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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 2026년 11월 7일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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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 2026년 11월 7일 업데이트

2026년 11월 07일 토요일

스티브 잡스 : 2026년 11월 7일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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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00월 00일, 0세 때, 스티브 잡스의 양부모 폴 잡스와 클래라 잡스는 입양한 아들을 반드시 대학에 보내겠다고 약속했고, 이를 위해 일하며 저축을 이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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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00월 00일, 5세 때, 스티브 잡스는 가족과 함께 마운틴뷰로 옮겨 왔고, 처음에는 살구와 자두 과수원이 곳곳에 있던 동네에 곧 방위산업 붐이 이는 것을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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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경 · 5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어머니 클래라 잡스에게서 글 읽기를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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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맞벌이하던 부모가 집을 비운 방과 후 시간에 이웃 웨스팅하우스 엔지니어의 여자 친구에게 가끔 돌봄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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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버지 폴 잡스를 따라 에임스 연구소에 갔다가 생애 처음 컴퓨터 단말기를 보고 마음을 빼앗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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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한 집 건너 살던 HP 엔지니어이자 아마추어 무선 애호가 래리 랭에게서 전자 부품을 얻어 가지고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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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앰프 없이는 마이크가 소리를 키울 수 없다던 아버지에게, 래리 랭이 진입로에 꾸며 둔 탄소 마이크로폰과 스피커 장치를 직접 보여 주며 반박했다. 아버지라고 해서 다 아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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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탄소 마이크로폰 일 이후 자신이 부모보다 영리하다는 사실을 자각했고, 그런 생각에 깊은 죄책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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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부모 폴 잡스와 클래라 잡스로부터 특별한 아이로 대우받았고, 부모는 그를 더 나은 학교에 보내려고 희생을 감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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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경 · 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집에서 네 블록 떨어진 몬타로마 초등학교에 다니며 첫 몇 년 동안 수업에 흥미를 붙이지 못해 장난에 열중했고, 학교의 권위에도 좀처럼 따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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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경 · 7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친구 릭 페렌티노와 반려동물을 학교에 데려오라는 거짓 안내문을 내걸어 교실을 개와 고양이 천지로 만들었고, 아이들의 자전거 자물쇠 번호를 모조리 바꿔 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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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00월 00일, 8세 때, 스티브 잡스는 3학년 때 담임 서먼 선생의 의자 밑에서 폭음탄을 터뜨리는 등 말썽을 거듭해, 그 학년이 끝나기 전 두세 차례 귀가 조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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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00월 00일, 8세 때, 스티브 잡스는 학교 말썽으로 아버지에게 벌을 받은 적이 없었고, 오히려 폴 잡스는 아이가 흥미를 잃으면 교사의 책임이라며 학교에 아들을 각별히 대해 달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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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00월 00일, 9세 때, 스티브 잡스는 4학년에 올라가며 릭 페렌티노와 다른 반으로 갈렸고, 우등반 담임 이모진 힐의 반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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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00월 00일, 9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이모진 힐 선생이 수학 문제 묶음을 대부분 풀면 5달러와 대형 막대사탕을 상으로 걸자 이틀 만에 풀어 냈고, 몇 달 뒤에는 보상 없이도 스스로 배우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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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00월 00일, 9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이모진 힐 선생에게서 렌즈를 연마해 카메라를 만드는 조립 키트를 선물로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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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00월 00일, 9세 때, 스티브 잡스는 하와이 데이에 하와이안 셔츠를 챙겨 오지 못하자 친구를 구슬려 그 아이의 셔츠를 빌려 입고 반 단체 사진 앞줄 한가운데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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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00월 00일, 10세 때, 스티브 잡스는 4학년 말 이모진 힐 선생의 주선으로 치른 시험에서 고등학교 2학년 수준의 학업 능력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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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00월 00일, 1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두 학년을 건너뛰게 하자는 학교의 권고를 부모가 한 학년으로 줄이면서 6학년으로 바로 진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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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00월 00일, 10세 때, 스티브 잡스는 6학년을 크리텐든 학교에서 다니며 나이 많은 아이들 사이에서 어울리지 못한 채 외톨이로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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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00월 00일, 12세 때, 스티브 잡스는 7학년 중반 잦은 괴롭힘을 견디지 못해, 크리텐든에 남아야 한다면 아예 학교에 다니지 않겠다고 버티며 부모에게 전학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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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00월 00일, 12세 때, 스티브 잡스는 형편이 빠듯했던 부모가 모아 둔 돈을 모두 털어 2만 1000달러에 좋은 학군의 집을 사면서 새 동네로 이사했고, 그 집 차고에서 전자 기기를 만지며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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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00월 00일, 1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새 동네 모퉁이 과수원 이웃에게 채소를 유기농으로 기르는 법과 거름 만드는 법을 익혔고, 그 이웃이 키운 작물을 맛본 뒤 유기농 과일과 채소를 즐겨 먹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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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종교 교육을 원한 부모를 따라 일요일마다 루터교 교회에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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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00월 00일, 13세 때, 스티브 잡스는 굶주린 비아프라 아이들이 실린 잡지 표지를 들고 주일학교 목사를 찾아가 하나님이 이 아이들의 운명까지 다 아시느냐고 물었고, 그렇다는 답을 듣자 그런 신을 섬기지 않겠다며 다시는 교회에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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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레이저 부품을 다루는 아버지의 정밀한 작업에 매료됐지만, 관심이 전자공학 쪽으로 기울어 아버지의 작업장에는 좀처럼 발을 들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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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어느 여름 아버지와 함께 위스콘신의 친척 낙농장을 찾아가 갓 태어난 송아지가 몇 분 만에 일어나 걷는 모습에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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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00월 00일, 13세 때, 스티브 잡스는 9학년이 되면서 학생 2000명 규모의 홈스테드 고등학교에 진학해 매일 열다섯 블록을 혼자 걸어 등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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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00월 00일, 13세 때, 스티브 잡스는 동갑 친구는 적었지만 반문화 운동에 빠진 12학년 선배들과 어울리며 수학·과학·전자공학에 대한 관심을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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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경 · 13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10대 여름방학에 HP에서 일하면서 짜임새 있는 기업이 한 개인보다 더 큰 혁신을 이뤄 낼 수 있다는 점을 체득했다.
31
1969년경 · 14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집 안 곳곳에 스피커를 달고 자기 방 벽장에 다른 방 소리를 듣는 통제실을 꾸몄다가, 부모 침실을 엿듣던 중 아버지에게 들켜 장치를 모두 철거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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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경 · 14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저녁마다 래리 랭의 차고를 드나들며 그의 권유로 히스 키트 조립 세트를 접했고, 라디오 한두 대를 완성한 뒤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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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경 · 14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래리 랭의 주선으로 화요일 저녁 HP 구내식당에서 열리는 HP 탐구자 클럽에 합류해 엔지니어들의 연구 발표를 들었고, 그곳에서 HP의 첫 데스크톱 컴퓨터 9100A를 보고 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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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경 · 14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클럽 모임이 끝난 어느 저녁 레이저를 다루는 HP 엔지니어를 졸라 홀로그래피 연구실을 구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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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00월 00일, 15세 때, 스티브 잡스는 클럽 개인 과제로 주파수 계수기를 만들다 부품이 필요해지자 전화번호부에서 빌 휼렛의 집 번호를 찾아 직접 20분간 통화했고, 휼렛에게서 부품과 함께 HP 공장 일자리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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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00월 00일, 15세 때, 스티브 잡스는 홈스테드 1학년 과정을 끝낸 여름에 HP 공장 조립라인에서 너트와 볼트를 끼우는 일을 했고, 출퇴근은 아버지가 차로 맡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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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00월 00일, 15세 때, 스티브 잡스는 HP 위층 엔지니어들과 가까워져 매일 오전 10시 도넛과 커피 시간에 그들과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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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경 · 15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신문 배달 일을 했고, 비 오는 날이면 아버지가 차를 몰고 배달 경로를 같이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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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00월 00일, 1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열다섯 살 때 아버지가 MG 엔진을 얹어 손봐 준 투톤 내시 메트로폴리탄으로 첫 자가용을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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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00월 00일, 15세 때, 스티브 잡스는 고교 1·2학년 사이 여름부터 마리화나를 피웠고, 이를 알게 된 아버지 폴 잡스가 끊겠다는 약속을 요구했으나 응하지 않아 부자 사이에 보기 드문 큰 다툼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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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00월 00일, 1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존 맥콜럼의 전자공학 수업을 들었으나, 규율과 권위를 중시한 맥콜럼과 달리 권위에 대한 반감을 숨기지 않았고 교실 구석에서 혼자 작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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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00월 00일, 15세 때, 스티브 잡스는 학교에 없는 부품이 필요하자 디트로이트에 있는 버로스로 상대방 부담 전화를 걸어 새 제품을 개발한다고 둘러대고 견본 부품을 청했고, 며칠 뒤 항공 화물로 받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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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00월 00일, 15세 때, 스티브 잡스는 부품을 구한 경위를 따지는 맥콜럼에게 수신자 부담 통화와 거짓 설명을 숨기지 않고 밝히며, 자신은 전화비가 없지만 회사는 돈이 넘친다고 응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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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00월 00일, 15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맥콜럼의 3년짜리 전자공학 과정 가운데 1년만 수강했고, 그동안 빛이 닿으면 회로가 작동하는 광전지 장치를 과제물로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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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경 · 15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스테레오 스피커에 거울을 붙여 레이저 빛을 튕기게 하는 방식으로 친구들과 파티용 음악 조명 쇼를 꾸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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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경 · 15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워즈니악의 남동생과 같은 수영 팀에서 활동한 사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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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00월 00일, 16세 때, 스티브 잡스는 빌 페르난데스의 소개로 그의 집 차고에서 다섯 살 위인 홈스테드 졸업생 스티브 워즈니악을 만났고, 페르난데스의 집 앞 보도에 함께 앉아 짓궂은 장난과 회로 설계를 두고 긴 대화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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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경 · 1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워즈니악의 영향으로 밥 딜런에 빠졌고, 둘이서 산타크루스의 딜런 자료 수집가 스티븐 피커링을 찾아가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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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경 · 1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워즈니악과 새너제이·버클리를 돌며 딜런 공연 해적판 테이프를 수소문해, 1965·1966년 투어를 포함한 100시간 넘는 녹음을 모았다.
50
1971년경 · 1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워즈니악과 고급 티악 오픈릴 테이프덱을 장만했고, 묵직한 헤드폰을 쓰고 침대에 누워 몇 시간씩 딜런 테이프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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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00월 00일, 16세 때, 스티브 잡스는 고등학교 2학년 시절 주말과 여름방학에 전자 부품 상점 할테크에서 재고 정리 일을 했고, 벼룩시장에서 사들인 중고 회로 기판의 칩과 부품을 할테크 매니저에게 되팔아 차익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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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00월 00일, 1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빨간색 피아트 850 쿠페, 그것도 아바트 엔진이 얹힌 차를 사서 첫 차를 바꿨고, 아버지가 구입과 점검을 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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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00월 00일, 16세 때, 스티브 잡스는 고교 시절 《더 홀 어스 카탈로그》의 열성 독자가 됐고, 1971년에 나온 최종판 뒤표지의 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문구를 오래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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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00월 00일, 1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전자공학에서 문학과 창작으로 관심을 넓혀 셰익스피어와 플라톤을 읽기 시작했고, 『리어 왕』과 『모비 딕』, 딜런 토머스의 시를 특히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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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경 · 1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대학 과목 선이수 영어 수업을 들으며 담당 교사를 따라 요세미티에서 스노슈잉을 체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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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00월 00일, 16세 때, 스티브 잡스는 홈스테드에서 음악 조명 쇼와 장난을 기획하는 모임을 만들고, 교장의 이름을 비틀어 벅 프라이 클럽이라 이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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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00월 00일, 1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졸업하는 선배들을 놀리려고 워즈니악·앨런 바움과 함께 학교 상징색으로 염색한 대형 시트에 가운뎃손가락을 세운 손을 그려, 졸업생이 지날 때 발코니에서 펼쳐지도록 도르래를 설치하고 그림 한쪽에 SWAB JOB이라고 서명했다.
58
1971년 00월 00일, 16세 때, 스티브 잡스는 걸개그림 장난이 학교에 알려지면서 또 한 번 정학 처분을 받았다.
59
1971년 00월 00일, 16세 때, 스티브 잡스는 고교 3학년에 올라가던 가을 어느 일요일, 장거리 전화망 신호음을 다룬 잡지 기사 이야기를 워즈니악에게서 전화로 듣고 함께 SLAC 도서관에 들어가 주파수가 담긴 기술 잡지를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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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00월 00일, 16세 때, 스티브 잡스는 탐구자 클럽 시절 만든 주파수 계수기로 워즈니악과 신호음을 측정해 테이프에 복제했지만, 발진기가 소리를 고르게 내지 못해 첫 시험은 실패로 끝났다.
61
1971년 00월 00일, 1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워즈니악이 디지털 방식으로 완성한 블루 박스를 자기 집에서 함께 시험했고, 잘못 걸린 통화 상대에게 캘리포니아에서 블루 박스로 걸고 있다고 끼어들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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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00월 00일, 1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워즈니악과 블루 박스로 바티칸에 장난 전화를 걸었으나 교황과는 끝내 연결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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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00월 00일, 16세 때, 스티브 잡스는 블루 박스를 만들어 팔자고 워즈니악에게 제안했고, 전원부·키패드·포장 구성을 마무리한 뒤 부품비 약 40달러짜리 장치의 판매가를 150달러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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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경 · 1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블루 박스 판매에 나서며 프리커식 별칭으로 오프 토바크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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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경 · 1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버클리 기숙사 방을 돌며 런던 리츠 호텔 등에 공짜로 전화를 거는 시범을 보이는 방식으로 블루 박스를 팔았고, 100개쯤 만든 물량을 거의 다 처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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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경 · 1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밥 딜런의 미발매 녹음을 수소문해 오픈릴 테이프에 옮겨 담았고, 이 녹음들을 들으며 딜런을 숭배하게 됐다.
67
1972년경 · 17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서니베일의 피자 가게에서 블루 박스를 사겠다던 남자에게 권총으로 위협당해 장치를 넘겨줬고, 겁이 나 워즈니악과 함께 대금 150달러를 포기한 채 그를 다시 만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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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00월 00일, 17세 때, 스티브 잡스는 홈스테드 고등학교 마지막 학기에 만화영화 작업을 하다 알게 된 한 학년 아래 크리스앤 브레넌과 사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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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00월 00일, 17세 때, 스티브 잡스는 과일과 채소만 먹는 식단 실험을 시작했다.
70
1972년 00월 00일, 17세 때, 스티브 잡스는 홈스테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아버지의 강한 반대를 뿌리치고 집을 나와, 크리스앤 브레넌과 로스앨터스 인근 산자락의 오두막에서 함께 살기 시작했다.
71
1972년 00월 00일, 17세 때, 스티브 잡스는 오두막에서 그림을 그리는 브레넌 곁에서 시를 쓰거나 기타를 쳤고, 그녀가 그려 준 어릿광대 그림을 벽에 걸었다.
72
1972년 00월 00일, 17세 때, 스티브 잡스는 홈스테드 동창 팀 브라운을 태우고 산타크루스 산맥의 스카이라인 대로를 주행하던 중 피아트 엔진에서 불이 나 갓길에 차를 댔고, 다투고 집을 나온 처지였지만 아버지 폴 잡스가 달려와 차를 집까지 끌어다 주었다.
73
1972년 00월 00일, 17세 때, 스티브 잡스는 새 차 살 돈을 벌려고 워즈니악·브레넌과 함께 시급 3달러를 받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캐릭터 인형 탈을 쓰는 일을 했지만, 덥고 무거운 옷 때문에 짜증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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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00월 00일, 17세 때, 스티브 잡스는 대학에 가지 않겠다던 생각을 접은 뒤에도 버클리 같은 주립대와 장학금 가능성이 있던 스탠퍼드는 제쳐 두고, 오리건 주 포틀랜드의 리드 대학교에만 가겠다고 고집했다.
75
1972년 00월 00일, 17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버지에게서 전화로 리드 대학교 합격 소식을 들었고, 학비가 감당하기 어렵다며 만류하는 부모에게 리드가 아니면 대학에 가지 않겠다고 맞서 결국 허락을 받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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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00월 00일, 17세 때, 스티브 잡스는 리드 대학교에 입학하며 부모의 차로 포틀랜드에 도착했지만, 부모가 캠퍼스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작별 인사도 감사 인사도 없이 헤어졌다.
77
1972년 00월 00일, 17세 때, 스티브 잡스는 리드에서 람 다스의 『지금 이곳에 존재하라』를 비롯해 영성과 깨달음을 다룬 책들에 몰두했다.
78
1972년 00월 00일, 17세 때, 스티브 잡스는 입학 첫 주에 같은 신입생 대니얼 콧키와 친해져 선과 밥 딜런에 대한 관심을 함께 나눴다.
79
1972년 00월 00일, 17세 때, 스티브 잡스는 콧키와 그의 여자 친구 엘리자베스 홈스와 어울리는 시간이 늘었고, 셋이서 히치하이킹으로 태평양 연안을 여행했다.
80
1972년경 · 17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콧키·홈스와 함께 기숙사의 감수성 훈련 모임과 인근 하레 크리슈나교 사원의 종교 행사에 나갔다.
81
1972년경 · 17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공짜 채식을 얻으려 선 센터를 드나들면서도 선을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선심초심』, 『어느 요가 수행자의 자서전』, 『우주 의식』, 『마음 공부』 등을 탐독해 콧키에게 권했다.
82
1972년경 · 17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홈스의 방 위 다락에 인도 그림과 깔개, 양초, 향, 방석을 들여 친구들과 명상실을 꾸미고 주로 명상을 했다.
83
1972년경 · 17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콧키와 서로의 판을 보지 않고 중재자의 판정에 따라 두는 독일식 체스 크리그스필을 즐겼다.
84
1972년 00월 00일, 17세 때, 스티브 잡스는 1학년 시절 채식의 이로움을 내세운 라페의 『작은 지구를 위한 식습관』에 영향을 받아 고기를 평생 먹지 않기로 했고, 콧키와 함께 엄격한 채식주의자가 됐다.
85
1972년 00월 00일, 17세 때, 스티브 잡스는 리드에 찾아온 워즈니악에게 시간표를 흔들어 보이며 이 과목을 전부 들어야 하느냐고 불평했다.
86
1972년 00월 00일, 17세 때, 스티브 잡스는 필수과목 이수를 거부하고 댄스 수업처럼 원하는 수업만 듣다가 첫 학기를 끝으로 등록금 납부를 멈추고 리드 대학교를 자퇴했다. 노동자였던 부모가 모은 돈이 의미 없어 보이는 수업료로 나가는 것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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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00월 00일, 17세 때, 스티브 잡스는 학생과장 잭 더드먼의 허락을 받아 등록금을 내지 않고도 수업을 청강하며 기숙사 친구들과 지냈다.
88
1973년경 · 18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당근과 대추, 아몬드를 자루째 사다가 믹서로 갈아 주스와 샐러드로 먹었다고 콧키는 기억했다.
89
1973년경 · 18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아르놀트 에렛의 디톡스 식이 이론에 빠져 시리얼·빵·곡물·우유까지 끊었고, 당근이나 사과만으로 몇 주를 버티는 극단적인 식단을 이어 갔다.
90
1973년경 · 18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콧키와 일주일 동안 사과 말고는 아무것도 먹지 않은 뒤 더 엄격한 단식에 들어갔고, 이틀로 시작한 단식을 일주일 넘게 늘리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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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경 · 18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자퇴 뒤 흥미로운 수업만 골라 청강하다 캠퍼스 포스터의 글씨에 끌려 캘리그래피 수업을 들었고, 세리프와 산세리프 서체, 글자 간격 조정, 조판 원리를 익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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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00월 00일, 18세 때, 스티브 잡스는 리드 주변에서 거의 맨발로 지내며 월세 20달러짜리 난방 없는 차고 방에서 오리털 재킷으로 추위를 견뎠고, 빈 병 보증금을 모아 푼돈을 마련했다.
93
1973년 00월 00일, 18세 때, 스티브 잡스는 돈이 필요할 때면 동물 행동 실험 장비를 갖춘 리드 심리학과 연구실에서 전자 장비 관련 일감을 맡았다.
94
1973년 00월 00일, 18세 때, 스티브 잡스는 까다로운 식단을 맞춰 음식을 만들어 주는 엘리자베스 홈스의 도움을 받았다.
95
1973년 00월 00일, 18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일요일 저녁이면 걸어서 하레 크리슈나교 사원에 가 공짜 식사를 했다.
96
1973년 00월 00일, 18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이따금 찾아오는 크리스앤 브레넌과 기복이 심한 관계를 이어 갔다.
97
1973년경 · 18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돈을 마련하려고 IBM 셀렉트릭 타자기를 팔러 갔다가 그 구매자인 학생 로버트 프리들랜드를 알게 됐다.
98
1973년 00월 00일, 18세 때, 스티브 잡스는 캠퍼스 밖 차고 위 방에 살던 프리들랜드를 오후마다 찾아가 깨달음이 실재하며 도달할 수 있다는 그의 확신에 빠져들었다.
99
1973년 00월 00일, 18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일요일 저녁마다 프리들랜드와 포틀랜드 서부 외곽에 있는 하레 크리슈나 사원을 찾았고, 때로 콧키와 홈스를 데려가 노래와 춤 뒤에 채식 저녁을 얻어먹었다.
100
1973년 00월 00일, 18세 때, 스티브 잡스는 주말마다 콧키·홈스 등과 프리들랜드가 운영하던 공동체 농장 올 원 팜에 머물며 그레그 칼훈과 함께 사과나무 가지치기를 맡았다.
101
1973년 00월 00일, 18세 때, 스티브 잡스는 올 원 팜 공동체가 점점 물질주의로 흘러 모두가 프리들랜드의 농장을 위해 고되게 일한다고 느꼈고, 프리들랜드의 교주 같은 행태에 거리를 두며 환멸을 품게 됐다.
102
1974년 00월 00일, 19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앞서 인도에 다녀온 프리들랜드의 권유로 자신을 알기 위한 영적 순례에 나서기로 하고, 대니얼 콧키에게도 동행을 권했다.
103
1974년 00월 00일, 19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타리를 그만두고 인도의 구루를 찾아가겠다며 여비 지원까지 요청했다가 앨 알콘에게 거절당했고, 대신 독일에서 생긴 기술 문제를 해결하는 출장을 맡아 유럽을 거쳐 인도로 가는 길을 얻었다.
104
1974년 00월 00일, 19세 때, 스티브 잡스는 뮌헨에 며칠 머물며 아타리 게임기의 화면 끊김 문제를 고쳤지만, 현지 경영진은 그의 차림새와 태도를 두고 알콘에게 불만을 전했다.
105
1974년 00월 00일, 19세 때, 스티브 잡스는 기차로 토리노에 가서 아타리 유통업자를 만나 그의 환대 속에 2~3주를 머물렀다.
106
1974년 00월 00일, 19세 때, 스티브 잡스는 스위스 루가노에 있는 프리들랜드 삼촌의 집에서 며칠 지낸 뒤 뉴델리행 비행기에 올랐다.
107
1974년 00월 00일, 19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인도에서 돌아온 뒤 크리스앤 브레넌과 함께 로버트 프리들랜드의 농장에 머물며 긴 시간을 보냈다.
108
1974년 00월 00일, 19세 때, 스티브 잡스는 로스앨터스로 돌아온 뒤 크리스앤 브레넌과의 사이가 차츰 연인에서 평범한 친구 관계로 옮겨 갔다.
109
1974년 00월 00일, 19세 때, 스티브 잡스는 부모 집에 머무르며 아타리로 출퇴근했다.
110
1974년 00월 00일, 19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타리 창업자 놀런 부시넬과 자유의지와 결정론을 놓고 자주 토론을 벌였다.
111
1974년 00월 00일, 19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타리에서 칩을 덧붙여 몇몇 게임의 설계와 상호작용을 개선하는 일을 도왔고, 설명서 없이도 즐길 수 있는 아타리 게임의 단순함에 주목했다.
112
1974년 00월 00일, 19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타리 설계자 론 웨인과 친구가 됐고, 5만 달러를 끌어올 수 있다며 슬롯머신을 만들어 파는 동업을 제의했으나 사업에 실패한 경험이 있던 웨인에게 거절당했다.
113
1974년 00월 00일, 19세 때, 스티브 잡스는 님 카롤리 바바가 살았던 나이니탈 인근 마을에 방을 빌려 집주인 가족이 차려 주는 채식으로 몸을 추슬렀고, 앞선 투숙객이 남긴 『어느 요가 수행자의 자서전』을 거듭 읽으며 마을들을 돌아다녔다.
114
1974년 00월 00일, 19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인도에서 전염병학자 래리 브릴리언트를 만나 평생 친구가 됐다.
115
1974년 00월 00일, 19세 때, 스티브 잡스는 히말라야의 한 부호 별장에서 열린 젊은 힌두교 성자의 집회를 찾아갔다가, 그 성자에게 이끌려 우물가에서 긴 머리를 깎였다.
116
1974년 00월 00일, 19세 때, 스티브 잡스는 구루를 찾겠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금욕과 내핍, 단순한 생활로 깨달음을 구했다.
117
1974년 00월 00일, 19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인도에 머무는 동안 집과의 연락은 드문 편지로 이어 갔고, 답장은 뉴델리의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사무소로 받았다.
118
1974년 00월 00일, 19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인도에서 돌아온 뒤 인도보다 미국에서 더 큰 문화 충격을 느꼈고, 직관이 지력보다 강하다는 깨달음을 일하는 방식의 바탕으로 삼았다.
119
1974년 00월 00일, 19세 때, 스티브 잡스는 로스앨터스 집에서 아침저녁으로 명상과 선 공부를 하고, 낮에는 이따금 스탠퍼드 대학교의 물리학과 공학 수업을 청강했다.
120
1974년 02월 00일, 19세 때, 스티브 잡스는 리드 대학교 주변에서 보낸 18개월을 정리하고 로스앨터스 부모 집으로 돌아와 일자리를 찾았다.
121
1974년 02월 00일, 19세 때, 스티브 잡스는 즐기면서 돈도 벌 수 있다는 구인 광고를 보고 비디오게임 회사 아타리 로비에 찾아가, 허름한 차림에 당황한 인사 담당자에게 채용될 때까지 떠나지 않겠다고 버텼다.
122
1974년 02월 00일, 19세 때, 스티브 잡스는 수석 엔지니어 앨 알콘의 면담을 거쳐 아타리 초창기 직원 50명 가운데 한 명인 시급 5달러짜리 기술자로 입사했다.
123
1974년 02월 00일, 19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타리에서 깐깐한 엔지니어 돈 랭과 짝을 이뤘으나 체취와 태도를 문제 삼은 동료들의 해고 요구가 이어지자, 놀런 부시넬의 제안으로 다른 직원이 퇴근한 뒤 밤새 일하는 야간 근무로 옮겼다.
124
1974년 04월 00일, 19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인도 뉴델리에 도착했다.
125
1974년 04월 00일, 19세 때, 스티브 잡스는 뉴델리 숙소에서 정수됐다는 말을 믿고 물을 마셨다가 이질에 걸려 일주일 새 체중이 72kg에서 54kg으로 줄었다.
126
1974년 04월 00일, 19세 때, 스티브 잡스는 몸을 회복한 뒤 갠지스 강 발원지 부근 하리드와르의 멜라 종교 축제를 찾았다가 며칠 만에 그곳을 떠났다.
127
1974년 06월 00일, 19세 때, 스티브 잡스는 초여름에야 인도에 온 콧키를 뉴델리에서 만나 정해 둔 목적지 없이 대부분 버스로 인도 각지를 함께 떠돌았다.
128
1974년 06월 00일, 19세 때, 스티브 잡스는 콧키와의 여행 경비를 끼니값부터 델리행 버스 요금까지 혼자 댔고, 수중에 남은 100달러마저 콧키에게 주었다.
129
1974년 06월 00일, 19세 때, 스티브 잡스는 장터에서 물 탄 우유를 판다며 현지 여성 상인과 언성을 높여 다퉜다고 콧키는 전했다.
130
1974년 11월 00일, 19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인도에서 7개월을 보낸 뒤 런던을 거쳐 오클랜드행 저가 전세기로 귀국했고, 삭발한 머리에 인도식 무명옷 차림이어서 공항에 마중 나온 부모가 쉽게 알아보지 못했다.
131
1974년 12월 00일, 19세 때, 스티브 잡스는 어린 시절 억눌린 감정을 끌어내는 프라이멀 요법을 받으려고 1000달러를 내고 12주 과정에 등록했다.
132
1975년경 · 20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선심초심』을 쓰고 샌프란시스코 선 센터를 이끌던 스즈키 순류에게서 가르침을 구했다.
133
1975년경 · 20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스즈키 순류의 지시로 그의 제자 오토가와 고분 치노가 로스앨터스에 상시 운영되는 선 센터를 열자, 그곳에서 크리스앤 브레넌·콧키·홈스와 함께 열성적으로 수행했다.
134
1975년경 · 20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고분 치노를 거의 매일 찾아가고 몇 달에 한 번씩 함께 명상 수련회에 나갔으며, 카멀 근처 타사자라 선 센터에서 열린 수련회에는 홀로 다녀왔다.
135
1975년경 · 20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일본 영평사로 떠날 생각도 했으나, 이곳에서 찾지 못하는 것은 거기서도 찾지 못한다는 스승의 조언을 듣고 머물렀다.
136
1975년경 · 20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남은 생을 선불교 수행에 바칠지를 고분 치노와 진지하게 상의했으나,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수행은 이어 갈 수 있다는 만류를 들었다.
137
1975년경 · 20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가까운 친구들에게 자신이 입양아이며 생부모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사실이 괴롭다고 고백했다.
138
1975년경 · 20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양부모로부터 생모는 대학원 재학생이었고 생부는 시리아 출신일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폴 잡스와 클래라 잡스가 상처받을까 봐 사립 탐정을 통해 친부모를 찾는 일을 미뤘다.
139
1975년 00월 00일, 2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맨발에 사프란색 로브 차림으로 아타리에 나타나 앨 알콘의 손에 『지금 이곳에 존재하라』 한 권을 쥐여 주며 다시 일하게 해 달라고 했고, 다시 채용돼 주로 야간에 일했다.
140
1975년 00월 00일, 2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놀런 부시넬에게서 해낼 수 있는 사람처럼 행동하면 실제로 해낼 수 있고, 상황을 완전히 장악한 듯 굴면 남들도 그렇게 믿는다는 가르침을 받았다.
141
1975년 00월 00일, 2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침 명상과 스탠퍼드 물리학 청강, 아타리 야간 근무를 오가는 일과 속에서 자기 회사를 세우는 꿈을 키웠다.
142
1975년경 · 20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엘리자베스 홈스를 설득해 프리들랜드의 사과 농장까지 함께 가면서, 수동 변속 차를 몰 줄 모르는 그녀에게 운전대를 맡기고 변속만 대신해 준 뒤 밥 딜런의 앨범 『블러드 온 더 트랙스』를 튼 채 잠이 들었다.
143
1975년 00월 00일, 2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워즈니악이 키보드로 친 글자를 화면에 띄우는 컴퓨터 시험에 성공하자 네트워크 연결과 디스크 추가 가능성을 잇달아 물었고, 인텔에 직접 전화해 D램 칩 여러 개를 공짜로 받아 냈다.
144
1975년 00월 00일, 2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워즈니악을 따라 홈브루 컴퓨터 클럽 모임에 다니기 시작해 TV 모니터를 나르고 장비를 설치하는 일을 거들었다.
145
1975년 00월 00일, 2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놀런 부시넬에게서 칩을 50개 아래로 쓸 경우 덜 쓴 칩마다 보너스를 받는 조건으로 새 게임 개발을 의뢰받았다.
146
1975년 00월 00일, 2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워즈니악에게 보수를 반씩 나누자며 게임 개발을 도와 달라고 청했고, 자신이 임의로 정한 나흘 마감과 칩 절감 보너스 조건은 알리지 않았다. 올 원 팜에 사과를 따러 가려고 일정을 당긴 것이었다.
147
1975년 00월 00일, 2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워즈니악이 설계를 쏟아내는 동안 옆 작업대에서 칩을 와이어래핑으로 회로판에 붙였고, 둘은 사흘 만에 칩 45개로 브레이크아웃을 완성했다.
148
1975년 00월 00일, 20세 때, 스티브 잡스는 기본 수고비의 절반만 워즈니악에게 주고 칩 다섯 개를 줄여 받은 부시넬의 보너스는 나누지 않았다고 관련자 다수가 증언했다. 이 대목을 둘러싼 기억은 서로 엇갈린다.
149
1976년경 · 21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기판을 손수 만들 여유가 없는 애호가들이 많다고 보고 워즈니악의 컴퓨터용 인쇄 회로 기판을 만들어 팔자고 제안했고, 워즈니악의 설계도 사본을 공짜로 나눠 주는 일도 그만두자고 설득했다.
150
1976년 00월 00일, 2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타리 지인을 통해 기판 50개가량을 찍어 개당 40달러에 팔면 1000달러 남짓한 비용을 빼고 700달러가 남는다고 계산했다.
151
1976년 00월 00일, 21세 때, 스티브 잡스는 폭스바겐 버스 운전석에서 워즈니악에게, 설령 돈을 잃더라도 둘만의 회사를 처음 갖게 되는 것이라며 창업을 권했다.
152
1976년 00월 00일, 2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창업 자금을 대려고 아버지가 반대했던 자신의 폭스바겐 버스를 1500달러에 팔았고, 2주 뒤 엔진 고장을 항의한 구매자에게 수리비 절반을 물어 주었다.
153
1976년 00월 00일, 2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올 원 팜에서 사과나무 가지치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날 마중 나온 워즈니악과 차 안에서 회사 이름을 궁리하며 매트릭스, 이그제큐텍, 퍼스널 컴퓨터스 같은 후보를 놓고 따졌다.
154
1976년 00월 00일, 21세 때, 스티브 잡스는 회사 이름으로 애플 컴퓨터를 제안했다. 과일식을 하던 중에 사과 농장에서 돌아오던 길이었고, 친근하고 유쾌한 어감에 전화번호부에서 아타리보다 먼저 나온다는 점도 이유로 꼽았다.
155
1976년 00월 00일, 2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이튿날 오후까지 대안이 없으면 애플로 가겠다고 워즈니악에게 못 박았고, 끝내 다른 이름이 나오지 않아 애플로 정했다.
156
1976년 00월 00일, 2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워즈니악과 함께 1300달러가량의 종잣돈에 설계도와 사업 구상을 손에 쥐고 창업 채비를 마쳤다.
157
1976년 00월 00일, 2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워즈니악을 설득하고 둘 사이 갈등을 중재해 줄 동맹이 필요하다고 보고 아타리에서 사귄 론 웨인을 동업자로 영입했다.
158
1976년 00월 00일, 2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자기 회로를 HP 같은 회사와도 나누고 싶어 하던 워즈니악을 론 웨인의 아파트에서 두 시간 동안 함께 설득해, 그 회로를 애플의 핵심으로 삼는 데 동의를 얻었다.
159
1976년 00월 00일, 2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 II 사용 설명서를 맡길 사람을 찾다가 작은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던 제프 래스킨에게 연락해 50달러에 집필을 맡겼다.
160
1976년 00월 00일, 2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차고에서 자동차 수리 부업을 하던 아버지 폴 잡스가 그 일을 그만두자 차고 전체를 작업장으로 꾸며 긴 작업대와 이름표 붙인 부품 서랍을 갖췄다. 발열 램프를 단 상자에 기판을 넣어 밤새 고온에서 버티는지 시험하기도 했다.
161
1976년 00월 00일, 2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조립을 마친 기판 12개를 바이트 숍에 가져가, 케이스·전원·키보드도 없는 기판에 당황한 폴 테럴에게서 끝내 대금을 받아 냈다.
162
1976년 00월 00일, 21세 때, 스티브 잡스는 부품을 싼값에 사들여 생산비를 낮췄고, 바이트 숍에 넘긴 50대의 대금으로 100대 분량의 부품값을 거의 충당했다. 나머지 50대는 지인과 홈브루 회원들에게 팔아 이익을 남겼다.
163
1976년 00월 00일, 21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매주 샌프란시스코에서 건너오는 엘리자베스 홈스에게 수표 사용 내역의 장부 정리를 맡겼다.
164
1976년 00월 00일, 21세 때, 스티브 잡스는 회사가 번듯해 보이도록 전화 응답 서비스를 들이고, 어머니 클래라 잡스에게 메시지 가운데 중요한 것만 골라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165
1976년 00월 00일, 2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워즈니악이 다음 기종 구상에 들어가자 기존 기계를 '애플 I'이라 부르기로 하고, 함께 카미노레알 일대 상점을 돌며 판매처를 물색했다.
166
1976년 00월 00일, 2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 I을 원가 수준에 팔자는 워즈니악과 맞서 넉넉한 이윤을 붙여야 한다고 주장해 뜻을 관철했다.
167
1976년 00월 00일, 2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소매가가 보통 원가의 세 배로 붙는다는 점을 따져 납품가 500달러에 3분의 1을 얹었고, 그 결과 소매가가 666.66달러로 정해졌다. 666이 요한계시록의 숫자라는 것을 몰랐던 탓에 도매상들로부터 불길한 값이라는 불평을 들었다.
168
1976년경 · 21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예전 동업자였던 론 웨인에게 애플 II 외장 설계를 부탁했으나,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아 더 간결하고 세련된 형태를 찾았다.
169
1976년경 · 21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투박한 금속 상자의 경쟁 기종과 구별되는 외관을 원하던 중 메이시스 백화점 가전 매장에서 쿠진아트 믹서를 보고 애플 II 케이스를 가벼운 플라스틱으로 만들기로 정했다.
170
1976년경 · 21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홈브루 모임에서 만난 컨설턴트 제리 매넉에게 1500달러를 주고 케이스 설계를 맡기면서 선불 요구는 거절했고, 몇 주 만에 군더더기 없이 친근한 플라스틱 케이스를 받아 크게 만족했다.
171
1976년경 · 21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소음을 내는 냉각 팬이 없는 전원 장치를 원해 앨 알콘에게 조언을 구했고, 그가 소개한 로드 홀트에게 비용은 걱정하지 말라며 설계를 맡겼다.
172
1976년경 · 21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눈에 띄지 않는 부분까지 완벽해야 한다던 아버지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배선이 가지런하지 않다는 이유로 애플 II의 첫 회로 기판 설계를 폐기했다.
173
1976년경 · 21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애플 II 확장 슬롯을 프린터·모뎀용 두 개로 줄이자고 했으나, 여덟 개를 고집한 워즈니악이 그러려면 직접 만들라고 버티자 뜻을 거뒀다.
174
1976년 00월 00일, 2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차고를 찾아온 젊은 벤처 투자자 마이크 마쿨라로부터, 작업대 위 미완성 컴퓨터에 매료된 그가 25만 달러 신용 한도를 보증해 주는 지원을 받았다.
175
1976년 00월 00일, 21세 때, 스티브 잡스는 로스앨터스 집을 애플 I 기판 50개 제작 본부로 삼아 워즈니악·콧키·홈스와 여동생 패티 잡스까지 동원했고, 홈스에게 회계와 서류를 맡긴 채 직접 납땜에 나섰다.
176
1976년 03월 00일, 2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인도로 떠나려는 그레그 칼훈에게 크리스앤 브레넌이 구도의 길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며 그녀와 동행하지 말라고 권했다.
177
1976년 04월 00일, 21세 때, 스티브 잡스는 계약을 맺자마자 워즈니악과 홈브루 모임에 기판을 들고 나가, 알테어와 달리 주요 부품을 다 담았다고 내세우며 이런 기계에 얼마를 내겠느냐고 회원들에게 물었다.
178
1976년 04월 00일, 21세 때, 스티브 잡스는 홈브루 발표장에서 관심을 보인 바이트 숍 운영자 폴 테럴에게 제품을 시연했고, 다시 보자는 말과 함께 그의 명함을 받았다.
179
1976년 04월 00일, 21세 때, 스티브 잡스는 홈브루 발표 이튿날 맨발로 바이트 숍을 찾아가, 기판이 아닌 완전 조립품 50대를 대당 500달러 현금에 납품하는 주문을 따냈다.
180
1976년 04월 00일, 21세 때, 스티브 잡스는 HP에 있던 워즈니악에게 전화해 바이트 숍과 계약했다는 소식을 알렸다.
181
1976년 04월 00일, 2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주문을 맞출 부품 구입비 1만 5000달러를 구하려 로스앨터스의 은행에 대출을 신청했으나 행색 때문에 거절당했고, 부품을 대 주면 애플 지분을 주겠다는 제안도 홀테드 부품상 사장에게 거절당했다.
182
1976년 04월 00일, 21세 때, 스티브 잡스는 홈스테드 고교 시절 친구 앨런 바움과 그의 아버지에게서 워즈니악과 함께 5000달러를 빌렸다.
183
1976년 04월 00일, 21세 때, 스티브 잡스는 크레이머 일렉트로닉스 지배인이 미심쩍어하자 테럴에게 주문을 직접 확인하게 해, 30일 안에 대금을 갚는 조건으로 부품을 외상 공급받았다.
184
1976년 04월 01일, 21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마운틴뷰 론 웨인의 아파트에서 스티브 워즈니악·론 웨인과 합자 계약서에 서명하며 애플을 공동 창업했다. 지분은 그와 워즈니악이 45퍼센트씩, 웨인이 10퍼센트였다.
185
1976년 04월 01일, 21세 때, 스티브 잡스는 합자 계약에 따라 전자공학과 마케팅 총괄을 맡았다. 100달러가 넘는 지출에는 파트너 세 명 중 두 명 이상의 동의가 필요했다.
186
1976년 04월 12일, 21세 때, 스티브 잡스는 계약 11일 만에 론 웨인으로부터 파트너 자격을 포기한다는 사퇴서와 수정 계약서를 받았다.
187
1976년 07월 00일, 2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컴퓨터 애호가 잡지 《인터페이스》 7월호에 실린 애플 첫 소개 기사에 아타리 컨설턴트 출신 '마케팅 이사'로 등장했다. 기사는 소비자가 무엇을 필요로 하고 어떻게 느끼는지 알면 그들이 바라는 것을 내놓을 수 있다는 그의 말을 옮겼다.
188
1976년 08월 00일, 2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 I과 개발 중이던 애플 II 시제품을 상자에 담아 워즈니악과 필라델피아행 TWA 여객기에 올라 애틀랜틱시티의 제1회 개인용 컴퓨터 축제로 향했다.
189
1976년 08월 00일, 21세 때, 스티브 잡스는 뉴욕에서 대학을 다니던 대니얼 콧키가 맨해튼에서 기차를 타고 합류하자 그에게 애플 부스를 맡기고 경쟁사 제품을 둘러봤다.
190
1976년 08월 00일, 21세 때, 스티브 잡스는 경쟁 기계들을 살펴 워즈니악 회로의 기능적 우위를 확인했지만, 금속 케이스에 키보드와 전원까지 갖춘 SOL-20 옆에서 애플 I의 외관이 초라하다는 점도 확인했다.
191
1976년 08월 00일, 21세 때, 스티브 잡스는 PC는 완제품으로 나와야 한다던 폴 테럴의 지적이 옳았다고 보고, 다음 애플 컴퓨터를 케이스·키보드·전원·소프트웨어·모니터까지 한데 묶은 일체형으로 만들기로 판단했다. 조립 애호가가 아니라 바로 꺼내 쓰려는 다수를 겨냥한 결정이었다.
192
1976년 08월 00일, 2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축제 기간의 늦은 밤 워즈니악과 애플 II 시제품을 호텔 회의실의 컬러 TV에 이어 단 한 차례 시험 가동했다.
193
1976년 09월 00일, 2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 II 양산 자금을 마련하려고 제품 권리를 큰 회사에 넘기는 방안을 검토했고, 앨 알콘에게 부탁해 아타리 사장 조 키넌과의 면담 자리를 얻었다.
194
1976년 09월 00일, 21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맨발로 나간 조 키넌과의 면담에서 책상에 발을 올렸다가, 판권을 살 생각이 없으니 발부터 치우라는 고함을 들었다.
195
1976년 09월 00일, 2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 II 시제품을 보러 집으로 찾아온 코모도어의 척 페들에게 시연을 했다.
196
1976년 10월 00일, 2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척 페들의 주선으로 코모도어 본사 경영진 앞에서 애플 II를 설명하며 회사를 넘기는 대가로 20만~30만 달러를 불러 워즈니악을 놀라게 했다.
197
1976년 10월 00일, 21세 때, 스티브 잡스는 며칠 뒤 코모도어 측에서 직접 만드는 편이 싸겠다는 거절 전화를 받았으나, 이미 그 경영진을 낮게 보고 있어 미련을 두지 않았다.
198
1976년 10월 00일, 2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코모도어 건을 계기로 몫을 둘러싼 갈등이 드러나면서, 워즈니악의 집에서 그의 아버지 제리 워즈니악으로부터 만든 것도 없이 돈을 가져갈 자격은 없다는 질책을 듣고 울음을 터뜨렸다.
199
1976년 10월 00일, 2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워즈니악에게 반반 분배가 싫으면 전부 가져가라며 동업을 접을 수도 있다고 말했고, 워즈니악은 동업 관계를 지키기로 했다.
200
1976년 12월 00일, 2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 II 양산 비용을 따져, 플라스틱 케이스 금형에만 10만 달러 가량, 완제품을 찍어 낼 설비까지 합치면 20만 달러 안팎이 든다고 셈했다.
201
1976년 12월 00일, 21세 때, 스티브 잡스는 놀런 부시넬을 찾아가 5만 달러를 대면 회사 지분 3분의 1을 주겠다고 제안했으나 거절당했다.
202
1976년 12월 00일, 21세 때, 스티브 잡스는 부시넬의 권유로 벤처 투자가 돈 밸런타인을 차고로 불렀지만, 마케팅과 유통에 밝아 사업 계획을 짤 수 있는 사람을 합류시키면 그때 투자를 이야기하자는 답을 들었다.
203
1976년 12월 00일, 21세 때, 스티브 잡스는 돈 밸런타인에게서 후보 세 명을 소개받아 모두 만났고, 그 가운데 금색 콜벳 컨버터블을 몰고 차고에 온 전 인텔 마케팅 책임자 마이크 마쿨라와 뜻이 맞았다.
204
1976년 12월 00일, 2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사업 계획이 탄탄하면 투자하겠다는 마쿨라의 제안을 받고, 저녁마다 그의 집에서 새벽 서너 시까지 가정용 PC 보급 규모를 따지며 계획을 다듬었다. 계획서의 대부분은 마쿨라가 직접 썼다.
205
1977년 00월 00일, 2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 II에 넣을 전용 전원 공급 장치를 제작한 것을 시작으로 전원 부품의 설계와 외관에까지 손을 대기 시작했다.
206
1977년경 · 22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마이크 마쿨라에게서 제품의 겉모습과 포장으로 가치를 느끼게 해야 한다는 '귀속' 원칙을 배웠다.
207
1977년 00월 00일, 22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마이크 마쿨라에게서 마케팅과 영업을 배우기 시작했고, 돈이 아니라 오래 살아남을 회사를 목표로 삼으라는 당부를 거듭 들었다.
208
1977년경 · 22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포장과 인상 같은 세부에 집요하게 매달렸고, 제품 상자를 여는 순간의 감촉까지 인상을 남겨야 한다는 원칙을 마쿨라에게 배운 교훈으로 꼽았다.
209
1977년 00월 00일, 22세 때, 스티브 잡스는 눈길을 끈 인텔 광고의 제작자를 인텔에 물어 레지스 매케나라는 이름을 알아냈고, 그 회사에 전화했다가 광고 기획자 프랭크 버지와 연결됐다.
210
1977년 00월 00일, 2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의뢰를 거절한 프랭크 버지에게 이튿날부터 거의 매일 전화를 걸어 결국 차고 방문 약속을 받아 냈다.
211
1977년 00월 00일, 2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워즈니악과 레지스 매케나를 만났다가 나가 달라는 말을 들었지만, 곧 다시 전화해 혼자 찾아간 끝에 매케나로부터 애플 일을 맡겠다는 답을 얻었다.
212
1977년 00월 00일, 2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트 디렉터 롭 자노프에게 너무 유치하지 않은 로고를 주문했고, 통사과 시안은 체리처럼 보인다며 한 입 베어 문 사과를 골랐다.
213
1977년 00월 00일, 2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인쇄비가 많이 드는데도 사과 로고에 위쪽 초록부터 아래쪽 파랑까지 여섯 색 줄무늬를 넣는 안을 밀어붙였다.
214
1977년 00월 00일, 22세 때, 스티브 잡스는 홈브루 회원 짐 워런이 기획한 서부 연안 컴퓨터 박람회 소식을 듣자 곧바로 참가를 신청하고, 입구 앞자리를 잡으려 5000달러를 선금으로 내 워즈니악을 놀라게 했다.
215
1977년 00월 00일, 2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스콧이 사원 번호 1번을 워즈니악에게, 2번을 자신에게 배정하자 1번을 달라고 하다 거절당해 울었고, 0번을 달라는 절충안도 양의 정수만 받는 은행 급여 체계 때문에 무산돼 2번으로 남았다.
216
1977년 00월 00일, 2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차고 시절을 끝내고 쿠퍼티노 스티븐스크리크 거리에 사무실을 빌려 회사를 옮겼다.
217
1977년 00월 00일, 2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소니 영업소와 한 건물을 쓰던 첫 사무실 시절 그 영업소를 자주 드나들며 브로슈어를 만져 보고 디자인을 논했다.
218
1977년 00월 00일, 22세 때, 스티브 잡스는 랜디 위긴턴과 크리스 에스피노사 같은 젊은 프로그래머들을 거칠게 다뤘고, 갓 고교를 졸업한 위긴턴은 자기 작업물이 쓰레기 취급을 당했다고 회고했다.
219
1977년 00월 00일, 22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마이크 스콧과의 첫 산책 회의에서 목욕을 자주 하라는 말을 듣자 채식 책이나 읽고 살을 빼라고 받아쳤고, 이후 목욕을 주 1회로 늘리는 데 그쳤다.
220
1977년 00월 00일, 2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 II 케이스 색을 고르며 팬톤의 베이지 2000가지 가운데서도 마음에 드는 것을 찾지 못했고, 모서리 곡률을 며칠씩 붙들어 스콧과 부딪쳤다.
221
1977년 00월 00일, 22세 때, 스티브 잡스는 회색 작업대면 된다는 스콧에 맞서 흰색 작업대를 특별 주문하자고 고집했고, 구매 주문서 서명권 다툼에서는 마쿨라가 스콧에게 서명을 맡기는 쪽을 택했다.
222
1977년 00월 00일, 2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업계 관행인 90일 대신 애플 II 보증 기간을 1년으로 하자고 버티며 눈물까지 보였고, 주차장을 함께 걸은 끝에 스콧이 물러서 1년 보증이 확정됐다.
223
1977년경 · 22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마쿨라의 소개로 벤처 투자가 아서 록을 만났으나 좋은 첫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224
1977년 00월 00일, 22세 때, 스티브 잡스는 브레넌과 관계를 가진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아이의 아버지라는 점은 부인했고, 브레넌의 상대가 자신만이 아니었다고 믿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빠르게 틀어졌다.
225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브레넌은 결혼 상대가 아니었고 결혼했더라도 둘 다 불행하게 오래가지 못했을 것이라며 혼인 가능성을 배제했다고 말했다.
226
1977년 01월 00일, 2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을 주식회사로 바꾸고 마이크 마쿨라·스티브 워즈니악과 지분을 26퍼센트씩 나누기로 합의해, 마쿨라 집 수영장 옆 오두막에서 계약서에 서명했다. 마쿨라는 25만 달러를 걸었다.
227
1977년 01월 00일, 21세 때, 스티브 잡스는 HP를 떠나기를 망설이는 워즈니악을 전화로 다그치고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했으며, 워즈니악 부모의 집까지 찾아가 울면서 제리 워즈니악의 지원을 얻어 냈다.
228
1977년 01월 00일, 2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워즈니악으로부터 HP를 그만두고 애플 일에만 매달리겠다는 전화를 받았다.
229
1977년 01월 00일, 21세 때, 스티브 잡스는 PC를 가진 홈브루 회원 181명 가운데 애플 이용자가 6명에 그친다는 조사 결과에도 애플 II가 판도를 바꿀 것이라고 확신했다.
230
1977년 01월 03일, 21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마이크 마쿨라·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애플 컴퓨터 주식회사를 공식 출범시켰다. 출범 당시 회사의 가치는 5309달러였다.
231
1977년 02월 00일, 21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마쿨라가 자신의 행동을 누그러뜨리려 마이크 스콧을 사장으로 영입하려 하자 밥스 빅 보이와 굿 어스 식당에서 오래 맞섰으나, 결국 다수 의견을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232
1977년 04월 00일, 2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샌프란시스코 제1회 서부 연안 컴퓨터 박람회에서 애플 II를 처음 공개하며, 검은 벨벳을 덮은 카운터와 새 로고를 그린 플렉시 유리판을 세우고 완성품 세 대 뒤에 빈 상자를 쌓아 물량이 넉넉해 보이게 했다.
233
1977년 04월 00일, 22세 때, 스티브 잡스는 개막 직전 도착한 케이스에 흠집이 난 것을 보고 크게 화를 내며 직원들에게 사포로 문질러 지우게 했다.
234
1977년 04월 00일, 22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마쿨라가 보낸 샌프란시스코의 재단사에게 워즈니악과 함께 양복을 맞췄다.
235
1977년 04월 00일, 22세 때, 스티브 잡스는 박람회장에서 일본의 섬유 사업가 미즈시마 사토시와 인연을 맺었고, 그가 운영하던 회사가 애플과 처음 거래한 일본 업체가 됐다.
236
1977년 04월 00일, 2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워즈니악이 박람회장에 몰래 퍼뜨린 가상 컴퓨터 '잘테어'의 가짜 팸플릿에 속아, 비교표에서 애플 II가 앞선다는 대목에 흐뭇해했다.
237
1977년 07월 00일, 22세 때, 스티브 잡스는 부모 집을 나와 쿠퍼티노의 월세 600달러짜리 방 네 개 단층집에서 대니얼 콧키와 함께 살며 남는 방을 세놓았다.
238
1977년 07월 00일, 22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만남과 이별을 되풀이하던 크리스앤 브레넌이 이 집으로 들어오면서 다시 한 지붕 아래 살게 됐다.
239
1977년 09월 00일, 22세 때, 스티브 잡스는 함께 살던 크리스앤 브레넌과의 사이에서 아이가 생겼다.
240
1977년 11월 00일, 2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추수감사절에 콜로라도에서 찾아온 그레그 칼훈에게 브레넌의 임신 문제는 제쳐 둔 채 애플 입사를 권하는 데 열중했다고 칼훈은 회고했다.
241
1978년 00월 00일, 23세 때, 스티브 잡스는 첫 입사 제안을 거절했던 신경과학 박사 과정생 빌 앳킨슨을 세 시간 가까이 설득하며 함께 세상을 바꾸자고 권해 애플로 데려왔다.
242
1978년경 · 23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애플 II에는 베이식이면 충분하다며 파스칼 개발에 반대했으나, 앳킨슨의 열의를 보고 엿새의 기한을 줬고 그가 그 안에 파스칼을 완성하자 그를 인정했다.
243
1978년 05월 17일, 23세 때, 스티브 잡스는 크리스앤 브레넌이 로버트 프리들랜드의 농장에서 딸을 낳으면서 아버지가 됐다.
244
1978년 05월 20일, 23세 때, 스티브 잡스는 출산 사흘 뒤 비행기로 농장을 찾아 이름 짓기에 참여했고, 미국에서 태어났으니 미국식 이름이어야 한다며 브레넌과 함께 '리사 니콜 브레넌'으로 정했다. 아이의 성에는 잡스를 넣지 않았다.
245
1978년 05월 20일, 23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이름을 정한 뒤 곧바로 애플 업무로 돌아갔다. 브레넌은 그 뒤 그가 모녀와 엮이기를 바라지 않았다고 말했다.
246
1979년경 · 24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샌마테이오 카운티로부터 친부 확인과 양육비 부담을 요구하는 소송을 당했고, 처음에는 맞서 다투기로 했다.
247
1979년 00월 00일, 24세 때, 스티브 잡스는 완전히 새로운 컴퓨터를 만들려고 HP 엔지니어 두 명을 데려왔고, 그 컴퓨터에 자신이 친자임을 부인하던 딸의 이름 '리사'를 붙였다.
248
1979년경 · 24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래리 브릴리언트가 빈곤과 질병 퇴치를 위해 세바 재단을 세우자 남몰래 5000달러 수표를 보내고 재단 이사로 참여했다.
249
1979년경 · 24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세바 재단 회의에서 레지스 매케나를 기용해 모금과 홍보를 하자는 제안이 저명 의사 이사의 반대에 막히자 주차장에서 분해 눈물을 보였고, 이튿날 밤 그레이트풀 데드의 재단 자선 공연 무대 뒤에서 브릴리언트와 화해했다.
250
1979년 00월 00일, 24세 때, 스티브 잡스는 딸을 만날 방문권을 얻었지만 오랫동안 쓰지 않았다.
251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버지가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현실을 외면했던 당시 처신을 훗날 후회한다고 밝혔다.
252
1979년 00월 00일, 24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 III에 기대를 걸고 케이스 크기와 모양을 직접 정한 뒤, 엔지니어들이 부품을 늘려도 그 규격을 바꾸지 못하게 했다.
253
1979년경 · 24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터치스크린 방식도 검토했으나, 늦게 들어간 설명회에서 엔지니어들의 발표를 수고했다는 말로 끊어 돌려보냈고 이후 시간을 허비하게 했다며 화를 냈다.
254
1979년 05월 00일, 24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 기업공개를 앞두고 골치 아픈 문제를 매듭짓기로 하고 친자 확인 검사에 응해 UCLA에서 DNA 검사를 받았다.
255
1979년 05월 00일, 24세 때, 스티브 잡스는 친부일 확률이 94.41퍼센트라는 검사 결과에 따라 캘리포니아 법원으로부터 매달 385달러를 양육비로 내고 친부임을 인정하는 서류에 서명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카운티가 그동안 브레넌에게 준 보조금 5856달러도 갚게 됐다.
256
1979년 07월 00일, 24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 투자하고 싶다는 제록스 벤처투자 부문에 PARC의 핵심 기술을 보여 주면 100만 달러 투자를 받아들이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257
1979년 10월 00일, 24세 때, 스티브 잡스는 원가를 맞추려 타협하는 제프 래스킨에게 비용은 잊고 성능에 집중해 '미치도록 위대한' 제품을 만들라고 주문했고, 래스킨은 비현실적인 고사양 목록을 늘어놓은 풍자 메모로 응수했다.
258
1979년 10월 00일, 24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첫 핼러윈 파티에 헐렁한 긴 옷을 걸치고 예수로 분장해 나타났다.
259
1979년 10월 00일, 24세 때, 스티브 잡스는 강력한 프로세서를 쓰고도 기대한 기능이 나오지 않는 리사 개발의 더딘 속도에 실망하며 조바심을 냈다.
260
1979년 12월 00일, 24세 때, 스티브 잡스는 제프 래스킨·존 카우치 등과 제록스 팰러앨토 연구 센터를 찾아 신기술 시연을 봤지만, 첫날에는 워드 프로세서 몇 가지만 보여 주는 제한된 설명에 그쳤다.
261
1979년 12월 00일, 24세 때, 스티브 잡스는 제록스에 더 보여 달라고 요구한 뒤 며칠 만에 빌 앳킨슨, PARC 출신 프로그래머 브루스 혼까지 인원을 늘려 PARC를 다시 찾았다.
262
1979년 12월 00일, 24세 때, 스티브 잡스는 또다시 워드 프로세서 시연이 이어지자 쓸데없는 것은 그만 보자고 소리쳤고, 제록스 벤처투자 책임자에게 항의 전화를 걸어 코네티컷 본사로부터 전부 공개하라는 지시를 끌어냈다.
263
1979년 12월 00일, 24세 때, 스티브 잡스는 래리 테슬러가 감춰 뒀던 그래픽 인터페이스와 비트맵 화면을 보여 주자 방 안을 서성이며 질문을 쏟아 냈고, 제록스가 왜 이것을 상품으로 내놓지 않느냐며 큰 기회를 묵히고 있다고 외쳤다.
264
1979년 12월 00일, 24세 때, 스티브 잡스는 시연 두 시간쯤 뒤 앳킨슨과 쿠퍼티노로 차를 몰며 애플이 갈 길이 바로 이것이라고 소리쳤고, 반년쯤이면 구현할 수 있다는 앳킨슨의 낙관적 답에 의욕을 키웠다.
265
1979년 12월 00일, 24세 때, 스티브 잡스는 산업디자인 회사를 함께 세운 딘 허비에게 단추가 하나뿐이고 값은 15달러이며 포마이카 탁자에서도 청바지 위에서도 부드럽게 굴러가는 마우스를 만들어 달라고 했고, 허비가 받아들였다.
266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피카소의 말을 빌려, 역사 속 뛰어난 아이디어를 가져와 자기 작업에 접목하는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267
1980년 00월 00일, 25세 때, 스티브 잡스는 딸 문제를 정리한 뒤 마약을 끊었고, 채식 위주 식단을 조금 느슨하게 하며 선불교 센터에 머무는 시간도 크게 줄였다.
268
1980년 00월 00일, 25세 때, 스티브 잡스는 머리를 단정히 다듬었고, 샌프란시스코의 고급 남성복 매장 윌크스배시포드에서 양복과 셔츠를 구입해 입기 시작했다.
269
1980년 00월 00일, 25세 때, 스티브 잡스는 레지스 매케나 회사 직원 바버라 야진스키와 교제를 시작했다.
270
1980년 00월 00일, 25세 때, 스티브 잡스는 1966년형 BMW R60/2 오토바이를 구입해 주황색 술을 핸들에 매달고 몰고 다녔다.
271
1980년 00월 00일, 25세 때, 스티브 잡스는 로스가토스에 집을 사서 맥스필드 패리시의 그림과 브라운 커피메이커, 헹켈 칼을 들였지만 가구 고르기에 까다로워 침대도 소파도 없이 지냈다. 침실에는 바닥 매트리스와 아인슈타인·마하라지의 사진 액자, 애플 II 한 대만 놓였다.
272
1980년 00월 00일, 2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소니 영업소에서 브로슈어를 얻어 가며 알게 된 직원 대니얼 르윈을 채용했다.
273
1980년 00월 00일, 2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존 카우치가 이끄는 리사 개발을 날마다 점검하며 카우치를 건너뛰고 앳킨슨·테슬러에게 새벽에도 전화해 GUI 요구를 쏟아 냈고, 팀장을 거치라는 요청에 잠시 자제했으나 오래가지 않았다.
274
1980년 00월 00일, 25세 때, 스티브 잡스는 화면 바탕을 흰색으로 하자는 앳킨슨의 제안에 하드웨어 팀이 깜빡임을 이유로 반발하자 직접 나서 물러서게 했다. 흰 바탕 덕분에 화면과 인쇄물이 똑같이 보이는 WYSIWYG 방식이 가능해졌다.
275
1980년 00월 00일, 25세 때, 스티브 잡스는 리사를 단순하고 값싼 대중용 기계로 만들려 해, 기업 고객을 겨냥한 카우치와 HP 출신 엔지니어들과 진영이 갈려 거세게 대립했다.
276
1980년 00월 00일, 25세 때, 스티브 잡스는 과로하던 앳킨슨이 졸음운전 끝에 주차된 트럭을 들이받는 사고를 내자 곧장 병원으로 달려갔다.
277
1980년 00월 00일, 25세 때, 스티브 잡스는 문서가 흔들림 없이 미끄러지는 부드러운 스크롤과, 두 바퀴 방식이 아닌 볼 하나를 넣어 어느 방향으로든 커서를 움직이는 마우스를 요구했다.
278
1980년 00월 00일, 25세 때, 스티브 잡스는 그런 마우스는 상용화할 수 없다고 한 엔지니어의 말을 앳킨슨에게서 전해 듣고 이튿날 그를 해고했다.
279
1980년 00월 00일, 2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앳킨슨과 가까워져 거의 날마다 저녁을 굿 어스 식당에서 함께 먹었다.
280
1980년 00월 00일, 25세 때, 스티브 잡스는 그 무렵 이미 애플 III에서 마음이 떠나, 훨씬 새로운 제품을 구상하느라 밤을 지새웠다.
281
1980년 00월 00일, 25세 때, 스티브 잡스는 1000달러 이하 가격을 맞추려 모토로라 6809를 고른 래스킨과 맞서 리사에 쓰인 고성능 68000으로 바꾸라고 압박했다.
282
1980년 00월 00일, 2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창업 초기를 함께한 대니얼 콧키에게 발기인주를 주지 않았고, 사무실 근처에서 직접 부탁하는 그를 번번이 냉정하게 돌려보내며 스톡옵션은 상사에게 물어보라고만 했다.
283
1980년 00월 00일, 25세 때, 스티브 잡스는 로드 홀트가 둘이 옵션을 똑같이 떼어 콧키를 챙기자고 하자 자기 지분의 0퍼센트를 내겠다고 답했다.
284
1980년 00월 00일, 25세 때, 스티브 잡스는 기업공개 전에 크리스앤 브레넌 모녀에게 줄 부양비를 확정해 서명까지 받아 뒀다. 리사가 열여덟 살이 될 때까지 아이 몫의 양육비와 브레넌의 생활비를 함께 대는 조건이었다.
285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팰러앨토에 집을 마련해 브레넌 모녀가 집세 없이 살게 했고, 리사가 좋은 학교에 다니도록 학비를 댔다고 밝혔다.
286
1980년 00월 00일, 2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상장 주간사로 모건 스탠리와 함브레히트 앤드 퀴스트를 고르는 데 참여했고, 공모가를 18달러로 낮게 잡으려는 모건 스탠리에 7퍼센트 수수료까지 떼면서 그럴 수 있느냐고 따졌다.
287
1980년 00월 00일, 2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자주 드나들던 소니 영업소에서 일하던 대니얼 르윈을 채용했다.
288
1980년 00월 00일, 2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진짜 부모로 여긴 폴과 클래라 잡스가 상처받지 않도록 알리지 않은 채 탐정을 고용해 생모를 찾기 시작했으나 성과를 얻지 못했다.
289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출생증명서에 적힌 샌프란시스코 의사를 전화번호부로 찾아 연락했지만, 화재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는 답만 들었다.
290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그 의사가 세상을 떠난 뒤 미망인이 보내온 봉인 편지로 생모가 위스콘신 출신 미혼 대학원생 조앤 시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291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또 다른 탐정을 써서 몇 달을 들인 끝에 조앤의 행방을 찾아냈다.
292
1980년경 · 25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일본에서 소니 모리타 아키오 회장에게 직원 유니폼의 유래를 물었고, 전후에 회사가 옷을 나눠 주던 관행이 전통으로 굳었다는 답을 들었다.
293
1980년경 · 25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도 유니폼으로 묶이는 결속이 필요하다고 보고 이세이 미야케에게 직원용 조끼를 의뢰했으나, 견본을 본 직원들의 야유로 계획을 접었다고 회고했다.
294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조끼 일을 계기로 이세이 미야케와 가까워져 자주 그를 찾았고, 편리함과 고유한 스타일을 위해 자기만의 유니폼을 갖기로 마음먹었다.
295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이세이 미야케에게 즐겨 입던 검은색 터틀넥을 주문했고, 미야케는 100벌가량을 지어 보냈다.
296
1980년 05월 00일, 25세 때, 스티브 잡스가 케이스 규격을 못 박았던 애플 III는 기판이 겹쳐 쌓인 탓에 커넥터 결함이 잇따르며 출시 뒤 참패했다.
297
1980년 09월 00일, 2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스콧과 마쿨라가 은밀히 추진한 조직 개편으로 리사 프로젝트 통제권과 연구개발 부사장 직함을 잃고, 경영 권한이 없는 비상임 이사회 의장으로 물러났다.
298
1980년 09월 00일, 25세 때, 스티브 잡스는 리사에서 손을 뗀 뒤 래스킨이 이끌던 매킨토시 프로젝트로 눈을 돌렸고, 낮은 가격과 단순한 그래픽 인터페이스, 깔끔한 디자인이라는 구상에 끌렸다.
299
1980년 12월 00일, 25세 때, 스티브 잡스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래스킨에게 알리지 않은 채 버렐 스미스에게 더 강력한 칩을 쓸 수 있는 매킨토시 원형을 새로 만들라고 지시했다.
300
1980년 12월 12일, 2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 주당 22달러에 상장한 날 함브레히트 앤드 퀴스트에서 첫 거래가 시작되는 장면을 지켜봤고, 25세에 2억 5600만 달러를 가진 자산가가 됐다.
301
1981년경 · 2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새 원형이 나오자 매킨토시 프로세서를 모토로라 68000으로 바꾸라고 지시해, 래스킨이 가격 목표를 다시 짜게 만들었다.
302
1981년경 · 2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맥 팀원들에게 래스킨은 몽상가일 뿐이고 자신은 실행가라며 1년 안에 맥을 완성하겠다고 장담했다.
303
1981년경 · 2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맥이 리사보다 먼저 나온다는 쪽에 리사 책임자 존 카우치와 공개적으로 5000달러를 걸고, 팀원들에게 리사보다 싸고 나은 컴퓨터를 먼저 내놓자고 독려했다.
304
1981년경 · 2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부자가 된 뒤에도 수행원이나 경호원 없이 직접 차를 몰고 가구 없는 간소한 집에서 살았으며, 마쿨라가 권한 리어 제트기 구입도 사양했다.
305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디자인이 빼어난 물건을 아껴 포르쉐와 메르세데스 차, 브라운 가전과 헹켈 칼, 뱅앤올룹슨 오디오와 뵈젠도르퍼 피아노, BMW 오토바이와 앤설 애덤스의 사진을 곁에 두었다.
306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납품 업체와는 아버지처럼 냉정하고 끈질기게 흥정했지만, 이윤을 위해 좋은 부품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307
1981년경 · 2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부모 폴·클래라 잡스에게 약 75만 달러어치 주식을 건넸고, 부모가 그중 일부를 팔아 로스앨터스 집의 융자를 청산하자 친구들을 불러 축하 파티를 열었다.
308
1981년 00월 00일, 26세 때, 스티브 잡스는 기업공개 직후 웨이비 그레이비·제리 가르시아 등 세바 재단 이사들이 기부를 청하자 거절하고, 대신 네팔 실명 퇴치 조사에 쓰도록 애플 II와 비지칼크를 내놓았다.
309
1981년경 · 2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잠시 재단을 세웠지만, 운영을 맡은 직원이 자선 계획을 의논하겠다며 자꾸 찾아오자 짜증을 냈다.
310
1981년 00월 00일, 2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스무 명가량으로 불어난 맥 팀을 위해 본관에서 세 블록 거리의 갈색 2층 건물로 자리를 옮겼고, 팀원들은 주유소 옆 이 건물을 '텍사코 타워스'라 불렀다.
311
1981년 00월 00일, 26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맥 팀이 해마다 자신에게 가장 당당히 맞선 사람에게 주기 시작한 상을 알고 반겼다.
312
1981년경 · 2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멋대로 고친 마케팅 계획에 격분한 조애나 호프먼이 사무실로 들이닥치자 끝까지 말을 듣고 물러섰다.
313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앳킨슨 팀 엔지니어의 작업을 쓰레기라고 깎아내렸다가 공학적 득실을 조목조목 든 반박을 듣고 물러섰고, 그 엔지니어는 이 일을 계기로 더 나은 해법을 찾았다.
314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첫 맥 팀을 거치며 일급 인재는 서로 함께 일하기를 즐기고 어중간한 성과를 견디지 못하며, 기대치를 높게 잡아 주면 결국 그만큼 해낸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315
1981년 00월 00일, 2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주말에 찾아온 앳킨슨에게 자신의 포르쉐를 보여 주며 위대한 작품은 취향을 좇지 않고 넓힌다고 말했고, 맥도 벤츠처럼 선은 부드럽게 디테일은 또렷하게 다듬어야 한다고 했다.
316
1981년 00월 00일, 26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 디자인을 손에 쥐면서 래스킨식 여행 가방형 구상 대신 휴대성을 버리고 책상 공간을 적게 차지하는 형태를 택했고, 전화번호부를 내던지며 그보다 커서는 안 된다고 지시했다.
317
1981년경 · 2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테리 오야마의 석고 모델을 두고 너무 네모나다며 곡선미와 모서리 반경, 빗면 크기를 고치라고 몰아붙이면서도 출발은 나쁘지 않다고 칭찬했다.
318
1981년경 · 2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주말에 팰러앨토 메이시스 백화점에서 쿠진아트 제품을 살핀 뒤 월요일 디자인팀에 그 제품을 사 오게 해 새 제안을 쏟아 냈으나, 주방 기기풍 시안은 그도 별로라고 인정해 일정이 일주일 밀렸다.
319
1981년 00월 00일, 26세 때, 스티브 잡스는 래스킨이 좋아하던 사과 품종에서 온 '매킨토시'라는 이름을 지우려고, 오래 써 온 '정신의 자전거' 비유를 따 이름을 '바이시클'로 바꾸자고 선언했으나 팀의 반대로 한 달도 못 가 접었다.
320
1981년 00월 00일, 2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사무실에 활기를 불어넣으려 스테레오를 사 오라고 했고, 허츠펠드와 버렐 스미스가 은색 대형 카세트 라디오를 들여왔다.
321
1981년경 · 2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사무실 냉장고에서 탄산음료를 빼고 오드왈라의 오렌지·당근 주스를 채우게 했다.
322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맥 팀을 이끌고 맨해튼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루이스 티파니 유리 공예전을 관람했다.
323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차에 번호판을 달지 않고 장애인 주차 구역에 차를 세우는 등 일상의 규칙에도 얽매이지 않았다.
324
1981년 00월 00일, 2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스타의 하드웨어를 설계한 밥 벨빌에게 연락해 그곳에서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애플로 오라고 권했고, 벨빌은 이를 받아들여 애플로 옮겼다.
325
1981년경 · 2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제프 래스킨이 값싼 휴대형으로 그렸던 매킨토시 구상을 접고,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를 갖춘 데스크톱 기종으로 방향을 틀었다.
326
1981년경 · 2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버렐 스미스에게 모토로라 68000 칩을 바탕으로 매킨토시를 설계하라고 밀어붙여, 리사보다 빠르게 돌아가는 기계를 노렸다.
327
1981년경 · 2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개발진에서 밀려난 리사를 매킨토시가 넘어서야 할 상대로 정했고, 사내 제품끼리의 이 경쟁은 결국 애플에 손해를 남겼다.
328
1981년경 · 2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가 리사보다 먼저 시장에 나온다는 데 존 카우치와 5000달러를 걸었다.
329
1981년경 · 2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자기 맥 엔지니어들은 개성 강한 젊은 피로, 리사 쪽 개발진은 시키는 대로만 움직이는 HP 스타일 기술자로 견줘 말하곤 했다.
330
1981년경 · 2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를 리사와 맞붙는 저가 기종으로 꾸리면서 리사·애플 II 어느 쪽과도 소프트웨어가 호환되지 않게 했고, 경쟁심과 함께 통제 욕구가 이 결정에 작용했다. 회사 전체를 조율할 책임자가 없던 애플은 그를 제지하지 못했다.
331
1981년경 · 2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처음부터 끝까지 한 설계 안에서 맞물려야 뛰어난 컴퓨터가 된다는 믿음을 매킨토시 개발의 기준으로 삼았다.
332
1981년경 · 2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애플 II용 멀티플랜을 만든 마이크로소프트를 찾아가, 시애틀 워싱턴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빌 게이츠의 회의실에서 캘리포니아 자동화 공장이 사용자 친화적 대중 컴퓨터를 수백만 대 찍어 낼 것이라는 구상을 펼쳤다. 마이크로소프트 팀은 이 프로젝트를 '샌드(Sand)'라는 코드명으로 불렀다.
333
1981년경 · 2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 시연을 보러 온 빌 게이츠에게 미완성 데모만 보여 주며 비밀 프로젝트를 과시했고, 게이츠는 그가 필요 없으면 관두라는 식의 영업 태도로 나왔다고 회고했다.
334
1981년경 · 2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마이크로소프트가 맥용으로 만들 그래픽 프로그램에 기대를 품고 양측 팀과 고급 식당에서 협력을 자축했으며, 처음엔 조악했던 그들의 앱이 끈질긴 수정으로 나아졌다고 훗날 돌아봤다.
335
1981년 00월 00일, 2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제록스 스타 출시 무렵 빌 게이츠에게서 판매량이 600대라는 답을 듣고도 이튿날 팀원들 앞에서 300대라고 말했다고 게이츠는 회고했다.
336
1981년 00월 00일, 2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사 준 집에 들러 계단에 앉아 크리스앤 브레넌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세 살 무렵이던 딸 리사는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337
1981년경 · 2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그 뒤로도 1년에 한두 차례 미리 알리지 않고 브레넌 모녀의 집을 찾아 리사의 학교 문제 등을 잠깐 의논하고는 벤츠를 몰고 돌아갔다.
338
1981년 00월 00일, 2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 일로 스트레스가 극심하던 시기 비서에게 쉴 곳을 알아봐 달라고 해 하와이 코나 빌리지를 처음 찾았고, 처음에는 내키지 않았지만 몇 시간 만에 그곳의 단순함과 아름다움에 반해 이후 틈날 때마다 다시 찾았다.
339
1981년경 · 2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오리지널 매킨토시의 케이스 디자인을 먼저 확정하고, 엔지니어들이 회로 기판과 부품을 그 틀에 맞추도록 했다.
340
1981년 00월 00일, 2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스펀 디자인 컨퍼런스에서 애스펀 뮤직 페스티벌에 참가 중이던 첼리스트 요요마를 처음 만나 연주자로서도 사람으로서도 그를 존경하는 팬이 됐다.
341
1981년 02월 00일, 25세 때, 스티브 잡스는 래스킨이 직원들을 상대로 열기로 한 점심 세미나를 취소하고도 공지하지 않았고, 우연히 세미나실 앞을 지나던 래스킨이 100명 남짓 모인 청중을 보고 강연을 그대로 열었다.
342
1981년 02월 00일, 25세 때, 스티브 잡스는 래스킨이 사장 마이크 스콧에게 보낸 메모에서 약속을 어기고 남의 공을 가로채며 말을 끊는 형편없는 관리자라는 비판을 받았다.
343
1981년 02월 00일, 25세 때, 스티브 잡스는 그날 오후 스콧이 마쿨라를 동석시켜 마련한 자리에서 래스킨과 마주해 눈물을 보였고, 두 사람은 함께 일하기 싫다는 데서만 뜻이 같았다.
344
1981년 02월 00일, 2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스콧의 결정으로 본사에서 떨어진 건물에 있던 매킨토시 프로젝트의 책임자가 됐다.
345
1981년 02월 07일, 25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맥 팀에 끌어들이려던 워즈니악이 산타크루스 인근에서 직접 몰던 비치크래프트 비행기 이륙 사고로 크게 다쳐 일시적 기억상실을 겪자, 병실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했다.
346
1981년 03월 00일, 26세 때, 스티브 잡스는 래스킨이 회사를 떠난 며칠 뒤 애플 II 팀의 앤디 허츠펠드에게 실력이 쓸 만한지 물었고, 그날 오후 다시 찾아가 이제부터 맥 팀이니 따라오라고 했다.
347
1981년 03월 00일, 2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 II 일을 마무리할 며칠을 달라는 허츠펠드의 요청을 애플의 미래는 매킨토시라며 물리쳤고, 그의 컴퓨터 전원을 뽑은 뒤 짐과 함께 은색 메르세데스에 실어 버렐 스미스 옆자리에 앉혔다.
348
1981년 03월 00일, 2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스콧의 하와이 휴가 중에 마쿨라가 소집한 경영진 회의에서 존 카우치 등과 함께 스콧 교체에 찬성했고, 마쿨라가 임시 사장을 맡으면서 맥 팀을 뜻대로 이끌 권한을 굳혔다.
349
1981년 03월 00일, 26세 때, 스티브 잡스는 버드 트리블이 막 합류한 허츠펠드에게 넘긴 방대한 소프트웨어 작업을 1982년 1월까지 모두 끝내라고 요구했다.
350
1981년 03월 00일, 26세 때, 스티브 잡스는 버드 트리블로부터 주변의 현실 감각을 휘게 만들어 무엇이든 납득시키는 '현실 왜곡장'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았다.
351
1981년 03월 00일, 2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어느 저녁 매킨토시 원형 앞에서 크리에이티브 서비스 책임자 제임스 페리스와 논쟁하며, 맥은 폭스바겐 비틀처럼 유행을 타지 않아야 하고 페라리보다 포르쉐에 가까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그가 타던 차는 포르쉐 928이었다.
352
1981년 04월 00일, 2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웨스트코스트 컴퓨터 박람회에서 애덤 오스본이 첫 휴대용 PC를 내놓으며 적당하면 충분하다는 투로 말하자, 며칠 동안 사내 복도를 다니며 오스본이 기본도 모르고 쓰레기를 만든다고 비웃었다.
353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맥 운영체제를 맡은 래리 케니언에게 부팅이 너무 길다며 사용자 500만 명이 날마다 10초씩 아끼면 한 해 3억 분, 사람 100명의 일생만큼을 버는 셈이라고 설득했고, 케니언은 그 뒤 몇 주 사이에 부팅을 28초 앞당겼다.
354
1981년 04월 00일, 2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채용 면접에서 천으로 덮어 둔 맥 원형을 보여 주고 지원자가 눈을 반짝이며 마우스를 만지는지를 보고 합격 여부를 정했다.
355
1981년 04월 00일, 2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어느 금요일 밤 브루스 혼에게 전화해 이튿날 아침 애플로 불러, 케이스를 정확한 각도로 뽑아내는 법과 기판 배치 방식을 보여 주며 맥 팀 합류를 설득해 냈다.
356
1981년 06월 00일, 2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이탈리아 디자인을 주제로 한 애스펀 국제 디자인 컨퍼런스에 참석해 이탈리아 디자이너들에게 매료됐고, 허버트 바이어가 애스펀 연구소 건물과 활자, 가구에 구현한 바우하우스식 기능주의를 접했다.
357
1981년 06월 00일, 2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상장 반년쯤 뒤 담판을 지으러 찾아온 대니얼 콧키를 냉랭하게 맞아 그가 말도 꺼내지 못하게 했다.
358
1981년 6월경 · 2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제록스가 내놓은 스타를 매장에서 살펴보고 기대에 못 미친다며 애플이라면 값은 훨씬 낮추고 완성도는 높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359
1981년 08월 00일, 26세 때, 스티브 잡스는 IBM PC가 시장에 나오자 맥 팀원들에게 한 대를 사서 분해해 보라고 지시했다.
360
1981년 08월 00일, 26세 때, 스티브 잡스는 IBM을 악역으로 세우고 다가올 PC 경쟁을 종교전쟁처럼 몰아가며, 애플이 무너져 IBM이 이기면 컴퓨터 산업이 암흑기로 들어간다고 했고, IBM은 시장 한쪽을 손에 넣으면 혁신을 멈추는 회사라고 깎아내렸다.
361
1981년 10월 00일, 26세 때, 스티브 잡스는 비즈니스 잡지 《아이엔시》 10월호 표지에 처음 등장해 비즈니스를 영원히 바꾼 인물로 소개됐다. 표지 속 그는 단정한 머리에 청바지와 광택 재킷 차림으로 애플 II 위에 손을 올려 두고 있었다.
362
1982년경 · 27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끝내 맥 케이스 디자인에 최종 승인을 내렸고, 컴퓨터는 친근해야 한다는 그의 고집 속에 맥은 화면 아래 디스크드라이브와 턱을 닮은 홈을 갖춘 얼굴 같은 모습이 됐다. 그는 위쪽 플라스틱 띠를 좁혀 리사의 툭 튀어나온 이마 같은 인상도 지웠다.
363
1982년경 · 27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애플 케이스 디자인 특허 신청서에 제리 매넉·테리 오야마와 함께 이름을 올렸다.
364
1982년경 · 27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리사의 친부 문제를 묻는 《타임》 기자 마이클 모리츠에게, 확률로 따지면 미국 남성 28퍼센트가 그 아이의 아버지일 수 있다는 식으로 답했다.
365
1982년경 · 27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스탠퍼드 특강에서 윌크스배시포드 양복 상의와 구두를 벗어 두고 탁자에 올라 가부좌를 튼 채, 애플 주가 질문은 제쳐 두고 책 한 권 크기의 컴퓨터 같은 미래 제품을 열띠게 이야기했다.
366
1982년경 · 27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빌 앳킨슨의 그래픽 데모를 보다 모서리가 둥근 사각형도 그릴 수 있느냐고 물었고, 앳킨슨이 어렵고 필요도 없다고 하자 화이트보드·탁자 같은 실내 물건과 거리의 차창·게시판·표지판을 차례로 짚으며 둥근 사각형이 사방에 있다고 설득했다.
367
1982년경 · 27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세 블록을 걷는 사이 둥근 사각형 사례 17개를 찾아냈다고 말했고, 주차 금지 표지판 앞에서 빌 앳킨슨으로부터 둥근 사각형을 기본 그래픽 요소로 넣겠다는 답을 받았다.
368
1982년경 · 27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첫 매킨토시 글꼴을 다듬으며 리드 대학 캘리그래피 수업에서 익힌 세리프·산세리프와 자간·행간 지식을 되살렸다고 회고했다.
369
1982년경 · 27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 글꼴에 붙은 소도시 이름이 낯설다며 누구나 아는 세계 대도시 이름을 붙이라고 지시했고, 그 결과 시카고·뉴욕·제네바·런던·샌프란시스코·토론토·베니스 같은 서체가 생겼다고 수전 케어는 설명했다.
370
1982년경 · 27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서체에 매달리는 모습을 이해하지 못한 마이크 마쿨라로부터 폰트보다 중요한 일이 많지 않으냐는 말을 거듭 들었다.
371
1982년경 · 27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단순함과 재기를 함께 좇던 수전 케어와 손발이 잘 맞았고, 주로 일과가 끝날 무렵이나 이따금 일요일 아침에 찾아와 새 그래픽 작업을 하나하나 점검했다.
372
1982년경 · 27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마우스 클릭 속도 조절용으로 만든 토끼 아이콘을 이미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373
1982년경 · 27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리사의 제목 표시줄이 지나치게 검고 투박하다며 매킨토시에는 더 부드러운 세로 줄무늬를 요구했고, 빌 앳킨슨과 수전 케어는 그가 흡족해할 때까지 시안을 스무 개 넘게 다시 그렸다.
374
1982년경 · 27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제목 표시줄 손질에 시간을 너무 쓴다는 케어와 앳킨슨의 불만에, 사용자가 날마다 들여다볼 화면이니 결코 하찮지 않다며 언성을 높였다.
375
1982년경 · 27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차고 시절 워즈니악을 돕던 크리스 에스피노사에게 학업은 나중에도 할 수 있지만 맥을 만들 기회는 지금뿐이라고 설득해 버클리 대학을 그만두고 합류하게 했다.
376
1982년경 · 27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에스피노사가 만든 맥 계산기의 배경색·선 굵기·버튼 크기를 매일 퇴짜 놓다가, 그가 내놓은 모양 꾸미기 프로그램으로 10분 남짓 직접 디자인을 완성했다. 이 계산기 모양은 이후 15년 동안 맥의 표준으로 쓰였다.
377
1982년경 · 27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애플 전 제품에 한결같은 디자인 언어를 입히려고 제리 매넉과 비공식 모임 '애플 디자인 길드'의 손을 빌려 세계적 디자이너를 뽑는 공모전을 열었다.
378
1982년경 · 27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하르트무트 에슬링거를 만나러 독일 슈바르츠발트까지 날아가 벤츠를 시속 160킬로미터로 몰아붙이는 그의 패기와 열정에 매료됐고, 애플에 할리우드·음악·반항심을 담은 캘리포니아식 감성을 심어야 한다는 제안을 들었다.
379
1982년경 · 27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에슬링거의 '백설 공주' 모형(흰 케이스, 둥근 모서리, 얇은 홈)을 보자마자 채택해 애플 IIc에 곧장 적용했고, 캘리포니아로 옮겨 오는 조건으로 계약을 제안해 악수로 협력을 매듭지었다.
380
1982년경 · 27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사용자 눈에 띌 리 없는 맥 회로 기판의 메모리 칩 배열이 보기 흉하다고 지적했고, 소비자가 볼 일이 없다는 신입 엔지니어의 반박에 훌륭한 목수는 장롱 뒤판에도 싸구려 나무를 쓰지 않는다며 상자 속까지 아름답게 만들라고 답했다. 보이지 않는 곳까지 공들이는 장인 정신은 아버지 폴 잡스에게서 배운 것이었다.
381
1982년경 · 27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마이크 마쿨라에게서 배운 대로 포장과 첫인상까지 아름다워야 한다고 보고 맥 상자와 패키지 전체에 컬러 디자인을 입혀 거듭 고쳤으며, 앨런 로스만은 그가 버려질 상자를 50번이나 손보게 했다고 회고했다.
382
1982년경 · 27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 디자인이 완성되자 진정한 예술가는 작품에 서명한다며 맥 팀을 불러 모아 버렐 스미스부터 한 명씩 제도용지에 이름을 쓰게 했고, 45명이 모두 쓴 뒤 한가운데 자기 이름을 소문자로 적고 샴페인으로 건배했다.
383
1982년경 · 27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앤디 허츠펠드·버렐 스미스와 함께 소프트웨어 팀장 후보를 면접하면서 사생활을 캐묻고 칠면조 소리로 놀려 지원자가 자리를 뜨게 만들었다고 허츠펠드는 회고했다.
384
1982년경 · 27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리사 엔지니어 리치 페이지로부터 통제권을 잃자 리사를 무너뜨리려 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385
1982년 00월 00일, 27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마케팅 전략가 베리 캐시를 텍사코 타워스 팀의 노련한 어른 격으로 데려왔고, 애플 II를 사용자들이 멋대로 뜯어고치게 둔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며 일반 드라이버로는 열 수 없는 맥 케이스 전용 공구를 만들게 했다고 캐시는 회고했다.
386
1982년 00월 00일, 27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를 확장 슬롯 없이, 특수 공구 없이는 케이스를 열 수 없게 설계하도록 해 외부 기판이 끼어들어 디자인과 사용 경험을 흐트러뜨리지 못하게 했다.
387
1982년 00월 00일, 27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맥 자판에서 방향키를 없애 커서를 마우스로만 움직이게 했고, 이 결정으로 외부 개발자들은 맥 운영체제 전용 프로그램을 새로 짜야 했다. 고객이 늘 옳은 것은 아니라는 그의 생각이 깔린 선택이었다.
388
1982년 00월 00일, 27세 때, 스티브 잡스는 교도소에 기증할 컴퓨터를 얻으러 찾아온 자선단체 운영자 미미 파리나를 통해 그의 언니인 포크 가수 존 바에즈를 소개받았다.
389
1982년 00월 00일, 27세 때, 스티브 잡스는 소개 몇 주 뒤 쿠퍼티노에서 존 바에즈와 점심을 함께했다.
390
1982년 00월 00일, 27세 때, 스티브 잡스는 레지스 매케나 회사에서 일하던 연인 바버라 야신스키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있었다.
391
1982년 00월 00일, 27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야신스키와 헤어진 뒤 열네 살 위인 존 바에즈와 진지한 연인 관계를 시작했다.
392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1975년 롤링 선더 레뷰를 비롯한 밥 딜런 공연 실황의 비공식 녹음테이프를 모두 구해 소장했다.
393
1982년 00월 00일, 27세 때, 스티브 잡스는 존 바에즈를 사무실로 데려와 아직 비밀이던 매킨토시 시제품을 보여 줘 팀원들을 놀라게 했다.
394
1982년 00월 00일, 27세 때, 스티브 잡스는 교제 초기 존 바에즈를 스탠퍼드 쇼핑몰의 랄프 로렌 매장에 데려가 빨간 드레스가 잘 어울린다고 권했지만, 자기 셔츠만 몇 벌 사고 드레스는 사 주지 않았다.
395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존 바에즈의 아들 가브리엘에게 애플 II를, 바에즈에게는 나중에 매킨토시를 선물했다.
396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데비 콜먼과 조애나 호프먼에게 10대 아들을 둔 존 바에즈와 결혼해도 될지 고민을 털어놓았다.
397
1982년 01월 00일, 2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워즈니악이 끝내 부동소수점 처리를 넣지 않은 애플 II 베이식 대신 마이크로소프트에 매킨토시용 베이식을 맡겼고, 워드프로세서·차트·스프레드시트 앱까지 요청해 빌 게이츠로부터 엑셀과 워드를 매킨토시용으로 개발한다는 합의를 받아 냈다.
398
1982년 01월 00일, 26세 때, 스티브 잡스는 빌 게이츠를 설득해, 매킨토시가 1983년 1월 나온 뒤 1년간은 마이크로소프트가 그래픽 기반 프로그램을 다른 어느 회사에도 팔지 않는다는 조건에 합의를 얻어 냈다.
399
1982년 02월 00일, 26세 때, 스티브 잡스는 《타임》 2월호 젊은 기업가 특집의 표지에 삽화로 실렸고, 기사는 그가 사실상 혼자서 PC 산업을 일궜다고 평가했다.
400
1982년 05월 00일, 27세 때, 스티브 잡스는 새로 맥 마케팅을 맡은 마이크 머리가 은밀한 메모를 보내 맥 운영체제를 다른 제조사에 라이선스해 업계 표준으로 키우자고 제안하자, 자기 창작물이 손을 떠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해 단호히 거부했다.
401
1982년 7월경 · 27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위스콘신주 레이크 제네바의 플레이보이 클럽을 무대로 벤 로젠이 마련한 업계 콘퍼런스에 빌 게이츠와 함께 참석해, 모두가 IBM PC만 논하는 사이 둘만 아는 애플의 그래픽 인터페이스를 두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나눴다고 게이츠는 회고했다.
402
1982년 7월경 · 27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쿠퍼티노를 자주 찾던 빌 게이츠 앞에서 맥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며 직원들을 몰아붙였고, 금요일 저녁 식사 때 들떴다가 다음 날이면 팔리기나 하겠느냐고 불안해했다고 게이츠는 회고했다.
403
1982년 7월경 · 27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마이크로소프트 방문길 시애틀 테니스 클럽 만찬에서 매킨토시는 설명서가 필요 없을 만큼 쉽다고 역설해 매뉴얼을 만들던 마이크로소프트 측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404
1982년 09월 00일, 27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 팀원 50명가량을 몬테레이 근처 파하로 사구로 데려가 수련회를 열고 타협하지 말 것을 첫째 원칙으로 내걸었으며, 잘못된 제품을 내느니 일정을 넘기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이런 합숙은 반년에 한 번꼴로 인근 휴양지에서 열렸다.
405
1982년 09월 00일, 27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이 수련회 발표판에 오른 '여정 자체가 보상'이라는 말을 훗날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격언이라고 했다.
406
1982년 09월 00일, 27세 때, 스티브 잡스는 발표를 마치며 공책만 한 컴퓨터 모형을 꺼내 80년대 중후반쯤 내놓고 싶은 제품이라고 보여 줬고, 이 자리의 쉰 명이 우주에 흔적을 남길 일을 하고 있으며 그것이 평생 가장 짜릿한 일이라는 말로 합숙을 마쳤다.
407
1982년 10월 00일, 27세 때, 스티브 잡스는 회사를 이끌고 싶었지만 아직 이르다고 느꼈고, 마이크 마쿨라로부터 사장을 맡기엔 너무 거칠고 미숙하다는 말을 들은 뒤 함께 외부에서 사장감을 찾기 시작했다.
408
1982년 11월 00일, 27세 때, 스티브 잡스는 IBM PC 사업을 키워 낸 돈 에스트리지에게 한 해 100만 달러 급여에 계약금 100만 달러를 얹어 제안했으나 퇴짜를 맞았다. 에스트리지는 잡스가 전화망을 공짜로 쓰는 장치로 돈을 벌었다는 얘기를 듣고 거북해했다.
409
1982년 12월 00일, 27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마쿨라와 함께 헤드헌터 게리 로셰에게 업계 밖까지 넓혀 후보를 찾아 달라고 맡겼고,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에서 호평을 들었던 펩시 사장 존 스컬리를 만나 보고 싶다고 했다.
410
1982년 12월 00일, 27세 때, 스티브 잡스는 《타임》 올해의 인물로 자신이 뽑힐 것이라 믿고 《타임》 샌프란시스코 지국을 이끌던 마이클 모리츠를 사내로 초대해 직원들에게 취재에 적극 응하라고 지시했다.
411
1983년 00월 00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자신에게 가장 당당히 맞선 공로로 그해 상을 받은 데비 콜먼을 그 뒤로도 꾸준히 승진시켰다.
412
1983년 00월 00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스펀 국제 디자인 컨퍼런스의 대형 텐트 강연에서 소니식 어둡고 산업적인 하이테크 스타일이 저물고 단순함을 앞세운 바우하우스 스타일이 떠오를 것이라고 내다보며, 애플 제품을 브라운 가전처럼 깔끔한 흰색 패키지에 담겠다고 밝혔다.
413
1983년 00월 00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같은 강연에서 애플 제품은 밝고 순수하며 단순할 것이고 뉴욕 현대미술관에 걸릴 수준을 지향한다고 말했고, 사람들이 책상 위 서류를 다뤄 본 경험을 그대로 쓸 수 있다며 맥의 데스크톱 메타포를 소개했다.
414
1983년 00월 00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같은 컨퍼런스에서 강연한 베트남 참전 기념비 설계자 마야 린과 이야기를 나눈 뒤 그녀를 애플로 초대했고, 쑥스러워 안내는 데비 콜먼에게 맡겼다.
415
1983년 00월 00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서 일주일을 보낸 마야 린에게서 랩톱은 왜 납작할 수 없느냐는 질문을 받고, 기술이 갖춰지면 그것을 목표로 삼겠다고 답했다.
416
1983년 00월 00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당시 산업디자인계가 침체해 있다고 보며 리처드 새퍼의 램프, 임스 부부의 가구, 디터 람스의 브라운 제품을 좋아했다.
417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디자인 감각이 깊어지면서 일본 양식에 빠져 디자이너 미야케 이세이, 건축가 I. M. 페이 등과 교류하기 시작했다.
418
1983년 00월 00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연구용 고성능 컴퓨터에 관심을 두고 브라운 대학교 컴퓨터 과학부를 찾았다.
419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대학 연구소들을 돌며 매킨토시를 선보였을 때 훨씬 성능이 높은 기계가 필요하다는 반응을 들었다.
420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 부문을 이끌던 시절 유닉스 위에 맥 인터페이스를 얹는 고성능 기종 빅 맥 프로젝트를 출범시켰다.
421
1983년 00월 00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존 바에즈와 함께 간 실리콘밸리 만찬에서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학생 제니퍼 이건의 옆자리에 앉았다. 이 무렵 바에즈와의 관계는 오래가지 않으리라는 것을 두 사람 모두 알고 있었다.
422
1983년 00월 00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여름방학 동안 샌프란시스코의 한 잡지사에서 일하던 제니퍼 이건의 연락처를 알아내 전화를 걸었고, 텔레그래프 힐 근처 카페 재클린에서 첫 데이트를 했다.
423
1983년 00월 00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제니퍼 이건과 1년 남짓 사귀며 그녀를 보러 동부로 자주 날아갔고, 뉴욕에 가면 기차를 타고 온 이건과 칼라일 호텔이나 제이 샤이엇의 어퍼이스트사이드 아파트에서 함께 지냈다.
424
1983년 00월 00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제니퍼 이건과 카페 룩셈부르크에서 자주 식사하고, 고쳐 지을 생각이던 산레모 아파트를 여러 차례 함께 둘러보며 영화와 오페라를 보러 다녔다.
425
1983년 00월 00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떨어져 지내는 밤이면 제니퍼 이건과 몇 시간씩 통화하며 물질에 대한 집착을 경계하는 불교적 신념을 두고 논쟁했고, 소비 욕구를 버려야 깨달음에 이른다며 스승 오토가와 고분 치노의 녹음테이프를 보냈다. 이건은 누구나 갖고 싶어 할 컴퓨터를 만드는 일과 그 신념이 어긋나지 않느냐고 반박했다.
426
1983년경 · 28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보스턴의 맥월드 행사 무대에서 여자 친구를 무척 사랑해 필라델피아행 비행기를 타러 서둘러 가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해 청중의 환호를 받았다.
427
1983년경 · 28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제니퍼 이건에게 자신은 오래 살지 못할 것 같다는 예감을 털어놓으며, 그 예감 때문에 열정적이고 조급하게 움직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428
1983년 01월 00일, 27세 때, 스티브 잡스는 《타임》 연말호 표지에 자기 얼굴 대신 '올해의 기계'로 뽑힌 컴퓨터 조각상이 오른 것을 확인하고 기사를 읽어 내려가다 울었으며, 언론에 들뜨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회고했다.
429
1983년 01월 00일, 27세 때, 스티브 잡스는 함께 실린 프로필 기사에서 PC 시대를 연 열정적 설득가이자 회의 중 울기도 하는 인물로 그려졌고, 기사에는 그가 외면해 온 딸 리사 브레넌의 존재도 실렸다.
430
1983년 01월 00일, 27세 때, 스티브 잡스는 기자에게 딸의 존재를 확인해 준 사람이 친구 대니얼 콧키라는 것을 알아내고, 맥 팀 작업 공간에서 동료 대여섯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배신했다며 그를 몰아세웠다.
431
1983년 01월 00일, 27세 때, 스티브 잡스는 쿠퍼티노를 찾은 존 스컬리와의 점심 내내 말이 없다가, 기업 경영진이 컴퓨터를 제대로 쓰지 못한다는 그의 말에 컴퓨터 쓰는 방식을 바꾸겠다고 답했다.
432
1983년 01월 00일, 27세 때, 스티브 잡스는 리사 개발진 소속이 아니었지만 회장이자 회사의 얼굴로 뉴욕에 가서, 레지스 매케나에게 배운 대로 칼라일 호텔 객실에 리사를 놓고 주요 언론사 기자들과 한 시간씩 차례로 독점 인터뷰를 했다.
433
1983년 01월 00일, 27세 때, 스티브 잡스는 리사만 다루기로 한 인터뷰에서 매킨토시를 언급하고 말았고, 《타임》·《비즈니스 위크》·《월스트리트 저널》·《포춘》 기사 상당수가 연말 나올 저가형 매킨토시를 다뤘다. 그는 《비즈니스 위크》에 맥이 지구상 어떤 컴퓨터보다 경이로운 기계가 되리라 장담하면서도 리사와 호환되지 않는다고 인정했다.
434
1983년 01월 00일, 27세 때, 스티브 잡스는 리사가 맥보다 먼저 나오면서 존 카우치와의 내기에 져 5000달러를 물어야 했다.
435
1983년 01월 00일, 27세 때, 스티브 잡스는 나온 지 몇 달 만에 애플의 희망이 매킨토시로 옮겨 가게 만든 리사를 두고, 가격이 지나치게 높았고 일반 소비자를 상대하던 회사가 기업 시장을 노린 것이 패인이었다고 훗날 짚었다.
436
1983년 01월 00일, 27세 때, 스티브 잡스는 리사 홍보차 머문 칼라일 호텔에서 존 스컬리를 다시 만나 팀원들에게 큰 고객사가 될 수 있는 펩시의 사장이라고 소개했고, 존 카우치가 리사를 시연하는 동안 이 기계가 인간과 컴퓨터의 관계를 바꿀 것이라고 열변을 토했다.
437
1983년 01월 00일, 27세 때, 스티브 잡스는 스컬리와 포 시즌스 식당에서 자정 가까이 대화하며 펩시 챌린지처럼 광고·행사·홍보를 엮어 신제품을 전국적 사건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고, '애플 제너레이션'을 만들 수 있다는 그의 말에 공감한 뒤 칼라일 호텔까지 함께 걸었다.
438
1983년 01월 00일, 27세 때, 스티브 잡스는 리사가 나온 달 말 카멜에서 열린 매킨토시 팀 수련회에서 진정한 예술가는 출하한다는 금언을 내걸고, 해군보다 해적이 낫다는 말로 반항 정신을 북돋웠으며, 무대 위 맥 시제품에 생수를 부어 세례식을 치렀다.
439
1983년 01월 00일, 27세 때, 스티브 잡스는 리사 홍보 인터뷰에서 빠져 서운했던 빌 앳킨슨이 호텔 방까지 찾아와 그만두겠다고 하자, 60명이 기다린다며 짜증을 내고 그를 지나쳐 회의장으로 갔다.
440
1983년 01월 00일, 27세 때, 스티브 잡스는 연설 중 같은 이름을 쓰던 음향 기기 업체 McIntosh와의 상표 문제가 정리됐다고 알렸지만, 실은 협상이 아직 진행 중이었다.
441
1983년 01월 00일, 27세 때, 스티브 잡스는 카멜 수련회에서 데비 콜먼으로부터 5.25인치 드라이브 '트위기'의 불량률 자료를 받았다.
442
1983년 02월 00일, 27세 때, 스티브 잡스는 며칠 뒤 새너제이 공장에서 트위기 생산 공정을 살펴 단계마다 절반 넘게 불량이 나오는 것을 확인하고 공장 인력을 모두 해고하겠다고 고함쳤으며, 맥 엔지니어링 책임자 밥 벨빌이 그를 밖으로 끌고 나가 다른 해법을 찾아보자고 진정시켰다.
443
1983년 02월 00일, 27세 때, 스티브 잡스는 몇 주 뒤 빌 앳킨슨을 연봉 인상과 스톡옵션, 프로젝트 선택권이 따르는 '애플 펠로'로 지명했고, 앳킨슨이 짠 그림 프로그램을 맥에 실으면서 그 이름을 제작자로 화면에 밝히는 '맥페인트 — 개발자 빌 앳킨슨' 표기를 넣기로 했다.
444
1983년 02월 00일, 27세 때, 스티브 잡스는 2월의 한 토요일 코네티컷주 그리니치의 존 스컬리 저택을 찾아가, 무게 130킬로그램인데도 손끝 하나로 스르르 열리는 주문 제작 참나무 문에 홀딱 반했다.
445
1983년 02월 00일, 27세 때, 스티브 잡스는 스컬리가 아내의 컨버터블로 안내한 펩시 본사에서 로댕·무어·콜더·자코메티 조각 정원을 보며 자신이 몸담은 서부 기술 업계와 동부 대기업 문화가 얼마나 다른지 실감했고, 간부 전용 운동 공간에는 이해가 안 간다는 반응을 보였다.
446
1983년 02월 00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28번째 생일에 맥 팀원들로부터 애플 본사 앞 도로변 광고판에 '해적들' 이름으로 내건 축하 문구를 받았다.
447
1983년 03월 00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하와이 펩시 간부 총회를 마치고 쿠퍼티노에 들른 스컬리에게 애플 외부인으로는 처음 맥 시제품을 시연했고, 앤디 허츠펠드와 수전 케어에게 애플 로고 사이로 펩시 병과 캔이 나오는 시연 화면을 만들게 했다.
448
1983년 03월 00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뉴욕을 찾아 센트럴파크를 함께 걸으며 존 스컬리에게 애플에 합류해 달라고 청했다.
449
1983년 03월 00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스컬리의 제안으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그리스·로마 전시실에서 시대별 조각의 차이에 관한 설명을 귀담아들었고, 사업가가 아니었다면 화가가 됐을 것이라는 스컬리에게 자신은 컴퓨터 업계가 아니었다면 파리의 시인이 됐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450
1983년 03월 00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스컬리와 브로드웨이 콜로니 레코드점에 들러 밥 딜런·존 바에즈·엘라 피츠제럴드와 윈드햄 힐 재즈 음반을 보여 줬고, 이어 사들일 계획이던 센트럴파크 웨스트 산레모 아파트의 복층 펜트하우스까지 함께 걸어갔다.
451
1983년 03월 00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산레모 테라스에서 연봉·입사 보너스·조기 해고 퇴직금으로 각각 100만 달러를 요구받자 사비로라도 맞추겠다며 스컬리야말로 애플을 이끌 최적임자라고 했고, 친구이자 고문으로만 돕겠다는 마지막 거절에 부딪혔다.
452
1983년 03월 00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한동안 침묵한 끝에 설탕물이나 팔며 남은 인생을 보낼 것인지 세상을 바꿀 기회를 잡을 것인지 스컬리에게 물었고, 이 질문은 며칠 동안 스컬리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453
1983년 4월경 · 28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트위기를 대신할 드라이브를 찾아 밥 벨빌·로드 홀트와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에서 신칸센을 타고 알프스 전자 공장을 찾았으나, 그곳엔 조잡한 모형뿐이었고 벨빌은 1년 안에 공급받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454
1983년 4월경 · 28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일본 기업들을 도는 내내 정장 차림 경영진 앞에 청바지와 운동화로 나타났고, 제품을 봐 달라는 엔지니어들에게 쓰레기라고 쏘아붙이거나 선물을 받지 않고 자리를 뜨기도 했다.
455
1983년 4월경 · 28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일정 끝에 방문한 도쿄 근교 소니 공장이 손작업에 기대 어수선하다고 여겼고, 당장 납품 가능한 소니 제품을 채택하자는 벨빌의 건의를 물리친 채 알프스와 계약하고 소니와는 손을 끊으라고 지시했다.
456
1983년 4월경 · 28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거의 매일 오후 맥 작업장을 찾았고, 그때마다 팀원들은 몰래 와 있던 소니 엔지니어 고모토 히데토시를 숨겨야 했다. 쿠퍼티노 신문 가판대에서 그와 마주쳤을 때도 잡스는 일본에서 본 얼굴이라는 것만 알아보고 의심하지 않았다.
457
1983년 04월 00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 출시 계획을 짜기 시작하면서 제품만큼 혁신적인 광고, 사람들이 걸음을 멈출 만한 천둥 같은 무언가를 원했다.
458
1983년 04월 08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넉 달 가까이 공을 들인 끝에 펩시의 존 스컬리를 애플 사장 겸 CEO로 맞아들였다.
459
1983년 05월 00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파하로 사구 경영진 수련회에서 마쿨라가 드라이브 대책을 따지자 밥 벨빌이 곧 대안을 낼 수 있다고 답하는 것을 듣고서야 소니 설계자가 쿠퍼티노에 와 있던 이유를 깨달았고, 자기 지시를 무시하고 옳은 길을 택한 벨빌과 엔지니어들에게 고맙다고 했다고 허츠펠드는 전했다.
460
1983년 05월 00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스컬리가 처음 참석한 경영진 회의에서 회의실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맨발 발가락을 만지작거렸다.
461
1983년 05월 00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리사 쪽이 쓸모없는 기계를 내놨다고 공격했다가 한 리사 팀원으로부터 맥도 일정을 못 지키지 않았느냐는 반격을 받았다.
462
1983년 06월 00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맥 팀이 밴들리 3동으로 옮긴 뒤 로비에 뵈젠도르퍼 피아노와 BMW 오토바이를 들여놓아 장인 정신을 자극했고, 영리하고 다소 반항적인 인재를 직접 골라 뽑으며 면접에서 엉뚱한 질문으로 순발력과 유머를 시험했다.
463
1983년 06월 00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팀원들이 밴들리 3동 옥상에 내건 해적기를 아껴 매킨토시 개발이 마무리될 때까지 그대로 걸어 두게 했다.
464
1983년 06월 00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맥 팀이 주 90시간을 일한다고 자랑했고, 데비 콜먼은 이를 받아 '주 90시간 근무, 너무 행복하다'는 후드 티셔츠를 만들었다.
465
1983년 06월 00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 II 조직을 수레 끄는 말들에 빗대 낮춰 보면서도 회사를 먹여 살리는 것이 그들이라는 점은 속으로 인정했다.
466
1983년 06월 00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어느 토요일 존 스컬리 부부를 로스가토스의 튜더 양식 자택으로 불러 아침을 대접했는데, 당시 그는 레지스 매케나 회사 직원인 연인 바버라 야진스키와 살고 있었고 거실엔 소파 대신 스티로폼 방석뿐이었다.
467
1983년 06월 00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그날 식탁에서 자기 수명이 길지 않을 듯하니 실리콘밸리 역사에 이름을 남기려면 서둘러 대단한 것을 이뤄야 한다고 스컬리에게 말했다.
468
1983년 06월 00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스컬리 합류 초기 몇 달 동안 하루에도 여러 번 그의 방을 찾아 당신만 이해해 줄 것 같다며 추켜세웠고, 새벽 2시에도 전화해 아이디어를 쏟아 내곤 했다.
469
1983년 07월 00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스컬리 합류 두세 달 만에 그가 습득이 더디고 자격 없는 이들을 끌어올리려 한다고 결론 내렸으며, 둘이 닮았다는 스컬리의 믿음을 부추겨 그를 움직일 수 있다고 보고 점점 얕보게 됐다.
470
1983년 07월 00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밤 11시 맥 팀 사무실에서 팀원이 가져온 코드를 무시하거나 내던지며 실력이 더 되는데도 이 수준에 그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고 스컬리는 회고했고, 자제하라는 스컬리의 조언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감정을 걸러 내지는 못했다.
471
1983년 08월 00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1000달러 선으로 구상됐다가 자신의 디자인 변경으로 원가가 올라 1995달러로 계획된 매킨토시 값을 두고 스컬리와 첫 큰 충돌을 빚으며 이윤이 아니라 혁명적 제품을 원한다고 맞섰고, 스컬리는 1995달러와 대규모 출시 마케팅 가운데 하나만 고르라고 못 박았다.
472
1983년 08월 00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앤디 허츠펠드 등 팀원들에게 스컬리가 2495달러를 고집한다고 전하며 그대로 두지 않겠다고 장담했지만 가격 싸움에서 밀렸고, 이 일로 제품과 회사에 대한 통제권이 빠져나가고 있다고 느꼈다.
473
1983년 09월 00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샤이엇데이의 리 클라우 팀이 오웰의 『1984』를 비튼 카피를 맥 데뷔 광고로 살리자고 주문했고, 「블레이드 러너」의 리들리 스콧에게 연출을 맡겨 애플을 사이버펑크 감성과 연결했다.
474
1983년 09월 00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 광고를 계기로 리 클라우와 맺은 관계를 이후 30년 가까이 이어 갔다.
475
1983년 09월 00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스토리보드에 회의적이던 스컬리를 상대로 판을 뒤집을 광고가 꼭 있어야 한다고 물러서지 않아 당시로선 드문 75만 달러의 제작 예산을 얻어 냈다.
476
1983년 9월경 · 28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상자에서 꺼내 바로 쓰는 완결형 시스템을 위해 맥페인트·맥라이트와 함께 애플 로고를 단 마이크로소프트 앱을 매킨토시에 번들로 넣으려던 계획을, 일부 프로그램이 늦어질 기미를 보이자 계약 조항을 들어 철회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소비자 직판을 서둘러 준비해야 했다.
477
1983년 9월경 · 28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마이크로소프트가 맥의 그래픽 화면 방식을 흉내 낸 제품을 만들까 속으로 크게 염려하면서도, 이를 경고한 앤디 허츠펠드 앞에서는 그들 실력으로는 어림없다며 태연한 체했다.
478
1983년 09월 00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를 생산할 최첨단 공장을 프리몬트에 세우기로 결정했다.
479
1983년 10월 00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하와이 애플 세일즈 콘퍼런스 피날레에서 '데이팅 게임' 패러디 촌극의 사회를 맡아 빌 게이츠·미치 케이퍼·프레드 기번스를 출연자로 세웠고, 맥 운영체제가 새 업계 표준이 될 수 있느냐는 물음에 게이츠로부터 진정 혁신적인 제품은 맥뿐이라는 답을 이끌어 냈다.
480
1983년 10월 00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같은 행사 단상에서 IBM이 1958년부터 저지른 오판을 하나하나 짚고 IBM이 PC 시장을 집어삼키려 한다고 경고하며 오웰의 『1984』를 끌어왔고, 이어 '1984' 광고를 세일즈맨들에게 처음 공개해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다.
481
1983년 11월 00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마이크로소프트가 IBM PC용 GUI 운영체제 '윈도' 계획을 발표하자 격분했으나 그래픽 소프트웨어 공급 금지 기간이 끝나 가 손쓸 방법이 없음을 알았고, 외부 소프트웨어 홍보 담당 마이크 보이치에게 빌 게이츠를 당장 불러오라고 지시했다.
482
1983년 11월 00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홀로 쿠퍼티노에 온 빌 게이츠를 애플 직원 10명이 둘러싼 회의실에서 믿었는데 도둑질을 한다며 몰아세웠고, 게이츠는 둘 다 제록스라는 부자 이웃의 TV를 훔치러 들어갔는데 잡스가 먼저 가져간 셈이라고 받아쳤다.
483
1983년 11월 00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게이츠가 시연한 윈도를 계약 위반으로 따지는 대신 쓰레기라고 깎아내렸다가 '근사한 쓰레기'라는 응수를 들었고, 회의 내내 거칠게 굴다 울먹이며 감정을 추스르겠다고 하기도 했다고 게이츠는 회고했다.
484
1983년 11월 00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빌 게이츠에게 긴 산책을 청해 쿠퍼티노에서 디앤자 대학교까지 오가며 태도가 누그러졌고, 좋다면서도 애플 것과 너무 똑같이는 만들지 말라고 당부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매킨토시용 앱을 계속 만들어야 했기에 강하게 나설 수 없었기 때문이다.
485
1983년 12월 00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이사회에서 '1984' 광고를 상영했으나 회의실은 침묵에 잠겼고, 이사 대부분이 등을 돌린 반응에 크게 분노했다.
486
1983년 12월 00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저녁에 맥 팀 사무실에 들른 워즈니악을 붙잡고 VCR로 광고를 보여 주며 이사회가 슈퍼볼 방영을 막았다고 전했고, 광고 시간 값이 80만 달러라는 말에 워즈니악은 절반을 자신이 대겠다고 나섰다.
487
1983년 12월 00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앤디 허츠펠드·버렐 스미스와 뉴욕에 가서 《뉴스위크》에 맥 개발자들의 이야기를 기사로 다뤄 달라고 설득했고, 매킨토시를 시연한 뒤 위층에서 캐서린 그레이엄을 만났다.
488
1983년 12월 00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롤링 스톤》의 스티븐 레비에게 맥 팀을 표지 기사로 실어 달라며 피자집까지 옮겨 설득했지만, 최근 호를 읽었느냐는 물음에 MTV 기사를 쓰레기라고 혹평했다가 그것이 레비의 글이라는 말을 들었다. 표지 기사는 끝내 성사되지 않았다.
489
1983년 12월 00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레지스 매케나에게 익힌 언론 다루기를 바탕으로 기자들의 경쟁심을 건드리고 독점 취재를 내주는 대가로 큰 지면을 얻어, 맥을 알리는 데 광고 못지않게 기사 노출을 주된 무기로 썼다.
490
1984년 00월 00일, 29세 때, 스티브 잡스는 제니퍼 이건이 결혼하기에는 아직 어리다며 선을 그은 직후 그녀와의 관계가 식었다.
491
1984년 00월 00일, 29세 때, 스티브 잡스는 스컬리에게 보여 줬던 센트럴파크 웨스트 산레모 아파트의 복층 펜트하우스를 사들이고 건축가 I. M. 페이 사무소 소속 제임스 프리드에게 리모델링을 의뢰했으나, 세부에 매달리다 끝내 입주하지 못했다.
492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이 펜트하우스를 훗날 뮤지션 보노에게 1500만 달러에 팔았다.
493
1984년 00월 00일, 29세 때, 스티브 잡스는 팰러앨토 위쪽 우드사이드에 구리 광산 부호가 지은 방 14개짜리 스페인 식민지풍 저택도 샀지만, 살면서 가구를 제대로 들이지 않았다.
494
1984년 00월 00일, 29세 때, 스티브 잡스는 프리몬트 공장 기계를 애플 로고처럼 밝은 색으로 칠하길 원했으나 생산 총괄 맷 카터가 결정을 기다리다 못해 흔한 베이지와 회색으로 마감해 버리자 다시 칠하라고 지시했고, 가장 비싼 기계를 파랗게 칠했다가 고장이 나 '스티브의 어리석음'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495
1984년 00월 00일, 29세 때, 스티브 잡스는 쓸데없는 충돌에 질려 사표를 낸 맷 카터 자리에, 잡스에게 가장 꿋꿋하게 대든 팀원으로 상까지 받았던 맥 부문 재무 담당 데비 콜먼을 기용했다.
496
1984년 00월 00일, 29세 때, 스티브 잡스는 공장 벽을 순백으로 칠하게 하고 흰 장갑을 낀 채 먼지를 확인하며 바닥에 음식을 놓고 먹어도 될 정도로 닦으라고 데비 콜먼에게 지시했으며, 이런 집착이 완벽에 대한 열정을 다지고 일본 공장에서 본 팀워크와 규율을 따르려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497
1984년 00월 00일, 29세 때, 스티브 잡스는 어느 일요일 아침 아버지 폴 잡스를 프리몬트 공장으로 모셔 와 데비 콜먼의 안내로 구경시켜 드렸고, 늘 연장을 가지런히 정리하던 아버지가 깨끗하고 완벽하다며 감탄하는 모습을 내내 자랑스럽게 지켜봤다.
498
1984년경 · 29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엑셀에 홀딱 빠져 빌 게이츠와 은밀히 거래를 맺었다. 엑셀을 2년 동안 맥에서만 팔고 IBM PC용은 내지 않는 조건으로, 애플은 사내 맥용 베이식 개발을 접고 마이크로소프트 베이식을 기한 없이 쓰기로 했다.
499
1984년 00월 00일, 29세 때, 스티브 잡스는 존 스컬리와 함께 매사추세츠 케임브리지로 가서 오랫동안 우러러본 에드윈 랜드를 만났다.
500
1984년 00월 00일, 29세 때, 스티브 잡스는 프로그디자인이 스티브 워즈니악의 리모컨 디자인을 맡지 못하도록 막았다.
501
1984년 01월 00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원조 매킨토시 출시 리허설에서 조명 연출에 집요하게 매달렸고, 출시 행사를 하나의 사건으로 꾸며 신제품 발표의 새 형식을 세웠다.
502
1984년 01월 00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 출시 무렵 겨울방학을 맞아 샌프란시스코의 어머니 집에 와 있던 제니퍼 이건에게 포장된 매킨토시를 들고 찾아가 방에 직접 설치해 주었다.
503
1984년 01월 00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뉴스위크》 기사에서 방향키를 키보드에 달자는 직원에게 해고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는 일화와 함께 변덕스럽고 카리스마 있는 인물로 소개됐다.
504
1984년 01월 00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소프트웨어 완성 직후 맥 팀에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영화 「불의 전차」 주제곡에 맞춰 기능을 보여 줄 출시 행사용 시연 컴퓨터를 주말까지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505
1984년 01월 00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허츠펠드가 이틀 만에 만든 주제곡 재생 프로그램의 음질이 못하다며 음반을 쓰기로 했고, 글자를 음성으로 읽는 프로그램에 감탄해 매킨토시가 스스로를 소개하게 하자고 정했다.
506
1984년 01월 08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기자 시연 준비로 맨해튼 그랜드 하얏트에 머물던 일요일 오전, 맥 팀과 전화로 회의하며, 2주를 더 달라는 소프트웨어 팀장의 요청에 화내지 않고 팀을 칭찬하면서도 일정은 미룰 수 없다며 16일에 그들 이름이 들어간 코드를 반드시 넘기겠다고 했다.
507
1984년 01월 16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월요일 오전 8시 30분 작업실에 들어서서 소파에 쓰러져 있던 앤디 허츠펠드와 남은 사소한 오류를 점검했고, 맥 팀은 출하하는 것이 예술가라는 그의 선언대로 기한을 지켜 코드를 넘겼다.
508
1984년 01월 22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이사회 반대를 넘어 살아남은 '1984' 광고가 제18회 슈퍼볼 중계 3쿼터에 방영돼 9600만 명 넘는 시청자에게 노출됐다.
509
1984년 01월 23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출시 행사 전날 밤 다섯 시간에 걸친 리허설에서 화면 표시와 무대 조명을 거듭 고치게 했고, 스컬리에게 관람석 곳곳을 돌며 무대가 어떻게 보이는지 살피고 조명에 대해 말해 달라고 부탁했다.
510
1984년 01월 23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자기 발표에 가장 날카롭게 신경을 곤두세워 슬라이드를 집어 던지고 무대 담당자에게 화를 냈으며, 원고를 손보라는 스컬리의 조언에 언짢아하면서도 그를 워즈니악·마쿨라와 같은 창업자급 동료로 여긴다고 치켜세웠다.
511
1984년 01월 24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푸른 더블브레스트 재킷에 연초록 나비넥타이 차림으로, 무대 뒤에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 몹시 떨린다고 스컬리에게 털어놓은 뒤 애플 회장으로서 디앤자 대학교 플린트 센터 주주총회의 개회를 선언했다.
512
1984년 01월 24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밥 딜런의 「더 타임스 데이 아 어체인진」 2절을 들뜬 목소리로 빠르게 낭독하며 주주총회를 열었다.
513
1984년 01월 24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하와이에서 선보였던 대IBM 연설을 한층 극적으로 손봐, 1958년 IBM이 전자사진 복사 기술을 가진 회사를 사들이지 않은 탓에 제록스가 태어났다는 일화로 웃음을 끌어낸 뒤 애플만이 IBM의 독식에 맞설 회사이며 빅 블루가 정보 시대를 지배할지 묻는 것으로 절정에 올랐다.
514
1984년 01월 24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강당이 어두워지며 '1984' 광고가 상영된 뒤, 무대 가운데 탁자의 천 가방에서 매킨토시와 마우스를 꺼내 연결하고 셔츠 주머니의 3.5인치 플로피디스크를 넣어, 「불의 전차」 선율 속에 화면을 대형 스크린에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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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01월 24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의 목소리를 처음 들어 보자며 마우스를 눌렀고, 스스로를 소개한 첫 컴퓨터가 된 매킨토시로부터 아버지 같은 존재로 소개받은 뒤 5분 가까이 이어진 기립 박수 속에 목이 메어 잠시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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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01월 24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출시 당일 시장조사를 어떻게 했느냐는 《파퓰러 사이언스》 기자의 질문에 그레이엄 벨이 시장조사를 거쳐 전화를 발명했느냐고 되물었다.
517
1984년 01월 24일, 28세 때, 스티브 잡스는 그날 오후 밴들리 3동 주차장에 들어온 트럭 앞에 맥 팀을 모아, 명판을 붙인 매킨토시 100여 대를 팀원 한 명 한 명에게 웃으며 악수와 함께 건넸다.
518
1984년 03월 00일, 29세 때, 스티브 잡스는 미국을 공식 방문한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의 부인 다니엘 미테랑의 공장 견학을 맡아 통역은 조애나 호프먼의 배우자 알랭 로스만에게 맡겼고, 근로 조건과 휴가를 묻는 질문이 이어지자 근로자 복지가 궁금하면 직접 와서 일해 보라고 말했다. 로스만은 이 말을 프랑스어 감사 인사로 바꿔 넘겼다.
519
1984년 03월 00일, 29세 때, 스티브 잡스는 쿠퍼티노로 돌아오는 고속도로에서 미테랑 부인에게 분통을 터뜨리며 벤츠를 시속 160킬로미터 넘게 몰다 경찰에 단속됐고, 바쁘다며 경적을 울리다 다시 과속하면 수감될 수 있다는 경고를 받고도 떠나자마자 또 속도를 냈다고 로스만은 전했다.
520
1984년 3월경 · 29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 출시 뒤 사내 위상을 되찾아, 존 스컬리가 리사와 매킨토시 부문을 하나로 합치면서 통합 부문의 책임을 맡았다.
521
1984년 3월경 · 29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두 팀을 모아 맥 출신 리더들에게 윗자리를 모두 주고 리사 인력 넷 중 하나는 정리하겠다고 선언하며 리사 팀원들을 실패한 B급 팀이라 불렀고, A급 팀을 지키려면 B급을 용납하지 않는 무자비함이 필요하다는 것이 맥에서 얻은 교훈이라고 회고했다.
522
1984년 3월경 · 29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두 팀 모두에서 일한 빌 앳킨슨으로부터 리사 엔지니어들은 열심히 일한 뛰어난 인재였다며 그 처사가 가혹하고 불공평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523
1984년 05월 00일, 29세 때, 스티브 잡스는 스컬리 합류 1주년을 맞아 쿠퍼티노 남서쪽 언덕의 르 무통 누아르에서 이사진·팀장·동부 투자자들을 불러 깜짝 축하 만찬을 열었다.
524
1984년 05월 00일, 29세 때, 스티브 잡스는 건배사에서 매킨토시 출시일과 스컬리가 합류를 결심한 날을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이틀로 꼽고 함께한 한 해가 최고의 시절이었다고 말한 뒤, 1년간의 사진을 엮은 몽타주를 선물했다.
525
1984년 05월 00일, 29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리더는 스티브와 나 둘이라는 스컬리의 답사에 눈빛을 나눴지만, 잡스를 견제하라고 스컬리를 들였던 아서 록은 오히려 잡스가 스컬리를 주무른다고 느꼈다.
526
1984년 6월경 · 29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회사 운영에 점점 목소리를 키워, 1984년 사업 전략 회의에서 본사 영업·마케팅 인력이 각 제품 부문을 상대로 경쟁 입찰을 벌여 일감을 얻는 방식을 찬성자 없이 고집했다.
527
1984년 6월경 · 29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 출시 몇 달 뒤 조애나 호프먼과 유럽 출장에 나서, 파리에서는 현지 소프트웨어 업체들과 잡힌 공식 저녁 자리를 돌연 마다하고 화가 폴롱을 보러 가겠다며 호프먼을 차에서 내리게 했다.
528
1984년 6월경 · 29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이탈리아에서 전통 기업 출신 애플 지사장을 만나자마자 맥을 팔 자격이 없다고 냉랭하게 말했고, 사워크림 소스 요리에 크게 화를 내다 호프먼으로부터 진정하지 않으면 뜨거운 커피를 붓겠다는 귓속말 경고를 들었다.
529
1984년 6월경 · 29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유럽 지사장들에게 판매 예상치를 올리지 않으면 컴퓨터 물량을 배정하지 않겠다고 거듭 압박했고, 매킨토시 사업 계획 때 같은 방식으로 예상치를 부풀렸다 실패한 전례가 있었다. 양측 사이를 중재한 호프먼은 출장이 끝날 무렵 몸져누울 만큼 지쳤다.
530
1984년 6월경 · 29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이 여정에서 장루이 가세 애플 프랑스 대표와 처음 얼굴을 익혔는데, 프랑스 배정 물량을 줄이겠다고 위협하다 격분한 가세에게 옷깃을 잡히고서야 물러섰다고 가세는 회고했다.
531
1984년 6월경 · 29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파리 브리스톨 호텔에서 프랑스 정·관계 인사와 학자들을 상대로 강연하며 학교마다 컴퓨터를 들이면 프랑스가 선두로 치고 나갈 수 있다고 역설했다.
532
1984년 09월 00일, 29세 때, 스티브 잡스는 내장 하드디스크가 필요하다는 조애나 호프먼을 제록스 맹신자라 몰아붙였고, 그의 고집으로 냉각 팬을 뺀 매킨토시는 과열로 부품이 자주 고장 나 '베이지색 토스터'라는 별명을 얻었다.
533
1984년 9월경 · 29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 엔지니어들에게 최대 5만 달러의 보너스를 주면서 휴직 중인 앤디 허츠펠드에게는 벨빌의 결정이라며 주지 않으려 했고, 실제 결정자가 자신임을 허츠펠드가 따지자 얼버무리다 결국 보너스 문제를 받아들였다.
534
1984년 10월 00일, 29세 때, 스티브 잡스는 오노 요코가 연 숀 레넌의 아홉 번째 생일 파티에 가서 숀에게 매킨토시를 선물했고, 그 자리에 있던 앤디 워홀로부터 믹 재거에게도 한 대 가져다주라는 권유를 받았다.
535
1984년 10월 00일, 29세 때, 스티브 잡스는 빌 앳킨슨과 함께 뉴욕의 믹 재거 자택을 방문했으나 재거가 그가 누구인지 몰라 어리둥절해하자, 기계를 보자마자 맥페인트로 그림부터 그린 딸 제이드에게 매킨토시를 건넸다.
536
1984년 11월경 · 29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휴직을 마쳐 가던 허츠펠드와 사무실 근처 이탈리아 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며 소프트웨어 팀의 사기가 꺾였고 버렐 스미스가 연말을 버티기 어렵다는 말을 듣자, 맥 팀은 잘 돌아가고 자신은 인생 최고의 시기라고 말을 끊었다. 허츠펠드가 돌아갈 팀이 이미 없다고 하자 잡스는 그의 비중이 생각만큼 크지 않다며 원하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고 답했다.
537
1984년 12월 00일, 29세 때, 스티브 잡스는 생산이 끝난 리사 재고품에 맥을 모방하는 소프트웨어를 설치해 '매킨토시 XL'이라는 이름으로 팔기로 했고, 이는 그가 실제로 만들지 않은 제품을 내놓은 드문 경우였다.
538
1985년경 · 30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브레이크아웃 보너스 일화가 세상에 알려지자 워즈니악에게 전화를 걸어 기억에 없는 일이라 그랬을 리 없다고 부인했다.
539
1985년경 · 30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용 엑셀 출시를 맞아 빌 게이츠와 뉴욕 태번 온 더 그린에서 기자회견 겸 만찬을 함께 열었고, IBM PC용 엑셀은 때가 되면 내겠다는 게이츠의 답에 그때쯤이면 다들 죽었을 것이라고 농담했다.
540
1985년 00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약 3년 이어진 존 바에즈와의 연인 관계를 마치고 친구 사이로 돌아갔다.
541
1985년경 · 30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스탠퍼드 총장 도널드 케네디가 마련한 팰러앨토 점심 자리에서 노벨상 수상 생화학자 폴 버그 옆에 앉아 유전자 접합과 DNA 재조합 기술의 진전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542
1985년경 · 30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대학 교수들을 만나 그들이 바라는 워크스테이션이 어떤 것인지 조사했다.
543
1985년 00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존 스컬리와의 갈등이 시작될 무렵 회의에 가던 길에 애플 재단 동료의 사무실에 들렀다가, 비영리단체에 컴퓨터를 기증하는 일을 맡던 티나 레지를 처음 만났다.
544
1985년 00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이튿날 티나 레지에게 저녁을 청했다가 남자 친구와 함께 산다는 이유로 거절당했으나, 며칠 뒤 공원을 함께 걸으며 다시 청해 저녁 식사 약속을 받아 냈다.
545
1985년 00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두세 달 뒤 티나 레지가 가구 하나 없는 우드사이드 저택으로 들어오면서 그녀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546
1985년 00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서 물러날 무렵 상처를 추스르려 티나 레지와 함께 유럽 여행을 떠났다.
547
1985년 00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파리 센 강의 다리 위에서 프랑스에 눌러살자는 공상을 티나 레지와 나눴지만, 야망을 내려놓을 수 없고 자신이 하는 일이 곧 자신이라며 끝내 그 길을 택하지 않았다.
548
1985년경 · 30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셰 파니스 출신 부부를 고용해 우드사이드 집의 살림과 채식 요리를 맡겼다.
549
1985년경 · 30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미적 감각을 두고 티나 레지와 자주 맞섰는데, 아름다움은 사람마다 다르다는 그녀와 달리 가르쳐야 할 보편적 미감이 있다고 주장했다.
550
1985년 00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존 스컬리와 맞붙은 대결에서 마이크 마쿨라가 스컬리 편에 서면서 그의 지지를 잃었다.
551
1985년 00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서 밀려난 뒤 이탈리아를 여행하다 피렌체 거리에 깔린 회색 보도석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552
1985년경 · 30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서른 살 무렵, 사람은 서른을 넘기면 레코드판 홈처럼 굳은 사고 패턴에 갇힌다고 말했다.
553
1985년 01월 00일, 29세 때, 스티브 잡스는 기업 간부들이 줄지어 절벽에서 떨어지는 '레밍스' 광고가 애플다운 밝은 메시지 대신 IBM을 쓰는 기업 경영진을 깎아내린다며 처음부터 불안해했고, 다른 안을 요구했다가 작년 '1984'도 버리려 하지 않았느냐며 모든 것을 걸겠다는 리 클라우의 반대에 부딪혔다.
554
1985년 01월 00일, 29세 때, 스티브 잡스는 '레밍스'가 미국 기업인을 모욕한다며 소리친 데비 콜먼으로부터 맥으로 쓴 사직서를 책상 위에 받았다.
555
1985년 01월 00일, 29세 때, 스티브 잡스는 1월 일대일 언론 인터뷰를 위해 다시 뉴욕 칼라일 호텔을 찾았고, 밤 10시가 넘어 도착하자마자 피아노 위치와 딸기 종류까지 지적하며 이튿날 아침 취재 일정 전까지 객실을 통째로 다시 꾸미라고 우겼다.
556
1985년 01월 00일, 29세 때, 스티브 잡스는 꽃이 마음에 안 든다며 칼라 꽃을 요구하다 레지스 매케나 쪽 앤디 커닝햄과 칼라가 어떤 꽃인지를 놓고 다퉜고, 그녀를 멍청이라 부르며 다른 백합을 고집해 커닝햄은 자정 무렵에야 그 꽃을 구해 왔다.
557
1985년 01월 00일, 29세 때, 스티브 잡스는 방을 다 꾸미자 커닝햄의 정장을 트집 잡았고, 기분을 이해한다며 달래는 그녀에게 자기 심정은 누구도 모른다며 험한 말을 섞어 받아쳤다.
558
1985년 01월 20일, 29세 때, 스티브 잡스는 반대를 무릅쓰고 '레밍스'를 슈퍼볼 중계에 내보내기로 스컬리와 결정했고, 스컬리 부부, 당시 사귀던 티나 레지와 나란히 스탠퍼드 스타디움에서 제19회 슈퍼볼을 관람했다.
559
1985년 02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생일에 워즈니악으로부터 '잘테어' 가짜 팸플릿을 넣은 액자를 선물받고서야 8년 전 박람회 장난의 주인공을 알게 됐다.
560
1985년 02월 00일, 29세 때, 스티브 잡스는 생일 파티를 앞두고 면담을 청해 온 버렐 스미스의 퇴사 계획을 미리 듣고 웃으며 정말 그럴 거냐고 물었고, 스미스는 원만하게 회사를 떠났다.
561
1985년 02월 00일, 29세 때, 스티브 잡스는 곧이어 퇴사를 알린 매킨토시 엔지니어 브루스 혼에게 맥의 문제는 다 그의 탓이라 했다가, 장점 상당수도 자기가 싸워서 넣었다는 반박을 인정하고 회사에 머물면 1만 5000주를 얹어 주겠다고 붙잡았다. 혼이 거절하자 두 사람은 포옹하고 헤어졌다.
562
1985년 02월 00일, 29세 때, 스티브 잡스는 공동 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의 사직을 《월스트리트 저널》 보도를 보고서야 알았다.
563
1985년 02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서른 살 생일에 하객 1000명을 샌프란시스코의 세인트프랜시스 호텔 무도회장으로 초대해 검은 나비넥타이와 운동화를 드레스 코드로 내건 잔치를 벌였고, 초청장에는 인생의 앞 30년엔 습관을 사람이 빚고 뒤 30년엔 습관이 사람을 빚는다는 힌두교 경전 문구를 실었다.
564
1985년 02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빌 게이츠·미치 케이퍼·엘리자베스 홈스 등 옛 친구들이 모인 생일 파티에서 엘라 피츠제럴드에게 몇 곡을 신청했고, 존 스컬리는 무대에 올라 기술의 선구자를 위해 건배를 제안했다.
565
1985년 02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워즈니악이 1977년 박람회 때 짓궂게 돌렸던 가상의 컴퓨터 '잘테어' 홍보물을 액자에 담아 준 것과 데비 콜먼이 구한 『마지막 거물』 초판 등을 선물로 받았지만, 선물은 하나도 집으로 가져가지 않고 묵었던 호텔 방에 그대로 남겼다.
566
1985년 02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서른이 된 달 《플레이보이》에 실린 작가 데이비드 셰프와의 긴 인터뷰에서 나이 듦과 미래를 화두로 삼아, 생각은 레코드판의 골처럼 패여 한번 빠지면 헤어나기 힘들며 30~40대에 이르러 눈부신 업적을 남기는 예술가는 많지 않다고 말했다.
567
1985년 02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같은 인터뷰에서 애플과의 인연은 평생 가겠지만 한동안 떠나 있다 다시 돌아올 수도 있다고 했고, 창작자는 지나간 것을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하며 세상이 씌운 이미지를 피해 잠적했다가 새로운 얼굴로 돌아오기도 한다며 자신은 여전히 학생이자 훈련병이라고 덧붙였다.
568
1985년 02월 19일, 29세 때, 스티브 잡스는 백악관에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으로부터 워즈니악과 함께 첫 국가 기술 훈장을 받았고, 시상 뒤 둘은 견해차를 일부러 피한 채 산책하고 샌드위치 가게에서 끼니를 함께했다.
569
1985년 02월 24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서른 번째 생일을 실리콘밸리 명사를 비롯한 유명 인사들과 어울려 보냈다.
570
1985년 03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워싱턴 방문 몇 주 뒤의 토요일 팰러앨토로 막 옮겨 온 하르트무트 에슬링거의 프로그디자인 작업실에 들렀다가 워즈니악의 새 리모컨 스케치를 보고 격분했고, 다른 컴퓨터 관련 작업을 막을 수 있는 계약 조항을 들어 워즈니악과의 작업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571
1985년 03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월스트리트 저널》에 사적 감정이 아니라 애플 제품처럼 보이는 리모컨을 막으려는 것이라고 해명하며 프로그디자인이 이미 한 작업은 개인적으로 보상하겠다고 했지만, 스케치를 넘기거나 폐기하라는 요구를 프로그디자인이 거부해 계약에 따른 애플의 권한을 일깨우는 서한까지 보내야 했다.
572
1985년 03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프로그디자인 디자인 팀장 허버트 파이퍼로부터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이 일이 권력 다툼이자 사적 앙금이라는 공개 반박을 받았다.
573
1985년 03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을 떠난 뒤에도 이따금 산책길에 찾아가던 열두 블록 거리의 앤디 허츠펠드 집에서, 리모컨 사건에 화가 난 허츠펠드로부터 문전박대를 당했다.
574
1985년 03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서 록 등 이사진으로부터 스컬리와 함께 강한 질책을 받고, 남의 부서 일에 끼어들지 말고 위기에 빠진 맥 사업 회생에만 힘을 쏟으라는 주문을 받았다.
575
1985년 03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사무실로 돌아와 타 부서와 그 직원들을 더는 헐뜯지 않겠다는 각오를 맥에 타이핑해 두었다.
576
1985년 03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 값을 높게 묶어 이익을 늘리려는 스컬리와 값을 낮추려는 자신 사이의 골이 깊어지자, 엔지니어링 세부를 가르쳐도 제품 만드는 법을 모르는 그를 둔하다고 여기며 제품이 전부라는 자기 관점을 굳혔다.
577
1985년 03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예의를 지켜 달라는 스컬리의 간청에도 제록스 부회장 빌 글래빈과 마주 앉자마자 제록스는 자기 일을 모른다고 말해 회동을 끝내 버렸고, 뒤에 스컬리에게 사과하면서도 참을 수가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578
1985년 03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 매출이 예상의 10퍼센트에 그친 1985년 3월 방에 처박혀 있거나 복도를 서성이며 자기만 빼고 모두에게 책임을 돌렸고, 거칠어진 기분 변화에 중간 관리자들이 반발하기 시작했다.
579
1985년 03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한 콘퍼런스에서 마이크 머리가 주선한 스컬리와 관리자들의 비공개 면담에 끼려다 거절당했고, 머리로부터 동료를 깎아내리는 태도와 인격을 짓밟는 경영을 비판하는 메모를 직접 받았다.
580
1985년 03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스티브 키친의 우드사이드 디자인이 만든 평면 스크린과 손가락으로 조작하는 터치스크린 기술로 책 크기의 매킨토시를 구상하고, 키친과 걷다 발견한 멘로파크 인근 건물에 새 기술을 제품으로 키울 비공개 연구 조직 '애플랩스'를 꾸려 손수 운영하겠다고 나섰다. 스컬리는 그를 쿠퍼티노에서 떼어 놓을 기회로 보고 반겼다.
581
1985년 03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이사 필립 슐라인으로부터 작고 열정적인 팀으로 새 제품을 구상하는 편이 낫다는 설득을 들었으나, 곰곰이 따져 본 뒤 그런 역할은 바라지 않는다고 결론짓고 장루이 가세에게 매킨토시 지휘권을 넘기기를 거부했다.
582
1985년 03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그해 봄 회사가 공짜로 주던 음료와 출장 때 일등석 좌석을 폐지해 경비를 줄이자는 메모를 돌리는가 하면, 본사를 떠나 애플랩스에서 연구개발 그룹을 맡으라는 조언에 동의하는 기색을 보이는 등 오락가락했다.
583
1985년 03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3월 말 어느 저녁 인사 부장 제이 엘리엇을 데리고 사무실로 찾아온 존 스컬리로부터, 비전은 누구보다 존경하지만 매킨토시 부문을 이끄는 능력은 더 믿을 수 없다는 통보와 함께 자신을 멍청이라고 험담한 데 대한 질책을 받았다.
584
1985년 03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충격 속에 스컬리가 자신을 더 돕고 이끌어야 한다며 함께 시간을 더 보내자고 하다가, 곧 그가 컴퓨터를 모르고 회사를 망치며 합류 이후 줄곧 실망만 안겼다고 맞받은 뒤 울기 시작했다.
585
1985년 03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존 스컬리로부터 매킨토시 부문 책임자 자리를 내려놓고 신기술·신제품 개발에만 힘쓰라는 요구와 함께 이 안을 이사회에 올리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586
1985년 03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그 요구가 회사 전체를 망가뜨리는 일이라며 스컬리에게 정면으로 반발했다.
587
1985년 04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이후 몇 주 동안 애플랩스를 맡아 떠나는 방안을 꺼냈다가도 스컬리를 몰아낼 우군을 모으는 등 정반대 행보를 오갔다.
588
1985년 04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하룻밤 사이 법률고문 앨 아이젠스태트에게 스컬리를 믿을 수 없으니 이사들을 설득해 달라고 전화했다가, 두 시간 뒤 잠든 스컬리에게 전화해 함께 일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589
1985년 04월 11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 이사회에서 스컬리가 그를 매킨토시 부문 책임자에서 빼고 신제품 개발에 집중시키겠다는 뜻을 공식 제기하자, 이사들과 한 사람씩 따로 면담하는 절차에 들어갔다.
590
1985년 04월 11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이사들 앞에서 스컬리가 컴퓨터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591
1985년 04월 11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이사 아서 록으로부터 지난 1년간 보인 처신으로 볼 때 한 부문을 맡을 자격이 없다는 질책을 받았다.
592
1985년 04월 11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가장 든든한 지지자였던 이사 필립 슐라인에게서도 물러나 사내 연구소를 맡아 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593
1985년 04월 11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이사회가 만장일치로 스컬리를 지지하고 그의 보직 이동 시점을 스컬리에게 맡기기로 하면서 경영권 다툼에서 패했다.
594
1985년 04월 11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결과를 짐작한 채 회의실 밖에서 기다리다 오랜 동료 델 요캄을 마주치자 울음을 터뜨렸다.
595
1985년 04월 11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결정 뒤 화해를 청한 스컬리에게 보직 이동을 몇 달에 걸쳐 천천히 해 달라고 요청했고, 스컬리는 이를 받아들였다.
596
1985년 04월 11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그날 저녁 스컬리의 비서 나네트 버크하우트를 찾아가 스컬리에게 배신당했다고 했다가 곧 우정을 되살리는 데 힘쓰겠다고 말을 바꿨다.
597
1985년 05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스컬리를 찾아가 매킨토시 부문을 이끌 역량을 입증할 시간을 더 달라며 운영 중심의 관리자가 되겠다고 약속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598
1985년 05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같은 자리에서 스컬리가 취임 첫해 이후 동력을 잃었다며 그의 사임을 요구했다.
599
1985년 05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스컬리로부터 맥 소프트웨어 미완성, 신모델 부재, 고객 확보 실패를 지적받았고, 대화는 누가 더 무능한 경영자인지 다투는 언쟁으로 번졌다.
600
1985년 05월 14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 팀의 분기 실적·계획 보고 회의에서 맥 판매 극대화를 부문 목표로 내세워, 애플 전체 이익 기여를 앞세운 스컬리와 한 시간가량 논쟁했다.
601
1985년 05월 14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리사를 대신할 고성능 매킨토시와 네트워크에서 파일을 나누는 파일 서버 소프트웨어 개발 계획을 보고했다.
602
1985년 05월 14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스컬리로부터 마이크 머리의 마케팅, 밥 벨빌의 개발 일정과 함께 부문 관리 전반에 대해 냉정한 비판을 받았다.
603
1985년 05월 14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회의 말미 모두가 보는 앞에서 부문 운영 능력을 증명할 기회를 한 번만 더 달라고 청했으나 스컬리에게 거절당했다.
604
1985년 05월 14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그날 밤 우드사이드 니나스 카페에서 매킨토시 팀과 저녁을 먹으며, 스컬리가 맥 부문 후임으로 불러 둔 장루이 가세도 그 자리에 초대했다.
605
1985년 05월 14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식사 뒤 자신의 벤츠에 함께 탄 밥 벨빌로부터 스컬리와 끝까지 맞서라는 권유를 받았다.
606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델 요캄의 지지를 구하면서도 운영과 관리는 자신이 요캄보다 더 잘 안다고 말했다.
607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메모리얼 데이 주말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애플의 대중국 컴퓨터 수출 계약에 서명할 예정이었으나, 스컬리가 혼자 가기로 하자 그 부재를 반격의 기회로 보고 반겼다.
608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메모리얼 데이 전 한 주 내내 여러 사람과 걸으며 구상을 털어놓았고, 마이크 머리에게는 스컬리가 중국에 간 사이 쿠데타를 벌이겠다고 말했다.
609
1985년 05월 23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 부문 고위 참모들과의 정례 회의에서 스컬리 축출 계획을 밝히고 직접 짠 회사 재편안을 표로 그려 보였다.
610
1985년 05월 23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계획을 들은 인사 책임자 제이 엘리엇에게서 이사진과 고위 간부 대부분이 스컬리 편이라 지지를 얻기 어렵다는 솔직한 말을 들었다.
611
1985년 05월 23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자리를 넘겨받으러 파리에서 온 장루이 가세와 주차장을 걸으며 계획을 털어놓았다.
612
1985년 05월 24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중국행을 취소하고 정면 대결을 택한 스컬리의 아침 임원 회의에 늦게 들어가, 원래 자기 자리였던 스컬리 옆이 채워져 있자 탁자 반대편 끝에 앉았다.
613
1985년 05월 24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스컬리로부터 자신을 회사에서 밀어내려 한다는 이야기가 사실이냐는 정면 질문을 받았다.
614
1985년 05월 24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과 맞지 않고 회사를 이끌 적임자도 아니니 떠나야 할 사람은 스컬리라고 받아쳤고, 그가 제품 개발을 모르며 성장에도 보탬이 되지 못했다고 몰아세웠다.
615
1985년 05월 24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스컬리의 말에 자신이 더 잘 경영할 수 있다고 맞섰고, 스컬리는 이 문제를 참석자 투표에 부쳤다.
616
1985년 05월 24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델 요캄, 앨 아이젠스태트, 레지스 매케나, 빌 캠벨이 차례로 스컬리 지지를 밝히면서 임원진 표 대결에서 졌다. 캠벨은 잡스가 회사에 남을 역할을 찾아 달라는 부탁을 덧붙였다.
617
1985년 05월 24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상황을 알겠다는 말만 남기고 서둘러 회의실을 나섰고, 그를 따라 나간 사람은 없었다.
618
1985년 05월 24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사무실로 돌아와 매킨토시 측근들을 모아 놓고 울면서 애플을 떠나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가, 데비 콜먼 등의 만류로 주말 동안 전열을 가다듬기로 했다.
619
1985년 05월 24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굿 어스 식당에서 데비 콜먼 등 측근들과 식사하고 나오다 주차장에서 기다리던 스컬리의 아내 리지에게 남편을 대한 태도를 두고 거센 질타를 받았다.
620
1985년 05월 25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우드사이드 자택으로 찾아온 마이크 머리로부터 제품 개발자 역할을 받아들여 애플랩스를 세우고 본사와 거리를 두라는 조언을 들었다.
621
1985년 05월 25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그 조언을 검토하기로 하고, 먼저 스컬리에게 전화해 다음 날 오후 스탠퍼드 뒤편 언덕을 함께 걷자고 제안했다.
622
1985년 05월 25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그날 저녁 마이크 머리와 영화 패튼을 보려고 어린 시절 집까지 테이프를 가지러 갔으나 부모가 없어 들어가지 못했고, 대여점에도 없어 배신이라는 영화를 대신 봤다.
623
1985년 05월 26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스탠퍼드 캠퍼스 뒤편에서 스컬리와 몇 시간 동안 언덕과 목초지를 걸으며 애플 경영을 계속 맡게 해 달라고 거듭 청했으나 거절당했다.
624
1985년 05월 26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스컬리가 권한 독자 연구소를 거느린 제품 선지자 역할을 실권 없는 간판일 뿐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625
1985년 05월 26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스컬리가 회장을, 자신이 사장 겸 CEO를 맡자는 역제안을 내놓았고, 거절당하자 자신은 제품을, 스컬리는 마케팅과 사업을 나눠 맡자고 다시 제안했다.
626
1985년 05월 26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회사는 한 사람이 이끌어야 하며 이사회 지지는 자신에게 있다는 스컬리의 답을 듣고 악수한 뒤, 제품 선지자 역할을 다시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627
1985년 05월 26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귀갓길에 마이크 마쿨라의 집에 들러 이튿날 저녁 식사 초대 메시지를 남겼고, 그 자리에 매킨토시 측근들을 불러 스컬리 편인 마쿨라를 설득하려 했다.
628
1985년 05월 27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메모리얼 데이에 약속보다 일찍 우드사이드 자택에 모인 데비 콜먼, 마이크 머리, 수전 반스, 밥 벨빌과 전략을 짰고, 콜먼에게서 제품 선지자 역할을 받아들여 애플랩스를 세우라는 현실적인 권고를 들었다.
629
1985년 05월 27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침묵을 조건으로 측근들의 이야기를 들은 마이크 마쿨라로부터 회사의 책임자는 스컬리이므로 그를 지지할 수 없다는 단호한 답을 받았다.
630
1985년 05월 28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전날 모임 소식을 마쿨라에게서 전해 들은 스컬리가 사무실로 찾아오면서 이사회 지지를 이미 확보했으니 회사를 떠나 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631
1985년 05월 28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이사회가 승인한 개편안에 따라 장루이 가세가 매킨토시 등 제품을 맡고 자신은 운영할 부문 없이 회장직만 갖게 된다는 사실을 스컬리의 전화로 확인했다. 애플랩스 같은 연구소 설립안은 더 이상 거론되지 않았다.
632
1985년 05월 28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더는 방법이 없다고 판단하고 울면서 빌 캠벨, 제이 엘리엇, 마이크 머리 등에게 전화했고, 머리에게는 다 끝났다고 말한 뒤 끊었다.
633
1985년 05월 28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걱정이 돼 우드사이드로 달려와 집 뒤편 계단으로 침실을 살피던 마이크 머리를 가구 없는 방으로 들여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634
1985년 05월 29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마침내 돌려받은 패튼 테이프를 저녁에 본 뒤 다시 싸우려 했으나, 마이크 머리의 만류로 금요일에 열릴 스컬리의 조직 개편 발표회에 나가기로 했다.
635
1985년 05월 31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스컬리의 조직 개편 발표회장 맨 뒷줄에 말없이 앉았고, 그를 흘끔거리는 사람은 많았지만 공개적으로 인사를 건넨 이는 없었다.
636
1985년 06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며칠 동안 블라인드를 내리고 자동응답기를 켜 둔 채 집에 머물며 여자친구 티나 레지만 만났다.
637
1985년 06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밥 딜런의 테이프, 특히 더 타임스 데이 아 어체인징을 몇 시간씩 틀어 놓고 앉아 지냈다.
638
1985년 06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일요일 밤 위로하러 온 앤디 허츠펠드, 빌 앳킨슨 등 옛 매킨토시 동료들을 한참 만에 맞아들여 티나 레지의 도움으로 채식 요리를 대접했다.
639
1985년 06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허츠펠드에게 상황이 상상보다 훨씬 나쁘다며 스컬리를 탓했고, 형식뿐인 회장직과 함께 밴들리 3동을 떠나 스스로 시베리아라 부른 빈 건물로 옮겨야 한다고 불평했다.
640
1985년 06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허츠펠드가 가져온 밥 딜런의 새 음반 엠파이어 벌레스크를 듣고 디스코 같다며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고, 딜런 음악은 블러드 온 더 트랙스 이후 내리막이라고 말했다.
641
1985년 06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버지처럼 여기던 스컬리, 마이크 마쿨라, 아서 록이 한 주 사이에 모두 등을 돌린 가운데 특히 록의 지지를 잃은 일로 깊은 고통을 겪었다.
642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 시절 아서 록에게서 오페라를 배웠고, 그의 아내 토니와 함께하는 샌프란시스코와 애스펀 자리에 자주 초대받았다.
643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선물에 무심한 편이었지만 일본 출장길에 소니 워크맨을 사 와 아서 록에게 건넸다.
644
1985년 06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파리로 건너가 애플 관련 행사에서 강연하고 조지 H. W. 부시 부통령을 위한 만찬에 참석했다.
645
1985년 06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파리 박람회에서 부시 부통령으로부터 소련 사회를 아래에서부터 바꾸려면 컴퓨터를 보급해야 한다는 격려를 받았다.
646
1985년 06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이탈리아로 넘어가 여자친구와 토스카나 언덕을 차로 돌았고, 자전거를 사서 혼자 달리기도 했다.
647
1985년 06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피렌체에서 건축물과 재료에 빠졌고, 특히 피렌추올라 근처 일 카소네 채석장에서 나온 푸른빛 회색 돌에 매료됐다.
648
1985년 06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 II 판매가 막 시작된 모스크바에서 출장 중인 앨 아이젠스태트와 합류했고, 수출 허가 문제로 만난 미국 대사관 상무관 마이크 머윈에게서 소련과의 기술 공유를 엄격히 막는 법이 있다는 경고를 들었다.
649
1985년 06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그루지야 식당에서 머윈에게 맥을 팔면 러시아인들이 저마다 신문을 찍어 낼 수 있다며 수출 규제에 불만을 쏟아냈다.
650
1985년 06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모스크바에서 트로츠키 이야기를 거듭 꺼내 배정된 KGB 요원에게서 자제 요청을 받았지만, 모스크바 국립대학 컴퓨터 전공생 대상 강연도 트로츠키 예찬으로 시작했다.
651
1985년 07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이더넷을 함께 발명한 밥 메트칼프가 화해를 주선하려고 우드사이드 새 집에서 연 저녁 자리에 스컬리와 함께 초대받았다.
652
1985년 07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 펠로 앨런 케이와 산책하다 그의 권유로 리무진을 빌려 마린카운티 스카이워커 목장 언저리의 루카스필름 컴퓨터 부문을 찾아 책임자 에드 캣멀을 만났다.
653
1985년 07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그곳의 작업에 반해 스컬리에게 애플이 루카스필름 컴퓨터 부문을 사들이자고 설득했으나 애플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654
1985년 07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출범시킨 빅 맥 프로젝트가 후임 매킨토시 책임자 장루이 가세의 결정으로 폐기됐다.
655
1985년 7월경 · 30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빅 맥 칩셋을 개발하던 리치 페이지로부터 프로젝트 중단으로 인한 괴로움을 털어놓는 전화를 받았다.
656
1985년 07월 04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앨 아이젠스태트와 함께 모스크바 미국 대사관의 독립기념일 파티에 참석했다.
657
1985년 08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회사에 불만을 품은 여러 애플 직원과 이야기를 나눴고, 그들로부터 새 회사를 차려 자신들을 데려가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658
1985년 08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유럽에서 돌아오자마자 폴 버그에게 다시 연락해 스탠퍼드 캠퍼스를 함께 걷고 작은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며, 결과를 얻는 데 몇 주씩 걸리는 생물학 실험의 어려움을 들었다.
659
1985년 08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컴퓨터로 가상 실험을 하면 시간을 줄일 수 있다며 버그의 이름을 딴 DNA 재조합 소프트웨어 구상을 내놓았으나, 그만한 컴퓨터는 대학 연구실 예산으로 감당할 수 없다는 설명을 들었다.
660
1985년 09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노동절 주말을 지나며 새 회사 구상을 구체화했다.
661
1985년 09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노동절 주말 대니얼 르윈에게 먼저 전화했고, 자택을 찾아온 그와 함께 걸으며 창업을 의논했다.
662
1985년 09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맥 소프트웨어 설계자 버드 트리블에게 고성능 개인용 워크스테이션을 만들 새 회사에 함께하자고 제안했다.
663
1985년 09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을 떠나려던 맥 팀의 엔지니어 조지 크로와 회계 담당 수전 반스도 새 회사에 끌어들였다.
664
1985년 09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대학과 연구소 시장을 맡을 마케팅 책임자로 대니얼 르윈을 점찍었고, 르윈은 오스틴에서 돌아오자마자 합류 의사를 밝혔다.
665
1985년 09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여자친구 티나 레지와 함께 샌프란시스코 퍼시픽하이츠의 아서 록 자택에서 저녁을 먹었으나 새 회사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666
1985년 09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실권을 잃은 뒤 나가지 않던 이사회에 참석하겠다고 스컬리에게 알리며, 내용은 밝히지 않은 채 회의 끝에 회장 발언 순서를 넣어 달라고 했다.
667
1985년 09월 12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 이사회에서 서른이 된 만큼 자기 길을 가야 한다며 고등교육 시장용 컴퓨터를 만들 새 회사 계획을 공개하고 회장직을 내려놓겠다는 뜻을 밝혔다.
668
1985년 09월 12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새 회사가 애플과 경쟁하지 않고 비중 낮은 직원 몇 명만 데려가겠다고 했고, 애플이 원하면 신제품 유통권을 사거나 맥 소프트웨어 라이선스를 내주는 방식으로 협력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669
1985년 09월 12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 직원을 데려가는 데 강한 불만을 드러낸 마이크 마쿨라에게 어차피 떠나기로 마음먹은 하급 직원들뿐이라고 답했다.
670
1985년 09월 12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이사회로부터 사임을 일주일 미루고 애플이 새 회사 지분 10퍼센트를 사들이며 이사직은 유지하자는 제안을 받고 이를 받아들였다.
671
1985년 09월 12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그날 밤 자택에 모인 이탈자 다섯 명에게 애플 투자를 받자고 했으나, 다섯 명은 반대하며 한꺼번에 사직서를 내고 깔끔하게 떠나자고 그를 설득했다.
672
1985년 09월 13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이튿날 오전 7시 30분 간부 회의 전 함께 떠날 다섯 명의 명단을 적은 서한에 서명해 스컬리에게 건넸고, 하급 직원이 아니지 않느냐는 물음에 그들이 오전 9시까지 사표를 낼 것이라고 답했다.
673
1985년 09월 13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사임 뒤에도 이사로 남겠느냐는 스컬리의 물음에 생각해 보겠다고 답했다.
674
1985년 09월 13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스컬리가 간부 회의에서 이탈자 명단을 알리자 회장의 의무를 저버린 배신이라는 거센 반발을 샀다. 빌 캠벨은 대학 영업 관계를 다져 온 르윈이 빠져나간 데 특히 격분했다.
675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핵심 인력을 데려가지 않겠다던 약속에 속았다고 여긴 이사들의 분노를 샀고, 특히 아서 록으로부터 이사회에서 거짓말을 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676
1985년 09월 17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주말 사이 이사회와 임원들이 스컬리에게 강경 대응을 주문한 끝에, 마이크 마쿨라로부터 핵심 인재를 데려가지 않겠다던 말과 반대로 행동했으며 후속 조치를 검토 중이라는 공식 성명으로 공개 비판을 받았다.
677
1985년 09월 17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빌 캠벨이 그의 행동에 크게 충격받았고 이사 전원이 기만당했다고 여긴다는 익명 이사의 발언이 《월스트리트 저널》 보도로 전해지며 거센 비판에 휩싸였다.
678
1985년 09월 17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신문 보도를 읽고 대응하기로 해 친한 기자들을 우드사이드 자택으로 부르고, 레지스 매케나의 홍보 전문가였던 안드레아 커닝햄에게 도움을 청했다.
679
1985년 09월 17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정식 기자회견에서 애플을 깎아내리려던 계획을 커닝햄의 만류로 접고, 기자들에게 사직서 사본을 보여 주며 공식 발언은 차분하게 했다.
680
1985년 09월 17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사직서를 우편으로 보내려다 수전 반스의 만류로 마이크 마쿨라의 집을 직접 찾았고, 그곳에 와 있던 앨 아이젠스태트와 함께 15분가량 긴장된 대화를 나눴다.
681
1985년 09월 17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로 쓰고 레이저라이터로 뽑은 사직서를 마쿨라에게 남기고 애플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682
1985년 09월 17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사직서에서 자신을 회장직에서 밀어내려 한다는 아침 신문 기사가 독자를 오도하고 불공정하다고 지적하며, 애플의 적대적 태도를 들어 사임을 즉시 수리하라고 요구했다.
683
1985년 09월 17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개편 뒤 아무 역할도 경영 보고도 받지 못했고 서른인 지금 더 기여하고 싶다고 적은 뒤, 우호적이고 품위 있는 결별을 청하며 스티브 P. 잡스로 서명했다.
684
1985년 09월 17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떠나기 전 일곱 달쯤 전 우정을 기리는 문구를 새겨 둔 스컬리와의 사진 액자를 사무실 바닥에 내던졌고, 짐을 꾸리러 온 총무부 직원이 깨진 액자를 발견했다.
685
1985년 09월 17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이 무렵 이후 스컬리와 다시는 말을 나누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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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09월 23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로부터 회장 재임 중 경쟁 회사 설립을 몰래 꾸미고 차세대 제품 계획을 부당하게 쓰려 했으며 핵심 인재를 빼냈다는 이유로 신탁 의무 위반 소송을 당했다. 당시 그는 애플 주식 650만 주, 지분 11퍼센트를 갖고 있었다.
687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다섯 달이 채 지나기 전에 원할 때 주주총회에 나갈 수 있도록 한 주만 남기고 애플 주식을 헐값에 모두 팔았다.
688
1985년 09월 25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커닝햄 없이 다시 기자들을 우드사이드 자택으로 불러, 직원 다섯 명을 빼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며 그들이 먼저 연락해 왔고 이미 애플에 마음이 떠나 있었다고 반박했다.
689
1985년 09월 25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직원 4300명에 20억 달러 규모인 회사가 청바지 차림 여섯 명을 겁내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소송의 부당함을 주장했다.
690
1985년 09월 25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뉴스위크》 인터뷰에서 자신은 등 뒤에서 남을 해치는 사람이 아니며, 재능 있는 이들을 찾아 함께 멋진 것을 만드는 일이 가장 잘하고 좋아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691
1985년 09월 25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을 첫사랑처럼 늘 기억하겠지만 필요하면 경영진과 싸우겠다고 밝혔다.
692
1985년 09월 25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새 회사 합류를 권하려 스티브 워즈니악에게 연락했으나 워즈니악은 회신하지 않았다.
693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디자인을 회사 정체성의 출발점으로 삼아 새 회사 이름을 넥스트로 정했다.
694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기업 로고의 대가 폴 랜드를 데려오려고 IBM에 끈질기게 연락했고, 부사장 폴 리조로부터 랜드가 넥스트 로고를 맡아도 좋다는 허락을 얻어 냈다.
695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팰러앨토로 온 폴 랜드와 함께 걸으며 회사의 비전과 정육면체 컴퓨터 구상을 들려줬다.
696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시안을 하나만 내고 채택과 상관없이 대가를 받겠다는 랜드의 조건이 마음에 들어 로고 하나에 10만 달러를 지급하기로 했다.
697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2주 만에 완성된 로고와 디자인 과정을 담은 소책자를 우드사이드 자택에서 건네받고 랜드를 끌어안았다.
698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로고의 e를 더 밝은 노란색으로 하자고 했다가 50년 경력을 내세운 랜드의 반박에 뜻을 접었다.
699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랜드가 덤으로 만들어 준 명함에서 Steven P. Jobs의 P 옆 마침표 위치를 두고 오래 다툰 끝에 점을 P 아래 왼쪽으로 옮겼다.
700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제품 디자이너 후보를 여럿 만났지만 예전에 애플로 데려왔던 하르트무트 에슬링거만 한 인물을 찾지 못했다.
701
1985년 10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루카스필름 컴퓨터 부문을 사 줄 투자자를 찾던 에드 캣멀과 앨비 레이 스미스로부터 만나자는 전화를 받았다.
702
1985년 10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캣멀과 스미스에게 컴퓨터 부문을 통째로 사겠다고 했다가, 주요 투자자를 원한 두 사람의 뜻을 받아 지분 대부분을 사서 회장을 맡고 경영은 둘에게 맡기는 절충안에 합의했다.
703
1985년 10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루카스필름 인력이 예술과 기술의 결합에서 앞서 있고, 몇 년 안에 컴퓨터 성능이 100배 넘게 올라 애니메이션과 3D 그래픽이 커질 것이라는 판단에서 인수를 추진했다.
704
1985년 10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조지 루카스에게 500만 달러를 주고 별도로 500만 달러를 자본금으로 넣어 컴퓨터 부문을 분사시키는 안을 냈고, 요구액에는 크게 못 미쳤지만 양측은 협상을 이어 가기로 했다.
705
1985년 10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일부러 늦게 들어와 주도권을 잡으려던 루카스필름 최고재무책임자를 기다리지 않고 회의를 정시에 시작해 흐름을 먼저 쥐었다고 에드 캣멀은 증언했다.
706
1985년 10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조지 루카스와 단 한 번 만나, 그 부문 사람들이 컴퓨터보다 애니메이션에 더 빠져 있다는 경고를 들었다.
707
1985년 11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 소송을 낸 지 5주 뒤 법률고문 앨 아이젠스태트에게 에슬링거와 일하게 해 달라는 편지를 보내, 넥스트는 애플의 디자인 방향을 모르니 에슬링거가 알아서 처신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708
1985년 11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이젠스태트로부터 편지가 우려만 키우며 애플 디자인 방향을 모른다는 말도 사실과 다르다는 답장을 받았다.
709
1985년 12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페블 비치에서 연 넥스트 첫 수련회에서 첫 컴퓨터를 18개월 뒤 내놓겠다고 공언했고, 1988년 출시를 제안한 엔지니어에게는 그러면 세상이 앞질러 간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710
1985년 12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마감이 설계를 비튼다며 이의를 제기한 조애나 호프먼에게 시한을 놓치면 신뢰가 무너진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711
1985년 12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넥스트에 개인 재산 700만 달러를 넣었고, 매출이 없으면 18개월 안에 바닥날 규모였다.
712
1986년 00월 00일, 3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오랜 흡연 끝에 폐암에 걸린 어머니 클래라 잡스의 병상을 지키며 예전과 달리 깊은 대화를 나눴다.
713
1986년 00월 00일, 31세 때, 스티브 잡스는 클래라에게서 전쟁에서 돌아오지 못한 첫 남편이 있었다는 사실과 폴 잡스와 함께 자신을 입양한 과정을 자세히 들었다.
714
1986년 00월 00일, 3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어머니 클래라 잡스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생모 조앤 심프슨에게 연락했다.
715
1986년 00월 00일, 31세 때, 스티브 잡스는 클래라가 숨진 뒤 아버지 폴 잡스에게 생모를 찾아 왔다고 털어놓았고, 폴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며 만나도 좋다고 했다.
716
1986년 00월 00일, 3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조앤 심프슨에게 전화로 자신을 밝힌 뒤 로스앤젤레스 집으로 찾아갔고, 입양 서명을 압박받았다며 거듭 용서를 구하는 그녀를 다 이해한다며 안심시켰다.
717
1986년 00월 00일, 3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조앤에게서 맨해튼에서 소설가를 꿈꾸는 친여동생 모나 심프슨이 있다는 사실을 들었다.
718
1986년 00월 00일, 31세 때, 스티브 잡스는 뉴욕 세인트 레지스 호텔 로비에서 조앤의 소개로 여동생 모나 심프슨을 처음 만났고, 몇 분 뒤 둘이서만 산책을 나섰다.
719
1986년 00월 00일, 31세 때, 스티브 잡스는 모나와의 저녁 식사에서 둘이 같은 건축 디테일에 눈길을 주는 등 예술적 감각과 관찰력이 닮았다는 점을 드러냈다.
720
1986년 00월 00일, 31세 때, 스티브 잡스는 동료들에게 여동생이 작가라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721
1986년 00월 00일, 3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소송이 정리된 뒤 끈질기게 설득해 하르트무트 에슬링거가 애플과의 계약을 줄여 나가게 했고, 디자인 재량을 요구하는 그의 조건을 너그럽게 받아들였다.
722
1986년 00월 00일, 31세 때, 스티브 잡스는 플로피 디스크 대신 대용량 광디스크라는 새 기술에 넥스트의 운명을 걸기로 결정했다.
723
1986년경 · 31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넥스트 컴퓨터를 한 변 30.48센티미터, 모든 면이 정확히 90도인 정육면체로 만들라고 고집했고, 주형 분리용 기울기조차 두지 않는 에슬링거의 설계에 동의했다.
724
1986년경 · 31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케이스에 주형 자국 선이 보이면 직접 시카고로 날아가 주조 담당자에게 다시 만들게 했다.
725
1986년경 · 31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주형 선을 없애려 15만 달러짜리 샌더를 사들였고, 작은 흠도 바로 드러나는 무광 검정 마그네슘 케이스를 고집했다.
726
1986년경 · 31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데이비드 켈리 팀에 기울기 조절 장치가 든 곡선형 모니터 받침대를 만들게 했고, 마케팅 지원자 면접에서 모니터 대신 콘크리트 블록을 올린 받침대를 천을 걷어 보여 주며 자랑했다.
727
1986년경 · 31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장롱 뒤쪽에도 좋은 나무를 쓰라던 아버지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넥스트 내부 볼트까지 값비싼 도금을 하고 케이스 안쪽도 무광 검정으로 칠하게 했다.
728
1986년경 · 31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표준 칩 대신 여러 기능을 하나로 묶은 맞춤형 칩을 개발하게 했고, 요구 기능을 거듭 바꿨다.
729
1986년경 · 31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초창기 직원 열 명 가운데 한 명에게 팰러앨토 본사 인테리어를 맡겨, 새로 지은 임차 건물의 벽을 유리로, 카펫 바닥을 목재로 바꾸게 했다.
730
1986년경 · 31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대니얼 르윈이 만들어 온 조직도를 보고 모두 쓰레기라고 일축했다.
731
1986년경 · 31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 때처럼 완전 자동화 공장을 고집하며 기계와 로봇을 여러 번 다시 칠하게 했고, 흰 벽에 2만 달러 상당의 검은 가죽 의자와 주문 제작한 계단을 들였다.
732
1986년경 · 31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관람 통로에서 보기 좋도록 회로 기판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흐르는 50미터 조립 라인을 고집했다.
733
1986년경 · 31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어느 금요일 데이비드 폴슨의 작업을 형편없다고 질타했고, 상심한 폴슨은 사표를 냈다.
734
1986년경 · 31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직원을 가혹하게 대하는 이유를 묻는 《비즈니스 위크》에 품질의 기준을 보여 주는 것이 자신의 책무라고 답했다.
735
1986년경 · 31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넥스트 직원들과 현장 견학과 야외 수련회를 자주 다녔고 일본 무술 고수들을 초빙하기도 했다.
736
1986년경 · 31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애플과 광고사 샤이엇데이의 계약이 끝나자 《월스트리트 저널》에 샤이엇데이를 축하하며 애플 없이도 잘해 나갈 것이라는 전면 광고를 냈다.
737
1986년 00월 00일, 31세 때, 스티브 잡스는 넥스트 초창기 대니얼 르윈과 대학 캠퍼스들을 돌며 의견을 들었고, 하버드에서는 로터스 회장 미치 케이퍼와 하비스트 식당에서 식사하며 빵에 버터를 바르는 그에게 콜레스테롤 이야기를 꺼냈다.
738
1986년 00월 00일, 3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컴퓨터에 콘텐츠를 기본으로 담으려 했고, 전자사전을 만든 엔지니어 마이클 홀리의 연락을 반겨 함께 옥스퍼드로 향했다.
739
1986년경 · 31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처음에는 픽사 운영을 캣멀과 스미스에게 맡기고 넥스트 본사에서 한 달에 한 번꼴로 이사회를 열어 재무와 전략만 챙기다가, 점차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방향에 아이디어를 쏟아내며 역할을 넓혔다.
740
1986년경 · 31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픽사 컴퓨터가 미국 국가안전보장국에 팔리면서 기밀 취급 인가를 위한 신원 조사를 받았다.
741
1986년경 · 31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픽사에 3만 달러 안팎의 보급형 컴퓨터를 만들게 했고, 비용을 걱정한 캣멀과 스미스의 반대에도 디자인을 하르트무트 에슬링거에게 맡기라고 고집했다.
742
1986년경 · 31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픽사 컴퓨터를 일반에 팔려고 주요 도시에 영업 사무소를 열게 하고 그 공간 디자인까지 직접 승인했다.
743
1986년경 · 31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픽사가 3D 렌더링 표준을 노리고 개발한 렌더맨을 전문가 전용이 아닌 누구나 쓰는 소프트웨어로 키우자며, 어렵다는 팀원들의 설명에도 화이트보드에 단순화 방안을 그려 보이곤 했다.
744
1986년경 · 31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픽사 애니메이션 팀을 이끄는 존 래시터와 그래픽 디자인에 대한 열정을 나누며 가까워졌고, 그의 재능을 높이 사 예술과 기술을 잇는 후원자가 됐다.
745
1986년 00월 00일, 3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에드 캣멀과 함께 픽사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알리려고 존 래시터에게 단편 애니메이션을 한 편 더 만들게 했다.
746
1986년경 · 31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넥스트 컴퓨터 개발 중 우드사이드의 존 바에즈 집을 찾아 컴퓨터로 브람스 사중주를 틀며 언젠가 컴퓨터가 사람보다 더 잘 연주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에즈는 이를 음악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였다.
747
1986년 00월 00일, 31세 때, 스티브 잡스는 리사가 여덟 살이 된 해부터 딸을 찾아가는 횟수를 늘렸다. 이 무렵 넥스트의 팰러앨토 본사는 브레넌 모녀의 집과 가까웠다.
748
1986년경 · 31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리사를 넥스트 사무실에 데려와 직원들을 놀라게 했고, 리사는 복도에서 재주넘기를 해 보이며 자신을 봐 달라고 외쳤다.
749
1986년경 · 31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넥스트 엔지니어 에비 테버니언과 저녁을 먹으러 갈 때 이따금 리사를 데려갔고, 부모와 달리 채식을 하지 않던 딸에게 닭고기를 시키라고 권했다.
750
1986년경 · 31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애플 시절보다 다시 엄격한 채식주의자로 돌아가 있었고, 딸과 함께 먹던 수프에 버터가 들어 있다는 것을 알고 뱉어 낸 적도 있었다.
751
1986년경 · 31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리사와 함께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팰러앨토 거리를 달리며 조애나 호프먼과 앤디 허츠펠드의 집에 들르곤 했다.
752
1986년경 · 31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리사를 처음 데려간 날 조애나 호프먼에게서 더 좋은 아버지가 되라는 권유를 들었고, 그 말을 따른 뒤 훗날 그녀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753
1986년경 · 31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딸 리사와 수년 동안 다정함과 냉담함을 오가는 관계를 이어 갔고, 둘 다 먼저 사과하는 데 서툴러 한번 다투면 몇 달씩 말을 섞지 않았다.
754
1986년 00월 00일, 3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앤디 허츠펠드가 찾아내 복사해 준 비틀스 「스트로베리 필즈 포에버」 작업 과정 해적판 CD를 받았고, 30대의 그는 이 녹음 속 비틀스가 곡을 끝없이 고쳐 가는 완벽주의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755
1986년 01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과 재판 없이 합의해 소송을 끝냈다.
756
1986년 01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1000만 달러를 넣어 루카스필름에서 떨어져 나온 컴퓨터 부문 픽사의 지분 70퍼센트를 확보했다.
757
1986년 01월 00일, 3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서명 장소로 넥스트 사무실을 원했으나 스카이워커 목장을 원한 루카스필름 측과 절충해 샌프란시스코의 한 로펌에서 계약을 맺었다.
758
1986년 03월 00일, 3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석 달 뒤 다시 페블 비치에서 연 넥스트 수련회에서 허니문은 끝났다는 말을 비롯해 아끼는 경구들을 늘어놓았다.
759
1986년 04월 00일, 31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마이클 홀리와 함께 옥스퍼드 대학교 출판부를 찾아 2000달러짜리 컴퓨터 한 대당 74센트에 셰익스피어 작품집을 싣게 해 달라고 제안했고, 출판부는 대체로 받아들였다.
760
1986년 08월 00일, 31세 때, 스티브 잡스는 넥스트에서 받는 압박을 덜 겸 존 래시터와 댈러스 시그래프에 갔고, 1만 명이 몰린 행사에서 줄 서기를 피해 말솜씨로 래시터와 함께 상영관에 먼저 들어갔다.
761
1986년 08월 00일, 31세 때, 스티브 잡스는 픽사의 단편 「럭소 주니어」 상영이 끝나자 감탄하며 이제야 영화가 무엇인지 알겠다고 외쳤다.
762
1986년 09월 00일, 3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소노마에서 연 세 번째 넥스트 수련회에서 출시 일정을 더는 언급하지 않았고, 회사는 자금난 직전에 놓여 있었다.
763
1986년 11월 00일, 31세 때, 스티브 잡스는 300만 달러를 내면 넥스트 지분 10퍼센트를 주겠다는 투자 설명서를 벤처 투자사들에 돌려 회사 가치를 3000만 달러로 매겼다.
764
1986년 11월 00일, 31세 때, 스티브 잡스는 넥스트와 함께 PBS 다큐멘터리 「기업가들」에 소개됐다.
765
1986년 11월 00일, 31세 때, 스티브 잡스는 방송을 본 로스 페로로부터 이튿날 투자자가 필요하면 연락하라는 전화를 받았고, 절박함을 드러내지 않으려 일주일을 기다렸다가 답했다.
766
1986년 11월 00일, 31세 때, 스티브 잡스는 페로가 보낸 금융 분석가들 대신 페로 본인과 직접 협상하기를 원했다.
767
1986년 12월 00일, 3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여동생 모나 심프슨의 첫 소설 출간 축하 자리에 함께하려고 뉴욕으로 날아갔다.
768
1987년 00월 00일, 32세 때, 스티브 잡스는 로스 페로에게 자신이 500만 달러를 더 넣고 페로가 2000만 달러로 지분 16퍼센트를 갖는 조건을 내걸어 회사 가치를 약 1억 2600만 달러로 매겼고, 페로는 투자를 결정했다.
769
1987년경 · 32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로스 페로를 따라 고든·앤 게티 부부가 스페인 국왕 후안 카를로스 1세를 위해 연 만찬에 가서 국왕과 컴퓨터의 다음 흐름을 논했고, 대화 뒤 페로에게 컴퓨터 한 대를 팔았다고 말했다.
770
1987년경 · 32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맥 시절 설득해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게 했던 빌 게이츠가 넥스트용 소프트웨어는 만들지 않기로 하면서 그의 협력을 얻지 못했다.
771
1987년경 · 32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한 컨퍼런스에서 게이츠가 넥스트용 소프트웨어를 외면한다고 거세게 비난했고, 시장이 생기면 다시 보겠다는 응수에 넥스트가 업계의 다음 주역이라고 외치다 고개를 저으며 자리를 떴다.
772
1987년 00월 00일, 32세 때, 스티브 잡스는 픽사 재정이 나빠지자 예산 삭감 회의에서 지원금을 거침없이 줄였고, 아낀 돈을 다음 영화에 쓰자는 래시터의 요청에는 별말 없이 동의했다.
773
1987년경 · 32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픽사 이사회에서 신형 이미지 컴퓨터 보드가 늦어진다고 임원들을 질책하다, 넥스트 보드가 더 늦다는 앨비 레이 스미스의 반박에 맞서 얼굴을 맞댄 언쟁을 벌였다.
774
1987년경 · 32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회의 중 자기만 쓰던 화이트보드에 스미스가 밀치고 들어와 쓰기 시작하자 그러면 안 된다고 소리쳤고, 스미스가 이유를 따지자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다.
775
1987년경 · 32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스미스가 픽사에서 짠 코드를 쓰지 못하게 막아 둘 사이의 반목을 키웠다.
776
1987년경 · 32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픽사가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애니메이션 세 분야 모두에서 적자를 내며 계획마다 추가 투자를 요구하자 분노하면서도 수표를 써 줬다.
777
1987년경 · 32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손실을 막으려 픽사에 대규모 감원을 지시하며 즉시 통보와 퇴직금 없는 해고를 원했고, 2주 예고를 간청한 팸 커윈에게 소급해서 통보하라고 쏘아붙였다.
778
1987년경 · 32세 무렵, 스티브 잡스의 퇴직금 없는 해고 방침은 모스크바 출장에서 돌아온 에드 캣멀의 결정으로 해고자들에게 약간의 퇴직수당을 주는 쪽으로 조정됐다.
779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픽사 애니메이션 팀의 인텔 광고 계약 추진 중 회의에서 인텔 마케팅 책임자를 비난하다 앤디 그로브 CEO에게 직접 전화했지만, 그로브로부터 부하 편을 들며 일은 절차대로 해야 한다는 답을 들었다.
780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가정에서 사실적인 3D 이미지를 만드는 일이 데스크톱 출판처럼 퍼지길 바라며 픽사의 소비자용 소프트웨어 쇼플레이스를 아꼈지만, 소비자들은 그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781
1987년경 · 32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동생 모나 심프슨의 수수한 옷차림이 마음에 들지 않아 좀 더 멋을 내라고 권했다가, 자신은 모델이 아니라 작가라는 항의 편지를 받았다.
782
1987년경 · 32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편지에 답하는 대신 이세이 미야케 매장에서 직접 고른 옷을 상자에 담아 모나 심프슨에게 보냈고, 같은 정장은 세 벌씩 사서 부쳤다. 미야케는 스티브 잡스가 가장 좋아하던 디자이너 가운데 한 명이었다.
783
1987년경 · 32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생부로 짐작되는 압둘파타 잔달리를 만나고 온 모나 심프슨의 연락을 받고, 초등학생이던 딸 리사를 데리고 버클리의 카페 에스프레소 로마로 나가 동생을 만났다.
784
1987년경 · 32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모나 심프슨에게서 생부가 새너제이 북쪽에서 고급 레스토랑을 운영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그 식당에 드나들며 주인과 악수까지 나눈 적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놀랐다.
785
1987년경 · 32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자신과 모나를 돌보지 않은 생부를 끝내 만나지 않았고, 이미 부자가 된 자신에게 돈을 노리거나 언론에 알릴까 우려해 모나에게 자신의 존재를 밝히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786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생모 조앤 심프슨과 가깝게 지내며 크리스마스마다 조앤과 모나를 집으로 맞았고, 어린 자신을 포기해 미안하다며 우는 조앤을 행복한 유년기를 보냈다는 말로 달랬다.
787
1987년 03월 00일, 3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 100만 번째 매킨토시에 제프 래스킨의 이름을 새겨 그에게 증정하자 몹시 언짢아했다.
788
1987년 03월 30일, 32세 때, 스티브 잡스는 「럭소 주니어」가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르자 시상식에 참석하려고 로스앤젤레스로 갔다.
789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럭소 주니어」가 상을 받지 못했지만 해마다 단편 한 편씩을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790
1987년 06월 00일, 3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캐서린 그레이엄의 70세 생일 파티에서 IBM CEO 존 에이커스를 처음 만나 IBM이 윈도를 택하지 않도록 마이크로소프트를 깎아내렸고, 에이커스로부터 넥스트가 IBM을 돕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받았다.
791
1987년 06월 00일, 3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얼마 뒤 버드 트리블과 아몽크의 IBM 본사를 찾아 넥스트를 시연했고, IBM 엔지니어들은 깊은 인상을 받았다.
792
1987년 07월 00일, 32세 때, 스티브 잡스는 팰러앨토 넥스트 본사를 처음 찾은 빌 게이츠를 로비에서 30분이나 기다리게 했고, 맥 시절처럼 다시 손잡자고 다가갔으나 광디스크가 느리고 케이스 재질이 비싸다는 혹평을 들었다.
793
1988년 00월 00일, 33세 때, 스티브 잡스는 1988년까지 이어진 IBM과의 협상에서 사소한 부분까지 고집했고, 색상이나 디자인을 두고 이견이 생기면 회의실을 나가 버려 버드 트리블이나 대니얼 르윈이 달래야 했다.
794
1988년경 · 33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컴팩과 델 등이 넥스트 호환기 제작과 넥스트스텝 사용권을 요청하며 하드웨어를 접으면 더 주겠다고 했지만 이 논의를 외면했다.
795
1988년 04월 00일, 33세 때, 스티브 잡스는 로스 페로의 중재로 댈러스 사무실에서 IBM 측과 만나 125쪽짜리 계약서를 읽지도 않고 던진 뒤 몇 쪽짜리 간단한 계약서를 요구했고, IBM은 일주일도 안 돼 그대로 보내왔다.
796
1988년 04월 00일, 33세 때, 스티브 잡스는 10월 넥스트 공개 전까지 IBM 계약이 빌 게이츠에게 알려지지 않기를 바랐으나 IBM은 공개를 원했다.
797
1988년 04월 00일, 33세 때, 스티브 잡스는 심각한 자금난 속에 픽사 전반의 예산을 깎는 회의를 열었다.
798
1988년 04월 00일, 33세 때, 스티브 잡스는 회의 직후 사재 30만 달러가량이 드는 새 단편 지원 요청을 받고 회의적이었다가, 에드 캣멀의 안내로 스토리보드를 보며 존 래시터의 목소리 연기까지 곁들인 설명을 듣고 들뜬 반응을 보였다.
799
1988년 04월 00일, 33세 때, 스티브 잡스는 래시터의 작업을 예술로 보고 제작비를 대기로 했고, 설명이 끝나자 그에게 대단한 작품을 만들라는 말만 남겼다.
800
1988년 10월 00일, 33세 때, 스티브 잡스는 넥스트 공개 행사를 앞두고 거의 매일 그래픽 디자이너 수전 케어의 샌프란시스코 집을 찾아 슬라이드 문구부터 초록 배경의 색조까지 다듬었다.
801
1988년 10월 00일, 33세 때, 스티브 잡스는 초청자 명단과 점심 메뉴까지 직접 챙기고 영상 장비 업체에 6만 달러를 치렀으며, 공연 연출가 조지 코츠와 검은 배경에 컴퓨터와 작은 꽃병 하나만 둔 무대를 꾸몄다.
802
1988년 10월 00일, 33세 때, 스티브 잡스는 하드웨어와 운영체제가 미완성이라 직원들이 시뮬레이션을 권했는데도 실제 기계로 시연하겠다고 고집했다.
803
1988년 10월 12일, 33세 때, 스티브 잡스는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홀에서 3000명 넘는 관객 앞에 다시 서서 세 시간 동안 넥스트 첫 컴퓨터를 공개했다.
804
1988년 10월 12일, 33세 때, 스티브 잡스는 10년에 한두 번 나올 새로운 컴퓨터 구조를 보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고, 3년간 전국 대학교수들의 조언을 받아 설계했으며 고등교육 시장은 개인용 메인프레임을 원한다고 설명했다.
805
1988년 10월 12일, 33세 때, 스티브 잡스는 900제곱센티미터 회로 기판을 들어 보이고, 킹 목사와 케네디의 연설 음성 재생, 음성 파일을 붙인 이메일 전송, 청중의 박수를 담은 녹음을 차례로 시연했다.
806
1988년 10월 12일, 33세 때, 스티브 잡스는 넥스트에 플로피 디스크 대신 대용량이지만 느린 광디스크를 탑재했다고 소개했다.
807
1988년 10월 12일, 33세 때, 스티브 잡스는 옥스퍼드 셰익스피어 작품집 등을 담은 넥스트를 최초의 전자책이라 부르고, 전자사전에서 자신을 가리키는 mercurial과 그 반의어 saturnine을 찾아 보이며 청중을 웃겼다.
808
1988년 10월 12일, 33세 때, 스티브 잡스는 고등교육 시장용 넥스트 한 대의 가격을 6500달러로 발표했다.
809
1988년 10월 12일, 33세 때, 스티브 잡스는 개발자와 얼리어답터용 0.9 버전을 이듬해 초에 내고 정식 판매는 1989년 2분기에 시작한다고 밝혔다. 1985년 말 수련회에서 고집했던 1987년 초보다 2년 넘게 늦은 일정이었다.
810
1988년 10월 12일, 33세 때, 스티브 잡스는 샌프란시스코 교향악단 바이올리니스트가 넥스트 컴퓨터와 바흐 바이올린 협주곡을 함께 연주하는 무대로 행사를 마무리했다.
811
1988년 10월 12일, 33세 때, 스티브 잡스는 출시가 왜 늦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늦은 것이 아니라 5년 앞서 나온 것이라고 받아쳤다.
812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비즈니스 위크》, 《뉴스위크》, 《포춘》에 독점 인터뷰를 주는 대신 표지 기사를 약속받으려 했으나, 부부인 두 잡지 기자를 통해 이중 약속이 드러나 표지는 두 잡지에만 실렸다.
813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뉴스위크》 표지에 미스터 칩스라는 제목과 함께 넥스트에 기댄 사진으로 실렸다.
814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의 독점 인터뷰 거래는 《비즈니스 위크》 기사에서 통제 욕구가 드러난 교묘한 언론 전술이라는 분석을 낳았다.
815
1989년 00월 00일, 34세 때, 스티브 잡스는 넥스트가 레드우드시티의 더 큰 건물로 옮길 때 엘리베이터 위치를 바꾸게 하고, I. M. 페이에게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로비 계단을 의뢰해 불가능하다는 시공사를 밀어붙여 완성시켰다.
816
1989년 00월 00일, 34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매사추세츠 케임브리지의 한 포럼에서 넥스트가 광디스크와 객체지향 프로그래밍으로 새 물결을 일으킬 것이라고 했고, 뒤이어 연단에 선 빌 게이츠로부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묶는 방식은 실패할 것이라는 반박을 받았다.
817
1989년 00월 00일, 34세 때, 스티브 잡스는 존 바에즈의 회고록 감사의 말에 부엌에 워드프로세서를 놓아 준 사람으로 이름이 올랐다.
818
1989년경 · 34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넥스트 담당 IBM 직원이 회사를 떠나자 아몽크로 가 후임 짐 카나비노에게 계약 유지와 넥스트스텝 새 버전 사용료 인상을 요구했으나 답을 듣지 못했고, 계약은 흐지부지됐다.
819
1989년 00월 00일, 34세 때, 스티브 잡스는 5년 가까이 굴곡을 겪어 온 티나 레지에게 청혼했으나, 그와 결혼하면 견디지 못할 것이라던 레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820
1989년 03월 00일, 34세 때, 스티브 잡스는 「틴 토이」가 컴퓨터로 만든 영화로는 처음 아카데미 단편상을 받자 래시터 팀을 샌프란시스코 채식 식당 그린스로 불러 축하했고, 래시터는 트로피를 들고 그에게 건배했다.
821
1989년 03월 00일, 34세 때, 스티브 잡스는 디즈니로부터 재영입 제안을 받은 존 래시터가 자신의 믿음에 감동해 픽사에 남기로 하면서 그를 지켜 냈다.
822
1989년 10월 00일, 34세 때, 스티브 잡스는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의 연사 초청 강의 시리즈에 강연자로 나섰다가, 안내받아 앉은 자리 옆의 신입생 로런 파월과 강연 전에 대화를 나눴다.
823
1989년 10월 00일, 34세 때, 스티브 잡스는 강연 뒤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강의실을 떠나는 로런 파월을 보고, 말을 걸려던 학장을 지나쳐 주차장까지 뒤따라가 토요일에 저녁을 먹자고 청해 그녀의 전화번호를 받았다.
824
1989년 10월 00일, 34세 때, 스티브 잡스는 넥스트 교육 영업팀과 산타크루스 산의 토머스 포가티 와이너리에서 저녁을 먹기로 한 날 가던 길에 차를 돌려 로런 파월에게 그날 밤 만나자고 청했고, 파월이 응했다. 와이너리에서는 에비 테버니언과 영업팀이 그를 기다렸다.
825
1989년 10월 00일, 34세 때, 스티브 잡스는 팰러앨토의 채식 식당 세인트 마이클스 앨리에서 로런 파월과 네 시간을 보냈고, 그날 이후 줄곧 그녀와 함께였다고 회고했다.
826
1989년 10월 00일, 34세 때, 스티브 잡스는 첫 저녁 식사 뒤 맞은 토요일에 로런 파월의 팰러앨토 아파트로 초대받았다.
827
1989년 12월 31일, 34세 때, 스티브 잡스는 한 해의 마지막 날 저녁 로런 파월, 그녀의 친구 캐서린 스미스, 열한 살이던 딸 리사와 버클리의 셰 파니스에서 식사하다 파월과 말다툼을 벌였고, 두 사람은 따로 식당을 나섰다.
828
1990년 00월 00일, 35세 때, 스티브 잡스는 로런 파월과 가구가 거의 없는 우드사이드 저택에서 함께 지내며, 아침마다 파인 영 캐니벌스의 「She Drives Me Crazy」를 크게 틀어 그녀를 깨웠다.
829
1990년 00월 00일, 3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청혼 뒤 몇 달 동안 결혼 이야기를 다시 꺼내지 않았고, 캐서린 스미스가 그 이유를 따지자 파월이 자신의 생활 방식과 성격을 감당할 수 있는지 확인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답했다.
830
1990년경 · 35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디즈니 영화 부문 책임자 제프리 카첸버그의 초대로 버뱅크 스튜디오를 둘러보다가, 픽사는 지금의 관계에 만족하지 못하며 디즈니와 함께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831
1990년 00월 00일, 35세 때, 스티브 잡스는 리사를 데리고 도쿄 출장길에 올라 오쿠라 호텔에 묵으며 지하 스시 바에서 식사했고, 좋아하던 장어 초밥은 익힌 것이니 채식이라며 여러 접시를 주문했다.
832
1990년경 · 35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딸 리사 브레넌잡스를 데리고 일본을 여행했고, 리사는 음식에 까다롭던 아버지가 장어 초밥을 즐겁게 먹던 모습과 그 여행에서 처음으로 아버지를 편하게 느꼈던 일을 기억했다.
833
1990년 01월 01일, 34세 때, 스티브 잡스는 새해 첫날 아침 9시 이슬비 속에 직접 꺾은 들꽃을 들고 캐서린 스미스의 아파트를 찾아가, 그곳에서 밤을 보낸 로런 파월을 만났다.
834
1990년 01월 01일, 34세 때, 스티브 잡스는 정오 무렵 파월의 가장 친한 친구인 캐서린 스미스에게 결혼 허락을 구한 뒤 로런 파월에게 청혼했고, 파월이 이를 받아들였다.
835
1990년 09월 00일, 35세 때, 스티브 잡스는 결혼 결정을 계속 미루다 기다림에 지친 로런 파월이 집을 나가면서 한동안 그녀와 떨어져 지냈다.
836
1990년 10월 00일, 35세 때, 스티브 잡스는 로런 파월을 찾아가 다이아몬드 약혼반지를 건넸고, 파월은 다시 그의 집으로 돌아왔다.
837
1990년 12월 00일, 35세 때, 스티브 잡스는 로런 파월을 데리고 가장 좋아하는 휴양지인 하와이 코나 빌리지로 떠났다.
838
1990년 12월 24일, 3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코나 빌리지에서 크리스마스이브를 맞아 로런 파월에게 좀 더 격식을 갖춰 다시 청혼했다.
839
1991년 00월 00일, 36세 때, 스티브 잡스는 넥스트 손실이 이어지는 가운데 개인 돈을 더 넣는 조건으로 픽사 전 직원의 스톡옵션을 반납하게 했다. 그때까지 픽사에 들인 돈은 애플을 떠나며 현금화한 재산의 절반이 넘는 5000만 달러였다.
840
1991년 00월 00일, 36세 때, 스티브 잡스는 결혼식 주례를 젊은 시절부터 선불교 스승으로 모셔 온 오토가와 고분 치노에게 맡겼다.
841
1991년 00월 00일, 36세 때, 스티브 잡스는 두 차례 청혼하고도 다시 결혼을 망설였고, 로런 파월은 이에 화가 나 자기 아파트로 돌아갔다.
842
1991년 00월 00일, 3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직 티나 레지를 사랑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녀에게 장미꽃을 보내며 다시 만나 결혼까지 고려해 보려 했다.
843
1991년 00월 00일, 36세 때, 스티브 잡스는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여러 친구와 지인에게 티나 레지와 로런 파월 가운데 누구와 결혼해야 할지 물어 그들을 당황하게 했다.
844
1991년 00월 00일, 36세 때, 스티브 잡스는 결국 로런 파월을 배우자로 택했다.
845
1991년 00월 00일, 36세 때, 스티브 잡스는 결혼 준비 중 청첩장 서체 디자이너가 가져온 시안을 보다 거실을 떠났고, 뒤따라온 파월에게 디자이너를 돌려보내라며 그 시안은 쓰레기라 볼 수도 없다고 말했다.
846
1991년 00월 00일, 36세 때, 스티브 잡스는 픽사를 찾은 제프리 카첸버그로부터 존 래시터가 디즈니로 오지 않을 테니 공동 작업 방식을 택해야겠다는 말을 들었다.
847
1991년 00월 00일, 3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카첸버그와 수개월 동안 협상하면서 픽사의 3D 애니메이션 독점 기술에 대한 권리를 디즈니에 넘기라는 요구를 거부해 뜻을 관철했다.
848
1991년 00월 00일, 3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작품과 캐릭터, 비디오 판권과 속편 권리를 디즈니와 공동 소유하자고 요구했다가 카첸버그가 협상 중단을 언급하자 물러섰다.
849
1991년경 · 3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에드 캣멀과 함께 「토이 스토리」의 공동 제작자를 맡았지만 창작 과정에는 거의 끼어들지 않았다.
850
1991년 00월 00일, 36세 때, 스티브 잡스는 결혼 뒤 외딴 우드사이드 저택을 떠나 아이들이 걸어서 친구를 찾아갈 수 있는 올드 팰러앨토의 소박한 주택으로 옮겼고, 곧 태어날 아이를 위해 가구를 들이는 일에서도 한발 물러섰다.
851
1991년경 · 3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새집 수리를 4개월로 잡았지만 디자인을 거듭 바꾸는 바람에 16개월이 걸렸고, 교회처럼 스테인드글라스로 된 창은 투명 유리로 갈았다.
852
1991년경 · 3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로런 파월과 부엌을 넓혀 가족이 둘러앉을 긴 나무 테이블과 숯불 오븐을 들였고, 뒤편의 작은 집을 사들여 허문 뒤 마당으로 만들었다.
853
1991년경 · 3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집을 설계한 카 존스가 오래된 벽돌과 전봇대 목재 같은 중고 재료로 단순하고 튼튼한 구조를 만든 데 감탄하며, 그를 돈보다 독창성을 좇은 독학의 장인으로 평했다.
854
1991년경 · 3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침대와 옷장, 거실 스테레오는 샀지만 소파 같은 가구는 무엇을 위한 물건인지를 따지며 로런 파월과 사실상 8년 동안 고민을 이어 갔다.
855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가족과 약 2주 동안 저녁 식탁에서 세탁기의 디자인과 가족이 중시하는 가치를 놓고 장단점을 따진 끝에 독일 밀레의 세탁기와 건조기를 들였고, 어떤 첨단 제품보다 만족스러웠다고 말했다.
856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둥근 천장의 거실에 둘 미술품으로는 앤설 애덤스가 론파인에서 시에라네바다의 겨울 해돋이를 찍은 사진 한 점만 샀다.
857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가정부가 그 사진을 젖은 걸레로 닦아 버리자 애덤스와 작업했던 사람을 찾아 사진 겉면을 한 겹 벗겨 내 복원하게 했다.
858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내와 함께 집을 찾은 빌 게이츠로부터 집이 이렇게 소박한데 가족 모두 여기 사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859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옛 매킨토시 팀 동료 버렐 스미스가 한동안 밤마다 집에 찾아와 창문에 돌을 던지고 알 수 없는 편지를 남기거나 폭죽을 던져 넣는 피해를 입었다.
860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버렐 스미스가 체포된 뒤 신원 밝히기를 거부한 채 갇혀 있다는 것을 안 앤디 허츠펠드의 도움 요청을 받고 그를 도왔으며, 허츠펠드에게 자신에게 비슷한 일이 생기면 돌봐 주겠느냐고 물었다.
861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계속 보유하던 우드사이드 저택, 곧 1925년 스페인 식민지 양식으로 지은 침실 14개짜리 집을 허물고 그 3분의 1 크기의 단순한 현대 일본식 집을 지으려는 계획을 세웠다.
862
1991년 00월 00일, 36세 때, 스티브 잡스는 리사의 교사들로부터 어머니와 떨어져 지내는 편이 낫겠다는 연락을 받고, 딸과 산책하며 사정을 들은 뒤 자기 집으로 들어와 살자고 제안했다.
863
1991년 00월 00일, 3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이틀을 고민한 열세 살 리사가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딸과 한집에 살게 됐다. 리사는 아버지 방 바로 옆방을 썼다.
864
1991년경 · 3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1985년 애플에서 자신을 몰아내는 데 가담했던 장루이 가세가 넥스트 제품의 독창성을 칭찬하는 글을 쓰자, 며칠 뒤 예고 없이 그의 집을 찾아가 고마움을 전했다.
865
1991년 00월 00일, 3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결혼식 연주를 요요마에게 부탁했으나 그의 해외 순회공연 일정과 겹쳐 성사되지 못했다.
866
1991년 03월 00일, 36세 때, 스티브 잡스는 결혼을 앞두고 에비 테버니언이 마련한 총각 파티에 넥스트로 옮겨 온 리드 대학교 교수 리처드 크랜들과 함께 참석해, 술을 마시지 않는 세 사람이 샌프란시스코로 향했다.
867
1991년 03월 00일, 36세 때, 스티브 잡스는 테버니언이 예약한 호텔 고급 레스토랑에서 빵이 나오자마자 여기서는 먹기 싫다며 일행을 데리고 나와, 노스비치의 수플레 식당 카페 재클린으로 자리를 옮겼다.
868
1991년 03월 00일, 3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총각 파티 일행과 리무진으로 골든게이트교를 건너 소살리토의 바에서 테킬라 석 잔을 시켰지만 입술만 적셨다.
869
1991년 03월 00일, 3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총각 파티를 열어 준 에비 테버니언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동생 모나 심프슨과 결혼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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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03월 18일, 3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아와니 로지에서 로런 파월과 결혼했다. 하객은 아버지 폴 잡스와 동생 모나 심프슨을 비롯해 약 50명이었다.
871
1991년 03월 18일, 36세 때, 스티브 잡스는 하객 모두에게 전세 버스를 타고 오라고 요구하는 등 결혼식 전반을 직접 챙기려 했다.
872
1991년 03월 18일, 36세 때, 스티브 잡스는 함박눈이 내리는 가운데 일광욕실에서 오랜 선불교 스승 오토가와 고분 치노의 주례로 혼례를 치렀다.
873
1991년 03월 18일, 36세 때, 스티브 잡스는 모나 심프슨에게 파월 집안은 조 네이머스를, 자기 집안은 존 뮤어를 닮은 것 같다고 농담을 건넸다.
874
1991년 05월 00일, 36세 때, 스티브 잡스는 픽사를 대표해 디즈니와 장편 애니메이션 제작 계약을 맺었다. 디즈니가 작품과 캐릭터 권리, 창작 통제권을 갖고 수익의 약 12.5퍼센트를 픽사에 주는 조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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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09월 22일, 36세 때, 스티브 잡스는 로런 파월과의 사이에서 첫아들을 얻어 한동안 '베이비 보이 잡스'로 부르다 리드 폴 잡스라는 이름을 지었다. 중간 이름 폴은 아버지 폴 잡스에게서 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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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인텔의 앤디 그로브와 함께 넥스트스텝을 IBM 호환 인텔 기반 컴퓨터용으로 내놓겠다고 발표하는 행사에 장루이 가세를 초청했다. 그 자리에는 아버지 폴 잡스도 참석했다.
877
1992년 00월 00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모나 심프슨이 생부를 찾은 과정을 바탕으로 쓴 두 번째 소설 『잃어버린 아버지』의 표지를 넥스트 로고를 만든 폴 랜드에게 맡기라고 설득했으나, 결과물이 기대에 못 미쳐 쓰이지 않았다고 모나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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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경 · 37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리사가 팰러앨토 고등학교에 다닌 4년 동안 로런 파월과 함께 딸을 데리고 살았고, 리사는 이 무렵부터 리사 브레넌잡스라는 이름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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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01월 00일, 36세 때, 스티브 잡스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하나로 묶어야 한다는 소신과 달리 넥스트스텝 운영체제를 다른 회사 컴퓨터에서도 돌릴 수 있게 라이선스로 판매하는 데 동의했다.
880
1993년 00월 00일, 38세 때, 스티브 잡스는 넥스트를 여러 하드웨어에 깔릴 소프트웨어를 기업에 파는 회사로 바꿨지만, 개인 고객에게 제품을 팔 수 없게 된 데 실망했고 남의 하드웨어용 라이선스 판매에는 끝내 정을 붙이지 못했다.
881
1993년 02월 09일, 37세 때, 스티브 잡스는 로봇이 기계를 조립하는 모습을 몇 시간씩 지켜볼 만큼 하드웨어에 애착이 컸지만 넥스트의 하드웨어 사업을 전면 접기로 결정했다.
882
1993년 11월 00일, 38세 때, 스티브 잡스는 디즈니의 제프리 카첸버그와 슈나이더가 「토이 스토리」 제작을 중단시키자 사비를 들여 작업을 이어 갔다.
883
1993년 11월 00일, 38세 때, 스티브 잡스는 팀원들과 함께 카첸버그가 주인공 우디를 못된 캐릭터로 만들어 작품을 망쳤다고 비판했다.
884
1994년 00월 00일, 39세 때, 스티브 잡스는 길 아멜리오가 애플 이사로 뽑힌 직후 전화를 걸어 만나야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고, 내셔널 반도체의 아멜리오 사무실로 찾아갔다.
885
1994년 00월 00일, 39세 때, 스티브 잡스는 길 아멜리오에게 자신이 애플 CEO로 복귀하도록 도와 달라고 요청하며, 애플을 바로 세울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라고 말했다.
886
1994년 00월 00일, 39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 시대가 끝났으니 애플이 맥에 버금가는 혁신 제품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그것이 무엇이냐는 아멜리오의 물음에는 뚜렷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887
1994년 00월 00일, 39세 때, 스티브 잡스는 설득에 넘어가지 않은 길 아멜리오에게 결국 사무실에서 내보내졌다.
888
1994년경 · 39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추가 제작비 요청을 카첸버그가 계약을 이유로 거절하자 전화와 출장으로 거듭 찾아가, 디즈니가 줄거리를 망쳐 생긴 비용이니 초과분을 디즈니가 대야 한다고 주장했다.
889
1994년경 · 39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외교 수완이 뛰어난 에드 캣멀이 나서 타협점을 찾으면서 디즈니와의 제작비 갈등을 정리했다.
890
1994년 00월 00일, 39세 때, 스티브 잡스는 제작비 충돌을 계기로, 하청업체에 머물지 않고 디즈니와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쥐려면 픽사에 자금을 더 넣고 새 계약을 맺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891
1994년 02월 00일, 39세 때, 스티브 잡스는 카첸버그와 디즈니가 새 대본을 승인하면서 멈춰 섰던 「토이 스토리」 제작을 다시 이어 갈 수 있게 됐다.
892
1995년경 · 40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마이크로소프트에는 오직 하나, 안목이 없다는 문제가 있어 독창성도 문화적 깊이도 없는 삼류 물건만 내놓는다고 꼬집었다.
893
1995년 00월 00일, 40세 때, 스티브 잡스는 픽사에 쏟아부은 5000만 달러를 회수하려고 홀마크 카드와 마이크로소프트 등 인수 후보와 접촉하며 매각을 검토했다.
894
1995년경 · 40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완성돼 가는 「토이 스토리」 장면을 거듭 돌려 보고 지인들을 집으로 불러 보여 주며 영화 산업을 바꿀 작품이 되리라 기대했다.
895
1995년 00월 00일, 40세 때, 스티브 잡스는 투자은행들이 5년째 적자인 픽사의 상장에 회의적이었고 존 래시터도 두 번째 작품까지 기다리자고 했지만, 디즈니와 재협상할 현금이 필요하다며 「토이 스토리」 개봉에 맞춘 기업공개를 밀어붙이기로 했다.
896
1995년 00월 00일, 4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딸 에린 시에나 잡스를 얻었다.
897
1995년 00월 00일, 4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와이어드의 게리 울프에게 업계의 혁신이 멈췄고 마이크로소프트가 혁신 없이 시장을 차지했으며, 애플은 졌고 데스크톱 시장은 암흑기에 들어섰다고 말했다.
898
1995년 00월 00일, 4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레드 헤링의 앤서니 퍼킨스와 편집진이 인터뷰하러 찾아오자 산책을 핑계로 뒷문으로 나가 45분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899
1995년 00월 00일, 4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레드 헤링 사진기자가 촬영을 시작하자 비꼬는 말로 쏘아붙여 촬영을 멈추게 했다.
900
1995년 00월 00일, 4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레드 헤링 인터뷰에서 웹의 등장도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점을 막지 못할 것이라며, 윈도가 맥과 유닉스, OS/2를 모두 이겼으니 열등한 제품이 승리한 것이라고 말했다.
901
1995년 00월 00일, 4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처럼 기기 전체를 만드는 방식을 고집한 것이 실수였으며 넥스트를 더 일찍 소프트웨어 회사로 바꿨어야 했다고 말했다.
902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존 스컬리가 부패한 인물들과 가치를 들여와 애플을 망쳤고, 제품을 다듬고 값을 내리는 대신 수익 극대화에 매달리는 바람에 매킨토시가 마이크로소프트에 밀렸다고 비판했다.
903
1995년경 · 40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와이어드 인터뷰에서 새 세탁기를 들인 과정을 설명하며, 미국 세탁기는 형편없고 유럽 제품은 물을 4분의 1만 쓰고 옷을 덜 상하게 하지만 세탁 시간이 두 배 걸린다고 말했다.
904
1995년경 · 40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스탠퍼드 경영대학원 학생 모임 초청으로 한 학생의 집에서 강연하다 매킨토시 키보드에 사인을 부탁받자, 차 열쇠로 자신이 넣지 못하게 했던 화살표 키 네 개와 맨 윗줄 기능키를 뜯어낸 뒤 서명했다.
905
1995년경 · 40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존 래시터와 함께 「찰리 로즈」에 출연해 「토이 스토리」가 픽사의 작품임을 강조하며, 「백설 공주」 이후 장편 애니메이션 흥행작을 낸 곳은 디즈니뿐이었지만 이제 픽사가 두 번째 스튜디오가 됐다고 말했다.
906
1995년 01월 00일, 39세 때, 스티브 잡스는 디즈니의 초대로 맨해튼 센트럴파크에서 열린 「포카혼타스」 언론 시사회에 참석해 행사 규모에 놀랐고, 픽사 투자가 옳았다는 확신을 굳혔다.
907
1995년 02월 00일, 4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마흔 번째 생일을 맞아 오라클 CEO 래리 엘리슨이 기술계 스타와 재계 거물들을 불러 연 축하 파티의 주인공이 됐다.
908
1995년 02월 24일, 4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마흔 번째 생일 역시 실리콘밸리 명사 등 이름난 인물들과 함께 보냈다.
909
1995년 11월 00일, 4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로스앤젤레스 엘 캐피탄 극장에서 디즈니가 연 「토이 스토리」 시사회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910
1995년 11월 00일, 4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이튿날 저녁 샌프란시스코 리젠시 극장을 빌려 래리 엘리슨, 앤디 그로브, 스콧 맥닐리 등 실리콘밸리 인사들을 초대한 별도 시사회를 열고, 직접 무대에 올라 영화를 소개했다.
911
1995년 11월 00일, 4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매슬린 등 평론가들이 픽사가 아닌 디즈니의 전통만 언급하고 리뷰에서 픽사를 아예 빼놓은 데 불쾌해했다.
912
1995년 11월 29일, 40세 때, 스티브 잡스는 「토이 스토리」 개봉 일주일 뒤 픽사를 상장시켰고, 거래가 시작되는 아침 7시 샌프란시스코의 상장 주관사 사무실에 픽사 사람들과 모여 상장을 지켜봤다.
913
1995년 11월 29일, 4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약 14달러로 잡혀 있던 픽사 공모가를 22달러로 정하자고 고집했다.
914
1995년 11월 29일, 4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상장 첫날 장이 끝났을 때 보유한 픽사 지분 80퍼센트의 가치가 20배 넘게 불어나 12억 달러에 이르렀다. 1980년 애플 상장으로 얻은 재산의 약 다섯 배였다.
915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뉴욕 타임스 존 마코프 기자에게 재산은 중요하지 않고 호화 요트를 꿈꾸지도 않으며 돈 때문에 이 일을 해 온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916
1995년 12월 00일, 40세 때, 스티브 잡스는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내던 하와이 코나 빌리지에서 래리 엘리슨과 해변을 걸으며 애플을 인수해 자신을 다시 CEO로 앉히는 방안을 논의했다.
917
1995년 12월 00일, 40세 때, 스티브 잡스는 30억 달러를 댈 수 있으니 CEO로서 지분 25퍼센트를 가지라는 엘리슨의 제안을 받았지만, 적대적 인수는 원하지 않으며 애플이 먼저 돌아와 달라고 청한다면 다를 것이라며 거절했다.
918
1995년 12월 00일, 4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엘리슨에게 애플을 사지 않고도 돌아갈 길이 있다며, 애플이 넥스트를 사게 한 뒤 이사회에 들어가 지켜보다가 CEO가 되는 구상을 털어놓았다.
919
1995년 12월 00일, 4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지분을 최대한 확보해야 돈을 번다는 엘리슨의 반박에 돈은 중요하지 않다며, 지분 없이 돌아가야 도덕적으로 떳떳할 수 있다고 답했다.
920
1996년경 · 41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상장으로 제작비를 디즈니에만 기댈 필요가 없어지자 마이클 아이스너를 찾아가 점심을 함께하며 제작비 절반을 대는 대신 이익 절반과 공동 브랜드를 요구했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기존 계약이 끝나는 대로 드림웍스 같은 다른 스튜디오와 손잡겠다고 했다.
921
1996년경 · 41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아이스너로부터 그렇게 되면 디즈니가 우디와 버즈로 「토이 스토리」 속편을 독자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반격을 받았다.
922
1996년경 · 41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대학에 다니던 리사와 갈등이 심해지자 학비 지원을 끊기도 했고, 리사에게 돈을 빌려준 앤디 허츠펠드에게 화를 낸 이튿날 아침 회계사를 시켜 허츠펠드에게 그 돈을 보내게 했다.
923
1996년 00월 00일, 41세 때, 스티브 잡스는 리사가 샌프란시스코 필모어 오디토리엄의 자선 콘서트 무대에서 트레이시 채프먼의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한 살배기 딸 에린을 안고 뒤에서 지켜봤다.
924
1996년 00월 00일, 41세 때, 스티브 잡스는 모나 심프슨이 자신을 바탕으로 쓴 소설 『보통 남자』를 대충 훑어본 뒤 로런 파월에게 건네며 대신 읽고 자신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려 달라고 했다고 파월은 전했다.
925
1996년경 · 41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카첸버그에게 전화로 고함을 쳤고, 「벅스 라이프」 개봉일을 「이집트 왕자」와 겹치지 않게 옮기면 「개미」를 늦추겠다는 제안을 협박이라며 거절하고 자신에게는 디즈니 개봉일을 바꿀 권한도 없다고 말했다.
926
1996년경 · 41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마이크로소프트를 싫어하는 까닭이 그 회사에 미적 감각이 없어서라고 말해 화제를 모았다.
927
1996년 11월 00일, 4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과 넥스트 실무진 사이에 논의가 오간다는 것을 알고 일본 출장 중 길 아멜리오에게 직접 전화해, 일주일 뒤 돌아가면 바로 만나자며 그때까지 결정을 미뤄 달라고 했다. 아멜리오는 그때까지 비를 비롯한 누구와도 계약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928
1996년 12월 02일, 4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서 밀려난 지 11년 만에 처음으로 쿠퍼티노 본사에 들어섰다.
929
1996년 12월 02일, 4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중역 회의실에서 길 아멜리오와 엘렌 핸콕을 상대로 화이트보드를 써 가며 넥스트와 함께 시작된 컴퓨터 시스템의 네 가지 큰 흐름을 설명하고, 비의 운영체제는 미완성이며 넥스트만큼 정교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930
1996년 12월 02일, 4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 원하면 라이선스든 회사 전체 매각이든 어떤 거래도 가능하다고 제안하면서, 실제로는 넥스트의 회사와 직원 전부를 사게 하려고 이야기를 그쪽으로 몰았다.
931
1996년 12월 10일, 41세 때, 스티브 잡스는 팰러앨토 가든 코트 호텔에서 열린 넥스트와 비의 경쟁 발표에 먼저 나서 애플 경영진을 설득했고, 그사이 에비 테버니언이 비디오 클립 네 개를 동시에 재생하는 멀티미디어와 인터넷 연결 기능을 시연했다.
932
1996년 12월 10일, 4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장루이 가세가 발표하는 동안 테버니언과 팰러앨토 거리를 걸었고, 마주친 애플 임원에게서 이길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933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넥스트를 택한 길 아멜리오로부터 넥스트 인수 협상권을 이사회에 요청할 테니 회의에 와 달라는 전화를 받고 수락했다.
934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 이사회 회의실에서 1985년 스컬리 편에 선 뒤 연락을 끊었던 옛 멘토 마이크 마쿨라를 만나 먼저 다가가 악수를 청했다.
935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테버니언 없이 홀로 넥스트 발표를 마쳤고, 발표가 끝날 무렵 이사회는 완전히 그의 편으로 돌아섰다.
936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인수 협상을 위해 길 아멜리오를 팰러앨토 자택으로 불러, 1973년식 벤츠를 몰고 온 그의 차에 감탄한 뒤 새로 고친 부엌의 피자 오븐 앞 나무 테이블에서 차를 대접했다.
937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가세처럼 욕심을 부리다 일을 그르치지 않으려 조심하며 넥스트 주식을 주당 12달러, 모두 5억 달러에 사 달라고 제안했다.
938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비싸다며 주당 10달러, 약 4억 달러를 제시한 아멜리오의 역제안을 그 자리에서 받아들였다.
939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인수 대금을 현금으로 받겠다고 버티다 주식으로 받아 1년 이상 보유하라는 아멜리오와 맞섰고, 결국 1억 2000만 달러는 현금으로, 3억 7000만 달러는 주식으로 받되 주식은 최소 6개월 보유하기로 타협했다.
940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멜리오와 팰러앨토를 걸으며 자신을 애플 이사회에 넣어 달라고 설득했으나, 과거사가 많다며 이사회 뜻은 모르겠다고 피하는 그에게 애플은 원래 자기 회사였다며 서운함을 드러냈다.
941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블록을 두 바퀴 돌고 돌아와 막 귀가한 로런 파월, 아이들과 함께 아멜리오와 협상 타결을 축하했다.
942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인수 발표 며칠 전 아멜리오로부터 정식으로 합류해 운영체제 개발을 맡아 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확답을 피했다.
943
1996년 12월 20일, 41세 때, 스티브 잡스는 발표 당일 돈만 받고 떠날지 정식 복귀나 고문을 원하는지 묻는 아멜리오에게, 밤새 잠을 못 자 지쳤다며 답을 미루다가 회장 고문을 맡는다고 발표해 달라고 했다.
944
1996년 12월 20일, 4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 본사에 모인 직원 250명 앞에서 애플의 넥스트 인수가 발표되면서 파트타임 고문 자격으로 애플에 돌아왔다.
945
1996년 12월 20일, 41세 때, 스티브 잡스는 강당 뒤쪽 통로로 천천히 걸어 나와 박수를 받고, 매우 감격스러우며 옛 동료들과 다시 일할 생각에 설렌다고 말했다.
946
1996년 12월 20일, 41세 때, 스티브 잡스는 파이낸셜 타임스 루이즈 키호 기자로부터 애플 경영권을 되찾을 계획이냐는 질문을 받고, 가족이 생기고 픽사 일도 있어 시간이 많지 않으니 그런 계획은 없고 아이디어 몇 가지를 나누고 싶을 뿐이라고 답했다.
947
1996년 12월 21일, 4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이튿날 픽사를 찾아가 계속 사장으로 남아 경영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948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존 래시터의 사무실을 찾아 파트타임 고문이라도 시간을 많이 빼앗길 것이라며 축복을 청했고, 애플이 살아야 세상이 나아진다는 이유로 돌아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래시터는 웃으며 그를 축복했다.
949
1997년 00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비공식 파트타임 고문으로 애플 일을 시작해 넥스트에서 넘어온 직원들을 지키는 인사 문제에는 목소리를 냈지만, 다른 일에는 소극적이었다.
950
1997년 00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자신을 이사회에 넣지 않겠다는 아멜리오의 결정에 불쾌해했고, 운영체제 부문을 맡아 달라는 제안은 모욕으로 받아들였다.
951
1997년 00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픽사 CEO로 일하며 팰러앨토 시내에 사무실을 두고, 일주일에 며칠은 애플 일을 하고 하루이틀은 픽사로 출근하며 가족과 시간을 보냈다.
952
1997년 00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정해진 시간에 애플로 출근하지 않으면서도 길 아멜리오와는 자주 통화했다.
953
1997년 00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에비 테버니언과 존 루빈스타인으로부터 수시로 자택에서 애플 내부 상황을 보고받았다.
954
1997년 00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측근 인사를 마친 뒤 제품 쪽으로 눈을 돌려 스컬리가 아끼던 필기 인식 휴대 기기 뉴턴을 싫어했고, 스타일러스로 화면에 쓰는 방식을 두고 사람에게는 이미 '열 개의 스타일러스'가 있다며 비웃곤 했다.
955
1997년 00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길 아멜리오에게 전화해 뉴턴 생산을 끊고 손실 처리하면 사람들이 환호할 것이라며 사업을 없애라고 했으나, 아멜리오는 손실이 크고 효자 상품이 될 것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956
1997년 00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던 애플 이사회 의장 에드 울러드로부터 듀폰 경영진 대상 강연을 부탁하는 전화를 받고 거절했으며, 이어 아멜리오를 어떻게 보느냐는 직설적인 질문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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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00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솔직히 말하면 자신이 데려온 사람들이 쫓겨날 수 있다는 생각에 30초가량 망설였지만, 애플을 위해 울러드에게 아멜리오가 자신이 본 최악의 CEO라고 털어놓았다.
958
1997년 00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래리 엘리슨에게서 아멜리오가 애플을 보물을 싣고 구멍 난 배에 빗댔다는 이야기를 듣고 크게 웃었고, 이후 두 사람은 이 비유로 아멜리오를 놀렸다.
959
1997년 00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픽사 주주 서한에서 모든 작품과 광고, 완구에 디즈니와 동등하게 공동 브랜드를 쓰는 권리가 새 계약의 핵심이며, 픽사가 신뢰받는 브랜드가 되려면 소비자가 픽사가 만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960
1997년경 · 42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 복귀한 뒤에도 아이들을 그렇게 키우고 싶지 않다며 집에 경호원이나 상주 관리인을 두지 않았고, 낮에는 뒷문을 열어 두기도 했다.
961
1997년경 · 42세 무렵, 스티브 잡스가 소유한 부지의 1950년대식 랜치 하우스에는 빌 클린턴 대통령이 스탠퍼드에 다니던 딸을 찾아올 때 힐러리 클린턴과 함께 머물렀다.
962
1997년 00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이스너와 합의해 픽사가 앞으로 제작비 절반을 대고 이익 절반을 가지며 공동 브랜드를 쓰기로 했다. 다만 '디즈니'와 '픽사'의 글자 크기 같은 세부 사항을 두고는 오랜 실랑이가 이어졌다.
963
1997년 00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넥스트가 애플에 인수된 직후 길 아멜리오와 함께 마이크로소프트를 방문했으나, 빌 게이츠는 두 사람 중 누가 결정권자인지 가늠하지 못했다.
964
1997년 00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며칠 뒤 빌 게이츠로부터 마이크로소프트 프로그램을 넥스트 운영체제에 맞춰야 하느냐는 전화를 받고, 아멜리오를 깎아내리며 상황이 곧 정리될 것이라고 답했다고 게이츠는 회고했다.
965
1997년 00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길 아멜리오에게 뉴턴 사업을 접으라고 설득했으나, 뉴턴은 자회사로 떨어져 나가는 데 그쳤다.
966
1997년 00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반독점 소송을 맡은 조엘 클라인 검사를 팰러앨토로 불러 커피를 나누며, 마이크로소프트에 거액 벌금을 매기는 것보다 소송을 길게 끌고 가는 편이 애플에 경쟁 제품을 낼 시간을 준다고 말했다.
967
1997년경 · 42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광고에 들어갈 인물마다 그 사람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사진을 고집했고, 물레 앞 간디 사진을 쓰려고 타임 사의 노먼 펄스타인 편집장에게 예외적인 사용 허락을 거듭 청했다.
968
1997년경 · 42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로버트 케네디의 애팔래치아 사진을 얻으려 유니스 슈라이버에게 가족 설득을 부탁했고, 짐 헨슨 사진을 위해 그의 자녀들에게도 연락했다.
969
1997년경 · 42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존 레넌 사진을 구하려고 뉴욕의 작은 일본 식당에서 오노 요코를 만났고, 그녀가 건넨, 침대 위에서 꽃을 든 두 사람의 사진이 광고에 실렸다.
970
1997년경 · 42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복귀 첫해 3000명이 넘는 인원을 내보냈고, 이는 수익성 회복의 바탕이 됐다. 당시 애플은 파산을 석 달도 채 남겨 두지 않은 처지였다고 그는 회고했다.
971
1997년경 · 42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집중을 경영 원칙으로 세워 넘쳐 나던 제품 라인을 줄이고, 개발 중이던 새 운영체제에서도 불필요한 기능을 덜어 냈다.
972
1997년경 · 42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자체 공장 제조를 고집하지 않고 회로 기판부터 완제품까지 외부 업체에 생산을 맡기면서 공급 업체에 엄격한 기준을 적용했다.
973
1997년 00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경영권을 넘겨받을 때 애플 창고에 업계 최대 수준인 두 달 치 넘는 재고가 쌓여 있어 최소 5억 달러의 손실 영향을 떠안았다.
974
1997년경 · 42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예비 부품 배송이 늦다고 판단한 물류 업체 에어본 익스프레스와 맺은 계약을 해지하라고 지시했고, 소송 위험을 걱정하는 담당자에게 계속 우롱하면 한 푼도 주지 않겠다고 전하라고 했다. 결국 소송이 제기돼 정리까지 1년이 걸렸다.
975
1997년경 · 42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새로 고른 물류 업체에 재고를 75퍼센트 줄이라고 요구했고, 그 회사 CEO로부터 약속을 어기는 데 관용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976
1997년경 · 42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칩 공급 업체 VLSI 테크놀로지가 납기를 못 맞출 위기에 놓이자 그 회사 회의에 들이닥쳐 욕설을 퍼부었고, 칩은 결국 제때 모두 들어왔다.
977
1997년경 · 42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운영 본부장이 석 달 만에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떠나자 1년 가까이 운영 부문을 직접 맡았다.
978
1997년 00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넥스트 시절 매출이 너무 적어 실현하지 못한 A급 인재 중심 조직을, 픽사에서 해 본 대로 애플 복귀 후 다시 시도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979
1997년 00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1997년 에드 울러드가 주식을 조금이라도 받으라고 권하자, 돈을 벌려고 돌아온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 않다며 거절했다.
980
1997년경 · 42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스톡옵션 없이 연봉 1달러만 받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으며, 그 절반인 50센트는 출근한 대가이고 나머지 50센트는 성과에 대한 몫이라고 농담했다. 그때 주식을 받았다면 4억 달러어치였을 기간에 그가 애플에서 받은 돈은 2.5달러였다.
981
1997년경 · 42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이사회 의장 에드 울러드로부터 2년 넘게 직함의 '임시'를 떼라는 재촉을 받았다.
982
1997년 00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처음에는 외부의 세계적 디자이너를 찾아 IBM 싱크패드의 리처드 새퍼, 페라리 250과 마세라티 기블리를 그린 조르제토 주지아로 등과 의논했다.
983
1997년 00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 디자인 스튜디오를 돌아보던 중 조너선 아이브와 이야기를 나누며 형태와 재료를 보는 눈이 자신과 같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984
1997년 00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하드웨어 책임자로 존 루빈스타인을 앉혔고, 처음에 루빈스타인에게 보고하던 아이브를 나중에는 자신에게 직접 보고하게 했다.
985
1997년경 · 42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출근한 날이면 거의 매번 아이브와 점심을 먹고 오후에 그의 스튜디오를 찾아 개발 단계의 제품을 손으로 만져 보며 회사 전략에 맞는지 가늠했다.
986
1997년경 · 42세 무렵, 스티브 잡스가 돌아와 아이브와 손잡은 뒤 애플에서는 디자인이 엔지니어링을 이끄는 쪽으로 무게가 옮겨 갔다고 필 실러는 말했다.
987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난관이 생기면 기계 설계 담당 책임자나 아이브 밑의 디자이너들을 불러 의논했고, 기업 전략에 관한 착상이 떠오르면 팀 쿡이나 필 실러를 끌어들였다.
988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이브의 스튜디오 테이블을 돌며 아이폰·아이패드·아이맥·노트북 모형을 한자리에서 만져 보고, 설계도나 CAD 렌더링보다 실물 모형으로 회사의 몇 년 뒤를 가늠했다고 아이브는 설명했다.
989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조니 아이브를 애플에서의 영적 파트너이자 회사 운영에서 자신 다음가는 영향력을 지닌 사람으로 꼽고, 그에게 지시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도록 해 두었다고 말했다.
990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이브와 프랑스를 여행하다 주방용품 가게에서 같은 칼을 집어 들었다가, 칼날 사이에 남은 접착제 자국 때문에 함께 실망해 내려놓았다고 아이브는 회상했다.
991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조너선 아이브로부터 자신이 평가했던 아이디어를 나중에 발표 자리에서 자기 것처럼 말한다는 불만을 샀다. 다만 아이브는 잡스가 디자인팀을 밀어주지 않았다면 상당수 아이디어가 제품이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인정했다.
992
1997년 00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키보드·모니터·본체를 한데 합친 올인원, 상자에서 꺼내 바로 쓰는 간편함, 브랜드 비전을 드러내는 디자인이라는 새 가정용 컴퓨터의 사양을 정하고, 2000달러 미만 제품이 없던 애플에서 가격을 1200달러 안팎으로 잡았다.
993
1997년 00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래리 엘리슨이 밀던 하드 드라이브 없는 네트워크 컴퓨터 구상에서 출발했으나, 디스크를 갖춘 완전한 가정용 데스크톱이어야 한다는 CFO 프레드 앤더슨의 주장에 결국 동의했다.
994
1997년 00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존 루빈스타인과 함께 새 컴퓨터에 하드 드라이브와 CD 드라이브를 넣는 대신 플로피디스크 드라이브를 빼기로 했고, 퍽이 갈 곳으로 가라는 웨인 그레츠키의 말을 근거로 들었다.
995
1997년 00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디자인팀의 폼 모형 열댓 개를 전부 퇴짜 놓았다가, 아이브가 가능성을 짚은 곡선형 모형을 다듬어 오자 크게 반기며 그 모형을 들고 본사를 돌며 측근과 이사들에게 보여 줬다.
996
1997년 00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개당 60달러로 보통 케이스의 세 배인 반투명 케이스 비용을 매출 분석 없이 받아들였고, 보이지 않는 회로 기판도 깔끔해야 한다던 그의 고집은 내부가 비치는 케이스로 실제로 드러나게 됐다.
997
1997년 00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만들기 까다로워 비용이 많이 드는 오목한 손잡이를 설명을 듣기도 전에 보자마자 승인했다고 아이브는 회고했다.
998
1997년 00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루빈스타인이 지지하는 제조 엔지니어들이 만들 수 없는 이유를 38가지나 대자 CEO로서 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며 밀어붙여 결국 제작을 끌어냈다고 회고했다.
999
1997년 00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리 클라우와 켄 시걸 등 광고팀을 비행기로 불러 보안이 엄격한 스튜디오에서 물방울처럼 둥근 아이브의 반투명 디자인을 처음 공개했다.
1000
1997년 00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켄 시걸이 가져온 이름 후보들을 두 차례 퇴짜 놓았지만, 시제품 몇 대에 iMac을 실크스크린으로 찍어 보며 마음이 기울어 결국 제품명을 아이맥으로 정했다.
1001
1997년 00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 복귀하면서 회사를 위해 연봉 1달러만 받는 사람으로 자신을 내세웠지만, 보상 관행을 벗어난 대규모 스톡옵션 일괄 부여는 받아들였다.
1002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CEO 전용 주차석 같은 특권은 마다하면서도 장애인 주차 구역에 차를 세울 권리는 있다고 여겼다.
1003
1997년경 · 42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애플과 픽사를 동시에 이끌며 차로 두 회사를 오가느라 귀가하면 말도 못 할 만큼 지쳤고, 신장결석 같은 병을 얻었다.
1004
1997년 00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복귀 직후 매킨토시 운영체제 라이선스를 끊기로 하면서, 모토로라 CEO 크리스 갤빈에게 노트북용 파워PC 칩 개발을 서두르면 모토로라 클론 스타맥스는 예외로 검토하겠다고 제안했다.
1005
1997년 00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 복귀한 무렵부터 특정 소재에 몰두했고, 아이맥을 개발하면서는 색을 입힌 반투명 플라스틱을 외장재로 골랐다.
1006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조니 아이브와 함께 파워북을 플라스틱 G3에서 티타늄 G4로 바꾸고 2년 뒤 알루미늄으로 다시 설계했으며, 이후 아이맥과 아이팟 나노도 아노다이즈드 알루미늄 외관으로 새로 디자인했다.
1007
1997년경 · 42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누군가를 해고하고 돌아온 날 여섯 살이던 아들 리드를 바라보며 해고당한 그 사람의 처지를 헤아렸다고 회고했다.
1008
1997년 01월 00일, 41세 때, 스티브 잡스는 넥스트 대신 솔라리스를 밀던 엘렌 핸콕의 업무를 넥스트 출신 측근들에게 넘기며,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책임자로 에비 테버니언을 앉혔다.
1009
1997년 01월 00일, 4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스카이 섬에서 휴가 중이던 존 루빈스타인에게 직접 전화해 애플 하드웨어 부문을 맡겼고, 넥스트 하드웨어를 맡았던 루빈스타인은 이를 수락했다.
1010
1997년 01월 07일, 41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맥월드 엑스포에 불려 나가 무대 뒤 대기실에서 길 아멜리오의 두서없는 기조연설을 지켜보며 분통을 터뜨렸고, 아멜리오가 무능하다는 생각을 굳혔다.
1011
1997년 01월 07일, 4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멜리오가 두 시간 넘게 말한 끝에 무대로 불러내자 청중의 1분 넘는 기립 박수를 받으며 등장했다.
1012
1997년 01월 07일, 41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맥이 10년 동안 별다른 진보 없이 윈도에 따라잡혔다며 다시 불꽃을 살리고 더 나은 운영체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1013
1997년 01월 07일, 4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멜리오가 깜짝 순서로 스티브 워즈니악까지 무대에 올려 셋이 손을 맞잡고 들어 올리자는 신호를 보내자 일부러 이를 피하고 천천히 무대를 떠났다.
1014
1997년 01월 12일, 41세 때, 스티브 잡스는 뉴욕 타임스 매거진 스티브 로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동생 모나 심프슨의 소설 『보통 남자』를 읽었으며 주인공의 25퍼센트쯤은 사소한 버릇까지 자신 그대로라고 말했다.
1015
1997년 02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막후에서 정리할 사업부를 정하고 옛 동료들의 복귀를 설득하며 아멜리오 경영진 교체를 구상하고 있다는 파이낸셜 타임스 루이즈 키호의 기사로 애플의 숨은 실세로 지목됐다.
1016
1997년 02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넥스트 인수 최종 계약서에 서명한 뒤 기뻐하며 길 아멜리오에게 축하주를 함께하자고 제안했다.
1017
1997년 02월 24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픽사를 대표해 디즈니와 향후 10년간 영화 다섯 편을 함께 만드는 새 계약을 맺었다.
1018
1997년 03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포춘의 브렌트 슐렌더가 애플의 혼란을 다룬 기사에서 「토이 스토리」의 픽사를 이끄는 자신이 애플 장악을 노리는 것으로 보인다고 쓰면서 애플 경영권 향방의 중심에 거론됐다.
1019
1997년 03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래리 엘리슨이 적대적 인수로 자신을 CEO에 앉히겠다는 구상을 다시 공개하며 애플을 살릴 사람은 스티브뿐이라고 기자들에게 말하면서 애플 회생의 적임자로 지목됐다.
1020
1997년 03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엘리슨의 계획을 묻는 기자들에게 래리가 가끔 그 이야기를 꺼낸다며 언급을 피했고, 애플에서 자기 역할은 고문이라고 설명했다.
1021
1997년 03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엘리슨과 연락이 닿지 않자 자신에게 전화한 길 아멜리오에게 자신도 사정을 모르며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한 뒤, 둘 사이는 좋다며 그를 달랬다.
1022
1997년 03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엘리슨의 계획을 부인하는 성명을 낼 수 있었지만 내지 않고 거리만 두었다.
1023
1997년 06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로런 파월과 함께 길 아멜리오 부부를 만나 레드우드시티의 채식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아멜리오가 병당 약 300달러짜리 1964년산 슈발 블랑과 몽라셰를 가져온 반면 음식값은 모두 72달러였다.
1024
1997년 06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6개월 보유 약정이 끝날 무렵 애플 주식 150만 주가 한꺼번에 팔리자 확인 전화를 한 길 아멜리오에게 팔지 않기로 한 것을 기억한다고 답했고, 아멜리오는 이를 매각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받아들여 그렇게 발표했다.
1025
1997년 06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증권거래위원회 보고서로 보유하던 애플 주식을 실제로 처분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1026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앞날을 비관해 주식을 팔았으며 겸연쩍어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고 훗날 설명했다.
1027
1997년 07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독립기념일 연휴에 에드 울러드로부터 이사회가 아멜리오를 해고할 테니 CEO를 맡아 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돕겠다고만 하고 CEO는 맡지 않겠다고 했다.
1028
1997년 07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직무 대행이라도 맡으라는 울러드의 설득도 거절하고, 무보수 고문으로 돕겠다고 했다.
1029
1997년 07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오랫동안 바라던 애플 이사회 합류에는 동의했지만 이사회 의장직 제안은 거절했다.
1030
1997년 07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멜리오 해임이 통보된 날 저녁 뜻밖에 그에게 전화해, 울러드와 이야기했는데 마음이 좋지 않으며 이번 결정은 이사회가 내렸고 자신은 조언만 했다고 말하고 그의 높은 도덕성을 존경한다고 했다.
1031
1997년 07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멜리오에게 청하지도 않은 조언으로 여섯 달쯤 쉬라며, 자신은 애플에서 쫓겨난 뒤 곧바로 다른 일을 시작한 것을 후회했다고 말하고 언제든 연락하라고 했다.
1032
1997년 07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픽사 직원들에게 애플 이사회의 CEO 제안과 의장 제안을 모두 거절했으며 픽사를 떠나지 않겠다는 이메일을 보냈다.
1033
1997년 07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막 상장을 마친 픽사의 CEO로서 애플 복귀 여부를 두고 고민하다 토요일 아침 8시 앤디 그로브에게 전화해 장단점을 설명했으나, 그로브는 애플에는 관심 없다며 말을 끊었다.
1034
1997년 07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 자신이 시작한 회사이자 세상에 이로운 회사라는 생각에, 정식 CEO를 찾는 동안 임시로 애플 경영에 복귀하기로 결정했다.
1035
1997년 07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7월 초 차량 전화로 TBWA샤이엇데이의 리 클라우에게 연락해 아멜리오가 물러났다고 알리고 만나자고 청했다.
1036
1997년 07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 아직 살아 있고 특별한 가치를 지닌 회사임을 세상에 증명해야 한다며, 피칭은 하지 않는다는 리 클라우를 거듭 설득해 쿠퍼티노로 불러들였다.
1037
1997년 07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BBDO와 아널드 월드와이드 등 다른 광고대행사 후보들을 물리고 오랜 협력사 샤이엇데이를 다시 애플 광고에 불러들이기로 했다.
1038
1997년 07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메모리얼 데이 주말의 싸움으로 권좌에서 밀려난 지 12년 만에 애플 임원들 앞에 다시 섰다.
1039
1997년 07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반바지와 운동화, 검은 터틀넥 차림으로 무대에 올라 회사의 문제는 제품이며 지금의 제품에는 매력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040
1997년 07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에드 울러드의 설득으로 새 CEO가 정해질 때까지 90일 동안 경영에 깊이 참여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승인했고, 성명은 그를 '조직을 이끄는 고문'으로 규정했다.
1041
1997년 07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임시 CEO로 정해진 프레드 앤더슨으로부터 모든 사안을 자신과 의논해 처리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1042
1997년 07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 비공식 고문이던 스티브 워즈니악으로부터 회사에 다시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환영을 받았다.
1043
1997년 07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복도 끝에 있던 아멜리오의 넓은 집무실 대신 임원층 회의실 옆의 작은 방을 사무실로 골랐다.
1044
1997년 07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제품 디자인과 부실 사업 정리, 납품 업체와의 협상, 광고대행사 재검토까지 사업 전반을 직접 챙겼다.
1045
1997년 07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주가 폭락으로 가치가 사라진 직원 스톡옵션의 행사가를 낮춰 다시 정하기로 했다. 유능한 인력의 이탈을 막기 위해서였다.
1046
1997년 07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복귀 후 첫 목요일 전화 이사회를 열어 옵션 재조정을 설명했으나, 법적·재무적 영향을 따져 볼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사들과 에드 울러드의 반대에 부딪혔다.
1047
1997년 07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이사회가 두 달간 검토하자고 하자, 이 정도 결정도 지지받지 못한다면 월요일부터 출근하지 않겠다고 맞섰다고 회고했다.
1048
1997년 07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이튿날 에드 울러드로부터 이사회가 옵션 재조정을 승인했지만 일부 이사가 그의 밀어붙이기에 불쾌해한다는 말을 들었다.
1049
1997년 07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이사들에게 해명할 수는 없다며 울러드 한 사람만 남기고 이사 전원이 물러나라고 요구했고,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떠나겠다고 했다.
1050
1997년 07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이사회가 요구를 받아들이며 울러드 외에 한 사람을 더 남기자고 청하자 이에 동의했다.
1051
1997년 07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이사직 사퇴 요청 대상에 오른 마이크 마쿨라를 찾아 우드사이드 언덕 위 그의 집으로 직접 차를 몰고 가, 삼나무 숲을 함께 걸으며 새 이사진으로 새 출발을 하고 싶다고 전했다.
1052
1997년 07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그 산책에서 오래가는 회사를 만드는 비결을 물었고, 마쿨라에게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재창조해야 하며 애플은 PC를 넘어 소비자 전자 기기 회사로 변신해야 한다는 조언을 듣고 묵묵히 받아들였다.
1053
1997년 07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7월 말 소집된 기존 이사회에 청바지와 운동화 차림으로 나와 짧게 인사만 건넸고, 이사들은 곧바로 물러나며 그를 이사로 선임하고 울러드와 함께 새 이사를 모을 권한을 줬다.
1054
1997년 07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새 이사로 래리 엘리슨을 가장 먼저 끌어들였고, 회의 참석을 꺼리는 그에게 절반만 나와도 된다고 했다.
1055
1997년 07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과거 스컬리와의 충돌 때 스컬리 편에 섰던 인튜이트 CEO 빌 캠벨에게도 이사 합류를 제안했고, 산책 친구인 그에게서 흔쾌한 수락을 받았다.
1056
1997년 07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컬럼비아 대학교 미식축구 코치 출신인 빌 캠벨을 두고 평범한 선수들을 데리고 일류 성과를 끌어내는 캠벨의 재주가 애플에 필요하다고 말했다.
1057
1997년 07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이사 후보로 오른 하스브로 플레이스쿨 부문 매니저 멕 휘트먼과 점심을 함께한 뒤 그녀의 영입을 거부했다.
1058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이후 앨 고어, 에릭 슈미트, 아트 레빈슨, 미키 드렉슬러, 안드레아 정 등 각계의 강한 리더들을 애플 이사회로 데려왔다.
1059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회의에 세 번에 한 번꼴로 나오는 래리 엘리슨을 놀리려고 잡지 표지에 실린 엘리슨 얼굴 사진을 사람 크기로 키워 판지에 붙인 뒤 그의 빈 의자에 세워 두었다.
1060
1997년 07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7월 새 맥 OS가 나오자 매킨토시 호환기 제조사들에 업그레이드 권한을 주지 않았다.
1061
1997년 07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직원들에게 스톡옵션 재조정을 알리는 메모를 '스티브와 경영진' 명의로 내보냈다.
1062
1997년 07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모든 제품 검토 자리를 직접 주재한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7월 한 달 사이 애플 주가는 13달러에서 20달러로 올랐다.
1063
1997년 07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리더십 문제가 정리되자 가장 먼저 빌 게이츠에게 전화해 판을 바꾸겠다고 말했다고 회고했다.
1064
1997년 07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게이츠에게 몇 년 뒤 애플이 큰 특허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그때까지 버티지 못할 수 있다며, 맥 소프트웨어를 계속 만들겠다는 약속과 애플 지분 투자 두 가지만 요구했다. 아멜리오와 반년을 끈 협상이 4주 만에 정리됐다고 게이츠는 회고했다.
1065
1997년 07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팰러앨토를 찾은 빌 게이츠, 그레그 마페이와 협정의 뼈대를 잡았고, 다음 일요일 혼자 다시 온 마페이와 맨발로 동네를 걸으며 침례교회 앞에 앉아 두 가지 핵심 조건을 짚었다.
1066
1997년 07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리 클라우 팀이 내놓은 'Think Different' 카피와 광고 구상을 보고 눈물을 흘렸으며, 다른 대행사 안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1067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10년 동안 누구에게도 피칭하지 않던 리 클라우가 애플을 아껴 직접 찾아와 열정적으로 설명했던 일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1068
1997년 07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클라우와 함께 애플 브랜드의 고유한 가치를 대중에게 다시 일깨우기로 하고, 제품 사양 대신 창의적인 사람들이 컴퓨터로 이뤄 낼 수 있는 일을 그리는 브랜드 이미지 광고를 만들기로 했다.
1069
1997년 07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이 광고가 정체성이 흔들리던 애플 직원들에게도 존경할 만한 영웅을 떠올리게 하려는 메시지였다고 설명했다.
1070
1997년 07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문안 초안을 들고 온 대행사의 젊은 카피라이터를 크게 질책했고, 그 카피라이터는 이후 애플 일에서 빠졌다.
1071
1997년 07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리 클라우, 켄 시걸, 크레이그 태니모토와 호흡을 맞춰 부적응자와 반항아가 인류를 앞으로 이끈다는 60초 광고 문안을 완성했고, 그 가운데 일부 문장은 직접 썼다.
1072
1997년 07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카피를 두고 벌어진 문법 논쟁에서 부사 differently 대신 different를 명사 삼아 쓰자고 고집했고, think big 같은 구어 표현으로 받아들이면 된다고 결론지었다.
1073
1997년 07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내레이션을 로빈 윌리엄스에게 맡기려다 소속사의 거절을 받았고, 직접 통화를 시도했지만 윌리엄스의 아내가 전화를 연결해 주지 않았다.
1074
1997년 07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클라우와 함께 내레이터 후보로 마야 안젤루와 톰 행크스까지 저울질했다.
1075
1997년 07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복도에서 마주친 아멜리오의 비서 출신 와튼 졸업생에게, 각 제품 팀의 진행 상황과 존재 이유를 따져 묻는 회의 내용을 기록하는 일을 맡겼다.
1076
1997년 07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 출신으로 그 무렵 매크로미디어에서 일하던 필 실러를 다시 데려왔다.
1077
1997년 07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제품 검토를 시작하며 가장 먼저 파워포인트 발표를 금지하고, 내용을 아는 사람은 슬라이드 없이 토론으로 결론을 내야 한다고 했다.
1078
1997년 07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번호만 다른 매킨토시가 10여 종에 이르러 3주 동안 설명을 들어도 구분이 되지 않자, 친구에게 어느 제품을 권해야 하느냐고 묻고 답이 분명하지 않은 모델을 없애 제품군의 70퍼센트를 정리했다.
1079
1997년 07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프린터 사업에서 많이 팔아도 이익이 나지 않는 구조를 납득할 수 없다며 회의 도중 HP에 전화해 계약 해지를 제안하고 프린터 사업 철수를 선언했다.
1080
1997년 07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이사회와 상의하지 않고 에드 울러드에게 전화해 호환기 라이선스 사업을 끝내겠다고 통보했고, 이사회도 그 뜻을 따랐다.
1081
1997년 08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맥월드 보스턴 현장에서 호환기 업체 파워 컴퓨팅의 스티브 강 사장으로부터 라이선스를 끊으면 맥 OS가 사라질 것이라는 공개 경고를 받았다.
1082
1997년 08월 06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보스턴 맥월드 기조연설을 몇 시간 앞두고 파크 플라자 호텔 캐슬 홀에서 리허설하던 중 빌 게이츠의 전화를 받아, 한 시간 동안 낮은 목소리로 남은 조건을 모두 매듭짓고 지원에 감사를 표했다.
1083
1997년 08월 06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몇 시간 전부터 몰려든 5000명 넘는 팬들 앞에 흰 티셔츠와 검은 조끼 차림으로 나섰고, 자신을 픽사 회장 겸 CEO로 소개하는 슬라이드로 연설을 시작했다.
1084
1997년 08월 06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노트 없이 리모컨으로 슬라이드를 넘기며 지난 2년간 애플 매출이 30퍼센트 넘게 줄어든 까닭을 짚고, 인재는 많지만 전략이 없었다고 진단했다.
1085
1997년 08월 06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연설 도중 애플을 '우리'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세상을 바꾸려는 창의적인 고객을 위해 도구를 만들며 계속 다르게 생각하겠다고 다짐해 긴 기립 박수를 받았다.
1086
1997년 08월 06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맥월드 보스턴에서 파괴적인 관계는 애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마이크로소프트를 새 파트너로 삼는다고 깜짝 발표했다.
1087
1997년 08월 06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마이크로소프트가 1억 5000만 달러를 무의결권주로 애플에 투자한다고 밝혔고,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맥 기본 브라우저로 삼는다는 대목에서 야유가 나오자 다른 브라우저도 넣고 기본값은 바꿀 수 있다고 덧붙여 분위기를 돌렸다.
1088
1997년 08월 06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위성으로 연결된 빌 게이츠의 얼굴을 대형 스크린에 띄웠다가 청중의 탄식과 야유를 샀다. 게이츠는 화면에서 이번 협력이 경력에서 가장 신나는 일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1089
1997년 08월 06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즉석에서 애플이 이기려면 마이크로소프트가 져야 한다는 사고에서 벗어나야 하며 오피스를 쓰려면 만든 회사에 고마워해야 한다고 청중을 달랬다.
1090
1997년 08월 06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복귀와 마이크로소프트 협정 소식이 전해진 날 애플 주가가 6.56달러, 33퍼센트 뛰어 26.31달러로 마감하는 것을 지켜봤다. 아멜리오가 물러난 날 주가의 두 배였다.
1091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게이츠를 보스턴 현장에 직접 세우지 않고 거대한 화면에 띄운 것이 자신과 애플을 왜소하게 보이게 만든 최악의 연출이었다고 돌아봤다.
1092
1997년 09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빌 클린턴이 온 모금 행사 만찬 자리에서 클린턴에게 톰 행크스를 설득해 달라고 부탁했으나 거절당했다.
1093
1997년 09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리 클라우의 권유로 녹음실에서 몇 번이고 녹음한 끝에 내레이션을 직접 완성했다.
1094
1997년 09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텔레비전용 「토이 스토리」 첫 방송에 맞출 광고 테이프 납품 전날까지 자기 목소리 버전과 리처드 드레이퍼스 버전 사이에서 망설이다 둘 다 보내게 했고, 이튿날 아침 광고가 자신에 관한 것으로 비칠 수 있다며 드레이퍼스 버전을 택했다.
1095
1997년 09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Think Different 광고가 나간 뒤 애플을 이끄는 내내 수요일 오후마다 대행사와 마케팅·홍보 담당자를 모아 세 시간 동안 형식 없는 회의를 열고 새 광고 콘셉트를 직접 승인했다.
1096
1997년 09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수요일 회의를 마치면 리 클라우와 던컨 밀너, 제임스 빈센트를 출입이 통제된 디자인 공간으로 이끌고 가 만들고 있는 제품을 먼저 보여 주며 자신의 열정을 광고에 옮겼다.
1097
1997년 09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1억 달러를 주고 파워 컴퓨팅의 맥 OS 라이선스와 고객 명단을 되사들이는 합의를 맺으며 호환기 정책을 끝냈다.
1098
1997년 09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곧이어 나머지 호환기 업체들에도 라이선스를 끊으며, 하드웨어 품질이 떨어지는 회사에 운영체제를 내줘 자사 판매를 갉아먹게 둘 수는 없다고 했다.
1099
1997년 09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9월 직원회의에서 프로젝트가 일괄 중단되고 대규모 해고가 이어져 엔지니어들이 반발하는 와중에, 취소된 팀의 엔지니어들이 오히려 이 조치를 반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1100
1997년 09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몇 주 뒤 핵심 제품 전략을 논의하던 자리에서 이대로는 안 된다며 화이트보드에 소비자용·프로용, 데스크톱·휴대용 네 칸을 그리고 칸마다 뛰어난 제품 하나씩만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1101
1997년 09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9월 이사회에서 네 칸 제품 전략을 설명했고, 위험이 크다며 회의적이던 이사회를 표결 없이 설득해 전략을 밀어붙였다.
1102
1997년 9월경 · 42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월요일에는 경영진, 수요일 오후에는 마케팅 전략, 그리고 필요할 때마다 제품 검토 회의를 소집했으며, 격식 있는 발표 없이 둘러앉아 논쟁하며 결론을 찾게 했다.
1103
1997년 9월경 · 42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디자인·하드웨어·소프트웨어·콘텐츠의 통합을 애플의 강점으로 보고 부서들이 차례로가 아니라 동시에 맞물려 일하는 '깊은 협력'과 '동시 공정' 방식을 정착시켰다.
1104
1997년 9월경 · 42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핵심 인재를 뽑을 때 지원자가 해당 부서장이 아니라 쿡, 테버니언, 실러, 루빈스타인, 아이브 등 최고위 경영진을 두루 만나게 한 뒤 함께 평가했고, 마케팅 지원자도 디자이너·엔지니어와 대화하게 했다.
1105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최고와 평범의 차이가 대개 30퍼센트 정도지만 워즈니악은 평범한 엔지니어보다 50배 뛰어났다며, A급 인재는 A급과 일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1106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원자폭탄 개발에 인재를 끌어모은 J. 로버트 오펜하이머를 채용의 본보기로 삼았다고 말했다.
1107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번호판을 달지 않은 메르세데스를 본사 입구 곁의 장애인 전용 칸에 세우곤 했고, 때로 두 칸을 차지해 직원들의 농담거리가 됐다.
1108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회의 끝에 결정을 내리며 남이 먼저 낸 아이디어를 자기 생각처럼 말하거나 형편없다며 버리곤 했고, 반론을 권하면서도 도전하는 사람에게는 날 선 반응을 보였다.
1109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광고 영상에서 순식간에 지나가는 두 프레임이 빠진 것을 알아채고 음악 비트에 맞던 한 프레임을 되살리라고 했고, 그 지적은 옳았다고 리 클라우는 전했다.
1110
1997년 09월 16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고문 직함으로 10주간 사실상 회사를 이끈 끝에 임시 CEO 취임을 공표하고 iCEO라는 줄임 직함을 쓰기로 했다. 연봉도 정식 계약도 없는 잠정 직책이었다.
1111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iCEO를 맡은 그 주에 경영진과 간부들을 사내 강당에 모아 새 광고를 처음 선보이고, 반바지와 맨발 차림으로 애플이 제품·마케팅·유통이라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 뒤 야외에서 맥주와 채식 음식을 함께했다.
1112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의 이 격려 연설은 돈이 아니라 훌륭한 제품이 목표라는 선언으로 들려, 퇴사를 고민하던 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가 애플에 남기로 결심한 계기가 됐다고 아이브는 회고했다.
1113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이사회와 함께 몇 주 동안 정식 CEO를 물색하며 코닥의 조지 피셔, IBM의 샘 팔미사노, 선 마이크로시스템스의 에드 잰더 등을 검토했으나, 후보 대부분은 잡스가 이사로 적극 남아 있는 한 맡지 않겠다고 했다.
1114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래리 엘리슨과 함께 애플 CEO 자리를 노리던 컴퓨터 컨설턴트 한 명에게 낙점됐다는 거짓 이메일을 보내 골탕을 먹였다.
1115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과 픽사를 함께 이끌며 아침 7시에 출근해 밤 9시에 돌아오는 생활을 했고, 검은 포르쉐 컨버터블로 두 회사를 오가는 동안 신장결석까지 생겨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회고했다.
1116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 깊이 빠져들수록 회사를 떠날 수 없음을 깨달았고, 애플 없이는 삶이 의미 없다고 느껴 남아 회사를 다시 일으키기로 마음먹었다고 회고했다.
1117
1997년 10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마이클 델이 애플을 문 닫고 주주에게 돈을 돌려주는 게 낫다고 말한 것을 전해 듣고, CEO에게 마땅히 있어야 할 품격이 델에게는 없어 보인다는 취지의 이메일을 곧장 보냈다.
1118
1997년 10월경 · 42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주문 제조 방식 도입 회의마다 마이클 델의 확대 사진에 과녁을 그려 회의실 앞에 붙이고 곧 따라잡겠다고 외쳐 직원들을 결집했다.
1119
1997년 12월 00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12월 들어 iCEO 직이 사실상 기한 없이 이어지게 됐고, 이사회는 후임 물색을 점차 멈췄다. 울러드와 이사회가 넉 달 가까이 찾았지만 적임자가 없었다고 잡스는 회고했다.
1120
1998년 00월 00일, 43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막내딸 이브 잡스를 얻었다.
1121
1998년 00월 00일, 43세 때, 스티브 잡스는 1998년 초 두 달 치가 넘던 재고를 절반인 한 달 치로 줄였다.
1122
1998년경 · 43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애플 경영을 손에 쥔 지 얼마 안 돼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디자인은 외양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것의 바탕에 깃든 영혼이라고 말했다.
1123
1998년 00월 00일, 43세 때, 스티브 잡스는 한 기자에게 빌 게이츠는 미감이 없어 아이맥의 매력을 모른다며 경쟁사들이 아이맥을 겉모양으로만 본다고 비판했다.
1124
1998년경 · 43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디자인팀이 만든 새 색깔들을 보자마자 경영진을 스튜디오로 불러들여 색을 하나도 빼지 않고 모두 채택하겠다고 정했고, 다섯 색 채택을 30분 만에 끝냈다고 아이브는 말했다.
1125
1998년경 · 43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에드 울러드로부터 선지자에서 관리자로 변신한 모습이 기쁘고 놀랍다는 평가를 받았다.
1126
1998년 00월 00일, 43세 때, 스티브 잡스는 소니 고급 오디오의 슬롯 드라이브를 보고 9개월 뒤 나올 새 아이맥용 슬롯 드라이브를 제조사에 주문했고, CD 굽기 드라이브가 트레이형으로 먼저 나온다며 말리던 루빈스타인에게 샌프란시스코의 스시 바에서 개인적 부탁이라며 동의를 받아 냈다.
1127
1998년 00월 00일, 43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이맥 발표 이후 조니 아이브와 함께 재미있고 경쾌한 디자인을 애플 컴퓨터의 특징으로 삼았다.
1128
1998년 00월 00일, 43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이맥이 나오자 조니 아이브와 함께 아이맥을 들고 픽사를 찾아가, 그 대담함이 버즈 라이트이어와 우디를 만든 사람들 취향에 맞으리라 여기며 직원들에게 보여 줬다.
1129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쿠퍼티노 애플의 긴장에서 벗어나는 안식처로 픽사를 여겼고, 빗방울의 빛 굴절이나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을 그려 내는 컴퓨터 알고리즘에 열광했다.
1130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픽사에서는 창작 과정을 통제하려는 욕구를 누르고 존 래시터 등 창작자들에게 주도권을 넘기는 법을 익혔으며, 자신은 주로 계약 체결을 맡았다.
1131
1998년경 · 43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드림웍스가 「개미」를 만들기로 했다는 소식에, 디즈니 시절 「벅스 라이프」 구상을 들었던 제프리 카첸버그가 래시터의 곤충 영화 아이디어를 가로챘다고 믿고 그와 정면으로 부딪쳤다.
1132
1998년경 · 43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경쟁을 키우면 상대만 돕는다는 디즈니의 만류에도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 나쁜 편이 이기는 일은 드물다고 말했고, 드림웍스 마케팅 책임자 테리 프레스로부터 진정제가 필요하다는 응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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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첫 성공 뒤 두 번째 작품에서 무너지는 현상은 첫 성공의 이유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이라며, 애플에서도 이를 넘어섰고 픽사도 두 번째 영화로 성공을 확신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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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01월 06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한 해 전 아멜리오가 실패를 맛본 샌프란시스코 맥월드 무대에 턱수염과 가죽 재킷 차림으로 올라 새 제품 전략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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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01월 06일, 42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맥월드 발표 끝에 '한 가지 더'를 꺼내 '이윤을 생각하라'는 문구를 띄우고, 2년 적자 끝에 애플이 1997년 마지막 분기 4500만 달러 이익을 냈다고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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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02월 27일, 43세 때, 스티브 잡스는 스컬리가 아끼던 필기 인식 PDA 뉴턴을 기능이 불완전하고 스타일러스 기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완전히 단종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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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회사 사정이 그토록 급박하지 않았다면 뉴턴을 살려 보려 했을 것이라면서도, 경영 실패로 묻힌 기술을 걷어 내고 엔지니어들을 새 모바일 기기에 집중시킨 결과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나왔다고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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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03월 00일, 43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마이클 델처럼 적기 생산 공장과 공급망을 세울 사람을 찾다 컴팩의 조달·공급망 책임자인 37세 팀 쿡을 만나 애플로 영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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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03월 00일, 43세 때, 스티브 잡스는 첫 면접 5분 만에 애플행을 결심했다는 팀 쿡으로부터, 창의적인 천재와 함께할 기회라는 육감을 믿고 컴팩을 떠났다는 말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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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05월 00일, 43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이맥 출시를 앞둔 제품 검토 회의에서 제조 공정이 늦어진 사실이 드러나자 루빈스타인을 비롯한 참석자 전원에게 회사를 살리려는 판에 일을 망치고 있다고 호통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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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05월 00일, 43세 때, 스티브 잡스는 출시 리허설에서 처음 본 완성품의 버튼을 누르자 CD 트레이가 튀어나오자 격분해, 고급 차량에 쓰이는 슬롯형 드라이브여야 했다며 필 실러를 내보내고 루빈스타인과 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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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05월 00일, 43세 때, 스티브 잡스는 리허설을 미루며 한때 출시를 취소할 듯했으나, 다음 버전 아이맥에서 슬롯 드라이브로 바꾼다는 엔지니어들의 약속을 조건으로 출시를 진행했다. 그때 눈물이 날 지경이었지만 고치기엔 늦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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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05월 00일, 43세 때, 스티브 잡스는 발표 영상에 쓸 클립을 제작사 해나바베라가 허락하지 않아 빼야 한다는 보고를 받고도 그대로 쓰겠다고 했고, 클립은 삭제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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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05월 00일, 43세 때, 스티브 잡스는 리 클라우가 보낸 잡지 광고 교정쇄의 파란색이 아이맥 사진과 다르다며 전화로 고함쳤으나, 클라우가 원본과 대조해 두 색이 같음을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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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05월 00일, 43세 때, 스티브 잡스는 출시가 정해진 뒤 리허설을 거듭하며 객석 가운데서 다리를 앞좌석에 올린 채 조명이 더 환하게, 더 빨리 들어와야 한다고 주문했고, 아이맥이 정확한 순간 환하게 빛나자 바로 그거라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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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05월 00일, 43세 때, 스티브 잡스는 1년 전 이사회에서 내보낸 마이크 마쿨라를 쿠퍼티노 본사로 초청해 아이맥을 선보이고 평가를 청했고, 하키 퍽 같은 마우스는 사람들이 싫어할 것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그 지적은 결국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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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05월 06일, 43세 때, 스티브 잡스는 1984년 매킨토시를 공개했던 쿠퍼티노 디앤자 대학교 플린트 강당에서 무대 테이블의 천을 걷어 반투명 아이맥을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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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05월 06일, 43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이맥 발표회에서 부모의 차고에서 함께 회사를 시작한 스티브 워즈니악과 마이크 마쿨라, 첫 사장 마이크 스콧을 객석에서 소개하며 이들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자리도 없었다고 말하다 눈시울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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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05월 06일, 43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마우스를 눌러 아이맥 활용 장면을 띄운 뒤 1984년 매킨토시의 인사말을 같은 서체로 보여 주며 '다시 만나서'를 덧붙였고, 아이맥이 더 나은 디자이너가 사는 다른 행성에서 온 것 같다는 농담으로 웃음을 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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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이맥 출시 행사가 성공한 뒤 해마다 네다섯 차례 신제품 발표 무대를 직접 연출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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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청바지와 터틀넥에 생수병을 들고 무대를 거닐었고, 슬라이드와 연설 요점을 직접 쓰고 일고여덟 번씩 고쳐 로런 파월에게 세 가지 안을 보여 고르게 했으며, 예행연습 뒤 단어 하나만 바꿔도 처음부터 다시 연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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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iDVD 시연에 쓸 영상과 사진 자료를 엔지니어 마이크 에반젤리스트 팀이 수백 시간 찾아오게 했고, 사내에서 모은 자료 대부분을 퇴짜 놓아 결국 질을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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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이듬해 무대에서 파이널 컷 프로를 시연할 에반젤리스트가 리허설에서 긴장하자 1분 만에 멈추고 차분히 못 하면 빼겠다고 했고, 에반젤리스트는 그 압박 덕에 기대보다 잘해 냈다고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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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09월 00일, 43세 때, 스티브 잡스가 영입한 팀 쿡은 잡스가 한 달 치로 줄여 둔 애플 재고를 6일 치까지 낮췄고, 이듬해 9월 무렵에는 이틀 치로 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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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00월 00일, 44세 때, 스티브 잡스는 1999년 이사 래리 엘리슨의 비행기를 빌려 썼고, 애플은 그 대가로 엘리슨에게 10만 2000달러를 지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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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00월 00일, 44세 때, 스티브 잡스는 1999년 백화점 운영 경험을 지닌 소매업자 미키 드렉슬러를 애플 이사로 맞아 소매 구상의 지지자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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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00월 00일, 44세 때, 스티브 잡스는 오랜 인연인 어도비를 찾아가 윈도용 인기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 프리미어를 맥용으로도 내 달라고 했으나, 맥 사용자가 적다는 이유로 단번에 거절당하고 크게 분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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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00월 00일, 44세 때, 스티브 잡스는 어도비 일을 겪은 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핵심을 모두 쥐지 못하면 뛰어들지 말아야 한다고 깨달아 엔드투엔드 통제 욕구가 더 강해졌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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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00월 00일, 44세 때, 스티브 잡스는 직접 캠코더를 써 보면서 디지털 허브라는 발상을 처음 몸으로 이해했고, 아이무비 덕에 캠코더의 쓸모가 열 배로 커진다며 PC가 새로운 무언가로 바뀌리라는 생각을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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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경 · 44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새 운영체제의 화면 인터페이스를 맡을 디자이너를 구하던 중 면접을 망치고 로비에 있던 한 젊은 지원자가 보여 준, 아이콘이 커서에 따라 돋보기처럼 커지는 독 데모에 감탄해 그 자리에서 채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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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00월 00일, 44세 때, 스티브 잡스는 고객 경험을 끝까지 통제하려 했지만 대형 매장에서 애플 제품을 사는 경험만은 손댈 수 없었고, 판매원들이 50달러 수당에만 신경 쓴다며 메시지를 전할 길을 찾지 못하면 모든 게 무너진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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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00월 00일, 44세 때, 스티브 잡스는 1999년 말 애플 소매점 체인을 맡을 경영자를 찾으려 비밀 면접을 시작했고, 찢어진 청바지에 터틀넥 차림으로 소매 전문가 론 존슨을 만나 훌륭한 매장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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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00월 00일, 44세 때, 스티브 잡스는 직함의 '임시'를 떼면 컴퓨터 밖 제품 구상까지 펼칠 발판이 된다고 보고, 아내 로런 파월과 긴 산책을 하며 이 문제를 상의한 끝에 정식 CEO를 맡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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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00월 00일, 44세 때, 스티브 잡스는 복귀 뒤 어도비에 아이맥과 새 운영체제에서 쓸 동영상 편집 소프트웨어 등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으나, 윈도용 제품에 집중하겠다는 거절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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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0월 00일, 44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일본 캠코더 업체들이 애플의 고속 직렬 포트 기술 파이어와이어를 채택하자 10월 출시할 새 아이맥에 이를 넣기로 하고, 카메라 영상을 컴퓨터로 옮겨 편집·배포하는 시스템을 구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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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1월경 · 44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픽사의 성공이 확실해지자 새 본사를 짓기로 하고 에머리빌의 버려진 델몬트 통조림 공장 부지를 골라, 애플 스토어를 설계한 피터 보린에게 6만 5000제곱미터 부지의 건물 설계를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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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1월경 · 44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건물 개념부터 자재까지 깊이 관여하며, 거대한 단일 건물이 중앙 안뜰을 감싸고 현관·계단·카페·우편함·극장이 모두 안뜰로 이어져 직원들이 우연히 마주치게 하는 설계를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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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1월경 · 44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창의성은 이메일이나 아이챗이 아니라 우연한 만남과 즉석 토론에서 나온다며 픽사 건물이 그런 협업을 부르도록 설계하게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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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1월경 · 44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남녀 화장실을 하나씩만 두어 안뜰과 연결하라고 했다가, 임산부가 화장실까지 10분을 걸을 수는 없다는 반발 끝에 두 층 모두 안뜰 양쪽에 한 쌍씩 두는 안으로 래시터와 타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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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1월경 · 44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겉으로 드러나는 철제 빔을 위해 전국 제조사 견본을 살핀 끝에 아칸소 주의 한 제강소를 골랐고, 빔을 모래 분사 뒤 투명 코팅하고 용접 대신 볼트로 잇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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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래시터와 함께 중요한 손님들을 본사 러브 라운지로 데려가 벽에 서명하게 했고, 술을 마시지 않는 그는 그곳을 명상실이라 부르며 리드 대학 시절 대니얼 콧키와 지내던 다락방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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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00월 00일, 4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초대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리사의 하버드 대학교 졸업식에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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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앞서 크리스앤 브레넌에게 70만 달러짜리 집을 사 주면서 명의를 리사 앞으로 해 두었으나, 리사가 프리랜서 작가가 되려 맨해튼으로 옮긴 뒤에도 크리스앤에 대한 실망이 겹치며 딸과의 관계는 오르내림을 거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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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크리스앤 브레넌이 건강 문제로 돈이 필요했을 때 도움을 주지 않았고, 이 일로 리사는 다시 몇 년 동안 그와 연락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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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00월 00일, 4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이사회에 소매점 구상을 내놓았으나 호응을 얻지 못했고, 에드 울러드로부터 매장을 낸 게이트웨이는 고전했고 직판에 집중한 델은 잘나간다는 반론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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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00월 00일, 45세 때, 스티브 잡스는 2000년 지넨테크 CEO 아트 레빈슨을 애플 이사회로 불러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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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00월 00일, 4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잦은 줄다리기에 지친 에드 울러드가 의장직에서 물러나기로 마음먹기 전, 이사회로부터 시범 매장 4곳 운영 승인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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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00월 00일, 45세 때, 스티브 잡스는 본사 근처에 남몰래 시험용 매장을 완전히 꾸며 놓고 흡족할 때까지 고쳐 보라는 미키 드렉슬러의 조언에 따라 론 존슨과 쿠퍼티노의 빈 창고를 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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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00월 00일, 4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존슨과 6개월 동안 매주 화요일 오전 창고에서 만나 소매 운영의 철학을 두고 머리를 맞댔고, 혼자서도 매장 모형을 거닐며 구상하기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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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00월 00일, 45세 때, 스티브 잡스는 드렉슬러와 래리 엘리슨 등 가까운 친구들을 주말마다 창고로 불러 실제 크기로 꾸민 매장 모형을 구경시켰고, 엘리슨에게는 카드 건네기와 영수증 출력 같은 결제 단계를 줄일 방법을 끈질기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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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00월 00일, 45세 때, 스티브 잡스는 거의 다 지은 원형 매장이 지나치게 쪼개지고 산만하며 색이 많다는 미키 드렉슬러의 지적을 받고, 들어서자마자 흐름이 보이도록 단순하게 정리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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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00월 00일, 45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마흔다섯 살에 접어들며 굳은 사고의 홈에서 벗어나 모든 디지털 활동의 중심이 되는 컴퓨터라는 개념을 다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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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00월 00일, 45세 때, 스티브 잡스는 1년 넘게 전용기 내부 디자인에 매달려 엘리슨의 비행기를 기준 삼고 그 디자이너를 고용했으며, 열림·닫힘 버튼을 하나로 합치고 스테인리스 버튼을 브러시드 메탈로 바꿨다. 엘리슨은 잡스가 손본 곳은 하나같이 자기 비행기보다 나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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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00월 00일, 4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에드 울러드가 막대한 주식을 제안하자 셋째 아이가 태어났으니 가족과 하와이에 갈 비행기를 원한다고 답했고, 울러드로부터 걸프스트림 V 전용기와 스톡옵션 1400만 주를 제안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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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00월 00일, 45세 때, 스티브 잡스는 1400만 주가 주주 위임 한도라는 울러드에게 2000만 주를 요구하며, 전에는 옵션을 청한 적이 없고 울러드가 먼저 지분 5퍼센트까지 줄 수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맞서 어색한 다툼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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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경 · 45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컴퓨터를 디지털 허브로 삼으면 휴대 기기의 기능을 덜어 단순하게 만들 수 있다고 보고, 기기·컴퓨터·소프트웨어·애플리케이션을 한 덩어리로 묶는 구상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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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경 · 45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타임 인터뷰에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운영체제를 모두 가진 회사는 애플뿐이어서 사용자 경험 전체를 책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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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00월 00일, 45세 때, 스티브 잡스는 HP 등이 음악 CD 굽기 드라이브를 생산하던 무렵 애플은 음악보다 영상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아이맥에 슬롯형 드라이브를 고집하면서 CD라이터 탑재도 늦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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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00월 00일, 4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 CD 굽기 수요에 대응하지 못한 일을 두고 포춘 인터뷰에서 스스로 바보가 된 느낌이었고 기회를 놓쳤다고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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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00월 00일, 4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음악 시장이 커지리라 깨닫고 음악 추출·관리·굽기를 훨씬 쉽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았으며, 리얼 주크박스와 윈도 미디어 플레이어 같은 기존 프로그램은 너무 복잡하다고 결론 내렸다.
1191
2000년 00월 00일, 4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제프 로빈 등과 직접 작업하며 사운드잼을 애플 소프트웨어로 바꾸게 했고, 아티스트·앨범을 고르는 대신 검색어를 자유롭게 넣는 단순한 상자형 인터페이스를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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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00월 00일, 45세 때, 스티브 잡스는 2000년 가을부터 아이튠스와 연동되는 휴대용 뮤직 플레이어 개발을 밀어붙였고, 기존 플레이어들이 형편없다는 그의 판단에 필 실러와 존 루빈스타인도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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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00월 00일, 45세 때, 스티브 잡스는 표면 버튼과 CD 트레이, 팬까지 없앤 한 변 약 20센티미터의 투명 정육면체 G4 큐브를 내놓고, 뉴스위크에 불필요한 것을 덜어 내야 진보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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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00월 00일, 4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최고급 데스크톱인 큐브를 대량 판매용으로 키우려 분기당 20만 대 판매를 내다봤지만, 첫 분기 판매는 그 절반에 그쳤고 다음 분기에는 3만 대에도 못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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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큐브도 넥스트 컴퓨터처럼 디자인과 가격이 지나쳤다고 인정했고, 이 일을 거치며 비용과 예산, 출시 시기를 맞바꾸는 법을 익혔다.
1196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평면 스크린이 상용화되자 반투명 아이맥을 바꿔야 한다고 판단했고, 본체를 화면 뒤에 붙이자는 조너선 아이브의 안을 순수하지 않다며 물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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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그날 일찍 퇴근해 고민한 뒤 아이브를 집으로 불렀고, 로런 파월이 해바라기를 가득 심은 정원에서 아이브가 해바라기처럼 화면을 받침대에서 떼어 내자는 안을 내놓았다.
1198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새 아이맥 디자인 특허 가운데 평면 스크린을 움직이는 부품에 단 컴퓨터 시스템 특허에 자신을 주 발명자로 올렸다.
1199
2000년 00월 00일, 4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임시 꼬리표를 떼고 정식 CEO가 된 뒤 에드 울러드와 이사회로부터 전용기와 대규모 스톡옵션을 제안받자, 그보다 훨씬 많은 옵션을 요구해 울러드를 놀라게 했다.
1200
2000년 01월 00일, 44세 때, 스티브 잡스는 1997년 부여분으로 소급한 스톡옵션 1000만 주를 받고 2001년에 추가로 받는 안으로 울러드와 보상 문제를 정리했다.
1201
2000년 01월 00일, 44세 때, 스티브 잡스는 2차 면접차 온 론 존슨과 개점 전 스탠퍼드 쇼핑몰을 걸으며 백화점과 전문점의 역할을 따졌고, 입구가 둘인 에디 바우어 매장을 보고 애플 스토어 입구는 하나로 두기로 했다.
1202
2000년 01월 00일, 44세 때, 스티브 잡스는 컴퓨터 매장은 임대료 싼 곳에 둔다는 통념에 반대해, 애플 스토어는 비싸더라도 사람이 몰리는 쇼핑몰과 도심에 두어 지나가던 윈도 사용자까지 끌어들여야 한다고 했다.
1203
2000년 01월 00일, 44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 갭보다 큰 브랜드라는 데서 매장도 커야 한다는 론 존슨의 말에 공감하며 마쿨라의 '귀속' 원칙을 꺼냈고, 제품 수가 적다는 점을 살려 넓고 미니멀하며 손님이 직접 만져 볼 수 있는 매장을 구상했다.
1204
2000년 01월 05일, 44세 때, 스티브 잡스는 샌프란시스코 맥월드에서 새 운영체제 맥 OS X를 발표하고, '한 가지 더' 차례에 애플과 픽사 두 회사를 함께 맡는 데 익숙해졌다며 직함의 '임시'를 떼겠다고 밝혀 기립 박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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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01월 05일, 44세 때, 스티브 잡스는 독 아이콘이 커지는 기능을 시연해 환호를 받았고, 환호에 쑥스러워하며 애플과 픽사의 일은 팀 스포츠라 이 박수는 애플 전 직원을 대신해 받겠다고 말했다.
1206
2000년 06월 00일, 45세 때, 스티브 잡스는 2000년 6월 애플 주식의 2 대 1 액면분할로 스톡옵션 계산이 더 복잡해졌고, 이어진 인터넷 거품 붕괴로 주가가 폭락해 옵션을 행사할 수 없게 됐다.
1207
2000년 09월 00일, 45세 때, 스티브 잡스는 큐브 판매 부진과 인터넷 거품 붕괴로 애플 주가가 폭락하면서 받은 스톡옵션이 사실상 가치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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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0월 00일, 4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이른 화요일 아침 찾아온 론 존슨으로부터 매장 구조를 처음부터 바꿔야 한다는 말을 듣고 6개월 공들인 걸 다 엎자는 거냐며 고함쳤지만, 원형 매장까지 가는 7분 동안의 침묵 끝에 존슨이 옳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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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0월 00일, 4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이사·팀과의 회의에서 매장은 제품이 아니라 고객의 활동 중심이어야 한다는 존슨의 생각이 옳다고 인정하고, 1월 개장이 3~4개월 늦어지더라도 다시 설계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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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잘못을 발견하면 되감기 버튼을 누르듯 되돌려 고쳐야 한다며, 「토이 스토리」의 우디가 지나치게 못되게 변해 다시 작업한 일과 원조 매킨토시 때의 비슷한 일을 자주 예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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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00월 00일, 4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 스토어 계획이 《비즈니스 위크》로부터 이제는 남다르게 생각하기를 멈출 때라는 비판을 받았고, 전 CFO 조지프 그라치아노로부터도 치즈와 크래커로 족한 세상에 캐비어를 내놓으려 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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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경 · 4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론 존슨이 리츠칼튼처럼 안내 데스크와 바를 합쳐 맥에 밝은 직원을 두자며 '지니어스 바'를 제안하자 이름까지 싫다며 일축했으나, 이튿날 법률고문에게 그 이름의 상표 등록을 지시했다.
1213
2001년 00월 00일, 46세 때, 스티브 잡스는 2001년 무렵 PC 회사로 다시 일어선 애플의 다음 방향을 정하려고, 매년 가장 아끼는 직원 100명을 골라 휴양지에서 여는 '톱 100' 행사에서 해야 할 일 열 가지를 받아 일곱 개를 지우고 세 가지만 남겼다.
1214
2001년 00월 00일, 46세 때, 스티브 잡스는 PC 시대가 끝나 간다는 전망과 달리 PC가 음악 플레이어·비디오 레코더·카메라를 묶는 '디지털 허브'가 되어 사람들의 디지털 라이프스타일을 관리하게 될 것이라고 보고 회사의 새 전략에 착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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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00월 00일, 46세 때, 스티브 잡스는 닷컴 붕괴로 경쟁사들이 신제품 개발비를 깎던 시기에 오히려 연구 개발 투자를 이어 가 침체기를 뚫기로 했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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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경 · 4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아이맥에 슬롯 드라이브를 고집한 탓에 음악 CD를 굽고 싶어 하는 수요를 제때 따라잡지 못했고, 그 경험을 계기로 음악 시장에 뛰어들기로 결단했다.
1217
2001년경 · 4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증권거래위원회 의장을 지낸 아서 레빗에게 이사직을 제안했다가, 이사회의 독립을 강조한 그의 지배구조 관련 연설 원고를 본 뒤 전화로 제안을 철회했다. 레빗은 이를 애플 이사회가 CEO에게서 독립적이지 못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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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00월 00일, 46세 때, 스티브 잡스는 2001년 말 가치를 잃은 기존 옵션을 대신할, 행사 가격이 더 낮은 새 옵션을 이사회에 요청했다.
1219
2001년경 · 4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드라이브 제조사와 오래 협업해 DVD를 기록할 수 있는 드라이브를 만들어 업계에서 처음으로 DVD라이터를 내놓았다고 말했다.
1220
2001년경 · 4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마이크 에반젤리스트가 보여 준 DVD 굽기 소프트웨어 초기 화면을 보고 화이트보드에 사각형 하나를 그려, 창에 파일을 끌어다 놓고 '굽기' 버튼만 누르는 프로그램을 만들라고 지시했고 버튼 아이콘 디자인까지 챙겼다. 이 지시가 iDVD로 이어졌다.
1221
2001년경 · 4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디지털 사진도 폭발적으로 늘어나리라 확신하고 컴퓨터를 사진 관리의 중심으로 만드는 방법을 개발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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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00월 00일, 46세 때, 스티브 잡스는 개인용 컴퓨터가 음악 플레이어·캠코더·휴대전화·태블릿 같은 생활 기기를 하나로 엮는 디지털 허브가 된다는 전략을 세웠다.
1223
2001년 01월 00일, 45세 때, 스티브 잡스는 고쳐 지은 원형 매장이 완성되자 이사들을 불러 화이트보드로 설계 원리를 설명한 뒤 밴에 태워 3킬로미터쯤 떨어진 매장으로 데려갔고, 이사회는 만장일치로 추진을 승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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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01월 00일, 45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맥월드 기조연설에서 디지털 허브 전략의 하나로 아이튠스를 선보이며 맥 사용자에게 무료로 주겠다고 밝혔고, 음악 혁명에 동참하라며 외친 마무리 구호 '리핑, 믹싱, 굽기'는 광고 문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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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02월 00일, 45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맥월드 도쿄 기조연설차 일본에 머물던 중, 소형 하드 드라이브 확보 방안을 들고 오쿠라 호텔로 찾아온 존 루빈스타인에게서 1000만 달러면 해결된다는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결재 권한을 넘겼다.
1226
2001년 04월 00일, 4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 본사 4층 회의실에서 토니 퍼델의 아이팟 계획 발표를 듣다가 경쟁사 슬라이드에서 소니는 걱정할 것 없다며 발표를 끊고 질문을 쏟아낸 끝에 아이팟의 기본 방향을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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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04월 00일, 46세 때, 스티브 잡스는 퍼델이 가져온 세 가지 모형 가운데 메모리 카드형은 복잡하다고, D램형도 마땅찮다고 물리친 뒤 1.8인치 하드 드라이브를 넣은 모형으로 곧장 가기로 결정했다.
1228
2001년 04월 00일, 46세 때, 스티브 잡스는 필 실러가 회의실 밖에서 들고 온 트랙휠 달린 모형을 보자 바로 그것이라고 외치며 퍼델과 엔지니어들에게 휠을 달라고 지시했다.
1229
2001년 4월경 · 4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연말 쇼핑 시즌에 아이팟을 내놓으려고 10월에 첫 공개를 하기로 일정을 정했다.
1230
2001년 4월경 · 4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아이팟 개발 기간 매일 사용자 인터페이스 화면을 하나하나 점검하며, 어떤 기능이든 세 번 안에 클릭해 찾아 직관적으로 쓸 수 있어야 한다는 기준을 세웠다.
1231
2001년 4월경 · 4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토니 퍼델로부터 문제를 새로 정의해 사소한 걸림돌을 아예 없애 준다는 평가를 받았다.
1232
2001년 4월경 · 4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밤마다 토니 퍼델에게 전화를 걸어 아이디어를 전했다.
1233
2001년 4월경 · 4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재생 목록 만들기 같은 기능을 아이팟이 아니라 아이튠스에서 처리해 기기와 동기화하게 하는 것을 핵심 구상으로 삼았다. 리오 같은 기존 제품은 기능을 몰아넣어 쓰기 어렵다고 봤기 때문이다.
1234
2001년 4월경 · 4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아이팟에서 전원 스위치를 없애고, 쓰지 않으면 저절로 잠든 상태가 됐다가 버튼을 누르면 깨어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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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4월경 · 4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1000곡을 담는 저장장치와 스크롤 휠, 10분 만에 1000곡을 옮기는 파이어와이어, 1000곡을 재생하는 배터리가 맞물리자 제품 개념을 '주머니 속 1000곡'으로 압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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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4월경 · 4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한 카피라이터가 낸 '팟'이라는 이름에 동의한 뒤 아이맥·아이튠스와 같은 'i'를 붙여 제품명을 아이팟으로 정했다.
1237
2001년 4월경 · 4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지적 재산권과 예술가의 수입을 지키려고 개발 막바지에 음악이 컴퓨터에서 아이팟으로만 옮겨 가도록 동기화를 한 방향으로 묶고, 투명 포장에 'Don't Steal Music' 문구를 넣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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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4월경 · 4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이어폰은 검은색이어야 한다는 주변 의견과 달리 조너선 아이브가 생각한 흰색을 곧바로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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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05월 19일, 46세 때, 스티브 잡스는 버지니아주 타이슨스 코너 쇼핑몰에 첫 애플 스토어를 열었다.
1240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 스토어가 늘어나는 동안 건축 회사 보린 크윈스키 잭슨에 설계를 맡기면서도 핵심 결정은 직접 내렸고, 매장 문을 열 즈음의 마케팅 회의에서 화장실 안내판 회색을 정하는 데만 30분을 썼다고 리 클라우는 회상했다.
1241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넥스트 시절 만들었던 계단을 모델 삼아 애플 스토어에도 계단을 들였고, 짓고 있는 매장에 들를 때마다 고칠 점을 내놓았으며, 유리 디딤판 투명 계단을 비롯한 계단 특허 2건의 주 발명자가 됐다.
1242
2001년 10월경 · 4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회의실 탁자에 펼쳐진 아이팟 광고 시안 가운데 제품 사진을 반기고 상징 이미지만 담은 포스터에는 제품이 안 보인다며 반대하다가, 제임스 빈센트가 '1000곡의 노래를 주머니 속에' 문구를 넣자고 하자 받아들였다.
1243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얼마 뒤 상징 이미지를 쓴 광고가 자신의 아이디어였다고 주장했다.
1244
2001년 10월경 · 4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아이팟이 팔리겠느냐는 회의론을 물리치고, 통합 시스템 덕에 아이팟이 아이맥 판매까지 끌어올리리라 보고 아이맥 광고에 쓰던 7500만 달러를 아이팟 광고로 돌렸다.
1245
2001년 10월 23일, 46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맥은 아닙니다'라는 힌트를 단 초청장으로 연 행사에서 아이팟을 처음 공개했고, 성능을 설명한 뒤 청바지 주머니에서 흰 기기를 꺼내 1000곡이 들어 있다고 소개했다.
1246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뉴스위크의 스티븐 레비에게 애플이 왜 존재하느냐고 묻는다면 이 제품을 들어 보이겠다고 말했다.
1247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노래에 맞춰 춤추는 실루엣이 나오는 아이팟 TV 광고의 배경음악을 리 클라우·제임스 빈센트와 주례 마케팅 회의에서 골랐고, 제작 직전 진부하다며 취소하자고 했다가 빈센트의 설득에 물러서곤 했다.
1248
2002년 00월 00일, 47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 스토어 바닥의 밝은 목재가 밋밋하다며 1985년 피렌체에서 본 돌로 바꾸기로 했고, 콘크리트로 흉내 내면 비용이 10분의 1이라는 권고를 물리치고 피렌추올라의 가족 경영 채석장 일 카소네에서 캐는 푸른빛 도는 회색 사암 피에트라 세레나를 고집했다.
1249
2002년 00월 00일, 47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음악 무단 복제를 내버려 두면 아이팟 가치가 오를 수 있었지만 창작물 도둑질에 반대했고, 음반사 서비스보다 매력적인 합법 대안을 내놓는 것만이 복제를 줄이는 길이라고 판단했다.
1250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 초창기 소프트웨어가 마구 복제됐다면 회사가 망했을 것이라며 도둑질은 남을 해칠 뿐 아니라 자기 인격도 깎는다고 말했다.
1251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에스콰이어의 앤디 랭에게 음악을 훔치는 사람의 80퍼센트는 합법적 선택지가 없어서 그렇다고 보며, 음반사·아티스트·애플·사용자가 모두 이기는 대안을 만들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1252
2002년 00월 00일, 47세 때, 스티브 잡스는 오랜 지인인 타임 워너 AOL 사업부 CEO 배리 슐러에게 음반사를 끌어들일 방법을 묻고, 엔드투엔드 서비스를 갖춘 애플이 합법 음악 유통의 최적 파트너임을 내세우라는 조언을 받았다.
1253
2002년 00월 00일, 47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이튠스 스토어를 만들기로 하고, 5대 메이저 음반사에 그곳에서 음악을 팔자고 설득하는 일에 어느 때보다 많은 시간을 쏟았다.
1254
2002년 00월 00일, 47세 때, 스티브 잡스는 곡 단위 판매와 가격 구조를 걱정하는 음반사들에게 스토어가 점유율 5퍼센트인 매킨토시 전용이라 실패해도 업계 전체가 다치지 않는다며 부담 없는 시험 무대라는 점을 내세웠다.
1255
2002년 00월 00일, 47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음원 한 곡을 99센트에 팔아 그중 70센트를 음반사에 주자고 제안했고, 사람들은 좋아하는 노래를 빌리기보다 갖고 싶어 한다며 월 구독 모델보다 곡 구매 방식이 낫다고 주장했다.
1256
2002년 00월 00일, 47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앨범 통째가 아니라 곡마다 따로 팔아야 한다고 고집해 음반사와 가장 크게 부딪쳤다. 불법 복제와 온라인 다운로드로 앨범 판매는 이미 무너졌다고 봤기 때문이다.
1257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픽사를 겪으며 기술 회사는 창의성과 직관의 가치를, 음반사는 기술을 모른다는 차이를 알게 됐다며 자신은 두 세계를 함께 이해하는 드문 사람이라고 말했다.
1258
2002년 00월 00일, 47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태블릿 PC를 개발하던 지인의 쉰 살 생일 모임에 게이츠 부부와 나란히 마지못해 참석했다가, 그 엔지니어가 스타일러스로 쓰는 자사 태블릿 소프트웨어가 노트북을 대체할 테니 애플도 라이선스를 받으라고 열 번가량 거듭 권하는 말을 들었다.
1259
2002년 00월 00일, 47세 때, 스티브 잡스는 진짜 태블릿이 무엇인지 보여 주겠다고 마음먹고 파티 이튿날 팀을 불러, 키보드와 스타일러스 없이 손가락으로 입력하는 태블릿을 위해 멀티터치 디스플레이를 개발하라고 지시했다.
1260
2002년 01월 00일, 4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이팟 사용자에게 쉽고 안전한 합법 음악 내려받기 길을 열어 주려던 중, 쿠퍼티노로 찾아온 폴 비디치 등 음반업계 대표단의 발표를 슬라이드 네 장째에서 끊고 어리석은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1261
2002년 01월 00일, 46세 때, 스티브 잡스는 비디치로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니 도와 달라는 요청을 받고 애플도 워너·소니와 협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1262
2002년 01월 00일, 4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소니가 회의 뒤 논의에서 빠져 로열티를 노린 독자 포맷을 고집하면서 업계 표준화가 무산돼, 디지털 음악 판매의 주도권을 잡을 기회를 얻었다.
1263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소니 CEO 이데이 노부유키로부터 자기 의제를 따로 갖고 모든 것을 공유하지 않아 대기업이 함께 일하기 몹시 힘든 천재라는 평가를 받았다.
1264
2002년 02월 28일, 47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마이클 아이스너로부터 상원 위원회 증언에서 아이튠스의 '립, 믹스, 번' 광고가 CD 불법 복제를 부추긴다는 비난을 받고 크게 분노했다.
1265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디즈니·픽사 계약 갱신을 앞둔 시점에 파트너를 공개 공격한 아이스너의 발언에 어이가 없어, 디즈니 임원 한 명에게 전화해 마이클이 방금 무슨 짓을 했는지 아느냐고 따졌다.
1266
2002년 03월 00일, 47세 때, 스티브 잡스는 배리 슐러를 협상에 끌어들이고, 폴 비디치에게 워너 뮤직 대표 로저 에임스를 데리고 쿠퍼티노로 와 달라고 요청했다.
1267
2002년 03월 00일, 47세 때, 스티브 잡스는 쿠퍼티노 회동에서 에디 큐와 에임스가 영국 라디오를 두고 언쟁하자 드물게 중재자로 나서, 우리는 기술은 알아도 음악은 모르니 다투지 말자고 했다.
1268
2002년 03월 00일, 47세 때, 스티브 잡스는 복제 방지 코드를 넣은 새 포맷 CD를 지원해 달라는 에임스의 요청을 즉석에서 받아들이고, 워너 뮤직이 아이튠스 스토어 출범을 도와 업계에 그 정당성을 보여 달라고 요구했다.
1269
2002년 03월 00일, 47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이튠스 스토어 시제품을 본 로저 에임스로부터 기다리던 서비스라는 반응을 얻었고, 워너 뮤직이 애플과 계약하기로 합의하면서 첫 메이저 음반사 지지를 확보했다.
1270
2002년 3월경 · 47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동부로 건너가 타임 워너 경영진에게 아이튠스 스토어를 시연했고, 에임스와 복사 허용 기기 수와 복제 방지 방식 같은 세부 조건을 맞춘 뒤 다른 음반사 설득에 나섰다.
1271
2002년 3월경 · 47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에임스의 짧은 코치를 받으며 뉴욕 브로드웨이의 유니버설 뮤직 그룹 수장 더그 모리스 사무실을 찾아가, 스토어와 음악 관리 소프트웨어, 아이팟을 묶은 완결형 시스템으로 그를 설득했다.
1272
2002년 3월경 · 47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시제품을 확인하러 쿠퍼티노에 온 지미 아이오빈에게 그쪽 기술진은 이렇게 단순하게 만들지 못한다고 말했다.
1273
2002년 06월 00일, 47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마이클 아이스너와 공개 공방을 시작했고, 월트 디즈니의 창의 정신을 잇는 인물로 여겨 온 로이 디즈니에게 아이스너가 CEO로 있는 한 디즈니와 계약을 갱신하지 않겠다고 알렸다.
1274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디즈니가 부진한 동안 픽사가 잇따라 디즈니 사업을 살렸는데도 아이스너는 20년 관계에서 픽사에 머문 시간이 두 시간 반 남짓일 만큼 관심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1275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이스너가 쓴 이메일이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 유출되자 몹시 분노했다.
1276
2003년 00월 00일, 48세 때, 스티브 잡스는 소니 음악 부문의 새 책임자 앤디 랙과 아이튠스 스토어 판매 협상을 벌였고, 랙으로부터 아이팟이 팔릴 때마다 음반사에도 몫을 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1277
2003년 00월 00일, 48세 때, 스티브 잡스는 랙에게는 여러 차례 동의한다고 답하면서 더그 모리스와 로저 에임스에게는 랙이 음악 사업을 모른다고 불평했다.
1278
2003년 00월 00일, 48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앤디 랙으로부터 제안에 동의해 놓고 실행하지 않으며 곤란한 대목은 빼 버리지만 그래도 천재라는 평가를 받았다.
1279
2003년 00월 00일, 48세 때, 스티브 잡스는 랙을 설득하려 뉴욕 포 시즌스 호텔 펜트하우스로 불러 미리 주문해 둔 오트밀과 과일로 아침을 대접했다.
1280
2003년 00월 00일, 48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마케팅 영향력과 말솜씨로 다른 음반사들을 하나씩 자기편으로 끌어들였다.
1281
2003년 00월 00일, 48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이튠스 스토어 출시 전 보노, 믹 재거, 셰릴 크로 등 대형 아티스트 20여 명을 직접 만나 설득했고, 밤 10시에도 로저 에임스에게 전화해 레드 제플린과 마돈나를 접촉해야 한다고 재촉했다.
1282
2003년 00월 00일, 48세 때, 스티브 잡스는 랩에는 끌리지 않았지만 에미넴 같은 래퍼를 끌어들이려 그의 멘토 닥터 드레와 협의했고, 애플 본사에서 아이튠스·아이팟 연동 시연을 본 닥터 드레에게서 드디어 제대로 아는 사람이 나왔다는 칭찬을 들었다.
1283
2003년 00월 00일, 48세 때, 스티브 잡스는 재즈 앳 링컨 센터 모금 행사로 서부에 와 로런 파월을 만난 윈턴 마살리스를 팰로앨토 집으로 불러, 그가 다른 데로 눈을 돌릴 때마다 화면을 보라며 두 시간가량 아이튠스를 시연했다.
1284
2003년 00월 00일, 48세 때, 스티브 잡스는 「니모를 찾아서」 이후 아이스너에게 수익을 반씩 나누는 대신 픽사가 영화와 캐릭터 권리를 모두 갖고 디즈니에는 배급 수수료 7.5%만 주는 조건을 내밀며, 기존 계약의 남은 두 편 「인크레더블」과 「카」에도 이를 적용하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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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00월 00일, 48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이튠스 스토어를 열면서 모든 곡에 같은 낮은 가격을 붙이자고 고집해 곡당 99센트로 판매를 시작했다.
1286
2003년경 · 48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지시한 지 약 6개월 만에 팀이 만든, 투박하지만 실제로 작동하는 멀티터치 시제품을 받아 보았다.
1287
2003년경 · 48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시제품을 넘겨받은 다른 UI 디자이너가 한 달 뒤 관성 스크롤 아이디어를 들고 오자 완전히 매료됐다고 회고했다.
1288
2003년 00월 00일, 48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알루미늄을 대량으로 산화 피막 처리할 시설이 없다는 말을 듣자 중국에 별도 공장을 세우게 했고, 조니 아이브는 사스가 유행하던 시기 석 달 동안 현지 기숙사에 머물며 공정을 감독했다.
1289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금속 다음에는 유리를 완전히 익혀야 한다고 조니 아이브에게 말했고, 두 사람은 애플 매장에 커다란 통유리창과 유리로 된 계단을 설치했다.
1290
2003년 04월 28일, 48세 때, 스티브 잡스는 샌프란시스코 모스콘 컨벤션 센터 발표회에서 아이튠스 스토어를 처음 공개하며, 냅스터가 인터넷의 음악 전파력을 증명했고 카자 같은 서비스가 노래를 공짜로 퍼뜨리고 있다고 짚었다.
1291
2003년 04월 28일, 48세 때, 스티브 잡스는 무료 파일은 품질과 신뢰도가 낮고 결국 도둑질이라고 지적한 뒤, 죄수복 슬라이드로 구독형 서비스 프레스플레이·뮤직넷을 꼬집고 밥 딜런 슬라이드와 함께 사람들은 사랑하는 음악을 소유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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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04월 28일, 48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음반사들이 애플과 함께 세상을 바꾸기로 했다며 스토어가 20만 곡으로 문을 열어 날마다 늘어날 것이라고 발표했고, 산 곡을 소유하고 CD로 굽고 미리 들어 볼 수 있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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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04월 28일, 48세 때, 스티브 잡스는 한 곡 99센트가 스타벅스 라테 값의 3분의 1도 안 된다며, 카자에서 쓸 만한 곡을 찾는 데 15분이 걸리지만 아이튠스는 1분이면 된다는 계산을 보여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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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04월 28일, 48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이튠스 스토어가 음악 산업의 전환점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1295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맥 전용인 덕에 맥 판매가 기대 이상 늘었다며 아이팟의 윈도 PC 지원에 반대했고, 필 실러·존 루빈스타인·제프 로빈·토니 파델이 모두 반대 의견을 냈지만 몇 달 동안 홀로 버텼다.
1296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파델의 압박이 이어지자 사업상 타당함을 증명하라고 요구했고, 분석 결과를 받아 본 뒤 하고 싶은 대로 하라며 윈도 지원을 허락했다.
1297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윈도용 음악 소프트웨어를 처음엔 외부 업체에 맡겨 아이팟 연결 정보까지 건넸지만, 그 프로그램을 6개월 참은 끝에 윈도용 아이튠스를 직접 개발하게 했다.
1298
2003년 05월 00일, 48세 때, 스티브 잡스는 셰릴 크로에게서 에미넴 곡 몇 개를 받아 들은 뒤 점점 좋아진다고 말했다.
1299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제임스 빈센트를 따라 에미넴 콘서트에 갔지만 끝난 뒤 잘 모르겠다고 했고, 재생 목록에 랩을 넣지 않았다. 에미넴을 아티스트로 존중하면서도 그 가치관에는 공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300
2003년 05월 00일, 48세 때, 스티브 잡스는 월트 모스버그와의 인터뷰에서 태블릿 PC 제작 계획은 없다고 잘라 말하며, 사람들은 키보드를 원하고 태블릿은 이미 여러 기기를 가진 부유층에게나 통할 것이라고 말했다.
1301
2003년 10월 00일, 48세 때, 스티브 잡스는 예전에 치료받았던 비뇨기과 의사를 우연히 만나 신장·요관 CT를 다시 찍었고, 췌장에 음영이 보인다며 추가 검사를 권유받았지만 처음에는 따르지 않았다.
1302
2003년 10월 00일, 48세 때, 스티브 잡스는 거듭된 권유 끝에 병원을 찾아 췌장 종양 진단을 받았고, 그날 저녁 생체검사에서 진행이 느린 췌장 신경내분비 종양으로 확인됐다. 정기 신장 검사로 일찍 발견돼 전이 전에 떼어 낼 수 있는 상태였다.
1303
2003년 10월 00일, 48세 때, 스티브 잡스는 진단 직후 인도 아시람에서 알게 된 래리 브릴리언트에게 가장 먼저 연락해 아직 신을 믿느냐고 묻고, 님 카롤리 바바에게서 배운 신에 이르는 길을 이야기하다 암에 걸렸다고 털어놓았다.
1304
2003년 10월 00일, 48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 이사 아트 레빈슨과 전립선암을 이겨 낸 인텔의 앤디 그로브에게도 병을 알렸고, 두 사람은 그의 치료 조언자가 됐다.
1305
2003년 10월 00일, 48세 때, 스티브 잡스는 당시 유일하게 널리 인정되던 치료법인 종양 절제 수술을 받지 않겠다고 결정해 아내와 친구들을 놀라게 했고, 이 거부는 9개월 동안 이어졌다.
1306
2003년 10월 00일, 48세 때, 스티브 잡스는 수술 대신 엄격한 채식 식단과 침술, 약초 요법 같은 대체요법을 시도했고, 한동안 캘리포니아 남부의 자연치료 클리닉 의사에게 치료를 맡겼다.
1307
2003년 10월 00일, 48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내 로런 파월과 아트 레빈슨, 앤디 그로브, 딘 오니시로부터 수술을 받으라는 설득을 거듭 받았고, 로런 파월은 여동생 모나 심프슨 등 가까운 이들까지 설득에 나서게 했다.
1308
2003년 10월 16일, 48세 때, 스티브 잡스는 샌프란시스코 발표회에서 '지옥이 얼어붙었다'는 슬라이드를 띄우고 윈도용 아이튠스 출시를 알렸으며, 믹 재거·닥터 드레·보노가 아이챗과 영상으로 무대에 함께했다.
1309
2003년 10월 16일, 48세 때, 스티브 잡스는 청중의 환호 속에 윈도용 아이튠스가 아마 역대 최고의 윈도 프로그램일 것이라고 말했다.
1310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몇 년 뒤 마이크로소프트 준의 부진을 두고 그들은 음악과 예술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았고 애플은 스스로 갖고 싶어 아이팟을 만들었기에 이겼다고 평했다.
1311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 독립 손익을 가진 사업부를 두지 않고 모든 부문을 직접 관리하며 회사 전체를 하나의 손익 구조로 운영했다.
1312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스스로 잡아먹지 않으면 남이 잡아먹는다며 자기 잠식을 두려워하지 않는 원칙을 세웠고, 아이폰이 아이팟을, 아이패드가 노트북을 잠식할 수 있어도 계획을 접지 않았다.
1313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다른 플레이어 제조사에 페어플레이 사용을 허가하지 않았고, 다른 온라인 스토어가 아이팟용 음원을 파는 것도 막았다.
1314
2004년경 · 49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암 투병 소식이 알려진 뒤 티나 레지로부터 응원의 연락을 다시 받았다.
1315
2004년 00월 00일, 49세 때, 스티브 잡스는 2004년에 채운 자신의 아이팟에 밥 딜런 해적판 음반 6장과 데뷔작 『밥 딜런』부터 1989년 『오 머시』까지의 정규 앨범 15장을 차례로 담았다.
1316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블러드 온 더 트랙스』 이후 딜런 앨범은 초기만큼 강렬하지 않다고 주장했고, 후기 곡 중에는 영화 「원더 보이스」에 쓰인 「싱스 해브 체인지드」만 예외로 꼽았다.
1317
2004년 00월 00일, 49세 때, 스티브 잡스는 같은 아이팟에 비틀스 앨범 7장과 롤링 스톤스 앨범 6장, 옛 연인 존 바에즈의 앨범 4장 가운데 고른 곡들을 넣었다.
1318
2004년 00월 00일, 49세 때, 스티브 잡스는 그 밖에 어리사 프랭클린과 지미 헨드릭스 등 1960년대 음악을 중심으로 콜드플레이·그린 데이·U2 같은 현대 아티스트, 바흐 「브란덴부르크 협주곡」과 요요마 앨범 3장도 담았다.
1319
2004년 00월 00일, 49세 때, 스티브 잡스는 U2 신곡을 알릴 방법을 찾던 보노의 전화를 받고, 팰로앨토 자택 정원을 함께 거닐며 그의 설득을 들었다.
1320
2004년 00월 00일, 49세 때, 스티브 잡스는 밴드 멤버도 광고에 나오게 해 달라는 보노의 요청에 결정을 미루다가, 팬 실루엣 다음은 아티스트 실루엣이 아니냐는 말에 검토할 만하다고 답했다.
1321
2004년 00월 00일, 49세 때, 스티브 잡스는 보노로부터 밴드 밖에서는 유일하게 미발매 앨범 『하우 투 디스맨틀 언 어타믹 밤』의 복사본을 받았다.
1322
2004년 00월 00일, 49세 때, 스티브 잡스는 LA 홈비힐스의 지미 아이오빈 집에서 에지, U2 매니저 폴 맥기네스와 만났고, 이어 자택 부엌에서 열린 회의에서 계약 요점을 정리했다.
1323
2004년 00월 00일, 49세 때, 스티브 잡스는 보노와 아이오빈에게서 검은색 아이팟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고 흰색 외의 색은 보기 좋지 않았다며 난색을 보였으나, 다음 회의에서 검은색 시제품을 내보였다.
1324
2004년 00월 00일, 49세 때, 스티브 잡스는 검은색 출시와 로열티·홍보비 문제가 풀리지 않자 광고를 맡은 제임스 빈센트에게 모든 진행을 멈추라고 지시하고 다른 광고안을 검토하자고 했다.
1325
2004년 00월 00일, 49세 때, 스티브 잡스는 보노와 직접 통화하게 해 달라는 빈센트의 간청에 보노의 휴대전화 번호를 건넸고, 조니 아이브를 더블린에 보내 검은색과 빨간색 아이팟을 보여 주자는 제안도 받아들였다.
1326
2004년 00월 00일, 49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티스트에게 로열티를 주는 선례가 생길까 걱정해 U2 거래를 다시 따져 보려 했지만, U2만의 예외로 남을 것이라는 빈센트의 설득을 받았다.
1327
2004년 00월 00일, 49세 때, 스티브 잡스는 더블린에서 아이브와 보노가 정리한 내용을 연락받고 제품 디자인과 합의 조건을 하나하나 꼼꼼히 확인했다.
1328
2004년 00월 00일, 49세 때, 스티브 잡스는 췌장암 절제 수술을 받으면서 의료진에게 자신의 종양 유전체 가운데 일부의 염기 배열을 해독해 달라고 요청했다.
1329
2004년 01월 00일, 48세 때, 스티브 잡스는 존 메이어가 참가한 맥월드에서 작곡 프로그램 개러지밴드를 발표했다.
1330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존 메이어를 아껴 이따금 팰로앨토로 불러 저녁을 함께했다.
1331
2004년 01월 29일, 48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마이클 아이스너와 더는 일하지 않기로 하고 디즈니와의 계약 협상 중단을 선언했으며, 기자 화상회의에서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창피한 실패작을 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1332
2004년 01월 29일, 48세 때, 스티브 잡스는 픽사가 디즈니만큼 팬을 끄는 브랜드로 자랐다며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가장 신뢰받는 브랜드라고 말했다.
1333
2004년 01월 29일, 48세 때, 스티브 잡스는 발표 전 로이 디즈니에게 미리 알리려 전화했고, 아이스너가 물러나면 다시 함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답을 들었다.
1334
2004년 01월 29일, 48세 때, 스티브 잡스는 픽사 안뜰 무대에 올라 직원들에게 디즈니와 결별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독립 조직으로서도 계속 성공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1335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이스너가 CEO 첫 10년은 훌륭했지만 프랭크 웰스가 세상을 뜬 뒤 후반 10년은 형편없었다며, 재치 있는 면은 좋지만 자존심이 지나치게 세다고 평했다.
1336
2004년 07월 00일, 49세 때, 스티브 잡스는 페어플레이 사용을 거절당한 리얼네트웍스 설립자 롭 글래스터가 '하모니' 서비스로 아이팟 제한을 우회하려 하자, 해커의 수법과 윤리로 아이팟을 침범했다며 충격을 표하는 성명을 냈다.
1337
2004년 07월 00일, 49세 때, 스티브 잡스는 CT 검사에서 종양이 커졌고 퍼졌을 수도 있다는 결과를 받고 수술을 받아들였다.
1338
2004년 07월 31일, 49세 때, 스티브 잡스는 스탠퍼드 대학교 의학 센터에서 췌장 일부만 떼어 내는 변형 휘플 수술을 받았다.
1339
2004년 07월 31일, 49세 때, 스티브 잡스는 췌장 수술 도중 암이 간 세 군데로 번진 사실이 의료진에게 확인됐다.
1340
2004년 08월 00일, 49세 때, 스티브 잡스는 수술 뒤 2주 동안 병원에 머물며 체력을 되찾으려 애썼다.
1341
2004년 08월 00일, 49세 때, 스티브 잡스는 퇴원 뒤 화학요법을 시작했고, 그 탓에 식사 문제가 한층 까다로워졌다.
1342
2004년 08월 00일, 49세 때, 스티브 잡스는 처음 진단받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후의 투병 경과도 외부에 감추고 주변에는 완치됐다고 말했다.
1343
2004년 08월 00일, 49세 때, 스티브 잡스는 수술을 마치고 업무에 돌아왔고, 그동안 업무를 대행한 팀 쿡은 애플 각 부문을 맞물려 돌리는 본래 역할로 복귀했다.
1344
2004년 08월 01일, 49세 때, 스티브 잡스는 수술 이튿날 병실에서 파워북으로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수술 사실을 알리고, 자신의 암은 췌장암의 약 1%에 해당하는 유형으로 일찍 발견하면 절제로 완치된다고 설명했다.
1345
2004년 08월 01일, 49세 때, 스티브 잡스는 같은 이메일에서 화학요법이나 방사선 치료는 필요 없으며 9월에 복귀하겠다고 밝히고, 그동안 팀 쿡에게 일상 업무를 맡겼다고 알렸다.
1346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집 거실에서 요요마가 1733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첼로로 결혼식 때 하려던 바흐 곡을 연주하자 눈물을 글썽이며 그 연주가 신이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1347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암 투병 중이던 그 무렵 요요마에게서 자신의 장례식에서 연주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1348
2004년 10월 00일, 49세 때, 스티브 잡스는 첫 암 수술 뒤 회복하던 중 팰로앨토 인근에서 공연하던 밥 딜런의 초대로 그가 묵던 호텔을 찾아, 영웅 앞에서 몹시 긴장한 채 방 밖 테라스에서 두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1349
2004년 10월 00일, 49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이 자리에서 딜런에게서 예전엔 곡이 저절로 떠올랐지만 이제는 그렇게 쓰지 못하고 그 노래들을 부를 수만 있다는 말을 들었다.
1350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다음 팰로앨토 근처 공연 때 딜런의 투어 버스에 초대받아 좋아하는 곡으로 「원 투 매니 모닝스」를 꼽았고, 딜런은 그날 밤 무대에서 그 곡을 불렀다.
1351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딜런이 늘 자신의 영웅이었고 그를 향한 흠모는 세월이 갈수록 깊어졌다고 말했다.
1352
2004년 10월 00일, 49세 때, 스티브 잡스는 몇 달간 대응을 미루다가 하모니에서 산 곡이 재생되지 않도록 바꾼 새 아이팟 소프트웨어를 내놓았다.
1353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같은 값에 용량이 적은 제품을 누가 사겠느냐며 한때 아이팟 미니를 없애려 했다.
1354
2004년 10월 26일, 49세 때, 스티브 잡스는 새너제이의 고급 극장을 빌려 보노, 에지와 함께 무대에 올라 새 TV 광고와 U2 특별판 아이팟을 공개했다.
1355
2005년경 · 50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주요 애플 매장 바닥에 피렌체 여행 때 반한 일 카소네 채석장의 푸른빛 회색 돌을 깔기로 했다.
1356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넥스트 로비에 만든 것과 같은 떠 있는 듯한 계단을 훗날 애플 주요 매장에도 설치했다.
1357
2005년경 · 50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딜런의 곡 700여 곡을 묶은 디지털 전집을 아이튠스에서 199달러에 파는 계획을 세웠으나, 소니의 앤디 랙이 아티스트의 격을 떨어뜨린다며 거절해 막혔다.
1358
2005년경 · 50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딜런에게 직접 연락하겠다고 나섰고, 딜런의 에이전트 제프 로젠이 대신 협상에 나왔다.
1359
2005년 00월 00일, 5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디즈니 CEO 취임을 앞둔 밥 아이거로부터 픽사를 높이 평가하며 거래를 원한다는 전화를 받고 반겼다.
1360
2005년 00월 00일, 5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동영상 아이팟에 넣을 TV 프로그램이 필요했지만 공개 협상은 피하고 싶어 했고, 아이거가 ABC 인기 프로그램을 공급하겠다고 하자 그와 시범 계약을 맺었다.
1361
2005년 00월 00일, 50세 때, 스티브 잡스는 퇴원 뒤 거실 흔들의자에 앉아 지내다 일주일 뒤부터 한 블록씩 걷기 시작해 공원까지 거리를 늘렸고, 반년 만에 거의 회복했다고 회고했다.
1362
2005년 00월 00일, 50세 때, 스티브 잡스는 회복한 뒤 겸손해지기보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듯 더 거세게 회사를 몰아붙였다.
1363
2005년 00월 00일, 5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암 진단과 쉰 살을 맞은 일을 계기로 지나온 삶을 돌아보기 시작했고, 제품 시연 말고는 연설을 거의 하지 않던 관행을 깨고 자신의 건강을 공개 석상에서 이야기하기로 했다.
1364
2005년 00월 00일, 50세 때, 스티브 잡스는 6월 졸업식에서 연설해 달라는 스탠퍼드 대학교의 요청을 수락했다.
1365
2005년 00월 00일, 5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암 수술 뒤 쉰 살을 맞아 아내 로런 파월이 샌프란시스코에서 마련한 깜짝 파티에 가까운 친구·동료들과 함께했다. 요리사 앨리스 워터스는 스코틀랜드에서 들여온 연어, 쿠스쿠스, 텃밭에서 딴 채소로 음식을 냈다.
1366
2005년 00월 00일, 5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쉰 살 파티에서 마이크 슬레이드, 존 래시터, 팀 쿡, 필 실러, 리 클라우, 존 루빈스타인, 애비 테버니언 등 애플·픽사 동료들과 어울렸고, 「누구의 줄인가?」 방식의 즉흥 코미디를 함께 즐겼다.
1367
2005년 00월 00일, 5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주력 사업을 위협할 기기가 휴대전화라고 결론짓고, 카메라폰이 디지털카메라 시장을 줄였듯 음악 기능을 품은 전화기가 아이팟을 쓸모없게 만들 수 있다고 이사들에게 설명했다.
1368
2005년 00월 00일, 5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첫 대응으로 스스로 애플 체질에 맞지 않는다고 했던 타사 제휴를 택해, 친구이자 모토로라 최고경영자로 새로 온 에드 잰더와 모토로라의 히트 카메라폰 레이저에 아이팟 기능을 결합하는 안을 협의했다.
1369
2005년 00월 00일, 5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이팟 신제품 점검 자리에서 토니 파델을 비롯한 팀원들에게, 모토로라와 같은 업체를 상대하는 데 진저리가 났다며 휴대전화를 자체 개발하자고 말했다.
1370
2005년 00월 00일, 50세 때, 스티브 잡스는 팀원들과 저마다 쓰는 휴대전화가 얼마나 복잡하고 불편한지 이야기를 나눴고, 회의 도중 자기 전화기를 들어 결점을 하나하나 짚었다.
1371
2005년 00월 00일, 50세 때, 스티브 잡스는 휴대전화 개발을 처음 에어포트 무선 장비 팀에 배정했다가, 소비자용 기기임을 깨닫고 토니 파델의 팀으로 옮겼다.
1372
2005년 00월 00일, 5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조니 아이브가 자기 회의실에 몰래 마련한 멀티터치 시연을 홀로 보고 이것이 미래라며 크게 기뻐했다.
1373
2005년경 · 50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멀티터치가 휴대전화 인터페이스의 난제를 풀 수 있다고 보고 태블릿 개발을 미뤄 둔 채 그 기술을 전화기 화면에 맞추라고 지시했다. 전화기에서 통하면 나중에 태블릿에도 옮길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1374
2005년경 · 50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토니 파델, 존 루빈스타인, 필 실러를 불러 비밀회의를 열었고, 조니 아이브의 멀티터치 시연에 파델이 감탄했다.
1375
2005년 00월 00일, 5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팀 쿡에게 그를 애플 최고운영책임자로 세우겠다고 알렸다.
1376
2005년경 · 50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이미 큰돈을 벌어 일을 그만두려던 애비 테버니언을 두고 그가 천재급이며 떠나는 것은 큰 손실이라고 말했다.
1377
2005년 00월 00일, 5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쿡이 자신의 대리인으로 힘을 갖는 데 불만을 품고 9년간의 근무로 지쳐 있던 존 루빈스타인과 점점 더 잦게 언성을 높이며 부딪쳤다.
1378
2005년 00월 00일, 5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루빈스타인과 몸싸움 직전까지 충돌한 조니 아이브로부터 둘 중 하나를 고르라는 요구를 받고 아이브를 택했다.
1379
2005년 01월 00일, 49세 때, 스티브 잡스는 무작위 재생 기능의 인기에 주목해 저가 플래시 제품에서 화면을 아예 없애자고 제안했고, 노래를 어떻게 찾느냐는 파델에게 찾을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답하며 아이팟 셔플을 내놓았다.
1380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모토로라가 새 칩 개발에서 뒤처지자 크리스 갤빈과 통화하다 칩이 형편없다고 몰아붙였고, 언쟁 끝에 먼저 전화를 끊었다.
1381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모토로라·IBM의 파워PC를 버리고 인텔 칩으로 옮기는 계획을 비밀리에 세우기 시작했다.
1382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이사회에 실권을 넘기지 않았지만 화이트보드 앞에서 자유 토론을 이끌며 이사들이 아이디어와 전략을 함께 검토하게 했다.
1383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넥스트 시절부터 알던 인텔 사장 폴 오텔리니와 칩 공급 협상을 벌여 다른 제조사보다 싼 공급가를 요구했고, 스탠퍼드 뒷산 전파망원경까지 걷는 긴 산책 속에서 협상을 자기 쪽으로 끌고 갔다.
1384
2005년 02월 00일, 50세 때, 스티브 잡스는 50세 생일을 맞아 존 래시터, 로런 파월, 조너선 아이브, 에디 큐, 리 클라우 등과 함께한 파티를 열었다.
1385
2005년 02월 00일, 5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졸업식 연설을 도와 달라며 「어 퓨 굿 맨」·「웨스트 윙」의 각본가 에런 소킨에게 도움을 청했고, 소킨이 수락하자 자기 생각을 추려 보냈다.
1386
2005년 04월 00일, 5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소킨에게서 답이 없자 4월에 다시 독촉하고 전화도 걸었지만 6월 초까지 아무 원고도 받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1387
2005년 05월 00일, 5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 2004년 3월 특허를 신청해 1년 2개월 만에 D504889호로 등록된 디자인 특허에 조니 아이브와 함께 발명자로 이름을 올렸다.
1388
2005년 06월 00일, 5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졸업식 연설 경험이 없었지만 어느 밤 책상 앞에서 직접 원고를 썼고 아내의 의견 말고는 도움을 받지 않았으며, 이야기 하나로 연설을 여는 것이 가장 좋다는 작가 알렉스 헤일리의 방식을 따랐다.
1389
2005년 06월 06일, 50세 때, 스티브 잡스는 공개 발표에서 인텔 칩 채택을 알리며 무대에 오른 폴 오텔리니와 포옹했고, 화면에는 애플과 인텔이 마침내 함께한다는 문구가 떴다.
1390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오텔리니를 애플 '톱 100' 수련회에 초대했고, 인텔 방진복을 입고 나온 오텔리니와 포옹했다.
1391
2005년 06월 12일, 5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식 연단에 올라 자기 인생에서 나온 이야기 딱 세 가지를 들려주겠다며 연설을 시작했다.
1392
2005년 06월 12일, 5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리드 대학교를 그만둔 뒤 필수 과목 대신 끌리는 강의를 청강한 경험, 그리고 애플에서 밀려난 일이 성공의 무게를 덜고 다시 초심자의 가벼움을 찾게 해 준 전화위복이었다는 경험을 차례로 풀어놓았다.
1393
2005년 06월 12일, 5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마지막으로 암 진단 경험을 꺼내, 곧 죽는다는 사실을 의식하는 것이 큰 결정을 내릴 때 가장 중요한 도구였으며 죽음 앞에서는 본질만 남으니 자기 마음을 따르라고 졸업생들에게 당부했다.
1394
2005년 06월 12일, 5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연설하는 동안 전자 폐기물 재활용을 요구하는 현수막을 매단 비행기가 머리 위를 맴도는 가운데 연단을 지켰다.
1395
2005년 06월 12일, 5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무엇을 하며 살지 몰랐고 대학이 그 답을 주지 못할 것 같아, 결국 잘 풀리리라 믿고 자퇴를 결심했었다고 밝혔다.
1396
2005년 10월 12일, 5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새너제이 극장에서 비디오 아이팟을 발표하며 뮤직비디오·단편영화 판매에 이어 '한 가지 더'로 ABC 인기 프로그램 두 편의 TV 시청 기능을 소개했고, ABC의 주인 디즈니를 잘 안다고 말했다.
1397
2005년 10월 12일, 5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이 무대에 밥 아이거를 깜짝 손님으로 불렀고, 아이거는 애플과 디즈니의 관계 확대를 발표했다.
1398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디즈니가 픽사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는 아이거의 솔직한 털어놓기를 듣고, 패를 모두 펼쳐 놓는 그의 방식이 자신과 같다며 호감을 갖게 됐다.
1399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 본사와 팰로앨토, 선밸리 휴양지를 오가며 아이거와 여러 차례 산책했고, 픽사가 영화 판권을 갖는 새 배급 계약에서 출발한 논의는 인수합병으로 옮겨 갔다.
1400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존 래시터와 에드 캣멀을 집으로 불러 아이거와 손잡고 디즈니를 바꾸자고 제안했고, 둘이 망설이자 원치 않으면 괜찮다며 아이거를 먼저 만나 보라고, 그는 아이스너의 디즈니와 다르다고 설명했다.
1401
2006년 00월 00일, 5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프리카 에이즈 퇴치 기금을 위한 보노의 프로덕트 레드 캠페인에 애플이 참여하도록 권유받고 붉은색 아이팟을 따로 만들기로 했다.
1402
2006년 00월 00일, 51세 때, 스티브 잡스는 회사 이름을 괄호에 넣는 캠페인 표기를 두고 보노와 거친 말이 오갈 만큼 다툰 끝에, 광고에서는 보노 뜻을 따르되 제품과 매장에서는 애플을 괄호에 넣지 않는 절충안을 냈다.
1403
2006년 00월 00일, 5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앤디 랙이 소니 BMG CEO에서 물러나자 딜런 협상을 다시 열어, 딜런에게 전곡을 담은 아이팟을 보내고 제프 로젠에게 마케팅 계획을 설명했다.
1404
2006년 00월 00일, 5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앨 고어가 참여한 애플 이사회 위원회 조사에서 자신과 고위 임원 보상에 부정행위 몇 건이 확인돼 SEC로 넘겨졌고, 백데이팅을 알았지만 금전적 이익은 보지 않았다는 판단을 받았다.
1405
2006년 00월 00일, 51세 때, 스티브 잡스는 고어 위원회가 조사 결과를 논의하는 동안 회의에서 빠져 프레드 앤더슨과 자기 사무실에 함께 앉아 있었고, 그 뒤 두 사람은 다시 만나지 않았다.
1406
2006년 00월 00일, 51세 때, 스티브 잡스는 디즈니 이사회 위원회 조사에서도 자신이 픽사를 이끌 때 비슷한 백데이팅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1407
2006년경 · 51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팜이 애플 직원을 데려가는 데 분개해, 팜의 경영권 지분을 인수한 투자사를 함께 세운 보노에게 따졌다. 보노는 비틀스가 허먼스 허미츠에게 로드 매니저 한 명 뺏겼다고 소란을 피우는 꼴이라고 받아쳤다.
1408
2006년 00월 00일, 51세 때, 스티브 잡스는 팀 쿡과 조니 아이브를 축으로 이전보다 차분한 경영진을 새로 꾸렸다. 아이폰 소프트웨어의 스콧 포스톨, 마케팅의 필 실러, 맥 하드웨어의 밥 맨스필드, 인터넷 서비스의 에디 큐, 재무의 피터 오펜하이머가 합류했다.
1409
2006년 00월 00일, 51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매주 월요일 오전 9시에 서너 시간씩 이어지는 경영진 회의를 열어 팀 쿡의 10분 남짓한 사업 보고 뒤 제품의 앞날을 토론하게 했고, 이를 통해 부문 간 다툼을 막고 통제권을 중앙으로 모았다.
1410
2006년 00월 00일, 5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예전 로버트 프리들랜드의 농장에서 사과나무 가지를 쳤듯 애플 제품군도 잘라 내며 몇 안 되는 우선 과제에만 힘을 모으라고 고집했다.
1411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조니 아이브가 고른 런던의 미니멀한 부티크 호텔 헴펠에 들어간 지 몇 분 만에 방이 형편없다며 나가자고 했고, 프런트 직원 앞에서 불만을 거침없이 쏟아 냈다.
1412
2006년경 · 51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두 갈래 시제품 P1·P2를 6개월간 개발시킨 뒤 측근들을 회의실로 불러, 위험하지만 더 가능성 있는 멀티터치 터치스크린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1413
2006년경 · 51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블랙베리처럼 물리 키보드를 달자는 참석자 두 명의 의견을 화면 공간을 잡아먹고 유연성을 떨어뜨린다며 물리치고, 키보드를 소프트웨어로 화면에 띄우는 쪽에 승부를 걸었다.
1414
2006년경 · 51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6개월 동안 날마다 일정 시간을 떼어 디스플레이를 다듬었고, 그 작업이 비틀스 『서전트 페퍼』의 곡을 발전시키는 것처럼 즐거웠다고 회고했다.
1415
2006년경 · 51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전원 버튼이 마음에 들지 않아 화면을 밀어 잠금을 해제하는 슬라이더를 고안하게 했고, 아이콘은 첫 매킨토시 때 빌 앳킨슨에게 그리게 했던 둥근 모서리 사각형으로 정했다.
1416
2006년경 · 51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팀과 세부 회의를 거듭하며 통화 대기와 다자간 통화, 간편한 이메일 검색, 옆으로 넘기는 앱 아이콘 화면을 다듬었다.
1417
2006년 00월 00일, 51세 때, 스티브 잡스는 플라스틱이던 아이폰 화면을 유리로 바꾸기로 하고, 단단하면서도 긁히지 않는 유리를 찾아 나섰다.
1418
2006년 00월 00일, 5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코닝 이사인 친구 존 실리 브라운의 권유로 코닝 대표전화를 통해 웬들 윅스 최고경영자를 찾았으나, 비서가 메시지만 받겠다며 연결을 거절하자 브라운에게 전형적인 동부식 허세라고 투덜댔다.
1419
2006년 00월 00일, 5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윅스가 애플 대표전화로 자신을 찾았다가 글로 적어 팩스로 보내라는 응대를 받았다는 말을 듣고 오히려 그에게 호감을 느껴 쿠퍼티노로 초대했다.
1420
2006년 00월 00일, 5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웬들 윅스로부터 코닝이 1960년대에 화학적 이온 교환 방식으로 아주 단단한 고릴라 유리를 만들었다가 시장이 없어 생산을 멈췄다는 설명을 들었고, 유리 제조법을 설명하려다 과학부터 배우라는 핀잔과 함께 이온 교환 공정 강의를 들었다.
1421
2006년 00월 00일, 51세 때, 스티브 잡스는 6개월 안에 고릴라 유리를 최대한 많이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고, 생산 능력이 없다는 윅스의 답에도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할 수 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1422
2006년 00월 00일, 5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출시 막바지의 어느 월요일 아침 조니 아이브에게 지난밤 한숨도 못 잤다며 아이폰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털어놓았고, 아이브도 곧 같은 생각임을 인정했다.
1423
2006년 00월 00일, 5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이브 팀에 9개월 동안의 작업을 뒤엎어야 하고 밤과 주말에도 일해야 한다고 말했고, 회로 기판과 안테나, 프로세서 배치를 모두 다시 해야 했지만 그대로 지시했다.
1424
2006년 00월 00일, 51세 때, 스티브 잡스는 팀원들이 재작업에 기꺼이 동의한 순간을 애플에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1425
2006년 00월 00일, 5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 케이스를 배터리까지 완전히 밀봉해 사용자가 열 수 없게 했는데, 1984년 첫 매킨토시 때처럼 사용자가 기기 내부를 여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426
2006년 01월 00일, 5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이거의 요청으로 래시터, 캣멀과 함께 로스앤젤레스 센추리 시티에서 열린 디즈니 이사회 비밀회의에 참석해, 질문 대부분을 래시터에게 넘기면서도 예술과 기술을 잇는 즐거움이 픽사 문화의 핵심이라고 직접 설명했다.
1427
2006년 01월 24일, 5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디즈니가 픽사를 74억 달러어치 주식으로 인수하기로 합의하면서 디즈니 지분 약 7%를 가진 최대 주주가 됐다.
1428
2006년 01월 24일, 5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직원 발표를 앞두고 래시터와 캣멀에게 한 명이라도 회의적이면 거래를 접겠다고 했고, 두 사람이 동의하자 셋이 부둥켜안은 가운데 눈물을 흘렸다.
1429
2006년 01월 24일, 5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에머리빌 픽사 본사 안뜰에 모인 직원들에게 디즈니가 픽사를 인수하기로 했다고 알리고 아이거를 무대 가운데로 불렀다.
1430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위대한 제품과 위대한 회사를 함께 만드는 것이 늘 목표였다며, 합병에 응해 픽사를 지키면서 디즈니도 위대한 회사로 남도록 도왔다고 말했다.
1431
2006년 02월 00일, 5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알렉스 오스트롭스키에게 축하 전화를 걸고 아이팟 10대와 아이맥 1대, 1만 달러어치 상품권을 선물했다.
1432
2006년 05월 19일, 5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유리 큐브 입구와 독특한 계단, 미니멀리즘을 담은 맨해튼 5번가 애플 스토어를 열었다.
1433
2006년 08월 08일, 51세 때, 스티브 잡스는 딜런 전곡 디지털 패키지를 199달러에 팔고 새 앨범 『모던 타임스』를 아이튠스에서 단독 예약 판매하는 거래를 발표하며, 딜런을 이 시대 가장 존경받는 시인이자 뮤지션이며 자신의 영웅이라고 소개했다.
1434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딜런을 얻은 데 크게 기뻐했고, 쿠퍼티노를 찾은 제프 로젠과 딜런 앨범을 훑어 광고곡으로 「섬데이 베이비」를 골랐다.
1435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리 클라우가 대역으로 찍은 테스트 영상은 승인했지만 내슈빌에서 딜런 본인과 찍은 영상은 독특함이 없다며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고, 완성된 광고에는 크게 만족했다.
1436
2007년 00월 00일, 5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첫 아이폰을 내놓으면서 외부 개발자의 앱을 살 수 없게 막았다. 외부 앱이 기기를 망가뜨리거나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통합성을 해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1437
2007년 00월 00일, 5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이사 아트 레빈슨에게서 앱 개방을 촉구하는 전화를 대여섯 차례 받고 필 실러와 벤처 투자자 존 도어에게서도 같은 주장을 들었지만, 외부 개발자를 관리할 여력이 없다며 처음에는 논의조차 거부했다.
1438
2007년 00월 00일, 5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 출시 뒤 앱 개방 논쟁에 조금씩 귀를 열었고, 이 문제는 네 차례 이사회에서 자유롭게 논의됐다.
1439
2007년 00월 00일, 5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외부 개발자의 앱을 받아들이되 까다로운 기준을 세우고, 애플이 직접 시험해 승인한 앱만 아이튠스 스토어에서 팔도록 하는 타협안을 마련했다.
1440
2007년 00월 00일, 5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저가 넷북 구상을 검토하던 월요일 경영진 회의에서 조니 아이브가 왜 키보드를 화면에 붙여야 하느냐고 문제를 제기하자 이에 동의했고, 이후 넷북 대신 태블릿 프로젝트를 되살리는 데 자원을 몰았다.
1441
2007년 00월 00일, 5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조니 아이브와 가로세로 비율과 크기가 조금씩 다른, 모서리를 둥글린 직사각형 모형 20개를 만들고, 오후마다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덮개를 걷어 만져 보며 화면 크기를 정했다.
1442
2007년 00월 00일, 52세 때, 스티브 잡스는 디스플레이를 기기의 중심에 두고 나머지 요소가 모두 화면에 맞춰지도록 하는 원칙을 세우고, 화면을 가리는 기능과 버튼을 단계마다 걷어 내 극도의 단순함을 밀어붙였다.
1443
2007년 00월 00일, 52세 때, 스티브 잡스는 한때 모형이 한 손으로 부담 없이 들어 올릴 만큼 정감 있게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고, 아이브 역시 같은 결점을 지적했다.
1444
2007년 00월 00일, 52세 때, 스티브 잡스는 다이나북 태블릿을 구상했던 제록스 PARC 출신 앨런 케이에게 아이폰을 어떻게 보는지 물었고, 화면을 가로 5인치·세로 8인치로 늘리면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는 답을 들었다.
1445
2007년 00월 00일, 52세 때, 스티브 잡스는 광고 담당 리 클라우·제임스 빈센트와 함께 비틀스 음악의 아이튠스 입점에 대비한 홍보 전략을 짜고 광고 몇 편을 미리 만들어 두었다. 계획에는 아이튠스 메인 화면 전면 배치, 대형 옥외 광고, 애플 스타일의 연속 TV 광고가 담겼다.
1446
2007년 01월 00일, 5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 공개를 앞두고 관례대로 단 한 잡지에만 미리 독점 인터뷰를 주기로 하고, 《타임》의 존 휴이 편집장에게 연락해 이제껏 만든 것 가운데 최고의 제품이라고 소개하며 이런 기사를 맡을 만한 기자가 있느냐고 떠봤다.
1447
2007년 01월 09일, 5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샌프란시스코 맥월드 무대에서 와이드스크린 아이팟, 휴대전화, 인터넷 통신 기기 세 가지를 소개하겠다고 한 뒤 그것이 아이폰이라는 하나의 기기라고 밝혔다.
1448
2007년 01월 09일, 51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 공개 행사에 앤디 허츠펠드, 빌 앳킨슨, 스티브 워즈니악 등 1984년 매킨토시 팀 사람들을 불렀다.
1449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은 마이크로소프트 쪽 스티브 발머가 CNBC 방송에 출연해 세상에서 가장 비싼 휴대폰이라고 깎아내리는 반응을 낳았다.
1450
2007년 04월 00일, 52세 때, 스티브 잡스는 SEC로부터 백데이팅을 알았지만 회계상 의미는 몰랐다는 이유로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결론을 받았다.
1451
2007년 04월 00일, 52세 때, 스티브 잡스는 SEC 문제를 정리한 프레드 앤더슨 측 변호사의 성명에서 백데이팅 책임 일부를 지목받았다. 앤더슨이 실제 승인일로 가격을 정해야 한다고 경고하자 잡스가 이사회 사전 승인이 있었다고 답했다는 주장이었다.
1452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스톡옵션 관련 SEC 소송에서 돈보다 이사회의 인정이 문제였고 자신이 일을 잘하고 있다고 여겼다고 증언했다.
1453
2007년 05월 00일, 5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올 싱스 디지털 콘퍼런스 초청을 받자 빌 게이츠가 나온다면 가겠다고 답했고, 게이츠도 응하면서 월트 모스버그와 카라 스위셔가 기획한 두 사람의 합동 인터뷰가 성사됐다.
1454
2007년 05월 00일, 5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윈도 비스타가 맥을 베끼지 않았느냐는 스티븐 레비의 물음에 빌 게이츠가 날 선 반응을 보인 것을 보고 모스버그에게 합동 인터뷰가 득이 되지 않을 것 같다고 전화했지만, 모스버그가 간신히 일정을 되살렸다.
1455
2007년 05월 30일, 5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콘퍼런스 당일 낮 모스버그와 단둘이 한 대담에서 마이크로소프트를 겨냥하며, 윈도용 아이튠스가 인기를 끄는 것은 지옥에 있는 사람에게 얼음물 한 잔을 건넨 격이라고 농담했다.
1456
2007년 05월 30일, 52세 때, 스티브 잡스는 합동 무대 직전 대기실에서 낮의 발언을 전해 들은 빌 게이츠가 자신이 지옥에서 온 대표냐고 굳은 얼굴로 묻자 웃으며 얼음물 한 병을 건넸다.
1457
2007년 05월 30일, 52세 때, 스티브 잡스는 빌 게이츠와 한 무대에 나란히 앉아 서로를 조심스럽고 따뜻하게 이야기했고, 서로에게서 무엇을 배우느냐는 리즈 바이어의 질문에 게이츠가 잡스의 미적 감각을 가질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내놓겠다고 답하는 것을 들었다.
1458
2007년 05월 30일, 52세 때, 스티브 잡스는 게이츠의 답을 듣는 동안 바닥만 내려다봤고, 게이츠가 너무 솔직하고 너그러워 할 말을 잃었다고 뒷날 회고했다.
1459
2007년 05월 30일, 52세 때, 스티브 잡스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묶는 애플의 통합 방식과, 소프트웨어를 여러 제조사에 라이선스하는 마이크로소프트의 개방 방식을 견주며 음악에서는 통합형이, PC에서는 분리형이 통했다고 짚은 뒤, 휴대전화에서는 어느 쪽이 나을지 다소 거만하게 물음을 던졌다.
1460
2007년 05월 30일, 5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워즈니악과 자신이 통합형으로 회사를 시작한 탓에 제휴에 서툴렀다며, 애플의 DNA에 협력하는 기질이 더 있었다면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1461
2007년 06월 29일, 5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 판매가 시작된 날 아내 로런 파월과 함께 팰로앨토 애플 스토어까지 걸어갔고 매장 앞에 모인 팬들의 환호를 받았다.
1462
2007년 06월 29일, 5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줄을 서 있던 앤디 허츠펠드와 빌 앳킨슨을 만나 이미 한 대를 보내 주지 않았느냐고 웃었고, 허츠펠드로부터 여섯 대가 필요하다는 응수를 들었다.
1463
2007년 06월 29일, 5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 출시일에 코닝의 웬들 윅스에게 당신이 없었다면 해내지 못했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냈고, 윅스는 그 글을 액자에 넣어 사무실에 걸었다.
1464
2008년 00월 00일, 53세 때, 스티브 잡스는 휴가 중 전세 낸 보트를 니스 부근 보노의 집 근처에 대 놓고 함께 식사했으며, 보노에게서 U2 새 앨범에 실을 곡들을 미리 들었다.
1465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보노와의 우정과 별개로 협상에서는 냉정했고, U2의 「겟 온 유어 부츠」를 특별히 알리는 광고를 다시 만들려 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1466
2008년 00월 00일, 53세 때, 스티브 잡스는 팰로앨토 근처 구글 본사로 찾아가 래리 페이지, 세르게이 브린, 그리고 안드로이드를 맡은 앤디 루빈과 큰 소리로 다투며 안드로이드 개발을 멈추게 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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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0월 00일, 53세 때, 스티브 잡스는 관계를 원만히 지키면 아이폰 홈 화면에 구글 아이콘 한두 개를 넣어 주겠다고 구글에 제안하는 한편, 멀티터치를 비롯한 아이폰의 기능을 베끼며 안드로이드를 계속 만들면 소송을 걸겠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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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경 · 53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가 인텔 칩을 쓰고 있던 터라 처음에는 태블릿에 인텔이 개발 중인 저전력 아톰 칩을 쓰려 했고, 공동 설계를 고집한 인텔의 폴 오텔리니를 믿어 보고 싶어 했다.
1469
2008년경 · 53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모바일 칩을 인텔에 맡기는 편이 낫다고 했다가, 구조가 더 간단하고 전력을 덜 쓰는 ARM 방식을 밀던 토니 파델이 애플 배지를 탁자 위에 내려놓고 회사를 떠나겠다고 맞서자 가장 뛰어난 부하들의 뜻을 꺾을 수는 없다며 양보했다.
1470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분기마다 측근 셋과 폴 오텔리니를 만나 그래픽이 형편없다고 지적해 왔지만, 인텔이 느리고 유연하지 못한 데다 노하우를 전부 알려 주면 그것을 경쟁 업체에 넘길 수 있어 손잡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애플의 A4 칩에는 프로세서와 그래픽, 모바일 운영체제, 메모리 제어가 함께 담겼다.
1471
2008년 00월 00일, 53세 때,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암 연구 팀을 이끈 스탠퍼드 대학교 종양 전문가 조지 피셔로부터 여러 달 동안 간 이식을 고려해야 한다는 경고를 들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1472
2008년 00월 00일, 53세 때, 스티브 잡스는 2008년 초 의료진과 함께 암이 다시 번지고 있음을 확인했다. 앞서 분석해 둔 종양 유전자 정보 덕분에 의료진은 이상이 생긴 경로를 짚어 표적 치료를 할 수 있었다.
1473
2008년 00월 00일, 53세 때, 스티브 잡스는 2008년 봄 사이 체중이 18킬로그램가량 줄었다. 췌장을 상당 부분 잘라 내 소화 효소가 충분히 나오지 않은 것이 원인 가운데 하나였다.
1474
2008년 00월 00일, 53세 때, 스티브 잡스는 콘텐츠의 중심이 데스크톱에서 인터넷 원격 서버, 곧 클라우드로 옮겨 갈 것이라는 구상을 키웠고, 이 구상을 제대로 구현하는 데는 그 뒤로 3년이 걸렸다.
1475
2008년 00월 00일, 53세 때, 스티브 잡스는 연 99달러에 주소록·문서·사진·영상·메일·일정을 원격 서버에 보관하고 기기끼리 맞춰 주는 서비스 모바일미를 내놓았다.
1476
2008년 00월 00일, 53세 때, 스티브 잡스는 동기화 오류와 메일·데이터 유실이 잇따른 모바일미를 엉망이라고 규정하고, 담당 팀을 본사 강당에 모아 서비스가 할 일을 왜 못 하느냐며 30분 넘게 질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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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0월 00일, 53세 때, 스티브 잡스는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모바일미 책임자를 교체하고 팀을 애플의 인터넷 서비스를 총괄하던 에디 큐에게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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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0월 00일, 53세 때, 스티브 잡스는 버락 오바마 대선 캠프에 선거 광고 제작을 돕겠다고 제안했지만, 전략가 데이비드 액설로드의 응대가 공손하지 않다고 여겨 불쾌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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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0월 00일, 53세 때, 스티브 잡스는 자녀가 10대가 되면 원하는 곳으로 여행을 함께 가겠다는 약속에 따라 열세 살 딸 에린이 교토를 골랐지만, 건강 문제로 여행을 취소하고 2010년에 데려가겠다고 다시 약속했다.
1480
2008년 01월 01일, 52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이팟 나노 포장 상자로 미국 디자인 특허 D558575호를 받았다. 아이브와 함께 포장 개봉을 의식처럼 설계해 온 결과였다.
1481
2008년 03월 00일, 53세 때, 스티브 잡스는 《포춘》이 「스티브 잡스의 문제」 기사에서 그가 9개월 동안 식이요법으로 암을 다스리려 한 사실과 애플 스톡옵션 소급 문제를 함께 다루면서 건강 문제가 다시 공개됐다.
1482
2008년 03월 00일, 53세 때, 스티브 잡스는 기사를 쓰고 있던 《포춘》의 앤디 서워 부편집장을 쿠퍼티노 본사로 불러들여 게재를 막으려 압박하며, 자신이 얼간이라는 게 새삼 무슨 뉴스냐고 따졌다.
1483
2008년 03월 00일, 53세 때, 스티브 잡스는 서워의 상관인 타임 사의 존 휴이에게도 하와이 코나 빌리지에 머물던 중 위성 전화를 걸어 같은 요구를 했다.
1484
2008년 03월 00일, 53세 때, 스티브 잡스는 《포춘》이 기사를 접는다면 CEO들을 불러 모아 상장사 경영자의 건강을 어디까지 밝혀야 하는지 따지는 공개 토론 자리를 만들고 자신도 나가겠다고 제안했지만 《포춘》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1485
2008년 06월 00일, 53세 때, 스티브 잡스는 체중 감소의 원인이 애플 발표에서 흔한 가벼운 병으로 설명됐지만 이는 사실과 달랐다.
1486
2008년 06월 00일, 53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건강 대응을 비판하는 칼럼을 준비하던 《뉴욕 타임스》의 조 노세라에게 불쑥 전화해, 그가 자신을 법 위에 군림하는 오만한 인간으로 여긴다면 자신은 그를 사실을 비트는 저열한 인간으로 여긴다고 몰아세웠다.
1487
2008년 06월 00일, 53세 때, 스티브 잡스는 기사로 쓰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노세라에게 건강 정보 일부를 알려 줬고, 노세라는 그의 병이 가벼운 질환은 아니지만 생명을 위협하지 않으며 암 재발도 아니라고 쓸 수 있었다.
1488
2008년 06월 00일, 53세 때, 스티브 잡스는 노세라에게 애플 이사회와 주주에게도 밝히지 않은 내용까지 전했지만 진실을 모두 털어놓지는 않았다.
1489
2008년 06월 09일, 53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 3G를 발표하는 무대에 눈에 띄게 수척한 모습으로 올라, 신제품보다 그의 건강이 더 주목받았다.
1490
2008년 07월 00일, 53세 때, 스티브 잡스는 건강을 둘러싼 의문이 이어지자 이듬달 애플 발표에서 자신의 건강이 사생활 문제로 규정됐다.
1491
2008년 08월 00일, 53세 때, 스티브 잡스는 《블룸버그 뉴스》가 미리 써 둔 자신의 부고 기사가 실수로 퍼져 고커 사이트에 실렸다.
1492
2008년 09월 09일, 53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연례 음악 행사 무대에서 새 아이팟 제품군을 내놓으며, 자신이 죽었다는 소식은 크게 과장됐다는 마크 트웨인의 문장을 빌려 농담했다.
1493
2008년 10월 00일, 53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 본사에서 만나기로 했던 유니버설 뮤직의 더그 모리스를 자택으로 불렀다.
1494
2008년 10월 00일, 53세 때, 스티브 잡스는 자선 행사를 피해 왔지만 모리스의 부탁과 행사 취지를 생각해 로스앤젤레스의 시티 오브 호프가 여는 암 연구 기금 모금 행사에 참석하기로 했다.
1495
2008년 10월 00일, 53세 때, 스티브 잡스는 샌타모니카 해변 천막에서 열린 기금 행사에서 2000명 관객 앞에 음악 산업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사람으로 소개됐다. 추위를 심하게 탄 잡스는 지미 아이오빈이 건넨 후드 티셔츠를 저녁 내내 뒤집어썼다.
1496
2008년 12월 00일, 53세 때, 스티브 잡스는 《포춘》을 떠나는 브렌트 슐렌더가 빌 게이츠·앤디 그로브·마이클 델과 함께 어렵게 잡은 합동 인터뷰를 2~3일 앞두고 취소하며, 이유를 묻거든 자신이 고약한 놈이라서라고 전하라고 했다.
1497
2008년 12월 00일, 53세 때, 스티브 잡스는 블로그에 쏟아지는 건강 추측을 사생활 침해로 여기며 분노했고, 애플이 이를 더 적극적으로 막지 않는 데에도 화를 냈다.
1498
2008년 12월 16일, 53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 발표로 11년 동안 신제품을 선보여 온 1월 맥월드 무대에 서지 않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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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0월 00일, 54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내 로런 파월이 대기 순위를 매일 밤 확인해 캘리포니아에서는 6월 이후에야 간을 이식받을 수 있다고 계산한 반면, 의료진으로부터 간 기능이 4월쯤 멈출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1500
2009년 00월 00일, 54세 때, 스티브 잡스는 다른 주 대기자 명단에 함께 오르려면 8시간 안에 병원에 닿을 수 있어야 하고 그 주 의사의 직접 평가를 받아야 했는데, 애플 외부 법률고문 조지 라일리의 주선으로 제임스 이슨이 팰로앨토까지 날아와 그를 진찰했다.
1501
2009년 00월 00일, 54세 때, 스티브 잡스는 오래 꿈꾸던 요트를 직접 설계하던 중 건강이 다시 나빠지자 계획을 접을 뻔했지만, 2년 뒤 살아 있다면 그만둔 것을 후회할 것이라 여겨 작업을 이어 가기로 했다고 회고했다.
1502
2009년 00월 00일, 54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암 진단 뒤 아들 리드의 2010년 6월 고교 졸업식만은 꼭 보고 싶다고 빌었고, 그 바람에 기대 2009년을 견뎌 냈다고 말했다.
1503
2009년 01월 00일, 53세 때, 스티브 잡스는 종양이 간으로 번지면서 간의 혈당 방출을 조절하는 췌장 호르몬 글루카곤과 관련된 불균형을 겪었고, 의료진은 약으로 수치를 낮추려 했다.
1504
2009년 01월 00일, 53세 때, 스티브 잡스는 사석에서 간 전이를 부인했고 공개적으로도 부인하고 싶어 했지만, 상장사 경영자라는 지위 탓에 그렇게 하면 법적으로 탈이 날 소지가 있었다.
1505
2009년 01월 00일, 53세 때, 스티브 잡스는 상태가 크게 나빠지고 통증도 극심한 가운데 화학요법을 한 차례 더 받았지만 심한 부작용에 시달렸다.
1506
2009년 01월 00일, 53세 때, 스티브 잡스는 호르몬 문제를 쉽게 고칠 수 있다고 발표한 직후 결국 간 이식 권유를 받아들였고, 캘리포니아의 이식 대기 명단에 등록했다.
1507
2009년 01월 00일, 53세 때, 스티브 잡스는 부유했지만 순서를 합법적으로 앞당길 방법이 없었고 실제로 새치기를 하지 않았다. 같은 혈액형 기증자가 드물고 미국 기준상 간경변·간염 환자가 암 환자보다 우선이었다.
1508
2009년 01월 05일, 53세 때, 스티브 잡스는 공개 서한을 내 맥월드 불참이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2008년 체중 감소의 원인은 혈액 검사로 확인된 호르몬 불균형이며 비교적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영양 문제라고 설명했다.
1509
2009년 01월 14일, 53세 때, 스티브 잡스는 변호사들이 일주일 동안 설득한 끝에 애플 임직원 앞으로 공개 편지를 띄워 6월까지 병가를 낸다고 알렸다. 그동안 팀 쿡이 일상 업무를 맡고 잡스는 CEO로서 주요 결정에 관여하기로 했다.
1510
2009년 01월 14일, 53세 때, 스티브 잡스는 편지에서 최근 일주일 동안 자신의 건강 문제가 예상보다 얽혀 있음을 알게 됐다고 밝히면서, 병가 결정의 원인을 블로거와 언론의 지나친 관심으로 돌렸다.
1511
2009년 01월 14일, 53세 때, 스티브 잡스는 그간 건강 문제를 빌 캠벨, 아트 레빈슨 두 사람과 의논해 왔다. 둘은 그의 개인 건강 조언자이자 애플 이사회의 공동 선임 이사였다.
1512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건강 공개 범위를 두고 비밀주의를 줄이자는 사람들에게 고함과 욕설을 퍼부었고 때로는 눈물을 보였다.
1513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오랜 친구 빌 캠벨로부터 그의 사생활을 침해해야 하는 이사의 수탁 의무를 지기 싫으니 이사회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들었다.
1514
2009년 02월 00일, 54세 때, 스티브 잡스는 2월 말 무렵 테네시 주의 간 이식 대기 명단에도 등록하고 마음 졸이며 순서를 기다렸다.
1515
2009년 03월 00일, 54세 때, 스티브 잡스는 3월 첫 주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지만 예상 대기 기간이 21일이나 남아 있었고, 3월 중순 무렵 대기 순위 3위에서 2위를 거쳐 1위에 올랐다.
1516
2009년 03월 21일, 54세 때, 스티브 잡스는 교통사고로 숨진 20대 중반 남성의 간을 기증받게 돼 아내와 전용기로 새벽 4시 직전 멤피스에 도착해 제임스 이슨을 만났고, 간 이식 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성공했다.
1517
2009년 03월 21일, 54세 때, 스티브 잡스는 떼어 낸 간 전체에 종양이 퍼져 있고 복막에서도 반점이 발견돼 다른 부위로 전이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판정을 받았고, 의료진은 조직 표본을 떼어 유전자 지도를 새로 작성했다.
1518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이식 며칠 뒤 다른 처치 과정에서 생긴 폐렴으로 위독해져 의료진이 가족을 부르라고 할 만큼 고비를 맞았으나 이를 넘겼다.
1519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멤피스 입원 기간 아내 로런 파월이 매일 아침 7시부터 병실을 지키며 간병을 총괄했고, 여동생 모나 심프슨도 자주 찾아와 병상을 지켰다.
1520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제임스 이슨이 회복과 암 검사, 통증, 영양, 재활, 간호를 아우르는 치료 전반을 총괄한 가운데 미시시피 작은 마을 출신 간호사 두 명을 전담으로 배정받았다.
1521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폐 전문의가 씌우려던 마스크의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벗어 버리고 다섯 가지를 가져오면 고르겠다고 했고, 손가락 산소 측정기도 투박하다며 더 단순한 디자인을 내놓았다.
1522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의식이 완전히 돌아오기 전 메모판에 아이폰을 달라고 써서 받아 들고, 병문안 온 아내의 친구 캐서린 스미스에게 밀어서 잠금 해제 기능과 메뉴를 보여 줬다.
1523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하버드 대학교 졸업 뒤 뉴욕으로 옮겨 연락이 뜸했던 큰딸 리사 브레넌잡스가 두 차례 멤피스까지 찾아오자 몹시 고마워했고, 그 방문이 큰 의미였다고 훗날 말했지만 당시 그녀에게 직접 표현하지는 않았다.
1524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과일 스무디를 일고여덟 가지씩 가져오게 해 맛보고 모두 퇴짜를 놓다가, 제임스 이슨으로부터 맛이 아니라 약으로 여기라는 꾸지람을 들었다.
1525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 직원 면회가 허용되자 병실을 찾은 팀 쿡과 한 시간 동안 새 아이폰의 이름과 GS 글자의 크기·서체·기울임 여부를 논의해, 아이폰 3GS라는 이름과 대문자 정자체 표기를 정했다.
1526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조지 라일리가 마련한 깜짝 일정으로 엘비스 프레슬리와 조니 캐시 등이 노래를 남긴 멤피스의 선 스튜디오를 문 닫은 뒤 둘러봤고, 수척한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 젊은 안내 직원이 똑똑하다며 아이튠스 팀에 채용하자고 라일리에게 말했다.
1527
2009년 05월 00일, 54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내 로런 파월, 여동생 모나 심프슨과 전용기로 멤피스에서 돌아왔고, 새너제이 공항으로 마중 나왔다가 비행기가 서자마자 기내로 들어온 팀 쿡·조니 아이브와 사과 탄산음료로 건배하며 포옹했다.
1528
2009년 05월 00일, 54세 때, 스티브 잡스는 집까지 운전해 준 조니 아이브로부터 그가 없는 동안 회사를 이끌기가 무척 힘들었다는 고백을 들었다.
1529
2009년 05월 00일, 54세 때, 스티브 잡스는 팰로앨토에 돌아온 뒤 자신이 회사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과 씨름하며 우울해했다.
1530
2009년 05월 00일, 54세 때, 스티브 잡스는 CEO에서 물러나 회장으로 옮길 것이라는 소문의 대상이 됐다. 이런 일들은 오히려 그가 통증을 참고 일어나 걸으며 회복하도록 자극했다.
1531
2009년 06월 00일, 54세 때, 스티브 잡스는 귀국 며칠 뒤 열린 이사회에 모두의 예상과 달리 느린 걸음으로 직접 들어와 회의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1532
2009년 06월 00일, 54세 때, 스티브 잡스는 6월 초부터 자택에서 날마다 업무 회의를 열기 시작했다.
1533
2009년 06월 00일, 54세 때, 스티브 잡스는 6월 말 애플 사무실로 출근해 업무에 복귀했다.
1534
2009년 06월 00일, 54세 때, 스티브 잡스는 복귀 첫날 반년 만에 만난 직원들을 깎아내리고 마케팅 기획안을 찢으며 두 사람을 거세게 질책했지만, 그날 오후 늦게 친구 두 명에게는 최고의 복귀였고 팀이 창의적 기운으로 가득했다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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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6월 00일, 54세 때, 스티브 잡스는 회복 중 컴캐스트의 고화질 케이블 서비스에 가입했다가, 최고경영자 브라이언 로버츠에게 직접 전화해 서비스가 형편없다고 말했다.
1536
2009년 07월 21일, 54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을 플라스틱 받침에 얹는 포장 방식으로 디자인 특허 D596485호를 받았다.
1537
2009년 09월 09일, 54세 때, 스티브 잡스는 가을마다 열리는 애플 음악 행사 무대에 서서 1분가량 기립 박수를 받으며 공식 복귀했고, 간을 기증받은 사연을 꺼내 모두 장기 기증자가 돼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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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9월 09일, 54세 때, 스티브 잡스는 다시 두 발로 서서 애플에 돌아왔고 이곳에서의 나날을 사랑한다고 말한 뒤, 동영상 카메라를 넣고 아홉 가지 색의 양극산화 알루미늄 외관을 입힌 새 아이팟 나노를 공개했다.
1539
2010년 00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상장 30년 뒤 갑부로 산 삶을 돌아보며, 롤스로이스와 집사를 두고 변해 간 애플의 벼락부자들처럼 살지 않겠다고, 재산 때문에 삶이 흐트러지게 놔두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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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경 · 55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30년 가까이 지난 뒤에도 IBM과의 경쟁을 성스러운 전쟁에 견주며 당시 IBM을 가장 나쁘던 때의 마이크로소프트, 오늘날의 AT&T·마이크로소프트·구글과 같은 존재로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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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경 · 55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25년이 지나서도 지나치게 높은 값 때문에 맥이 덜 팔렸고 그 틈에 마이크로소프트가 시장을 장악했다고 돌아봤다.
1542
2010년경 · 55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생애 말년에도 빌 게이츠가 상상력이 모자라 아무것도 발명하지 못하고 남의 생각을 베꼈을 뿐이며 윈도 때 염치없이 애플을 속였다고 분개했고, 게이츠로부터 정말 그렇게 믿는다면 현실 왜곡장에 또 빠진 것이라는 응수를 받았다.
1543
2010년 00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들 리드와 함께 로스앤젤레스의 모나 심프슨 집을 찾아 모나의 생일 저녁을 함께했는데, 리드가 할아버지 잔달리의 사진을 오래 들여다보는 동안 그는 사진을 외면했다.
1544
2010년 00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티나 레지로부터 25년 전 파리 다리 위의 순간을 회상하는 이메일을 받았고, 두 사람은 각자의 길을 걸으면서도 영적인 유대를 이어 갔다.
1545
2010년 00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옛 사진들을 넘겨 보다 어린 리사와 함께 찍은 사진 앞에서 말을 잃었고, 그해 내내 연락이 끊겨 있던 딸을 충분히 만나 주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1546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버지가 되고 싶지 않아 리사의 어린 시절 아버지 노릇을 하지 않았다고 다소 후회하는 어조로 회고했다.
1547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평생 진심으로 사랑한 여성은 티나 레지와 로런 파월 두 사람뿐이었고 존 바에즈는 많이 좋아했던 사람이었다고 회고했다.
1548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어느 오후 거실에서 티나 레지를 떠올리다 눈물을 보이며 자신이 만난 사람 가운데 그녀가 가장 순수했고 둘 사이에 영적인 유대가 있었다고 말했고, 함께하지 못한 것을 늘 아쉬워하면서도 둘이 함께할 운명은 아니었다고 받아들였다.
1549
2010년 00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2010년 맨해튼 5번가 매장의 면적당 수익과 총수익이 삭스와 블루밍데일스 등 뉴욕의 어느 매장보다 높다고 자랑했다.
1550
2010년 00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암 투병 중이던 2010년에도 미래의 애플 스토어를 구상하며, 18장 유리판으로 된 5번가 매장 큐브를 큰 유리 4장으로 바꾸는 스케치를 꺼내고 이를 위해 애플이 자체 개발한 오토클레이브에 이어 중국에 새 설비를 짓겠다고 말했다.
1551
2010년 00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뒤편 GM 빌딩과의 조화를 들어 18장 유리판이 낫다는 론 존슨의 반론을 받았지만 뜻을 굽히지 않았다.
1552
2010년 00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이패드에서 어도비 플래시를 막으며 어도비와 공개적인 전쟁을 벌였다.
1553
2010년 00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엔지니어들이 안테나 성능 저하를 걱정했는데도 아이브와 함께 아이폰 4 테두리에 알루미늄을 쓰자고 고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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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0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2010년 초 기력을 대부분 되찾아 일에 몰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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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0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음악 산업을 아이팟으로 뒤흔든 데 이어, 아이패드와 앱 스토어를 지렛대로 출판과 언론, TV, 영화 같은 미디어 산업 전체를 바꾸려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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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0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블로거가 아니라 제대로 된 언론이 돈을 내는 독자를 얻도록 돕고 싶어 했고, 디지털 유료화를 찾지 못하면 쇠락할 것으로 본 《뉴욕 타임스》를 돕는 일을 그해의 개인 과제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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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0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몇 해 전 아이팟 터치용 동영상 판권과 HBO 영화 독점 공급을 두고 맞서 거래를 따내지 못했던 타임 워너의 제프 버케스와 직접 협상에 나섰다. 버케스의 거침없고 단호한 협상 태도를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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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0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타임 사가 내는 잡지들의 아이패드 구독 건으로 버케스에게 전화를 걸어, 종이 사업은 저물고 있으니 애플 제안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버케스는 그 진단에는 동의하지 않았지만 애플이 디지털 구독을 대신 팔아 준다면 수수료 30퍼센트는 수용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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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0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구독자 정보가 누구 것이냐는 버케스의 질문에 개인정보 정책 때문에 모두 넘길 수 없다고 답했고, 독자를 알지 못하면 나중에 잡지값을 4달러에서 1달러로 내리라는 압박을 받게 된다는 반박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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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0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앱 스토어 구독자를 함께 소유하자는 루퍼트 머독 측의 요구를 거절했고, 머독은 거래를 깨지 않으려 그의 조건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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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경 · 55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머독이 아이패드 전용 일간지 《더 데일리》를 준비하며 쿠퍼티노로 가져온 디자인 시안에 불만을 보이고 애플 디자이너의 참여를 제안했지만, 열흘 뒤 두 안을 비교하고는 머독 팀의 안을 더 마음에 들어 했다. 《더 데일리》는 그의 조건대로 앱 스토어에서 주당 99센트에 팔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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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0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이패드의 초기 광고들이 성에 차지 않자 TBWA/미디어 아츠 랩의 제임스 빈센트·덩컨 밀너, 고문 리 클라우와 함께 직접 마케팅에 나섰고, 한 번 승인한 광고를 포터리 반 가구 광고 같다며 뒤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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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0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이팟은 주머니 속 1000곡이라는 말로 쉽게 설명됐지만 아이패드는 설명하기 어렵고 컴퓨터나 귀여운 TV처럼 보이기도 싫었다며, 첫 광고들은 애플이 무엇을 하는지 모르는 회사처럼 보였다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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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0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제임스 빈센트에게 전화해 아이패드가 세상을 바꾸는데 광고는 하찮은 수준이라고 질책했고, 원하는 것을 말하지도 못하지 않느냐는 반박에 서로 언성을 높이다 새로운 것을 보여 주면 보고 판단하겠다고 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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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0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2주 뒤 자택 커피 테이블에 펼쳐진 광고 시안 12종을 살핀 끝에 익살이나 유명인, 기능 시연이 아니라 선언과 같은 광고를 원한다는 것을 깨닫고, 1년쯤 뒤 쏟아질 모방 태블릿에 앞서 아이패드가 원조임을 새기자며 메시지를 만들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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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0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제시카 샌더스의 다큐멘터리풍 광고를 한동안 반기다가 비자카드 광고 같은 대행사 작품이라며 거부했고, 결국 단순하고 서술적이며 명료한 애플 고유의 목소리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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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0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플래시 코드를 iOS용으로 바꿔 주는 어도비 컴파일러로 만든 앱까지 금지했다. 여러 플랫폼에 그대로 옮기는 앱을 허용하면 최저 공통분모로 단순해져 애플의 플랫폼 개선이 앱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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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0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바이러스와 사생활 침해 앱, 외부 결제로 유도하는 앱 차단을 넘어 명예훼손 소지가 있거나 정치적으로 논쟁적이거나 애플 기준에서 음란물로 보이는 앱까지 금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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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0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 검열하는 빅 브라더처럼 비칠 수 있다는 우려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 톰 프리드먼에게 연락해 검열로 비치지 않으면서 앱을 규제할 방법을 상의하고, 지침을 다듬을 자문단을 꾸려 달라고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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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0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한 고객에게 이메일을 보내 아이폰에 포르노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애플의 도덕적 의무라며, 그런 것을 원하면 안드로이드폰을 고르라고 했다.
1571
2010년 00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앱 검열을 비판하며 혁명의 본질은 자유라고 한 밸리웨그 편집장 라이언 테이트의 이메일에 자정 넘어 답장해, 애플이 주려는 것은 개인정보를 훔치고 배터리를 갉아먹는 프로그램과 포르노로부터의 자유라고 맞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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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0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포르노로부터의 자유는 원치 않는다는 테이트의 재반박에 자녀가 생기면 생각이 바뀔 것이라고 답하고, 남이 한 일을 깎아내리기만 할 뿐 당신은 무엇을 이뤘느냐고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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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0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이 교신을 계기로 라이언 테이트로부터 고객이나 블로거와도 일대일로 맞붙고 디지털 삶에 대한 신념으로 회사를 일으키고 다시 세운 드문 경영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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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0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친구 존 스튜어트로부터 《더 데일리 쇼》에서 대의를 지녔던 반항아 애플이 이제는 악한 지배자가 되려는 것이냐는 반쯤 농담 섞인 공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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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0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늦봄 이사회에서 아트 레빈슨과 앨 고어로부터 애플이 커지면서 오만해 보인다는 문제 제기를 받자 방어적인 태도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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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0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비판이 쏟아지는 까닭은 구글과 어도비 같은 회사들이 애플을 무너뜨리려 거짓말을 퍼뜨리기 때문이라며, 애플이 오만하다는 지적은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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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0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 4의 안테나 우려를 회의에서 여러 차례 들었지만 엔지니어들을 양치기 소년처럼 여기며 할 수 있다고 밀어붙였다. 아이맥과 아이팟의 성공 이후 디자인이 공학적 난제를 넘어설 수 있다고 믿어 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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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0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출시 전 비밀 유지를 철저히 고집한 탓에 아이폰 4를 일반적인 실사용 시험에 부치지 못해 결함을 미리 잡지 못했다. 술집에서 분실된 시제품조차 가짜 케이스에 싸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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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0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첫 아이패드가 판매되기도 전에 앞뒤 양면 카메라를 달고 더 얇아진 아이패드 2를 구상했고, 케이스가 화면 둘레의 선을 덮고 두께까지 더한다는 문제를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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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0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정밀하게 초점을 맞춰 끌어당기는 원뿔형 자석에 관한 기사를 오려 조니 아이브에게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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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0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비틀스와 EMI의 권리 문제가 정리되자 쿠퍼티노 회의실에서 에디 큐와 함께 EMI 뮤직의 로저 팩슨 대표, 비틀스 쪽 제프 존스와 넷이 마주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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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0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구글·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가 개인 콘텐츠를 클라우드에 저장하고 동기화하는 경쟁에 뛰어들자 애플의 클라우드 작업에 더 힘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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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0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 음악·영상 스트리밍부터 사진·의료 정보 보관까지 클라우드 안에서 고객과의 관계를 책임지는 회사로 바뀌어야 하며, 혁신 기업의 딜레마를 피하려면 허브를 컴퓨터에서 클라우드로 옮겨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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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0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모바일미를 무료 서비스로 되살리고 동기화를 단순하게 만들겠다고 밝히며,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애플의 대형 서버 시설이 지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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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0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월요일 아침 경영 회의마다 클라우드 구상을 논의해 전략으로 다듬었고, 새벽에도 임원들에게 관련 메일을 보냈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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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0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HP가 애플 본사에서 동쪽으로 약 1.6km 떨어진 쿠퍼티노 사옥을 비우기로 하자 그 부지와 주변 땅을 조용히 사들였다.
1587
2010년 00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어릴 때 살구밭이 대부분이던 약 60만㎡ 땅에 회사의 가치를 상징하는 신사옥을 세워 후대에 남기는 계획에 착수했다.
1588
2010년 00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베를린 독일 의회 의사당 복원과 런던 거킨 빌딩으로 알려진 노먼 포스터의 회사를 신사옥 설계사로 정하고 외관과 세부 설계에 깊이 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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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0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건축가 50명을 투입한 포스터 측으로부터 3주마다 수정 모형과 대안을 받았고, 그때마다 새로운 형태를 던지며 원점에서 다시 그리거나 다른 안을 더 내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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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0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세 개의 반원이 가운데 안뜰을 감싸는 유리벽 건물 모형과 도면을 자택 거실에서 펼쳐 보이며, 모두가 햇빛을 누리고 우연히 마주칠 수 있는 공간을 노린 설계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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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0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사무 공간을 창에서 안쪽으로 물려 긴 복도에 햇빛이 들어오게 설계를 고쳤고, 여닫는 창을 달자는 건축가들의 요구는 사람들이 망쳐 놓을 수 있다며 물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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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0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저녁 식탁에서 설계도를 자랑하다 위에서 본 건물 모양을 두고 아들 리드가 던진 농담을 다음 날 건축가들에게 전했고, 이후 건물은 단순한 원형으로 바뀌었다.
1593
2010년 00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평면 유리 없이 곡면 유리로만 이어지는 원형 설계를, 애플 스토어용 맞춤 유리를 주문해 본 경험에 비춰 대량 제작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1594
2010년 00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폭 약 240m의 중앙 안뜰을 로마 성 베드로 광장과 겹쳐 크기를 가늠해 보였고, 스탠퍼드에서 온 수목 전문가를 들여 대지의 80%를 나무 6000그루로 채우고 옛 밸리를 떠올리게 하는 살구 과수원도 꼭 넣으라고 지시했다.
1595
2010년 00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미국의 경쟁력 상실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대통령 경제회복자문위원회에 전한 벤처 투자가 존 도어로부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 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1596
2010년 00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병이 가져온 몇 안 되는 좋은 점으로 아들 리드가 뛰어난 의사들 곁에서 공부하게 된 일을 꼽으며, 21세기의 가장 큰 혁신은 생물학과 기술이 만나는 자리에서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1597
2010년 00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가족과 함께 객석에서 아들 리드의 졸업반 연구 발표를 지켜봤고, 훗날 리드가 팰러앨토에 살림을 차리고 스탠퍼드 병원에 자전거로 출근하는 의사가 되는 모습을 상상한다고 말했다.
1598
2010년 00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들 리드가 학교 대표 4인조로 나간 지역 방송 퀴즈 대회를 가족과 응원하러 갔다가, 청바지에 터틀넥 차림을 알아본 한 관객이 곁에 앉아 사진을 찍어 대자 다른 자리로 피했다.
1599
2010년 00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차에 번호판을 달지 않는 이유를 두고, 처음엔 추적을 피하려던 것이었지만 이제는 구글 맵 때문에 소용이 없고 사실은 그냥 달기 싫어서라고 말했다.
1600
2010년 00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건강을 되찾은 뒤 더 다정한 가장이 되기를 바란 아내 로런 파월의 기대와 달리 예전처럼 다시 일에 매달렸다.
1601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내 로런 파월이 공동 설립한 칼리지 트랙의 성과를 높이 샀지만 자선 활동에는 회의적이었고, 그 센터를 한 번도 찾지 않았다.
1602
2010년 01월 00일, 54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이패드 발표를 앞두고 《이코노미스트》 표지에 후광을 두르고 성직자복을 입은 채 예수 태블릿을 든 모습으로 실렸다.
1603
2010년 01월 00일, 54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이패드 공개 며칠 뒤 애플 본사 직원 전체가 모이는 타운홀 회의를 소집했지만 새 제품 이야기 대신 안드로이드를 낸 구글을 거세게 비난하며, 애플은 검색 시장에 들어가지 않았는데 구글은 휴대전화 시장에 뛰어들어 아이폰을 죽이려 한다고 직원들에게 말했다. 구글 최고경영자 에릭 슈미트가 아이폰·아이패드 개발 기간에 애플 이사였기에 배신감이 컸다.
1604
2010년 01월 00일, 54세 때, 스티브 잡스는 화제가 다른 데로 옮겨 간 뒤에도 곧 구글 이야기로 되돌아와 사악해지지 말자는 그 회사의 구호를 헛소리라고 깎아내렸다.
1605
2010년 01월 00일, 54세 때, 스티브 잡스는 같은 자리에서 어도비 플래시를 게으른 사람들이 만든 버그투성이에 배터리를 잡아먹는 기술이라고 비난하고, 아이팟과 아이폰이 플래시를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1606
2010년 01월 27일, 54세 때, 스티브 잡스는 샌프란시스코 아이패드 발표를 앞두고 어느 출시 때보다 뜨거운 기대를 끌어올렸고, 발표장에는 애플 초창기 사람들을 대거 불렀다.
1607
2010년 01월 27일, 54세 때, 스티브 잡스는 무대 화면에 아이폰과 노트북 사이 물음표를 띄우고, 그 자리에 들어갈 기기는 웹과 이메일, 사진, 동영상, 음악, 게임, 전자책을 잘 다뤄야 하는데 넷북은 그 어느 것도 낫지 않다고 꼬집었다.
1608
2010년 01월 27일, 54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 바로 그런 기기가 있다며 그 이름을 아이패드라고 발표했다.
1609
2010년 01월 27일, 54세 때, 스티브 잡스는 르코르뷔지에 가죽 안락의자에 앉아 《뉴욕 타임스》 사이트를 띄우고 스콧 포스톨·필 실러에게 메일을 보낸 뒤, 사진첩과 일정표, 구글 지도의 에펠탑 확대, 「스타 트렉」과 픽사 「업」 영상, 아이북스 책꽂이와 밥 딜런의 「라이크 어 롤링 스톤」을 차례로 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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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1월 27일, 54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마지막 화면에 과학기술과 인문학 두 거리가 만나는 교차로 표지판을 띄우고, 애플이 언제나 두 길이 만나는 자리에 서고자 했기에 아이패드와 같은 물건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고 결론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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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1월 27일, 54세 때, 스티브 잡스는 발표장에서 아이북스 책값이 아마존보다 비싸지지 않겠느냐는 월트 모스버그의 질문에 가격이 같아질 것이라고 답했다.
1612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의 아이패드 발표는 가짜 스티브 잡스 패러디로 활동하던 《뉴스위크》의 대니얼 라이언스가 이만큼 실망한 적은 처음이라고 쓰는 등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낳았다.
1613
2010년 01월 27일, 54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이패드를 공개한 날 저녁 풀이 죽은 채 식탁 둘레를 오가며 아이폰으로 메일과 웹 페이지를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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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1월 27일, 54세 때, 스티브 잡스는 하루 만에 쏟아진 이메일 800통 가운데 상당수가 USB 단자 같은 빠진 기능이나 이름을 탓하는 불평이었고, 평소와 달리 한 비판자에게 부모님이 참 자랑스러워하겠다고 비꼬는 답장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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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1월 27일, 54세 때, 스티브 잡스는 그날 오바마 대통령의 람 이매뉴얼 비서실장으로부터 축하 전화를 받아 고마워했지만, 저녁 식사 자리에서는 대통령이 취임 뒤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다고 불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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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이패드에 대한 《타임》 레브 그로스먼의 비판을 깊이 새겨, 다음 버전 아이패드에는 사용자가 예술 작품을 만들 수 있는 도구를 강화하겠다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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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1월 28일, 54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이패드 발표 이튿날 출판사들에 대리점 모델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책값은 출판사가 정하고 애플은 30퍼센트를 가져가되, 다른 곳이 더 싸게 팔면 애플도 그 값에 팔 수 있게 보장받는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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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1월 28일, 54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마존이 도매가보다 싼 9.99달러에 전자책을 팔아 출판사들이 반발했고 일부는 아마존에 책을 대지 않으려 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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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1월 28일, 54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음반사에는 대리점 모델도, 가격을 정할 권한도 넘기지 않았다며 책과 음악에 서로 반대되는 방식을 적용했음을 인정하고, 책 시장에서는 뒤늦게 뛰어든 처지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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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2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이패드 발표 직후 뉴욕을 찾아 이틀 동안 루퍼트 머독과 아들 제임스 머독, 《뉴욕 타임스》의 아서 설즈버거 2세와 수뇌부, 《월스트리트 저널》 경영진, 《타임》·《포춘》을 펴내는 타임 사 경영진을 잇달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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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2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레스토랑 프라나의 지하 방에서 《뉴욕 타임스》 간부 50명가량과 저녁을 먹으며 차림표에 없는 망고 스무디와 아무것도 넣지 않은 파스타를 시켰고, 아이패드를 시연하면서 가격에 따라 판매량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래프로 보여 주며 디지털 구독자 1000만 명을 노리려면 월 5달러 이하로 싸고 단순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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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2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앱 스토어 구독자의 이메일과 카드 정보도 넘겨받아야 한다는 《뉴욕 타임스》 보급 담당 임원의 요구를 거절하며, 독자 동의를 구하는 건 막지 않겠지만 지난 5년간 온라인판을 무료로 뿌리며 카드 정보를 모으지 않은 것은 신문사 책임이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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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2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서 설즈버거 2세와 따로 만났고, 그를 괜찮은 사람이자 새 본사 건물을 무척 자랑스러워하는 인물로 기억하면서도 자신의 제안에는 반응하지 않았다고 훗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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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2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타임라이프 빌딩에서 아이패드판 《타임》을 맡은 조시 퀴트너 팀을 거느린 부편집장 릭 스텐절에게 호감을 보였지만, 2년 전 《포춘》 기사로 건강과 스톡옵션 소급 문제를 파헤쳤던 앤디 서워와 마주치자 그 기사에 대한 노여움이 아직 가시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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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2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뉴욕 언론계 인사들을 만나러 간 김에 친구이자 애플을 좋아하는 존 스튜어트도 개인적으로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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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2월 24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가족끼리 조촐하게 55번째 생일을 맞았고, 아이들이 리본과 풍선으로 꾸민 부엌에서 아이들이 건넨 빨간 벨벳 장난감 왕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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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3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 소송을 제기한 그 주 팰로앨토 자택에서 구글이 아이폰을 훔쳤다며, 필요하다면 남은 생과 애플 은행 잔고 400억 달러를 모두 써서라도 도둑맞은 물건이나 다름없는 안드로이드를 쓰러뜨리겠다고 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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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3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검색을 뺀 안드로이드와 구글 닥스 등 구글 제품들을 형편없다고 혹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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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3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며칠 뒤 지난여름 애플 이사직에서 물러난 에릭 슈미트에게서 연락을 받고 팰로앨토의 한 쇼핑센터 카페에서 커피를 함께 마셨고, 대화의 절반은 사적인 이야기, 나머지는 구글이 애플의 UI 디자인을 훔쳤다는 그의 주장에 관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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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3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그 자리에서 구글이 현장에서 붙잡힌 도둑이라며 50억 달러를 내밀어도 타협하지 않겠으니 안드로이드에서 애플 아이디어를 빼기만 하라고 했지만 해결책은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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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 예전처럼 폐쇄 시스템을 고집한다는 에릭 슈미트의 시각을 전해 듣고, 안드로이드는 화면 크기와 버전이 제각각이라 100가지가 넘는 조합이 생긴 난장판이라고 반박하며 사용자 경험 전체를 책임지는 훌륭한 제품을 만들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1632
2010년 04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플래시 관련 공개 서한 초안을 집에서 이사 빌 캠벨에게 보이며 괜한 시비로 비치지 않겠느냐고 물었고, 모두 사실이니 올리라는 답을 들었다.
1633
2010년 04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앱 승인을 거부당했던 시사만화가 마크 피오레가 2010년 퓰리처상을 받아 애플의 결정이 조롱거리가 되자 방침을 바꾸고 실수였다고 공개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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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4월 03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이패드 시판일 정오 무렵 팰로앨토 애플 스토어를 찾았다가, 리드 대학 시절부터 애플 초창기를 함께한 대니얼 콧키와 15년 만에 마주쳐 아이패드로 노래 가사를 쓰겠다는 그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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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글을 모르는 여섯 살 소년도 설명 없이 아이패드를 다루더라는 마이클 노어의 포브스닷컴 일화를 읽고 감동해 그 글을 주변에 전했다.
1636
2010년 04월 29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어도비와 플래시를 감싸며 애플의 통제를 비판하는 블로거들에 맞서 공개 서한을 냈다. 서한은 플래시의 기술 결함을 주로 짚었지만 끝머리에서 어도비가 주요 개발사 중 마지막으로 맥 OS X를 완전히 받아들였다는 해묵은 앙금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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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6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이런 성격의 행사에는 서지 않는다는 자신의 원칙을 어기고 루퍼트 머독의 부탁으로 뉴스 코퍼레이션 연례 경영진 워크숍에 연사로 나서 저녁 뒤 제임스 머독과 약 두 시간 대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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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6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대담에서 뉴욕에 자리한 신문사들이 실리콘밸리 기술 인력과 거리가 멀어 기술 대응을 바로잡기 어렵다고 꼬집었고, 《월스트리트 저널 디지털 네트워크》 사장 고든 매클라우드로부터 그 말대로라면 자신이 일자리를 잃겠다는 반발을 들었다.
1639
2010년 06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연설해 준 대가로 머독에게 폭스 뉴스가 사회를 해치는 파괴적 세력이 돼 머독의 유산으로 남을 수 있다는 자기 견해를 끝까지 들려줬다. 오늘날의 갈림길은 진보와 보수가 아니라 짓는 쪽과 부수는 쪽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1640
2010년 06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머독에게 숀 해니티와 글렌 벡의 방송을 일주일 분량씩 모아 보게 하라고 권했고, 존 스튜어트 쪽에도 비슷한 모음 영상을 만들어 달라고 해 머독에게 보낼 생각도 했다.
1641
2010년 06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들 리드의 고교 졸업식에 참석해, 식이 진행되는 동안 오늘이 생애 가장 행복한 날 가운데 하나이며 온갖 어려움을 딛고 이 자리에 왔다는 이메일을 아이폰으로 보냈다.
1642
2010년 06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졸업을 축하하는 가족·친구 파티를 집에서 열었고, 리드는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 모두와 차례로 춤을 췄다.
1643
2010년 06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이제 탈 수 없게 된 자전거 두 대를 창고에서 보여 주며 리드에게 하나를 고르게 했고, 아버지에게 빚을 졌다는 리드의 농담에 빚이 아니라 자신의 DNA를 물려받은 것이라고 답했다.
1644
2010년 06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리드의 졸업 며칠 뒤 개봉한, 세 편 모두 직접 챙겨 온 픽사의 「토이 스토리 3」에서 대학으로 떠나는 앤디가 어머니에게 늘 함께하겠다고 답하는 장면에 크게 공감했다.
1645
2010년 06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약속한 2010년 6월이 되자 딸 에린과의 교토 여행을 또 미뤘고, 에린이 어머니와 프랑스로 떠난 사이 교토 일정을 7월로 다시 잡았다.
1646
2010년 07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 4 안테나 문제가 불거졌을 때 가족과 하와이 코나 빌리지에 머물고 있었고, 통화한 아트 레빈슨에게 구글과 모토로라가 애플을 무너뜨리려 꾸민 일이라고 주장했다.
1647
2010년 07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겸손하게 잘못부터 찾아보자는 레빈슨의 권고를 못마땅해했고, 비판을 개인적인 공격으로 받아들여 대응할 가치도 없다며 침울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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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7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 독선적이고 오만한 새 마이크로소프트가 돼 간다는 누군가의 말을 팀 쿡에게서 전해 듣고 무기력에서 벗어나, 이튿날 문제의 핵심을 파고들자며 태도를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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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7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AT&T를 통해 통화 끊김 데이터를 모아 보고 소문만큼은 아니어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확인한 뒤 하와이에서 비행기로 돌아왔다.
1650
2010년 07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하와이를 떠나기 전, 첫 매킨토시 때 홍보를 함께 맡았던 레지스 매케나에게 전화로 안테나 사태 수습을 도와 달라고 해 이튿날 오후 1시 반 쿠퍼티노에서 만나기로 했고, 애플 일에서 손을 떼려던 광고인 리 클라우를 붙잡아 제임스 빈센트와 함께 불렀다.
1651
2010년 07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하와이에 함께 있던 고교 3학년 아들 리드를 함께 데려가면서, 경영대학원에서 2년을 보내는 것보다 많이 배울 것이고 최정상급 인물들이 힘든 결정을 내리는 장면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고, 훗날 이 일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1652
2010년 07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홍보 책임자 케이티 코튼과 임원 7명이 오후 내내 머리를 맞댄 회의에서 모아 온 자료를 빠짐없이 내보이며 해법을 물었고, 훗날 이 자리를 인생 최고의 회의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1653
2010년 07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사과를 권한 제임스 빈센트 등과 달리 오만하지 않되 흔들림 없는 확신으로 사실과 수치를 내보이라는 레지스 매케나의 조언을 받아들여, 휴대전화도 애플도 완벽하지 않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데이터로 말하는 것을 대응 전략으로 삼았다.
1654
2010년 07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7월 초 장거리 가족 여행의 첫 행선지로 하와이 코나 빌리지에 갔다가, 아이폰 4 안테나 결함 논란이 터지자 아들 리드를 데리고 서둘러 쿠퍼티노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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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7월 16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 본사 강당에서 아이폰 4 안테나 문제에 관한 기자회견을 열어, 머리를 숙이기보다 문제를 파악해 해결하겠다는 태도로 모든 휴대전화가 완벽하지 않다는 쪽으로 논점을 돌렸다.
1656
2010년 07월 16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만족하지 못한 구매자에게 환불이나 무료 범퍼 케이스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아이폰 4의 반품률은 1.7%로 아이폰 3GS나 다른 대부분 휴대전화의 3분의 1에도 못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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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7월 16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다른 휴대전화도 비슷한 수신 문제를 겪는다는 자료를 내보이며 언론이 끊김 현상을 지나치게 부풀렸다고 주장했고, 사과나 리콜이 없었는데도 고객 대부분은 그의 말에 수긍했다.
1658
2010년 07월 16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의 기자회견은 언론의 쟁점을 아이폰 4가 실패작인지에서 다른 스마트폰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는지로 옮겨 놓았다는 분석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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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7월 16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뉴저닷컴의 마이클 볼프로부터 사과나 대규모 리콜 없이 문제를 경쟁사 쪽으로 돌려세운 것은 그가 지닌 카리스마 덕분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1660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딜버트」 작가 스콧 애덤스가 블로그에 그의 대응이 새로운 홍보의 교본으로 연구될 것이라고 쓴 글을 이메일로 주변에 돌렸다.
1661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기자회견을 마치고 하와이로 돌아가 남아 있던 가족을 데리고 일본으로 향했다.
1662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내 로런 파월, 딸 에린과 교토의 다와라야 료칸에 묵으며 선불교 사원들을 둘러봤고, 그동안 리드는 팰러앨토에서 막내 이브를 돌봤다.
1663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교토에서 날마다 점심 장소를 직접 골랐고, 작은 초밥집에서 먹은 초밥을 아이폰으로 찍어 생애 최고의 초밥이라는 이름으로 저장했다.
1664
2010년 10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내 로런 파월이 자신도 모르게 오바마 대통령과의 30분 회동을 잡아 둔 데 반발해 대통령이 직접 전화로 청해야 한다고 버텼으나, 파월이 불러온 아들 리드의 설득에 마음을 돌렸다.
1665
2010년 10월 21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샌프란시스코 공항 인근 웨스틴 호텔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45분간 만나, 정부가 훨씬 더 기업 친화적이지 않으면 단임으로 끝날 수 있다고 직언했다.
1666
2010년 10월 21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중국에서는 공장을 세우기 쉽지만 미국에서는 규제와 비용 때문에 거의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1667
2010년 10월 21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미국 교육이 교원 노조에 묶여 시대에 뒤떨어졌다며 교사를 전문직으로 대우하고 교장에게 채용·해고 권한을 주며 수업을 오후 6시까지, 1년에 11개월로 늘리고 디지털 교재로 맞춤 학습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668
2010년 10월 21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혁신 과제를 설명할 최고경영자 6~7명의 모임을 제안했고, 오바마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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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30년 넘게 이어진 애플 코퍼레이션과의 분쟁 끝에, 살아 있는 동안 해결하고 싶어 했던 비틀스 음악의 아이튠스 판매를 성사시켰다.
1670
2010년 11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11월 초 다시 통증으로 음식을 먹지 못해 집에서 간호사에게 정맥 영양 공급을 받았고, 의사들은 새로운 종양이 보이지 않자 감염이나 소화기 이상을 원인으로 봤다.
1671
2010년 11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하와이 코나 빌리지에서 가족과 추수감사절을 보냈지만 식욕을 되찾지 못했다.
1672
2010년 11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팰러앨토로 돌아온 뒤 아이들에게 자신은 곧 죽을 것이고 더는 생일을 함께 축하해 줄 수 없을 것이라며 목이 메어 말했다.
1673
2010년 11월 16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30년 넘게 이어진 비틀스와의 갈등을 매듭짓고 비틀스 음악을 아이튠스에 들여왔으며, 이를 알릴 광고에 쓸 사진을 직접 골랐다.
1674
2010년 12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12월 워싱턴 회의에 부를 기업인 명단을 직접 작성했지만 참석자가 불어나자 밸러리 재럿에게 너무 많다며 불참하겠다는 메일을 보냈다. 존 도어는 당시 그의 건강이 나빠 어차피 참석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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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크리스마스 무렵 체중이 평소보다 20kg 넘게 줄었다.
1676
2010년 12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크리스마스에 여동생 모나 심프슨 가족과 함께 지내며 책의 첫 문장을 지어내는 놀이를 했고, 며칠 뒤 상태가 잠시 나아져 아내 로런 파월과 식당에 나갈 수 있었다.
1677
2011년 00월 00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시리아 시위가 뉴스에 오르던 무렵 미국이 개입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무엇을 해야 할지 아는 사람이 없고 개입하든 안 하든 비판받을 것이라고 답했다.
1678
2011년 00월 00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저택 보존을 주장하는 환경보호론자들과 20년 넘게 법정 다툼을 벌인 끝에 우드사이드 저택 철거 허가를 받았지만, 그때는 이미 새집을 지을 마음이 사라진 뒤였다.
1679
2011년 00월 00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2011년 초까지 212개 특허에 발명자로 이름을 올렸고, 맥북용 흰색 어댑터와 자석으로 붙는 전원 커넥터 특허에도 발명자로 기재됐다.
1680
2011년 00월 00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세 번째 병가로 집에서 쉬던 무렵 거실에서 아이패드로 딜런과 비틀스를 들은 뒤 그레고리안 성가 「스피리투스 도미니」를 틀어 놓고 1분 가까이 몰입했다.
1681
2011년 00월 00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2번」과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푸가를 들으며 클래식 작곡가 가운데 바흐를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다.
1682
2011년 00월 00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글렌 굴드가 1955년과 1981년에 녹음한 두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비교해 듣길 즐겼고, 예전엔 젊고 화려한 첫 녹음을 좋아했지만 이제는 깊이 있는 두 번째 녹음을 더 아낀 굴드를 이해한다고 말했다.
1683
2011년 00월 00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도노반의 「캐치 더 윈드」와 「멜로 옐로」를 틀며 도노반에게도 좋은 곡이 있다고 했지만, 젊을 때 더 좋게 들렸다고 인정했다.
1684
2011년 00월 00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어린 시절 음악 가운데 지금도 좋은 곡으로 그레이트풀 데드의 「엉클 존스 밴드」를 골라 틀고 가사에 고개를 끄덕였다.
1685
2011년 00월 00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조니 미첼이 입양 보낸 딸을 노래한 「리틀 그린」을 튼 뒤, 자신의 입양에 대해서는 그리 자주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1686
2011년 00월 00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요즘은 태어난 일보다 나이 드는 일을 더 생각한다며 조니 미첼 「보스 사이즈 나우」의 1969년 원곡과 2000년 재녹음을 차례로 들려주고, 사람이 늙어 가는 모습이 흥미롭다고 말했다.
1687
2011년 00월 00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비틀스와 롤링 스톤스 중 하나만 건진다면 비틀스이고 정말 어려운 선택은 비틀스와 딜런 사이라며, 그 음악을 들으며 자란 세대는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1688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팰로앨토 거실 책장에서 「스트로베리 필즈 포에버」 작업 과정을 담은 해적판 CD를 꺼내 틀고, 비틀스가 몇 달의 시행착오 끝에 곡을 완성해 가는 과정이 들린다며 멤버 가운데 존 레넌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다.
1689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도 노트북과 아이팟을 만들 때 수많은 모형으로 디자인과 버튼, 기능을 거듭 다듬어 끝내 감탄이 나오는 제품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1690
2011년 00월 00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이사 제리 요크가 2008년 후반 애플의 건강 은폐에 분노했다고 언론에 비공식으로 털어놓은 사실이 2011년 세 번째 병가 때 《포춘》 보도로 드러났다.
1691
2011년 00월 00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루퍼트 머독을 팰로앨토 집 저녁 식사에 두 차례 더 맞을 만큼 원만한 관계를 이어 갔고, 머독이 찾아올 때마다 아내가 칼을 들까 봐 식탁의 나이프를 감춰야 했다고 농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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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0월 00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병가 발표 뒤 팰러앨토 자택으로 찾아온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중동 정세부터 미국 정치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1693
2011년 00월 00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마크 주커버그 같은 젊은 창업자들에게도 조언하며 남은 시간의 일부를 다음 세대를 키우는 데 쓰겠다고 말했다.
1694
2011년 00월 00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교과서 산업을 바꿔 학생들을 무거운 책가방에서 풀어 주겠다며 아이패드용 디지털 교과서와 교육과정을 만드는 일을 구상했다.
1695
2011년 00월 00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옛 매킨토시 팀 동료 빌 앳킨슨과 함께 빛이 적은 환경에서도 선명한 사진을 얻는 디지털 기법을 궁리했다.
1696
2011년 00월 00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텔레비전을 단순하고 우아하게 바꾸고 싶다며, 아이클라우드와 연동되는 통합형 TV를 만들 방법을 마침내 찾아냈다고 말했다.
1697
2011년경 · 5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남기고 싶은 유산을 직접 글로 정리하며, 평생 열정을 쏟은 일은 의욕 넘치는 사람들이 뛰어난 제품을 만들어 내는, 세월을 견디는 회사를 일구는 것이었고 이익은 좋은 제품을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고 썼다.
1698
2011년경 · 5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존 스컬리가 제품보다 돈벌이를 앞세웠고, 그 작은 우선순위 차이가 채용과 승진, 회의 안건까지 바꿔 놓았다고 비판했다.
1699
2011년경 · 5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고객이 원하는 것을 그대로 내주는 대신 고객이 느끼기도 전에 원할 것을 찾아내는 것이 자기 일이라며, 헨리 포드의 '더 빠른 말' 일화를 들어 시장조사에 기대지 않는 이유를 설명했다.
1700
2011년경 · 5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폴라로이드 창업자 에드윈 랜드가 강조한, 인문학과 과학기술이 만나는 자리를 아낀다며, 애플의 혁신에 흐르는 인간애가 공감을 얻는 이유이고 원조 매킨토시 개발진 다수는 시나 음악의 길을 걸었어도 빛났을 사람들이었다고 썼다.
1701
2011년경 · 5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하드웨어·소프트웨어·콘텐츠 관리를 하나로 묶는 방식은 제품을 향한 애정에서 비롯되며, 남의 기기에 개방하면 비전의 일부를 내려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1702
2011년경 · 5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실리콘밸리의 모범 기업 자리가 HP에서 페어차일드·인텔로 이어졌고 애플은 한때 밀려났다가 시간의 시험을 견뎌 다시 흐름을 이끌게 됐다고 평가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는 사업적 강점에도 상당 부분 시대에 뒤처졌다고 봤다.
1703
2011년경 · 5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빌 게이츠가 제품보다 승리를 앞세운 사업가였기에 세계 최고 부자가 됐다면서도 훌륭한 회사를 세운 그를 존경하고 함께 일한 것이 즐거웠다고 썼고, 마이크로소프트에는 인문학의 감수성이 없어 맥을 제대로 따라 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1704
2011년경 · 5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독점에 가까워진 기업이 제품을 소홀히 하고 영업 출신이 경영을 맡으면서 쇠퇴한다는 이론을 펴며, IBM의 존 에이커스와 제록스, 자신의 실수로 스컬리를 들인 시절의 애플, 스티브 발머가 이끄는 마이크로소프트를 예로 들었다.
1705
2011년경 · 5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회사를 팔거나 상장해 돈을 챙길 궁리만 하며 기업가를 자처하는 이들을 경멸한다며, 월트 디즈니, 휼렛과 패커드, 인텔을 세운 이들처럼 다음 세대와 그다음 세대에도 의미를 지니는 회사를 세워야 하고 애플도 그렇게 되길 바란다고 썼다.
1706
2011년경 · 5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형편없는 결과물을 면전에서 솔직하게 지적하는 것이 자기 몫이자 자신이 만들려던 문화라며, 동료들과 고함치며 다툰 순간이 최고의 순간이었고 거침없는 솔직함이 그 자리에 들어오는 입장료였다고 주장했다.
1707
2011년경 · 5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1965년 전자 사운드로 방향을 튼 밥 딜런과 그의 1966년 유럽 투어, 끊임없이 진화한 비틀스를 예로 들어 성공에 머물지 말고 계속 나아가야 한다는 신념을 밝혔다.
1708
2011년경 · 56세 무렵, 스티브 잡스는 앞선 이들이 이룬 언어·수학·음식·옷 같은 성취를 누리는 데 대한 감사가 자신을 움직인 힘이었고, 딜런의 노래나 톰 스토파드의 희곡을 쓸 수는 없으니 자기 재능으로 인류의 흐름에 무언가를 보태고 싶었다고 썼다.
1709
2011년 00월 00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몸이 좋지 않던 어느 오후 자택 뒤뜰에서 40년 가까이 전의 인도 경험과 불교 수행, 윤회와 영적 초월을 둘러싼 생각을 털어놓았다.
1710
2011년 00월 00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신이 있는지는 반반이라고 보면서도 평생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삶에 작용한다고 느껴 왔다며, 삶의 끝이 다가오니 사후 세계를 믿고 싶어져 그 가능성을 부풀려 볼 수도 있다고 인정했다.
1711
2011년 00월 00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쌓아 온 경험과 지혜가 사라지지 않고 이어지기를 바란다면서도, 죽음이란 전원 스위치를 딸깍 내리는 일과 다르지 않을지 모르고, 그래서 자신이 애플 제품에 스위치 다는 것을 유난히 꺼렸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1712
2011년 01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새해에 아이들이 스키 여행을 떠난 동안 아내 로런 파월과 여동생 모나 심프슨의 간병을 번갈아 받았다.
1713
2011년 01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의사들이 새 종양을 찾아내면서 일시적인 악화가 아니라 암이 진행되고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1714
2011년 01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수척해진 모습의 사진과 영상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위독하다는 소문에 휩싸였다.
1715
2011년 01월 17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처음엔 병가를 거부했지만 결국 받아들여 이사회와의 3분 전화 회의로 병가를 알렸고, 일상 업무는 팀 쿡이 맡도록 했다.
1716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병가 발표 뒤 맞은 토요일, 아내 로런 파월이 주치의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회의를 여는 것을 허락했다. 그때까지 종양·통증·영양·간 전문의가 따로따로 그를 치료하고 있었다.
1717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정상 세포와 종양의 유전체를 함께 해독한 세계 최초 20명 가운데 한 명이 됐다. 분석은 스탠퍼드, 존스 홉킨스, 브로드 연구소가 함께 맡았고 비용은 10만 달러를 넘었다.
1718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종양의 분자 특성에 맞춘 표적 치료약을 암의 변이에 따라 차례로 바꿔 쓰는 치료를 받았고, 아내가 치료 과정을 살폈지만 새 치료법의 최종 결정은 직접 내렸다.
1719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병가 발표 이튿주 1년 넘게 연락을 끊었던 딸 리사 브레넌잡스가 다시 연락해 뉴욕에서 날아오면서 딸과 다시 만났다.
1720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리사가 다섯 살 무렵 더 좋은 아버지였으면 좋았겠다고 여러 번 말하면서도 이제는 리사도 원망을 거둬야 한다고 했고, 결혼하면 팰러앨토로 와서 살라고 권했다가 어느 정도 화해한 데 마음이 놓였다고 말했다.
1721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세 블록 떨어진 곳에 사는 구글 공동 창업자 래리 페이지가 CEO 승계 발표 직후 찾아와 훌륭한 최고경영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자, 구글에 대한 앙금에도 젊은 시절 빌 휼렛 등에게 받은 도움을 떠올려 만나기로 했다.
1722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자택 거실에서 래리 페이지에게 집중, 인재 채용, 믿을 만한 참모진 구축, B급 인력 차단을 조언하며 가장 중요한 제품 다섯 개만 남기라고 말했다.
1723
2011년 02월 00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존 도어 부부와 팰러앨토의 그리스 음식점 에비아에서 식사하며 오바마 대통령과의 만찬 초청 명단을 짰고, 새우·대구·렌즈콩 샐러드 메뉴가 너무 화려하다고 반대하는 등 차림까지 챙겼다.
1724
2011년 02월 17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실리콘밸리 기업인 만찬에서 오바마 대통령 옆에 앉아 각자의 정치적 입장과 상관없이 국가에 보탬이 되려고 이 자리에 왔다는 인사로 자리를 열었다.
1725
2011년 02월 17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미국에서 공학 학위를 딴 외국인 유학생에게 머물 수 있는 비자를 내줘야 한다고 제안했으나, 드림 법안이 통과돼야 가능하다는 대통령의 답을 듣고 정치의 무력함에 화가 났다고 회고했다.
1726
2011년 02월 17일, 55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 중국 공장에서 70만 명의 노동자를 쓰고 있고 이를 받칠 현장 엔지니어 3만 명이 필요하지만 미국에서는 구할 수 없다며, 전문학교와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기초 엔지니어를 길러 내면 미국에도 공장을 더 세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1727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만찬 뒤 오바마 대통령의 후속 조치에 만족해 몇 차례 통화했고, 2012년 대선 광고 제작을 돕겠다고 제안했다.
1728
2011년 02월 24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쉰여섯 번째 생일에 팰로앨토를 지난다는 루퍼트 머독의 문자를 받고 생일이라는 말 없이 저녁 식사에 초대했고, 그 자리에는 딸 에린과 이브가 함께했으며 스탠퍼드에 다니던 아들 리드도 끝 무렵 잠깐 들렀다.
1729
2011년 02월 24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그날 저녁 자신이 설계한 배의 도면을 머독에게 자랑했다.
1730
2011년 02월 24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머독과 회사에 진취적 문화를 심는 일을 이야기하며, 예전에는 규모가 큰 회사가 고유한 문화를 지니기 어렵다고 믿었지만 이제는 가능하다고 보고 애플에서 그것을 이뤘다고 말했다.
1731
2011년 02월 24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기술이 교육을 바꿀 것이라는 데는 조금 의심을 품었지만 종이 교과서는 결국 디지털 교재로 대체될 것이라는 데 뜻을 같이하며, 연 80억 달러 규모 교과서 산업을 다음 변혁 대상으로 꼽고 사물함 없이 무거운 가방을 메는 학생들의 문제를 아이패드가 풀 것이라고 말했다.
1732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실력 있는 필자들을 써서 디지털 교재를 만들어 아이패드 기능에 녹이는 구상을 세우고 피어슨 에듀케이션을 비롯한 대형 교육 출판사들과 손잡는 방안을 논의했으며, 교과서를 아이패드로 무료 제공하면 부패한 주정부 선정 절차를 피하고 세금도 아낄 수 있다고 주장했다.
1733
2011년 03월 00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이패드 2가 나왔을 때 2004년 이후 거의 바뀌지 않은 아이팟의 음악을 그대로 옮겨 담았다.
1734
2011년 03월 00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통증에 시달리면서도 현역에서 물러난 리 클라우를 다시 불러 오바마 대선 광고를 만들고 싶다며, 할 라이니가 1984년 레이건 진영에 만들어 준 '미국의 아침' 광고 같은 작업을 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1735
2011년 03월 02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병가 중이라 불참하리라는 예상을 깨고 샌프란시스코 아이패드 2 발표 무대에 올랐고, 몹시 야윈 그를 청중이 기립 박수로 맞았다.
1736
2011년 03월 02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커버와 제품을 함께 디자인했다며 새 커버를 붙인 아이패드 2로 시연을 시작했다.
1737
2011년 03월 02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기술과 인문학이 만나는 교차로를 그린 슬라이드로 마무리하며, 인문학과 결합한 기술이 애플의 DNA이고 포스트 PC 기기는 하드웨어·소프트웨어·앱이 매끄럽게 엮여야 하므로 윈도 PC나 안드로이드 같은 분산 모델로는 진짜 단순함에 이를 수 없다고 강조했다.
1738
2011년 03월 02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발표 뒤 아내 로런 파월, 아들 리드와 리드의 스탠퍼드 친구들과 포 시즌스 호텔에서 점심을 먹었다.
1739
2011년 03월 03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이튿날 혼자 전용기로 코나 빌리지에 갈 계획을 세우고, 여행용 아이패드 2에 「차이나타운」, 「본 얼티메이텀」, 「토이 스토리 3」와 10대에 처음 읽은 뒤 해마다 다시 읽어 온 『어느 요가 수행자의 자서전』 한 권만 담았다.
1740
2011년 03월 03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직접 운전하기 힘들 만큼 기력이 떨어져 차를 얻어 타고 쇼핑몰의 단골 카페에 갔고, 주치의 권고대로 단백질을 채우려 오믈렛을 주문했다.
1741
2011년 03월 03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이런 병을 앓으면 1년 넘는 계획을 세우기 어렵지만 일부러라도 몇 년을 더 살 것처럼 계획해야 한다고 말했고, 그 일환으로 호화 요트를 설계하고 있었다.
1742
2011년 03월 03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간 이식 전 가족과 배를 빌려 멕시코·남태평양·지중해를 다니던 시절을 돌아보며, 이탈리아 해안을 따라 아테네 파르테논과 터키 에페수스 유적까지 간 항해를 생애 최고의 휴가로 꼽았다.
1743
2011년 03월 03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이스탄불에서 역사학 교수를 안내인으로 고용했다가, 어디서나 같은 음료와 옷, 휴대전화를 쓰는 현지 젊은이들을 보고 애플이 터키 전용 휴대전화나 음악 플레이어를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회고했다.
1744
2011년 03월 03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 스토어처럼 바닥부터 천장까지 통유리를 낸 미니멀리즘 요트의 모형과 도면을 펼쳐 보였고, 하중을 견디는 특수 유리 설계를 애플 스토어 수석 엔지니어에게 맡겼다.
1745
2011년 03월 03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네덜란드 조선사 피드십이 요트를 건조하는 동안에도 디자인을 계속 고쳤고, 미완성 배를 아내에게 남기고 떠날 수도 있지만 작업을 멈추는 순간 죽음을 인정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1746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결혼 20주년을 며칠 앞두고 아내 로런 파월의 진가를 제때 인정하지 못한 적이 있다고 시인하며, 이기적이고 까다로운 데다 병까지 얻은 자신과 살아 준 아내를 두고 결혼을 정말 잘했다고 말했다.
1747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기념일에 두 사람이 식을 올렸던 요세미티의 아와니 호텔로 아내를 데려가는 깜짝 여행을 준비했고, 이미 예약이 찬 스위트룸을 다른 주말 숙박비를 대겠다는 제안으로 예약 손님에게서 넘겨받았다.
1748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결혼식 사진을 크게 인화해 상자에 담고 아내에게 줄 편지를 썼는데, 20년 전 서로 잘 몰랐어도 직감으로 끌렸고 눈 내린 아와니에서 식을 올린 뒤 아이들을 키우며 사랑과 존경이 깊어졌다는 내용이었다.
1749
2011년 05월 00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5월 감염과 통증으로 며칠간 입원했다.
1750
2011년 05월 00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팰러앨토 포시즌스 호텔 스위트룸에서 조지 피셔 등 스탠퍼드 의료진, 외부 자문 데이비드 에이거스, 브로드 연구소 분석진과 세 시간 동안 종양의 새 분자 정보를 검토했고, 아내 대신 아들 리드가 함께했다.
1751
2011년 05월 00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브로드 연구소 분석가가 파워포인트를 다루다 막히자 발표를 멈추고 키노트의 장점을 설명하고 직접 쓰는 법을 알려 주겠다고 했다.
1752
2011년 05월 00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의료진과 데이터를 검토해 우선할 검사를 정했고, 회의 직후 자신은 이 암을 처음으로 이겨 낸 사람이 되든지, 아니면 이 암에 목숨을 잃는 마지막 환자가 되든지 둘 중 하나일 것이라고 말했다.
1753
2011년 05월 00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30년 넘게 경쟁자이자 협력자였던 빌 게이츠의 방문을 자택에서 받아 세 시간 남짓 업계의 옛일을 함께 되짚었다.
1754
2011년 05월 00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빌 게이츠에게 연속 표적 치료를 물 위의 수련 잎을 옮겨 디디며 암보다 한발 앞서 나가는 일에 빗댔다.
1755
2011년 05월 00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컴퓨터가 학교 교육에 준 영향이 놀랄 만큼 작았다는 데 빌 게이츠와 뜻을 같이했고, 학생들이 강의는 집에서 영상으로 듣고 교실에서는 토론하는 미래 학교 구상을 들었다.
1756
2011년 05월 00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빌 게이츠로부터 그의 제품들, 그리고 1990년대 후반 위기의 애플을 다시 일으킨 일에 대해 칭찬을 받았다.
1757
2011년 05월 00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통합형과 개방형이라는 상반된 철학을 두고 개방형 모델도 효과가 있었다고 인정했고, 빌 게이츠로부터 통합형은 잡스가 지휘할 때만 잘 굴러가며 앞으로의 승리를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1758
2011년 05월 00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빌 게이츠의 분할형 모델이 정말 뛰어난 제품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는 점이 큰 약점이라고 말했다.
1759
2011년 06월 06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준비가 버거울 발표를 친한 친구들이 만류했지만 몹시 야윈 몸에 터틀넥과 캐시미어 스웨터를 겹쳐 입고 샌프란시스코 컨벤션 센터 무대에 섰다.
1760
2011년 06월 06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세계 개발자 회의(WWDC) 기조연설에서 새 서비스 아이클라우드를 공개했다.
1761
2011년 06월 06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맥 운영체제와 모바일 운영체제 시연을 필 실러와 스콧 포스톨에게 넘긴 뒤 다시 무대에 올라, 기기끼리 동기화하는 번거로움을 들어 PC를 디지털 허브로 삼았던 10여 년 전 구상이 무너졌다고 설명했다.
1762
2011년 06월 06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PC와 맥을 여러 기기 가운데 하나로 내리고 디지털 허브를 클라우드로 옮긴다고 발표하면서, 모바일미를 만든 회사를 믿겠느냐는 농담으로 지난 실패를 끌어왔다.
1763
2011년 06월 06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메일·연락처·일정·앱·사진·책·문서가 곧바로 동기화되는 시연을 선보였고, 에디 큐와 함께 음반사들과 협상해 1800만 곡을 애플 서버에 둘 권리를 확보했다.
1764
2011년 06월 07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발표 이튿날 아침 안드로이드용 음악 앱을 검토했지만 얻을 것이 없다고 판단했다며, 아이팟 판매를 늘리려고 아이튠스를 윈도용으로 내놓았던 사례를 함께 언급했다.
1765
2011년 06월 07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아침에 애플 스토어를 10년 이상 키워 온 론 존슨으로부터 J.C.페니 CEO 제안을 받아들이겠다는 이직 상의를 받았다.
1766
2011년 06월 07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팰러앨토 카페 프레슈에서 앞으로 나올 애플 제품을 이야기한 뒤, 오후에는 산타클라라의 애플·인텔 경영진 분기 회의에서 앞으로 모바일 제품에 인텔 프로세서를 채택할지 논의했다.
1767
2011년 06월 07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오클랜드 U2 공연 대신 미리 알리지 않고 쿠퍼티노 시의회에 모습을 드러내 수행원 없이 20분간 신사옥 설계를 발표하며, 우주선이 내려앉은 듯한 원형 건물로 세계 최고의 사무 건물을 짓겠다고 밝혔다.
1768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1980년대 초 애플 인사 책임자였던 앤 바우어스에게 집에 와 달라는 메일을 보냈고, 그가 찾아오자 신사옥 조감도를 펼쳐 보이며 애플이 해낸 일에 긍지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1769
0000년 00월 00일, 00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앤 바우어스에게 젊었을 때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물었고, 성급하고 까다로웠지만 비전만큼은 압도적이었다는 답을 듣고 그 여정에서 대단한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1770
2011년 07월 00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암이 뼈 등으로 퍼지고 이를 막을 표적 약을 찾기 어려워지자 출근을 멈췄고, 아내와 요트를 빌려 두었던 8월 가족 선상 여행도 취소했다.
1771
2011년 08월 00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통합형은 자신이 지휘할 때만 통한다는 빌 게이츠의 말을 전해 듣고, 통합 방식이라면 누가 맡아도 더 좋은 제품을 낼 수 있다며 자동차 회사를 예로 들어 반박했다.
1772
2011년 08월 00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세계적으로 리더십이 모자란다고 지적하며, 오바마 대통령이 남의 기분을 상하게 하기를 꺼려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는 실망을 드러냈다.
1773
2011년 08월 00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여름 내내 건강이 나빠지자 CEO로 돌아갈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몇 주에 걸쳐 아내 로런 파월, 빌 캠벨, 조니 아이브, 조지 라일리와 사임 문제를 상의했다.
1774
2011년 08월 00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을 세계 최고의 회사로 만들려면 권한 이양을 제대로 해야 한다며, 35년 동안 드라마처럼 험했던 애플의 권한 이양과 달리 올바른 본보기를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1775
2011년 08월 00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CEO 자리를 넘길 시점을 8월 24일 정기 이사회로 잡고, 직접 발표하려고 애써 음식을 먹으며 기력을 끌어올렸다.
1776
2011년 08월 23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이사회 하루 전 휠체어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남몰래 차로 본사에 간 뒤 휠체어를 타고 회의실에 들어가기로 했다.
1777
2011년 08월 24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오전 11시 직전 이사회에 도착해 팀 쿡과 CFO 피터 오펜하이머의 분기 실적 보고를 들은 뒤 개인적으로 할 말이 있다며, 30초 넘게 고민한 끝에 경영진에게 자리를 비켜 달라고 했다.
1778
2011년 08월 24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외부 이사 6명 앞에서 CEO로서 책임을 감당할 수 없게 되면 가장 먼저 알리겠다고 했는데 이제 그때가 됐다는 사임 편지를 읽고 애플 CEO에서 물러났다. 편지에는 팀 쿡을 후임 CEO로 세우고 자신은 이사회 의장으로 남고 싶다는 뜻이 담겼다.
1779
2011년 08월 24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긴 침묵 끝에 앨 고어로부터 CEO 재임 업적을 하나하나 짚는 찬사를 들었고, 미키 드렉슬러와 아트 레빈슨에게서 애플의 변모와 매끄러운 승계 준비에 대한 칭찬을 받았다.
1780
2011년 08월 24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점심 자리에서 스콧 포스톨과 필 실러가 가져온 개발 중인 제품 모형을 보며 4G 네트워크와 미래 휴대전화 기능을 캐물었고, 음성인식 앱 시연에서는 직접 전화기를 들고 날씨 등을 물어 시험했다.
1781
2011년 08월 24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HP가 태블릿 사업을 접은 데 일부 이사가 승리감을 비치자, 휼렛과 패커드가 일군 회사가 허물어지는 모습은 비극이라며 애플은 그보다 단단한 유산을 남겼으면 한다고 말했다.
1782
2011년 08월 24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떠나기 전 이사들에게 포옹을 받았고, 고위 경영진에게 물러난다는 사실을 전하고 조지 라일리의 차로 아내 로런 파월과 딸 이브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갔다.
1783
2011년 08월 24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집 뒤뜰 벌통에서 막 거둔 꿀을 한 숟가락 맛봤고, 아들 리드와 딸 에린이 그의 명예로운 퇴진을 축하하려고 부엌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1784
2011년 08월 24일, 56세 때, 스티브 잡스는 몸이 허락하는 한 신제품 개발과 마케팅처럼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겠다고 밝히며, 손수 세운 회사의 지휘권을 내려놓은 소감에는 일과 삶 모두 자신은 행운아였고 해 볼 만한 일은 모두 해 봤다고 과거형으로 답했다.

스티브 잡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