어민주당이었다. 청문회에 이어 여러 차례 국회에 출석해 야당 의원들과 설전을 벌이는 모습이 반복해서 보도되며 그의 인지도는 빠르게 올라갔다. 2022년 10월 25일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그는 김의겸 의원을 겨눠 "매번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해도 그냥 넘어가주고 책임을 안 지니 그래도 되는 줄 안다"고 말했다. 11월 국회 본회의 참석에 앞서서는 "저질 음모론을 국민에게 던져 현혹시키면 피해야 하는가. 진흙탕에 뛰어들어가 국민을 대신해 그런 짓을 막는 것이 공직자의 진짜 품위"라고 했다. 2023년 1월 이재명 대표 소환과 관련해서는 "검찰이 통상의 지역토착비리범죄 수사 절차에 따라 공정하게 수사하는 것이다. 혐의 개수가 많은 게 검찰 탓은 아니지 않은가"라고 반박했다. 2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는 "민주당이 저에게 너무 적개심을 드러낸다. 제 인생 검사의 화양연화는 문재인 정권 초반기일 것이다. 그때는 저를 굉장히 응원하고 지지하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5월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이 불거지자 그는 "의원 매수 수사하는 것을 정치 탄압이라 한다면 승부 조작 수사하면 스포츠 탄압인가"라고 했고, 자신을 정치검사라 부른 참여연대를 향해서는 입장문을 내 "정치검사란 일신의 영달을 위해 정치 권력의 눈치를 보거나 잘 보이기 위해 수사를 하는 검사인데, 20여 년간 내가 한 수사 중 단 하나도 그런 것이 없다"고 반박했다. 8월 이재명 대표 구속 요구를 두고는 "범죄수사 피의자가 식당 예약하듯 언제 구속해달라고 요구하는 건 누가 봐도 비정상"이라고 말했다. 국회 발언이 지나치게 직설적이라는 지적에, 그는 "공직자가 어떻게 더 잘 봉사할 것인가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공직자의 정치인 개인 성공에 대한 처세술 얘기 아닌가. 그런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다만 비판도 뒤따랐다. 이재명 대표의 비리 혐의나 더불어민주당 돈봉투 사건은 철저히 수사하면서도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의혹에는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는다는 지적, 고발사주 의혹으로 공수처가 5년형을 구형한 손준성 검사를 업무에서 배제하지 않고 오히려 대구고검 차장검사로 발령 냈다는 지적이 대표적이었다. 수도권에서 근무한 검사 출신의 한 법조인은 "어떤 검사가 봐도 수사해야 할 사안에는 입을 다물고 있는 걸 보면 내 편, 네 편이 분명한 사람이라고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2023년 11월, 86세대를 대표하는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저서 《송영길의 선전포고》에서 "한 장관이 나보다 나이가 10살이 어린데 타워팰리스에 살고 나는 돈이 부족해서 연립주택 전세에 산다"고 썼다. 출판기념회에서는 "한동훈을 반드시 탄핵해야 한다", "어리고 건방진 놈"이라는 발언도 나왔다. 11월 11일 한동훈은 입장문을 내고 반격했다. "어릴 때 운동권을 했다는 사실 하나로 사회에 생산적인 기여도 별로 없이 자그마치 수십 년간 자기 손으로 돈 벌고 열심히 사는 시민들 위에 도덕적으로 군림했다." 그는 송영길을 비롯한 86세대 정치인들을 겨눠 "이런 분들이 군림하고 훈계해온 것은 국민 입장에서 억울하고 바로잡아야 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2023년 11월 7일, 김건희와 윤석열은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사저에서 한남동 대통령 관저로 이사했다. 12월 11일 윤석열은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에게 "당 대표직은 유지하고 총선은 불출마하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김건희는 이날 윤석열과 함께 3박 5일 네덜란드 국빈 방문을 떠났다. 12월 13일, 김기현은 페이스북을 통해 "오늘부로 국민의힘 당대표직을 내려놓는다"며 물러났다. 2004년부터 내리 4선을 해온 울산 남구 지역구를 지키는 쪽을 택한 것이었다.

2023년 12월 5일부터 7일까지 한국갤럽이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에게 차기 대통령감을 물은 조사에서, 그는 16%로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재명(19%)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그해 12월 출간된 심규진 스페인 IE대 교수의 책 《73년생 한동훈》은 그를 이렇게 평가했다. "한동훈은 최고 권력인 대통령과의 두터운 브로맨스 서사, 1970년대생의 젊음, 이준석이 보여줬던 어떤 말싸움에도 지지 않는 민첩한 언변, 오세훈처럼 신사 같은 매너와 태도, 그리고 홍준표와 같은 확고한 이념적 선명성과 대야투쟁력을 모두 겸비하고 있다." 반면 정치 신인으로서의 위험성을 짚는 시각도 있었다. 이현우 서강대 교수는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앨 고어 부통령이 클린턴보다 똑똑하고 정교하다는 평가가 많았으나 대선후보로 나섰을 때 허술한 면모를 보여 기존 이미지가 깨졌다"며, 그에 대한 국민 기대치가 높은 만큼 자기모순이나 부족한 점이 드러나면 괴리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지금은 윤석열 부하의 이미지가 강한데, 윤 대통령과 차별성 없이는 어렵다"고 우려했다.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는 "대한민국 정치판에서 크려면 두 가지 길이 있는데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실험을 하거나, 자기희생을 하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정계 입문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무성하던 이 무렵, 그의 온라인 팬덤은 이미 상당한 규모로 자리 잡고 있었다. 2020년 7월 개설된 네이버 카페 '위드후니' 회원은 1만 5000여 명에 달했고, 그의 일정을 정리한 '동훈여지도'라는 지도까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돌았다. 법무부 장관 취임식 동영상은 조회수 100만 회를 넘겨, 역대 장관 취임 영상 중 이례적인 기록을 세웠다. 그의 학창 시절을 아는 이들은 그가 정치인으로도 개인사 리스크가 크지 않을 것이라 봤다. 한 지인은 "술을 안 마시고 워낙 가정적이다 보니 개인사에 대한 리스크는 없다고 할 수 있다. 어릴 때부터, 사춘기 때도 허튼 행동은 안 하는 친구였다"고 말했다. 이 무렵 정치권에서는 그가 서울 강남이나 서초, 종로 등 연고지에 지역구 출마할 가능성과 총선 불출마 가능성이 함께 거론되고 있었다.

12월 14일 네덜란드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김건희와 윤석열은 한동훈에게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직을 제안했다. 22대 총선에서 공천권을 행사하되, 한동훈 본인은 불출마한다는 조건이었다. 12월 19일 정치 경험 부족을 묻는 질문에 그는 "세상 모든 것은 처음에는 길이 아니었다"며 수락 의사를 시사했고, 윤석열 아바타라는 논란에는 "공직을 맡으며 누군가를 맹종해본 적 없다"고 선을 그었다. 12월 20일 그의 비대위원장 내정 보도가 처음 나왔다. 12월 21일, 그는 법무부장관직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도 있었지만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직을 선택했다. 이임식에서 그는 국민의힘의 위기를 야구 경기 9회말 2아웃 2스트라이크에 비유했다. 12월 22일 그는 국민의힘에 서면으로 입당 원서를 제출했고, 12월 26일 전국위원회에서 96.46%의 찬성을 얻어 비상대책위원장으로 공식 임명됐다. 그는 취임 일성으로 "운동권 특권 정치를 청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역구에 출마하지 않겠다. 비례로도 출마하지 않겠다"며 "승리를 위해 뭐든 하겠지만, 승리의 과실을 가져가지는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불체포특권을 내려놓는 인사에게만 공천을 주겠다는 개혁안을 발표했고, 비서실장에 초선 김형동 의원을 임명했다. 12월 27일 김건희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됐다. 12월 29일 그는 김진표 국회의장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각각 예방했고, 사무총장에 장동혁, 여의도연구원장에 홍영림을 임명했다.

---

# 4장 정치의 문

2024년 1월 5일, 윤석열 대통령은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 처음으로 거부권을 행사했다. 열흘 뒤인 1월 15일, 김건희는 한동훈에게 텔레그램 문자를 보냈다. "요새 너무도 고생 많으십니다. 대통령과 제 특검 문제로 불편하셨던 것 같은데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너무나 오랜 시간 동안 정치적으로 활용되고 있어 기분이 언짢으셔서 그런 것이니 너그럽게 이해부탁드립니다 ㅠㅠㅠ 다 제가 부족하고 끝없이 모자라 그런 것이니 한 번만 양해해 주세요. 괜히 작은 것으로 오해가 되어 큰 일 하시는 데 있어 조금이라도 불편할 만한 사안으로 이어질까 너무 조바심이 납니다. 제가 백배 사과드리겠습니다. 한번만 브이랑 통화하시거나 만나시는 건 어떠실지요. 내심 전화를 기다리시는것 같은데 꼭좀 양해부탁드려요." 한동훈은 답하지 않았다.

1월 17일, 한동훈 라인으로 분류되던 김경율 비상대책위원은 JTBC 유튜브 '장르만 여의도'에 출연해 "프랑스 혁명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치와 난잡한 사생활이 폭발한 것"이라며 김건희를 마리 앙투아네트에 빗댔다. 1월 19일 한동훈은 김건희 특검과 관련해 "국민의 눈높이에서 생각할 문제"라고 말하고 윤석열 라인인 윤재옥 원내대표와 20분간 회동했다. 같은 날 김건희는 두 번째 텔레그램을 보냈다. "제 불찰로 자꾸만 일이 커져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제가 사과를 해서 해결이 된다면 천 번 만 번 사과를 하고 싶습니다. 단 그 뒤를 이어 진정성 논란에 책임론까지 불붙듯 이슈가 커질 가능성 때문에 쉽게 결정을 못 하는 것뿐입니다. (…) 대선 정국에서 허위기재 논란으로 사과 기자회견을 했을 때 오히려 지지율이 10프로 빠졌고 지금껏 제가 서울대 석사가 아닌 단순 최고위 과정을 나온 거로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습니다. 사과가 반드시 사과로 이어질 수 없는 것들이 정치권에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모든 걸 위원장님 의견을 따르겠습니다."

1월 21일, 한동훈은 이관섭 대통령 비서실장으로부터 윤석열 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으며 비대위원장직에서 사퇴하라는 메시지를 전해 들었다. 그는 입장문을 내 "국민 보고 나선 길, 한 일 하겠습니다"라며 사퇴를 거부했다. 1월 23일 김건희는 세 번째 문자를 보냈다. "대통령께서 지난 일에 큰 소리로 역정을 내셔서 맘 상하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큰 맘 먹고 비대위까지 맡아주셨는데 서운한 말씀 들으시니 얼마나 화가 나셨을지 충분히 공감이 갑니다. (…) 조만간 두 분이서 식사라도 하시면서 오해를 푸셨으면 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1월 15일부터 25일까지 김건희는 다섯 차례에 걸쳐 텔레그램 문자를 보냈지만, 한동훈은 매번 읽고도 답하지 않았다.

3월, 한동훈은 구설수에 오른 도태우 변호사의 공천을 취소해 극우 세력과 선을 그었고, 친윤계 핵심 인사인 장예찬 전 청년최고위원의 공천도 취소했다. 3월 17일에는 국민의힘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비례대표 공천자 명단을 발표하면서 이철규 공동 인재영입위원장의 공천 의견을 무시했다. 이철규는 사흘째 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한동훈은 받지 않았다. 3월 26일 유승민 전 의원의 총선 포용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는 "포용도 최소한의 기강을 전제로 한다"며 사실상 거절했다. 4월 1일 윤석열 대통령의 의대 증원 관련 대국민담화에 유연한 대응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하자, 그는 두 차례나 사퇴 의사를 밝히는 배수진을 쳤다.

4월 10일, 22대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90석에 그치며 완패했다. 이튿날 한동훈은 "민심은 언제나 옳다"며 비상대책위원장직에서 사퇴했다. 4월 19일 윤석열 대통령은 이관섭 비서실장을 통해 그를 4월 22일 오찬에 초청했다. 4월 20일 한동훈은 건강상 이유를 들어 이를 거절했다. 대통령실은 총선 참패의 책임이 그에게 있다고 봤다. 같은 날 그는 페이스북에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은 배신이 아닌 용기"라며 "정치인이 배신하지 않아야 할 대상은 여러분, 국민 뿐"이라고 썼다. 4월 16일 윤석열은 홍준표 대구시장과 4시간 동안 만찬 회동했고, 회동 직후 홍준표는 한동훈을 향해 "주군에게 대들다가 폐세자가 됐다"고 공격했다. 김건희 여사의 디올백 수수 논란(1차), 채상병 사망 은폐 사건 관련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호주대사 부임 문제(2차)에 이어, 총선 참패 책임 공방은 세 번째 윤한갈등이었다.

---

# 5장 재기와 당대표 당선

총선 참패로 물러난 지 73일 만인 2024년 6월 23일 오후 2시, 한동훈은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국민의힘 당대표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총선 패배 이후 두 달 동안 국민의힘이 반성과 혁신의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지적하며, 총선 참패의 1차 책임은 자신이 아니라 윤석열 대통령에게 있다는 여론 속에서 정치 복귀를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당정관계를 수평적으로 재정립하고 국민의힘을 정부의 비판적 협력자로 거듭나게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채상병 특검법에 대해서는 제3자 추천 방식의 특검을 당대표가 되면 발의하겠다고 밝혔고, 김건희 특검법에는 반대하는 대신 특별감찰관 임명과 대통령실 제2부속실 설치를 요구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6월 19일 윤석열 대통령에게 전화해 출마 결심을 전했지만, 통화는 10초 만에 끝났다.

여론조사기관 여론조사꽃이 발표한 조사에서 그는 나경원과의 양자 대결에서 28.9%(나경원 12.7%) 지지율을 기록했다. 7.23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는 한동훈과 나경원, 윤상현, 원희룡의 4파전으로 치러졌다. 캠프 이름은 '시작'이었고, 캠프 사무실은 과거 박근혜·문재인 대선캠프가 있었던 여의도 대산빌딩에 차려졌다.

7월 4일, CBS는 김건희가 한동훈에게 보낸 텔레그램 문자를 편집해 공개했다. 7월 9일 열린 1차 TV토론에서는 이 '읽씹' 논란이 최대 쟁점이 됐다. 나경원과 윤상현은 그가 문자를 읽씹해 총선에서 패배했다고 주장했고, 한동훈은 대통령·영부인 모두와 소통하는 것은 공사 구분을 못하는 것이라는 논리로 방어하며 "똑같은 일이 있어도 똑같이 하겠다"고 말했다. 7월 12일 전당대회 과정에서는 몸싸움까지 벌어질 정도로 과열되며 '자폭 전대'라는 말이 나왔다. 그는 자신을 향해 네거티브 공세를 펼치던 원희룡을 향해 "김의겸보다 못하다"고 응수했다.

7월 23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제4차 전당대회에서, 한동훈은 득표율 62.84%(32만702표)로 결선투표 없이 국민의힘 당대표로 선출됐다. 그의 러닝메이트였던 장동혁과 진종오도 각각 최고위원과 청년최고위원에 당선됐고, 인요한·김재원·김민전 등 친윤계 인사들도 최고위원에 이름을 올렸다. 수락 연설에서 그는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일은 옳지 않다", "당대표로 있는 한 결코 폭풍 앞에 여러분을 앞세우지 않겠다", "스스로 폭풍이 되어 여러분을 이끌겠다"고 말했다. 그가 마주한 폭풍의 눈은 김건희와 윤석열, 그리고 이재명이었다. 그는 이날 연설에서 단 한 번도 국민의힘을 '보수정당'이라 부르지 않았다. 대신 2022년 대선 때 결집했던 유권자 연합을 복원하겠다고 밝히며 여의도연구원 정책기능 강화와 지구당 부활을 예고했다.

전당대회 직후 기자회견에서 그는 검찰의 김건희 여사 소환 방식에 대한 질문에 "검찰이 수사 방식을 정하는 데 있어서 더 국민의 눈높이를 고려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영부인께서 결단하셔서 직접 대면 조사가 이뤄졌다"며 검찰이 공정하고 신속하게 결론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5시 30분경 그는 윤석열 대통령과 통화했다고 밝혔다. 윤석열은 "고생 많았고 잘해달라"고 격려했다고 전했다.

---

# 6장 균열

7월 30일, 한동훈은 윤석열 대통령과 1시간 30분간 비공개 회동을 가졌다. 8월, 그는 김경수 전 경남지사 복권 및 의대 정원 증원 문제를 두고 대통령과 이견을 드러냈지만 관철하지 못했다. 9월, 이재명이 정부의 계엄령 준비설을 제기하자 한동훈은 "계엄령을 준비한다면 우리도 막겠지만, 사실이 아니라면 국가를 문란하게 만드는 것"이라며 정면으로 반박했다.

10월 6일, 그는 친한계 의원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여의도 인근 식당에서 국민의힘 현역 의원 22명과 만찬 회동을 갖고 김건희 여사 문제에 대해 민심을 거스르지 않아야 한다고 논의했다. 10월 10일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8번의 선거 중 민주당이 단 1번밖에 이기지 못한 국민의힘 텃밭 부산 금정구에서 오히려 민주당 후보가 우세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10월 12일 금정구 보궐선거 지원 유세 현장에서 그는 "김 여사에 대한 그런 국민들의 우려와 걱정을 불식시키기 위한 대통령실의 인적 쇄신이 저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10월 14일 국민의힘 최고위원회의 직후에는 "김건희 라인이 존재한다고 정리하는 것인지"를 묻는 기자들에게 "그런 라인은 존재해선 안 됩니다"라고 답했다. 대통령실에 '한남동 라인'이 있다는 것은 여의도에서도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10월 16일, 국민의힘은 부산 금정구청장과 인천 강화군수 재보궐선거를 모두 지켰다. 10월 21일 한동훈은 대통령실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회동하며 대통령실 인적 쇄신, 김건희 여사의 대외활동 중단과 의혹 규명 협조, 특별감찰관 도입이라는 세 가지 요구를 직접 전달했다. 10월 24일 그는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반도체 산업 지원, 인공지능 발전,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등을 담은 '상승경제 7법'을 정기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고 발표했다. 10월 25일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 빈소에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30여 분간 대화를 나눴다.

11월 5일, 국민의힘 당원게시판에 한동훈의 가족 명의로 대통령 비방글이 게시됐다는 의혹이 처음 제기됐다. 이 논란은 훗날 그의 정치 인생에 다시 그림자를 드리우게 된다. 11월 11일 그는 성남FC 후원금 의혹 재판부가 수사 검사에게 퇴정을 명령한 것을 두고 "법리에 맞지 않으며 이재명 방탄에 판을 깔아주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11월 27일에는 제3자 추천 채상병 특검법 발의를 공언했지만, 친윤계를 중심으로 한 당내 반대를 설득하지 못해 임기 중 발의에는 이르지 못했다.

---

# 7장 12·3, 탄핵과 계엄 사이

계엄의 밤

2024년 12월 3일 화요일 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오후 10시 23분의 일이었다. 7분 뒤인 10시 30분, 윤석열은 홍장원 국가정보원 1차장에게 전화를 걸어 방첩사령부와 협조해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를 체포하라고 직접 지시했다. 그는 조태용 국정원장에게도 같은 명령을 내렸지만, 조태용은 따르지 않았다. 윤석열은 이후 홍장원의 경질을 명령했다.

오후 10시 49분, 한동훈은 입장문을 통해 계엄 선포가 잘못됐다며 "불법적인 비상 계엄에 끝까지 맞서겠다"고 밝혔다. 그는 친한계 의원 18명과 함께 국회 본관으로 향했다. 원내대표 추경호에게 본회의장으로 와 달라고 연락했지만, 추경호는 국민의힘 당사에 머물렀다. 당대표 신분으로는 국회법상 본회의장 입실이 불가능했지만, 체포조 소문과 군 진입 상황 속에서 신변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그는 야당 의원 박주민의 동의를 구해 이례적으로 본회의장에 입장했다.

밤 11시 30분 무렵 경찰과 군 병력이 국회 출입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곽종근 특전사령관 예하 707특수임무단과 1공수여단, 이진수 수방사령관 예하 35특수임무대대와 군사경찰특임대가 계엄군으로 투입됐다. 12월 4일 0시 47분, 우원식 국회의장이 본회의를 개의했다. 1시 2분 무렵 비상계엄 해제를 요구하는 결의안이 상정됐고, 재석 의원 190명 전원 찬성으로 가결됐다. 한동훈도 본회의장에서 친한계 18명의 찬성 투표를 독려했다. 그날 오전 4시 30분,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해제했다.

한동훈은 훗날 2025년 2월 펴낸 자신의 책 《국민이 먼저입니다》에서 그날 밤을 이렇게 회고했다. 비상계엄 선포 직후 여의도로 향하던 그에게 여권 인사로부터 "체포되면 정말 죽을 수 있다. 즉시 은신처를 정해서 숨어라. 추적 안 되게 휴대폰도 꺼놔라. 가족도 피신시키는 게 좋겠다"는 경고를 들었다는 것이다. 체포될 것을 우려한 그는 비상계엄 반대 인터뷰를 미리 녹음해두기도 했다고 썼다.

탈당 요구

같은 날 오전 7시, 한동훈은 국민의힘 최고위원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했다. 오전 8시 긴급 의원총회에서도 같은 요청을 공식화했다. 오후 2시 40분, 더불어민주당·정의당·기본소득당·진보당·시대전환·녹색당 등 야6당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수요일인 12월 4일 오후 5시, 한동훈은 용산 대통령실에서 윤석열 대통령, 한덕수 국무총리, 여당 중진들과 함께 첫 번째 면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는 여전히 주도권이 윤석열에게 있었다. 한동훈은 면전에서 탈당을 직접 요구하지는 않았다. 대신 계엄군이 자신을 체포하려 했던 사실에 대해 항의했다. 윤석열은 그 체포 시도가 정치 활동을 금지하는 포고문에 따른 계엄군의 계엄 사무였을 뿐이라고 답했다. 한동훈이 훗날 책에 쓴 바에 따르면, 이 자리에서 윤석열은 "국회 해산도 할 수 있었는데도 하지 않았지 않느냐"고 말했고, 체포 시도에 대해서는 "전혀 그런 사실이 없다. 만약 정치인을 체포하려 했다면 방첩사령부를 동원했을 텐데 이번 계엄에는 방첩사를 동원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첫 만남 이후 한동훈은 내각 총사퇴와 대통령 탈당을 요구했지만, 윤석열은 비상계엄이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며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날 저녁 7시, 한동훈은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내각 총사퇴, 김용현 국방부 장관 해임, 대통령 탈당이라는 3대 요구를 제안했다. 저녁 8시에는 긴급 의원총회가 이어졌다. 이날 저녁으로 논의됐던 윤석열의 대국민 사과 담화는 취소됐다.

탄핵이냐 퇴진이냐

12월 5일 새벽 0시 10분으로 예정돼 있던 탄핵소추안의 국회 본회의 보고에 한동훈과 국민의힘 의원들은 모두 불참했다. 야6당의 탄핵소추안은 결국 여당 없이 야당 단독으로 0시 48분 본회의에 보고됐다. 이 소추안에는 불법적인 비상계엄으로 형법 87조 내란죄를 저질렀다는 혐의가 추가됐다. 표결은 12월 6일 0시 48분부터 12월 8일 0시 48분 전까지 이뤄져야 했다. 재적의원 3분의 2인 200명이 찬성해야 가결되는데, 야6당 의석은 192명이었다. 국민의힘에서 8명 이상만 찬성하면 통과되는 구도였고, 표결은 무기명 비밀투표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목요일인 12월 5일 오전 7시, 한동훈은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당 대표로서 이번 탄핵은 준비 없는 혼란으로 인한 국민과 지지자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통과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그는 곧바로 선을 그었다. "대통령의 위헌적인 계엄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서 "오늘 즉시 이번 비상 계엄 사태에 직접 관여한 군 관계자들을 그 직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대통령의 이 사태에 대한 인식과 국민의 인식 사이에 큰 차이가 있었고 공감하기 어려웠다"고도 했다. 그는 윤석열의 탈당을 다시 한번 요구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범죄 혐의를 피하기 위해 정권을 잡으려는 세력은 또 막아야 한다."

같은 날 오전 윤석열은 김용현 국방부 장관을 면직했다. 오전 10시 국회 국방위원회 긴급 현안질의에는 국방부 장관 대리를 맡은 김선호 국방차관과 전 계엄사령관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이 출석했다. 김선호는 "국회 병력 투입은 국방장관이 지시했다"고 밝혔다. 계엄군을 지휘한 곽종근 특전사령관과 이진수 수방사령관에 대한 인사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오후에는 김재섭·김상욱·김소희·김예지·우재준 등 국민의힘 소장파 5인이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윤석열의 대국민 사과와 임기 단축 개헌을 요구했다. 오후 5시, 심우정 검찰총장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내란죄 수사 착수를 공식 발표하고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에 사건을 배당했다. 국가수사본부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도 같은 날 수사에 나섰다. 이날 저녁으로 다시 논의됐던 대국민 사과 담화는 또 한 번 취소됐다.

금요일인 12월 6일 오전 9시, 한동훈은 자신이 요청해 소집한 긴급 최고위원회의에서 입장을 뒤집었다. "어젯밤 계엄령 선포 당일 윤석열 대통령이 주요 정치인 등을 반국가세력이라는 이유로 고교 후배인 여인형 방첩사령관에게 체포하도록 지시했다는 사실과 체포를 위해 정보기관을 동원했다는 사실을 신뢰할만한 근거를 통해 확인했습니다." 그는 여인형이 정치인을 과천 수방사에 구금하려 했다는 구체적 계획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저는 어제 준비없는 혼란으로 인한 지지자들의 혼란을 막기 위해 이번 탄핵에 대해 통과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했지만 새로운 사실 등에 의해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직무집행 정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그는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군인사들에 대한 인사조치조차 하지 않고 있고 불법계엄이라고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지금은 오직 대한민국과 대한민국의 국민만을 생각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최고위 사전 회의에서 그는 추경호 원내대표와 언쟁을 벌였다. 추경호는 체포 지시에 대한 사실관계 확인이 더 필요하다며, 발표하려면 한동훈 개인 자격으로 하라고 반대했다. 회의 직후 민주당은 추경호를 내란죄로 고발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낮 12시 무렵, 면직을 앞둔 홍장원 국가정보원 1차장은 신성범 국회 정보위원장과의 면담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걸어 "이번 기회에 잡아들여, 싹 다 정리해"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국회 정보위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은 홍장원과 윤석열의 통화 기록과 메모를 공개했다. 그날 오후 홍장원은 면직됐다.

오후 1시, 한동훈은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윤석열과 두 번째로 독대했다. 이 자리에는 김건희 여사와 주진우 의원이 배석했다. 한동훈은 방첩사령관 등 비상계엄 지휘자들이 여전히 지휘 라인에 남아 있는 점을 문제 삼았지만, 윤석열은 "내 명령을 따른 사람들"이라고 답했다. 한동훈은 정치인 체포에 대한 법적 책임도 물었다. 이 만남 이후 그는 "대통령을 직무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의견을 뒤집을 만한 다른 의견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저녁 7시, 추경호 원내대표와 한동훈의 비서실장 박정하 의원은 의원총회를 중단하고 용산 대통령실로 이동해 정진석 비서실장과 윤석열을 만나 사과 담화를 요청했다.

토요일인 12월 7일 오전 10시, 윤석열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 담화를 발표했다. 그는 비상계엄으로 국민을 놀라게 한 점을 사과하며, 임기를 포함한 정국 안정 방안을 국민의힘 당에 일임하겠다고 밝혔다. 담화를 함께 시청한 국민의힘 의원들 사이에서는 "간결해서 좋다"는 의견이 나왔다. 담화 직후 한동훈은 기자들 앞에서 다시 입장을 바꿨다. "임기를 포함해 정국 안정 방안에 관해 당에게 일임한다고 밝혔다." "대통령의 정상적인 직무수행은 불가능하다." "대통령의 조기 퇴진은 불가피하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최선의 방안을 제가 논의하겠다." 탄핵 찬성을 공개적으로 밝혔던 조경태 의원도 이날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탄핵 반대로 입장을 선회했다. 담화 직후부터 한동훈은 언론 앞에서 모습을 감췄고,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오전 11시, 한동훈은 삼청동 총리 공관으로 가 한덕수 국무총리와 긴급 회동했다. 면담은 낮 12시 47분까지 1시간 넘게 이어졌고, 윤석열의 2선 후퇴와 여당·내각이 이끄는 정국 안정 방안이 논의됐다. 같은 날 오전 국회 정보위원회는 조태용 국정원장과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이 출석한 가운데 열렸지만, 회의 공개 여부를 놓고 여야가 다투다 파행됐다. 전날 면직된 홍장원은 건강상 이유로 불참했다.

이날 한동훈은 이재명을 겨눠 날을 세우기도 했다. "이재명 대표가 집권하면 본인의 사법 유죄 판결을 막으려 비상계엄을 선포할 것"이라며, 그는 이재명을 한국사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로 규정했다. 오후 6시경 김건희 특검법과 탄핵소추안 표결을 앞두고 열린 의원총회에서 추경호는 원내대표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 오후 9시 26분,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1차 탄핵소추안은 의결정족수 부족으로 투표가 불성립되며 처리되지 못했다. 국민의힘 의원 다수가 표결에 불참한 결과였다. 표결 불참이라는 방식을 편법이라 비판해 온 한동훈이었지만, 결국 같은 방식으로 1차 탄핵은 막힌 셈이 됐다.

밤 11시경 국회에서, 한동훈은 이렇게 말했다. "퇴진 시까지 대통령은 사실상 직무 배제될 것이고 국무총리가 당과 협의해 국정 운영을 차질 없이 챙길 것." "국민의힘은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윤석열 대통령의 질서 있는 퇴진을 추진하겠다." "이미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에 대한 당의 결정을 따르겠다고 한 바 있으니 혼란은 없을 것이다." "오직 대한민국과 국민에 최선인 방식으로 국민이 불안해하지 않게 예측 가능하고 투명하게 추진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과도 협의할 것이다." 그는 여당 대표로서 "대단히 송구스럽다"며 계엄 선포 사태를 "명백하고 심각한 위헌·위법 사태였다"고 규정했다.

소통령 논란

일요일인 12월 8일 오전 11시, 한동훈은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한덕수 국무총리와의 2차 회동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전 회동 장소였던 총리공관이 아니라 당사였다는 사실 자체가, 이제부터 정치의 중심이 용산이 아니라 여의도로 옮겨왔다는 신호로 읽혔다. 한동훈이 먼저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그는 비상계엄 사태로 인한 국민적 불안과 국가적 피해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하며, 윤석열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정상적인 국정운영을 할 수 없으므로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 국민 다수의 판단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집권 여당으로서 준엄한 국민의 평가와 심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그는 윤석열이 임기를 포함한 정국 안정 방안을 당에 일임하겠다고 약속했다고 전하며, 질서 있는 조기 퇴진 과정에서 혼란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퇴진 전까지는 국무총리가 당과 긴밀히 협의해 민생과 국정을 챙길 것이며, 퇴진 전이라도 대통령은 외교를 포함한 국정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계엄 사태 수사에 대해서는 성역 없이 투명하게 이뤄지도록 하겠다며, 정부나 당이 누구라도 옹호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무총리와 당 대표 간 주 1회 이상의 정례회동을 약속하며 담화를 마쳤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뒤를 이었다. "국정에 한 치의 공백도 있어선 안 된다." "현 상황에 대한 조속한 수습에 전력을 다하겠다." 그는 야당을 향해 "예산안을 조속히 확정해 각 부처가 제때 집행 준비를 해야 어려운 시기 민생경제를 적기에 회복할 수 있다"고 부탁했다. 회견을 마친 한덕수는 오전 11시 30분 당사를 떠났다.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되는 것인지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는 "적절하게"라고만 답했다.

두 사람의 담화 직후, 야당의 반박이 이어졌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계엄 사태가 이제 한동훈과 한덕수의 합작으로 번진 '2차 내란'이라고 규정했다. "한덕수 총리 등 국무회의 내란 가담자 즉각 수사해야 한다"고 요구한 그는 한동훈을 향해 "정치적 궁지에 몰려 있다"고 몰아붙였다. "내란 수괴와 가졌던 비공개 면담도 수사대상 될 것"이라며 "사면 약속 등도 있었는지 확인되어야 한다"고도 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더 직접적이었다. "내란과 군사 반란의 수괴로 체포해야 한다"고 윤석열을 겨눈 뒤, 한동훈을 향해서는 "국민으로부터 국정 운영의 권한을 위임받은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장 박세현 검사장이 한동훈의 현대고와 서울법대 후배라는 사실까지 짚으며 "연성 쿠데타 음모가 짙어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12월 8일부터 정국은 정부는 한덕수가, 정치는 한동훈이 이끄는 모양새로 나뉘었다. 8일 담화 이후 한동훈은 강승규, 이철규 등 친윤계 의원들의 거친 항의를 받았고, 나경원 의원으로부터는 발언이 가볍다는 비판도 받았다. 12월 3일의 계엄 이후 정치 지형은 몇 갈래 질문으로 쪼개졌다. 탄핵인가 퇴진인가. 윤석열의 혐의는 내란죄인가 직권남용죄인가. 수사의 주체는 검찰 특수본인가 경찰 국수본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대통령이 사실상 직무를 놓은 상태에서 국정 운영의 주체는 누구여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었다. 한동훈이 탄핵 대신 퇴진을 선택함으로써, 훗날 그가 대선에서 집권하더라도 정통성에는 이미 흠집이 난 뒤였다.

원내대표 전쟁과 여의도의 부르투스

월요일인 12월 9일 오후, 한동훈은 비상의원총회에서 신임 원내대표 선출을 위한 공고 절차를 시작했다. 사퇴 의사를 밝혔던 추경호를 의원들이 만류해 재신임했지만, 추경호는 이튿날 사퇴 의사를 재확인했다. 화요일인 12월 10일, 원내대표 후보 등록이 시작됐다. 오전 국민의힘 중진회의는 권성동 의원을 차기 원내대표로 추대하기로 결정했고, 권성동은 "심사숙고하고 있다"며 사실상 수락 의사를 내비쳤다. 권성동이 원내대표가 되면, 원외 인사인 한동훈의 당 장악 시도는 사실상 실패로 돌아가는 셈이었다.

같은 날 탄핵 찬성으로 돌아서는 의원들이 늘었다. 김상욱 의원은 오전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에서 "반헌법적 반민주적 비상계엄을 기획한 대통령에 대한 차회 탄핵표결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조경태 의원은 중진회의 참석 직전 "2차 탄핵안을 자유투표에 맡겨야 한다고 본다"고 했고, 배현진 의원도 "2차 탄핵 표결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안철수와 김예지 의원은 이미 12월 7일 1차 표결에서부터 찬성표를 던진 터였다.

이날 한동훈의 비공개 발언도 언론에 흘러나왔다. 이틀 앞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그가 한 발언이었다고 한 참석자는 한겨레신문에 전했다. "국군 통수권자는 대통령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직무를 정지시키기 위해서는 법적으로 탄핵밖에 없고 탄핵이 아니면 국민과 야당, 대통령이 다 수용할 수 있는 안이어야 한다." 다른 참석자는 그가 "윤석열 대통령 퇴진이 늦어지면 국민들이 수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한동훈은 또 "윤 대통령의 조기 퇴진과 '2선 후퇴'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윤 대통령의 선의가 전제돼야 한다는 한계가 있다"고도 말했다. 한겨레는 이 발언을 오후 7시 "한동훈 '탄핵 말고 윤 대통령 권한 뺏을 방법은 없어'"라는 제목으로 보도했고, 조선일보도 같은 날 오후 10시 19분 같은 발언을 전했다. 이 무렵 한동훈이 이끄는 정국 안정 태스크포스는 2월 퇴진·4월 대선안과 3월 퇴진·5월 대선안, 두 가지 질서 있는 퇴진 방안을 검토했지만 당내 반발에 부딪혔다. 같은 날 홍준표 대구시장은 페이스북에 "한동훈은 브루투스 같은 자"라고 썼다.

대통령한테 속았다

수요일인 12월 11일, 491회 임시국회가 시작됐다. 더불어민주당이 2차 탄핵소추안을 보고하면 표결은 12월 14일로 예정돼 있었다. 재적의원 300석 중 200석이 필요했고, 더불어민주당 175석에 조국혁신당 12석, 개혁신당 3석, 진보당 1석, 무소속 1석을 더한 야당 의석은 192석이었다. 국민의힘 소장파와 비주류 의원들의 이탈 여부가 관건이었다. 인요한·김민전·김재원 등 최고위원 총사퇴를 통해 한동훈 체제를 붕괴시키는 당내 쿠데타 시나리오까지 거론됐다.

목요일인 12월 12일 오전 9시 20분, 한동훈은 기자회견을 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무를 중단하거나 직에서 물러날 의사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탄핵 이외에 직무를 정지시킬 방법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같은 날 원내대표 선출 의원총회에서 그는 윤석열의 담화가 사실상 내란 자백 취지라고 지적하며, 애매했던 기존 입장을 번복하고 당론으로 탄핵에 찬성할 것을 선언했다. 금요일인 12월 13일, 윤석열이 자진 조기 퇴진 의사가 없음을 재확인하며 앞선 약속을 뒤집자, 한동훈은 탄핵 표결을 하루 앞두고 탄핵 찬성이라는 최종 입장을 천명했다.

목도리와 사퇴

토요일인 12월 14일, 국민의힘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친윤계 의원들은 한동훈에게 물병을 던지고 욕설을 퍼부으며 사퇴를 요구했다. 그는 자신이 계엄령을 내렸느냐고 맞받아치며 싸우다 자리를 일찍 떠났다. 같은 날, 비상계엄 해제 직후부터 국회 앞마당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성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던 국민의힘 의원 김상욱을 한동훈이 찾아갔다. 그는 자신의 빨간 목도리를 김상욱에게 직접 둘러주며 격려했다. 그날 국회 본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가결 직후 그는 당대표직을 계속 수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러나 그 뜻을 밝힌 지 불과 8분 만에 최고위원 4명이 전원 사퇴를 표명했다. 오후 6시부터 열린 의원총회에서 인요한·김민전 최고위원이 먼저 물러났고, 친한계로 분류되던 장동혁 최고위원과 진종오 청년최고위원도 뒤를 따랐다. 오후 7시 20분, 5인 최고위원 가운데 4인이 사퇴하면서 지도부는 사실상 붕괴했다. 국민의힘 당헌·당규상 최고위원 5인 중 4인이 사퇴하면 지도부가 무너지고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되며, 비상대책위원장은 원내대표인 권성동이 지명할 권한을 갖게 돼 있었다.

12월 16일 월요일, 한동훈은 국민의힘 당대표직에서 사퇴했다. 당대표로 선출된 지 146일 만이었다. 12·3 계엄이 촉발한 당내 갈등 속에서 친윤계에 의해 대표직에서 밀려나는 모양새였다. 사퇴 기자회견에서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과 우파 유튜버들의 행태를 비판하고, 탄핵 찬성에 대해 "고통스럽지만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계엄으로 인해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의 폭주와 범죄 혐의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강조했다. 사퇴 당일 저녁, 그는 친한계 의원 10여 명과 예정돼 있던 만찬 회동에 참석해 정치 이야기 없이 담담하게 식사를 마쳤다. 이후 그는 혼자 차를 끌고 국내 여행을 다닐 수도 있었지만, 높아진 인지도 탓에 신변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측근들의 만류를 받아들여 자택에서 휴식을 취했다.

그는 계엄을 막고 탄핵을 통과시켰지만, 자신을 향한 당내의 반격은 막지 못했다. 그가 윤석열을 탄핵으로 끌어내린 사이, 김건희를 둘러싼 논란과 친윤계의 반격은 결국 그 자신을 대표직에서 끌어내렸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2025년 2월 27일 서울 마포의 한 호텔 카페에서 이뤄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를 다룬 기사는, 그해 12월 8일의 담화를 이렇게 되짚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조기 하야를 전제로 한 '질서 있는 퇴진'은 결국 공염불이 됐고, 실제로는 한동훈이 '소통령 체제'라는 의심을 받으며 리더십에 상처를 입었다는 것이었다.

---

# 8장 표류와 재기

한동훈이 물러난 2024년 12월 16일, 국민의힘 지지율은 25.7%, 더불어민주당은 52.4%였다. 그가 물러난 이후 국민의힘은 권영세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탄핵 반대 노선으로 전환했고, 지지율은 12월 23일 24.2%까지 떨어지며 바닥을 찍었다. 12월 30일 한동훈의 후임으로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이 공식 취임하며 탄핵 반대를 주도하는 '권권 체제'가 구축됐다. 탄핵 반대 지지층이 결집하면서 국민의힘 지지율은 반전 상승하기 시작했다. 2025년 1월 25일 YTN이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은 42%로 더불어민주당(38%)을 앞서는 골든크로스를 만들어냈다. 이후 국민의힘 지지율은 극우 박스권에 갇히며 정체됐고, 더불어민주당은 중도우클릭 전략으로 소폭 상승했다.

탄핵 반대는 어느새 정치인 한동훈에게 유일하게 남은 정치적 자산이 됐다. 그는 박스권에 갇힌 국민의힘이 중도로 확장할 수 있는 패였지만, 탄핵에 반대하는 지지층에게는 그저 배신자였다. 윤석열 정권의 황태자였다는 과거는 그의 치명적 한계였고, 정권 교체를 원하는 민주당 지지층에게 그는 그저 심판 대상이었다.

2월 20일 목요일, 헌법재판소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심판의 최종 심리를 2월 25일 화요일로 결정했다. 같은 날 한동훈은 대선 출마 메시지를 담은 자신의 책을 2월 25일 출간한다고 발표했다. 2월 27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개헌 구상을 밝혔다. "만에 하나 올해 대선이 열리고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개헌을 이끌고 3년 뒤인 2028년 물러나겠다." "새 리더는 새 체제의 주인공이 아니라 87년 구체제의 문을 닫겠다는 희생적인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그는 4년 중임제로 개헌하고 임기를 3년으로 단축해 2028년 총선·대선을 동시에 치르는 구상, 비례대표를 상원으로 전환하는 양원제 도입 구상을 밝혔다. "87년 체제는 위대했다. 정치 세력 간의 절제와 자제가 뒷받침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때 '조국 사태' 속에 사법부를 겁박하는 반지성적 행태가 등장했을 때 처음 금이 갔다. 이번에는 한쪽에서는 29번 줄탄핵을, 다른 쪽에선 계엄을 꺼내면서 절제와 자제가 무너졌다. 체제를 바꿔야 한다." 이 무렵 한국갤럽 조사에서 그의 차기 대선 지지율은 4%였다.

2월 28일 그의 책 《국민이 먼저입니다》가 출간됐다. 그는 이 책의 이력 소개에 자신의 검사 경력을 기재하지 않았다. 일부 언론이 이를 비판적으로 보도하자 그는 "그런 것도 기사가 되느냐"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3월 4일 그는 시각장애인을 배려해 자신의 자서전을 직접 오디오북 형식으로 녹음했다. 4월 4일 그는 불법 계엄 옹호 세력에 대한 준엄한 심판을 촉구하며 윤석열 대통령 탄핵 소추안에 대한 찬성 입장을 최종적으로 정리해 발표했다.

---

# 9장 시대교체

2025년 4월 10일 목요일 오후 2시, 한동훈은 국회 본관 분수대 앞에서 21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그는 서태지의 데뷔를 예로 들며 연설을 시작했다. "벌써 30년도 더 된 얘기입니다만, 1992년 봄, 저는 대학 1학년생이었습니다. (…) 가수는 서태지, 노래는 '난 알아요'였습니다. 시대교체는 어느 한 순간 폭발하듯이 일어납니다. 물이 100도에 끓듯이 말이죠." 그는 이재명을 향해 "위험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고 괴물정권이 탄생해 나라를 망치는 것은 막아야 한다"고 했고, 자신을 향해 "그날의 비상계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 겁이 나서 숲에 숨은 이재명 대표보다 제일 먼저 국회로 향하고, 제일 먼저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한 사람, 저 한동훈이 맞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과 탄핵으로 고통받은 이들에게 깊이 공감한다면서도, "그것은 대한민국의 지향점인 자유민주주의로 가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4년 중임의 분권형 대통령제와 양원제, 다음 대선과 총선의 동시 실시, 3년 임기 후 불출마를 약속했다. "저는 새시대의 주인공이 아니라 구시대의 문을 닫는 마지막 문지기가 되겠습니다." 경제 공약으로는 '국민소득 4만 달러·중산층 70% 시대', 경제전쟁 대응을 위한 '워룸'과 '미래 성장 2개년 계획', 5대 메가폴리스 구축, 근로소득세 인하, '한평생복지계좌', 국가 간 경제 공동대응을 위한 '경제 NATO(New Alliance for Trade and Opportunity)' 창설을 제시했다. 그는 출마선언문을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전달했다.

4월 17일과 20일,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안철수 후보가 그를 "윤석열과 같은 0선 검사"라고 깎아내리자, 그는 안철수의 과거 문재인·박원순과의 단일화 행적과 비상계엄 해제 표결 불참 이력을 지적하며 정면으로 맞대응했다. 같은 시기 나경원 후보가 자신을 떨어뜨리기 위해 경선에 출마했다고 적대감을 드러내자, 그는 과거 "박근혜를 떨어뜨리려 나왔다"고 말한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에 나경원을 비유하며 반박했다. 4월 22일 그는 1차 컷오프를 통과해 김문수, 홍준표, 안철수와 함께 2차 경선에 진출했다. 같은 날 그는 후원금 모금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법정 한도를 채웠는데, 이재명의 23시간 마감 기록보다도 빠른 속도였다. 4월 25일 그는 자신이 윤석열을 배신했다는 홍준표의 주장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4월 29일 2차 컷오프를 통과해 김문수 후보와 함께 3차 경선에 진출한 그는, 경선 종료 후 안철수 등이 선대위에 즉각 합류해 김문수를 도우라고 압박하자 "패배 알리바이를 만들지 말라"며 단호히 거절했다.

5월 3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전당대회 최종 후보 선출 결과 그는 2위를 기록했다. 그는 이미 대선에도 나갔던 사람이었지만, 탄핵 반대 지지층에게는 여전히 배신자였고, 정권 교체를 원하는 유권자에게는 여전히 심판 대상이었다.

---

# 10장 탄핵의 강

대선 패배 이후 한동훈은 침잠과 재기를 오갔다. 2025년 8월 13일 그는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두고 김의겸 의원과 더탐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다시 승소했다. 8월 19일 김건희는 신평 변호사를 접견한 자리에서 "한동훈이 그렇게 배신하지 않았더라면 그의 앞길에는 무한한 영광이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해졌다. 이튿날 김건희는 신평이 페이스북으로 전한 이 발언이 자신이 한 말이 아니라며 부인했다. 9월 23일 한동훈은 내란 특검에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해 계엄 당시 상황을 진술했다. 10월 20일 그는 법무부 댓글팀 운영 의혹으로 공격받았지만 경찰 조사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10월 22일 그는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대책으로 토지거래허가구역이 된 경기 남부권을 도는 2차 민심투어를 시작했다. 11월 7일에는 대장동 항소 포기 사건을 항소 기한 마감 직전부터 강하게 문제 삼으며 야권보다 먼저 공론화했다.

11월 5일 전후로 불거졌던 국민의힘 당원게시판 논란이 계엄 1주년을 앞두고 다시 불붙었다. 11월 28일 금요일 오전, 한동훈은 문화일보 유튜브 '이현종의 뉴스쇼'에 출연해 "저는 이 말씀으로 시작하고 싶습니다. 계엄을 미리 예방하지 못했던 점에 대해서 당시 국민의힘의 당대표로서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 드립니다"라며 선제 사과했다. 그는 계엄 이전 원래대로라면 이재명이 법적 심판을 받고 정치 무대에서 사라졌어야 했지만, 윤석열의 계엄 선포로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계엄으로 나라를 망친 것이라면, 이재명 대통령은 계엄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것으로 나라를 망치고 있습니다." 같은 날 오후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대구 동성로 집회에서 "민주당의 의회 폭거와 국정 방해가 계엄을 불러왔지만 결과적으로 많은 국민들께 혼란과 고통을 드렸다. 그 책임을 무겁게 통감하고 있다"며 사과 아닌 사과를 했다.

같은 날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장 이호선은 당원게시판 관련 논란에 대한 공식 조사 착수를 의결했다. 한동훈 가족 명의로 쓰인 것으로 의심되는 윤석열·김건희 부부 비방글이 사실로 판정되고 1년 이상의 당원권 정지 징계가 내려질 경우, 그는 2026년 6월 지방선거와 재보궐선거에 국민의힘 후보로 출마할 수 없게 될 상황이었다. 같은 날 이호선은 한동훈계로 분류되는 전 최고위원 김종혁의 방송 발언에 대해서도 별도의 징계 조사를 개시했다.

11월 29일 토요일, 한동훈은 페이스북에 "어제 우리 당 당무감사위 발표가 보도되었습니다. 계엄의 바다를 건너 미래로 가야 할 중요한 시기입니다. 당을 퇴행시키는 시도가 안타깝습니다"라고 썼다. 김종혁은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익명이 보장된 당원 게시판에서 윤석열과 김건희 부부에 대한 비판글을 올린 게 도대체 왜 문제가 되느냐"고 반박했다. 11월 30일 일요일, 김민수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강원 춘천 집회에서 "당원 게시판 조사는 우리 당원들의 뜻"이라고 말했다. 친한계로 분류되는 전 대변인 윤희석은 "계엄 1주년을 맞는 이 시점에 그들을 비난하면 안되는가? 그들을 계속 끌고 같이 가겠다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조국혁신당 대표 조국은 페이스북에 "향후 어떤 선거에서건 한동훈이 국민의힘 공천을 받는 일은 없을 것 같다. (…) 그렇다고 한동훈은 탈당해 신당을 만들 배짱도 용기도 없다. 차라리 과감히 신당을 만든 이준석이 더 용감하다"고 썼다.

12월 1일 월요일, 한동훈은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여당 대표로서 계엄을 예방하지 못한 것을 진심으로 사과하는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계엄은 보수의 잘못이 아니라 국민의힘 정권의 잘못이다. 보수가 위기인 게 아니라 국민의힘이 반성하고 새로 태어나야 한다. 나는 이미 대통령 선거에도 나갔던 사람이다. 어디에 출마할지는 상황을 보고 해야 한다"고 말했다. 12월 2일 화요일, 국민의힘 전 원내대표 추경호는 계엄 해제를 방해했다는 혐의로 내란 특검의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앞두고 있었다. 추경호가 내란 주요 임무 종사자로 구속 기소될 경우, 장동혁 지도부로서는 탄핵의 책임을 한동훈에게 돌릴 수밖에 없는 처지였고, 한동훈으로서는 비상계엄에 앞장서 반대한 자신의 상징성을 앞세워 장동혁 체제 극복을 주장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2026년 1월 14일 한동훈은 윤리위 결정을 '끼워 맞춘 요식행위'로 규정하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고, 재심 청구는 포기했다. 1월 20일 그는 이호선 당무감사위원회로부터 당원게시판 사건 축소·왜곡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1월 29일, 국민의힘 최고위원회의는 복귀한 장동혁 대표 주재로 그의 제명안을 거수 표결로 가결시켰다. 입당 25개월 만의 당적 박탈이었다. 그는 제명 확정 직후 국회에서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짧은 입장문을 발표했다. 오후 2시 열린 기자회견에서 그는 징계 절차의 부당성을 비판하며 "나를 제명할 수는 있어도 국민을 위한 정치 열망은 꺾을 수 없다"고 밝혔다.

---

# 11장 부산 북구 갑

제명 이후에도 한동훈은 완전히 물러서지 않았다. 2025년 12월 21일 그는 킨텍스에서 지지자 1,500여 명과 친한계 의원들을 모아 토크콘서트를 열었다. 12월 30일, 당무감사위원회의 당원게시판 조사 결과가 발표되던 날 그는 SBS 라디오에 출연해 가족들이 비판글을 올린 사실을 처음으로 공개 시인했다.

2026년 1월 30일 그는 주호영 의원의 대구 수성구 갑 지역구를 이어받는 '주한연대'를 추진할 수도 있었지만, 결국 부산 북구 갑 출마를 결정하며 이 구상을 접었다. 1월 29일 그는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대선-서울시장 연대설, 자신의 서울시장 출마설을 두고 "서울시장 출마를 단 한 번도 고려한 적이 없다"고 공식 부인했다.

2월 8일 오후 4시, 그는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2만 명 규모의 '한동훈 토크콘서트 2026'을 열고 정치 재기를 공식화했다. 그는 1층 객석 뒤편에서 깜짝 등장했다. 오후 2시 10분 연단에 오른 그는 "제명당해 앞에 붙일 직함이 없다. 그냥 한동훈이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오후 4시 30분 그는 자신의 제명이 "윤석열 전 대통령이 시작한 '김옥균 프로젝트'를 장동혁 대표가 마무리한 것"이라며 조직적 축출 시나리오를 공식 폭로했다. 오후 5시, 그는 당원게시판 논란에 대해 "가족들이 그런 글을 쓴 것을 나중에 알았다"고 사과하면서도 "가족이 쓰지도 않은 글까지 포함해 징계 근거가 조작되었다"고 반박했다. 오후 5시 40분에는 보수 유튜버 고성국 등을 실명으로 거론하며 이들을 "위험한 퇴행"으로 규정하고 결별을 선언했다. 오후 6시 50분, 지지자들의 응원에 감격한 그는 눈물을 보이며 "제 풀에 꺾여 그만둘 것이라는 기대를 접으라"고 말했다. 오후 7시, 그는 자신의 슬로건을 "이제 '함께 가면 길이 된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함께 가야만 길이 된다'"고 수정했다. 오후 7시 10분에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행동하는 다수의 역전승"으로 규정하며 6·3 지방선거 승리를 다짐했다.

4월, 한동훈은 잇달아 강경 행보를 이어갔다. 4월 5일 그는 홍준표를 탈영병에 비유하며 김부겸의 지지 선언을 비판했다. 4월 6일에는 대북송금 사건 조작을 주장한 추미애와 서영교에 대해 형사고소를 예고했고, 부산 북갑 여론조사 수치를 잘못 발표한 박수영 의원에게 사과를 요구했으며, 법무부의 박상용 검사 직무정지가 대북송금 공소취소를 위한 밑밥이라고 비판했다. 4월 7일에는 검사 직무정지 조치에 대해 탄핵을 주장하는 한편, 예능 프로그램 SNL 출연을 확정 지었다.

4월 12일 부산 북갑 출마 가능성이 유력하게 거론됐고, 4월 13일 그는 북구 만덕에 집을 구하며 사실상 출마를 공식화했다. 그는 부산 북구 만덕동을 부를 때 공식 행정동 명칭 대신 현지인들이 부르는 대로 '동'을 뗀 '만덕'이라고 표현했다. 같은 날 그는 전재수 의원과 까르띠에 시계 언급을 두고 신경전을 벌였고, 4월 17일에는 민주당 전재수 부산시장 후보의 까르띠에 시계 수수 의혹을 폭로하며 비판했다. 4월 22일에는 이재명 대표의 '셰셰' 발언을 비판하며 공세를 펼쳤다.

4월 28일 코리아정보리서치 여론조사에서 그는 차기 대선 후보 적합도 12.4%를 기록했다. 지역별로는 서울 10.7%(조국과 동률), 경기·인천 13.6%, 부산·울산·경남 14.4%(장동혁 앞섬), 충청·강원 14.5%(강훈식과 공동 선두)였다. 보수층에서는 21.3%, 중도층에서는 13.5%, 국민의힘 지지층 내에서는 25.5%였다. 4월 30일 KBS 라디오 '전격시사'에 출연한 그는, 부산 북갑 보궐선거 출마를 공식화한 하정우 전 수석비서관이 구포시장에서 "여기를 밀어주라고 대통령이 자기를 보낸 것"이라 말한 것을 두고 "대통령이 지시하면 나간다, 이런 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언행이 이어지고 있다"며 "대통령이 시켜서 나간다는 것은 북갑 시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 발언이 대통령의 선거 개입으로 비화될 수 있는 "굉장히 위험한 말"이라고 지적했다.

5월 7일 그는 선거대책위원장에 국민의힘 당적을 보유한 부산 토박이 정치인 조성호 전 부산시 행정자치국장과 손상용 전 부산시의회 부의장을 직접 영입했다. 그는 친한계 인사들이 부산으로 내려가 돕겠다고 제안했을 때 이를 수용할 수도 있었지만, 혼자 뚜벅이처럼 다니며 1대1로 시민을 만나는 지역밀착형 선거 방식을 위해 거절했다. 5월 9일 그는 여러 스태프를 동원할 수도 있었지만, 유튜브 쇼츠와 인스타그램 릴스에 올릴 홍보 영상 촬영에 집중하기 위해 카메라맨 한 명만을 대동하고 다녔다. 5월 10일에는 상대인 박민식 후보에 비해 조직력에서 불리하다는 현실을 인정하며 이에 맞춘 새로운 선거 전략을 채택했다.

선거 기간 중 그는 지역구 만덕2동의 '백양 디 이스트' 아파트에 전세로 거처를 마련하고 북구에서 두 달 동안 활동하며 시민들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조직력을 앞세운 선거운동을 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힘 센 사람들을 모아 언론에 자랑하는 기존 방식 대신 선거사무소를 북구 주민들로 채웠다. 선거사무소 개소식에서는 지지를 호소하는 대신 주민들에게 먼저 마이크를 건네 이야기를 들었다. 구포시장에서 그는 김보갑 씨가 건넨 찰밥을 가로수 옆에 주저앉아 허겁지겁 먹었다. 선거운동 초반 그는 다운증후군을 앓는 희수 양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희수네 분식'을 찾았다. 그는 희수 양 어머니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희수의 이름을 불러주며 손을 잡아주었고, 당선 시 1호 법안으로 지적장애 아동 지원 제도를 강화하는 '희수법'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토론에서 과거처럼 날카롭게 찌르는 질문을 할 수도 있었지만, 시민들에게 배운 점을 적용해 그런 질문을 일부러 하지 않았다.

4월 4일 그는 국포시장을 처음 방문했고, 당선 이후에도 다시 찾아 상인들과 마음을 나눴다. 지역 연고를 내세운 후보들을 상대로, 그는 결국 42.99%의 득표율로 부산 북구 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됐다. 6월 4일 그는 배우자 진은정 변호사와 함께 선거사무소에서 개표 방송을 지켜봤다. 그는 북구 시민들에게 역사적인 승리로 보수 재건의 길을 열어준 데 감사를 표하며, 승리하거나 살아남는 것을 확신할 수 없었지만 이 무대에서 최선을 다해 분투하는 쪽을 택했다고 말했다. 보수 재건과 대한민국의 균형을 맞추고 민주당과 이재명 정권의 폭주를 제어하는 것이 목숨을 걸고 해볼 만한 일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본인이 앞장서서 눈보라를 맞으며 길을 이끌겠다고 선언하며, 이번 선거 결과를 보수 정당이 현재의 노선대로 가면 미래가 없다는 경고이자 이재명 정권의 폭주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경고로 규정했다. 그는 부당하게 제명됐을 때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했던 약속을 실천한 것이라고 이번 승리를 정의하며, 북구와 부산, 대한민국 국민을 먼저 생각하며 맡겨진 임무를 완수하겠다고 다짐했다.

한동훈 일러스트
한동훈 일러스트
한동훈 일러스트
한동훈 일러스트

한동훈와 비슷한 결정을 한 사람들이 궁금하다면

라이프 내비게이션으로 더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