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주 넥슨 창업주는 레고를 사랑했다. 제주도 NXC 사무실 바닥에도 늘 만들다 만 레고 조각들이 즐비했다. 김정주 창업주는 제이 사장이나 제이제이 사장이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넥슨 창업주 같은 거창한 호칭보단 동네사장형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걸 더 좋아했다. 제이 사장은 레고를 애정한 나머지 레고 거래사이트 브릭링크까지 인수해버렸다. 레고 본사가 제작해주지 않는 레고 조각들을 맞춤 생산해주는 회사였다.
제이 사장한텐 인생도 사업도 레고 퍼즐 같았다. 세상이란 밑그림 위에서 무수한 레고 조각들을 모아서 이리저리 맞춰보다 무엇인가를 창조하는 게 제이 사장의 인생이었다. 사람과 사람 조각을 맞췄다. 기술과 자본 조각을 더했다. 회사와 회사 조각을 합했다. 아무도 뭐가 될지 모르는 무엇인가를 만들어가는 걸 제일 행복해했다.
다만 제이 사장도 알고 있었다. 서로 맞지 않는 조각을 억지로 붙일 수는 없다. 아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조각을 조립할 수도 없다. 인생은 받아들일 줄도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삶은 영원히 풀리지 않는 퍼즐이다. 없는 레고 조각은 브릭링크에서 만들 수 있었다. 없는 세상 조각은 제이 사장도 어찌 할 수 없었다. 김정주는 말했다. "인생은 레고 브릭과 나사와 단추와 돌멩이를 놓고 조립해야 하는 직소 퍼즐 같더라."
김정주는 1994년 서울 역삼동 성지하이츠II 오피스텔 2009호에서 넥슨을 창업했다. 30년 만에 시총 30조원의 글로벌 게임 회사로 성장시켰다. 김정주에겐 넥슨이라는 기업도 무수한 레고 조각들이 우연과 필연으로 조립된 결과였다. 넥슨의 출발점이 된 온라인 게임 〈바람의 나라〉부터가 그랬다. 〈바람의 나라〉는 당대 게임 개발자들의 합작품이다. 시작은 송재경이 했다. 바통을 정상원이 이어받았다. 당대의 천재 코더들이 오다가다 나름대로의 조각들을 더해서 완성했다. 〈바람의 나라〉의 코딩 라인엔 아직도 당시 협동조립의 흔적이 남아 있다. 어딘가엔 제이 사장이 직접 한 프로그래밍도 숨어 있다. 그들은 컴퓨터와 온라인의 시대에 콘텐츠가 필요하다고 공감했다. 필요한 레고 조각은 OS도 오피스도 아니었다. 컴퓨터로 일하기보단 즐길 수 있게 해주는 콘텐츠였다. 게임이었다.
김정주가 있어서 가능했다. 김정주는 당대의 초월적 연결자였다. 넥슨을 통해 김정주는 모두와 전부를 연결해줬다. 송재경과 NC소프트의 김택진은 연결해줬다. 〈리니지〉가 탄생했다. 정상원을 만나 〈바람의 나라〉가 완성됐다. 이승찬과 김진만이 만나자 〈메이플스토리〉가 만들어졌다. 손정의의 비서실에서 데이비드 리를 만나자 〈던전앤파이터〉 인수가 실현됐다. 최승우를 만나서 넥슨 재팬이 만들어졌다. 오웬 마호니와 EA 인수를 꿈꿨고 김택진과는 마지막으로 디즈니를 꿈꿨다. 김정주가 연결한 모두에 우리 전부도 실시간으로 접속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모두와 실시간으로 연결되는 다중접속온라인게임의 시대는 한국의 게임 생태계 속에 이미 김정주라는 초월적 연결자가 존재했기에 도래할 수 있었다.
넥슨을 둘러싼 무수한 이야기 조각들을 조립한 책 《플레이》에서 김정주는 이렇게 말했다. "넥슨은 창업한 이래 많은 사람들의 인생과 함께 해온 회사에요. 그래서 넥슨이 흘러온 이야기는 결코 김정주 혼자만의 이야기일 순 없어요. 함께한 모두의 이야기죠." 제이 사장은 진심으로 넥슨을 모두의 회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진심이 의심받을 때 가장 괴로워했다. 2012년 엔씨소프트의 지분 14.68%를 취득했을 때 그랬다. 2019년 넥슨의 지주회사인 NXC 지분 98.64%를 매각하려고 했을 때도 그랬다. 김정주와 김택진은 EA를 인수해서 한국 게임 산업을 한 단계 도약시켜보자고 의기투합했다. 정작 NC소프트와 넥슨은 서로를 끝까지 믿지 못했다. 절친의 불신 속에서 정작 득을 본 건 제3자 넷마블이었다. 제이 사장은 넥슨이 언제부턴가 정체기에 빠졌다고 걱정이 태산이었다. 넥슨을 도약시키려면 자신보다 더 큰 그릇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NXC 지분 매각은 개인의 넥슨이 아니라 모두의 넥슨이라고 진심으로 믿었기에 가능한 결정이었다. 정작 세상은 매각의 진심보다 매각의 차익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김정주는 게임이 세상의 꿈과 희망이길 원했다. 넥슨의 게임들이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처럼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IP로 인정받기를 원했다. 2013년 제주도에서 문을 연 넥슨컴퓨터박물관은 어린이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2014년 200억원을 들여서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을 건립했다. 2019년에도 대전충남넥슨어린이재활병원 건립에 100억원을 기부했다. 게임을 즐기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넥슨에게 소비자가 아니라 친구들이었다. 김정주는 넥슨이 돈슨이라고 불리는 현실을 무척 속상해했다. 돈슨은 돈만 밝히는 넥슨을 뜻한다. 넥슨의 혁신을 상징하는 부분유료화는 운영을 잘하면 득이지만 과하면 독이 된다. 김정주는 넥슨이 성장하는 기업이 되기를 원했지만 동시에 사랑받는 기업이 되기를 꿈꿨다. 김정주는 넥슨이 받은 사랑만큼 세상에 돌려주고 싶어했다.
"나는 그때도 지금도 늘 길 위에 있었어요." 김정주는 서울과 대전을 오가며 창업을 하던 시간들을 돌이켜보며 이렇게 말했다. 넥슨을 창업하고 나서도 김정주는 회사 바깥 맥도날드에서 직원들을 만났다. 제이 사장은 회사가 사장이 시키는 일을 하는 곳이 아니라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곳이 되기를 원했다. 그래서 김정주는 늘 거기 없었다. 넥슨을 더 자유롭고 분방한 회사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김정주는 노마드였다. 한 곳에 머물기보단 늘 여러 곳으로 쉼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김정주는 넥슨 바깥에서 넥슨을 위한 레고 조각들을 모았다. 뉴욕의 연극 무대에도 스페인의 게임 박람회에도 레고 조각들이 있었다. 김정주는 비즈니스맨이라기보단 차라리 아티스트였다. 매우 재능 있는 바이올리니스트였다. 어쩌면 냉혹한 사업보다 따뜻한 음악이 그의 영혼과 더 맞닿아 있었다.
김정주는 2022년 2월 27일 하와이에서 세상을 떠났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향년 54세였다. 김정주는 넥슨의 창업자이자 한국 게임 산업의 파운딩 파더였다. 두 아이의 아빠이자 한 사람의 남편이었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서로 연결해줬던 큰 사람이었다. 김정주는 정말 많은 퍼즐을 맞췄다. 산업이 됐고 회사가 됐고 게임이 됐고 문화가 됐다. 지금도 우리는 저마다 각자의 퍼즐 조각을 더하고 맞추고 있다. 모든 건 어쩌면 김정주 사장의 입버릇 때문에 가능했다. "놀러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