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09일 일요일
젠슨 황 : 진격의 반도체 거인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은 왜 일평생 앞만 보고 일직선으로 달려왔을까요?(젠슨 황의 적들은 아직 추월하지도 가로막지도 방해하지도 못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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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 CEO 젠슨 황이, 미국 켄터키 애팔라치아 산맥 어귀 백인들만 모여 사는 마을 오네이다의 유일한 중국계 소년으로서 오직 살아남기 위해서 화장실 청소와 팔굽혀펴기와 브루스 리 흉내와 테이블 테니스로 세상과 싸우게 만든 사람은 아메리칸 드림을 꿈꿨지만 아메리칸 리얼리티는 몰랐던 아버지 황싱타이였고, 데니스에서 접시닦이 알바를 하라고 소개해줬던 사람은 친형 제프 황이었고, 끝까지 창업을 반대했던 사람은 어머니 러차이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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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건 주립대학교 전기공학과에 함께 입학했던 사람은 알로하 고등학교 절친 딘 베르하이덴이었고, 공학 수업에서 기술의 나무가 아니라 산업의 숲을 봐야 한다고 걸 배우게 해준 사람은 오리건 주립대학교 교수 도널드 아모트였고, AMD가 주최한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청혼을 하고 함께 밤새 드라이브를 하다가 사고가 나면서 함께 사선을 넘고 평생을 함께 하게 된 사람은 아내 로리 밀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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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워크스테이션 그래픽 카드인 썬GX를 성공시키자 함께 PC 게임용 그래픽 카드 설계 회사 엔비디아를 공동창업해서 CEO를 맡아달라고 먼저 제안한 사람은 고객사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의 개발자들이었던 커티스 프레임과 크리스 말라초스키였고, 투자자인 세콰이어 캐피털과 서터 힐 벤처스를 소개해준 사람은 상사였던 LSI로직 창업자 월프 코리건이었고, 엔비디아를 성공시키려면 그래픽 카드 시장만 보지 말고 그래픽 카드의 수요를 일으키는 EA와 같은 게임 회사를 보라고 가르쳐주면서 TSMC에 위탁 생산을 맡기라고 조언해준 사람은 세콰이어 캐피털의 돈 발렌타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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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의 첫 제품인 NV1이 처참하게 실패하자 NV2 개발을 포기하고 NV3에 올인하기 위해 밀어내야 했던 사람은 공동창업자인 CTO 커티스 프리엠이었고, NV3를 시제품도 없이 설계하기 위해 시뮬레이션 에뮬레이터를 사려고 할 때 100만 달러를 융통해줬던 사람은 세가 CEO 소이치로 이리마지리였고, 대세 게임 ‘퀘이크’를 완벽하게 지원하기 위해선 래리 엘리슨도 실패했던 병렬 컴퓨팅을 적용해야 한다는 해법을 제시했던 사람은 커티스 프리엠 대신 리바128을 설계해서 성공시킨 엔비디아 수석과학자 데이비드 커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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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렬 컴퓨팅을 최초로 적용한 리바TNT의 위탁 생산을 맡겨서 기술 경쟁력과 가격 경쟁력을 모두 갖추게 도와준 사람은 대만 TSMC의 창업자 모리스 창이었고, 엔비디아 개발팀을 3개로 나눠서 6개월마다 신제품을 출시하는 속도전과 프리미엄 제품과 저가 제품을 동시에 출시하는 가격 전략으로 결국 무너뜨린 사람은 한때 엔비디아를 망할 뻔 하게 만들었던 3dfx의 창업자 로스 스미스와 CEO 알렉스 레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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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의 CPU와는 차별화되는 GPU라는 새로운 제품 카테고리를 재정의할 수 있도록 GPU라는 이름을 지어준 사람은 엔비디아 마케팅팀의 마이클 하라와 댄 비볼리였고, MS와 애플로부터 갑질을 당할 때 엔비디아 GPU를 해킹해서 셀프 메이드 병렬 컴퓨터를 만들면서 을의 반란 가능성을 보여준 사람은 이안 벅이었고, 아예 엔비디아 GPU를 병렬 컴퓨터로 쓸 수 있게 해주는 소프트웨어인 쿠다를 개발하게 이끈 사람은 존 니콜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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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용 GPU를 게이머용 그래픽 카드와 연구자용 병렬 컴퓨팅으로 모두 활용할 수 있게 이중화 설계를 해서 게이머들한텐 ‘황사장’이라고 불리고 있을 때 세상을 떠난 존 니콜스와 번아웃이 온 데이비드 커크 대신 병렬 컴퓨팅 개발 총괄을 맡은 사람은 빌 댈리였고, GPU 병렬 컴퓨팅의 시장을 찾지 못해서 행동주의 펀드한테 끌려다니면서 헤매고 있을 때 인공신경망 연구에 쓰일 수 있다는 걸 알아낸 사람은 변두리 컴퓨터 공학과 교수 제프리 힌튼이었고, GPU를 활용한 머신러닝이야 말로 일생일대 기회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사람은 제프리 힌튼이 창업한 DNN리서치를 지원하는 쿠다인 cuDNN을 홀로 개발한 엔비디아 개발자 브라이언 카탄자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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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C2014에서 엔비디아는 AI 기업이라고 선언하면서 처음으로 시그너처인 가죽 자켓을 입도록 스타일링한 사람은 LVMH에서 일하던 딸 메디슨 황이었고, GTC2015의 백스테이지에서 최첨단 인공지능 토론을 벌였던 사람은 오픈AI 창업자 일론 머스크였고, 엔비디아를 자신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직할 조직으로 재조직할 수 있도록 엔비디아 신사옥인 엔데버를 설계해준 사람은 건축가 하오 코였고, GPU 데이터센터의 초격차 기술인 인피니 밴드를 확보할 수 있게 멜라녹스를 흔들어준 사람은 한때는 엔비디아를 흔들었던 행동주의 펀드 스타보드 벨류의 CIO 제프 스미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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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판데믹으로 재택 근무를 하면서 엔비디아 전 직원에게 매주 주요 업무 5개를 이메일로 보내달라고 요구했을 때 오픈AI에서 1000개의 GPU로 GPT를 훈련시키고 있다는 것이 이메일을 통해 알려진 사람은 오픈AI의 수석과학자 일리야 수츠케버였고, TSMC의 모리스 창과 함께 조 바이든과 낸시 펠로시의 엔비디아 반도체 대중 수출 규제를 비판하면서 중국향 H20을 출시했을 때 대만 통일을 선언하고 중국 안후이성에 데이터 아일랜드를 조성하기 시작한 사람은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이었고, 지피티 모먼트 직후 AI 머신러닝에 특화된 그레이스 CPU와 호퍼 아키텍처를 선보였을 때 HBM 메모리를 공급하면서 엔비디아의 새로운 파트너로 등장한 사람은 SK하이닉스 회장 최태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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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라고에도 찾아가지 않고 백악관 취임식에도 가지 않고 베이징에서 중국 영업에 몰두하고 있을 때 딥시크 쇼크로 엔비디아가 필요 없는 AI 개발의 가능성을 입증한 사람은 딥시크 CEO 량원펑이었고, 피지컬AI 시장까지 선점하기 위해 로봇들과 무대에 섰을 때 엔비디아 GPU를 대신할 오픈AI GPU를 개발하려고 도널드 트럼프와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띄우고 한국과 대만을 오가다가 결국 엔비디아와 AMD로부터 모두 투자를 이끌어낸 사람은 샘 올트만이었고,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엔비디아 수출 규제를 풀기 위해서 도널드 트럼프와 딜을 거의 성공시켰을 때 막판에 가로막은 사람은 중국 매파 상무장관 하워드 러트닉이었고, 그렇게 꼬인 대중 엔비디아 수출 규제를 우회할 깐부가 돼 준 사람들은 삼성전자 회장 이재용과 현대차그룹 회장 정의선 그리고 대한민국 대통령 이재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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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2월 17일, 0세 때, 젠슨 황은 대만 수도 타이베이에서 아버지 황싱타이와 어머니 러차이슈 사이에서 3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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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젠슨 황의 아버지 황싱타이는 고향인 대만 남부 도시 타이난의 명문대 국립성공대학교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에어컨 제조사 캐리어의 대만지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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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젠슨 황의 어머니 러차이슈는 대만 남부 타이난 지역에서 기계회사와 시멘트회사를 운영하는 명가문의 막내딸이었지만 어릴 적부터 집안과는 교류가 없이 자란 탓에 결국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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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4세 때, 젠슨 황은 부모형제와 함께 대만의 야시장에 놀러갔다가 식당 주인의 실수 때문에 식칼에 뺨을 베였고 희미한 흉터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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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5세 때, 젠슨 황은 아버지 황싱타이가 캐리어 대만지사에서 태국의 정유회사로 이직하면서 온 가족과 함께 태국 방콕으로 이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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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추정=1969년, 6세 때, 젠슨 황은 아버지 황싱타이가 캐리어의 직원 연수 프로그램으로 미국 뉴욕 맨해튼을 방문할 때 따라갔고, 아버지 황싱타이는 미국 교육 이민을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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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추정-1970년, 8세 때, 젠슨 황은 어머니 러차이슈로부터 형제들과 함께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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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추정=1970년, 8세 때, 젠슨 황은 어머니 러차이슈는 영어를 전혀 할 줄 몰랐기 때문에 매일 영어 단어를 10개 씩 외우는 식으로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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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추정=1971년, 9세 때, 젠슨 황은 정식으로 영어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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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10월, 10세 때, 젠슨 황은 태국에서 1957년부터 장기 집권해온 싸린 군사 정권에 저항하는 민주화 시위가 심각해지자 아버지 황싱타이에 의해 친형 제프 황과 함께 미국 워싱턴주 타코마에 있는 외삼촌댁으로 보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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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10세 때, 젠슨 황은 친형 제프 황과 함께 외삼촌 댁에서 어린 남자 형제들이 칠 법한 온갖 사고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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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말, 10세 때, 젠슨 황은 미국에 이민 온지 얼마 안 돼서 경제적으로도 어렵고 미국 사정에도 어두웠던 외삼촌에 의해 친형 제프 황과 함께 켄터키주 애팔래치아 산맥 어귀 인구 300명의 마을 오네이다로 보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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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말, 10세 때, 젠슨 황은 외삼촌으로부터 오네이다 침례교 기숙학교가 저렴한 보딩스쿨이라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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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말, 10세 때, 젠슨 황은 친형 제프 황과 함께 오네이다 침례교 기숙학교에 입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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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말, 10세 때, 젠슨 황은 나이가 어려서 오네이다 침례교 기숙학교의 초등 과정에 입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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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말, 10세 때, 젠슨 황은 입학한 이후에야 오네이다 침례교 기숙학교가 실제로는 다른 학교에서 입학을 거부 당한 청소년들에게 마지막 교육 기회를 주는 교화 학교라는 사실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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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말, 10세 때, 젠슨 황은 친형 제프 황과 자신이 인구 300명의 마을 오네이다에서 온 최초의 중국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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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11세 때, 젠슨 황은 오네이다 침례교 기숙학교의 기숙사에서 지내기 시작한 첫날 밤에 교도소에서 막 출소한 17세 룸메이트와 처음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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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11세 때, 젠슨 황은 17세 룸메이트가 온 몸에 칼자국을 보여주면서 위협하자 당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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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11세 때, 젠슨 황은 17세 룸메이트에게 수학을 가르쳐주고 대신 벤치프레스를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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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11세 때, 젠슨 황은 매일 밤 100개 씩 팔굽혀펴기를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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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11세 때, 젠슨 황은 황젠쉰이었던 중국식 이름을 젠슨 황이라는 미국식 이름으로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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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11세 때, 젠슨 황은 베트남전 참전 군인들의 자녀들이 상당수인 오네이다 침례교 초등학교의 백인 동기생들로부터 인종차별적 괴롭힘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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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11세 때, 오네이다 침례교 초등학교 6학년 젠슨 황은 아침마다 집에서 학교까지 위태로운 출렁다리를 건너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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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11세 대, 젠슨 황은 자신이 출렁다리를 건널 때마다 양쪽에서 다리를 흔들어서 떨어뜨리려고 하는 백인 아이들에 맞서서 오히려 즐겁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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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11세 때, 젠슨 황은 스스로를 지키지 위해서 미국에서도 유명했던 홍콩 영화 배우 브루스 리처럼 자신도 무술을 잘 한다고 거짓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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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11세 때, 젠슨 황은 키가 작았지만 덩치가 큰 백인 아이들이 시비를 걸면 항상 맞서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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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봄, 11세 때, 젠슨 황은 학업 성적이 우수한 학생으로 뽑히면서 은화를 상으로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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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여름, 11세 때, 젠슨 황은 오네이다 침례교 기숙학교에서 기숙사 화장실을 청소하면서 학비를 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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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여름, 11세 때, 젠슨 황은 오네이다 침례교 기숙학교에서 낫으로 학교 교정의 잡초를 베는 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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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가을, 11세 때, 젠슨 황은 싸움을 잘 하는 룸메이트와 친해졌고 결국 오네이다 침례교 기숙학교에 완전히 적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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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11세 때, 젠슨 황은 오네이다 침례교 기숙학교에서 탁구를 즐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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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12세 때, 젠슨 황은 아버지 황싱타이가 미국에서 직장을 구하고 어머니와 함께 미국 이민을 오면서 켄터키주 오네이다를 떠나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부모와 재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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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13세 때, 젠슨 황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위치한 알로하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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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13세 때, 젠슨 황은 알로하 고등학교에서 컴퓨터 동아리와 수학 동아리와 과학 동아리에서 활동했고 자신과 같은 너드 친구들과 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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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13세 때, 젠슨 황은 애플II 컴퓨터가 있는 학교에서 ‘스타트렉’과 ‘갤럭시안’과 ‘센티피드’와 같은 비디오 게임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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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14세 때, 젠슨 황은 알로하 고등학교가 구매한 개인용 컴퓨터인 애플II에 빠져서 ‘스네이크 게임’을 직접 베이직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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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여름, 14세 때, 젠슨 황은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있는 탁구 클럽 패들 팰리스에서 본격적으로 탁구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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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14세 때, 젠슨 황은 탁구 클럽 ‘패들 팰리스’의 사장 루 보첸스키의 도움으로 스포츠 매거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에 탁구 유망주로 소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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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14세 때, 젠슨 황은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전미 탁구 대회에 참가했지만 화려한 거리에 매료된 나머지 밤새 길거리를 쏘다녔고 결국 결승전에서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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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15세 때, 젠슨 황은 탁구 클럽 패들 팰리스에서 먹고 자면서 탁구 연습을 했고, 포앤드 드라이브를 필살기로 익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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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15세 때, 젠슨 황은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16세 이하 US 오픈 복식 결승전에 진출했고, 3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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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15세 때, 젠슨 황은 컴퓨터 게임과 탁구 시합에 몰두하면서 끝내 이길 때까지 지고 또 지면서 배우면 된다는 게임적 사고 방식을 내면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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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15세 때, 젠슨 황은 형 제프 황의 소개로 포틀랜드에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 데니스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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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6세 때, 젠슨 황은 패스트푸드 체인 데니스에서 접시닦이로 일하기 시작해서 결국 가장 바쁜 시간에 손님들을 맞이해야 하는 레스토랑 서버까지 승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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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6세 때, 젠슨 황은 데니스에서 일하면서 동시에 다양한 미국 음식을 즐기게 됐고 그 중에서도 데니스의 대표 메뉴인 ‘슈퍼 버드’를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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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6세 때, 젠슨 황은 친형제들인 형 제프 황과 동생 짐 황보다도 운동과 공부 모두에서 뛰어났고, 결국 한 학년을 월반한 끝에 장학재단 ‘내셔널 아너 소사이어티’의 장학생으로 선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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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17세 때, 젠슨 황은 미국 동서부의 명문대에 입학해서 집을 떠날 수 있었지만 오히려 집에서 90분 거리에 있는 가까운 오리건 주립대학교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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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17세 때, 젠슨 황은 알로하 고등학교 단짝 친구였던 딘 베르하이덴을 따라 등록금이 낮은 오리건 주립대학교에 진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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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17세 때, 젠슨 황은 원래 컴퓨터 공학과에 가고 싶었지만 오리곤 주립대학교엔 컴퓨터 공학과가 없어서 대신 전기공학과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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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17세 때, 젠슨 황은 소프트웨어 코딩 중심인 컴퓨터 공학과 대신 하드웨어 설계 중심인 전기공학과를 선택하게 되면서, 반도체 설계자로서의 경력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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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17세 때, 오리곤 주립대학교 전자공학과 1학년 젠슨 황은 오리건 주립대학교 전기공학과 연구실에서 전기공학과에 3명 밖에 없었던 여학생 중 한 명이었던 연상의 동기생 로리 밀스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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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17세 때, 젠슨 황은 로라 밀스와 데이트를 하기 위해 숙제를 함께 하자고 제안했고, 자신과 숙제를 함께 하면 A학점을 받을 수 있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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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17세 때, 젠슨 황은 6개월 동안 로라 밀스와 함께 트랜지스터 조립 실험을 하다가 사랑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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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17세 때, 젠슨 황은 로라 밀스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고, 로라 밀스는 젠슨 황의 데이트 신청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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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나이추정=1981년, 18세 때, 오리곤 주립대학교 전자공학과 2학년 젠슨 황은 오리곤의 기술 기업인 테크트로닉 인더스트리에 인텁쉽 신청을 했지만 거절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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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나이추정=1981년, 18세 때, 젠슨 황은 오리건 주립대학교 교수 도널드 아모트의 공학 수업을 수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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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나이추정=1981년, 18세 때, 젠슨 황은 도널드 아모트가 수치를 반올림해서 전체 수업의 논의 속도를 높이는 것을 보고 처음엔 거슬렸지만, 나중엔 그것이 나무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고 숲을 보는 방법일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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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19세 때, 젠슨 황은 오리건 주립대학교 전기공학과를 최고 성적으로 조기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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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19세 때, 젠슨 황은 텍사스 인스트루먼츠에 입사하려고 했지만 면접을 망치는 바람에 낙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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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19세 때, 젠슨 황은 AMD와 LSI로직에 지원했고 두 회사 모두로부터 합격 통보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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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20세 때, 젠슨 황은 LSI로직보다 상대적으로 더 유명했던 AMD를 선택했고, 초봉으로 연봉 2만8700만 달러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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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20세 때, 젠슨 황은 여자친구 로리 밀스의 아버지와 가족처럼 지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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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 추정=1983년, 젠슨 황의 동생 짐 황은 형과 마찬가지로 오리건 주립대학교 전기공학과에 입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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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12월 말, 21세 때, 젠슨 황은 AMD가 샌프란시스코 모스코니 센터에서 직원들을 위해 개최한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22세 여자친구 로리 밀스에게 청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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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12월 말, 22세 때, 로리 밀스는 젠슨 황의 청혼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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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12월 말, 21세 때, 젠슨 황은 약혼녀 로리 밀스를 자신의 스포츠카 도요타 수프라에 태우고 캘리포니아에서 오리건까지 밤새 9시간 동안 운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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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12월 말 이른 아침, 21세 때, 젠슨 황은 밤새 운전을 하다가 산 길의 블랙아이스 때문에 미끄러졌고, 결국 약혼녀 로리 밀스와 함께 도로 밖 경사지로 굴러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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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12월 말, 21세 때, 젠슨 황은 약혼녀 로리 밀스와 구조대가 도착할 때까지 전복된 차 안에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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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12월 말, 21세 때, 젠슨 황은 자동차 사고로 목이 다쳤고 응급 봉합 수술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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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12월 말, 22세 때, 로리 밀스는 자동차 사고로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82
1985년, 22세 때, 젠슨 황은 23세 약혼녀 로라 밀스와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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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22세 때, AMD 마이크로프로세서 설계자 젠슨 황은 AMD에서 종이에 마이크로칩 설계도를 직접 그려서 포토마스크로 만드는 업무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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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22세 때, 대만어인 호키엔과 영어를 구사했던 젠슨 황은 AMD 포토마스크 제작 담당인 중국인들로부터 중국 본토어인 만다린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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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22세 때, AMD 직원 젠슨 황은 자사주 구매 프로그램을 통해 AMD 주식을 사들였다.
86
1985년, 22세 때, 젠슨 황은 AMD에서 1983년 나스닥에 상장된 LSI로직으로 이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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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22세 때, 젠슨 황은 LSI로직에서 오전 7시부터 오후 9시까지 일하면서, 대규모 집적 회로를 자동으로 설계하는 마이크로프로세서 설계툴을 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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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22세 때, 젠슨 황은 LSI로직에서 집적 회로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기능을 마이크로프로세서 설계에 구현할 방법을 연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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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22세 때, 로리 밀스는 오리컨 주립대학교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뒤 그래픽 카드 설계회사 실리콘 그래픽스에 입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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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22세 때, 아내 로리 밀스가 남편 젠슨 황보다 수입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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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22세 때, 젠슨 황은 스탠포드 대학교 전기공학과의 야간 석사 과정에 입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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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 추정=1985년, 22세 때, 젠슨 황은 로리 밀스와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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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23세 때, 젠슨 황은 하드웨어의 기술적 한계는 모르면서 소프트웨어 성능 요구만 하는 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 고객들을 상대하면서, 시장이 필요로 하는 그래픽 카드의 기능이 무엇인지 파악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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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나이 추정=1986년, 23세 때, 젠슨 황은 LSI로직의 업무가 너무 바빠서 스탠포드 대학교 전기공학과 석사 과정에 휴학계를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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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나이 추정=1986년, 23세 때, 젠슨 황은 LSI 로직에서 엔지니어링 부서와 마케팅 부서와 일반 관리 부서를 두루 거치면서 매니지먼트 경험을 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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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25세 때, 젠슨 황은 26세 아내 로리 밀스와 함께 캘리포니아 산호세 동쪽의 2층 주택으로 이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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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25세 때, 젠슨 황은 반려견 ‘스시’를 입양해서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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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젠슨 황과 로리 밀스 부부는 하루 종일 일하고 월급의 대부분은 저축하고 소비는 거의. 하지 않는 성실함의 대명사 같은 부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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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50세 때, LSI로직의 CEO 월프 코리건(Wilfred J. Corrigan)은 주요 고객인 썬 마이크로시스템의 칩 설계자들인 크리스 말라초스키와 커티스 프리엠을 만족시키기 위해 LSI로직의 에이스 직원은 젠슨 황을 담당자로 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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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25세 때, LSI로직 매니저 젠슨 황은 과학자들을 위한 그래픽 워크스테이션 컴퓨터를 제작하는 썬 마이크로시스템의 칩 설계자들인 크리스 말라초스키와 커티스 프리엠과 일하기 시작했다.
101
1988년, 25세 때, 조직적인 젠슨 황은 창의적인 커티스 프리엠이 아이디어를 내고 현실적인 크리스 말라초스키가 추진한 새로운 컴퓨터 그래픽 가속 장치 개발을 돕기 시작했다.
102
1989년, 26세 때, LSI로직 매니저 젠슨 황은 썬 마이크로시스템의 칩 설계자 크리스 말라초스키와 커티스 프리엠과 함께 산업용 3D 그래픽 워크스테이션인 썬GX를 함께 만들어서 성공시켰다.
103
1989년, 26세 때, LSI로직 매니저 젠슨 황은 썬GX를 성공시키면서 LSI로직의 창업자 월프 코리건에 의해 시스템 온 칩 설계 플랫폼의 총괄 운영 책임자로 임명됐다.
104
연도나이 추정=1990년, 27세 때, LSI로직 시스템 온 칩 설계 플랫폼의 총괄 운영 책임자 젠슨 황은 연간 2억50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105
연도나이 추정=1990년, 27세 때, LSI로직 시스템 온 칩 설계 플랫폼의 총괄 운영 책임자 젠슨 황은 고객들에게는 약속을 잘 지키고 직원들에겐 리더쉽이 있는 상사로 평가 받았다.
106
1990년, 27세 때, 젠슨 황은 아내 로리 밀스와의 사이에서 아들 스펜서 황을 낳았다.
107
연도추정=1990년,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의 칩 설계자 커티스 프리엠과 크리스 말라초스키는 프리미엄 전문가용 썬GX를 저렴한 PC 비디오게임용 버전으로 만들자고 썬 마이크로시스템즈 임원들에게 제안했지만 거절 당했다.
108
연도추정=1990년,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의 칩 설계자 커티스 프리엠과 크리스 말라초스키는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의 창업자 엔디 벡톨샤임과는 가깝지 않았고, 오히려 엔디 백톨샤임의 신임을 얻은 경쟁자들 때문에 사내 정치에 연루됐다.
109
연도추정=1991년,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의 칩 설계자 커티스 프리엠과 크리스 말라초스키는 썬 마이크로시스템즈가 비디오게임용 그래픽 카드를 만들자는 자신들의 제안을 알아주지 않자, 퇴사해서 스타트업을 창업하기로 결심했다.
110
1991년, 28세 때, 젠슨 황은 아내 로리 밀스와의 사이에서 딸 매디슨 황을 낳았다.
111
1991년, 29세 때, 스펜스 황과 매니슨 황의 어머니 로리 밀스는 남편 젠슨 황과의 의논 끝에 두 자녀의 양육을 위해 전업 주부가 됐다.
112
1991년, 28세 때, 젠슨 황은 뛰어난 엔지니어였던 로리 밀스에게 직장을 그만 두고 전업 주부가 돼 달라고 부탁했던 것에 대해서 미안함을 느꼈다.
113
1992년, 29세 때, 젠슨 황은 스탠포드 대학원 전기공학 석사 학위를 8년 만에 취득했다.
114
1992년, 29세 때, 젠슨 황은 LSI 로직에서 일하는 8년 동안 그래픽 카드의 컴퓨팅 파워를 가속화한다는 사업 아이디어와 조직 운영 경험 그리고 학문적 이론적 전문성을 갖췄다.
115
1992년, 29세 때, 젠슨 황은 크리스 말라초스키에게 30세가 되면 경영자가 돼보고 싶다고 말했다.
116
1992년, 커티스 프리엠과 크리스 말라초스키는 썬 마이크로시스템즈를 떠나서 게임용 컴퓨터 그래픽 카드를 설계하는 스타트업을 창업하기로 결심했고, 젠슨 황에게 CEO를 맡아달라고 제안했다.
117
1992년, 29세 때, 젠슨 황은 커티스 프리엠과 크리스 말라초스키가 서로 의견 충돌이 잦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함께 스타트업을 창업하자는 제안을 거절했다.
118
1992년, 29세 때, 젠슨 황은 외벌이 가장으로서 아내와 두 아이를 책임지면서 주택대출을 갚아야했다.
119
1992년, 29세 때, 젠슨 황은 크리스 말라초스키와 커티스 프리엠이 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에서 사내 정치 문제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120
1992년, 29세 때, LSI로직 시스템 온 칩 설계 플랫폼의 총괄 운영 책임자 젠슨 황은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상사를 불편해하는 백인 엔지니어들과 갈등을 빚었다.
121
1992년, 29세 때, 젠슨 황은 LSI로직의 창업자 월프 코리건이 인텔 출신 임원을 자신과 함께 공동 임원으로 임명하자, 퇴사를 고려하기 시작했다.
122
1992년, 29세 때, 젠슨 황은 커티스 프리엠과 크리스 말라초스키와 함께 PC 게임용 그래픽 카드를 설계하는 하드웨어 스타트업 창업을 고려하면서 사전 시장 조사를 했다.
123
1992년, 29세 때, 젠슨 황은 크리스 말라초스키와 커티스 프리엠을 통해 썬 마이크로시스템즈는 PC 게임용 그래픽 카드 시장에 진출하지 않기로 했다는 정보를 확인했다.
124
1992년, 29세 때, 젠슨 황은 아내 로리 밀스로부터 실리콘 그래픽스 역시 영화 ‘쥬라기 공원’ 컴퓨터 애니메이션 작업에 집중하느라 PC 게임용 그래픽 카드 시장에 진출하지 않기로 했다는 정보를 확인했다.
125
1992년, 29세 때, 젠슨 황은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와 실리콘 그래픽스가 진출하지 않기로 결정한 PC 게임용 그래픽 카드 시장에 이미 35개 이상의 군소 스타트업들이 난립해서 경쟁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126
1992년, 29세 때, 젠슨 황은 컴퓨터 그래픽 분야 전문가 존 페디(Jon Peddie)에게 연락해서 시장 분위기를 물었고, 존 페디는 젠슨 황에게 이미 너무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창업을 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127
1992년 11월 26일 목요일 추수감사절, 29세 때, 젠슨 황은 산호세에 있는 햄버거 체인점 데니스에서 크리스 말라초스키와 커티스 프리엠과 함께 데니스의 대표 메뉴인 슈퍼버드를 먹었다.
128
1992년 11월 26일 목요일 추수감사절, 29세 때, 젠슨 황은 커티스 프리엠과 크리스 말라초스키와 산호세 데니스에서 만나서 함께 마이크로소프트가 1992년 4월 출시한 윈도우 3.1에 관해 토론했다.
129
1992년 11월 26일 목요일 추수감사절, 29세 때, 젠슨 황은 MS의 윈도우 3.1과 IBM의 VGA의 결합으로 퍼스털 컴퓨터 시장에 그래픽 기술 표준이 마련됐다고 분석했다.
130
1992년 11월 26일 목요일 추수감사절, 29세 때, 젠슨 황은 CPU가 그래픽 데이터까지 모두 처리하는 것은 곧 한계에 부딪힐 것이라고 분석했다.
131
1992년 11월 26일 목요일 추수감사절, 33세 때, 크리스 말라초스키는 젠슨 황에게 “고속 이미지 랜더링을 실현시켜주는 그래픽 전용칩이 필요한 시대가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132
1992년, 11월 26일 목요일 추수감사절, 29세 때, 젠슨 황은 “우리가 그걸 만들자”고 결론내렸다.
133
1992년 11월 26일 목요일 추수감사절, 29세 때, 젠슨 황은 매년 최소 5000만 달러의 매출을 달성해야 지속할 수 있다는 사업계획서를 냅킨에 써서 커티스 프리엠과 크리스 말라초스키한테 보여줬다.
134
1992년 11월 26일 목요일 추수감사절, 29세 때, 젠슨 황은 데니스의 장당 65원 짜리 냅킨 위에 “PC용 그래픽 가속 장치”라는 창업 아이디어를 적었다.
135
1992년 12월, 33세 때, 커티스 프리엠은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에 1992년 12월 31일부로 사표를 제출했고 그냥 혼자서 스타트업을 창업해버렸다.
136
1993년 초, 34세 때, 커티스 프리엠은 크리스 말라초스키와 젠슨 황이 각각 사표를 내길 기다리다가 CPU를 설계하던 다른 회사의 입사 제안을 받았고, 흔들렸지만 결국 거절했다.
137
1993년 초, 34세 때, 크리스 말라초스키는 아내 멜로디 말라초스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커티스 프리엠을 따라 썬 마이크로시스템즈를 떠나서 창업을 하기로 결심했고, 1993년 3월 초까지 인수인계에 들어갔다.
138
1993년 초, 34세 때, 크리스 말라초스키는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의 상사에게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의 워크스테이션을 갖고 퇴사해도 되는지 문의했고, 허락을 받았다.
139
1993년 초, 30세 때, 젠슨 황은 아내 로리 황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커티스 프리엠과 크리스 말라초스키를 따라 LSI로직에 사표를 제출하기로 했고, 인수인계를 시작했다.
140
1993년 초, 30세 때, 젠슨 황은 LSI로직의 CEO 월프 코리건에게 사표를 내면서 그래픽 카드의 시장 전망을 설명했고, 월프 코리건은 자신도 투자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141
1993년 초, 젠슨 황과 크리스 말라초스키와 커티스 프리엠은 또 다시 CPU 설계 회사의 합류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했고, 원래 계획대로 창업을 하기로 결정했다.
142
1993년 초, 젠슨 황과 크리스 말라초스키와 커티스 프리엠은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의 주차장에서 신제품의 이름을 세 사람이 함께 성공시켰던 썬GX를 따서 GXNV로 짓자고 결정했다.
143
1993년 초, 30세 때, 젠슨 황은 신제품의 이름을 GXNV에서 GX를 빼고 NV로 정했다.
144
1993년, 30세 때, 젠슨 황은 커티스 프리엠과 크리시 말라초스키와 함께 첫 번째 칩 설계를 준비하면서 관련된 데이터를 넥스트 버전의 약자를 써서 dot-NV라는 파일명으로 저장했다.
145
1993년, 35세 때, 커티프 프리엠은 크리스 말라초스키에게 NV의 숨은 뜻은 경쟁자들이 질투하게 만든다는 뜻의 ENVY라고 농담했다.
146
1993년, 30세 때, 젠슨 황은 팔로알토의 변호사 짐 게이터의 사무실에서 법인 설립을 했다.
147
1993년, 30세 때, 젠슨 황은 팔로알토의 변호사 짐 게이터가 회사 이름을 임시로 New Venture의 약자인 NV라고 쓰자, 우연의 일치라고 느꼈다.
148
1993년, 35세 때, 커티스 프리엠은 NV라는 단어가 들어간 단어를 사전에서 찾은 끝에 엔비전(Nvision)이라는 단어를 골랐지만, 이미 재활용 화장지를 생산하는 회사의 이름이었다.
149
1993년, 커티스 프리엠과 크리스 말라초스키는 두 사람의 이름을 합한 프라이멀 그래픽라는 회사명을 제안했지만 젠슨 황의 이름이 빠져서 탈락했다.
150
1993년, 30세 때, 젠슨 황은 회사명을 라틴어에서 질투를 뜻하는 인비디아(invidia)에서 유래한 엔비디아(NVIDIA)라고 정했다.
151
1993년, 35세 때, 크리스 말라초스키는 우연히 데니스 인근 벽면에 난 총알 자국을 발견했고, 젠슨 황과 커티프 프리엠과 함께 안전한 커티스 프리엠의 산호세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152
1993년, 30세 때, 젠슨 황은 커티스 프리엠의 산호세 집에서 커티스 프리엠과 크리스 말라초스키와 함께 엔비디아의 지분을 3:3:3으로 나누기로 합의했다.
153
1993년, 35세 때, 커티스 프리엠은 젠슨 황에게 엔비디아 CEO 자리를 떠맡기듯 하면서 “회사를 운영하는 일은 당신이 맡아라. 당신이 CEO야. 끝”이라고 말했다.
154
1993년, 30세 때, 젠슨 황은 커티스 프리엠의 산호세 집에서 자신은 CEO를 맡고, 커티스 프리엠은 CTO를 맡고, 크리스 말라초스키는 부사장을 맡기로 합의했다.
155
1993년 1월, 30세 때, 젠슨 황은 짐 게이터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즉석으로 현금 200달러를 내고 엔비디아의 지분 30%를 확보했다.
156
1993년 2월 17일, 30세 때, 젠슨 황은 자신의 생일에 맞춰서 엔비디아의 첫 사무실인 공동창업자 커티스 프리엠의 2층집으로 출근했다.
157
1993년 2월, 30세 때, 젠슨 황은 크리스 말라초스키와 커티스 프리엠과 함께 게이트2000 PC를 구매해서 PC용 그래픽 카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158
1993년 2월, 30세 때, 젠슨 황은 썬GX의 성공을 알고 있었던 썬 마이크로시스템즈 직원들인 브루스 매킨타이어와 데이비드 로젠탈 등 12명을 엔비디아의 초기 직원으로 채용했고, 모두가 6개월 동안 월급을 받지 못했다.
159
1993년, 젠슨 황의 동생 짐 황은 인텔에 입사했다.
160
월 추정=1993년, 30세 때, 젠슨 황은 어머니 러차이슈로부터 엔비디아 창업을 그만두고 대기업으로 돌아가라는 잔소리를 들었다.
161
1993년 4월, 30세 때, 젠슨 황은 커티스 프리엠과 크리스 말라초스키와 함께 엔비디아의 자본금을 4만 달러로 늘렸고, 법인 설립을 최종 마무리지었다.
162
1993년 4월, 30세 때, 젠슨 황은 애플 본사를 방문해서 윈도우 라인 이외에 맥킨토시 라인의 그래픽 카드를 만드는 방향을 타진했지만, 실패했다.
163
1993년, 30세 때, 젠슨 황은 커티스 프리엠의 집 2층의 부엌에 있는 탁자를 일종의 CEO 사무실처럼 사용했다.
164
1993년, 30세 때, 젠슨 황은 엔비디아의 하드웨어팀과 소프트웨어팀 모두가 부엌을 오가면서 자신과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 조직 운영의 장점이라는 사실을 파악했다.
165
추정=1993년 6월, 30세 때, 젠슨 황은 1993년 6월 11일 개봉한 영화 ‘쥬라기 공원’을 봤다.
166
1993년, 30세 때,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은 엔비디아의 첫 번째 프로젝트로 CPU와는 별도로 PC의 컴퓨터 그래픽 처리를 가속화시켜주는 장치인 NV1을 준비했다.
167
1993년, 35세 때, 엔비디아 CTO 커티스 프리엠은 NV1을 경쟁 제품들과 기술적으로 차별화하기 위해 하드웨어에선 정방향 텍스처 맵핑을 도입했고 소프트웨어에선 객체 지향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168
1993년, 엔비디아 공동창업자 젠슨 황과 크리스 말라초스키와 커티스 프리엠은 벤처 캐피털 클라이너 퍼킨스 코필드와 미팅을 했지만 투자를 거절 당했다.
169
1993년, 30세 때,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은 엔비디아를 창업하기 전부터 조언을 구했던 테크 전문가 짐 게이더를 통해 벤처캐피털들인 세콰이어 캐피털과 서터 힐 벤처스와 투자 미팅 약속을 잡았다.
170
1993년, 30세 때, 젠슨 황은 서터 힐 캐피털의 임원 텐치 콕스 앞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했고, 긍정적은 느낌을 받았다.
171
1993년, 51세 때, LSI로직 창업자 윌프레드 콜리건은 LSI로직에 투자했던 세콰이어 캐피털 창업자 돈 발렌타인에게 “젠슨은 내 최고의 직원 중 한 명입니다. 이 친구가 무슨 일을 하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조건 돈을 주세요”라고 말했다.
172
1993년, 30세 때,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은 세콰이어 캐피털과의 투자 미팅을 위한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밤새 준비했다.
173
1993년, 30세 때,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은 세콰이어 캐피털 창업자 돈 발렌타인 앞에서 엔비디아에 관한 프리젠테이션을 했지만 발표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174
1993년, 30세 때, 젠슨 황은 돈 발렌타인 앞에서 그래픽 게임 ‘존5’를 가상 현실 헤드셋으로 영상 시연하면서 보여주기식 프리젠테이션을 했지만, 돈 발렌타인은 영상 시연 중심의 프리젠테이션을 싫어했다.
175
1993년, 35세 때, 커티스 프리엠은 돈 발렌타인의 사업적인 질문에 기술적 답변으로 일관하면서 프리젠테이션 분위기를 악화시켰다.
176
1993년, 30세 때, 젠슨 황은 SGS 톰슨에게 파운드리 외주를 맡길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돈 발렌타인은 TSMC여야 한다면서 반대 의사를 밝혔다.
177
1993년, 61세 때, 세콰이어 캐피털의 돈 발렌타인(Don Valentine)은 EA에 투자해서 성공을 거둔 상태였고 또 실리콘 브래픽스에 투자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었기 때문에, 젠슨 황의 프리젠테이션에 실망했으면서도 엔비디아의 기술력 자체는 투자 가치가 있다고 봤다.
178
1993년, 61세 때, 세콰이어 캐피털의 돈 발렌타인은 젠슨 황에게 엔비디아 같은 그래픽 카드 스타트업은 EA처럼 게임 시장을 만들어내는 회사와 동반 성장해야 하기 때문에 EA의 13세 CTO 아부바카르 아비드(Abubakar Abid)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179
1993년, 30세 때,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은 세콰이어 캐피털 창업자 돈 발렌타인에게 프리젠테이션이 별로였다는 평가를 들었다.
180
1993년, 61세 때, 세콰이어 캐피털 창업자 돈 발렌타인은 젠슨 황에게 월프 콜리건이 부탁을 들었다면서 그래서 엔비디아에 투자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181
1993년, 30세 때, 젠슨 황은 돈 발렌타인으로부터 “내 직감으로는 꺼려지지만 그래도 투자할 것이다. 내 돈을 잃으면 죽여버리겠다”라는 말을 들었다.
182
1993년, 30세 때, 젠슨 황은 세콰이어 캐피털과 서터 힐 벤처스로부터 엔비디아에 대한 투자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
183
1993년, 61세 때, 세콰이어 캐피털의 CEO 돈 발렌타인은 엔비디아의 기업 가치를 600만 달러로 평가했다.
184
1993년, 30세 때, 젠슨 황은 공동창업자들인 커티스 프리엠과 크리스 말라초스키와 자신만 엔비디아의 이사직을 맡고 두 사람은 이사회와는 무관하게 개발 업무에만 집중하는 것으로 역할 분담에 합의했다.
185
1993년, 30세 때,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은 세콰이어 캐피털이 추천한 33세 투자자인 마크 스티븐스(Mark Stevens)와 서터 힐 벤처스가 추천한 36세 투자자 텐치 콕스(Tench Coxe)와 엔비디아 이사회를 구성했고, 스스로 엔비디아 CEO 겸 이사회 의장이 됐다.
186
1993년, 젠슨 황은 로버트 송고르, 제프 피셔 등 20명 정도의 개발자들을 엔비디아에 고용했다.
187
1994년, 31세 때,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은 커티스 프리엠의 집에서 서니베일의 쇼핑몰에 있는 사무실로 회사를 옮겨서 NV1 개발을 본격화했다.
188
1994년, 36세 때, 커티스 프리엠은 엔비디아 서니베일 사무실에서 세가 게임기를 갖고 종종 비디오 게임을 즐겼다.
189
1994년, 31세 때, 젠슨 황은 엔비디아 서니베일 사무실에서 종종 직원들과 탁구 시합을 했다.
190
1994년, 31세 때, 젠슨 황은 엔비디아 서니베일 사무실의 회의실에 있는 화이트보드와 벽면을 이용해서 엔비디아의 사업 계획서를 모두가 볼 수 있게 써놓았다.
191
1994년, 31세 때, 젠슨 황은 엔비디아 직원들이 마감일을 지키는 대신 게임 신기록에 몰두하자 크게 화를 내면서 회사에 있던 게임기를 치워버렸다.
192
1994년, 31세 때, 젠슨 황은 세콰이어 캐피털의 돈 발렌타인으로부터 유럽의 파운드리보다 대만의 TSMC에서 생산해야 품질과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조언을 들었다.
193
1994년, 31세 때, 젠슨 황은 대만 TSMC에 엔비디아 반도체의 생산을 맡기고 싶어서 TSMC 회장 모리스 창에게 직접 메일을 보냈다.
194
1994년, 31세 때, 젠슨 황은 퇴근 시간 무렵 모리스 창으로부터 직접 전화를 받았고, 퇴근 준비 때문에 시끄러웠던 직원들에게 “모리스와 통화 중이기 때문에 조용히 하라”고 소리쳤다.
195
1994년, 63세 때, 모리스 창은 젠슨 황에게 “TSMC는 장기적인 협업 파트너를 찾기 때문에 당장은 신생 팹리스인 엔비디아의 생산을 맡아줄 수는 없지만 상호 신뢰를 통해 다음 기회를 찾아보자”는 취지의 말을 했다.
196
1994년 31세 때, 젠슨 황은 엔비디아의 첫 제품인 NV1의 생산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본사를 둔 SGS 톰슨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한테 맡겼다.
197
1994년, 31세 때, 젠슨 황은 세콰이어 캐피털의 돈 발렌타인과 마크 스티븐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낮은 SGS 톰슨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와 계약하면서, SGS 톰슨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로부터 엔비디아에 대한 100만 달러의 투자를 이끌어냈다.
198
1994년, 31세 때, 젠슨 황은 인텔이 CPU로 사운드와 그래픽 처리까지 대통합하려는 멀티미디어 CPU 계획을 발표하자 긴장했다.
199
1994년, 31세 때, 젠슨 황은 CPU와는 별도로 그래픽 처리를 가속화시키는 전용칩을 준비하고 있던 엔비디아한테 인텔의 멀티미디어 CPU가 위협적이라고 판단했다.
200
1994년, 31세 때, 젠슨 황과 엔비디아 공동창업자들인 커티스 프리엠과 크리스 말라초스키와의 논의 끝에 인텔의 멀티미디어 CPU 계획은 기술적으로 무리라고 판단했다.
201
1994년, 36세 때, 엔비디아 CTO 커티스 프리엠은 세가의 콘솔 게임기 세가 세턴 특유의 사각형 폴리곤에 맞춘 그래픽 가속기로 NV1을 설계했다.
202
1994년, 36세 때, 커티스 프리엠은 당시 게임 시장의 대세였던 역방향 텍스처 맵핑 처리 방식 대신 정방향 텍스처 방식으로 NV1을 설계했고, 여기에 고품질 오디오 기능까지 추가했다.
203
1994년, 36세 때, 커티스 프리엠은 NV1이 압도적인 비디오와 오디오 성능으로 새로운 시장 표준으로 자리잡게 만들고 싶어했다.
204
1994년, 31세 때, 젠슨 황은 세가의 콘솔 게임기 세가 세턴의 전용 게임인 ‘버추어 파이터’와 NV1을 번들로 판매하는 마케팅 전략을 선택했다.
205
1994년, 31세 때, 젠슨 황은 엔비디아 이사이자 시놉시스의 CEO였던 하비 존스로부터 NV1에 관해 “어떻게 시장에서 포지셔닝시킬 것이냐”는 질문을 받았지만,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206
1994년, 31세 때, 젠슨 황은 하비 존스에게 NV1의 앞선 기능에 관해 설명했지만 제품을 시장에서 어디에 포지셔닝할지에 대해선 알지 못했고, 그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207
1994년, 젠슨 황은 인텔의 임원 펫 겔싱어와 인텔이 엔비디아의 NV1을 지원할 수 있도록 협상했고, 처음엔 주저하던 펫 겔싱어도 결국 메인보드의 PCI 확장 슬롯을 지원해달라는 젠슨 황의 요구를 수용했다.
208
1994년, 36세 때, 엔비디아 CTO 커티스 프리엠은 SGS 톰슨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로부터 NV1의 프로토타입 15개를 전달 받았고, 엔비디아의 초기 직원인 제프 피셔가 그 순간을 캠코더로 기록했다.
209
1994년, 31세 때,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은 엔비디아 직원 드와이크 디워크가 NV1의 프로트타입을 하나하나 검수해서 합격 판정을 내리자, SGS 톰슨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에 대량 생산 발주를 했다.
210
1994년 8월 24일 수요일, 실리콘 그래픽스 출신인 게리 타롤리와 스콧 셀러스와 로스 스미스는 그래픽 카드 스타트업 3dfx를 창업했다.
211
1994년 11월, 젠슨 황과 커티스 프리엠은 라스베이거스 컴덱스에서 NV1를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212
1994년 11월, 36세 때, 커티스 프리엠은 3개의 NV1 시제품을 라스베이거스로 갖고 가서, 그 중 2개는 전시장에 두고 1개는 호텔방에서 계속 디버깅 작업을 했다.
213
1994년 11월, 31세 때, 젠슨 황은 라스베이거스 컴덱스 전시장에 있던 NV1 칩 2개가 도난당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214
1994년 11월 14일 월요일, 31세 때, 젠슨 황은 커티스 프리엠이 호텔방에서 작업하고 있었던 NV1 칩 1개로 컴덱스에서 엔비디아 신제품을 공개할 수 있었다.
215
1994년 11월, 31세 때, 젠슨 황은 라스베이거스 컴덱스에서 일본 게임 회사 세가의 담당자들과 미팅을 했다.
216
1994년 12월 11일 일요일, 31세 때, 젠슨 황은 커티스 프리엠과 함께 일본 도쿄에 가서 세가와 엔비디아 사이의 그래픽 카드 공급 계약을 맺었다.
217
1994년 12월, 31세 때, 젠슨 황은 엔비디아가 세가에 엔비디아의 차세대 제품인 NV2의 시제품만 납품해도 최소 100만 달러를 지급 받는다는 조항을 추가해뒀다.
218
1995년 5월, 32세 때, 젠슨 황은 세가와 5년 동안의 파트너쉽 계약을 체결했고, NV2를 세가 콘솔 게임 전용으로 제작하기로 합의했다.
219
1995년 5월, 32세 때, 젠슨 황은 세가한테 500만 달러 상당의 엔비디아 우선주를 매각했다.
220
1995년, 32세 때, 젠슨 황은 시장이 PC 비디오 게임 ‘둠’과 ‘미스트’가 큰 인기를 끌자, 엔비디아의 첫 제품인 NV1의 정식 출시를 서둘렀다.
221
1995년 5월 22일 월요일, 32세 때,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은 NV1을 개당 249달러에 정식 출시했다.
222
1995년, 37세 때, 커티스 프리엠은 미국과 일본을 오가면서 세가와의 NV2 계약을 직접 수행했다.
223
1995년 11월 6일 월요일, 3dfx의 창업자 게리 타롤리와 스콧 셀러스와 로스 스미스는 기술 투자 은행 함브레치 앤 퀘스트의 샌프란시스코 컨퍼런스에서 엔비디아의 경쟁 제품인 부두를 출시했다.
224
1995년 가을, 32세 때, 젠슨 황은 NV1의 유통회사인 다이아몬드가 NV1에 엔비디아의 고유 브랜드 대신 다이아몬드 엣지 3D라는 유통사의 브랜드명을 붙이면서, 역시 다이아몬드 몬스터라고 이름 붙여진 경쟁사 3dfx와 엔비디아를 차별화시키는데 애를 먹었다.
225
1995년 말, 32세 때, 젠슨 황은 세가의 ‘버추어 파이터’에 특화된 그래픽 카드라는 마케팅 포인트 덕분에 NV1을 1만 개 이상 판매하는데 성공했다.
226
1995년 12월 말, 32세 때, 젠슨 황은 NV1의 성공을 축하하는 크리스마스 파티를 엔비디아 직원들과 함께 열었다.
227
1996년, 33세 떄, 젠슨 황은 커피스 프리엠이 설계한 NV1이 인기 게임 ‘둠’을 지원하지 못하고 시장에서 외면 받으면서 사업적 위기에 빠졌다.
228
1996년, 33세 때, 젠슨 황은 NV1이 그래픽과 사운드에서 시장 트렌드와 무관한 혁신적인 기술 개선을 추구한 탓에 오히려 ‘둠’과 같은 대세 인기 게임을 전혀 지원하지 못하고 소비자한테 외면 받는 상황을 경험했다.
229
1996년 봄, 33세 때, 젠슨 황은 NV1이 세가의 ‘버추어 파이터’에만 특화된 그래픽 카드였던 탓에 다른 게임에선 여러 기술적 오류를 일으키면서, 시장에 판매한 25만 개 제품 중에서 24만9000개가 반품되는 경험을 했다.
230
1996년, 33세 때, 젠슨 황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 OS에서 3D 그래픽을 담당하는 다이렉트X에선 삼각형 폴리곤만 지원할 것이라고 발표하면서, 사각형 폴리곤을 지원하는 NV1이 기술적으로 완전히 구닥다리 제품이 되는 경험을 했다.
231
1996년, 33세 때,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은 사각형 폴리곤을 선택했던 엔비디아 CTO 커티스 프리엠의 선택이 잘못된 기술적 판단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32
1996년 33세 때,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은 엔비디아 서니베일 사무실의 화이트보드에 써두었던 사업 계획을 모두 지웠다.
233
1996년, 33세 때, 젠슨 황은 세콰이어 캐피털과 셔터 힐 캐피털과 SGS 톰슨과 세가로부터 모은 NV1 제작비 1500만 달러를 거의 대부분 날렸다.
234
1996년, 33세 때, 젠슨 황은 잭 스트라우트와 알 리스가 쓴 ‘포지셔닝 : 마음을 사로잡는 전쟁’을 읽고, 비로소 엔비디아 이사이자 시놉시스 CEO인 하비 존스가 했던 “엔비디아의 포지셔닝은 무엇이냐”는 질문의 진짜 의미를 이해하게 됐다.
235
1996년, 33세 때, 젠슨 황은 NV1이 소비자를 기능으로 설득하려고 했지만 소비자가 원하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감성적 만족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36
연도추정=1996년, 33세 때, 젠슨 황은 5세 딸 메디슨 황을 데리고 동네 책방에 가서 고든 벨이 존 E. 맥나마라와 공저한 경영서 ‘하이 테크 벤처스(High Tech Ventures)’를 사서 읽었다.
237
연도추정=1996년, 33세 때, 젠슨 황은 엔비디아가 선택한 그래픽 카드 시장은 아직 시장이 없기 때문에 시장을 만들어가면서 동시에 제품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제품과 시장을 동시에 만드는 것’을 엔비디아 경영의 기본으로 삼았다.
238
1996년, 64세 때, 세콰이어 캐피털 창업자 돈 발렌타인은 세콰이어 캐피털의 경영권을 42세 마이클 모리츠한테 넘겨주고 은퇴했다.
239
1996년, 33세 때,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은 세가와 수백만 달러 규모의 재계약을 맺고 NV1과 마찬가지로 삼각형 폴리곤만 지원하는 NV2 개발을 시작했다.
240
1996년, 33세 때, 젠슨 황은 NV2의 개발 코드 네임을 ‘스타트렉2’에 등장하는 우주 행성의 이름 ‘렐라’에 따왔다.
241
1996년, 37세 때, 엔비디아 CTO 커티스 프리엠은 세가 콘솔 게임을 애정해서 엔비디아 서니베일 사무실에서 종종 그래픽 게임을 즐겼고, NV2에서도 MS 기술 트렌드였던 리버스 텍스처 맵핑 대신 세가의 포워드 텍스처 맴핑을 선택했다.
242
1996년, 33세 때, 젠슨 황은 3dfx의 그래픽 카드인 부두가 NV1을 압도하는 성능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사업적 위기에 빠졌다.
243
1996년, 젠슨 황과 커티스 프리엠은 MS 윈도우의 다이렉트X와 완벽하게 호환되는 3dfx의 부두와 달리 엔비디아의 NV1과 NV2는 세가 전용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기술 트렌드를 잘못 읽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44
1996년, 33세 때, 젠슨 황은 엔비디아 역시 3dfx처럼 MS 윈도우와 호환되는 제품으로 피봇팅해야 한다고 봤지만, 커티스 프리엠은 피봇팅은 MS에 대한 항복이라고 주장했다.
245
1996년, 33세 때, 현실주의자 젠슨 황은 이상주의자 커티스 프리엠과 회사 직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정면 충돌하기 시작했다.
246
1996년, 33세 때, 젠슨 황은 엔비디아 직원 중 누군가가 업무 성과가 낮으면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인민 재판식으로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247
1996년, 33세 때, 젠슨 황은 최소 30명 이상의 엔비디아 직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 엔비디아 직원에게 월급값을 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지금까지 받은 보수를 모두 돌려놓으라고 비판했다.
248
1996년 6월 22일 토요일, 25세 때, 존 카맥(John Carmack)은 3차원 슈팅 게임 ‘퀘이크’를 출시했다.
249
1996년, 30세 때, 3dfx의 공동창업자 스콧 셀러스는 ‘퀘이크’ 덕분에 부두 판매가 급증하는 것을 경험했다.
250
1996년, 35세 때, 3dfx의 공동창업자 로스 스미스는 엔비디아 인수를 검토했지만, 3dfx의 공동창업자 스콧 샐러스는 젠슨 황이 차기작에서 실패하면 스스로 무너질 것이라고 판단했다.
251
1996년, 33세 때, 젠슨 황은 세가로부터 차세대 콘솔에는 NV2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252
1996년, 33세 때, 젠슨 황은 NV2 개발을 완료하고 세가로부터 계약 잔금 100만 달러를 받을지 NV2 개발을 포기하고 세가 잔금도 포기할지를 놓고 딜레마에 빠졌다.
253
1996년, 33세 때, 젠슨 황은 세가에 NV2의 시제품만 납품하면 100만 달러를 받기로 한 계약에 따라, 커티스 프리엠과 엔지니어 웨인 코가치에게 NV2 시제품 제작을 지시했다.
254
1996년, 33세 때, 젠슨 황은 세가 전용 NV2 개발을 포기하기로 결정했지만, 엔비디아의 사정상 세가로부터 계약 잔금 100만 달러를 꼭 받아야만 했다.
255
1996년, 33세 때,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은 세가 CEO 소이치로 이리마지리를 찾아가서 NV2의 프로토타입 1개를 전달하면서, “엔비디아가 세가를 위해 NV2를 완성하면 엔비디아가 망한다. 프로토타입은 납품했으니 계약 잔금을 지급해달라”고 요청했다.
256
1996년, 33세 때,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은 미팅 며칠 뒤 세가 CEO 소이치로 이리마지리로부터 계약 잔금 100만 달러를 지급해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257
1996년, 33세 때, 젠슨 황은 엔비디아의 남은 자금을 기반으로 런웨이를 계산했다.
258
1996년, 33세 때,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은 엔비디아 직원들을 모아놓고 커티스 프리엠이 설계한 NV1의 사각형 폴리콘 기반 그래픽 아키텍처를 포기하고,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OS에 호환되는 삼각형 폴리콘 기반 그래픽 아키텍처로 바꿔야 한다고 설명했다.
259
1996년, 33세 때,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은 NV1 아키텍처를 포기하고 MS 호환 아키텍처로 피봇팅하기 위해 100명 안팎의 직원 중 60명 이상을 해고했다.
260
1996년, 33세 때, 젠슨 황은 MIT와 칼텍을 졸업하고 휴렛팩커드에서 일했던 컴퓨터 그래픽 엔지니어 데이비드 커크를 엔비디아에 채용했다.
261
1996년, 33세 때, 엔비디아의 CEO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젠슨 황은 커티스 프리엠 대신 데이비드 커크를 사실상 새로운 CTO로 중용하면서 커티스 프리엠이 구축한 NV1의 아키텍처를 새로 짜기 시작했다.
262
1996년, 30세 때, 엔비디아 엔지니어 드와이트 디어크스는 3dfx의 공동창업자 스콧 샐러스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았지만, 젠슨 황의 설득으로 엔비디아에 잔류했다.
263
1996년, 33세 때, 젠슨 황은 캘리포니아 써니베일에서 TSMC CEO 모리스 창을 만나서 엔비디아와 TSMC의 파운드리 계약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264
1996년 말, 33세 때, 젠슨 황은 NV2 개발을 포기하고 NV3 개발을 시작했다.
265
1996년 말, 33세 때, 젠슨 황은 반도체 칩을 프로토타입 없이 시뮬레이션만으로 설계하고 테스트할 수 있게 해주는 스타트업 아이코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266
1996년 말, 33세 때, 젠슨 황은 엔비디아의 세가로부터 받은 100만 달러로 프로토타입 없이 시뮬레이션만으로 반도체 칩을 만들어서 테스트할 수 있는 아이코스의 에뮬레이터를 구매했다.
267
1996년 말, 33세 때, 젠슨 황은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정석적인 방법 대신 에뮬레이터로 시뮬레이션만 하고 완제품을 대량 생산하는 리스크 테이킹을 선택했다.
268
1996년 말, 33세 때, 젠슨 황은 엔비디아 서니베일 사무실의 탁구대를 치우고 시뮬레이션 에뮬레이터를 설치했고, 드와이트 디어크스와 데이비드 커크를 책임자로 지정했다.
269
1996년 말, 33세 때, 젠슨 황은 엔비디아에 30일 정도 버틸 수 있는 자금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았고, 직원들에게 “우리 회사는 30일 후에 사업을 접습니다”라고 프리젠테이션하기 시작했다.
270
1996년 말, 33세 때, 젠슨 황은 언론사에 인맥이 있었던 데이비드 커크를 통해 경쟁사 제품들의 기능들을 미리 알아내서 NV3에 추가했다.
271
1996년 말, 33세 때, 젠슨 황은 NV3가 NV1과 달리 VGA를 지원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해 엔비디아의 경쟁사였던 웨이텍으로부터 VGA 설계의 라이센스를 얻어왔다.
272
1996년 말, 37세 때, 커티스 프리엠은 젠슨 황이 NV3를 위한 VGA 설계 라이센스를 얻어왔다는 사실을 알고, 젠슨 황의 사업적 협상력을 인정했다.
273
1997년 1월, 34세 때, 젠슨 황은 시뮬레이션 에뮬레이터를 이용해서 NV3 개발을 완료했고 SGS 톰슨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에서 ST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로 이름을 바꾼 파운드리를 통해 위탁 생산에 들어갔다.
274
1997년 1월, 34세 때, 젠슨 황은 엔비디아 서니베일 사무실 근처 쇼핑몰의 치즈 스테이크 프렌차이즈에서 엔비디아 직원 36명 정도와 NV3 개발 완료를 축하하는 회식을 했다.
275
1997년 1월, 34세 때, 젠슨 황은 데이비드 커크에게 엔비디아 수석과학자라는 직함과 스톡옵션을 제안했다.
276
1997년 봄, 34세 때, 젠슨 황은 프로토타입을 만들지 않고 시뮬레이션 에뮬레이터로만 설계한 NV3가 파운드리를 통해 대량 생산된 뒤에도 과연 완벽하게 작동할지 확신하지 못했다.
277
1997년 봄, 34세 때, 젠슨 황은 대량 생산된 NV3가 에뮬레이터로 설계했던 그대로 완벽하게 작동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278
1997년 봄, 34세 때, 젠슨 황은 NV3의 명칭을 개선된 성능을 표현하는 이름인 리바(Real Time Interactive Video and Animation Accelerator)128이라고 이름 붙였다.
279
1997년 4월 8일 화요일, 34세 때, 젠슨 황은 컴퓨터 컨퍼런스를 통해 리바128을 공개했다.
280
1997년 4월, 31세 때, 3dfx의 공동창업자 스콧 샐러스는 엔비디아 부스를 찾아와서 리바128의 시연을 직접 지켜본 다음 죽어가던 엔비디아가 부활해서 3dfx를 추월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81
1997년 6월 25일 수요일, 45세 때, 하버즈 비즈니스스쿨 교수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은 저서 ‘혁신기업의 딜레마’를 출간했다.
282
1997년, 34세 때, 젠슨 황은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의 ‘혁신기업의 딜레마’를 읽고 혼다가 GM이 무관심했던 저성능 저이윤 오토바이 시장부터 파괴적 혁신을 시작한 것처럼, 엔비디아 역시 인텔이 무관심한 저성능 저이윤 그래픽 카드 시장에서부터 파괴적 혁신을 일으키는 것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283
1997년, 34세 때, 젠슨 황은 3dfx의 부두 러시가 느린 속도와 나쁜 화질 그리고 자체적인 그래픽 드라이버 인터페이스인 글라이드를 고집하면서 발생한 낮은 호환성 때문에 흥행에 실패하자 리비128의 정식 판매를 서둘렀다.
284
1997년, 34세 때, 젠슨 황은 S3에서 엔비디아에 합류한 마케팅 이사 마이클 하라와 리바128의 가격에 관해 논의하면서, 마이클 하라가 최고 10달러라고 제안하자 오히려 높인 15달러로 정했다.
285
1997년 8월, 34세 때, 젠슨 황은 엔비디아에 한 달 치 직원 월급 정도의 현금 밖에 없었기 때문에 리바128이 실패하면 파산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286
1997년 8월 8일 금요일, 34세 때, 젠슨 황은 리바128의 성공 가능성이 높아지자 추가 투자 라운드를 돌았고, 결국 셔터 힐 캐피털로부터 추가로 180만 달러를 투자 받았다.
287
1997년 8월, 34세 때, 젠슨 황은 전자제품 소매점 베스트 바이를 통해 리바128를 판매유통하기 시작했다.
288
1997년 8월, 34세 때, 젠슨 황은 엔비디아 직원들을 회의실로 모아서 회사에 거의 현금이 없다고 먼저 알렸고, 다음엔 리바128의 주문이 3만 개 들어왔다고 알렸다.
289
1997년, 34세 때, 젠슨 황은 엔비디아 직원들과 탁구를 즐겼고, 무조건 이기려고 했다.
290
1997년 12월, 34세 때, 젠슨 황은 리바128이 100만 개 이상 판매하면서 위기에서 벗어났다.
291
1997년 12월, 34세 때, 젠슨 황은 리바128로 엔비디아를 기사회생시키면서 부두를 앞세운 3dfx와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는데 성공했다.
292
1997년 말, 34세 때, 젠슨 황은 유럽 파운드리 업체인 SGS 톰슨이 수율을 맞추지 못해서 불량품을 양산하고 공급 일정을 못 맞추면서, 리바128을 기다리던 게이트웨이 2000과 같은 PC 제조사들로부터 항의를 받았다.
293
연도추정=1997년 말, 34세 때, 젠슨 황은 TSMC의 모리스 창과 리바128의 일부 물량을 파운드리 생산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294
1997년 말, 34세 때, 젠슨 황은 엔비디아 직원들에게 1달러 짜리 지폐를 나눠주는 동기 부여 행사를 했고, 특정 직원에겐 2배 열심히 일했다는 의미에서 1달러 지폐 2장을 수여했다.
295
1997년, 34세 때,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은 엔비디아 수석과학자 데이비드 커크에게 선풍 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3차원 슈팅 게임 ‘퀘이크’를 완벽하게 지원할 수 있는 컴퓨터 그래픽 카드를 개발하라고 지시했다.
296
1997년, 36세 때, 엔비디아 수석과학자 데이비드 커크(David Blair Kirk)는 ‘퀘이크’의 개발자 존 카맥이 원하는 픽셀 세이더 기술을 완벽하게 지원하는 그래픽 카드를 만들기 위해, 병렬 컴퓨팅를 해법으로 제시했다.
297
1997년, 34세 때,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은 하나의 그래픽 문제를 여러 개의 데이터셋으로 분산해서 동시에 연산하는 병렬 컴퓨팅이 미래의 컴퓨터 시장을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298
1997년, 34세 때,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은 오라클 창업자 래리 엘리슨과 크레이 창업자 시모어 크레이가 병렬 컴퓨터를 만들려고 했지만, 연간 과정이 너무 복잡했던 탓에, CPU 기반의 단순한 인텔 아키텍처에 밀렸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299
1997년, 34세 때,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은 엔비디아 수석과학자 데이비드 커크에게 리바128의 차기작을 2개의 연산 파이프라인으로 만든 병렬 컴퓨팅으로 설계하라고 지시했다.
300
1998년, 35세 때, 젠슨 황은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의 ‘혁신기업의 딜레마’를 기반으로 엔비디아가 반도체 시장에서 인텔과 정면 승부를 피하면서 인텔이 놓친 시장을 선점하면서 결국 언젠간 인텔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얘기를 직원들에게 했다.
301
1998년 2월, 35세 때, 젠슨 황은 엔비디아의 주력 파운드리 업체를 SGS 톰슨에서 TSMC로 변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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