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2월 09일 월요일
김상겸 : 대한민국 400번째 메달리스트
겨울에는 국가대표 스노우보더였지만 여름에는 공사판에서 막노동으로 생계를 꾸려야했던 김상겸이 빙설에서 내내 미끄러지는 운동을 하면서도 인생에서는 끝내 미끄러지지 않았던 것은 인생의 슬픔까지도 함께 하기로 약속한 아내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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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01월 30일, 0세 때, 김상겸은 대한민국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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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7세 때, 김상겸은 봉평초등학교에 입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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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추정), 7세 때, 김상겸은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극심한 천식 증세로 인해 2주 동안 병원에 입원하며 투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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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추정), 9세 때, 김상겸은 부모님의 권유로 신체적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초등학교 3학년 시기부터 육상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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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3세 때, 김상겸은 봉평중학교 2학년 시절 교내 스노보드부가 창설되자 본격적으로 스노보드 선수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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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추정), 15세 때, 김상겸은 중학교 3학년 무렵 키 178cm의 건장한 체격을 갖추며 운동을 통해 천식을 완전히 극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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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6세 때, 김상겸은 전국동계체육대회에서 우승하며 국내 정상급 기량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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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3월, 17세 때, 김상겸은 강원도 홍천에서 열린 세계 주니어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여 크로스 64위, 평행대회전 26위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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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7세 때, 김상겸은 대한민국 주니어 스노보드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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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8세 때, 김상겸은 봉평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체육대학교 레저스포츠전공으로 진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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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2월 02일, 22세 때, 김상겸은 터키 에르주룸 동계 유니버시아드 남자 평행대회전에서 한국인 최초로 세계대회 금메달을 획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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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2월, 22세 때, 김상겸은 한국체육대학교를 졸업했으나 국내 실업팀 부재로 인해 생계와 훈련비 마련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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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3월, 22세 때, 김상겸은 실업팀 부재로 인한 생계난을 해결하기 위해 처음으로 일용직 막노동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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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2019년, 22~30세 때, 김상겸은 매년 4월 휴식기마다 건설 현장 인력 파견업체를 통해 약 20일간 일용직 노동자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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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2월 07일, 24세 때, 김상겸은 러시아 소치에서 자신의 첫 번째 올림픽인 제22회 소치 동계 올림픽에 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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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2월 19일, 25세 때, 김상겸은 소치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평행대회전에 한국 선수 최초로 출전하여 17위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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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2월 20일, 28세 때, 김상겸은 삿포로 동계 아시안게임 스노보드 회전 종목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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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8세 때, 김상겸은 훈련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즐겨 마시던 술을 완전히 끊고 자기관리를 강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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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2월 09일, 28세 때, 김상겸은 대한민국 평창에서 자신의 두 번째 올림픽인 제23회 평창 동계 올림픽에 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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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2월, 29세 때, 김상겸은 안방에서 열린 평창 동계 올림픽 스노보드 평행 대회전에서 15위를 기록하며 8강 진출에 도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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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2월 24일, 29세 때, 김상겸은 평창 동계 올림픽 스노보드 남자 평행대회전에 출전하여 15위로 경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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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9세 때, 김상겸은 평창올림픽에서 메달 획득에 실패하고 16강에서 탈락했을 때 좌절했지만 김상겸의 여자친구는 눈물 흘리는 김상겸을 보면서 우리는 평생 슬픔도 함께 할 동반자라고 느꼈고 결혼을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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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0세 때, 김상겸은 하이원 스포츠단에 입단하며 선수 생활 17년 만에 처음으로 실업팀 소속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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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0세 때, 김상겸은 하이원리조트 스노보드팀이 창단됨에 따라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전문적인 환경에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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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1세 때, 김상겸은 경기 전 출발선에서 "내가 탑이다"라고 되뇌는 자신만의 멘탈 관리법을 실전에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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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3월 01일, 32세 때, 김상겸은 슬로베니아 로글라 세계선수권대회 평행대회전에서 4위에 오르며 한국 스키 역사상 최고 성적 타이를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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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5월 22일, 31세 때, 김상겸은 아내와 결혼하여 가정을 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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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2세 때, 김상겸은 세계선수권대회 4위 달성 이후 더 나은 성적을 위해 좋아하던 술을 끊는 등 철저한 자기 관리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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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32세 때, 김상겸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지난 8년간의 일용직 생활과 끊임없는 도전 과정을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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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2월 08일, 32세 때, 김상겸은 중국 베이징에서 자신의 세 번째 올림픽인 제24회 베이징 동계 올림픽 스노보드 평행대회전에 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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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2월, 33세 때, 김상겸은 베이징 동계 올림픽 스노보드 평행 대회전에서 24위에 머무르며 세 번째 올림픽 도전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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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30일, 35세 때, 김상겸은 중국 메이린 FIS 월드컵 평행대회전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며 생애 첫 월드컵 시상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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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3월, 36세 때, 김상겸은 폴란드 크르니차 FIS 월드컵에서 동메달을 추가하며 세계 정상급 기량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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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3월, 36세 때, 김상겸은 세계선수권대회에 통산 9번째로 참가하며 한국 스노보드의 베테랑으로서 입지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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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하반기(추정), 36세 때, 김상겸은 밀라노-코르티나 대회를 앞두고 고속 주행 안정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195cm의 독일제 커스텀 보드를 도입하는 전략적 승부수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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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1월 31일, 37세 때, 김상겸은 올림픽 직전 마지막 월드컵에서 팀 동료 이상호의 우승을 지켜보며 동기부여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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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2월 08일, 37세 때, 김상겸은 이탈리아 리비뇨 스노파크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 동계 올림픽 스노보드 남자 평행대회전 예선 1차전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이면서 8위를 기록하며 16강에 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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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2월 08일, 37세 때, 김상겸은 16강전에서 슬로베니아의 얀 코시르를 상대로 승리하며 8강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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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2월 08일, 37세 때, 김상겸은 8강전에서 세계 랭킹 1위이자 개최국 영웅인 이탈리아의 롤란드 피슈날러를 꺾는 파란을 일으키며 준결승에 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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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2월 08일, 37세 때, 김상겸은 준결승전에서 불가리아의 테르벨 잠피로프를 0.23초 차로 제치고 결승 진출을 확정하며 환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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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2월 08일, 37세 때, 김상겸은 결승전에서 오스트리아의 베냐민 카를을 상대로 초반 우세를 점했으나 중반 역전을 허용하며 0.19초 차로 은메달을 획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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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2월 08일, 37세 때, 김상겸은 한국 선수단의 이번 대회 첫 메달이자 역대 하계·동계 올림픽 통산 400번째 메달을 따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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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2월 08일, 37세 때, 김상겸은 이상호(2018 평창 은메달)에 이어 한국 스노보드 역사상 두 번째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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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2월 08일, 37세 때, 김상겸은 이탈리아 리비뇨 현지에서 열린 시상식에 참석하여 은메달을 목에 걸고 네 번째 도전 끝에 결실을 본 기쁨을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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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2월 08일, 37세 때, 김상겸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며 2034년 올림픽까지 도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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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2월 08일, 37세 때, 김상겸은 대한민국 올림픽 역사상 통산 400번째 메달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리면서 시상대에서 고국 팬들을 향해 큰절 세리머니를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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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2월 09일, 36세 때, 김상겸은 시상식 직후 인터뷰에서 아내와 가족, 반려 동물을 떠올리며 감사의 소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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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2월 09일, 36세 때, 김상겸은 오랫동안 함께 훈련해 온 동생 이상호 선수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팀 시너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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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2월 09일, 36세 때, 김상겸은 스노보드는 자신의 인생이며 앞으로도 꾸준히 도전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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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2월 09일, 36세 때, 김상겸의 아내는 인스타그램에 남편 김상겸에 대해 “오빠는 늘 지킬 수 있는 말만 하는 사람이다”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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