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02일 목요일
이주영 : 국회(의 소아과)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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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3월 22일 월요일, 0세 때, 이주영은 대구광역시 북구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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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0세 때, 이주영은 부모의 신앙을 물려 받은 모태신앙인으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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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8월 2일 목요일, 8세 때, 이주영은 이라크 대통령 사담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하고 미국 대통령 조지 H.W. 부시가 사막의 폭풍 작전을 개시하는 것을 TV뉴스로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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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월, 9세 때, 이주영은 CNN 종군 기자 피터 아네트가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미공군의 폭격 상황을 생방송으로 전달하는 모습을 TV로 시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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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월, 9세 때, 이주영은 MBC 기자 이진숙이 한국 최초의 여성 종군 기자로서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걸프전 상황을 생방송으로 전달하는 모습을 시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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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0세 때, 이주영은 TV에서 걸프전을 취재하는 기자들를 보면서 종군기자가 되는 꿈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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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학생 이주영은 여행을 많이 다니고 싶어했지만 가정 형편이 넉넉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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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학생 이주영은 영화 잡지와 음악 잡지를 사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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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학생 이주영은 영화 붉은 10월에 나온 숀 코너리를 보고 첫 눈에 반해서 평생의 이상형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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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학생 이주영은 피아노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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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6세 때, 이주영은 외국어 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하면서 주말마다 비디오 가게에서 영화를 빌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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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영 저서 우리는 다시 먼바다로 나갈 수 있을까=1997년, 16세 때, 이주영은 기숙사 생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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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7세 때, 이주영은 아나운서 백지연과 신은경을 보면서 뉴스 앵커가 되는 것을 꿈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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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7세 때, 이주영은 법대에 입학해서 변호사가 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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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8세 때, 이주영은 아버지가 변호사가 되더라도 의대를 나와서 사시를 치면 더 경쟁력 있는 변호사가 될 수 있다고 권유해서 의대에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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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8세 때, 이주영은 주변 외고 동기생들이 법대 아니면 의대에 지망하는 분위기 속에서 의대에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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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8세 때, 이주영은 의대에 지원하면서도 의대가 6년제인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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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20세 때, 이주영은 경상북도 경주시에 위치한 동국대학교 WISE 캠퍼스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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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의대생 이주영은 동국대학교 WISE 캠퍼스 의과대학에서 환자 몸에 나쁜 걸 하면 안 된다는 철학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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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영 저서 우리는 다시 먼바다로 나갈 수 있을까=2000년대, 의대생 이주영은 아무데서나 잘 자는 탓에 별명이 이처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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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영 저서 우리는 다시 먼바다로 나갈 수 있을까=2000년대, 의대생 이주영은 동국대학교 WISE 캠퍼스 의과대학의 21학번 상위권 학생 모임인 전원 진급 추진위원회의 도움으로 이처자인데도 낙제를 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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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영 저서 우리는 다시 먼바다로 나갈 수 있을까=2000년대, 의대생 이주영은 난생 처음 분만을 목격하면서 산부인과 의사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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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영 저서 우리는 다시 먼바다로 나갈 수 있을까=2000년대, 의대생 이주영은 교통사고를 당해서 이미 생명이 위독했던 환자를 끝까지 살리려고 애썼던 외과 교수를 보면서 수술로 직접 생명을 살릴 수 있는 바이털과를 지망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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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나이 추정=2006년, 25세 때, 이주영은 원래 정형외과를 지망했지만 오래 서 있으면 쓰러지는 미주신경성실신 증상과 저혈압 때문에 수술을 참관하다가 여러 번 쓰러지면서 결국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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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영 저서 우리는 다시 먼바다로 나갈 수 있을까=2000년대, 의대생 이주영은 정신과와 내과를 고려했지만 폐쇄병동과 성인 중환자실에서의 어두운 경험 때문에 망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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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2월, 26세 때, 이주영은 동국대학교 WISE 캠퍼스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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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26세 때, 이주영은 서울아산병원에서 인턴 생활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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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26세 때, 이주영은 정형외과와 내과에서 인턴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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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영 저서 우리는 다시 먼바다로 나갈 수 있을까=2007년, 26세 때, 이주영은 힘든 인턴 생활을 견딜 수 있게 도와주는 동료 인턴들을 만나면서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환자를 치료하겠다는 약속이면서 동료 의사를 믿겠다는 약속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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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영 저서 우리는 다시 먼바다로 나갈 수 있을까=2007년, 26세 때, 이주영은 환자의 상태가 특별한 이유 없이 호전되는 일이 많아서 간호산들로부터 전생에 좋은 일을 했을지도 모른다면서 유관순이라고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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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26세 때, 이주영은 서울아산병원에서 소아응급실 인턴으로 일하다가 소아과 전공의가 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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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영 저서 우리는 다시 먼바다로 나갈 수 있을까=2007년, 26세 때, 이주영은 “아이들의 유리알 같음에 반해” 소아과 의사가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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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수련의 이주영은 유니세프 후원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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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나이 추정=2008년, 27세 때, 이주영은 첫 환자로 소아암 환자를 진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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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나이 추정=2008년, 27세 때, 이주영은 진료하던 중학생 백혈병 환자가 세상을 떠나는 경험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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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나이 추정=2008년대, 27세 때, 이주영은 항암 병동 순환 근무를 하면서 세상을 떠나는 아이들을 자주 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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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나이 추정+이주영 저서 우리는 다시 먼바다로 나갈 수 있을까=2008년대, 27세 때, 이주영은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지만 자신의 품 안에서 치료되는 아이들을 느끼면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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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나이 추정=2009년, 28세 때, 이주영은 서울아산병원에서 같은 의사인 남자친구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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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 추정=2009년, 28세 때, 이주영은 서울아산병원에서 만난 같은 의사인 남자친구와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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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 추정=2009년, 28세 때, 이주영은 아이를 잃고도 현실을 살아내야 하는 아버지들의 고통을 처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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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나이 추정=2010년, 29세 때, 이주영은 첫 아들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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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소아과 전공의 이주영은 울산대학교 의학과 소아청소년과학에서 한국인 고셔병 환자들의 임상적 유전학적 특징에 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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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31세 때, 이주영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됐고 세부전공은 소화응급의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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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나이 추정=2012년, 31세 때, 이주영은 둘째 딸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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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1세 때, 이주영은 순천향대학교 부속 천안병원 소아과와 소아전용 응급실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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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나이 추정=2013년, 32세 때, 이주영은 셋째 아들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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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순천향대학교 부속 천안병원 소아전용 응급실 전문의 이주영은 응급실에서는 환자에게만 집중하고 집에서는 아이들에게만 집중하는 온오프 방식으로 일과 육아를 함께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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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순천향대학교 부속 천안병원 소아전용 응급실 전문의 이주영은 딸아이가 트램펄린을 타나가 팔이 부러져서 의사가 아니라 환아의 보호자로서 서울에 있는 소아전용 응급실에 가는 경험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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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질병관리본부 조사 결과=2017년 12월 15일 금요일, 이대 목동 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의 의료진은 신생아 중환자실의 신생아 4명에게 미숙아에게 지질영양 주사제 스모프리피드를 주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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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질병관리본부 조사 결과=2017년 12월 15일 금요일, 이대 목동 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의 의료진은 환아 1인당 1병씩만 주사해야 하는 질병관리본부의 지침을 어기고 주사준비실에서 지질영양제 용기를 걸고 주사실린지에 나누어 준비하는 분주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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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질병관리본부 조사 결과=2017년 12월 15일 금요일, 이대 목동 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의 의료진은 분주를 하기 위해 지질영양제 1병을 주사 4시간 전에 미리 개봉하면서 그람 음성균의 일종인 시트로박터 프룬디균에 오염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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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6일 토요일 오후 5시 44분, 이화여자대학교 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인큐베이터에 있던 신생아가 심정지를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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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6일 토요일 오후 7시 23분, 이화여자대학교 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인큐베이터에 있던 두 번째 신생아가 심정지를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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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6일 토요일 오후 9시, 이화여자대학교 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인큐베이터에 있던 세 번째 신생아가 심정지를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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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6일 토요일 오후 9시, 이화여자대학교 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인큐베이터에 있던 네 번째 신생아가 심정지를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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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6일 토요일 오후 9시 32분부터 오후 10시 53분까지, 이화여자대학교 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심장마비를 일으켰던 남아 2명과 여아 2명 등 4명의 신생아가 연달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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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6일 토요일 오후 11시 7분 경, 사망한 신생아의 부모 중 한 사람이 112에 신고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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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17일 수요일, 34세 때, 이주영은 블로그에 “의사는 는 수액을 투여하는 과정에 거의 관여하지 않는다. 하지만 병원 내 모든 의료 행위의 책임은 궁극적으로 의사가 짊어지는 것이 맞기에 담당 교수나 전공의를 조사할 수는 있다. 한편 내 근무에는 하루 백 개가 넘는 수액이 처방된다. 그런데 내가 근무를 마치고 집에 왔을 때, 어제 당신이 처방 낸 수액이 감염되었다고 살인죄로 잡아 조사하는 셈이다. 병원 감염은 줄이는 것이지 이론상 0으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기도 하다. 조사를 받을 수는 있지만, 이 환경에서 피의자, 살인자, 적폐로 단정되는 것은 억울하다. 그래서 그들에게 법적 책임을 묻는 기사를 본 많은 의사들이 나도 잡아가라라는 반응을 보인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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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30일 금요일, 서울남부지검 환경보건범죄전담부 부장검사 위성국은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 교수 조수진과 이대목동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박은애와 수간호사에 대해 구속 영장을 청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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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4일 수요일, 33세 때, 이주영은 “이번 구속은 수사에 필요한 조치가 아니라 홍보와 여론몰이를 위해 사용된 조치가 아니었나 반문하고 싶다. 내가 의사라면 이 일을 계기로 앞으로 더 소극적인 의료 행위를 할 것. 환자를 살릴 수 있지만 죽일 수도 있는 수술, 투약은 아무리 매달려도 안 할 것. 구속될 수 있는 상황에서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따질 수 없다”라고 개인 페이스북에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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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4월 1일 목요일, 순천향대학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이주영은 사직 작가 현효제가 한국 전쟁 참전 용사들을 촬영한 사진집 Project-Soldier를 구매해서 개인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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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24일 목요일, 39세 때, 이주영은 외교관 최중경이 쓴 역사서 역사가 당신을 강하게 만든다를 읽고 인스타그램에 “국민 대다수가 지도가 자리의 무게를 인식할 때 전략적 사고능력을 가진 진정한 지도자가 양성될 것이고 국민들도 진정한 지도자를 알아보게 될 것이다”라고 인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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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24일 일요일 오전,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A는 오전 근무 중에 두통을 호소하면서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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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24일 일요일,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A는 서울아산병원 응급실로 옮겨졌고 곧바로 개두술을 받아야 했지만 서울아산병원 신경외과에서 개두술이 가능한 뇌혈관외과의 2명 모두 각각 해외 학회와 지방 출장으로 병원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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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24일 일요일, 서울아산병원 신경외과 뇌혈관 내시술 전문 교수 B는 개두술 대신 색전술로 실시했지만 출혈 부위를 막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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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24일 일요일,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A는 상태가 악화돼 서울대병원으로 후송돼 수술 받았지만 결국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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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40세 때, 이주영은 서울아산병원에서 일어난 간호사의 죽음에 대해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의사에 대한 갈라치기를 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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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외과 박재승 교수는 국제학술지 JKMS에 화려한 한국 대형 병원의 취약한 그림자라는 사설에서 서울아산병원에서 일어난 간호사의 죽음에 대해 “이 사건의 본질은 가용한, 숙련된, 뇌혈관외과 의사의 절대 수 부족으로, 국내 최대 병원인 서울아산병원에 뇌혈관외과 의사가 2명 뿐이라는 걸 아는 국민이 몇이나 될지 의문이다. 뇌수술을 하면 할수록 병원 입장에서는 수익이 느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감소하는 현실이기에 굳이 뇌혈관외과 의사를 더 구할 필요성 자체를 못 느낀다. 설령 구하려고 해도 요즘 뇌혈관외과 전임의 과정을 거치고 나온 의사들 대부분이 뇌혈관외과 수술보다 신경중재 쪽을 더 선호한다. 학습 곡선이 상대적으로 짧고 절차가 적기 때문이다. 중대한 질환에 대한 고위험 의료 분야의 의료전문가에 기본적인 삶의 질을 보장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런 정책적인 지원 없이, 그냥 의사 월급이나 당직비 좀 올려주는 것으로는 뇌혈관외과 의사의 소멸 현상을 막을 수 없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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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영 저서 우리는 다시 먼바다로 나갈 수 있을까=2022년 10월, 40세 때, 이주영은 2022년 10월 29일 토요일 벌어진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면서 “큰 일이 벌어졌을 때 누군가를 지목하여 책임을 묻고 버리는 것은 어쩌면 가장 쉬운 방법일 수 있다. 어쩌면 그렇게 하는 것이 사람들의 슬픔과 분노에 짧은 위로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일로 큰 배움과 경험을 얻은 베테랑들을 잃고 만다. 그러면 우리의 내일은 다시 전전긍긍 눈치 보는 초심자들의 손에 놓인다. 함부로 벌하고 내치기보다 함께 고민하고 나누는 마음, 쉽게 아무에게나 비수를 꽂기보다 실패와 절망의 경험을 서로 진심으로 위로하고 존중하며 격려하는 몸짓.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태도가 아닐까”라는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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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겨울, 40세 때, 이주영은 2020년 2월부터 시작된 코로나19가 창궐하고 의료진도 환자를 격리 치료하게 되면서 수련의와 전공의가 전문의의 환자 처지를 직접 볼 수 없게 됐고 그것이 일시적으로 수련의와 전공의의 임상 실력이 후퇴하는 현상을 현장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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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9일 일요일, 41세 때, 이주영은 서울대학교 어린이병원에서 열린 대한소아응급의학회 춘계 학술대회에 참석해서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가 소아청소년과 폐과를 선언한 상황에서도 여전히 연구와 치료에 몰두하는 소아청소년과와 응급의학과 의사들을 만난 뒤 “내가 있던 곳에 잠잠히 머물고 내가 해야 할 공부를 여전히 목말라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계속 좋아하는 것. 오늘의 반성”이라고 인스타그램에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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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1세 때, 이주영은 소아전용 응급의료센터의 병상이 가득 차서 타병원으로 전원을 보내기 위해 40통 가까이 전화를 돌려야 하는 경험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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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1세 때, 이주영은 소아전용 응급의료센터로 환자들이 몰려들면서 소아중증환자를 위해 매주 한 두 차례 이상 심폐소생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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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1세 때, 이주영은 소아전용 응급의료센터에 치료를 받다가 사망한 소아환자들의 부모들이 소송을 거는 것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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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1세 때, 이주영은 주변 소아과 동료들이 아픈 아이들의 부모들로부터 민사 소송에 이어 형사 소송까지 당하고 환자가 의사와의 대화를 녹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 속에서 의료 현장을 떠나는 상황을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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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1세 때, 이주영은 순천향대학교 부속 천안병원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가 지역 의료 병원이라는 이유로 소아환자의 부모들이 신뢰하지 못하고 서울로 가겠다는 경험을 하면서 회의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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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영 저서 우리는 다시 먼바다로 나갈 수 있을까=2023년, 41세 때, 이주영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를 지원하는 전공의들의 숫자가 2017년 11월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 이후 5년 동안 계단식으로 줄어들고 있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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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1세 때, 이주영은 페이스북에 쓴 소아과 생활에 관한 글을 보고 대형 출판사들로부터 전화 연락을 받았지만 여러 차례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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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1세 때, 이주영은 편집자 유윤희가 운영하는 1인 출판사인 오늘산책을 선택해서 책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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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영 저서 우리는 다시 먼바다로 나갈 수 있을까=2023년, 41세 때, 이주영은 저서 우리는 다시 먼바다로 나갈 수 있을까를 집필하면서 “그동안 이곳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과연 의사들만 한날한시에 사명감을 다 잃어버린 걸까. 정말 그렇다면, 그 이유는 뭘까.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말들이 점점 많아진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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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8일 화요일, 41세 때, 이주영은 새만금 잼버리에 참가한 대원들 중 환자가 발생할 경우 치료에 적극 협조해달라는 공문을 받고 “의사들한테 저 따위 공문 안 보내도 (지금 잼버리 돌아가는 꼴 부끄러워서라도) 눈 앞에 환자 오면 어련히 잘 하겠지. 사기 꺾고 기분 나쁘게 하는 것도 재주다 재주야”라고 인스타그램에 쓰면서 “#우리가노예인가, #저들이깡패인가”라는 해시태그를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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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41세 때, 이주영은 순천향대학교 부속 천안병원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의 전문의 7명 중 5명의 줄퇴사를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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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말,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 전병왕은 2주 동안 전국 40개 의대를 상대로 2025학년도부터 2030년까지 늘릴 수 있는 의대 정원을 조사해 취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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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41세 때, 이주영은 에세이 우리는 다시 먼바다로 나갈 수 있을까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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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41세 때, 이주영은 2024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으로부터 입당 제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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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41세 때, 이주영은 여러 정당들의 입당 제안들이 자신이 가진 소아과 의사이자 세 아이의 엄마라는 상품성만 본 것 같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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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41세 때, 이주영은 개업의인 남편에게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를 사직하겠다고 말하자 남편은 의료 소송을 당해서 감옥에 갈 수도 있는 소아과 전문의보다 안전한 일을 해달라고 이주영에게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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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영 저서 우리는 다시 먼바다로 나갈 수 있을까=연도나이 추정=2023년, 41세 때, 이주영은 환아 부모에게 환아는 성장기이기 때문에 나이를 먹으면서 증상이 나아질 것이라고 “괜찮다”고 말하면 환아 부모가 “책임지실 수 있냐”거나 “나빠지면 어떻게 할 거냐”고 되묻는 경험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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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41세 때, 이주영은 순천향대학교 부속 천안병원에 사직 의사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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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1일 목요일, 41세 때, 이주영은 순천향대학교 부속 천안병원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를 마지막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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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41세 때, 이주영은 2008년 소아과 전문의가 되기로 결심했던 때부터 지난 20년 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됐다는 좌절감에 빠져서 한 달 동안 무계획으로 휴식을 취할 작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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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41세 때, 이주영은 일주일 동안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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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41세 때, 이주영은 19대와 20대 새누리당 소속 국회의원이었던 소아심장학 전문의 박인숙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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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75세 때, 이주영은 후배 소아과 전문의 이주영에게 의료 현장의 이야기를 전할 사람이 필요하고 그건 의사로서의 책임이라는 취지로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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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41세 때, 이주영은 개혁신당 대표 이준석의 영입 제안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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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41세 때, 이주영은 정치 뉴스를 검색해보면서 개혁신당 대표 이준석의 창당 과정을 공부했고 정치에 뛰어든다면 개혁신당이 맞겠다고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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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41세 때, 이주영은 개혁신당 대표 이준석의 입당 제안은 자신이 소아과 의사로서 전하고자 했던 신념과 통한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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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41세 때, 이주영은 컴퓨터 과학과 경제학을 전공한 이준석이 매 사안에 대해 이과적 알고리즘으로 접근하는 것을 보면서 신뢰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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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41세 때, 이주영은 개혁신당을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하는 정책 정당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고 입당을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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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41세 때, 이주영은 남편과 양가 부모님께 개혁신당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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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41세 때, 이주영은 개혁신당에 입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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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19일 월요일,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 박단의 주도로 전공의 파업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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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1일 금요일, 41세 때, 이주영은 2012년부터 일했던 순천향대학교 천안병원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에서의 퇴국식과 송별회가 취소되면서 우체국 택배로 감사패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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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20일 수요일, 41세 때, 이주영은 개혁신당 비례대표 1번 후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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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22일 금요일, 42세 때, 이주영은 개혁신당 비례대표 2번 천하람과 함께 공동총괄선대위원장으로 임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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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개혁신당 의원과 천하람 개혁신당 의원의 주장=2024년 3월, 개혁신당 영등포구갑을 후보 허은아는 개혁신당 화성시을 후보 이준석에게 비례대표를 달라고 요구했지만 거절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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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20일 수요일, 국무총리 한덕수와 교육부장관 이주호는 증원된 2000명 의대 정원에 대한 의대별 배정 결과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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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25일 월요일, 42세 때, 이주영은 국회에서 “의사와 대통령이 싸우면 환자만 더 힘듭니다”라고 쓰여진 백드롭을 걸어놓고 첫 기자회견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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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27일 수요일, 42세 때, 이주영은 메디게이트와의 인터뷰에서 “소아과 오픈런과 응급실 뺑뺑이에 대해선 여러 차례 얘기를 해왔다. 10여 년에 걸쳐서 소아 인구는 거의 절반이 됐는데 소아과 전문의 수는 2배가 됐다. 그런데 왜 소아과 오픈런이 생기나. 응급실도 예전에는 2차 병원들까지 다 응급실을 운영해왔다. 국가가 이상한 정책과 규제를 만들고, 법적 책임을 지우고, 지역의료를 했을 때 돈이 안 되게 만들고 특진료도 없앴다. 거기에 SRT, KTX가 생긴 것도 영향을 미쳤다. 소아과 오픈런과 응급실 뺑뺑이는 이런 요소들이 종합적으로 의료계의 토양을 무너뜨렸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그 좋은 소아응급센터가 왜 없어졌나. 정부가 없애고 있다. 정부가 하나씩 다 쳐내고 있으면서 의사가 어디가 부족하다는 건가. 일단 현재 닥친 문제부터 바로 잡고 이후에도 의사가 부족하고 여기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있다면 당연히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아니다. 현실적으로 내가 작은 정당에 초임으로 들어간다고 해도 혼자서 뭔가를 만들어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인생의 큰 흐름 속에서 여기까지 왔을 때는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일반 국민들도 이게 의사들의 밥그릇 싸움이나 의사들의 안위를 위한 게 아니란 걸 알아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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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10일 수요일, 42세 때, 이주영은 이준석과 천하람과 자신까지 당선되자 개혁신당은 이제 살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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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10일 수요일, 42세 때, 이주영은 개혁신당에서 이준석과 천하람은 반드시 당선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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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10일 수요일, 42세 때, 이주영은 이준석의 당선 소식을 듣고 자신이 당선됐다는 사실보다 더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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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12일 금요일, 42세 때, 이주영은 저서 우리가 다시 먼바다로 나갈 수 있을까의 인세 전액 500만 원을 발달장애 청년들의 일터인 푸르메소셜팜을 운영하는 프루메재단에 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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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42세 때, 이주영은 세 아이들로부터 엄마는 무슨 일을 하려고 국회의원이 됐냐는 질문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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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42세 때, 이주영은 4년 뒤 다시 임기가 마무리되면 다시 소아과 의사로 살 수 있는 조금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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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42세 때, 이주영은 개혁신당 송파구 갑 지역위원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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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15일 수요일, 42세 때, 이주영은 개혁신당 대표 이준석과 개혁신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당선인 천하람과 셋이서 광주광역시 운정동에 위치한 5.18 민주묘지를 찾아서 1묘역과 2묘역에 안장된 전체 995기의 묘에 모두 헌화하고 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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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15일 수요일, 42세 때, 이주영은 5.18 민주묘지 1묘역에서 6시간 동안 참배를 했고 2묘역에서 1시간 30분 동안 참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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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15일 수요일, 42세 때, 이주영은 5.18 민주묘지를 7시간 30분 동안 참배하다 중간에 주저 앉아서 한참 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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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14일 금요일, 42세 때, 이주영은 의사 출신 의원 김윤, 서명옥, 인요한, 한지아, 김선민과 함께 보건복지위원회에 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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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26일 금요일, 42세 때, 이주영은 전공의와 의대생과 대화하는 비공개 오프라인 순회 모임 이주영의 소곤소곤을 강원도에서부터 개최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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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5일 목요일, 42세 때, 이주영은 개혁신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위대한 영도자 동지 현장 지도도 아니고 뭐 하자는 건지 모르겠다. 하나마나한 소리와 카메라 앞세운 쇼 대신 수십년 간 현장이 절규 해 온 법적 보호와 수가 정상화나 신경 써야 한다. 국민의 기본권과 개인의 자유는 알 바 아니고 추석 2박 3일만 정부가 욕 안 먹게 버티면 어떻게 될 것 같나. 안타깝고 또 슬프지만 이제 겨울이 다가온다. 심혈관 뇌혈관 터지고 막히고 온갖 호흡기 바이러스 창궐에 눈길 교통사고며 낙상까지 중환자들이 무수히 쏟아져 들어오는 응급실과 중환자실의 성수기가 곧 시작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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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 11일 금요일 오후 3시 30분, 43세 때, 이주영은 국회도서관 지하 소회의실에서 열린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후보 선대위 발족식에서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임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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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5일 월요일, 43세 때, 이주영은 개혁신당 대선 후보 이준석과 세브란스 어린이병원을 방문해서 어린이병원 신생아중환자실장 은호선 등 의료진과 면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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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22일 목요일, 43세 때, 이주영은 한국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정책학회의 제21대 대통령선거 공약평가 대토론회에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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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27일 화요일, 43세 때, 이주영은 젊은간호사회로부터 정책제안서를 전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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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28일 수요일, 43세 때, 이주영은 한국과학기술회관 지하1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 선거 후보 과학-보건의료 공약 토론회에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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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11일 수요일 오전 10시, 43세 때, 이주영은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법제이사 이용주와 대한의사협회 보험이사 최연철과 국회입법조사처 보건복지여성팀장 김주경과 함께 소아 의료체계 대전환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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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7월 11일 금요일 오후 2시, 43세 때, 이주영은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소아 희귀질환 치료제 접근성 강화를 위한 국회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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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7월 18일 금요일 오전 10시, 43세 때, 이주영은 이재명 정부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정은경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질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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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7월 27일 일요일, 43세 때, 이주영은 개혁신당 정책위의장으로 재신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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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7월 30일 수요일, 43세 때, 이주영은 아동건강기본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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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8월 7일 목요일, 43세 때, 이주영은 우리아이들병원을 방문해서 간담회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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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8월 22일 금요일, 43세 때, 이주영은 2012년부터 2023년까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로 일했던 순천향대학교 천안병원을 방문해서 간담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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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 8일 월요일 오후 2시, 43세 때, 이주영은 국회 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린 의료분쟁 관련 법제도 개선 방안 모색을 위한 공청회에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정진숙과 국민의힘 국회의원 서명옥과 함께 참석했다.

이주영