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브리핑

1950.08.11~2007·1화

스티브 워즈니악

라이프 카운팅

0~2010.04·1화

스티브 워즈니악 : 2026년 11월 7일 업데이트

2026년 11월 07일 토요일

스티브 워즈니악 : 2026년 11월 7일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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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엔지니어인 아버지 프랜시스(제리) 워즈니악의 직장을 주말마다 따라가 작업대에 펼쳐진 전자 부품을 만지며 놀았다.
2
1957년 00월 00일, 7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집 안의 저항기와 트랜지스터가 무엇인지 아버지에게 물었고, 아버지는 수식 대신 이동식 칠판 그림으로 원자와 전자에서 출발해 저항기 원리까지 풀어 주었다.
3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장난이나 농담이 아니면 어떤 경우에도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아버지에게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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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00월 00일, 9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스스로를 '전자공학 꼬마'라 부를 만큼 트랜지스터와 회로 기판에 빠져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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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트랜지스터로 인터컴 장치를 꾸며 이웃 친구 여섯 명의 침실을 서로 연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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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헬리크래프터스의 고급 무선 송수신기 키트를 직접 조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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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아버지와 나란히 아마추어 무선 통신사 자격을 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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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아버지가 받아 보던 전자공학 잡지로 에니악 같은 신형 컴퓨터를 접했고, 불 대수를 스스로 익히며 컴퓨터 구조가 단순하다는 데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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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00월 00일, 13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이진법을 응용해 회로 기판 10장에 트랜지스터 100개, 다이오드 200개, 저항기 200개를 얹은 계산기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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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00월 00일, 13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직접 만든 계산기로 공군이 주최한 지역 경연 대회에 나가 12학년 참가자들을 제치고 1등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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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경 · 18세 무렵, 스티브 워즈니악은 전자 메트로놈과 상표를 뜯어낸 대형 배터리를 테이프로 묶은 가짜 폭탄을 만들어, 문이 열리면 똑딱 소리가 빨라지게 꾸민 뒤 한 학생의 사물함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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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경 · 18세 무렵, 스티브 워즈니악은 교장실로 불려 갔다가 기다리던 경찰에게 넘겨져 소년범 단기 수용 시설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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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경 · 18세 무렵, 스티브 워즈니악은 전기·전자 제품 회사 실베이니아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처음으로 컴퓨터를 다루는 일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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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경 · 18세 무렵, 스티브 워즈니악은 포트란을 독학하고 디지털 이큅먼트 PDP-8 설명서와 최신 마이크로칩 사양서를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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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경 · 18세 무렵, 스티브 워즈니악은 기존 컴퓨터 설계를 최소한의 부품으로 다시 그려 내는 과제를 스스로 정하고, 저녁마다 자기 방에서 전날 도면을 고쳐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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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경 · 18세 무렵, 스티브 워즈니악은 추수감사절 연휴에 휴교 중이던 콜로라도 대학교를 찾아가 공대생의 안내로 연구실과 실험실을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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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경 · 18세 무렵, 스티브 워즈니악은 실제 제품에 쓰인 칩의 절반만으로 컴퓨터를 종이 위에 설계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지만 친구들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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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00월 00일, 18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콜로라도 대학교 진학을 졸랐고, 아버지로부터 학비 부담 때문에 1년만 다닌 뒤 집 근처 디엔자 커뮤니티 칼리지로 옮긴다는 조건으로 허락을 받았다.
19
1969년 00월 00일, 19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콜로라도 대학교에 입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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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00월 00일, 19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학교 프린터가 욕설 문구를 끝없이 찍어 내게 하는 등 장난에 빠져 지내다 두세 과목에서 낙제하고 근신 처분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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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00월 00일, 19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피보나치수열을 계산하는 프로그램을 돌리다 학교 컴퓨터 시간을 지나치게 써 이용료를 청구하겠다는 경고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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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00월 00일, 20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부모에게 사정을 털어놓지 않은 채 디엔자 커뮤니티 칼리지로 학적을 옮겨 일을 수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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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00월 00일, 21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디엔자에서 1년을 보낸 뒤 학업을 쉬고, 자동차 생산 부서에 들어갈 컴퓨터를 만드는 회사에 취직해 돈을 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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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00월 00일, 21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남는 칩을 모아 주겠다는 직장 동료의 제안을 받아들여, 종이에만 그려 두었던 컴퓨터를 홈스테드 고교생 빌 페르난데스의 차고에서 칩을 아껴 가며 실제로 조립했다. 스위치로 넣은 숫자를 곱해 이진수 결과를 표시등으로 보여 주는 이 기계는 크림 소다 컴퓨터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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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00월 00일, 21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빌 페르난데스의 소개로 홈스테드 고교생 스티브 잡스를 만나, 페르난데스 집 앞 인도에 걸터앉아 장난과 전자 설계에 관한 이야기를 오래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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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00월 00일, 21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홈스테드 고교를 이미 졸업한 몸으로 앨런 바움과 함께 잡스의 장난 클럽에 끼어, 졸업생을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세운 손을 그린 대형 침대 시트가 도르래로 펼쳐지는 장치를 만들고 'SWAB JOB'이라는 서명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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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경 · 21세 무렵, 스티브 워즈니악은 잡스에게 밥 딜런의 음악을 소개해 함께 빠져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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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경 · 21세 무렵, 스티브 워즈니악은 잡스와 새너제이·버클리 일대를 돌며 딜런 공연 테이프 복사본을 수소문했고, 딜런 자료를 모조리 갖춘 수집가 스티븐 피커링을 만나러 산타크루스까지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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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경 · 21세 무렵, 스티브 워즈니악은 잡스와 함께 오픈릴 방식의 티악 테이프덱을 장만했고, 저속 모드로 테이프 한 개에 공연 실황을 최대한 길게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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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00월 00일, 21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버클리로 차를 몰고 떠나기 전날 일요일 오후, 어머니가 식탁에 놓아둔 《에스콰이어》 기사를 읽고 그 내용을 들려주려 잡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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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00월 00일, 21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잡스를 차에 태워 일요일이라 문을 닫은 스탠퍼드 선형가속기 연구소 도서관에 들어가, 전화 교환 주파수가 전부 실린 기술 잡지를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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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00월 00일, 21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그날 저녁 서니베일 부품상에서 아날로그 신호 생성기 부품을 사 와, 잡스가 만든 주파수 계수기로 다이얼 음을 재현해 테이프에 녹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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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00월 00일, 21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자정 무렵 발진기가 음을 안정적으로 되풀이하지 못해 시험이 막히자, 디지털 방식을 완성하면 다시 모이기로 잡스와 정하고 이튿날 버클리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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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00월 00일, 21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라디오 섁 부품과 절대 음감을 지닌 음대생의 도움을 받아 추수감사절이 오기 전 첫 디지털 블루 박스를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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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경 · 21세 무렵, 스티브 워즈니악은 잡스의 집에서 디지털 블루 박스로 로스앤젤레스 삼촌 댁에 시험 전화를 걸었고, 번호가 엉뚱하게 연결됐어도 장치는 제대로 작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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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경 · 21세 무렵, 스티브 워즈니악은 헨리 키신저 행세를 하며 바티칸에 교황 연결을 요청했으나 새벽 5시 30분이라 주무신다는 답을 들었고, 다시 걸었을 때도 교황과는 통화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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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경 · 21세 무렵, 스티브 워즈니악은 블루 박스를 만들어 팔자는 잡스의 제안에 동의했고, 전원 장치·키패드·포장 같은 나머지 구성과 가격 결정은 잡스가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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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경 · 21세 무렵, 스티브 워즈니악은 '버클리 블루'라는 별칭을 쓰며 잡스와 함께 기숙사 방을 돌아다녔고, 런던 리츠 호텔 같은 곳에 거는 시범 통화를 보여 주며 블루 박스를 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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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경 · 21세 무렵, 스티브 워즈니악은 서니베일의 한 피자 가게에서 잡스와 블루 박스를 팔려다 구매자가 권총을 들이대자, 150달러를 받지 못한 채 그 자리를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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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경 · 21세 무렵, 스티브 워즈니악은 버클리 기숙사 시청실에서 휴대용 TV 전파 송신기로 화면을 몰래 흐려, 시청자들이 안테나를 붙잡고 한쪽 발을 든 자세를 해야 화면이 돌아온다고 믿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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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경 · 22세 무렵, 스티브 워즈니악은 새 차 살 돈을 벌려던 잡스를 태우고 디엔자 칼리지의 구인 게시판까지 데려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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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00월 00일, 22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아이들을 좋아해 HP에 잠시 휴가를 내고, 잡스·크리스앤 브레넌과 함께 새너제이 웨스트게이트 쇼핑센터에서 시급 3달러를 받으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캐릭터 인형 탈을 쓰고 아이들과 놀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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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00월 00일, 22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리드 대학교에 들어간 잡스를 찾아갔고, 들어야 할 과목이 너무 많다는 잡스의 불평에 대학은 원래 그런 곳이라고 답했다.
44
1975년 00월 00일, 25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HP에 다니며 저녁을 먹고 나면 자주 아타리에 들러 비디오게임을 했고, 그 전부터 집 TV에 연결해 즐기는 퐁을 손수 만들어 두었다.
45
1975년 03월 05일, 24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HP 게시판에서 전단을 본 앨런 바움의 연락을 받고 그와 함께 홈브루 컴퓨터 클럽 첫 모임에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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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03월 05일, 24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첫 모임에서 자신을 비디오게임, 호텔 유료 영화 시스템, 공학용 계산기, TV 단말기 설계를 즐기는 사람으로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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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03월 05일, 24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그 자리에서 본 마이크로프로세서 사양서를 계기로 키보드·모니터 단말기에 마이크로프로세서를 넣으면 독립된 개인용 컴퓨터가 된다는 구상을 얻었고, 그날 밤부터 훗날 애플 I이 될 기계를 종이에 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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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월세보다 비싼 인텔 8080을 포기하고, HP 동료가 개당 40달러에 구해 주겠다던 모토로라 6800을 검토한 끝에 성능은 비슷하고 값은 20달러인 MOS 테크놀로지스 칩을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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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퇴근해 저녁을 먹은 뒤 다시 HP로 돌아가 부품 배치를 궁리하며 마더보드에 납땜했고, 시분할 컴퓨터 이용료를 낼 형편이 안 돼 화면 표시용 코드를 손으로 종이에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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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06월 29일, 24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몇 달 동안 만든 컴퓨터를 처음 시험 가동해 키보드로 친 글자가 화면에 곧바로 나타나게 하는 데 성공했다.
51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첫 가동 소식에 들뜬 잡스가 인텔에 전화를 걸어 D램 칩 몇 개를 무료로 얻어 오면서 부품 조달에 도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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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홈브루 모임에 자신의 기계를 가져가 모여드는 회원들에게 설명했고, 함께 다니기 시작한 잡스는 모니터 운반과 장비 설치를 거들었다.
53
1975년 08월 00일, 25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나흘 안에 칩을 최소한으로 써서 아타리 게임을 만들고 보수를 반씩 나누자는 잡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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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08월 00일, 25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낮에는 HP에서 일하며 설계를 스케치하고 밤에는 아타리에서 작업하는 생활을 사흘 밤 이어 간 끝에 칩 45개만으로 브레이크아웃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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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08월 00일, 25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브레이크아웃 대가로 잡스에게서 기본 수고비의 절반만 받았고, 칩을 줄인 데 대해 부시넬이 지급한 보너스는 나눠 받지 못했다고 관련자 대부분이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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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경 · 25세 무렵, 스티브 워즈니악은 홈브루의 나눔 정신에 따라 애플 I 설계도 사본을 무료로 나눠 주다가 잡스의 설득을 받아 배포를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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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00월 00일, 25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인쇄 회로 기판을 찍어 팔자는 잡스의 제안을 받고, 손해를 보더라도 생애 첫 회사를 갖게 된다는 설득에 함께 사업을 벌이기로 했다.
58
1976년 00월 00일, 25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초기 자금을 마련하려 HP65 계산기를 500달러에 내놓았지만 구매자에게서 절반만 받았다. 잡스와 모은 초기 자금은 약 1300달러였다.
59
1976년 00월 00일, 25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올 원 팜에서 돌아오는 잡스를 공항에서 태워 로스앨터스로 오는 길에 회사 이름을 함께 궁리했고, 잡스가 내놓은 '애플 컴퓨터'가 이름으로 굳어졌다.
60
1976년 00월 00일, 25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HP를 떠날 마음이 없던 상태에서 잡스가 끌어들인 론 웨인의 아파트에서 세 사람이 두 시간 동안 논의한 끝에 자신의 설계 소유권을 회사에 넘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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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00월 00일, 25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새 컴퓨터를 애플 자산으로 삼기로 한 뒤에도 소속 회사 HP의 상사와 경영진에게 먼저 설계를 선보였다. HP는 취미용 기계라 자사 시장에 맞지 않는다며 상품화를 거절했다.
62
1976년 04월 01일, 25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마운틴뷰의 론 웨인 아파트에서 잡스·웨인과 합자 사업 계약서에 서명하고 전자공학 총괄을 맡았다. 지분과 이익은 잡스와 워즈니악이 45퍼센트씩, 웨인이 10퍼센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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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계약 직후 잡스와 함께 홈브루 컴퓨터 클럽에 회로 기판을 들고 가, 마이크로프로세서와 8킬로바이트 메모리, 직접 짠 베이식, 스위치 패널 대신 쓰는 키보드를 내세워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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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HP에서 일하던 중 바이트 숍의 폴 테럴과 납품 계약을 맺었다는 잡스의 전화를 받았다. 테럴이 주문한 것은 완전 조립된 컴퓨터 50대였다.
65
1976년 04월 12일, 25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계약 11일 만에 파트너 자격을 내려놓겠다는 론 웨인의 사퇴서와 수정 계약서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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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주문 물량을 맞출 부품비 1만 5000달러 가운데 5000달러를 앨런 바움과 그의 아버지에게서 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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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잡스·대니얼 콧키·엘리자베스 홈스·패티 잡스와 함께 기판을 만들었고, 완성된 기판을 TV와 키보드에 연결해 시험한 뒤 작동하지 않으면 잘못 꽂힌 핀을 찾아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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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다음 컴퓨터 구상에 들어가면서 첫 모델에 '애플 I'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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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잡스와 함께 카미노레알 일대 상점을 돌며 애플 I 판로를 찾았고, 소매점에 넣을 100대를 추가로 만들었다.
70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애플 I을 원가 수준에 팔자고 했으나 큰 이윤을 남기자는 잡스의 주장에 밀렸다.
71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반복되는 숫자를 좋아해 가격에 666을 넣었다가, 그 숫자가 요한계시록의 '짐승의 표'라 불길하다는 도매상의 불평을 들었다.
72
1976년 09월 00일, 26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노동절 연휴를 앞두고 애플 I과 개발 중인 애플 II 시제품을 상자에 담아 잡스와 함께 필라델피아행 비행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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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09월 00일, 26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PC 축제 기간 대부분을 호텔 방에서 애플 II 시제품을 다듬으며 보냈고, 전시장 뒤편의 애플 부스에는 나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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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09월 00일, 26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늦은 밤 잡스와 시제품을 호텔 회의실로 가져가, 칩으로 색을 만들어 내는 자신의 방식을 컬러 TV와 프로젝터식 대형 화면에서 시험했고 키보드 입력대로 컬러 글자와 이미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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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자금난 속에 제품 권리를 큰 기업에 넘기는 방안을 찾던 중, 차고를 찾아온 코모도어의 척 페들 앞 설명회에서 잡스가 인수가로 20만~30만 달러를 요구하는 자리에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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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수익 대부분이 아들 몫이어야 한다는 아버지 제리 워즈니악의 생각과 달리, 50 대 50이 싫으면 다 가지라는 잡스의 말을 듣고도 동업 관계를 이어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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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애플 II 기판에 확장 슬롯 8개를 넣자고 주장해, 프린터와 모뎀용 2개면 충분하다는 잡스와 맞선 끝에 뜻을 관철했다.
78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차고를 찾아온 마이크 마쿨라에게 애플 II를 직접 시연했다.
79
1977년 00월 00일, 26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애플을 주식회사로 바꾸고 마쿨라·잡스와 26퍼센트씩 지분을 나누기로 합의한 뒤, 마쿨라 집 수영장 오두막에서 계약서에 서명했다.
80
1977년 00월 00일, 26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HP에 다니며 애플 일을 병행하겠다고 했다가 며칠 안에 하나를 고르라는 마쿨라의 요구를 받자, 관리자가 되는 것이 불안해 HP에 남겠다고 선언했다.
81
1977년 00월 00일, 26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잡스와 아버지, 가족과 친구들의 잇단 설득 전화를 받았고, 정식 직원이 돼도 엔지니어로 남을 수 있다는 앨런 바움의 말에 마음을 돌렸다.
82
1977년 00월 00일, 26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잡스에게 전화해 HP를 그만두고 애플 일에 전념하겠다고 알렸다.
83
1977년 01월 03일, 26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잡스·마쿨라와 함께 애플 컴퓨터 주식회사를 공식 출범시켰다. 출범 당시 회사 가치는 5309달러였다.
84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레지스 매케나와 면담하던 중 자신의 잡지 기고문을 손보자는 제안을 광고인이 원고에 손대는 게 싫다며 거절했다. 매케나는 그 자리에서 두 사람을 내보냈다.
85
1977년 04월 00일, 26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서부 연안 컴퓨터 박람회를 앞두고 마쿨라가 보낸 샌프란시스코 재단사에게서 잡스와 함께 양복을 맞췄고, 옷차림과 처신에 관한 세세한 조언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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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04월 00일, 26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애플 II가 처음 공개된 제1회 서부 연안 컴퓨터 박람회에서 성을 보고 국적을 맞히며 농담을 띄우는 프로그램을 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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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04월 00일, 26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박람회장에 가상의 컴퓨터 '잘테어(Zaltair)'를 홍보하는 가짜 팸플릿을 만들어 뿌렸다. 잡스도 이 장난에 속았다.
88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갈등 조정에 지쳐 마이크 스콧의 영입에 흔쾌히 찬성했고, 스콧으로부터 직원 번호 1번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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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00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주식 공개를 앞두고 자기 주식 2000주를 중간급 직원 40명에게 아주 싼값에 넘겼다.
90
1980년 00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대니얼 콧키, 빌 페르난데스, 랜디 위긴턴, 크리스 에스피노사 등 몫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여긴 초기 동료들에게 자기 지분을 대가 없이 나눠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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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00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아내와 함께 살 집을 장만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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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00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잡스로부터 매킨토시 팀에 합류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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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02월 07일, 30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산타크루스 인근에서 직접 몰던 단발 엔진 비치크래프트기가 이륙 중 사고를 내 가까스로 살아남았으나 일시적 기억상실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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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입원해 있는 동안 병실을 자주 찾은 잡스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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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퇴원한 뒤 애플을 떠나기로 했고, 버클리를 중퇴한 지 10년 만에 '로키 라쿤 클라크'라는 이름으로 다시 입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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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01월 00일, 33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맥 팀 사무실에서 잡스가 보여 준 매킨토시 광고를 본 뒤, 이사회가 슈퍼볼 중계 방영을 취소했다는 말에 80만 달러인 광고 시간 비용의 절반을 자신이 내겠다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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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경 · 35세 무렵, 스티브 워즈니악은 아타리 역사를 다룬 책 『잽』에 실린 내용을 통해, 브레이크아웃 개발 때 잡스가 보너스를 따로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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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경 · 35세 무렵, 스티브 워즈니악은 잡스로부터 그런 일을 한 기억이 없다며 보너스 건을 부인하는 전화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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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02월 00일, 34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애플 II 부문 엔지니어로 일하던 애플을 떠나, 버튼 몇 개로 TV·스테레오 등 여러 전자 기기를 한꺼번에 다루는 만능 리모컨을 만들 새 회사를 세우기로 했다.
100
1985년 02월 00일, 34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애플 II 팀이 가장 잘 팔리는 제품을 만들고도 홀대받는다고 보고, 스컬리에게 전화해 잡스가 매킨토시 부문에만 매달린다고 항의했다.
101
1985년 02월 00일, 34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퇴사 사실을 애플 II 부문 책임자에게만 알리고 잡스와 마쿨라에게는 직접 전하지 않았다.
102
1985년 02월 00일, 34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월스트리트 저널》 기자에게 애플이 애플 II 부문을 소홀히 대했고 지난 5년 동안 크게 잘못된 길을 걸었다고 말했다.
103
1985년 02월 00일, 34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애플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정리하려 연봉 2만 달러를 받는 파트타임 직원으로 남아 행사와 박람회에서 회사를 대표하기로 했다.
104
1985년 02월 00일, 34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1977년 박람회 때 뿌렸던 가짜 컴퓨터 '잘테어' 팸플릿을 액자에 넣어 잡스의 생일 선물로 건넸다.
105
1985년 02월 19일, 34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백악관에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으로부터 잡스와 함께 최초의 국가 기술 훈장을 받았다.
106
1985년 02월 19일, 34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시상식을 마친 뒤 잡스와 산책하고 샌드위치 가게에서 끼니를 함께하며, 서로의 입장 차이는 화제로 꺼내지 않았다.
107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잡스가 디자인 회사 프로그디자인과 애플의 계약 조항을 근거로 자신의 리모컨 작업을 막자, 연락해 온 《월스트리트 저널》에 잡스가 애플 비판 발언에 앙갚음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108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다른 디자인 회사를 구한 뒤에도 애플의 대변인 역할은 계속 맡기로 했다.
109
1985년 09월 00일, 35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잡스의 언론 공세에 대응하려던 스컬리로부터 공개적으로 의견을 밝혀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110
1985년 09월 00일, 35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그 주 《타임》 인터뷰에서 잡스가 대단히 무례하고 남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111
1985년 09월 00일, 35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새 회사 합류를 권하려던 잡스의 연락에 답하지 않았다.
112
1985년 09월 00일, 35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인터뷰에서 잡스가 프로그디자인의 리모컨 디자인 작업을 가로막았다고 밝히며, 그의 새 회사가 잘되길 바라지만 정직성은 믿지 못한다고 말했다.
113
1997년 01월 07일, 46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맥월드 엑스포에서 길 아멜리오의 깜짝 호출을 받고 무대에 올라 잡스와 나란히 섰다.
114
1997년 07월 00일, 46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애플 비공식 고문으로서 잡스의 복귀를 크게 반기며, 그가 회사에 생기를 되살릴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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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7월경 · 46세 무렵, 스티브 워즈니악은 《와이어드》에 아멜리오가 잡스를 만난 순간 승부는 이미 끝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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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05월 00일, 47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아이맥 발표회에 마쿨라·스콧과 함께 초대됐고, 부모님 차고에서 함께 회사를 시작한 사람이라며 객석의 자신을 가리킨 잡스의 소개로 박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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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경 · 51세 무렵, 스티브 워즈니악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한데 묶는 통합 방식에 오래 회의적이었으나, 아이팟을 본 뒤 그 결합의 힘을 인정하는 쪽으로 생각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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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1월 00일, 56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샌프란시스코 맥월드에서 아이폰을 공개한 잡스의 초청을 받아 앤디 허츠펠드·빌 앳킨슨 등 1984년 매킨토시 팀 멤버들과 함께 자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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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0월 00일, 60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애플 제품 출시 행사에 참석해, 아버지에게서 중용을 배운 덕에 상류층에 오를 욕심이 없었고 엔지니어가 꿈이었으며 수줍음이 많아 기업 지도자는 상상도 못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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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4월 00일, 59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아이패드 출시 날 세그웨이를 타고 새너제이 밸리 페어 몰의 애플 스토어에 나가 개장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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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4월 00일, 59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애플 생태계가 닫혀 있다는 기자의 지적에, 사람들을 울타리 안에 두는 대신 얻는 이점이 있고 컴퓨터광인 자신은 개방형이 좋지만 대다수는 쉬운 쪽을 원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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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4월 00일, 59세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잡스의 천재성은 모든 것을 단순하게 만드는 법과 그러려면 때로 전부를 통제해야 한다는 점을 아는 데 있다고 말했다.

스티브 워즈니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